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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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탑의 지하에 있는 연구 시설, 클레온 일행을 내보낸 연구소의 제어 인공정령인 머큐리는 계속해서 땅을 흔드는 진동에 몸을 비틀거리면서 손으로 벽을 잡는다.
"정말이지…. 물리적인 형체를 가진 육체는 불편하기 짝이 없군…."
이전과 같이, 공중을 부유하며 이동할 수 있는 빛무리의 형상으로 활동할 수 있다면 지진이 일어나건 파도가 몰아치건, 회오리바람이 불어오든 간에 상관하지 않고 연구소를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력한 자극으로 육체와 영혼의 연결이 너무나도 강해진 탓에 이 임시 육체에서 자신의 영혼을 분리해낼 수 없게 된 것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쿠웅!
하고 무거운 진동이 다시 한번 울렸다.
불규칙적으로 땅속을 계속해서 울려 드는 충격은, 일반적인 지진과는 다르게 지표면에서 발생하여 지하로 전달되어오는 녀석이었다.
즉, 지진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표면을 관찰할 수 있는 환영의 화면에는 두 명의 소녀가 마치 춤을 추듯이 서로의 거대한 무기를 부딪치며 땅을 질주하고 있었다.
한쪽은, 천사의 날개를 본뜬 듯한 화려한 장식에 감싸여진 거대한 흰색의 망치.
그 끝에는 신성 마력에 의해 구성되어있는 마법진이 펼쳐져 있어서, 닿는 것이 부정한 존재라면 일체를 불문하고 멸각시키는 것이 가능한 정화의 화신과도 같은 무기였다.
이단자에게 낙인을 찍듯이, 한번 휘두를 때마다 그 충격파만으로 지면에 마법진의 문양이 남을 정도의 힘을 가감 없이 휘두르고 있었다.
그것을 휘두르는 소녀 역시, 순백의 갑주에 몸을 감싼 성전사.
백금발의 머리를 흩날리며 눈앞의 적을 쓰러트리기 위해 필사적인 것을 화면 너머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와 대치하는 것은 투박하면서도 무기로서의 본질을 궁극적으로 추구한 거대한 흑색의 대검.
화려한 장식도, 아름다움도 필요 없다는 듯 흑철과도 같은 검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대검은, 검신의 넓이와 길이만 보더라도 살인적인 질량을 가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검신의 주변을 맴도는 흉악한 마력의 격류가 희생자를 원하여 어둠을 내뿜고 있었다.
명백하게 물리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힘을 가지고 검을 휘두르는 서큐버스는 검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때로는 하늘을 날아 공중에서 소녀를 덮친다.
표정은 차가웠고, 눈에는 감정이 없는 듯했지만 망치를 휘두르는 소녀보다 여유가 있어 보인다.
두 사람의 무기가 부딪치면 흑마력과 신성 마력의 반발 작용으로 인해 주변에 강력한 충격파가 퍼져나간다.
땅이 흔들리고, 그 여파로 주변의 나무들이 쓰러지기도 한다.
마을에 있는 수정구조물들은 조금씩 금이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싸우는 것은 상관없지만, 수정탑은 무너트리지 말아줬으면 하는군. 결계의 회복과 유지에 필요하니까 말이야."
자신이 하는 말이 그들에게 닿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자연스럽게 혼잣말을 한다.
그리고 문득, 자신이 혼잣말하는 버릇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것이었다.
"...이것도 이 육체에 정착된 영향인가? 정말이지, 성가신 몸이야…."
오감이 생긴 덕분에 정령 시절에는 모르고 있던 연구 시설의 추위나, 어둠에 대한 불안, 이명에 대한 불쾌감이 끊임없이 몸을 덮친다.
이렇게나 불안정한 존재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영체의 형태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 ..."
살아있는 육체에 강하게 연결된 것으로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살아있는 존재들은 누구나 불안을 가진 채 살아간다는 것.
육체의 연약함, 생명의 허무함,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제한 되어 있는 지능.
그런 것들에서 유래하는 불확정된 현실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자신을 덮치는 것을 늘 견디고 있다.
머큐리는 생각한다.
자신들은 트리스 메기스토스의 유지를 이어 원초 세계의 끝자락부터 지금의 순간까지 역사의 뒤편에서 아담과 이브를 통해 인간들의 세계에 개입해 왔었다.
그것이 자신들의 존재의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일까.
분명, 시작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창조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영겁의 세월을 살면서, 육체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가지는 불안도, 고뇌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입력된 것은 `학술적 진취가 발생하였을 때 얻을 수 있는 쾌감`이 전부.
그러니, 인간과 세상을 일종의 실험을 위한 재료로 보고 있었다.
"그런 오만함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진정으로 인류를... 트리스 메기스토스의 유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일까."
버릇되어버린 혼잣말로 그렇게 자문한 뒤, 진동이 멎은 머큐리의 시선은 연구실의 한쪽. 5000년에 가까이 방치되어 있던 캐비닛을 발견한다.
방어벽 술식의 구축 및 재전개를 자동으로 돌려놓고 다시 일어날 진동에 대비하여 조심스럽게 걸어가 문을 열면.
연구실의 관리 기능에 의해 세월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보존되어 있던, 트리스 메기스토스와 그 조수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던 의복이 들어있었다.
이제부터 하나의 인격체로서,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면 필요한 것이겠지.
적당한 하늘색의 스웨터와 청바지를 입고, 그 위에 백의의 가운을 걸친다.
방의 벽에 걸려있는 거울로 자신을 바라보면 그 차림새는 과거 자신들을 만들며 일희일비했던 창조주와 그 조수들의 모습과 비슷했다.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조금 더 캐비닛을 뒤져보면, 과거 그의 마스터가 자신의 앞에서 그 목숨을 다했을 때 처분하지 않고 보관해 두었던 안경이 보였다.
도가 들어있었지만, 그 위에 마력을 코팅하면 그런 것은 상관없이 앞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당신의 흉내라도 내는 것 같은걸. 트리스 메기스토스."
언젠가의 창조주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며, 몸을 돌려 기계로 돌아간다.
지금 중요한 것은, 위에서 싸우고 있는 소녀들 그중에서도 `흑마의 일족`.
아마 저것이 전송된 이브 중 하나가 만들어 낸 프로토 아키타입 B형의 여성체.
"... 어째서 종족이 악마로 바뀌어 있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알아내지 않으면. ...그리고 그것에도 어쩌면 아담의 개입이..."
연구소의 마력 발전기를 잠시 바라보더니, 거대한 자판의 앞에서 재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구속용의 새로운 술식을 구축... 그게 될 때까지 버텨다오. 수정탑... 그리고 세인트 프린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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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셔…. 그 망치도, 그 모습도…. 넘쳐흐르는 신성 마력도."
릴림은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회전시켜, 판도라의 궤도 위에 마력의 발톱을 더한다.
지금까지 릴림이 사용하던 마법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던 그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그녀의 안에 갇혀 있었던 판도라의 힘만을 그녀가 끌어내서 사용하던 것이었다.
허나 그런 것과 관계없이, 악마가 된 릴림의 힘은 인간의 영역을 훨씬 초월한 무언가였다.
그것은 이미 종족적인 면에서의 격차의 이야기.
분명 세인트 프린세스는 성령이라는 신성 마력의 의지와도 같은 존재에게서 힘을 직접 내려받은 초월자에 가까운 위치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기에는 아직 아멜리아의 경험도, 성장도 부족했다.
어디까지나 일반인에게 털이 난 수준.
그것을 억지로라도 괴물(악마)과 같은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전적으로 아멜리아가 가진 세인트 프린세스로써의 힘 악마의 대적자라는 위치에서 받을 수 있는 신성 마력의 백업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세인트 프린세스는 어디까지나 `왕도의 수호자`라는 것이 본분.
그녀가 가지고 있는 대용량의 신성 마력 저장 장치라고 할 수 있는 펜던트는, 왕도 엘케르도의 엘리멘탈 크로스 영맥에서 끌어올려 진 힘을 축적하여 그녀에게 부여하는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고위 악마와 싸우기 위해 힘을 사용하기 시작한다면, 그 출력을 유지하기 위해 펜던트에 저장된 마력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어 간다.
그것은 아멜리아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신은…. 대체 무엇인가요. 폭주하는 용사들을 저지하게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 건가요…!? 어찌 보면, 당신도 인류의 수호자"
"그런 것. 나에게는 상관없는 일…. 나의 사명 `카인`... `클레온`. 전생체와 이어져 일족을 번영시키는 것."
릴림의 감정 섞이지 않은 목소리가 아멜리아의 말을 부정한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그 말에 고개를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머큐리가 보여주었던 과거의 환영.
그 안에서 두 사람의 창조주가 원했던 것은 신성 마력이 전쟁의 병기로 전락하고, 그것이 같은 인간들을 멸망시키기 전에 그들을 멈추는 것.
비록 전쟁이 예상보다도 빠르게 시작되어, 그것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태어나기 위해 주어진 의미라는 것을, 이 악마는 너무나도 쉽게 포기했다.
그것도, 사적인 욕망과 비틀린 사명을 위하여.
"역시, 당신은 잘못되어 있어요…! 사랑이라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타인을 상처 입힌다면…! 제가 막겠습니다!"
그렇게 외치는 아멜리아의 눈에는 눈물마저 맺혀있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본래 누릴 수 있었던 모든 행복을 빼앗기고.
누구도 진심으로 다가오지 않는 새장과도 같은 곳에서 갇혀 있던.
인형과도 같았던 그녀가 삶의 의미를 되찾은 것은 그녀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왕국의 사람들은 그녀에게 증오의 화살을 돌린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한다면, 그들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책무라고 한다면.
누군가가 어머니와도 같은 오렐리아가 자신의 힘이 필요하다면.
무거운 망치를 들고, 순백의 갑옷을 걸치고, 어두운 그림자가 걸린 왕도의 밤을 홀로 걷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았다.
그것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으니까.
아멜리아 칼데아리스. 유폐왕녀. 루시우스 칼데아리스의 딸. 세인트 프린세스.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마저도, 사명마저도 포기해버린다면 자신에게는 더는 남는 게 없었다.
"... ..."
따끔, 하고 자기 어깨의 아래에서 무언가 느껴졌다.
이전에도 느낀적이 있는 감촉, 하지만 지금의 자신에게는 클레온에게서 받은 각인이 있고, 그것이 그것의 성장을 억제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도, 그 고통을 억누르고 망치를 커다랗게 휘두르며 릴림에게 달려들었다.
"하아아앗!!"
감정을 실어 목소리를 높이면, 거대한 망치와 검은 대검은 정면으로 부딪쳤다.
서로의 마력기관에서 끊임없이, 상반되는 흑백의 마력을 보내 충돌시킨다.
그때마다, 주변을 진동시키는 파동이 퍼져나가며, 드디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하기 시작하는 에메랄드가 있을 정도였다.
"나의 사명은, 악마들을 막아내는 것…! 당신들의 야망이 세계의 위협이 된다면! 전력을 다해서!"
"...마력의 보유량이 적어져서…. 단기 승부로 나온 건가..."
아멜리아의 전력을 받아내는 릴림의 팔 역시, 서서히 굽히면서 기세에서 밀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명백하게 자신 쪽으로 가까이 오는 무기의 충돌지점을 릴림은 무표정으로 바라보지만, 아멜리아는 그것을 보고 승기를 느끼고 있었다.
신성 마력과 흑마력은 서로 반발하는 작용을 하지만, 신성 마력의 정화 작용은 일반적으로는 흑마력의 거부 반응을 웃돈다.
동일한 수준의 마력이 부딪히면,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신성 마력의 쪽이 흑마력을 압도할 수 있는 것이다.
본래는 싸움과는 거리가 먼 성직자들이어도 상대가 흑마력으로 구성된 육체를 가진 악마라면,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조금만, 더...!`
마음의 격양에 유발되듯, 그녀가 휘두르는 망치에 더욱 많은 신성 마력이 주입된다.
그녀 자신도 모르고 있었지만, 필사적인 그녀에 반응하며 펜던트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안의 마력기관도 빠른 속도로 시성 마력을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파동은 커져만 갔고, 수정탑은 더욱 크게 진동한다.
이내, 그 압도적인 출력을 견디지 못한 릴림의 판도라의 검신에 살짝이지만, 금이 가는 것이 보였다.
두근, 두근, 하고 심장이 뛸 때마다 펌프질 되어 쏟아져 나오는 마력의 격류에, 자신의 의지를 담는다.
검신에 난 금이 커져만 간다.
"... ..."
"제발...! 이걸로...!"
아멜리아가 그렇게 외친 다음 순간
"집어삼켜라. "
여전히 표정을 바꾸지 않던 릴림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검신에 나 있던 금 사이에서 흑마력의 폭풍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검은 짐승 그 자체와도 같은 형상이 되더니 아멜리아의 몸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그녀를 아예 감싸버리는 것이었다.
"큭...! 어째서! 마검이 그 정도로 파괴되려 하는데, 출력을 높일 수 있는 거죠...!?"
"파괴……? 착각하고 있나 보네. 너는, 이 검을."
릴림이 그렇게 말하며 판도라의 검신에 손을 올리자
금이 가 있던 검신은 산산조각이 나며 흩어진다.
그리고 릴림이 보고 있던 그것 검신이라고 착각하고 있던 그것이 사실.
판도라의 진정한 모습. 순수한 흑마력의 도신을 억제하기 위해 부여된 물리적인 봉인구라는 것을.
"─어?"
아멜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목소리를 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기 몸을 완전히 집어삼키려 하는 흑마력의 격류가 펼쳐지면, 그것은 하나의 영역을 만들어낸다.
회복 마법, 공격용의 퇴마 마법을 비롯한 모든 신성 마력의 영향력과 위력을 줄이는 소영역.
[흑마력 영역]
순식간에 아멜리아의 몸에서 신성 마력의 기운이 사라져 간다, 그것은 단순히 그녀의 육체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마력으로 존재를 유지하는 갑주와 무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콰직!
하는 소리가 거대한 망치에서 울렸다.
그 균열은, 검과 맞대어져 있던 부분에서 시작되더니 빠른 속도로 망치 전체로 퍼져나가, 순백의 갑주도 집어삼켰다.
그리고
유리라도 깨져 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전신을 뒤덮던 세인트 프린세스로서의 힘이 사라졌다.
얼굴이 경악과 절망으로 물들며, 아름다운 몸이 검은 탁류에 휘말린다.
"...이걸로 방해꾼은 하나. 사라졌네."
세인트 프린세스는 왕도에서도 자신과 이슈탈을 지속해서 방해하던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전생체인 클레온과도 먼저 몸을 접하여 각인을 받았다.
전생의 자신도, 몸이 어린아이 같다는 이유로 받지 못한 각인을.
비록, 그녀의 안에 작은 어둠의 씨앗을 심기 위한 계획 일부였다고 하지만 질투를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어찌됐든 신성 마력으로 싸울 수 있는 존재인 아멜리아를 제외하면, 자신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저기서 전생체를 치유하고 있는 반쪽짜리 천사였다.
그녀 본인, 힘의 제어가 제대로 되지 않는 듯하였지만.
그렇다면 판도라와 자신의 상대는 되지 않으리라.
위에서 비행형 마물들을 상대하고 있는 두 사람도...
"지금 이곳에서 모두 없애고... `클레온 님`을..."
릴림이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로부터 몸을 돌리려 하면.
덥썩! 하고 자기 손목을 잡는 무언가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을 내려다보면, 가느다란 여자아이의 팔과 손이 어둠에서 빠져나와 릴림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잘라낼까. 이 팔."
마치 겁을 주듯 그렇게 말하지만, 절대로 자신을 놓으려 하지 않는 것에 짜증을 느낀 것일까.
릴림이 판도라를 다시 한번 휘두르려고 하면
[잘 버텼다. 세인트 프린세스. 지금, 결계가 재가동했다.]
다음 순간, 수정탑이 스스로 파동과도 같은 것을 일으키며 주변으로 보이지 않는 벽을 전개한다.
그 벽은 서서히 넓혀져 가며 협곡 전체로 퍼져가 마을 전체를 덮는 것이었다.
"... ..."
릴림이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와 결계의 재가동을 확인하며 고개를 돌려 할 때
갑작스럽게, 그녀가 발현해서 아멜리아를 삼키고 있던 흑마력이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판도라도 마찬가지였다.
"이것, 은."
릴림은 적지 않게 당황하며 몸을 비틀거린다.
그녀 역시, 악마로 전생한 존재.
몸은 흑마력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흑마력 영역을 인공적으로 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출력. 흥미로웠다. 하지만, 흑마력 영역의 반대 개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너는 알지 못했나 보군.]
"...반대...?"
머큐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릴림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약해져 가는 자신의 힘을 내려다본다.
[그래. 흑마력 영역의 반대 신성 마력 영역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울리겠지. 하지만 사람들은 다른 용어로 부르곤 한다. `성역`이라고.]
새롭게 펼쳐진 결계는, 기존의 결계보다도 더욱 신성 마력이 짙게 섞여 있었다.
흑마력 영역이 고농도의 흑마력을 넓게 펼쳐, 그 안에 신성 마력을 사용하는 것들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성역은, 그것과 완벽하게 반대되는 개념. 신성 마력으로, 그 안에 흑마력을 사용하는 것들을 담아내어 약화하는 것이다.
이 안에서는, 회복마법의 위력은 물론 신성 마법도 강해진다.
[그리고 이것으로 마무리다.]
다음 순간, 수정탑의 첨단에서 마법진이 펼쳐지며, 오직 릴림을 구속하기 위해 완성된 새로운 구속 술식이 사슬의 형상으로 뻗어와 릴림에게 날아간다.
릴림은 어떻게든 날개를 펼치고 고속으로 비행하여 그것에서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발을 묶는 소나기!"
"인페르널 체인!"
결계의 재생성으로 인해 빠르게 지상으로 돌아온 사샤와 라일라가 동시에 구속계열의 기술을 사용하자 그것을 피하고자 순간적인 감속이 이루어지고
"엔젤즈 프리즌...!"
쿠온이 손을 뻗어, 몸이 멈춘 릴림의 주변에 신성 마력으로 이루어진 감옥을 만들어낸다.
물론 판도라를 휘둘러 그것을 부술 수 있었지만 거기까지 발목이 잡혀버리면. 따라붙게 되는 것이었다.
"릴림!!!"
아무런 힘도 없이, 그저 가지고 있는 본인의 힘만으로 뛰어와서, 도약한 그녀.
그리고, 릴림의 다리를 붙들어 그녀의 균형을 크게 흔든다.
"아멜...리아...!!"
릴림이 분노를 담아 그녀의 이름을 부른 다음 순간.
릴림의 몸을, 사슬이 관통한다.
[대악마용 구속 술식. 메타트론!]
머큐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사슬은 거대한 12쌍의 날개로 바뀌어 릴림의 몸을 완전히 감싼다.
그리고, 릴림은 카인에게 구원받았을 그때와 같이 거대한 얼음과도 같은 푸른 수정에 몸을 고정 당하게 된다.
"클, 레온... 님..."
손을 뻗어, 땅에 누워있는 클레온을 향해 그렇게 외치지만
그 목소리가 닿을 일 없이, 릴림은 그 자리에서 신성 마법에 의해 봉인되는 것이었다.
릴림의 지탱을 잃어 중력에 맡겨진 채 판도라의 몸이지면으로떨어진다.
그리고 클레온이 눈을 뜨는 것은 그것과 거의 동시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