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192화 (192/506)

〈 192화 〉 존재 증명

* * *

000

결계가 재생성된 협곡에서는 한창 마을의 수복이 진행 중이었다.

전투의 여파로 인해 금이 가거나 파괴된 구조물에는 치유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녹수정을 회복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쿠온이 바쁘게 마을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사샤는 이전의 싸움 도중에 혹시 다른 곳을 통해 결계내에 마물이 숨어들어오지 않았나 협곡을 몇 번이나 순찰했다.

아멜리아는 흑마력에 한번 감싸여진 것과 맨손으로 릴림의 몸을 잡은 덕분에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저주 비슷한 것에 걸렸기 때문에 그것이 나을 때까지는 요양이 필요했다.

"흐음. 네 말대로. 조금 위쪽의 수 속성 영맥에 오염 요소가 있는 것 같군. 오토마타를 보내서 청소하도록 하지."

"...고대인의 오토마타라니. 신경 쓰이는데, 어떤 거야?"

라일라와 머큐리는 지하의 연구실로 돌아가 협곡 근처에 있는 오염된 영맥의 정화를 위한 조사를 계속하고.

결과, 오염원의 위치를 발견했기 때문에 그것을 정화하기 위한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구소 유적의 같은 방.

클레온은 푸른색의 수정 속에 봉인된 뒤, 수정탑을 통해 연구실로 옮겨져 봉인된 릴림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안. 전생의 기억을 보고 난 뒤,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 커다란 걸림돌 같은 것이 치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괜찮다는 것을 이야기하였지만 반강제적으로 몸을 검사당한 뒤, 머큐리는 이야기했다.

`네 안에서, 전생 인자가 사라졌다.`

원인은 알고 있었다.

녀석과의 전투에서, 갈라테아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낸 결과 만들어졌던 하나의 경지.

그 검기가 인자는 물론이고, 녀석이 깃들어있던 클레온의 영혼의 안의 공간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것이다.

"클레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몸을 돌리면 그곳에는 아루루가 조금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클레온을 보고 있었다.

클레온도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마검 황제, 카인. 그녀가 사용하던 대검 판도라.

아루루에게 있어서는­ 공포의 대상.

왕국을 불태우고, 수많은 이들을 고통으로 밀어 넣은 대륙의 공적(??)이 클레온의 전생이었다고 한다면 당연하게도 지금처럼 대하기는 힘들 수 있다.

"...조금. 산책이라도 할까."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아루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갈라테아. 릴림을 보고 있어 줘."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허리춤에 걸려 있던 갈라테아가 빛나더니 인간의 모습을 취한다.

언제나 처럼 아름다운 청록색의 머리와 노출도 높은 의상이었지만, 평소의 여유로움은 어디로 갔는지, 그녀 역시 클레온을 걱정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알겠어... 하지만 클레온. 너도 무리하면 안 돼."

갈라테아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머큐리의 신체검사에서, 클레온의 내부는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말하자면, 이전의 루베라가 그랬던 것 같은 상황이었다.

전생인자는 클레온의 내부를 구성하는 `육체적` `정신적` `영혼적`인 요소 중 하나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전생을 거듭하면서 결함을 개선하는 것이 전생 인자의 본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 세월을 걸치며 인자는 그것보다도 아담의 폭주를 저지하기 위한 도구로서, 효율성을 중시하는 전생체들을 만들어내려 했다.

마검 황제 카인은 어찌 보면, 그 효율성을 추구한 끝에 도달한 한 가지 형태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클레온은 각인을 통해서 힘을 끌어오는 것은커녕, 흑마력을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태이다.

신체 능력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눈을 뜨고 난 뒤에는 스스로 몸을 일으키는 것도 힘들 정도로 몸 전체가 삐걱 거렸던 것을.

머큐리가 치료 캡슐에 집어넣고 강제로 어느 정도 회복시킨 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몸의 안의 마력 기관 등은 회복을 위해선 아직도 시간이 더 걸리는 듯하여서, 전생 인자 관련도 물론 있지만 최근에 연속으로 몇 번이나 몸 전체를 갈아엎을 정도로 크게 다치었던 것이 반복된 것이 이유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짐작 가는 바는…. 몇 개나 있었다. 커다란 사건이 끝나면 미이라 상태가 돼서 침대 위에 눕는 것이 징크스처럼 되어 있었으니까.

클레온과 아루루가 몸을 돌려 방을 나서려 하면, 머큐리가 클레온을 돌아본다.

"음? 클레온. 마을 밖으로 나가는 건가?"

"아니. 산책 나가는 거니까…. 마을 밖에 나갈 수도 있겠는걸."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머큐리는 마침 잘 되었다는 듯이 작은 구 형태의 마도구를 서랍에서 꺼내 클레온에게 던져주었다.

턱! 하는 소리가 들리며 클레온이 그것을 한 손으로 받아내면, 작은 형태에 비해 꽤 무게가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마을에서 나가면, 협곡의 곳곳에 평범한 에메랄드랑은 색이 다른 광석들이 있을 거야. 그걸 좀 채취해 와 줘."

머큐리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라일라가 옆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잠깐, 클레온은 부상 중이라구."

"뭘. 해줘야 할 건 간단해. 그 마도구는 자원 채취용의 소형 오토마타야. 가운데에 버튼 같은 게 있지? 그걸 누르면 알아서 그 광석을 채취할 테니까."

"그래도…."

라일라가 더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하면, 클레온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나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건 성격에 안 맞으니까. 가자. 아루루."

"아, 응..."

천천히 걸어 나가는 클레온의 뒷모습을 보며, 아루루는 어딘가, 조금 안도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뒤를 따라간다.

"자, 그럼. 드디어 클레온과 떨어진 갈라테아? 너에 대해서도 조금 검사를 하고 싶은데…."

"꿈. 깨시지!"

클레온이 방을 나간 것을 확인한 머큐리가 눈을 반짝이며 갈라테아를 돌아보면, 갈라테아는 등골에 소름이 돋는 느낌을 받으며 저항의 의사를 내비치는 것이었다.

001

클레온과 아루루가 수정 탑의 전송기를 통해 지상으로 올라오면, 마을은 일행의 활약으로 꽤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거기에, 본래의 결계와는 다르게 신성 마력이 높은 농도로 섞인 결계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녹주석의 건물이나, 녹주석 자체도 이전보다 커다랗게 자라난 것처럼 보였다.

"많이 회복된 것 같네. 다행이야."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 아루루도 옆으로 따라 붙는다.

"그렇네. 쿠온양이 열심히 뛰어다녀준 덕분이려나. 건물에도 회복마법이 통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조금 놀랐지만. 이곳의 녹주석들은 평범한 광석이 아니라는 것 같으니까."

아루루도 그렇게 이야기하며, 주머니에서 녹주석의 결정을 꺼내 들었다.

마을에서 자라나 있는 다른 녹주석들과는 다르게, 좀 더 투명하고, 곧바로 장식품에 사용해도 될 것 과 같은, 수정 기둥의 형태로 가공되어 있었다.

"그건?"

클레온이 궁금하다는 듯이 질문하자 아루루는 그것을 태양 빛에 비춰 보이며 대답한다.

"녹수정을 통해서 만든 `통신용 마도구`…. 라는 것 같아. 이렇게 순수하고 마력 함유량이 높은 녹수정에는 자체적으로 술식을 보관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것 같아서. 가브리엘님이 어머님께 전해달라고 하셨어."

"오렐리아님께..."

"응. 편지가 아니라, 직접 목소리를 듣고 싶으시다는 것 같아."

클레온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오렐리아는 가브리엘에게 있어서는 딸의 친구이다.

지금은 대부분 이들이 이름을 꺼내는 것을 꺼리거나, 기억의 저편으로 잊어버린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였다.

자신에게 있어서, 레시아는 대하는 소피아나 에스카와 비슷한 존재이겠지.

"...그런가."

"응. 어머님도 기뻐하실 거야."

그런 이야기를 하며 마을의 한쪽으로 천천히 걷다 보면, 마을과 협곡을 나누는 경계선 같은 위치에 지브릴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마을의 길 근처에 자라난 녹주석 들을 향해 마력을 사용하여 그것들이 길을 막지 못하도록 성장을 억제하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브릴이 두 사람의 인기척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리면 순간적으로 클레온과 눈을 마주친다.

"읏."

그리고는, 황급히 눈을 돌려 아루루 쪽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 ...`

클레온은 그녀의 반응을 보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을에 커다란 피해를 가져온 존재 역시 흑마의 일족인 릴림이었고, 그녀를 불러온 것이 `자신`이라는 것도 사람들에게는 알려져 있었으니까.

미움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아, 아루루님. 클레온 님. 산책하러 가시는 건가요?"

"네. 지브릴씨. 이쪽 길로 가면 뭐가 있나요?"

아루루 역시 지브릴의 시선을 그런 의도로 받아들인 것인가, 웃으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건네왔다.

"이쪽으로 가면…. `역류의 폭포`가 나와요. 협곡에서도 한 층 이질적인 공간이죠."

"역류의... 폭포?"

들어본 적 없는 용어에 아루루가 고개를 갸웃거리면 지브릴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말 그대로의 공간이지만…. 가보시면 알 거예요. 괜찮아요, 위험한 장소는 아니니까."

아루루도 그런 그녀의 말에 더는 질문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클레온과 함께 걸어간다.

그리고, 클레온이 지브릴의 옆을 스쳐 지나간 다음­

"크, 클레온 님."

하고 지브릴이 그의 이름을 불러서 멈춘다.

아루루도 클레온도, 조금 예상 밖의 일이었기에 발을 멈춰 그녀 쪽을 바라보지만 지브릴은 고개를 숙인 채로 우물쭈물 거리면서 이야기한다.

"모, 몸은…. 괜찮아지신 건가요?"

그렇게 질문해 오는 지브릴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는 듯했다.

클레온도 그런 그녀의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다.

"그래. 마력적인 부분은 아직이지만, 어떻게든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는 되었어."

"그, 렇군요... 다, 다행입니다."

여전히 대화하기 힘들어하는 듯한 지브릴의 반응에 클레온이 아루루를 돌아보면, 아루루도 어깨를 으쓱하며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렇다면... 몸을 `움직이시는 것`은…. 이제 가능하시다는 거군요…."

"...그렇지?"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영문 모를 말을 남긴 채 멀어져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클레온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자신을 꺼리는 것이 아니었나…?

"...모르겠군…."

그렇게 말한 뒤 몸을 돌려, 아루루의 옆으로 다가갔다.

002

"오오... 오오오오오!"

길을 끝까지 걸어가면, 지브릴이 말한 대로 `역류의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물줄기가 있었다. 커다란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는 소리가.

폭포라면 당연하겠지. 라고 생각하던 두 사람이었지만, 가까이 가서 본 모습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폭포의 물이, 아래에서 위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소리는, 중간중간에 있는 암석에 물이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였다.

아루루가 눈을 반짝이며 목소리를 높이자, 클레온도 감탄하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지? 마력적인 영향인가?"

"으, 음... 그 부분은 나도 전문이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이 세계에서 대부분의 일은 마력 때문이라고 해치울 수 있으니까…. 그렇지 않을까?"

아루루의 적당한 대답에 클레온도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아. 그렇지. 잊기 전에 광석도 채취해 두자."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자, 확실히 머큐리가 말한 대로 다른 녹주석과는 다른 색­ 조금 노란 색이 섞여서 연두색에 가까운 색이 된 수정들이 보였다.

"이건가."

"그런 것 같네. 조금 신성 마력이 느껴져."

아루루가 가까이 와서 손을 가져다 대면, 그녀의 신성 마력과 반응한 수정에서 조금이지만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새로운 결계의 영향을 받은 거로군. 이걸 조사하고 싶었던 건가…."

"결계가 성역을 만들어서 생태계를 변화시킬 수도 있으니까."

"성역... 아."

클레온은 한가지 가능성을 떠올리더니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자기 몸의 회복 속도가 느려진 원인이 혹시 `성역`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클레온 본인도 흑마의 일족으로, 평범한 인간보다도 흑마력에 대한 친화력이 높은 존재이다, 반대로 신성 마력과는 조금 상성이 나쁘다.

그러니까, 주변에 항상 신성 마력이 충만한 것과 비슷한 환경이 체내의 부상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왜 그래? 클레온."

그것과 비교하면 용사인 아루루나, 성직자인 쿠온, 그리고 아멜리아는 조금 사정이 낫겠지.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마도구는…. 버튼을 누르면 된다고 했지?"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며 주머니에서 공을 꺼내 버튼을 누르자, 클레온의 위에서 그것은 변형을 시작하더니 `생쥐`와도 같은 형태로 바뀌었다.

"...생쥐?"

"우와…. 엄청나게 정교하네…. 아카데미의 연금학과에서도 이 정도의 물건을 만드는 건 본 적이 없어. 물론, 마도구학과에서도."

아루루가 말한 대로, 생쥐의 형태는 완전히 기계였지만 그러면서도 예술작품과도 같이 수백 개의 나사, 그리고 태엽들로 만들어져 있었다.

등의 가운데에 박혀 있는 마력석에서 동력을 공급받은 그 녀석은 곧이어 클레온의 가까이에 있던 색이 다른 녹주석으로 다가간다.

그러고는, 자신의 날카로운 강철 이빨을 세우더니 녹주석의 표면을 갉아먹는 것이었다.

"...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네."

아루루는 그것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클레온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녀의 시선은 아까까지의 걱정스러운 시선보다는, 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났을 때 검을 마주했던 `강자에 굶주린` 아루루에 가까웠다.

"클레온. 너는, 마검 황제야?"

아루루가 천천히, 조용히, 하지만 또박또박. 한 글자 틀림없이 클레온에게 질문해 왔다.

클레온은 그런 아루루를 바라보더니 잠시 눈을 감았다 뜬다.

그리고, 클레온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니. 나는 클레온이지, 마검 황제가 아니야."

목소리가, 협곡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섞여서 아루루에게도 닿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조용히 바라보며 침묵했다.

긴장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눈과 눈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말보다도, 대화보다도 더욱 소중한 소통의 시간이라고 클레온은 느꼈다.

"... ..."

"아아. 역시. 다행이야…."

아루루는 그렇게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말하는 아루루의 한쪽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와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 아루루...?"

이런 질문을 받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였지만, 그런 아루루가 눈물을 흘릴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클레온이 당황하자.

아루루는 고개를 저으면서 자신의 볼의 눈물을 닦았다.

"클레온은 클레온. 마검 황제가 전생이라고 하더라도…. 클레온은 무자비했던 제국의 황제가 아닌. 타인을 걱정할 줄 알고, 부탁받으면 힘을 빌려줄 줄 아는 사람."

"... ..."

"다행이야…. 정말로…. 바뀌지 않아서…. 원래의 클레온이어서…."

아루루는 그렇게 말하며 양손을 들어 눈을 가린다.

손목으로 눈가를 훔쳐내는 것을 보면, 완전히 긴장하던 것이 풀려 눈물샘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듯했다.

"... 아루루."

클레온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에게 한 발짝 다가가,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역시, 단련을 거듭하였지만, 클레온에 비하면 너무나도 가녀린 팔과 몸이었다.

도저히, 사람들의 희망을 등에 짊어지고 싸워야 하는 존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 미안, 클레온. 나, 사실은 무서웠어…. 알고 있지? 아카데미의 미궁에서. `마검 황제`의 환영이 튀어나왔던 걸... 그건, 내 공포의 이미지에서 만들어진 환영이였어."

왕국의 평화를 지키는 용사로서,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커다란 공포의 존재는 왕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던 침략자인 마검 황제.

또다시 그런 위협이 나타났을 때. 용사 레시아도, 검성 탈체크도 없는 지금의 왕국이 그를 이길 수 있을까.

그녀는 그녀가 짊어지는 모든 의무를 자신의 긍지로 여기지만, 그렇기에 그 긍지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인 거대한 위협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혹여나 힘이 부족해서 지켜야 할 존재를 지키지 못하게 될까 봐.

그녀가 강해진 것은, 그 공포를 억누르기 위해서였고, 주변의 기대와 희망의 시선에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클레온은, 그런 아루루의 고민을 알아채고 이해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이해자 중 한 명이었다.

검을 통해 서로를 알아갔고,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했고, 몸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새겼다.

그런데, 그런 클레온이.

어쩌면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존재인 `마검 황제`와 같은 존재일 수 있다.

자신이 마음을 허락한 존재가 사실 그런 두려운 존재였단 사실이 아루루의 마음을 깊게 짓눌렀다.

클레온이 눈을 뜨고 혹시라도 자신을 적으로 여기며 무자비하게 검을 휘두르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론다이트와 함께 밤을 설쳤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는 것 같다.

클레온이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마검 황제를 떠올릴 수 없었다.

머큐리를 대하는 것이나, 릴림을 바라보는 눈이나, 지브릴과의 대화에서나.

어디에도, 클레온은 변하지 않은 채로 아루루의 앞에 있었다.

"클레온... 미안해. 조금이라도 당신을 의심해서…. 나는, 절대로 클레온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아루루는 달밤의 밑에서 춤을 추던 그 날의 약속을 떠올리며 클레온에게 눈물을 흘렸다.

"... ..."

어째서일까, 그녀로부터 사과를 듣고 있으면 이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물론, 아루루의 의심은 합리적이었다.

그녀는 알베인과는 다르다.

그는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고, 주변의 인기를 독차지하기 위해 합리적인 판단 없이 클레온을 내쳤다.

하지만, 아루루는... 용사로서 왕국을, 나아가서는 세계를 지키기 위해 검을 휘두르기 위해 불안과 공포를 이겨내며 클레온에게 검을 치켜둘 각오를 하고 있던 것이다.

"... 괜찮아 아루루…. 괜찮으니까, 더는 울지 말아줘."

"... 클레온."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루루와 몸을 떨어트렸다.

"분명. 내 전생은 `마검 황제`야. 하지만, 지금의 내 안에는 전생 인자도, 그의 존재도 거의 사라져서. ...아마, 나는 이후로는 전생을 하지 못하는 인간이 된 거겠지."

"... ..."

클레온의 시선은 역류하는 폭포를 향했다.

"나에게는 폭주하는 아담을 막는 존재가 된다는 `사명`이 있다는 것 같아…. 그걸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벌일 수 있는 효율적인 존재가. `마검 황제`가 그랬던 것처럼."

물의 흐름은 위에서 아래로, 흐름을 타고, 중력을 타고 떨어진다.

"... 하지만. 나는 그런 존재가 될 생각은 없어. `아담`이 위험한 존재라면 그걸 막을 거야…. 어떠한 희생도 없도록."

하지만, 눈앞의 물은 그 법칙을 거스르고 역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를 믿어주겠어? 아루루."

클레온이 다시 몸을 돌려 아루루를 바라보자, 아루루는 천천히 그런 클레온에게 다가와 클레온의 얼굴에 손을 뻗어왔다.

가볍게, 부드럽게, 두 사람의 입술이 붙었다가 떨어졌다.

"...물론이야, 클레온. 이제는 더는. 클레온의 손을 놓지 않을게."

003

채취한 광석을 머큐리에게 전달하면 머큐리는 `이걸로 재밌는 게 가능하다`라고 이야기하며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된 머큐리는 말을 걸어도 제대로 대답을 되돌려 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모두와 함께 지상으로 올라와.

슬슬 마을을 떠나야 할 시기를 정한 뒤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조용히, 숨소리만이 들리는 방.

숨을 죽인 발걸음 소리가, 클레온의 침실로 들어왔다.

"...죄, 죄송합니다. 클레온 님…. 용서해 주시길."

그러한 말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하면, 클레온의 몸이 조용히 무언가에 의해 들려져 숙소를 빠져나갔다.

잠시 뒤, 클레온이 눈을 뜬 것은 처음 보는 천장­ 아니, 본적이 있는 천장이었다.

`여긴…. 가브리엘 님의 저택…?`

처음으로 마을을 방문했을 때 들어왔던 건물이었다.

"오, 눈을 떴구먼. 흑마의 아이야."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슬쩍 돌리면, 자신이 침대 위에 누워져 있고, 그 옆에 가브리엘이 윙크를 하며 누워있는 모습도 보였다.

...전라로.

"무엇­"

"자, 잠시만요. 클레온 님. 기다려 주세요…. 갑작스러우시겠지만, 용서해 주시길."

클레온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옆에는 지브릴마저 전라의 상태로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 지브릴...?"

"하아... 하아...♡"

지브릴은 얼굴을 붉힌 채 호흡이 거칠어져서 클레온을 물기 띈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브릴은 완전히 스위치가 들어갔구나…."

"스위치­…. 제대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가브리엘 님."

"물론이니라. 안 그러면 그냥 강간범이잖느냐."

"납치만으로 충분히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만…."

클레온이 눈을 가늘게 뜨자, 가브리엘은 한숨을 내쉬면서 클레온을 바라보았다.

"간단 하느니라. 발정이야 발정. 우리들의 일족은 흑마의 일족을 보면 그 씨앗을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거다."

"... ... 그것도 이브나 아담이 관계된 이야기입니까?"

"뭐. 그런 거다."

믿기 힘들다는 듯, 의심하는 표정을 짓자 가브리엘은 클레온의 손을 가져오더니 자기 음부 가까이에 가져다 댄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어 보이는 가브리엘도, 이미 아랫도리는 축축하게 젖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이지. 얼굴을 볼 때마다 힘들어 죽는 줄 알았느니라. 뭐, 나 정도 되면 마력으로 신체를 조정해서 어느 정도 억누르는 것이 가능하지만. 지브릴 같은 젊은 아이에게는 무리겠지."

"...설마, 계속 내 시선을 피했던 것도."

"...죄, 죄송합니다…."

클레온은 그런 지브릴의 사과를 들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뭐어 뭐어. 치료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거라. 아직 체내의 마력 기관이 제 정상이 아니지? 방중술을 통해 치료해줄 테니. 얌전히 받아들이면서 씨앗을 내놓거라."

입술을 혀로 핥짝 훑어내며, 클레온의 배 위에 올라타는 가브리엘은 이미 그와 행위에 들어갈 생각으로 만만한 듯했다.

"...저도, 부탁드립니다. 클레온 님...♡"

그리고, 옆에서 들려오는 지브릴의 목소리.

클레온도 한숨을 내쉬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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