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화 〉 왕의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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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모래바람은 줄어들고 태양이 머리 위로 떠올라 강렬한 빛을 내리쬐고 있었다.
온도는 그렇게까지 높지 않지만, 그늘을 만들어 줄 만한 것들이 적은 탓에 맨살을 내놓고 다니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장소였다.
이곳 사람들의 의복을 흉내 내, 망토와 후드, 그리고 스카프를 두르는 것으로 빛을 막기로 한 클레온은 먼저 쿠온을 꽁꽁 싸맨 뒤.
그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큭...`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왜, 왜 그래...?"
쿠온의 체형이 풍만한 탓에, 앞쪽으로 내려온 천이 폭포와도 같은 굴곡을 만들어내서 겉으로 보기에는 술통처럼 보이는 것이다.
물론 그 안쪽에는 골반이나 가슴에 비해 쏙 들어간 허리나 복부가 있다는 것을, 클레온은 알고 있었지만.
`...그러고 보니 어제의 그녀도...`
클레온은 그런 식으로 떠올리는 동안, 쿠온은 자기 가슴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 허리 부분을 어떻게든 살피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자, 허리띠를 둘러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으, 응..."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뒤로 돌아가, 가볍게 허리띠를 매어주면 그제야 조금은 쿠온다운 체형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거."
그러면서 쿠온의 오른쪽 허리춤에, 조심스럽게 단검을 걸어준다.
검은색의 강철로 만들어진 도신의 그것은, 평소에 클레온이 사용하는 투척용 단검이었지만, 쿠온이라면 잡고 휘두르기 좋은 크기였다.
쿠온은 그 단검을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유적 무덤의 안에서는 마력을 쓸 수 없다는 것 같아. 그러니까, 최소한의 호신용으로."
"그, 그렇구나... 어떻게 안거야?"
쿠온은 클레온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그가 그런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느낀 듯이 물어왔다.
"마을 사람에게 들은 거야. 그렇게 됐으니까. 베라스톨, 쿠온을 잘 부탁한다. 적은 되도록 내가 맡을 테니까."
자신의 키만 한 방패를 다루는 베라스톨이라면, 분명 쿠온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클레온은 그렇게 생각하며 베라스톨에게 방어를 맡기고 자신은 공격에 전념하기로 했다.
베라스톨은 클레온의 말을 듣고 여전히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숙소를 두드리는 노크 소리.
"이방인. 일어나 있나? 출발할 준비는 마쳤나?"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어젯밤 클레온을 찾아온 `메제드`의 것이었다.
베라스톨이 그 목소리를 듣고는 방패를 들고 경계하려 하면, 클레온이 손을 뻗어 그녀를 제지하고 문 가까이 간다.
그리고 낡아빠진 문이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열면, 그곳에는
어제와 같이 전신에 흰색 천을 뒤집어쓴 여성이 지팡이를 든 채 서 있는 것이었다.
"음. 다된 건가? 무덤은 이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지만 너희들이 찾는 `갈라틴`까지의 길은 험난하다. 충분하게 준비를 마치고…. 왜, 왜 그러지?"
"아니... 너, 뭔가 어젯밤에 봤을 때보다 키가 줄어들어 있지 않나…?"
그 말대로, 클레온이 기억하고 있는 어제의 그녀는 클레온보다 조금 작은 정도의 키로 여성치고는 상당히 장신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지금의 그녀는 클레온의 가슴팍 정도까지의 키로 줄어들어 있었다.
"기, 기분 탓 아닌가? 사람의 키가 줄어들다니. 그런 일이 있을 리 없잖나."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아니, 그래. 그 부분은 괜찮겠지. 어쨌든, 안내를 잘 부탁한다."
"으, 응. 맡겨만 다오."
그렇게 클레온과 말하고 있는 메제드를, 쿠온과 베라스톨이 의문의 시선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었다.
"...저기, 클레온? 그 사람은"
"아까 말한 마을 사람이야. 이름은 메제드. 우리가 무덤 안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를 부탁했어."
"아그렇구나…."
클레온의 말에 쿠온은 어느 정도 납득한 것 같았지만 베라스톨은 투구 안에서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클레온 녀석. 마음대로 마을 주민을 끌어들이다니…. 이렇게 되면 그분의 명령을 수행하기가 더 어려워지는데….`
에스카로부터 받은 명령을 지키기 위해선, 자연스러운 형태로 클레온과 쿠온을 떨어트려 놓아야만 했다.
"메자이인 `메제드`다. 너희들이 무덤 안에서 길을 잃어 죽은 뒤 원혼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그런 이유였나…?"
메제드의 말에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던 클레온은 어쨌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성직자인 쿠온이에요. 이쪽은 교단의 성전사인 `베라스톨`씨."
쿠온에게 소개받은 베라스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베라스톨이다. 메자이라는 것은 분명, 이 마을의 `경비대`였지."
"겨, 경비…. 크,흠. 같은 단어라도 우리는 `수호자`라는 뜻으로 쓴다…."
그녀의 말에 약간 당황한 티를 내던 메제드는 그렇게 대답한 뒤 지팡이로 땅을 찍었다.
"이 남자에게서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무덤의 안에서는 마력을 사용할 수 없다. 너희들 이방인들은 대부분, 싸움도, 생활도 마력에 의존하고 있겠지만 그 안에서는 바깥과도 같은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럼 신성 마법에 의한 치료술도 불가능하단 거네... 포션을 챙겨와서 다행이야."
쿠온은 메제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에 메고 있던 포션 가방을 살핀다.
메제드는 조금 신기한 듯이 그 포션병을 바라보다가도 퍼뜩 정신을 차리며 클레온과 일행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어제 말한 것을 깜빡했지만 안에는 `왕의 영혼`이 무덤의 안을 방황하고 있다."
"왕의 영혼...?"
조금 심각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그녀의 주름 진 미간에서는 그녀가 말하는 `왕의 영혼`이라는 존재가 조금 성가신 녀석이라고 느껴졌다.
클레온이 그녀의 말을 되풀이하듯 중얼거리자, 메제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한다.
"말 그대로, 왕의 영혼이다. 무덤의 주인이자, 과거 이 땅을 지배했던 왕. 영맥이 고갈된 뒤에 죽었으니, 성불하지 못하고 현세에 자신의 무덤에 지박령처럼 남은 것이다."
"그럼 이 기회에 입멸할 수 있도록 해줘야겠군."
베라스톨이 그렇게 말하며 방패에 성스러운 기운을 흘려보내면 메제드는 고개를 젓는다.
"아까도 말했지만, 안에서는 마력을 사용할 수 없다. 영체는 마력이 없으면 타격할 수 없다. 즉, 왕의 영혼은 무덤 안에서는 무적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성가시군. 그가 우릴 적대할 가능성은 있나?"
클레온의 질문에, 메제드는 고개를 끄덕인다.
"왕의 영혼은 오랜 세월을 무덤 속을 떠돌았다…. 그가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아. 침입자라면 동족인 나조차도 공격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쿠온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메제드는 자신의 로브 안에서 `눈`의 형태를 한 목걸이 형태의 탈리스만(부적)을 꺼내서 보여준다.
"이것은 메자이의 표식으로. `마를 쫓는 부적`의 역할을 하는 물건이다."
특이한 눈의 형태를 가진 물건이었기에, 클레온도 조심스럽게 마력시를 사용하여 표식을 살피지만, 그 결과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데."
말 그대로, 아무런 마력의 잔재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물건 자체는 여러 가지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고, 안에는 과거 마력이 통했던 통로 같은 것이 보이지만 내부는 텅 빈 상태이다.
"말 그대로 `그런 역할`을 하는 물건에 불과하니까. 지금은. 하지만, 상대도 엘카이로의 인간이었던 존재다. 자신이 유령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메자이의 표식을 보고 도망칠 거다. 실제로, 다른 무덤의 망령들이 그랬다고 하니까."
그녀의 말에 베라스톨이 움찔, 하고 반응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클레온도, 쿠온도 그녀에게 시선이 향하지만 이내 베라스톨은 두 사람을 돌아보더니 헛기침을 한 뒤 메제드에게 이야기했다.
"주의 사항은 가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해가 지기 전에 들어가고 싶으니까."
그런 베라스톨의 말에 메제드는 조금 움츠러들며 중얼거렸다.
"어, 엄청나게 딱딱한 사람이네... 교단의 성전사들은 다 저런 건가...?"
"뭐라고?"
메제드의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에 잘 들리지 않은 베라스톨이 조금 차갑게 되물으면, 그 기세에 메제드는 살짝 눌리다가도 이내 허리를 펴며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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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의 입구는 미리 전해 들은 대로 거대한 언덕을 파내던 도중에 발견된 것과 같이 언덕 아래 파묻혀 있는 유적으로 통하는 입구가 구멍처럼 뻥 뚫려 있었다.
당시 이 나라의 종교관이었던 사후의 세계에 관련된 벽화가 길게 이어진 복도로 발을 들이면, 음산한 한기가 땅이나 벽을 통해 세 사람을 향해 전해졌다.
모래바람이 불지 않더라도, 그 한기를 견디기 위해서 몸을 감싼 로브 등을 벗는 것은 힘들었다.
그리고 메제드가 말한 대로 안쪽으로 나아갈수록 마력의 흐름이 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글레온은 허리춤에 걸려있는 두 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물었다.
[갈라테아, 칼리번. 아직 괜찮아?]
[응. 조금씩 잠이 오는 것 같지만….]
[후아암...]
칼리번의 하품 소리가 머릿속에 울리면 클레온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칼리번에 한해선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걸.]
[무읏…. 그렇지만도 않다고요~? 저도 잠들고 싶지 않은데 잠이 오고 있다고 해야 할까~]
칼리번의 짐짓 화난 듯한 목소리가 울리면, 반대편 허리 쪽의 갈라테아가 `흥`하고 코웃음을 울렸다.
[네가 잠들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게 나한테는 더 충격이야…. 어쨌든,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렇게 대화하는 것도 힘들어질지도 모르니까 조심해야 해, 클레온. 당연한 이야기지만 각인을 통해 능력을 빌려오는 것도 불가능해져.]
[그래, 알고 있어. 이 앞은 순수하게 체술과 상황 판단만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거지...]
클레온이 그렇게 걷고 있으면, 마력에 의해 불빛을 유지하던 랜턴이 이내 그 빛을 잃는다.
두 마검으로부터 들려오던 목소리도,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몸을 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사라지는 느낌과 동시에,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고독감.
주변에 당연하게 있어야 할 것이 갑작스럽게 사라진 듯한 그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게, 역마력장…."
클레온은 상상 이상의 감각에,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쾌함을 느꼈다.
"클, 레온..."
쿠온 역시, 마찬가지인 듯 클레온의 가까이 다가와 그의 손에 자기 손을 겹친다.
꼬옥 붙잡은 손을 마주 잡아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면 그것으로 조금은 안심을 되찾는 것이었다.
메제드 역시 마력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면 미리 가지고 온 자신의 구식 랜턴에 불을 붙이며 클레온 일행을 돌아본다.
"두 사람 다 괜찮나? 그런 식으로 인간의 체온을 느끼고 있으면, 마력이 없는 것에 대해 공허함을 조금은 채울 수 있다고 들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녀 본인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이 보였다, 처음부터 마력을 가지지 않는 그녀이기에 그런 것이겠지.
"아, 베라스톨씨는"
쿠온이 그렇게 말하며 베라스톨을 돌아보면, 베라스톨은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했다.
"문제없습니다. 마력이 사라지더라도, 단련한 육체가 있다면 관계없는 이야기입니다."
"...정말로 괜찮나요?"
쿠온이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건네면, 베라스톨은 그것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한걸음 통로의 안쪽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었다.
"여차할 때 움직이기 불편해집니다.."
"그, 그런가요…."
"자, 잠깐! 성전사! 그렇게 먼저 앞으로 가지 마라~!"
성큼성큼 걸어가는 베라스톨을 바라보며 메제드가 당황하여 그 뒤를 쫓아간다.
건네지는 손길, 호의, 그리고 관심을 모두 그 갑옷과 방패로 튕겨내는 듯한 태도였지만 쿠온은 그런 그녀를 조용히 시선으로 쫓다가 갈길을 일은 손을 아래로 내렸다.
어딘가 쓸쓸한 표정을 짓는 쿠온을 바라보며, 클레온은 조용히, 베라스톨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쿠온.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녀는"
"응. 알고 있어. 우리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쿠온의 말에 클레온은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나 때문이겠지. 흑마의 일족에 마검사인 나와 함께 다니는 성직자인 쿠온마저, 좋지 않은 눈으로 보고 있는 거야."
쿠온은 나쁘지 않아. 라고 클레온이 덧붙이지만 쿠온은 고개를 저었다.
"으응, 왠지.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아…. 어디까지나 감이지만."
"...여자의 감, 이라는 녀석인가?"
클레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쿠온.
"어디까지나 감이고, 자세한 이유는 잘 모르지만…. 조금이지만, 그녀의 마음속에 `망설임`같은 것이 있는 것 같이 느껴져."
사람의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마저도 살피고 치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성직자인 쿠온이 말하는 것이기에, 그 무게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이, 일단은 우선 성검에 집중하자…. 그녀에 관한 건 지금 당장은"
그때, 갑작스럽게 앞쪽에서 들려오는 `우당탕쿵탕!`하는 소리에 쿠온과 클레온은 동시에 고개를 들어 앞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거대한 새의 형상을 한 검은 안개와도 같은 무언가가, 갑주를 걸치고 있는 베라스톨의 몸을 집어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큭...!"
갑옷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기에 외상은 없는 것 같았지만, 중력을 무시하고 허공에 뜬 몸을 붙잡고 있는 그 악력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또, 서서히 갑옷의 틈새나, 투구의 틈으로 안개가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지팡이를 쥔 채 안개를 노려보고 있는 메제드도 함께였다.
"저건 망령인가!?"
클레온은 그것을 보자마자 칼리번을 뽑아 들고 뛰어가 휘두르지만, 정말로 안개를 베고 있는 것처럼,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 버린다.
"메제드! 망령은 그 펜던트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 아니었나?!"
"그, 그럴 텐데…! 어째서인지 통하지 않고 있어서"
[어리석은 녀석들…. 급이 낮은 선왕들이라면 모를까, 짐은 `태양왕`. 왕국의 역사상 가장 위대하며, 그 마지막을 장식한 최후의 왕이다…. 그런 잔재주와 속임수가, 짐에게 통하리라 생각하느냐!]
안개 속에서 들려오는 인간의 목소리가, 천둥 벼락과도 같이 울리며 주변을 휩쓸었다.
쩌렁쩌렁 울리는 분노의 목소리에 붙잡힌 베라스톨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몸이 일순 멈추며 귀를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마력으로 몸을 보호하지 못하니, 외부의 자극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을 견뎌내고 다시 몸을 움직일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 듯했지만, 역시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메제드의 쪽이었다.
그녀는 황금색의 지팡이를 안개를 향해 휘두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안개의 사이로 봉이 휘둘러지며 안개는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메자이... 왕가의 수호자가 어째서 도굴꾼에게 가담하는가... 너희들의 시대도 저주받으리라!]
그런 저주 가득한 목소리로 울부짖으면서, 안개 속에서 보이는 안광에 빛이 모이는 것이 보였다.
`저건... 설마`
"피해라!"
클레온 역시, 그 안광을 보자마자 무언가를 떠올리지만, 이내 메재드의 비명과도 같은 소리에 몸을 굴린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방금까지 클레온이 서 있던 자리를 향해 쇄도하는 붉은 빛의 질주.
번개와도 같은 것이 눈에서 뿜어져 나오며 땅바닥을 긁어냄과 동시에 뒤편으로 이어진 어두운 통로까지 태워버리듯이 지나갔다.
살짝이지만 스친 클레온의 스카프가 그 번개에 의해 잘려 나간다.
쿠온이 처음부터 사선에서 벗어나 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여기며, 클레온은 메제드의 옆으로 간다.
쿠온 역시, 괜히 눈에 띄어 노려지는 것 보다, 기회를 노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것인지 복도의 기둥 뒤로 몸을 숨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속삭이는 목소리로도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 붙은 메제드는 당황한 눈치로 클레온을 바라본다.
"이방인, 나는"
"당황한 건 알겠지만, 지금은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터야.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면, 이런 형체 없는 적을 쓰러트릴 수 없다."
클레온의 말에 조금은 냉정함을 되찾은 것인지, 그녀는 우선 고개를 끄덕이면서 잡고 있던 지팡이의 끝을 살짝 비튼다.
그러자 그 지팡이의 끝에서 네 개의 풍차 날개와도 같은 날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건"
"성스러운 날개이다. 이걸 사용하면 일시적이지만 악령을 무찌를 수 있다고. 할아버님의 수첩에 적혀 있었다."
클레온은 그녀의 말에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그렇다면 자신의 역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었다.
"어이! 새 대가리! 너희 어머니도 그 모양이냐?! 아, 너희 어머니는 이미 성불하셨으니 안개가 아니라 재가 됐겠군!"
클레온이 재빠르게 몸을 달려 메제드와 떨어진 순간,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욕설이 안개의 주의를 끈다.
그리고
[무례한 이방인 놈!!!!]
예상대로, 자신을 향하는 왕의 분노. 그의 눈에서 다시 한번 강렬한 불꽃인지 번개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일어나면
그때.
"하아아앗!"
지팡이의 끝을 안개에 가져다 대고. 지팡이의 버튼을 누르는 메제드.
그러자, 지팡이의 날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강렬한 바람을 만들어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발생한 돌풍은 안개를 밀어버리듯이 흩어버린다.
[크오오오!]
몸이 깎여나가는 것에 비명을 내지르는 그것이, 이내 베라스톨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작게 흩어지면.
클레온도 그녀를 받아낸 뒤 메제드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어이, 베라스톨! 정신 차려!"
"큭... 소리를, 지르지 마라... 머리가 아프니까…."
다행히 그녀도 일단은 무사한 듯했었다.
사라진 왕의 영혼의 흔적을 살피던 메제드도, 더는 안개가 보이지 않자 종종걸음으로 클레온에게 뛰어온다.
"두 사람 모두, 괜찮나?"
"그래, 이 녀석도 문제없는 것 같아…. 방금 그건…. 지팡이의 기능이 없었더라면 위험했군."
클레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메제드의 지팡이를 살린다.
마법사의 지팡이와는 그 기능이 다른 듯했으며, 전개되었던 날은 그대로 다시 지팡이의 안으로 수납되었다.
"그래. 하지만 한 번 사용하고 나면 재사용까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 내부의 동력이 필요해서…."
"클레온! 베라스톨!"
메제드가 말하는 도중에, 쿠온이 기둥 뒤에서 다시 나와 클레온이 있는 쪽으로 달려오려던 찰나
조금 전, 땅바닥을 지지듯이 뿜어져 나온 번개의 흔적 그 사이에서 `드드드….`하는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쿠온! 멈춰!"
클레온이 순식간에 그 소리의 정체를 이해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쿠온이 있는 쪽으로 뛰어간다.
자신도 모르게 손에 있는 베라스톨을 놓아버릴 정도로 급한 움직임이었다.
그러면 쿠온이 서 있던 멀쩡해 보이던 자리가, 그대로 마치 쌓아 올린 나무 블록이 무너져서 붕괴하듯이.
쑤욱, 하고 땅바닥이 꺼지면서 쿠온의 몸도 자연스럽게 중심을 잃고 낙하하려 한다.
"쿠온!"
그리고 그것을 쫓는 클레온. 손을 뻗어서 잡을 수 있는 거리를 벗어났다고 생각한 클레온은 우선 몸을 던져 쿠온이 있는 쪽으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이방인! 괜찮나!?"
"그래! 하지만…. 낙하를 멈출 수 없는 것 같아! 돌아갈 길을 찾아볼 테니까, 그 녀석을 부탁해!"
"부탁한다니…. 큭..."
메제드는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고 고민하다가, 무언가를 던져온다.
그것은, 아까 효과가 없었던 탈리스만이었다.
"그 문양이야말로 `태양왕`의 문양이다! 본인에게는 통하지 않겠지만…. 다른 악령에게라면"
"...그래! 고마워!"
메제드와 클레온의 목소리는 붕괴하는 소리에 묻혀서 사라져만 간다.
그리고, 클레온은 쿠온의 몸을 끌어안고, 추락의 충격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메제드도 입술을 꽉 물지만, 어느샌가 자신의 옆에까지 기어 오듯이 다가온 베라스톨이 절벽이 된 바닥 밑으로 손을 내밀다가.
이내 기절해 버리는 모습을 본다.
"... ... 어떻게든, 이방인들과 다시 합류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메제드는 그렇게 말하며, 봉인구라고도 할 수 있는 자신의 흰색 천을 벗어버리는 것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