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화 〉 도둑 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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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게 얽힌 골목의 통로를 어느 시점에서 어떤 방향으로 꺾어서 나가는지에 따라 그 끝이 막다른 길인지, 함정인지, 아니면 도둑 길드의 본거지인지로 향하는지는 조직원들 사이에서만 알려진 일종의 암호와도 같았다.
따라서 외부인은 우선 접근하지 않으며, 실수로라도 들어오는 날에는 돌아갈 때까지 상당한 고생을 하는 것이 눈에 뻔히 보였기 때문에라도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 부분을 생각하면, 지금은 아스타로테가 점거하고 있는 뒷골목과도 그 성향이 비슷해 보였지만.
예로부터 뒷골목과 도둑 길드는 왕도의 어두운 부분의 이권을 두고 경쟁하던 관계이기 때문에 오히려 위치적으로는 조금 떨어진 곳에 존재했다.
양쪽 다 범죄자 소굴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변명할 여지가 없었겠지만, 도둑 길드가 뒷골목과 다른 점이 있다면.
국가에 의해 어느 정도 그 존재가 용인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절도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 검거되거나, 도주 중에 체포되었다면 물건을 돌려주고 이런저런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했지만.
일단 도둑 길드의 영역까지 들어가게 되면, 왕도의 경비들이나 기사들도 추적을 포기한다는 암묵의 규칙이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 도둑 길드의 우량 고객 중에는 귀족들은 물론 왕족들마저도 섞여 있었기 때문에 상당한 로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귀족이나 왕족이 어째서 도둑 따위의 손을 빌리는가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이들일수록 정식적인 루트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물건을 탐내기 마련이었다.
아름답지만 저주받은 마도구, 시골에 보관된 성물, 다른 귀족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문서 등...
개인적인 취미를 위한 의뢰는 물론, 정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길드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평민들의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완전히 개수작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억제하는 것이 모험가 길드였다.
모험가들은 기본적으로 그런 암묵의 규칙과는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실력만 출중하거나, 다른 평민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은 고령의 모험가가 도둑 길드에 항의해서 훔쳐진 물건을 돌려주도록 요구할 수 있었다.
물론, 전부가 전부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도 몇 번인가 기적적으로 그런 물건을 되돌려 받은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도둑 길드에서도 자정작용을 벌이는 이들이 있어서, 불필요한 생계형의 도둑질을 벌인 이에 관해서는 내부에서 처리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도둑 길드로서도 좀도둑 소굴이라는 평판은 벗어나고 싶은 것이었겠지만.
하지만, 최근의 도둑 길드는 모험가 길드와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문제가 있는 듯하여.
모험가 길드에서 행방불명자의 발생이 연속되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어쩌면 도둑 길드의 내부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어서, 말단들에 대한 제어력이 약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 결과가, 아까의 좀도둑 같은 남자들이 최근 소매치기나 강도 등을 벌이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
피해원서가 왕국의 경비대에는 물론이고 교단에까지 들어올 정도이니, 조만간 귀족들도 거래를 끊고 그들에 대한 소탕이 이뤄질지도 모른다고.
클레온의 앞에서 걸어가는 베라스톨은 클레온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조잘조잘, 끊이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지식에 클레온은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이게 왕도의 내부 사정 중 하나이다. 너는 몰랐겠지만."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다.
클레온은 어깨를 으쓱이며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그래…."
잘난 듯 클레온을 무시하며 지식을 늘어놓는 그녀이지만, 이야기를 들으면 역시 교단에서는 `여체화 피해자`들에 대한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은 듯하여.
없어진 이들은 단순한 행방불명자로 취급되고 있는 듯했다.
정보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트로메이아 가문에서 어느 정도 차단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럼. 교단에서도 도둑 길드에 무언가 대응할 생각이었던 건가?"
"소탕 작전이 벌어진다면 손을 빌려주는 정도는 가능했겠지. 우리 쪽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어째서지? 대륙 곳곳에 머리를 들이밀고 참견하는 게 교단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클레온이 약간의 비꼼을 섞어 이야기하자 베라스톨은 잠시 고개를 휙 돌리며 클레온을 노려보았다.
"지금의 교단은 악인의 처벌이 아닌 `교화`와 `갱생`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다. 붙잡힌 도둑에게 신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그들이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 직접적으로 도둑을 붙잡고 벌을 주는 것은 경비대가 해야 할 일이야."
"흐응…."
말하는 바는 알 수 있었다. 상대는 도둑. 즉 `인간`인 것이다.
교단에서 처음부터 적대적으로 대하는 대상은 사교도, 악마숭배자, 그리고 악마 그 자체와 언데드들 정도이지.
이들에 관해서는 성전사와 이단심문관들이 대동 되어 그들을 철저하게 박멸하는 것이겠지만, 같은 인간에게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것이다.
"에스카님의 지인이라는 인간이, 그런 것도 모르나?"
클레온의 반응이 시큰둥 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베라스톨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클레온은 어깨를 으쓱인다.
"미안하군. 에스카씨가 교황이 된 후에 만난 것은 저번이 처음이야. 애초에, 교단은 우리 흑마의 일족을 교화시키고 받아들인다 했지만, 여전히 악마 숭배자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잖아? 앞에서 대놓고 모욕하지 않을 뿐이지, 알게 모르게 그런 것은 다 눈치챈다고."
"흥…."
이전 에스카가 말했던 교화 정책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거대한 조직이다 보니 개개인의 사고가 통일화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베라스톨 역시 그런 클레온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듯, 오히려 본인도 클레온이 말한 대로의 생각을 가진 듯한 태도로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클레온은 그런 시선은 무시하는 것이 가장 정답이라고 생각했고, 머큐리와 만나서 본 과거의 진실을 통해 흑마의 일족이 `악마`의 후예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런 것을 그녀에게 전달하더라도, 믿어줄지는 둘째치고 그래서 뭐냐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겠지.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에 눈치채고 클레온은 그녀에게 질문한다.
"...하지만 괜찮은 건가?"
"뭐가 말이지?"
클레온이 시선이 베라스톨을 살피면, 그녀는 어디까지나 사복 차림으로, 평소에 몸을 뒤덮고 있는 두꺼운 갑옷이나 투구는 물론이고, 그녀의 무기이자 방어구라고 할 수 있는 `방패`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비무장 상태로."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나. 네가 할 수 있는데 내가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베라스톨의 대답대로, 클레온은 지금 갈라테아도 허리춤에 없는 상태이다.
트로메이아 저택을 방문하는데 무장하고 가는 것은 실례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만, 클레온에게는 여차하면 공간도약을 해올 수 있는 칼리번이 있기 때문이었다.
"도둑 정도를 잡는 데에는, 이 주먹 정도로도 문제없다."
베라스톨이 그렇게 말하며 검은 장갑을 끼고 있는 주먹을 들어 보이면 클레온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앞의 골목에서 맞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겠지."
"그 부분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거군. 그래, 맞아. 네 말대로, 이 안은 미로다. 잘못 들어가면 탈출하는 데에는 몇 시간에서 며칠씩 걸릴지 모르는 함정이 있다는 이야기야."
클레온의 말이 끝나면, 마침 눈앞에 갈림길이 나타났다.
왼쪽과 오른쪽, 어느쪽도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어서 어디로 가는 것이 정답인지 같은 것은 알기 힘들었다.
`여기서는... 사샤의 힘을 빌리는 게 좋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눈에 각인을 끌어올려 도둑의 흔적을 살피려고 하면, 베라스톨은 말없이 왼쪽을 향해 걸어간다.
"어이! 잠깐...!"
갑작스러운 그녀의 단독 행동에 클레온이 집중을 멈추고 그녀를 불러 세우지만, 그녀는 멈추는 일 없이 클레온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저 녀석…. 전혀 협력할 생각이 없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도 그녀를 따라가야 하나 잠시 생각하던 찰나….
철 덩어리와 같은 것이 땅에 떨어지면서 귀를 찢는 소리 들려온다.
"아아, 정말!"
아무래도, 베라스톨이 고른 쪽은 잘못된 방향이었던 듯하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라지만, 에스카의 호위를 맡은 성전사인 그녀가 며칠이나 갇혀 있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게 생각하여 그녀를 구하려는 생각으로 클레온도 왼쪽으로 가려는 순간
"그 쪽은 잘못된 방향이었다. 흑마의 일족."
갑작스럽게 클레온의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가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는 베라스톨이 멀쩡하게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아니, 전이 마법인가…?"
클레온의 질문에 베라스톨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어서 떠오르는 의문은 설령 전이 마법이라 하더라도 아무런 예조 없이, 마력의 잔향도, 소리도 일으키지 않고 전이를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라는 점이었다.
대마법사 수준의 실력을 갖춘 라일라 조차도, 짧은 거리의 전이를 할 때는 간이의 영창과 공간을 열어젖히는 동작, 그리고 마력 운용에 의한 발광(?光)을 동반한다.
성전사인 베라스톨이라면 신성 마력을 운용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신성 마력으로 전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들은 적이 없고, 무엇보다 그녀가 라일라보다 정교한 마법발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의문이 끊이질 않은 채 자신을 의심하는 클레온을 뒤로한 채, 베라스톨은 남아있는 오른쪽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잠깐, 설마 앞으로 나오는 모든 길을 이런 식으로 확인하면서 갈 생각인가?"
"그래. 뭔가 문제라도?"
"...내가 녀석의 흔적을 쫓을 수 있으니까. 그만둬. 혹시라도 전이 마법으로라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함정이 있다면 네가 위험해지잖아."
클레온의 말을 들은 베라스톨이 그와 눈을 마주치면 그의 눈에 떠올라 있는 사냥꾼의 각인을 보고 미간을 좁힌다.
"그건…. 이교도의 각인 아닌가?"
"아니... 하아."
물론, 교단은 정확하게 신봉하는 신이라는 것이 없는 만큼,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의견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부분의 광신도들은 삼위일체의 신앙에서 벗어난 자연 신, 야만 신 등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인데.
베라스톨은 딱 그 부류에 해당하는 듯했다.
"어쨌든. 그렇게 몸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찬동할 수 없어. 네가 다치면 에스카씨도 슬퍼할 테니까."
"... ..."
베라스톨은 클레온의 그런 말을 듣고는 잠시 입을 다물고는 몸을 돌렸다.
"그렇다면…. 거기까지 말한다면. 네가 앞장서라. "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그렇게 이야기하는 베라스톨을 잠시 바라본 클레온은 다시 한번 각인으로 달아난 이의 흔적을 쫓아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 뒤에는 계속해서 비슷한 풍경이 반복되었다.
어둡고, 더럽지만, 사실은 치밀하게 계산되어 인간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듯한 장소.
갈림길이 그렇게 자주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숨겨진 버튼이 있다던가, 잘 보지 않으면 걸릴 수 있는 와이어 함정 등이 있는 것도 마치 비밀기지로 점점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거기. 발밑에 구멍이 있으니까. 조심해."
"... ..."
클레온이 벽을 박차고 뛰어넘은 바닥 부분을 가리키자, 베라스톨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다음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져서
바로 클레온의 뒤쪽으로 이동해 있었다.
그녀는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저으며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먼저 발걸음을 내디딘다.
"일일이 걱정이 많은 녀석이군…. 걱정 마라, 설령 그런 구멍 함정 같은 것에 빠지더라도옷!?"
그리고 그 여유가 사라진 것은, 세 걸음, 앞으로 걸은 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바닥이 꺼지면서, 그녀의 몸이 중심을 잃고 미끄러지듯이 중력에 끌려 떨어진다.
부웅! 하는 느낌과 함께 긴 분홍색 머리카락이 위로 솟구친다.
"큿...!?"
갑작스러운 추락에 집중력이 흐트러진 그녀의 전이가 불발되고, 밑에 보이는 쇠꼬챙이가 그녀를 맞이하려 했을 때
위에서 덥석! 하고 손을 붙잡히면서 그녀의 몸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린다.
"너…. 말 하자마자…!"
급하게 몸을 내던지듯이 팔을 뻗은 클레온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
그런 클레온을 올려보며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는 베라스톨, 뭐라 말을 잇지 못한 채 올려다본 그녀와 클레온의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한 다음 순간.
"...빠, 빨리 올려…."
그런 그녀의 말에 클레온도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지상으로 끌어올린다.
설마 연속해서 떨어지는 함정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이들을 노린 악의적인 배치였지만.
그것에 딱 걸려든 베라스톨은 지상으로 올라와서 무언가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전이 마법이 있다지만 너무 부주의하게 움직이지 말라고."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며 선행하며 걸어가는 것을, 베라스톨은 조용히 분함을 삭히며 바라볼 뿐이었다.
001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던 복면을 거칠게 벗어 지면에 내팽개친 남자는 냉수가 들어있는 컵을 벌컥벌컥 들이킨 뒤 낡은 의자에 주저앉았다.
실내임에도 창문 하나 없이 내부의 광원으로만 빛의 양을 조절하고 있는 이곳은, 바깥과 마찬가지로 더럽고, 지저분하며 비위생적이지만.
주변에 널려있는 장물에는 먼지 하나 쌓이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는 것인지, 죄다 보자기나 상자 등에 소중히 보관되고 있었다.
"크으!"
쉴 새 없이 달려서 체온이 높아진 몸을 순식간에 차갑게 냉각시킨 뒤 자랑스럽다는 듯이 손에 들고 있던 성과물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자! 뭐라고 했냐. 할 수 있다고 했지?"
남자의 말에 주변에 있던 그의 동료들도 `오오….`하는 목소리를 내며 보자기에 감싸여져 있는 상자를 바라본다.
"정말로 해냈군. 그 램파트가 가게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고 해서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하! 그런 늙은이가 뭐가 가능하겠냐고."
그렇게 말하는 그는 자신을 막지 못한 모험가를 비웃듯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사실, 램파트의 눈앞에서 물건을 가로채는 것에 성공한 것은 순수하게 그의 도둑질 실력 보다도.
그가 물건을 가로채면서 무너트린 상자가 행인들을 덮칠뻔한 것을 그가 막느라 순간적으로 반응이 늦어져서였다.
운이 따라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실제로, 달리기 실력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도둑인 그의 뒤를 거의 똑같은 속도로 뛰어오는 50대의 대머리 마초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래서? 안에 있는 물건은 뭐인 거야?"
동료 중 하나가 그렇게 물어보면, 남자도 보자기로 감싸인 상자를 툭툭 건드린다.
"종이 상자인 것 같으니. 그렇게 귀중한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
"안을 열어서 확인해보자고."
동료가 낄낄대며 손을 대자, 남자는 그 손을 탁, 치면서 신경질을 부린다.
"그건 계약 위반이야. 도둑 길드의 신뢰에 금을 가게 할 생각이냐?"
"그래봤자 상대는 상인 나부랭이잖아? 그런 녀석들에게 뭐가 가능하겠냐고."
"하."
남자는 동료의 말을 코웃음으로 일축한 뒤 장물을 보관하는 창고로 물건을 옮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뢰인이 오기로 한 건 앞으로 한 시간 뒤다. 그때까지 이 안에 들어가는 녀석은 손가락을 잘라주지."
그렇게 엄포하면, 주변의 동료들은 그가 그러고도 남을 성격이란 사실을 아는 것인지 표정을 구기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남자가 물건을 안에 집어넣고 어깨를 풀면서 바깥으로 나오면, 조금 전 까지 있던 동료들이 전부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뭐야? 낮술이라도 한 거냐? 이 새끼들…."
아무리 장사하기 편해졌다지만, 기강이 빠져도 너무 빠졌다고 생각한 남자가 주먹 관절을 울리며 다가가려 하자.
갑작스럽게 뒤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재빠르게 몸을 꺾어 휘둘러져 온 주먹을 피해낸다.
"큭!?"
얼굴의 바로 옆을 지나가는 재빠른 주먹에, 남자가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뒷걸음질을 치며 거리를 벌렸다.
`여자...!?`
눈앞에 보였던 분홍 머리의 여자를 인식한 다음 순간,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다는 듯 사라져버린 그녀.
하지만, 기척은 다시 한번 그의 뒤쪽에서 느껴졌다.
"뭐야!?"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주먹을 피하는 것에 성공하면 여자는 얼굴을 찌푸린다.
"... 도둑주제에 잘도 피하는군."
이번에는 곧바로 사라지지 않은 베라스톨을 보며 남자가 식은땀을 흘렸다.
"너…. 뭐지? 그 복장을 보아하니 경비나 기사는 아닌 것 같고…. 모험가냐!?"
"대답해 줄 필요는 없다. 네게는 관계없는 일이니."
베라스톨의 말에 남자는 `썩을…!`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재빨리 허리춤에 숨겨둔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베라스톨의 모습이 다시 한번 사라졌다고 생각한 순간, 남자는 몸을 회전시켜 자신의 뒤쪽으로 단검을 휘두른다.
아까까지의 공격에서 학습한 것이겠지만, 아쉽게도 그 생각은 베라스톨에게도 읽혀있는 듯했다.
퍼억! 하는 소리가 들리며 남자의 등에 커다란 바위가 부딪힌 듯한 충격이 울렸다.
공간을 이동했지만, 이번에는 그저 앞으로 나아갔을 뿐, 남자의 뒤로 돌아가지는 않은 것이었다.
그 가는 몸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일격.
뼈가 부러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만, 폐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커헉! 하고 남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썅년이!!"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부츠의 뒷굽을 이용하여 뒤쪽에 서 있을 베라스톨의 턱주가리를 차올리려고 하지만….
베라스톨은 다시 한번 공간을 이동하여, 남자의 공격을 회피해 버린다.
"개 같은…. 마녀 년…!"
남자는 고통을 견디면서도 단검을 쥔 채 베라스톨을 노려보았다.
베라스톨은 그런 남자의 시선을 한심하다는 듯 되받아치며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일격에 쓰러지지 않거나, 몇 번은 공격을 피한 점을 봐서…. 다른 잔챙이들보다는 조금 실력이 있는 것 같지만 한심하군."
"지랄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며 남자가 다시 그녀를 공격하려 한 순간
덜컹. 하는 소리가 뒤쪽에서 들린다.
방금, 자신이 나왔던 문이 다시 닫힌 소리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방금까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의 풍경이 녹아내리듯 바뀌더니 흑마의 일족의 남성이 손에 `장물`을 든 채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남자가 아까 램파트의 앞에서 도둑질해 온 물건이었다.
"베라스톨. 물건은 찾았다."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남자는 인제야 그들의 목적이 그 물건인 것을 깨닫는다.
"너 이 새끼들! 모험가 길드 소속이냐!"
남자가 그렇게 말하며 우선은 성가신 베라스톨을 먼저 없애기 위해 들고 있던 단검을 던졌다.
순간이지만, 클레온의 눈에는 그가 던진 단검의 칼날이 반짝이는 듯했다.
"학습하지 않는 녀석이군. 가까이에서 휘둘러도 맞기 힘든 물건을, 그렇게 던져서 뭐가 된다는 거지."
하지만 베라스톨은 그런 그의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대로 또다시 모습이 사라진다.
그리고 다음으로 나타난 곳은, 남자의 뒤도 아닌, 위쪽이었다.
그대로 주먹을 쥐고 남자의 머리를 중력과 함께 후려친다.
콰앙! 하는 소리가 들리며 남자는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히게 되지만 신기하게도 외상은 전혀 없는 형태로 기절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신성 마력을 담은 주먹으로 공격으로 충격을 입힘과 동시에 치료해서 죽을 정도로 아픈 공격을, 죽지 않게 받게 하는 것이었다.
그 흉악한 공격력에 클레온은 혀를 내두른다.
"이걸로 끝이…. 무슨?"
땅에 착지한 그녀가 손을 털며 클레온을 쪽을 본 다음 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클레온이 자신의 쪽으로 달려오는 것을 본 베라스톨은 미간을 찌푸리며 무슨 짓인지 따지려다가.
그가 멈추지 않자, 자신과 한판 하려는 것으로 생각하고 전투 자세를 취하면
클레온은 그대로 그녀를 스쳐 지나가, 손을 뻗어 무언가를 붙잡는다.
"큭...!"
그것은, 아까 전 남자가 베라스톨에게 던진 단검이었다.
그 칼날에는 추적용의 마법이 걸려 있어, 노리고 던진 대상이 회피하더라도 일정 시간은 공중을 날아 대상을 쫓는 것이 가능한 물건이었다.
도둑 길드의 간부 정도 되는 인간이라면 이런 비장의 수 하나를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겠지만, 베라스톨이 자기 능력을 과신하고, 방심하는 것을 알아채고 던진 것이겠지.
맨손으로 붙잡은 칼날은, 아슬아슬하게 베라스톨의 등에 닿지 않는 거리에 멈춰있었으며, 덕분에 클레온의 손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베라스톨도 자연스럽게 자신을 스쳐 간 클레온을 돌아보며, 그의 손을 확인한 뒤 눈을 크게 뜬다.
"너..."
잠시 뒤, 클레온이 흑마력을 일으켜, 단검에 새겨진 마법을 부숴버리면, 단검은 더는 나아가려 하지 않고 그대로 힘을 잃고 땅으로 떨어졌다.
"하아... 너무 방심하지 말라고…."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며 너덜너덜해진 손을 다른 손으로 감싸면서 중얼거렸다.
"...피하라고 하면"
"추적 마법은 그래도 따라가. 그리고 말주변이 없어서 말이야. 제대로 전달할 시간도 없었어.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야."
클레온의 말에 베라스톨은 잠시 조용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물건을 챙겨서 돌아가자…. 이 손으로는 그러니까 천 같은 거로라도 지혈을"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며 주변에 장물을 덮고 있는 보자기를 슬쩍 훑으며 그것을 찢으려 하자
"어이."
자신을 부르는 베라스톨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전이로 순식간에 다가온 그녀가 손을 뻗어 클레온의 다친 손의 손목을 붙잡았다.
"... ..."
그리고, 다른 손으로 다친 부위에 손을 뻗어 신성 마력을 일으키고
쿠온이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치유술이 발동되어 클레온의 상처가 점점 치료되어갔다.
"... 그렇지. 너도 일단은 성직자인가."
"`일단은`은 쓸모없는 수식어다."
클레온의 말을 그런 식으로 처리해 낸 뒤, 상처가 전부 아물면 클레온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문제가 없는 것을 보여주었다.
"고마워."
그런 대답이 돌아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인지, 베라스톨은 눈을 두세 번 깜빡이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 그것도, 쓸모없는 말이야."
002
가능한 만큼의 장물을 되찾아서 골목을 빠져나온 두 사람은 경비를 불러 기다리고 있던 램파트와 합류하는 데에 성공했다.
"두 사람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야. 물건도…."
램파트는 돌려받은 물건의 보자기를 풀어 상자가 찌그러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듯했다.
"그래서? 이건 대체 뭐인 거야?"
아무리 클레온이라도 이 내용물은 궁금했는지 그렇게 물어보자, 램파트는 잠시 고개를 돌리더니 경비들에게서 멀어져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안에 있는 것은 고급스러운 내부 장식의 안에 가지런히 정렬되어있는 여자의 엄지 크기의 작은 초콜릿이다.
한 상자에 10개들이, 그런 상자 두 개가 하나의 보따리에 감싸여 있었다.
"...하아?"
그것을 본 클레온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목소리가 흘러나오지만 램파트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손쉽게 들어오지 않는 특제 초콜릿이야. 곧 아내의 생일이라서 말이야, 미리 주문해 두었지."
"과연…. 어지간히 공처가로군."
그런 램파트의 말에 클레온도 쓴웃음을 짓는다.
"... ..."
그리고, 그 초콜릿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베라스톨.
"음? 아가씨, 이 초콜릿에 관심이 있나?"
자각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그런 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베라스톨.
그러면 램파트는 입꼬리를 올리며 상자에 들어있던 초콜릿 중 하나를 꺼내 베라스톨, 그리고 또 하나를 꺼내 클레온에게 건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한 뒤에는 단 게 당기는 법이지. 아내의 선물은 한 상자면 되니까, 이건 너희들도 맛보라고."
"그, 그래..."
베라스톨은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재빠르게 손을 움직여 그에게서 물건을 받아 서 들고.
흐름 상 거절하기 힘들었기에, 그리고 대체 얼마나 희귀한 물건이기에 도둑 길드에서도 노린 것일까 궁금해진 클레온도 램파트의 호의를 받는다.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에 넣으면, 입 안에서 퍼지는 것은 초콜릿 특유의 쌉싸름 하면서도 달콤한 맛.
그리고
"...이거"
초콜릿을 깨문 순간, 안에서 터져 나오는 위스키.
"하하! 그래. 이건, 안에 술이 들어있는 녀석이야. 어른들이 즐길 수 있는 맛이란 녀석이지."
술을 좋아하는 램파트는 그것이 퍽 맘에 들었는지 미소를 짓는다.
"...과연. 당신이나 당신 아내가 좋아할 만한 맛이군. 나쁘지 않아."
"그렇지? 이봐 아가씨, 너도 그렇게 생각"
램파트는 미소를 지으며 베라스톨을 돌아보며 그렇게 이야기한 순간
털썩! 하는 소리를 내며 베라스톨의 몸이 무너졌다.
갑작스러운 일에 클레온도 램파트도 잠시 반응이 느려졌지만, 혹시라도 무언가 건강에 문제가 생긴것인가 클레온이 가까이 다가가면
드르릉... 퓨으... 하는, 낮은 코 고는 소리가 그녀에게서 들려왔다.
"... ..."
두 사람이 같이 그녀의 얼굴을 살피면, 얼굴이 새빨개진 채 자리에 잠든 그녀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램파트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술에 약한 거야…. 기껏 해봐야 위스키 한잔도 안 되는 수준인데."
"이런…. 하아…."
클레온도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어떻게든 깨워야 할까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램파트의 도움을 받아 그녀를 등에 얹혀 매는 것이었다.
"이 녀석은 내가 대신전에 데려다 놓을게."
"오, 오오. 그래. 잘 부탁한다."
그렇게 말하며 베라스톨을 업은 채 길거리를 걸어가는 클레온의 뒤를 바라보며, 팔짱을 낀 채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여난의 상이로군. 쯔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