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화 〉 습격의 밤
* * *
000
그날은, 평소보다도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서 언제 비가 내리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날씨였다.
풍경 전체가 회색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떨어지기 시작한 물방울이 과거의 환영을 불러일으킨다.
끊이지 않는 노성, 고통으로 가득 찬 비명.
저열하고, 비릿하고, 추잡하고, 조악한 환경만이 우리를 감싸던 잊고 싶은 과거이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목숨이었다.
사랑에 의해 태어난 것도, 필요로 태어난 것도 아닌.
우리가 목숨을 받아 태어날 수 있던 것은 누군가의 `변덕`이었을 뿐이니까.
진흙 묻은 빵조각을 받아먹으며, 손님을 상대하는 일에 끌려가는 일도 있었다.
피와 술과 약의 냄새
우리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듯 머릿속을 지끈지끈하게 만드는 그 악취는 평생 우리를 따라다니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절망을 느낄 때마다 나는 내 옆에 있는 그녀의 존재에 안심을 얻었다.
이 세상에 남은 단 하나뿐인 혈육, 나의 반신과도 같은 쌍둥이.
약해빠진 나 같은 것과 다르게, 항상 당당한 모습을 보이며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고 하는 강한 아이.
우리는 서로를 지탱하듯이 시련을 버텼고, 악마의 아이들과 같은 몰골로 살아갔다.
어쩌면, 그때의 우리는 그저 이 지옥이 끝날 죽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들의 기대를 전부 삼켜버릴 정도로 커다랗고 따스한 빛에 닿기 전까지.
우리는, 교단에 의해 구출되어 그 뒤에는 성직자가 되기 위해 왕도의 신전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야말로 지옥에서 건져내진 지 겨우 1년.
때때로 옛 상처가 욱신거리는 것을 빼면 그야말로 천국과도 같은 세계였다.
그것은 나 뿐만이 아니라, 그녀도 느끼고 있는 사실이겠지.
천천히 우리에게 할당된 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그녀가 조용히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손을 모은 채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언니."
내가 그녀를 부르면, 그녀는 움찔, 하고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천천히 눈을 뜨며 내 쪽을 바라본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
"읏..."
그녀의 눈은 차가웠다.
경멸조차 섞여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가지는 감정에는 없는 어두운 그림자가, 그녀의 안에는 존재했다.
"미, 미안…."
사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의 경고를, 그리고 그것을 무시할 때마다 돌아오는 그녀의 혐오를.
그것이 유일한 혈육에게 보일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조차,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호칭으로 부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나에게는 그것이 당연하였으니까.
"기도는…. 끝났어?"
"그래. 누구 덕분에. 이렇게 집중이 흩어진 상태에서 기도를 드려봤자 신성 마력은 강해지지 않겠지."
비꼼을 섞은 말로 그렇게 이야기하면,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분홍색의 짧은 머리가, 걸을 때마다 흩날렸다.
그리고는 나의 손목을 붙잡아 방을 나서려 한다.
"자, 잠깐. 어디로 가려는 거야?"
"훈련이야. 그냥 있기에는 시간이 아깝잖아. 너도 빨리 한 사람 몫이 되어야지. 그 분께 보답하려면."
그녀의 말에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자유로운 나머지 한쪽 팔을 들어 창밖을 가리켰다.
빗줄기는 아까보다 강해져서, 떨어질 때마다 둔탁한 소리를 낸다.
"훈련이라니…. 이렇게 비가 오는데? 가, 감기에 걸릴 거야."
"교단의 질서를 지키고, 대륙에 평화를 가져올 성전사가 비 따위에 질 리가 없잖아. 신성 마력으로 몸을 보호하는 훈련도 같이 할 거니까. 따라와."
"나는 아직, 그 정도는 못 해…."
내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그녀는 나를 다시 한번 노려보다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그래. 그러면 나 혼자 갔다 올 테니까. 너는 여기서 기도나 드리고 있어."
"아, 알겠어…. 그, 그리고…. 가능하면 오늘은…. `그거`…. 하고 싶은데…."
내가 우물쭈물하며 그렇게 이야기하자, 그녀는 나를 죽여버릴 것만 같이 강하게 노려본다.
"그건 더 이상 안 돼! 그게 `죄악`이라는 건, 여기 와서 배웠잖아!"
"하, 하지만…. 그곳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는걸…."
까득, 하고 걱정될 정도로 크게 이빨을 가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나와 너는 쌍둥이…! 혈육이야! 혈육끼리 그런 일을 하는 건, 교단의 규칙으로 강하게 금지되어 있어. 영혼을 더럽히는 일이니까."
"그, 그것도 알고 있어…! 하지만, 이곳에 온 뒤로는 한 번도 하지 못해서….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다리 사이가 욱신거려…."
괴롭다는 듯한 나의 목소리에 그녀는
그대로 팔을 들어, 내 뺨을 후려친 것이었다.
"적당히 해!! 우리는 그 지옥에서 빠져나와 구원받았어! 그런데, 그 지옥에서 하던 일을 계속해서 어쩌자는 거야…! 짐승으로 돌아가고 싶어!?"
그녀의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울리면서 나는 몸을 움츠렸다.
"나는 절대로 싫어. 나는 교단의 성전사가 되어서 그분을 지키는 방패가 될 거야. 너는, 검이 된다고 약속했잖아. 제발 정신 좀 차려…!"
"미, 미안... 미안해... 언니..."
다시 한번, 그녀의 손이 휘둘러졌다.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지만…! 언니는 언니잖아…!"
나를 침대에 밀어붙이고 올라탄 채, 멱살을 잡은 그녀는 악마와도 같은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이야기했다.
"틀려!! 그건 잘못됐어…! 아무리 네가 지금 그런 모습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너는 나를 그렇게 부르면 안 돼…! 그건, 신의 섭리에서 벗어나는 불경한 행위야…!"
"모르겠어…. 이곳에서 지낸 시간보다도, 긴 시간을 그렇게 불렀는데…."
"잘 들어. 나는 네 언니가 아니라, 누나야. 너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고…!"
"나, 나는…."
그녀는 내가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나는 울먹이면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나, 나는 여자야…."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생각해 주길 바랐다.
내가 동경하는 그녀와, 같은 성별로 있고 싶었다.
"... ...너는 악마야. 신성한 규율을 부정하고, 그분의 호의를 배신하고 있는…. 악마."
나의 말에, 그녀는 그렇게 대답하며 나의 멱살을 놓았다.
"나는 악마와 남매로 지내고 싶지 않아. 생각을 고치던가, 내 앞에서 사라져 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방문을 나섰다.
강하게 닫히는 문소리에 나는 다시 한번 몸을 떨었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것이, 나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무거워진 몸과 머리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려고 그대로 침대 위에서 눈을 감는다.
그때
끼익, 하고 다시 한번 문이 열렸다.
"어머. 여기서 큰 소리가 나길래 누군가 싸우고 있는 줄 알았는데…."
"누구…?"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들면,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붉은 머리를 가진 갈색 피부의 여성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신전에 상주하는 인원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입고 있는 옷이 우리가 입고 있는 새하얀 가운과도 같은 옷과는 달랐으니까.
오히려, 몸에 딱 달라붙는 셔츠와 푸른색의 바지. 그리고 가슴을 조금 노출한 것이 신경 쓰이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쓰고 있는 안경을 손가락으로 조금 고쳐 쓰더니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
"이건... 후후. 너, 재밌네."
그 날카로운 시선 속에, 나는 무엇이라 말하기 힘든 공포를 느낀다.
"어, 어른을 부를 거예요."
"마음대로 하렴. 내가 여기 있는 것은 `그녀`도 알고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신의 섭리에서 벗어난 네가 그들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나에 대한 것은 무엇이든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꼬마 `아가씨`. 내가 네 소원을 들어줄까…?"
달콤한 유혹을 담은 채 나에게 다가오는 그녀의 그림자는
마치, 악마와도 같았다.
001
"하앗...!"
무언가에 숨이 막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호흡이 가빠진 것일까.
로자리아는 누워있던 침대에서 황급하게 몸을 일으키며 잠에서 깨어났다.
전신에서 땀이 축축하게 흘러나와 있고, 몸은 무거운 돌에 깔려 있던 것에서 해방된 듯한 느낌이었다.
"방금 꿈은..."
악몽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언젠가의 기억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떠올렸던 것, 보았던 것들이 서서히 빠르게 안개 속으로 숨어들어 가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자신이 꾸었던 꿈에 대해서, 로자리아는 많은 것을 다시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답답한 상황에, 목이 바싹바싹 말라가는 것을 느낀다.
"...물..."
방의 구석에, 물병과 컵이 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로자리아가 그렇게 중얼거린 채 침대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그때, 갑작스럽게 자신의 침대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 ...?"
갑작스러운 변화에 로자리아가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는, 그녀가 가지러 가려 했던 물병과 컵이, 침대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아까까지, 분명히 침대 위에 없던 물건이 갑자기 나타나 있는 것에 혼란을 느끼지만, 시간은 아직 심야.
괜히 큰 소리를 내서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몸과 머리가 여전히 무거워서, 아무래도 좋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컵에 따른 물을 들이켜고, 조금은 진정하게 되어 다시 침대 위에 몸을 눕힌다.
어쩌면, 아까의 꿈을 이어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르게 잠자리에 들려 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지켜보는 금속의 눈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채.
[... 보았나? 그레이.]
"봤슴다. 헤르메스."
다시 만든 금속 쥐 형태의 육체에 빙의한 헤르메스의 시각을 공유받아, 자신의 사무소에서 로자리아를 관찰하던 그레이는 파트너의 질문에 대답했다.
[방금 것은... 전이 계열의 마법인가.]
"영창도, 발동을 위한 딜레이도 없었슴다. 마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고도의 영역임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그녀 고유의 능력…. 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슴다."
그레이는 그렇게 말하며 책상 위에 놓인 마도구를 바라본다.
작은 구 안에 감추어져 있는 에메랄드빛의 석판과도 같은 그것이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해당되는 정보 없음…. 역시 마법은 아님다."
[그렇다면…. 이전에 우릴 덮쳤던 그것과 비슷하군.]
헤르메스의 분석에,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 라일라의 의뢰로 세토스에 대하여 조사할 때 대신전에 잠입시킨 헤르메스.
그 존재에 눈치챈 교황의 명령으로 자신들을 공격해 온 성전사.
분명, `베라스톨`이라고 했던가.
그녀 역시 논리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거운 갑주를 전신에 걸치고도 지체 없이 발동되는 전이.
만약에 헤르메스가 조금이라도 신호를 늦게 보냈다면 그레이는 거기서 그녀에게 붙잡혔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정도가 아님다. 아마, 같은 능력의 다른 발현법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슴다."
[같은 능력?]
베라스톨은 자기 몸을 전이시켜 다른 위치로 이동 시키는 `송신`의 능력.
로자리아는, 반대로 자기 몸을 축으로 삼아 다른 물건을 자신이 있는 곳으로 불러오는 `수신`의 능력이다.
전이와도 같은 고도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보이는 특성이 베라스톨과 로자리아 사이의 연관성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걸 예상하고 나에게 감시를 부탁한 건가?]
"설마…. 그렇지만, 인간이라는 것은 원래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생물임다. 낮에도 `포비든`이라는 과자의 이름을 떠올린 것을 보아. 그녀는 기억은 잃었을지언정, 그녀의 몸…. 혹은, 무의식의 깊은 곳에 기억이 남아있다고 생각한검다."
[그러니, 그녀를 관찰하면 그녀의 정체의 단서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군...]
하지만, 그레이는 한숨을 내쉬면서 의자에 등을 기댄다.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그녀를 감시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의뢰받은 대로 그녀의 기억을 되찾을 방법을 모색하던 것이었으니까.
"뭐. 거의 얻어 걸린 거나 다름 없슴다만. 이렇게 되면 조금 골치 아파지는 검다. ...그 무서운 성전사랑 로자리아 양이 연관이 있다면…."
[어째서, 성전사와 연관이 있는 인물이 서큐버스의 창관에 붙잡혀 있었는가. ...여러가지 의문점이 나오게 되는군.]
"바로 그검다. 힌트를 얻은 건 좋지만. 깊이 파고들기 무서워지는 검다..."
그레이는 몸을 부르르 떨며 다시 한번 베라스톨에 관한 것을 떠올렸다.
살의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의심하듯 바라보던 그녀.
투구 속에서 보이던 광기에 가득 찬 안광은 거의 트라우마에 가까웠다.
"그리고. 또 하나."
더불어서 머릿속에 세워지는 것은 또 다른 의문.
"로자리아는 뒷골목의 허접한 창관에서 구조됐슴다. ...하지만, 그녀의 능력의 희소성을 생각하면 아스타로테가 그녀를 그런 곳에 내버려 둘 이유가 없슴다."
[악마들은 눈치를 못 채고 있던 것이 아닌가?]
헤르메스의 말에 그레이는 고개를 젓는다.
"기억을 잃은 후라면 모를까. 잃기 전에는 능력을 썼을 검다. 그거야말로, 악마에게 저항하기 위해서나. 악마와 협력하기 위해서라도…. 어쩌면 그녀의 구출 자체가 아스타로테의"
그레이가 거기까지 말하던 때, 헤르메스의 청각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헤르메스가 그림자에 숨은 채 로자리아의 방문 쪽을 바라보면, 그곳에는 흰색의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는…. 뭐지? 아무리 봐도 수녀가 아닌데….]
"모르겠슴다... 하지만, 일반인은 아닌 것 같슴다만…."
"이상한 기운이 수도원 내에서 느껴져서 와봤더니…. 이 녀석은..."
헤르메스와 그레이는 모르고 있었겠지만, 그녀는 클레온의 부탁을 받아 이 수도원을 지키고 있는 거미의 신 `아난시`이다.
"불쾌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구나... 그리고,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는…. 조금, 몸을 조사해 볼 필요가 있나."
아난시가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손을 뻗으면, 손가락 끝에서 거미줄과 같은 것이 뻗어나가 그녀의 몸에 닿는다.
그 순간
파직! 하고, 검은 스파크가 튀기며 그 거미줄을 잘라내 버리고, 아난시의 손에도 얕지만, 자상을 남겼다.
"...이건 그 여자의…."
[아아. 설마, 네가 여기에 있을 줄이야. 클레온도 머리를 좀 썼는데.]
그때, 로자리아의 입에서 그녀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년은...! 나를 속여, 우투님의 성물을 오염시키게 한…!"
[이슈탈이야. 그때 자기소개를 안 했었지? 너도 좀 바뀐 것 같네.]
로자리아의 몸을 빌린 이슈탈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아난시는 곧바로 실을 휘둘러 로자리아를 구속하려 했다.
하지만
서걱! 하고, 실에 그녀의 피부가 긁혀나가며 피가 흘러나온다.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이 아이는 자기가 내 `장기 말`이라는 자각조차 없으니까. 무고한 사람을 죽일 생각? 클레온이 싫어할 텐데~]
"큭..."
이슈탈의 말에 아난시는 자신도 모르게 실에 넣은 힘을 빼자 로자리아의 고개는 창밖으로 옮겨졌다.
그곳에는, 유스테스가 훈련을 할 때 사용하는 커다란 정원이 있었다.
[뭐 좋아. 어차피 클레온이 돌아오기 전에 일을 해야 했으니까. 계획보다 조금 빠르긴 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며 로자리아 아니, 이슈탈이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튕기면.
"읏...!?"
수도원에 펼쳐진 결계 전체를 진동시키는 수상쩍은 파동.
그녀의 거미줄과, 영맥에 이어진 결계에 그리 크지 않은 구멍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구멍은, 마치 커다란 차원문과 같이.
`이곳`과 `다른 곳`을 이어버린다.
[그레이!]
헤르메스의 다급한 목소리. 그레이는 그의 시각을 통해 바깥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마치 지옥문과도 같이 쩌억, 하고 주둥아리를 벌린 틈새로 전이의 전조가 보였다.
느껴지는 것은 아까의 로자리아가 행하던 것과 비슷했지만 그 규모가 너무나도 큰 탓에 잠깐이나마 딜레이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틈새 너머로 보이는 것은
전신에 검은색의 옷을 입은, 공허한 눈의 여성들.
하나같이 짙은 흑마력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일부는, 악마와도 같이 뿔과 날개가 자라난 상태였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선두에 서 있는 것은.
붉은색의 마창을 손에 쥔 여성.
아난시는 이슈탈이 몸을 조종하는 로자리아를 잠시 노려본 뒤, 재빠르게 방을 뛰쳐나간다.
[후후후... 아하하하!! 클레온. 고마워, 네 덕분에 나는 수월하게 `결정`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이슈탈의 높은 목소리가 울려 퍼진 뒤, 로자리아는 마치 실이 끊어진 듯이 다시 침대에 쓰러졌다.
[온다...!]
헤르메스의 말과 동시에, 그레이는 재빠르게 옷을 챙겨 입고 자신의 사무소를 뛰쳐나갔다.
루베라를 비롯한 트로메이아의 사람들에게 전달해야만 했다.
수도원이 악마에게 습격받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