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 조사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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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렇다면 절 찾아오신 건 아주 잘하신 검다! 바람 조사부터 국가 기밀까지. 이 명탐정 `그레이`가 찾지 못하는 정보 따윈 없다는 것을 증명할 때가 온 것 같슴다...!"
어떻게든 페르디아를 진정시킨 유스테스가, 로자리아, 그리고 페르디아를 데리고 찾은 것은 그레이의 탐정 사무소이다.
이전 유스테스가 악마들에게 납치되었을 때 그녀를 구할 수 있도록 편익의 반지를 심어둔 은혜가 있었기에 거기서 이어진 인연이었지만.
그 수고비로 받아낸 돈으로 사들인 안락의자에 앉은 채, 장난감 파이프를 입에 문 그레이는 우쭐한 표정으로 그렇게 이야기한다.
"... ...하아. 어째서 나도."
그리고, 거기에 따라온 것은 루베라. 오늘은 메이드 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온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유스테스가 사정을 알고 있고, 비밀 누설에도 신경을 쓴다고 하지만 그녀 역시 피해자이다.
만약에라도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이미 일이 일어난 뒤에는 돌이킬 수 없다.
그러므로 트로메이아 가문의 시종 하나가 따라붙어서 수도원을 나선 유스테스들을 감시하려 한 것인데, 역시나 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루베라가 따라붙은 것이었다.
루베라로서는 이전 주인의 뒤를 따라나서야 한다는 것이 어리석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지만.
유스테스는 물론이고, 페르디아, 그레이와도 면식이 있는 것은 시종 중에서는 그녀뿐이었다.
거기에, 세 사람의 고삐를 꽉 붙잡고 있을 수 있는 것도 그녀 정도겠지.
유스테스 역시 루베라와는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며 조금 멋쩍게 떨어져 서 있었다.
루베라가 그녀를 바라보면, 몇 번을 봐도 바뀌어 버린 모습에는 적응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는 것이다.
그리고 루베라의 시선은 천천히 그녀에게서 떨어져 얌전히 앉아있는 로자리아에게로 향한다.
그녀의 생김새는 물론, 음마의 저주로 아름다운 여성으로 변했다고 하지만
공손히 앉아있는 자세, 다리를 모아둔 방식, 그리고 웃을 때 입가를 손가락으로 가리는 동작.
`...저주로 정신이 여성화되면, 저런 부분도 바뀌는 건가?`
루베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거의 여자와 차이가 없는 로자리아의 행동거지에 작게나마 위화감을 느꼈다.
"저의 가설에 따르면. 음마에 의해 여성화된 남성들은, 어딘가 남성 시절의 흔적이 남아있슴다. 머리카락의 색이나 홍채의 색. 아니면 몸의 점이라던가 말임다."
그레이는 그렇게 말하며 유스테스를 바라본다.
확실히, 이미 완전히 여자의 몸으로 바뀌어 버린 유스테스지만 잘 들여다보면 머리카락 색이나 눈의 색은 이전에 비해 조금 바뀌었을 뿐이고 그 흔적을 남겨두고 있었다.
유스테스는 그레이의 말을 듣고 `핫`하고 무언가 눈치챈 것인지 팔의 소매를 걷어 살핀다.
"정말이다... 점이 있어. 너무 당연한 거라 그리 눈치채지 못했는데."
"음마의 저주는 영혼에 걸리는 것이기 때문에, 육체의 변화는 그 부작용이라 할 수 있는 부분임다. 뭐어. 물론 육체의 변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그만큼 저주의 강도가 높은 질이 나쁜 녀석이라는 것이지 말임다."
끊임없이 지식을 쏟아내는 그레이의 말에 루베라는 조용히 그 말을 듣다가 살며시 입을 열었다.
"... 상당히 박식하군요. 마치, 라일라 같습니다."
"아 그, 그건. 물론. 탐정이니까 임다. 여러 문헌을 뒤지면서 조사했지 말임다."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그렇게 대답하는 그레이.
여전히 무언가 신경 쓰이는 듯한 루베라였지만 일단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기에 시선을 돌렸다.
적어도 그레이는 자신들의 편이라고, 어딘가 신뢰할 수 있는 면이 있기 때문이었다.
"저기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요?"
로자리아가 그레이의 말에 그렇게 질문하면 그레이는 물고 있던 파이프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커다란 도화지를 꺼내 들었다.
그러더니 붓과 연필을 슥슥 움직이며 그 위에 빠른 속도로 무언가를 그려간다.
"우와..."
그 거침없는 손놀림에 페르디아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고, 루베라도 저절로 눈이 크게 뜨여졌다.
도화지에 그려지고 있는 것은, 사람의 초상화였다.
얼핏 보면 로자리아의 지금 모습과 비슷했지만, 머리가 짧거나, 조금 턱선이 굵거나 하여서 로자리아가 남장을 한 듯한 모습이 되었다.
"흠. 이정도려나요?"
그리고, 그녀의 손이 멈추면 로자리아는 그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자기 입을 가렸다.
"이건…. 저인가요?"
"정확히는, 몽타주에 가깝슴다. 로자리아양이 원래 남자였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하는 정도임다."
그레이가 그렇게 말하자, 유스테스는 조용히 손을 든다.
"잠깐. 하지만... 저주에 걸린 남자들은 우락부락한 남자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나 같은 가녀린 여성의 모습으로 바뀐다. 이건 너무 이상적인 그림이 아닌 건가?"
"제, 제가 우락부락…."
스스로를 가녀린 여성이라고 칭하는 유스테스를 루베라가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그것에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로자리아가 조금 겁이 난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완전히 자신이 여성임을 받아들인 수준인 그녀에게는 잘 생각되지 않는 것이겠지.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됨다."
하지만 그레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유스테스에게 다가가. 그녀가 위에 걸치고 있는 옷을 살짝 걷어 올린다.
그러면, 그녀의 배에도 새겨져 있는 음문이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잠깐...!"
갑작스러운 그레이의 행동에 유스테스가 깜짝 놀라 하며 옷을 내리려고 하면 그레이가 손을 탁 치면서 그녀의 행동을 저지했다.
"로자리아양도 문양을 보여주시겠슴까?"
"아, 네..."
로자리아도 그레이의 말을 듣고 상의를 살짝 들어 올리면 유스테스와 같은 음문이 새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다른 것이라고 한다면 색일까.
로자리아의 것은 연한 보라색. 물을 잔뜩 타서 흐릿한 정도의 것이라면 유스테스는 완연한 보라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색이 다르군요."
페르디아가 가장 먼저 그 사실을 눈치채고 이야기하자 그레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음문의 색은, 육체가 많이 변화했을수록 색이 진해짐다. 어느 정도 단련된 남자다운 육체를 가지고 있었던 유스테스씨는 이렇게 충분한 색을 가진 진한 보라색."
그레이는 종종걸음으로 뛰어가 로자리아의 배를 가리킨다.
"그에 비해, 로자리아 양의 문양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연보라색. 이게 의미하는 것은"
"육체의 변화가 적었다. 즉…. 원래부터 조금 가녀린 인상의 남자였다. 라는 것인가요."
"바로 그검다!"
루베라가 정답을 이야기하면 그레이는 그녀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며 대답했다.
"...시끄러울 정도로 텐션이 높군요."
루베라는 그런 그레이의 태도에 조금 싫증이 난다는 듯이 대답하면 그레이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죄송함다. 제가 정보를 알려주면 여러분이 거기에서 추측하고 결론에 도달한다! 퍼즐을 푸는 것 같아서 즐겁지 않슴까?"
"별로..."
루베라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고개를 돌리면 그레이는 끙... 하고 소리를 내며 어깨를 축 늘어트린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맞다면. 어쩌면, 로자리아 양의 얼굴을 보면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건가요?"
페르디아의 말에 일행은 잠시 침묵했다.
가족을 찾는 것은 그렇다 치고, 로자리아가 원래 남자였다면, 여자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채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되었다.
"그, 그렇게 되는 검까…."
그레이 본인도 그 부분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듯이 이야기하면 로자리아는 잠시 고민한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사무소 안에 있는 푹 눌러쓰는 모자를 머리에 걸친다.
길게 기른 연분홍의 머리를 묶어서 어떻게든 그 모자 안으로 꾸겨 넣으면.
겉으로 보기에는 인상이 꽤 바뀌는 것이었다.
"이걸로 괜찮지 않을까요?"
로자리아가 말한 대로, 머리카락만 조금 감추면 그녀를 알아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처럼 보였다.
"변장임까... 로자리아 양은 탐정의 소질이 있을지도 모름다."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그린 몽타쥬를 손에 든다.
"그럼. 이 몽타쥬를 보여주러 거리로 나가는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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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다섯 명은 거리로 나가서 사람들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다녔다.
거리의 마당발인 그레이가 초상화를 들고 다가가면, 사람들은 웃으면서 그레이에게 정보를 주려고 하지만.
초상화를 보더라도 고개를 젓거나 의문 부를 띄우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게 1시간 정도를 정처 없이 걸어 다녔을까.
"으으... 조금 쉬고 싶은검다. 당분이 떨어졌슴다."
처음에는 가장 의욕적으로 움직였던 그레이가 항복의 목소리를 올린다.
사실, 다른 네 사람도 계속 걸어 다니며 허탕만 치고 있다 보니 그리 의욕이 나지 않았었기에 그레이의 제안에는 얌전히 찬성한다.
그렇게 일행이 향한 것은 왕도 광장 근처에 있는 작은 카페.
보기만 해도 혀가 달달해지는 크림이라던가 설탕이 잔뜩 들어간 디저트가 진열되어있는 장식장에 페르디아도, 로자리아도 눈이 고정된다.
역으로 유스테스와 루베라는 그런 디저트들의 무리에서 고개를 돌린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부터 너무 단 건 싫어했죠. 당신. 몸이 그렇게 되어도 그 부분은 바뀌지 않은 것 같네요."
루베라는 그렇게 이야기하자 유스테스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응... 그리고, 이 몸은 살이 빨리 찐다는 것 같아서…."
"그렇다면 먹은 만큼 움직여 주세요. 일하면 자연스럽게 열량은 소모됩니다."
루베라의 냉정한 정론에 유스테스는 한숨을 내쉬면서 어깨를 떨구었다.
"여어 그레이! 오늘은 동행인이 많구먼!"
카페의 점장 역시, 아까까지의 거리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그레이와 아는 사이인 듯 카운터 너머에서 그레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점장님! 언제나 마시는 녀석으로 부탁드리는 검다!"
그레이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네 사람은 그레이에게 시선을 돌린다.
"언제나 마시는 녀석?"
특히 로자리오가 흥미가 있는 듯 이야기하자,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특제 커피임다. 점장님이 만들어 주시는 커피는 원래 어른용으로 좀 씀다만, 설탕을 추가하고 그 위에 크림과 초콜릿의 가루를 뿌려서"
페르디아와 로자리아의 얼굴은 그 말을 듣고 눈을 반짝이는 데에 비해, 유스테스와 루베라는 서서히 속이 니글거린다는 듯 거북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저, 저도. 그러면…. 그것으로."
페르디아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로자리아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면 점장에게 같은 것을 부탁했다.
결국, 세 사람은 혈관에 흐르는 피에 직접적으로 당을 주사하는 것과 비슷한 효력을 낼 것 같은 특제 커피를.
유스테스와 루베라는 얌전히 블랙커피를 받아서 자리에 앉는다.
페르디아는 문득, 그런 루베라의 잔과 자신의 잔을 번갈아 본다.
"...너무, 아이 같은 걸 주문한걸까요…."
"...? 당신은 실제로 어린아이지 않나요…. 거기에 입맛…. 취향이라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지 나이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는, 퍼시스경도 엄청나게 단 것을 좋아해서. 개인 서고에 늘 고급 과자를 상비해 두고 있습니다."
퍼시스의 얼굴을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가히 상상하지 못할 사실이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유스테스는 자신도 모르게 들이켜던 커피가 목에 걸리며 기침한다.
"고급 과자임까!? 어떤검까?"
그런 유스테스를 두고, 과자라는 말에 그레이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몸을 들이밀면 루베라는 그 기세에 조금 뒤로 물러선다.
"이름까지는 잘…. 다만, 이전에 저에게 과자의 존재를 들키시고 봉지를 나눠주시면서, 이거 하나가 같은 무게의 금값과 같다고…."
"그, 금값…."
그 말을 듣고 조금 흥분이 가라앉은 것인지, 그레이가 자리에 앉으면.
점장이 손에 든 접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건 아마. 아카데미의 조리학과에서만 만들 수 있다고 명성이 자자한 녀석일지도 모르겠군. 수도 한정되어 있고, 입수 루트도 복잡하다고…. 이름이 뭐였더라"
점장 본인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이 말꼬리를 흐리지만, 다른 이들도 이름은 모르겠다는 듯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다.
그때
"...`포비든`."
"그래! 그거야!"
점장이 기억났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이며 미소를 짓지만, 다른 이들은 조금 놀란 듯이 그 정답을 말한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본인마저도, 어째서 자신이 이 이름을 대답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입을 가리는 것이었다.
대답을 한 것은 `로자리아`였다.
"아가씨, 귀족인가? 나처럼 디저트류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일반인은 잘 모르는 음식인데."
"아, 저기 그게..."
물론 기억이 없는 로자리아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당황하여 말을 더듬고, 그레이가 재빠르게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든다.
"그런 것보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슴다. 혹시, 이 사람을 본 적 없슴까?"
그레이가 그렇게 말하며 들고 있던 초상화를 펼쳐 보이자, 점장은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초상화를 살펴본다.
"음... 이 얼굴... 어디선가…."
점장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뚫어져라 초상화를 살피다가 문뜩 눈을 크게 뜬다.
"아!"
"오! 혹시 아는 검까!?"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이는 점장에게, 그레이가 달려들면.
점장은 입을 벌린 상태에서 다시 초상화를 바라보다가.
"아니. 착각이었어."
라고 말하자, 그레이는 그대로 미끄덩, 하고 중심을 잃으며 쓰러질 뻔 했다.
"뭠까! 사람을 기대하게 해놓고!"
그레이는 점장을 향해 화를 내듯이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점장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대답할 뿐이었다.
"미안 미안. 닮은 사람이라면 알고 있지만, 이건 `남자`잖아? `여자`라면 알고 있다고."
그리고, 그 대답에 다시 한번 그레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것은 이야기를 듣고 있던 로자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자신과 닮은 여성... 어쩌면. 자신이 원래 남자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작은 소망.
그리고 또 하나는 자기 가족에 관한 단서일지도 모른다는 것.
"어떤 사람임까? 그건?"
"아아. 분홍색의 머리를 가진 참한 아가씨야. 늘 단것을 잔뜩 사서 가는데, 귀신처럼 움직이는 게 빠르다니까. 오늘도 왔다 갔지."
그리고 점장에게서 나온 말은, 그렇게 단서가 될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게 끝임까?"
"그래. 단골이긴 하지만 말이야. 말을 한마디도 안 하고 손가락으로 기리키기만 하니까 목소리도 모르고, 이름도 모른다고. 뭐어. 돈은 많은 것 같으니 어디 귀족인가?"
"... ..."
그레이는 그런 점장의 말을 듣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크게 한숨을 내쉰다.
"점장... 도움이 안됨다."
그런 그레이의 말에 쓴웃음을 짓는 로자리아는, 어째선지 마음 한편에서 무언가가 자기 가슴을 꾸욱 붙잡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과 닮은 여성.
어쩌면…. 그녀가 자기 가족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단서가 될지도 모르는데도, 그것을 더 이상 파내는 것에 어디선가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002
대신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방에는, 언제나처럼 성전사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화려한 갑주를 전신에 걸친 채, 거대한 할버드를 각각 한 손에 잡은 그들은 왕도 내에서도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의 강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최강이 아니었다.
최강은, 그들의 눈앞에 서 있는 분홍색 머리를 가진 소녀였으니까.
"돌아왔습니다. 에스카님."
손에는 종이봉투를 든 채, 평소의 갑옷 차림이 아닌 사복의 모습을 하고 에스카의 집무실로 들어오는 베라스톨.
언제나처럼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던 에스카는 드물게도 기운이 부족한 듯한 표정으로 등을 의자에 기댄다.
"...에스카님, 괜찮으십니까?"
"시끄러워. 조용히 해."
자신을 걱정하는 베라스톨에게 한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하면, 베라스톨은 몸을 움찔 떨면서도 얼굴을 붉히면서 대답한다.
"네, 네에...♡"
"...칫…. 어디까지나 자기 멋대로인 아이..."
그리고, 그런 차가운 대접에 흥분을 느끼는 어쩔 수 없을 정도의 변태인 베라스톨을, 에스카는 경멸을 담아 바라보았다.
"클레온 성분... 클레오니움이 부족해... 왕도에 온 뒤에는 감시를 붙여놓고 있었지만…. 지금 간 곳은 감시가 안 되는걸…."
"그, 그렇습니까... 하지만 세토스가 왕도를 비우고 있으니. 그에 관한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조금은 플러스마이너스가 아닌지…?"
베라스톨의 말에 에스카가 다시 한번 혀를 차며 손가락을 튕기면.
황금의 번개가 곧바로 베라스톨에게 떨어졌다.
"꺄아아악!"
치이익, 하고 몸에서 연기가 올라올 정도의 강력한 마법이었지만, 베라스톨은 고통을 느끼는 선에서 견뎌내는 것이었다.
그 고통마저도, 쾌감으로 바꾸어서.
"떠올리기도 싫은 인간의 이름으로 내 머리를 더럽히지 말아줄래…? 너는 어릴 때부터 그렇구나. 요령이 없고, 타인의 신경 쓰이는 부분에 멋대로 들어가…. 그러니까 그런 전이 능력을 갖추게 된 거겠지만."
"죄, 죄송합니다아...♡"
에스카는 그렇게 말하는 베라스톨이 비틀거리면서 가지고 온 종이봉투를 들여다본다.
하지만, 이내 이마에 힘줄이 돋아나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대로 주먹을 휘둘러 베라스톨의 배를 가격한다.
"또 이렇게 단 것만…! 나는 나이가 있으니까 이제 좀 자제해야 한다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네가 아니라!!"
에스카가 거기까지 말하면, 베라스톨의 몸은 순간적으로 굳었다.
지금까지, 어떤 매도도, 고통을 주는 형벌도 쾌감으로 견디던 그녀였지만.
마치, 무언가. 잊고 싶은 것을 떠올렸다는 듯이 머리를 감싼 채 주저앉아 부들부들 떨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
"... ..."
그리고 공허한 눈이 되어 누군가에게 사과를 계속하는 그녀를, 에스카는 말없이 내려다보다가
그녀의 어깨와 팔을 붙잡아주고.
아까까지의 단호하고, 박해하는 태도가 거짓말이었다는 듯.
자애로운 표정과, 상냥한 목소리. 그리고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를 어루만진다.
"...베라스톨. 괜찮습니다. 당신은, 잘못하지 않았어요. 미안해요 베라스톨. 제가 당신을 또 망가트려 버리고 말았군요."
그리고, 에스카의 손에서 흘러나온 신성마력의 파동이 서서히 베라스톨의 떨리는 몸을 진정시킨다.
"그 아이 레스는 분명, 살아있을 겁니다."
그리고 베라스톨은 이제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와 작게 심호흡하며 고개를 들어 에스카를 바라봤다.
"자. 베라스톨. 당신이 사 온 다과로 티타임을 가지도록 하죠. 클레온이 돌아온 뒤에는 더 바빠질 테니."
그렇게 말해오는 에스카의 말에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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