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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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검 갈라틴.
과거, 세계에 나타났던 부정의 마왕을 불태웠다고 전해지는 신염(??)의 성검.
하지만, 그것을 잡고 휘두른 용사에 대해서는 그 어떤 정보도 남아있지 않았으며, 그 재앙도 어떤 것이었는지 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세계의 저명한 역사학자들이 남긴 역사서에도 `이 시기에 대륙을 덮친 부정의 마왕을 신염의 성검이 물리쳤다`라고만 기록되어 있을 뿐.
마치 의도적으로 역사에서 사라진 것만 같이, 많은 수수께끼만을 남긴 채로.
갈라틴과, 그에 연관된 많은 것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만 갔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요."
마차를 운전하던 마부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덜컹거리던 바퀴가 멈춘다.
침묵이 이어지던 마차의 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내린 것은 전신에 갑주를 걸친 `베라스톨`이었다.
그녀가 내리는 것을 눈으로 좇던 클레온은, 자신의 앞에서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쿠온으로 향했다.
"...쿠온, 괜찮아?"
클레온의 물음에 쿠온은 이름이 불린 것에 깜짝 놀란 듯 몸을 떨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왠지 이 주변에서 무언가…. 마음이 술렁거려서…."
그녀의 말을 들은 클레온은 자신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보다도 여러 가지 흐름에 민감한 편이니 주의해서 나쁜 것은 없겠지.
그녀의 걱정을 조금은 줄여주기 위해 손을 붙잡아 안심시킨다.
"걱정 마.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지켜줄 테니까. 거기에, 베라스톨도 있으니."
"...응. 그렇네. 고마워 클레온. 일단은 이 마을을 둘러보자."
쿠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클레온이 먼저 마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면, 사전에 라일라에게서 받았던 정보처럼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마을이었다.
"여기가…. 정말로 과거에 한 나라의 수도였던 곳인가?"
엘카이로. 지금은 마을이지만, 과거에는 왕국의 서쪽에서 엄청난 문명을 가꾸었다고 전해지는 고대의 왕국의 심장이기도 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과거의 명성은 왕국의 멸망과 세월의 풍화로 인해 남김없이 사라진 것인지.
보이는 것은, 건조한 사막 지형으로 인해 말라비틀어진 듯한 조악한 건물들 뿐.
불모지로 변해버린 땅, 식물은 제대로 자라나지 않고 나무는 가지만이 남아 푸른색이라는 색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황폐해져 있었다.
사막화가 진행된 탓에 바닥은 흙보다도 `모래`에 가까웠으며, 크고 작은 선인장들이 보인다.
쿠온과 클레온, 그리고 베라스톨은 교단에서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갈라틴이 잠들어 있다는 유적 속의 신전을 향하기 위해 왕도를 나선 상태였다.
돌아오자마자 며칠 지나지 않아 또 왕도를 비우게 된 것이지만, 이번에 행동하는 것은 이렇게 세 사람 뿐.
때때로 불어오는 모래바람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둔 후드와 스카프를 두르면 마치 방랑자와 같은 외견이 된다.
"조심해 쿠온, 모래 알갱이들이 눈에 들어가면 안 되니까."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며 손으로 눈 앞을 가린 채, 먼저 내렸던 베라스톨의 모습을 찾는다.
공간 전이라는 특수한 능력을 갖춘 그녀인 만큼, 단독 행동을 시작하면 쫓는 것은 어렵기 그지없었다.
"숙소를 찾았습니다, 쿠온님. 모래바람에 몸을 상하기 전에 우선 조금은 휴식을 취하도록 하시죠."
그때, 갑작스럽게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녀는 쿠온의 옆에 나타난 상태로 그녀에게 말하고 있었다.
쿠온도 갑작스럽게 자신의 옆에 나타난 베라스톨에게 깜짝 놀랐지만, 능력에 대해서는 이미 클레온에게도 들은 바가 있으므로 고개를 끄덕인다.
"가, 감사합니다. 베라스톨님."
"무엇을요. 교황님께서는 당신을 보조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상냥한 목소리로 쿠온에게 이야기한 뒤, 그녀를 인도하는 베라스톨.
그녀가 클레온의 옆을 지나가지만, 투구 속에 보이는 눈빛은 잠시 클레온을 바라보더니 이내 무시하고 정면을 바라보고 걸어갈 뿐이었다.
어제저녁, 왕도를 출발하기 위해 모였을 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베라스톨은 클레온과는 이야기하지 않고, 오직 쿠온에게만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물론 같이 행동하면서 의사소통은 필요하므로 몸짓을 보이기는 하지만….
바로 그저께, 술에 취한 그녀를 신전에 데려다준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딱히 감사의 인사를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며 칼리번의 손잡이에 손을 얹고 마음속으로 말을 건다.
[칼리번. 다른 성검의 기운은 느껴지나?]
[미약하지만요~ 장소 자체는 이 근처인 것 같네요. 갈라틴은 과연 어떤 성검일까요?]
칼리번은 동족을 만나는 것이 조금 기대되는 것인지 조금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클레온은 그런 칼리번과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베라스톨과 쿠온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후후. 성검 탐색이라니, 어딘가 그립네요~]
그렇게 말하는 칼리번의 말에, 클레온은 `그러고 보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그런 것이, [칼리번] 역시 클레온과 쿠온 그리고, 알베인의 셋이 협력하여 유적을 탐색해 찾아낸 성검이다.
설마 그때는, 칼리번이 클레온의 것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지만.
[성검의 용사는 성녀의 계시에서 점지되는 것이었지. ...그렇다면... 그 계시는 성검인 너희들이 보내는 건가?]
[그런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때도 있어요. 당시의 저는 계시를 보낼 만큼 각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다른 의지가 개입해 있던 것이겠죠.]
[...다른, 의지?]
클레온은 그녀의 말에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었는지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어 선다.
성직자인 쿠온에게 계시를 보낼 수 있는 것은, 그녀와 연결된 성검인 칼리번을 제외한다면 그녀가 신앙을 바치는 존재….
즉, 그녀의 마을에 존재하는 성스러운 나무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나무는 별의 촉각.
별의 의지이자 옥좌주인 `네메아`의 일부인 것이다.
`그렇다면…. 알베인에게 칼리번을 잡게 한 것은, `네메아`의 의지라는 건가?`
무엇을 목적으로, 그녀가 칼리번의 주인으로 알베인을 점지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클레온? 왜 그래?"
조용히 멈춰서서 무언가를 생각하던 클레온을 이상하게 여긴 것인지, 앞을 걸어가던 쿠온이 몸을 돌려 그에게 다가왔다.
"... ..."
클레온의 시선이 쿠온과, 허리춤의 칼리번을 번갈아 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무것도, 가자."
"응..."
그렇게, 쿠온에게 대답한 뒤 그녀의 뒤를 따라 걸어 나가는 것이었다.
001
세 사람이 도착한 곳은, 마을의 외곽에 위치한 다 쓰러져가는, 지금은 버려진 집이었다.
모래바람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
마을의 바깥에서 사람이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으니, 여관이 없는 것은 물론.
남아있는 이들도 서서히 줄어들어 가는, `폐촌` 직전의 마을이다.
"어째서... 이 마을의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지 않는 걸까?"
쿠온은 너덜너덜한 창문의 바깥으로 보이는 불이 들어와 있는 마을의 주택들과 길을 걸어가는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그들 모두, 눈에 생기가 없는 그저 시간만을 소모하며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엘카이로의 사람들은, 땅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답하는 것은, 투구를 벗지 않은 채 갑옷 사이에 들어간 모래를 털어내는 베라스톨이었다.
"땅의 저주...?"
처음 듣는 단어에 쿠온이 고개를 갸웃하면, 베라스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과거, 이곳에는 신의 가르침을 벗어나는 수많은 기술을 만들어낸 기술자들이 모여있었습니다. 그들은 오토마타에게 인간의 영혼을 주입하여, 영원히 왕을 위해 봉사하는 전사를 만들어내려고 하였죠."
"그건... 리빙 아머랑 비슷한 건가?"
클레온이 그렇게 질문하면 베라스톨은 거기에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도 고개를 저었다.
리빙 아머는 일종의 언데드 몬스터로, 죽은 인간의 영혼이 마력을 띈 갑옷과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마물의 일종이었다.
본래라면 분해되어 영맥에 돌아가야 할 영혼이 원혼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깃들 곳을 찾다가 남겨진 잔류 사념을 갑옷이 흡수하면, 의지 없이, 생자에 대한 원한만을 동력으로 그 자리를 배회하는 괴물이 만들어진다.
설명만 들으면, 그런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지만.
"정확히는, 어떤 것이죠?"
쿠온의 질문에 베라스톨은 이어서 이야기해 나갔다.
"인간의 영혼을 육체에서 벗겨내어, 기계의 몸으로 전이시키는 것입니다. 자아를 잃지 않고 영원히 싸울 수 있는 전사를 만드는 것이죠."
"...정말로, 신의 섭리에서 벗어나 있는 기술이네요."
신의 섭리란, 자연의 법칙. 인간이 정해진 수명을 벗어나 영생을 누리려 한다던가, 본래 태어난 육체를 버리고 의도적으로 전생을 꾀하는 것은 그런 섭리에서 벗어난 금기로 여겨진다.
그것은 정말로 윤리적인 문제인 것도 있었지만, 그런 비틀린 현상에서 발생하는 음산한 마력이 영맥을 더럽히고, 이윽고 인간의 터전을 파괴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위험한 것을, 신의 이름 아래 금한다. 라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있던 일이었으며.
엘카이로가 맞이한 결말은, 그런 실험이 오랫동안 반복되어 결국 영맥의 힘을 잃고 만 것이 원인이다.
확실히, 쿠온도 클레온도 이 땅에 들어오고 나서 부턴, 다른 곳에서는 손쉽게 느낄 수 있었던 땅 밑을 흐르는 마력의 흐름을 전혀 느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이곳을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아뇨. 저주받은 땅에서 태어난 이들은, 그 땅의 영향을 강하게 받습니다. 바로, 마력에 대해 극심할 정도로 저항력이 없다는 것이죠."
그 말에 쿠온도 클레온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누구나, 마력에 대해 적응력과 저항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적응력은 마력에 적응하여 그것을 다룰 수 있는 능력.
저항력은 몸을 침투하는 외부의 마력을 막아내는 능력.
두 능력은 정반대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연결된 능력이며, 특히나 인간들이 사는 곳은 `마력`과 결코 떨어질 수 없으므로 이 저항력이 약한 인간들은 마력의 영향을 받아 각종 병을 앓거나, 몸이 약하거나, 수명이 짧아지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
이것을 `마력 침식`이라고 한다.
다만 그런 인간은 정말로 소수의 인간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진 저항력을 물려받아 태어나는 경우가 많으므로 대부분의 인간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마력 침식을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몸을 집어삼킬 정도로 마력이 농후한 지역에 들어가거나, 성역 혹은 흑마력 영역에 발을 들이는 일이 없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사는 환경은 극도로 마력이 적은 환경.
그렇다 보니, 대를 이어갈수록 저항력이 약해진 이곳의 인간들은 어느샌가 깨달으면 이 땅을 벗어나는 순간 마력에 침식당해버리는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본래라면 외부와의 단절도 거의 끊고 지내던 곳입니다. ...에스카님께서 이곳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에스카 씨가..."
클레온은 그녀의 입에서 에스카의 이름이 나오자 그것을 되풀이하듯 중얼거렸다.
"순례의 여행 중, 마력의 흐름이 이상한 것을 발견하시고는 이곳에 찾아오셨죠. 신성 마력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몸을 가진 이들이 살아가는 이곳은 그 당시의 에스카 님께는 충격 그 자체였다고 하십니다."
"... ..."
교단이 전도하는 방법은 대부분, 교리를 설파하는 것 보다도 실제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인 성직자의 `치유술` `축복` 그리고, 땅을 풍족하게 하는 `축성`등의 기적이다.
그것마저도 이 마을은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마을의 인간들은 어떻게 해서든 구원받고 싶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족쇄를 벗어버리고, 이 죽음의 땅에서 벗어나고 싶었기에 `기적`을 보지 못하더라도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 뒤, 교단과 마을은 일종의 계약을 맺었다.
엘카이로는 분명 수많은 금기의 기술을 발전시켰던 곳이었지만, 제국처럼 악행을 벌인 것은 아니었다.
현대에도 응용할 수 있는 수많은 기술이 보물처럼, 이곳의 모래바람에 묻혀 있을 것이다.
교단에서 엘카이로에 구원 물자를 보내는 것을 조건으로, 이곳을 발굴하도록 한 것이다.
그것이 벌써 10년 전의 일.
그 뒤에 이 장소는 왕국의 고위층에도 알려지지 않은 채 비밀리에 교단과 거래를 계속해 오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발굴되는 기술들은 대부분이 병기 기술들이었다고 합니다. 교단에서 원하던 것은 아니었죠…. 거기에, 점점 인구는 줄어가는 추세. 최근 1년 동안은 이렇다 할만한 성과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구원 물자를 보내는 것은 멈추지 않겠죠…? 이곳의 사람들을…. 버린다던가, 그런 일은"
쿠온의 말에 베라스톨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클레온은 그녀의 대답에도 조금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보아도, 풍족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왕국에 비밀로 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충분하지 못한 구원 물자를 보내는 것도.
걸리는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 에스카 톨로지가 주도하고 있는 일이라고 하기에는
"그러던 도중 최근에 마을 사람들에 의해 발견된 것이 무덤 유적입니다. 내부는 미궁처럼 되어 있었고, 마지막 왕의 무덤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알 수 없었지만... 마을의 전승에 의하면 이곳에는 `성검 갈라틴`이 봉인되어 있다고 합니다."
"안에는 또 어떤 것이 있나요?"
"왕의 시신을 지키는 수많은 오토마타와 침입자를 막기 위한 함정들이…. 내부를 나아갈 때는 충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쿠온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을 꼬옥 쥐었다.
"무덤이라니…. 왠지, 도굴꾼이 된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네요…."
아무리 평화를 위한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죽은 이들의 안식을 방해하는 행위는 윤리적으로는 어긋난 일이겠지.
클레온은 쿠온이 그것에 마음을 아파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베라스톨은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한다.
"성검 갈라틴의 힘은 여러 부정한 것을 태우는 힘이 될 것입니다…. 분명, 세계에 안정을 불러올 수 있겠죠. 과거의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현재` 역시 중요합니다."
"그렇…. 네요..."
베라스톨의 말 또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클레온은 어렵게 고개를 끄덕이는 쿠온을 잠시 바라보다가 베라스톨에게 제안한다.
"출발은 내일의 아침으로 하지. 영맥이 흐르지 않는 곳이라서 우리들의 마력 회복 속도도 떨어져 있어. 적어도, 체력만큼은 완전히 회복한 뒤에 가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해."
"... ..."
베라스톨은 클레온의 말에 잠시 그를 응시하듯 투구 밑의 시선을 고정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그녀에게도, 그 정도의 여유를 허락할 수 있는 마음은 있는 듯했다.
"그럼…. 잠자리를 준비해야겠네. 방은…."
쿠온이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면, 침대가 두 개 있는 침실과 거실, 딱 두 방만 존재하는 방이었기 때문에 누군가는 거실에서 잠을 잘 필요가 있었다.
"쿠온은 일단 침실이야."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베라스톨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자신을 배려하는 두 사람의 행동에 쿠온은 약간 당황을 느끼지만, 클레온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쿠온을 바라보며 엄지를 세웠다.
"...뭐어. 이 경우에는 내가 거실에서 자는 게 맞겠지."
그리고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베라스톨에게 나머지 침대를 양보하는 것이었다.
모험가 생활이 긴 클레온에게 있어서 바닥에서 자는 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보다도 신전 생활을 길게 해왔을 베라스톨을 바닥에서 재우는 것이 좋지 않겠지.
라고 판단한 클레온의 말이지만 그때, 쿠온이 클레온의 소매를 꼬옥 붙잡으며 슬쩍 당긴 뒤 이야기했다.
"나, 나는…. 조금 좁더라도 클레온과 같은 침대에서 자는 건 상관없는데..."
"... ..."
그 말에 클레온의 안에 조금의 충격과 부끄러움에 의한 전류가 흘렀다.
슬쩍 베라스톨을 돌아보면, 투구 때문에 표정이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쿠, 쿠온... 아무리 그래도 그 1인용의 침대에 두 사람은 조금... 떨어질 위험도 있으니까."
"아, 으, 응! 그렇지! 아하, 하 나도 참...!"
쿠온 역시 멋쩍게 웃어보이는 것이었다.
당사자인 베라스톨은 투구의 밑에서 조금 분을 삭이듯 눈을 감고 있었다.
교단의 성녀가 남자와 관계를 맺는 것을 용서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부끄러움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다만, 오랫동안 클레온과 생활하면서 그런 것에 대한 저항이 적어진 쿠온의 발언은, 베라스톨에게 있어서는 정욕에 빠져 타락한 성직자와 같았다.
역시, 에스카님이 싫어하는 여자...
그녀의 명령이 없더라면 쿠온을 배려하는 일도, 그녀에게 존댓말을 하는 일도 없었겠지.
조금이라도 빨리, 그녀의 명령을 완수하고, 돌아가자.
그렇게 생각하며,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투구의 밑을 조금 열어 물을 들이켜려는데
"아, 그렇지! 침대 두 개를 붙이면, 세 사람이 같이 누울 수 있지 않을까!?"
"푸흐읍!?"
쿠온의 그런 말에 자신도 모르게 물을 내뿜어 버리고 만다.
"쿠온... 절약 정신이 투철한 건 알겠지만…."
"크, 클레온만 바닥에서 자게 하는 건 조금 그러니까 제안한 건데…. 안될까?"
그렇게 이야기하는 두 사람의 옆에서 기침하며, 베라스톨은 눈을 흘깃하고 노려보았다.
"그렇게까지 같이 지내고 싶다면 제가 거실에서 자겠습니다."
기침이 겨우 가라앉아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쯤에 베라스톨이 그렇게 말하면 쿠온이 고개를 젓는다.
"아뇨! 그럼 제가 거실에서!"
"아니, 내가 거실에서 자면 된다니까…."
"적당히 하세요. 제가 거실에서 자겠습니다."
...서로 양보하는 이상한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002
결국 거실에서 자기로 한 것은 클레온이었다.
양보하긴 했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창문이 달린 거실은 가끔 불어오는 모래바람의 소리에 덜컹거리며 잠을 방해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잠자리에 드는 것이 모험가의 소양 중 하나이지만….
오늘은 그것도 조금 힘들게 느껴졌다.
[도와줄까~?]
그때, 벽에서 들리는 다른 목소리.
벽에 기댄 채로 있던 클레온의 마검인 `갈라테아`였다.
계곡에서 귀환한 뒤, 여전히 인간의 형태로 변신하는 능력이 회복되지 않은 그녀였지만, 그 외의 능력은 대부분 되찾은 상태였다.
하지만, 갈라테아 대신에 움직인 것은, 그 옆에 같이 기대어져 있던, 칼리번이었다.
약간의 빛을 내면서 인간의 모습을 취한 칼리번은 그대로 종종걸음으로 걸어와 클레온의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갈라테아는 차가워서 별 도움이 안 되니까~ 제가 도와드릴게요~"
[크윽...! 칼리번 너...! 힘만 원래대로 돌아오면…!]
"후후~"
질투하는 목소리를 내는 갈라테아를 무시한 채, 누워있는 클레온에게 매달리려고 하는 칼리번.
그때
클레온은 두 사람의 말 소리에 잠이 다 달아나는 것을 견디다가 바깥에서 느껴진 인기척에 눈을 떴다.
"... 칼리번."
"음~ 자려는 것 아니었나요?"
"이쪽을 지켜보는 녀석이 있으니까…. 따라와 줘. 갈라테아도."
클레온의 말에 칼리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검의 모습을 취하고.
갈라테아도 클레온의 곁으로 날아와 그의 허리춤에 달라붙는다.
갑옷을 입으려고 하면 쿠온이나 베라스톨이 잠에서 깨겠지.
조용히 평상복을 입은 채 숙소의 바깥으로 나서면
그곳에는, 금색의 자수가 새겨진 흰색의 로브를 뒤집어써서 전신을 가린 채, 눈 부분만을 보이는 여성이 서 있었다.
"네가 외부인인가."
"...너는"
손에는 지팡이인지 창인지 알 수 없는 것을 들고 있었고, 신장은 클레온보다 조금 낮은 정도.
들려온 목소리는 위압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조금 낮은 여성의 것이었다.
"나는 `메제드`. 이번 대의 메자이다."
"메자이?"
익숙하지 않은 호칭에 클레온이 되물으면, 여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엘카이로의 말로 수호자`라는 뜻이다…. 고대의 왕국과 이 마을을 지키는 존재이지."
"... ..."
낮에는 그 모습을 보이지 않은 그녀가, 어째서 인제 와서 클레온을 불러내듯이 나타났는지.
클레온은 여차하면 전투가 시작될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묻겠다. 이방인이여. 그대들이 이곳에 찾아온 것은... 왕의 무덤을 파헤치기 위해서인가?"
"...달라. 우리는 그 안에 있는 `성검 갈라틴`이 목적이다."
"성검... 갈라틴. 역시, 그런가..."
그녀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눈을 감았다가, 이내 클레온에게 이야기했다.
"경고하마. 그곳은 이 땅에서도 신의 저주를 가장 강하게 받은 곳이다. 이방인들인 너희들이 들어가서 무사할 거란 보장이 없다. 얌전히 돌아가는 것이 너희를 위한 일이야."
메제드는 그렇게 이야기 하며 지팡이를 땅에 세웠다.
"너희들이 사용하는 땅의 은혜 `마력`은 이 땅에서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클레온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경계를 풀었다.
"그렇다면 안에 어떤 것이 있는지, 알려주지 않겠나?"
"... ..."
클레온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는 듯, 메제드는 두 눈을 깜빡인다.
그리고는 조용히 중얼거린다.
"이, 이상한데…. 할아버님의 책에 따르면, 이렇게 하면 외부인들이 돌아갈 거라고…."
"...뭐라고?"
그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일부 일부밖에 들리지 못한 클레온이 그렇게 질문하면,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가도 이내 고개를 저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다…! 그 안은, 강력한 역마력장이 펼쳐져 있어서, 안에 들어온 이의 마력 운용을 막아버린다. 우리들 메자이가 아니라면 안에서 길을 잃고, 나가지도 못한 채 죽을 것이다."
메제드의 말에 클레온은 잠깐 고민하는 듯이 침음을 내뱉었다가 그녀를 바라본다.
"너는 마력을 쓸 수 있는 건가?"
"아니. 나 역시 마을의 저주를 피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저, 단련을 거듭해서 전사로서 성장한 것일 뿐."
그녀의 신체는 펑퍼짐한 로브에 가려져 있었지만, 느껴지는 기백은 확실히 단련한 이의 것이었다.
"...그렇다면 부탁이 있는데."
"...부탁?"
"그래, 네가 무덤의 안에서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를 안내해 주면 되는 것 아닌가?"
"!? 그, 그건..."
그녀에게 그 발상은 없었다는 듯, 다시 한번 놀란 반응을 보인다.
"어, 어떻게 하지…. 외부인과 협력이라니…. 하지만 교단의 도움이 없으면 우리 마을은... 으으…."
그리고 또다시 중얼거리면서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이었다.
"... 어이, 괜찮아?"
[무언가... 믿음직스럽지 못한데...]
[후후~]
클레온과 그 검들은 그런 그녀를 걱정하듯이 말하지만, 그녀는 이내 헛기침하고 다시 차분한 모습을 보이며 대답했다.
"...알겠다. 그렇게까지 안을 탐색하고 싶다면. 돕도록 하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길을 찾는 것뿐이다. 선조의 수호병 오토마타와의 싸움에는 끼어들지 않겠다. 알겠지?"
"그걸로 좋아. 싸움은 이쪽의 전문 분야니까"
클레온의 대답에 메제드는 눈길로 클레온을 위아래로 살핀다.
"모, 모험가란 건 원래 이렇게 대담한 건가...?"
또다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이내 몸을 휙 돌린다.
"...아, 아침에 다시 오겠다. 출발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도록."
그렇게 말하며 모래바람이 부는 마을의 길을 따라 멀어져가는 메제드를 잠시 눈으로 좇던 클레온은 턱에 손을 올렸다.
"... ..."
[여자라고 야한 생각 하는 건 아니겠죠~?]
칼리번이 그렇게 중얼거리면 클레온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다만…. 무언가,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신경 쓰이는 것?]
갈라테아가 그렇게 물으면 클레온은 그녀가 걸어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경고를 할 거라면, 낮에 나타나서 했으면 됐을 텐데... 쿠온도, 베라스톨도 있을 때니까. 어째서 밤이 된 지금 나타난 거지…."
[그냥 부끄럼쟁이라 그런 거 아니야?]
"...설마."
클레온은 갈라테아의 추측에 고개를 내저어도 답이 나오지 않았기에 결국 숙소로 돌아간다.
엘카이로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가려 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