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화 〉 종교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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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해가 저물기 시작한 왕도의 노을 녘.
등에 베라스톨을 업은 채 걸어가는 클레온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를 보면서 무언가 다른 오해를 하는 것인지 키득거리는 것을 보았다.
겉을 보면 귀족 아가씨로도 보일 법한 베라스톨을 업고 걸어가는 클레온을, 흑마의 일족의 노예나, 하인 정도로 보는 것이겠지.
만취해서 얼굴을 붉게 한 채 코를 고는 주인을 등에 업은 하인이 꽤나 우습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 시선을 받는 것은 본의가 아니었기에 한숨을 내쉬지만, 어떻게든 신전까지만 데려다 놓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이후에 그렇게 자주 얼굴을 볼 사이도 아니었으니, 발걸음을 재촉하면, 또 그 진동에 속이 울렁거리는 것인지 `으으으`같은 목소리를 낸다.
"...제발 등에서 토하지만 말아라…."
클레온은 다시 한번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발걸음 속도를 낮추고 최대한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대신전으로 향했다.
등에 만취한 베라스톨을 업고 신전 입구의 계단을 올라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멈추어라! 이곳은 신성한 대신전. 어찌하여 그런 주정뱅이를 데리고 들어오려는 거지?"
라고 말하며, 순백의 전신 갑옷을 입은 거구의 성전사 둘이, 할버드를 교차시켜 클레온의 출입을 막는다.
"아니…. 이 녀석이 여기 소속이니까 데리고 왔을 뿐인데…."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며 슬쩍 고개를 돌려 베라스톨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럼 경비 두 사람은 서로를 잠시 바라보더니 쿵. 하고 창대의 끝으로 땅을 찍으며 다시 말하는 것이다.
"그런 성직자는 본 적이 없다! 우리들은 이 대신전을 지키는 대들보이자 관문. 모든 성직자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 ..."
그런 말도 안 되는... 같은 것을 머릿속에 떠올리지만, 베아트릭스도 비슷한 것이 가능했으니 어쩌면
"게다가. 지금은 신전 입구에서 교황 예하의 축성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주정뱅이가 교황 예하의 앞을 지나가도록 할 수는 없다."
그게 목적이었나….
클레온은 영차, 하고 베라스톨의 겨드랑이 아래쪽을 붙잡아서, 마치 고양이를 잡아들어 보이는 것처럼 두 사람 앞에 베라스톨을 보여준다.
"이 녀석은 너희들의 상사인 `베라스톨`이라니까..."
"베라스톨님...?"
그 이름은 역시 알고 있는지, 두 사람은 잠시 의심하는 듯한 목소리를 높이다가
몸을 젖히면서까지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 잘하는 군 흑마의 일족! 방금 것은 방심했었다!"
"그 베라스톨님이 갑주를 벗고 만취해서 남자의 등에 업혀 오신다고?"
...믿지 않는 듯했다.
`이 녀석…. 설마 남들 앞에선 갑주를 벗지 않는 건가?`
생각해보면 어디로든 전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이 두 사람의 앞을 현재의 모습으로 통과할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어찌 되었든, 무언가 신분을 증명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찰나
"무슨 일인가요…? 어머?"
하고, 익숙한 목소리가 경비들의 뒤쪽에서 들려온다.
경비들 역시, 그 목소리에 크게 당황하며 몸을 돌리면
그곳에는 예복을 입은 채 다가온 교황 `에스카 톨로지`의 모습이 보였다.
"교, 교황 예하!"
경비들이 차렷 자세를 하며 비켜서면, 그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흰색의 성직자 복에, 머리 위에는 금빛의 관을 쓰고 성스러운 붉은 띠를 맨 그녀의 모습은 이전 묵주를 만들러 온 쿠온을 따라왔을 때 보았던 그녀보다도 훨씬 더 고위의 성직자처럼 느껴졌다.
은색과 하늘색이 섞인 긴 머리는 세 줄기로 땋아 내렸으며, 커다란 눈을 깜빡인다.
에스카는 곧바로 클레온을 보고 얼굴이 환해졌다가, 그에게 매달려있는 만취한 베라스톨을 보고 표정이 굳는 것이었다.
"... ..."
"에, 에스카씨. 내가 잘 설명할게."
"이, 무례한! 흑마의 일족 녀석! 교황 예하께 예를 갖추지 못할"
"알겠습니다. 클레온. 이곳은 보는 사람도 많으니, 제 집무실로 가도록 하지요. 마침, 축성 예배도 끝이 났습니다."
경비가 에스카를 편하게 부르는 클레온을 바라보며 입을 열 자, 경비는 격노하여 할버드의 창대로 클레온을 가리키려 하지만.
교황이 그의 말을 잘라내며 미소를 짓고, 클레온을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들인다.
경비는 그것에 어안이 벙벙해지지만,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베라스톨을 둘러업어 그녀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교황의 뒤를 따라 걷는 클레온에게는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어서, 알게 모르게 긴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교황이 바로 보는 곳에서 쑥덕거릴 자신이 있는 이는 없었는지 전부 조용히 손을 모으고 기도하거나, 시선만을 굴리는 것이었다.
그런 인파를 헤치고 나가, 사람이 적은 고위 성직자 구역으로 들어올 때까지 에스카는 조용히,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등을 펴고 클레온의 앞을 걷고 있었다.
이것이, 자신이 모르는 교황으로서의 에스카의 모습인 것일까.
다정하고, 배려심 깊고, 자비로운 미소를 띤 것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보았던 그녀의 모습과 똑같았지만
어딘가.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그녀이기도 했다.
이내, 두 사람 + 1 주정뱅이는 신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교황의 집무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보이는 것은, 대륙 전체에 퍼진 한 종교의 수장이 평소에 업무를 보는 곳이라는 것을 생각하더라면 상당히 소박한 장소.
그보다도 어딘가 그리운 느낌이 드는 듯한 방이었다.
"베라스톨을 소파에."
에스카가 그렇게 이야기하며 가리킨 곳에는, 응접용의 소파가 있었다.
남자인 클레온이 눕기에는 조금 작았지만, 베라스톨정도라면 딱 맞는 수준으로 몸을 눕힐 수 있을 것이다.
클레온이 조심스럽게 그녀를 눕히고, 쿠션을 베개 삼아 두면, 베라스톨은 `으응….` 하는 소리를 내다가 이내 다시 규칙적인 숨소리를 낸다.
"술을 마셨네. 이 아이."
에스카가 그런 베라스톨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이야기하면,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여야 할지 저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베라스톨의 명예를 위해 설명을 해줘야 하겠다고 생각한 지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아니. 그녀가 먹은 건 어디까지나 술이 들어간 초콜릿이야. 사실은"
그렇게 말하며 설명을 개시한 에스카는 조용히 클레온의 말이 끝날 때까지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램파트에게 보답 삼아 초콜릿을 받아먹은 것을 듣고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는 단 걸 좋아하니까. 돌아오는 게 늦다고 생각했더니…."
그리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녀에게 물이 필요하면 바로 마실 수 있도록 소파 옆의 책상 위에 물을 가져다 놓는 것이었다.
"고마워 클레온. 그녀를 이곳까지 데리고 와 줘서."
":아니. `어쩌다 보니까`야. 그럼, 이만 가볼게, 들려야 할 곳이 있어서."
페르디아와 아난시에게는 오늘 찾아간다고 미리 연락을 넣어두었기 때문에 너무 늦어지면 그녀들을 기다리게 할 수 있다.
이미 충분히 시간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에스카는 잠시 눈을 두세 번 깜빡인다.
"그런…. 기껏 대신전까지 왔는데. 조금은 단둘이서 이야기해도 되지 않아?"
"에스카씨의 말은 고맙지만. 선약이 있어서 그래…. 게다가, 이 소파로는 무리라고 생각하는데."
클레온이 쓴웃음을 지으며 소파를 가리키면 그곳에는 소파 전체를 차지하고 누워있는 베라스톨의 모습이 보인다.
앉으려면 팔걸이 정도일까.
그럼 에스카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클레온이 몸을 돌려 그녀의 집무실을 나서려 할 때, 그녀에게서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쿠온에게서 성검 탐색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니?"
"... 성검 탐색?"
처음 듣는 이야기에 클레온이 그렇게 되물으면, 에스카도 고개를 갸웃한다.
"...설마 말하지 않은 걸까. 새롭게 발견된 성검의 회수를 위해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런 건가…. 하지만 그런 거라면 나도 도울게."
클레온 본인이 알고 있는 쿠온의 성격상 숨기고 있다는 것 보단 말할 타이밍을 놓친 것이겠지.
그러고 보니 녹주석의 수곡으로 가는 길, 쿠온의 낌새가 조금 이상하다고 느끼던 것은 이것이 원인이었던 것일까.
그녀 본인이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그 와중에 이런저런 일이 터지면서 그녀도 머릿속에서 까맣게 지워버린 것 같았다.
에스카를 돕는 이야기라면, 숨기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클레온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에스카에게 돕겠다고 이야기하면 에스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클레온이 도와준다고 한다면 안심이네. 부디 새로운 용사의 탄생을 위해 힘을 빌려줬으면 해…. 대륙의 평화를 위해서."
레시아가 사라진 뒤, 조금이라도 그녀가 원하던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한 에스카.
그런 에스카를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싶다는 것이 클레온의 순수한 감상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나중에 쿠온양과 들으러 와 줘."
에스카의 배웅을 받으며 클레온이 그녀의 집무실을 나서면, 에스카는 작게 한숨을 내쉰 뒤 방의 중앙으로 돌아온다.
머리에 걸치고 있던 거추장스러운 도금의 관을 적당히 던져놓은 뒤.
세상모르고 잠들어있는 주정뱅이 부하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베라스톨... 너는 정말로 나를 화나게 만드는 재주가 출중한 거 같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아이를 이곳에 불러오다니…."
그리고, 주먹에 힘을 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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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온의 이동 경로는 그대로 대신전을 빠져나가 수도원을 향한다.
신전의 입구에서 자신을 막아섰던 경비들은, 클레온이 나오는 것을 보더니 당황하여 자신에게도 차려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그 모습에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헛기침으로 웃음기를 지운 뒤 인제야 목적지로 하고 있던 수도원을 향할 수 있었다.
눈에 익은 철문의 앞에 서서 종을 울리면, 잠시 뒤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창문이 열리며 오랜만에 보는 인물의 얼굴이 보였다.
"클레온씨!"
"오랜만이야, 리자."
푸른 눈의 젊은 수녀가 자신을 반가운 목소리와 함께 맞아주는 것에 클레온도 미소를 지으면 끼익하는 소리를 내며 기름칠 되지 않은 수도원의 문이 열렸다.
수도원의 안은 이전보다도 조용해진 듯, 이전에 찾아왔을 때와는 달리 정원에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 여성들도, 그런 여성들을 바라보며 쑥덕거리는 이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자신의 방에서 지내고 있어요. 이전의 사건에서 무력하게 당하기만 했던 것에 다들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덕분에, 정신의 여성화가 가속된 분들도 많고요."
"그런가..."
유스테스와 메이드들의 활약으로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었지만, 그들의 습격은 확실하게 피해자들의 정신에 흉터를 남긴 채였다.
수녀들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꺾여버린 마음을 회복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스스로 의지가 중요하겠지.
그런 설명을 들으며, 클레온이 리자에게 안내받은 곳은 수도원 내에서 페르디아가 머물며 그녀의 진료실로 쓰이고 있는 수도원의 의무실이었다.
"페르디아양은 이 안에 있어요. 아마 오늘도 부상자의 치료를…."
리자가 그렇게 말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의무실의 문을 열면
그곳에는 축 늘어진 채 아난시의 실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몸을 움직이며 사람을 치료하고 있는 페르디아의 살짝 호러한 모습이 보인다.
"... ..."
리자와 클레온은 그 광경을 보고 잠시 굳었다가, 문이 열린 인기척에 두 사람이 있는 곳을 바라본 페르디아와 시선이 마주친다.
그리고, 리자는 천천히 문을 닫는다.
"...뭔가, 저도. 피곤한 걸까요. 방금,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던 것 같은데. 잘못 본 거겠죠?"
"...나도 그렇다고 믿고 싶군. 뭐였지 방금 그건? 이상한 의식인가?"
안쪽에서 우당탕 쿵 탕 하는 소리가 들리면, 잠시 뒤 의무실의 문이 열리면서 평소의 페르디아로 돌아온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클레온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클레온 님…!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조금 전의 광경을 `없던 것`으로 하려는 듯한 그녀의 반응에, 클레온은 잠시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다가
스르륵, 하고 자기 머리 옆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운 머리카락의 감촉에 고개를 돌리면.
천장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 실을 따라 내려온 아난시와 눈을 마주쳤다.
"돌아왔는가 서방님♡"
그런 아난시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클레온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려고 하는 듯했지만, 클레온에게는 통하지 않는 듯 고개를 젓는다.
"페르디아, 아난시."
그렇게 차분히 두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방금 그건 뭘 하던 거야?"
... ...
후에 설명을 들으면, 그것은 지쳐서 바쁘게 환자들을 상대하던 그녀를 위한 아난시의 배려로.
스스로 의지로 몸을 움직이지 않더라도 방금과도 같은 아난시의 생각만으로도 그녀의 몸이 아난시의 실에 의해 움직이게 되기 때문에.
설령 잠에든 상태에서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뭐.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아직 어린 나이의 페르디아, 다른 아이들은 뛰어놀아야 할 나이대에.
붙잡혀서 사람의 간병과 검사.
분명, 싫증이 나는 것이겠지.
이해는 가지만, 외견만 좀 어떻게 해줬으면 하는 클레온이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절대로 클레온 님의 명령에 싫은 기분을 느껴서 이러고 있는 건 아닙니다."
마치, 클레온의 생각을 읽어내듯 그렇게 말한 그녀는 생긋 웃으면서 손을 뻗어 클레온의 볼을 만진다.
"...클레온 님...♡"
언젠가와 같은 물기를 띈 목소리.
몸이 기억하고 있는 페르디아와의 추억에 멋대로 반응할 뻔한 순간
"크흠..."
뒤쪽에서 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
조용히,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클레온과 리자는 생긋 웃을 뿐이었다.
"여기는 그런 거 금지거든요…."
"미안하군..."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푹 숙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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