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화 〉 사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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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시아에 위치한 모험가 길드. 1층은 언제나처럼 모험자들로 붐비고 있고, 그에 대비되듯 사무를 처리하는 2층은 조용한 복도가 어디까지나 이어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방인 길드 마스터의 사무실 안에는, 그 방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길드 마스터 `행복의 바람` 루티와, 그녀의 작은 협력자인 견습 의사 `페르디아`가 근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다과회를 즐기고 있었다.
"그래... 금광경의 저택은 역시 해체하는구나."
"네. 클레온 님께서 떠나신 뒤에 결계도 해체되었으니 다시 마물들이 들러붙기 전에 해체한다는 견해인 것 같습니다.`
페르디아가 건네준 보고서를 바라보며, 딸기 잼이 발라진 작은 쿠키를 베어 문 루티는 작은 입을 오물거리다가 홍차를 흘려 넣는다.
"아무리 임시라고는 했지만, 거점으로 사용됐던 곳이 사라진다니. 섭섭한걸."
루티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페르디아는 작게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 본래는 성자의 가호 교단의 이단 심문관들 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다루는 정보의 무게는 그다지 가볍지 않았지만 말이다.
페르디아는 최근, 루티와 힘을 합쳐서 이런저런 곳에서 대륙의 정보를 모으는 중이었다.
물론 레시아를 구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클레온을 도우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와 아카데미에서 헤어진 이후 대륙의 정서에 좋지 않은 바람이 불고 있는 듯한 루티의 예감이 작용한 것이다.
이제, 페르디아는 암살자로서의 일은 거의 하지 않고 오히려 의원 쪽이 본업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둠의 세계에서는 몸을 씻은 상태였지만.
그런데도, 클레온과 자신의 은인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는 루티의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녀의 곁에서 암살자 특유의 잠입 능력과 정보 수집 능력을 사용하여 루티에게 필요한 소식을 전달해주는 것이었다.
이번의 소식도 그런 것이어서, 최근 이 근처에 신경 쓰이는 신성 마력의 반응이 느껴진 것이 루티가 조사를 부탁한 원인이었다.
게다가 그 반응이라는 것이 이곳저곳으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것을 보아, 일반적인 교단원은 아니고 특수한 능력을 갖춘 인간이었겠지.
아쉽게도, 그 반응의 정체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녀를 쫓다가 이단 심문관들의 동향을 파악한 것은 수확이었다.
덕분에, 그들이 찾아오기 전에 저택에 남아있던 클레온 일행의 흔적들을 사전에 모두 처리할 수 있을 듯했다.
"믿을 수 있는 모험가들을 대상으로 의뢰를 달아 놓을 테니까, 저택에 대해선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루티의 말에 페르디아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일 이야기는 여기까지. 다음은 짜잔."
그렇게 말하면서 루티가 서랍에서 꺼내 든 것은, 아직 봉인이 풀리지 않은 클레온으로부터 온 편지였다.
페르디아도 그것을 보며 양손을 모으고 두 눈을 반짝이는 것이, 마치 간식을 꺼내든 주인을 바라보는 강아지와 같았다.
"어제 도착한 거야. 페르디아랑 같이 보고 싶어서."
"감사합니다 루티님...!"
헤헷, 하고 코를 쓱 닦아내는 루티와, 그런 루티를 보며 고개를 연거푸 숙이는 페르디아.
이제는 죽이 잘 맞는 상사와 부하 같은 관계가 된 두 사람.
루티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조심스럽게 편지 봉투의 밀납 봉인을 풀어낸다.
그리고 그 안에서 클레온의 편지를 꺼내 들어 읽어내는 것이었다.
"흐음~ 과연... 호오호오..."
페르디아와 함께 편지의 내용을 들여다보다 보면, 서서히 페르디아의 표정은 밝게, 루티의 표정은 어둡게 바뀌었다.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편지의 후반부에 적혀져 있는 내용이겠지.
[신세를 지고 있는 수도원에, 일손이 부족한 듯해. 괜찮다면 페르디아가 왕도로 와줬으면 하는데. 한 번 생각해줘]
"가겠습니다! 지금 당장...!"
"어째서 페르디아만~!!"
승리의 주먹을 치켜드는 페르디아와, 머리를 감싸고 책상에 얼굴을 파묻는 루티.
진지하게 이야기하자면, 루티의 길드 마스터로서의 업무가 바쁘므로 그렇게 며칠이나 엘레시아를 비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페르디아의 의원도 매일 영업하면 손님들이 찾아오지만, 대부분은 그녀를 만나러 오는 할 일이 없는 남정네들.
아무리 인식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역시 신전의 치료 서비스를 이기는 것은 아직은 힘든 듯했다.
페르디아가 편지를 들고, 눈을 반짝이면서 제자리에서 신이 난다는 듯이 빙글빙글 돌고 있으면 루티는 입을 삐죽 내밀고 그 모습을 보다가 한숨과 함께 쓴웃음을 지었다.
구 암살 조직의 아이들을 통솔하는 언니라는 위치와 그녀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 덕분에 잊을 만 하지만.
그녀는, 그 사샤보다도 어린 소녀이다.
아버지와 같이 다르던 이를 잃은 뒤, 새롭게 의지할 수 있는 인간이었던 클레온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지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클레온이 부르는 거니까, 빨리 가는 편이 좋겠지. 마차를 준비해 둘게."
루티가 그렇게 말하자, 페르디아는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몸을 멈추고 헛기침한다.
"가, 감사합니다. 루티님."
이정도야 뭘, 하고 어깨를 으쓱이며 루티가 관련된 서류를 작성하려고 펜을 꺼내려는 도중.
사무실의 문을 똑, 똑 하고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실례합니다. 루티님, 페르디아 언니."
그러자, 문이 열리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최근에도 열심히 데스크에서 일을 하는 길드의 접수원.
얼마 전, 정식으로 길드의 직원이 되면서 받은 제복에 날개 모양의 배지가 반짝이는 것이 보이면 페르디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 역시, 구 암살 조직의 일원이었던 소녀로, 어릴 적부터 머리가 좋아 이 아이를 정말로 암살자로 키우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스승과 몇 번이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그녀가 떳떳하게 가슴을 펴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에 대해, 페르디아는 안심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왜 그래? 아래에서 무슨 일 있었어?"
루티가 소녀에게 그렇게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종종걸음으로 상사인 루티에게 다가갔다.
"그, 그런 건 아니에요. 의뢰서 작성용 두루마리의 재고가 거의 다 떨어져서. 아마 다음 주 월요일쯤에는 소진될 것 같으니 주문서를 작성해서 올리려고 왔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긴장한 기색으로 작성한 서류를 루티에게 건네면, 루티도 슬쩍 서류를 훑어본 뒤 자신의 서명을 써넣는다.
"이제는 완전히 한 사람 몫을 하는 것 같네. 다른 직원들도 칭찬하고 있었어."
"가, 감사합니다..."
루티의 칭찬에 얼굴을 붉히며, 주문서를 돌려받은 소녀는 몸을 돌리다가 페르디아와 눈이 마주쳤다.
"...언니, 어딘가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알 것 같나요…? 사실은, 왕도에 가게 되었습니다. 클레온님이 부르셔서."
페르디아의 말에 소녀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해 준다.
"오르카. 언니가 엘레시아를 비우는 동안, 다른 아이들을 잘 부탁합니다."
키 차이는 그렇게 나지 않지만, 페르디아가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리면 `오르카`라고 불린 소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르카도, 페르디아에게 있어서 클레온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페르디아와는 한 살 차이.
암살 조직이 아직 건재하던 때에는 차기 `그림자의 사도`의 자리를 두고 경쟁한 사이이기는 하지만, 그녀 본인은 페르디아에 비해 자신의 암살 실력은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늘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가족과도 같은 사이. 페르디아가 아이들의 미래를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또한 알고 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지탱하는 것은 땅을 기며 벌레를 집어먹던 시절의 그녀를 구해 거두어 준 `선대` `스승` `아버지.
비록, 그는 임무를 실패한 대가로 스스로 목숨을 던졌지만, 그것은 그가 생애 긍지로 여기던 암살자로서의 규율에 따른 것이었다.
그 뒤, 자신들을 습격한 용사의 탈을 쓴 비겁자.
자신들을 인질로 삼아 페르디아가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던 것을 구해준 것이 바로 클레온.
말하자면 클레온은 페르디아와 구 암살 조직 아이들 모두의 은인이었다.
오르카 자신 역시 클레온이 페르디아와 맺어진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오르카 자신도 옅지만, 소녀다운 감정을 가진 대상을 머리에 떠올린다.
그러고보니, 왕도에 가고 난 뒤에는 소식을 듣지 못했지.
"저기, 페르디아 언니. 부탁드릴 것이 있어요."
"부탁? 오르카가 부탁이라니 드무네요. 어떤 것이죠?"
오르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머뭇거리듯이 단어를 정리하고, 선택한다.
"유, 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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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그 아이가."
유스테스이자 유스티나인 여성과 함께 복도를 걸어가는 페르디아.
도시에 오자 맞아 찾아간 이오나에게 자초지종에 대한 설명은 모두 들었지만, 실제로 눈앞에 있는 미소녀가 그 유스테스라고는 쉽게 믿을 수 없었다.
"편지를 써야겠네. 나는 건강하다고…. 거짓말은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쓴웃음을 짓는 유스테스의 얼굴에는 어디에도 남성스러운 면이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페르디아는 생각보다도 여성화가 진행된 유스테스를 보다가 헛기침한다.
클레온이 아카데미로 떠난 이후, 유스테스가 새로운 출발을 위해 밑바닥 모험가부터 다시 시작하던 때.
오르카와 묘하게 함께 있는 장면을 많이 목격한 페르디아가 잠시 그를 미행하면서 믿어도 되는 인간인지에 대해 심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뒤에, 무사히 그 심사를 통과한 이후로는 이웃 같은 관계로 지내왔지만….
`대체 그의 몸과 정신에 무슨 일이….`
이오나에게서는 음마의 저주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이상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다.
이 방으로 오는 도중 보였던, 수녀들 외의 여성들이 전부 원래 남자였다는 사실 만큼 충격적이다.
우선. 전해야 할 것부터 전하자.
"유스테스님. 오르카는 아마 유스테스님이 여성이 되셨다고 하더라도 문제없을 거라 생각됩니다."
"응? 아, 아아... 그, 그래."
페르디아가 하는 말에 유스테스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대답하고는 복도의 바깥 자신과 같은 처지의 여성화 된 인간들을 바라본다.
이전보다도, 남자의 복장을 하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든 상태였다.
"이 몸이 된 뒤로 며칠은 고민하고, 또 힘들었지만…. 지금은 괜찮아. 마음에 대한 정리는 끝마쳤으니까. 결과적으로, 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거든."
마치 현자와도 같은 표정을 짓는 그녀를 바라보며 페르디아는 `하, 하아...`하고 잘 모르겠다는 듯 대답했다.
"하지만, 클레온이 널 이곳에 오도록 해 줘서 다행이야…. 신성 마법으로는 병에 걸려있는지 같은 것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니까."
"네. 다행히 유스테스님의 몸은 건강 그 자체였습니다."
페르디아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의료 가방 내에 필요한 장비를 전부 채워와서 다행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클레온이 부탁한 것은 바로 이것.
라일라의 시약을 통해 사람들의 여체화가 진행되는 것을 막고 있지만, 자신들도 모르는 약의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인 페르디아에게 왕도로 와서 수도원의 사람들을 봐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페르디아가 한쪽 손에 들고 있는 진찰 표에 쓰여있는 어려운 전문용어를 슬쩍 바라본 유스테스는 머리가 핑핑 도는 느낌을 받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그녀에게 말한다.
"너는 어린데 굉장하군. 내가 네 정도의 나이 때는 그저 자기만 생각할 줄 아는 꼬맹이였는데…."
자신의 부끄러운 어린 시절의 흑역사를 떠올리는 듯 유스테스가 향수에 젖은 표정을 짓자 페르디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오르카도 그렇다. 솔직히, 그 길드에서는 나 같은 것 보다 훨씬 많은 사람의 도움이 되고 있었으니까."
계속해서 자신을 낮추는 유스테스의 말에 페르디아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발을 멈추면, 유스테스도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기에 두 사람 사이에서 침묵이 흘렀다.
"당신에 대한 것은 평가 아니, 인정하고 있습니다. 유스테스님. 클레온님도, 저도. 분명, 처음의 인상은 최악에 가까웠을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당신의 용기로 엘레시아를 제 동생들의 보금자리를 지켜주셨습니다."
페르디아는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꼭 쥐고 유스테스를 올려다보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자신을 낮추려 하지 마세요. 그것은, 오히려 당신을 신뢰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실례입니다.`
페르디아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유스테스는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클레온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군…. 고마워."
"아니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을 뿐입니다."
페르디아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조금 성격이 부드러워졌다고 해야 할까, 여려진 것 같이 느껴지는 유스테스를 보며 한가지 가설을 세웠다.
저주는 육체는 물론이지만, 정신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인간은 빠르게 외모의 여성스러워짐이 더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정신도 서서히 여성의 것으로 바뀌어간다.
유스테스도 그런 단계에 접어든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다만 그런데도 그에게서는 아직 남성적인 면이 남아있었다.
평소의 말투라던가. 타인을 대하는 태도던가. 눈썹에 힘을 준 느끼한 표정도.
그에 비해 이목구비, 얼굴을 제외한 다른 신체 부위들 가슴이나, 허리. 엉덩이와 같은 부분.
그리고 때때로 보이는 상냥한 말투는 완전히 여성의 그것이었는데도 말이다.
때로는 여자임과 동시에, 때로는 남자와도 같이 행동하는 유스테스.
`...다른 환자들이 어느 한쪽에 치우쳐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지금 상태는 상당히 이례적이란 것을 알 수 있어…. 어째서지?`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의 마지막 환자가 있는 방의 문을 열어젖히면.
그곳에는, 침대 위에 앉은 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연분홍 머리의 여성 로자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반응하여 로자리아가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한다.
"당신들은"
"당신이 오늘 새로 왔다는 `로자리아`구나. 나는 유스테스다. 당신과 같은 처지지."
"...같은 처지. 그렇다면, 당신은 원래 남자였다는 거군요…. 아니, 말투에서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로자리아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시선은 유스테스의 옆에 서 있는 페르시아로 향했다.
"아 저는 수도원의 피해자분들의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온 의사에요. 페르디아라고 합니다."
"페르디아양…. 작고 귀엽네요…."
"...네?"
"아, 아뇨... 아무것도."
페르디아는 자신이 순간 잘못 들은 것인가, 하고 자신도 모르게 되물어왔지만.
로자리아는 황급히 얼굴을 젖히며 헛기침했다.
유스테스도 그런 그녀가 이상하게 느껴졌는지 페르디아와 시선을 마주치지만, 이내 모르겠다는 듯 그녀에게 다가간다.
"리자에게 들었다. 기억을 잃었다고…. 큰일이군."
"그, 그런가요? ... 저 자신은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 여러분들 보다는 마음의 짐이 덜 한 것 같아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말을 아끼듯이 말꼬리를 흐리는 로자리아.
"기억상실증... 인가요."
페르디아 역시 그녀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기억상실이 발생하는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것을 치료하는 방법 또한 많은 종류가 있고, 어떤 것이 통할지는 정말로 미지수였다.
물리적인 충격을 가하는 건 물론 가장 최악의 수겠지만, 그것을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정신적인 충격요법이 있었고.
어쩌면 서큐버스들의 저주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신성 마법으로 몸 전체를 정화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무언가 방법이 없을까? 페르디아."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지만요…. 어떤가요 로자리아씨. 기억을 되찾고 싶나요?"
로자리아는 페르디아의 질문을 듣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제가 아는 저는, 창관에서 남성 손님들을 상대하는 여자…. 하지만, 그 이전에는 `남자`였다니. 제대로 상상이 되지 않는 것도 있고..."
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기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인다.
`기억` `과거` `진실`
그러한 키워드가 로자리아의 안에서 휘몰아치면, 로자리아는 문뜩. 이럴 때 자신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줬던 것 같은데
같은, `기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 분명히, 그것은 친구나, 동료가 아니라 자신의 하나뿐인….
"하지만. 혹시라도…. 저에게 `가족`이 있다고 한다면…. 그 가족과 만나기 위해서라도, 기억을 되찾고 싶어요."
로자리아의 말에 유스테스와 페르디아는 다시 한번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내 페르디아는 고개를 끄덕인 뒤 로자리아를 돌아보며 그녀의 맥을 짚는다.
"이오나씨께 들었던 설명에 따르면.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왕도에 거주 중이었던 남성이라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억이 돌아오게 하려 한다면, 과거의 자신에 대한 흔적을 쫓는 게 어떨까요?"
"...흔적..."
로자리아가 잘 모르겠다는 듯이 그 단어를 따라 하자, 페르디아는 오른손의 검지를 펼쳐 보이며 설명하듯이 이야기한다.
"네. 왕도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살았던 곳이라던가, 생활권을 찾아가 보는 겁니다. 기억이 없으니까. 있는 대로 왕도 내를 돌아다녀야 하겠지만요."
"하지만, 리자씨의 말대로는 몸이 원래대로 돌아갈 때까지 밖에 나가질 못한다고…."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라.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동행하고, 주의한다면 바깥에 나갈 수 있으니까."
유스테스가 그렇게 대답하자 로자리아는 그런 유스테스를 바라본다.
"...그렇다면, 유스테스씨가?"
"물론. 내가 도와줄 수 있다면 도와주지."
로자리아는 유스테스의 말에 크게 기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와락 하고 유스테스에게 달려든다.
물컹한 감촉이 자기 몸에 닿는 것에, 몸 자체는 같은 여성인 유스테스는 깜짝 놀란 듯 몸을 경직시켰다.
로자리아는 그런 유스테스에게 달라붙어 자기 몸을 비벼대면서 이야기했다.
"저, 한가지 이야기 해야 할 게 있어요."
"... ...?"
"지금의 저는, 여자아이인데도 여자아이를 좋아한다는 거예요."
갑작스러운 커밍아웃에 유스테스도 페르디아도 잠시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
콧노래를 부르는 로자리아.
유스테스는 잠시 뒤 얼굴을 붉히더니 대답했다.
"나, 나는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다!"
"!? 설마 오르카인가요!?"
페르디아가 그 말에 반응하자, 유스테스는 곧바로 대답하여 부정했다.
"아냐! 클레온"
"... ..."
그리고 아뿔싸. 같은 표정이 된 유스테스를 페르디아가 바라본다.
그녀의 시선은 처음에는 경악에서 이내 납득으로 그리고 조용히...
'연적'을 향한 견제의 눈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유스테스님..."
페르디아가 찾아온 것으로, 유스테스는 이 수도원에서의 생활이 조금 더 복잡해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며.
빨리 클레온이 돌아와 줬으면 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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