〈 190화 〉 무상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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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금속의 부딪히는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빛과도 같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두 자루의 검은 충돌하고, 불꽃을 튀기며 떨어져 나가는 것을 반복한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둠의 공간 속이었지만, 서로의 모습은 뚜렷하게 보였고 불꽃이 튈 때마다, 그 뒤를 이어서 흑마력의 격류가 휘몰아쳤다.
적이 휘두르는 육중한 대검에 비하여 무게도 적게 나가는 갈라테아이지만, 부족한 질량은 클레온의 흑마력으로 보충한다.
하지만 그것은 클레온에게도 목숨을 건 외줄 타기와도 같은 행위였다.
클레온의 흑마력이 부딪히는 속도가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대검의 질량에 압도되어 클레온의 자세가 무너지게 될 것이고.
역으로 정확한 타이밍보다도 빠르게 흑마력을 흘려 넣으면 뭉쳐서 대검을 튕겨내야 할 타이밍의 전에 흑마력이 흩어지고 만다.
10의 마이너스 18승. 즉, 찰나라고 불리는 그 순간. 상대방의 검과, 자신의 검이 충돌하게 되는 일순에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그다음 순간은 땅바닥에 스러진 고깃덩어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피하면 된다. 상대의 검을 무리하게 받아칠 필요 없이 피하면 되는 것이다. 비슷한 검을 휘둘러 왔던 아인과의 싸움에서 그랬던 것 같이.
막을 수 없는 공격, 막으면 안 되는 공격에 대해선 철저하게 회피행동을 취하는 것이 현명한, 경험 있는, 올바른 검사의 싸움법이었다.
하지만, 클레온은 알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검극이 아니다.
무의식적으로나마, 필연적으로 `승부`에서 물러서는 것은 곧 자신의 신념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상대방은 물리적인 형체를 가진 적이 아니다.
외견이야말로 마검 황제 카인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이것은 그 본인이 아니라 그의 모습을 빌렸을 뿐인 존재가 애매한 허상이었다.
그것이 자신의 기억, 그리고 전생자가 좀 더 효율적으로 아담에 대항할 수 있도록 방향을 수정하기 위한 전생 인자의 내부에 심어진 제어 인격과 섞여.
클레온의 자아를 죽이고, 그 몸을 차지하려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니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클레온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녀석이 휘두르는 검의 일합 일섬이, 클레온에게 운명을, 사명을 독촉하고 강요하기 위한 억제력이다.
따라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녀석의 검은.
몸을 굴리고, 허리를 비틀고, 목을 젖히더라도. 녀석의 검은 곧바로 클레온을 향해 따라 휘둘러져 온다.
마치 유도 기능이라도 달린 듯 휘몰아치는 검의 폭풍에서 발을 잘못 움직이면 곧바로 거기에 휘말려 갈기갈기 찢길 것이다.
그렇기에 전신전령을 다하여 받아친다. 스스로의 존재를 인정시킨다.
누군가의 대신이라던가, 그 뒤를 이어서라던가 가 아니라, `클레온`이라는 마검사가 걷기로 한 `길`을 검에 담아 보여낸다.
그런 생각이 몸을 움직이면, 놀라울 정도로 호흡은 안정되어 있었고 몸은 가벼웠다.
심장이 맥박을 치며 전신에 두른 흑마력의 농도를 짙게 한다.
[이런 꼰대…. 빨리 해치워 버리고 돌아가자…!]
갈라테아가 그렇게 외치자 클레온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승부를 내기 위해선, 이쪽에서부터 공격을 넣어 녀석의 검을 밀쳐낸 뒤, 숨통을 끊어야만 했다.
다만, 유도 기능이 달린 것 같다고 생각될 정도로 녀석의 검은 정확하게 클레온의 검을 틀어막고, 곧바로 이어서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확실한 궤적을 그린다.
공방 일체의 검술. 그야말로 환상으로 체험한 카인의 기억 속에서 그가 사용하는 검슬과 같았다.
일생에 걸쳐, 오직 레시아만이 파훼할 수 있던 그의 검술.
제국 최강의 검사. 검을 물고 세계를 집어삼키는 검은 짐승.
하지만 무패는 아니다. 그가 패배했기에 지금의 세계가 있다.
그러니 반드시 그곳에 약점이 있을 것이다.
전생 인자가 그의 모습을 빌린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가 지금까지의 전생체 중에서도 최강이었기 때문.
그런 생각을 하며, 벌써 몇 번째가 될지 모르는 검의 격돌 속에서 그의 움직임을 살핀다.
검이 휘둘러지기 전에 남아있는 몸의 버릇, 시선의 이동, 스텝, 그리고 팔의 궤도.
전신에 갑옷을 입고 있었기에 호흡이나 맥박의 변화나 근육의 팽창과 수축까지는 보지 못하더라도.
다음 공격이 몸통을 노리는 것인지, 머리를 노리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마저도 페인트인지.
읽어내고, 거기에 대응하여 갈라테아를 휘두를 필요가 있었다.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 공간은 말하자면, 클레온의 머릿속, 영혼의 안과 같았다.
시간의 개념은 모호하고, 어쩌면 카인의 기억을 엿보고, 이렇게 검을 휘두르는 이 순간마저도.
현실에서는, 자신이 보아야 할 검과 검이 부딪히는 순간의 `찰나`보다도 더욱 짧은 시간.
10해분의 1인 `청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문득 클레온은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웃음이 나와?]
"...아니. 뭐랄까. 생각의 안에서도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별의 별도 다 있다고 해서. 꿈속에서 꿈을 꾸는 것과 같은 건가."
클레온의 실없는 소리를 들은 갈라테아는 어이가 없었는지 잠시 반응을 멈추지만.
이내 그런 클레온과 갈라테아의 사정을 신경 쓰는 일없이 검을 휘둘러오는 적의 궤도 위에, 갈라테아는 클레온의 팔을 옮기듯이 이동하여 상대방의 튕겨내는 데에 겨우 성공한다.
[... ...]
바로 눈앞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보며 클레온이 입을 다물면, 그를 지켜낸 갈라테아 역시 무언의 불만을 표한다.
하지만, 이런 예측할 수 없는, 본래라면 일어날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본인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것은 사고의 유연함을 저하할 뿐이었다.
생각해야 한다면, 증명해야 한다면. 되는 데까지 해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 어째선지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걱정하지 마, 집중해야 하는 건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과거의 나라고 자칭하는 똑 닮은 녀석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이런 경험은 레시아라도"
거기까지 말한 클레온의 입은 조용히 다물어졌다.
그러고 보니. 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성가시구먼. 이전에 레시아와 들어간 적이 있는 환영의 동굴이 떠올라.`
`들은 적이 있어. 자신의 환영과 싸웠다고?`
`그래, 몇 시간이 지나도 승부가 나지 않자, 레시아가 성검의 힘을 최대출력으로 발휘해 동굴째로 무너뜨렸었지`
"풋... 하하하!! 아하하하하!"
갑작스럽게 클레온이 웃음을 터뜨리자, 그에게 검을 휘두르던 전생의 환영도, 클레온의 손에 쥐어져 있던 갈라테아도 그 자리에서 멈춰버렸다.
기계적인 사고로 클레온을 밀어붙이던 인자는, 예측의 범주를 벗어난 클레온의 갑작스러운 기행에.
설마 싸우는 도중에 상대방의 공격이 머리를 스쳤나 하고 걱정하는 갈라테아를 내버려 둔 채 클레온은 한쪽 손을 쥐었다.
[... 정말로 알고 있는 거야? 클레온.]
"아아. 물론이야. 정말이지, 과거에서 배울 수 있는 가르침이란 건 무시할 수 없는걸."
[... ...?]
클레온의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갈라테아였지만, 그에 비해 전생의 환영은 검을 다시 쥐며 클레온을 노려본다.
그런 시선을 받으면 클레온 역시 지지 않을세라, 환영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너는 내 기억이 만들어낸 환영. 내 일부다. 하지만, 넌 내 생각을 모르겠지. 알더라도 이해할 수 없을 거다."
"... ..."
"나는 그 녀석과는 다르기 때문이야. 주변과의 인연을 전부 끊어내거나, 먹어 치워버려 고독 그 자체를 자신의 힘으로 삼은 그 녀석과는...!"
다음 순간, 클레온은 자신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흑마력의 갑주를 풀어헤친다.
이것은 단순히 방어력을 상승시키는 효과뿐만이 아니라, 사용이 준비된 흑마력을 전신에 미리 두르는 것으로 원하는 때에, 더욱 정확한 타이밍에 흑마력을 끌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효과가 있었다.
그렇기에, 이 싸움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일종의 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무슨]
그리고, 풀어 헤쳐진 흑마력은 그대로 클레온의 손을 타고 갈라테아에게로 흘러 들어간다.
"성검의 흉내를 내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녀석을 떨쳐내고 이곳을 벗어날 방법은 아무래도 이게 가장 확실할 것 같아."
[...진심이야? 확실히, 지금 가지고 있는 마력을 전부 쏟아부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여긴 어디까지나 네 안의 공간이야. 그 공간을 전부 흑마력으로 채워서 날려 버린다는 건 당연하지만 네 영혼에도 부담이 가.]
갈라테아의 걱정이 섞인 목소리에 클레온은 그 손잡이를 강하게 쥐며 자세를 잡았다.
그 자세는 기존의 그가 사용하던 탈체크의 검술이 아닌, 어렴풋한 기억 속
아니 그가 아닌 그가 죽기 직전에 보았고, 그녀와 검을 마주하며 보았던 그 아름다운 용사의 검의 자세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검술의 원류는 제국 검술을 어레인지 한, 제국을 떠난 어떤 지방군 사령관의 아류 검술이었다.
운명의 이끌림에 의해, 그녀에게 검술을 가르친 것이 제국과 그 무자비한 황제에게 끝을 불러왔다.
"네 녀석..."
클레온의 그 자세를 본 환영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것이, 그 모습의 원래 주인이 가진 감정이, 환영을 통해서 나타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만큼은 잘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 클레온은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레시아가 퍽이나 싫은 모양이군. 전생인자는."
[그야, 그녀가 없었더라면 카인은 그대로 아담을 없애고 옥좌주의 자리를 차지했을지도 모르니까…. 그 때는 그의 섭리가 전 세계에 퍼져서 모든 인간이 고독함 속에서 살아야 하는 끔찍한 세계가 되었겠지만.]
다음 순간, 환영의 몸이 순간적으로 흐릿해지더니, 동시에 클레온의 바로 위에서 나타났다.
머리에서 땅을 향해 내리쳐지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무거운 검격 이것을 정면에서 받아낸다면 원래의 클레온의 몸은 그 자리에서 두 동강이 날 것이다.
하지만
한계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의 모든 것
흑마력은 물론이고 생명력과 신념, 마음을 담아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갈라테아는.
사명이라던가, 운명이라던가, 만들어진 의의라던 가를 내세우며 휘둘러오는 불합리한 `가벼운 검`으로서는 절대로 뚫을 수 없다.
카가가가각!!! 같은 귀를 울리는 시끄러운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조용히, 클레온에게 쥐어진 갈라테아를 그 검의 궤도에 가져다 대면, 그 자리에서 모든 소리를 삼켜버릴 정도로 격렬한 마력의 소용돌이가 일어나며.
그 소용돌이가 만들어내는 힘의 장력이 마검황제의 대검을 그 자리에 멈춰 세운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게 하지 않아…. 가자, 갈라테아."
[──알았어.]
클레온의 모든 마력의 흐름이 갈라테아의 검신으로 향한다.
흑마력의 주입은 갈라테아의 목소리의 형태를 바꾸고, 그녀에게서 새로운 `술식`을 만들어낸다.
수많은 마검사와 용사 중에서, 검과의 유대가 완전한 합일에 다다랐을 때 도달하는 경지 중 하나.
자신의 영혼의 안이라고 하는 특별한 조건에서, 클레온은 그 경지의 일부에 발을 디딘다.
마력 제어 기관, 한계 한정 해제.
[남색을 이루는 하늘의 별빛은 그 시작과 끝을 알리지 못하고]
소용돌이치던 흑마력은 그대로 그 크기를 크게 하면서 갈라테의 검신 전체를 물들인다.
출력부 설정 압축 개시 전 공정 수행.
[떠오르는 달은 스스로의 빛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지 못한다.]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 물리력을 가지기 시작한 흑마력은 서서히 적의 대검을 밀어내기 시작하며 주변의 물질을 집어삼킨다.
대상의 과열을 확인 이상을 무시하고 명령 속행
[손이 닿지 않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은 그 진실을 알지 못하는 것에서 기인하노니]
검신은 검게, 칠흑으로 물들고 극도로 마력은 팽창을 멈추고 역으로 압축되기 시작하며
전 공정 완료 대상의 완전 파괴를 위해 사용자의 보호 조율을 파기
[그렇다면 무지한 우자(?者)의 눈에 보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리라.]
단 한 번의 일섬을 위해, 축적되고 압축되기를 반복하며 갈라테아와 클레온의 심장 고동은 완전히 일체화되었다.
술식 구성 완료. 여기에 현현하라 흑마의 칼날.
[물들여라, 물들여라, 22번을 물들이고 무(無)로 회귀하라]
전생의 환영은 그 심상치 않은 현상에 위기감을 느낀 것인지, 본래라면 가질 리 없던 당황과 공포의 편린을 느끼며 뒷걸음질 치려고 한다.
하지만
[무상멸진(無???) 아르바타 아스트라]
서걱!
압축되어있던 흑마력을 단숨에 해방시키면, 어떤 것이라도 베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거대한 칼날이, 갈라테아의 검신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전, 알베인과의 결투에서.
이차원의 틈에서 훔바바들의 무리를 쓰러트리기 위해.
그때 만들어냈던 칼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출력을 자랑하는, 거대하면서도 압도적인 파괴의 현현이었다.
전생의 환영은, 자기 몸이 베였다고 느낄 수 없었다.
왜냐하면 클레온의 검이 베어낸 것은 자신뿐만이 아닌, 이 세계 그 자체였으니까.
"사명...을... 존재 의의를... 달성..."
"...내 존재 의의, 내 사명은. 내 신념이다. 사라져라. 과거의 망령."
기울어져 가는 세계 속에서 클레온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어둠으로 가득 차 있던 공간의 풍경은, 마치 유리 조각이 깨져나가듯 으스러져 가며 허공으로 흩어진다.
[클레온!]
스스로의 내부를 파괴하기 위해 흑마력을 고갈시킨 클레온은 당연하게도 그 자리에서 쓰러지려 했다.
아무것도 없는 바닥이 자신을 유혹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유유자적이 끝이 없는 아래로 영원히 떨어지겠지.
지금 이곳에 누워버린다면 얼마나 편하고 기분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려 한 그때
자신의 팔이 들어 올려지며 허공에 붙잡히듯이 멈추는 것이 보였다.
클레온이 천천히 힘들게 고개를 들어 올리면
그곳에는, 허공에서 나타난 사람들의 손이 자기 손을 붙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손들은, 본 적이 있는 손들이었다.
각인이 새겨진 손, 작지만 최선을 다하는 손, 검이나 지팡이, 펜을 잡기 위해 굳은살이 박여있는 손.
그리고
[어이, 내 검보다도 그 녀석의 검이냐?]
"...하."
불평과도 같은 목소리를 하며, 가장 단단하게 자기 손을 잡아주는 손.
클레온은 그 손에 나머지 손을 걸쳐, 몸을 일으킨다.
자신을 무겁게 끌고 들어가려는 끝이 없는 구멍에서 다시 한번 기어 나오기 위해.
손을 뻗으면 반드시, 그 손을 잡아주는
끊어지지 않는, 인연의 빛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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