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화 〉 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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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강대한 왕국을 일으키고 절대적인 왕권을 자랑하던 왕가의 권위는, 서서히 메말라가는 강과 땅, 그리고 몰아닥치는 모래바람 때문에 서서히 추락하고 있었다.
선왕인 아버지가 독살당한 것도, 어머니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것도 모두 그 영향이겠지.
어린 시절의 내가 왕위를 물려받자마자 취한 행동은 오직 왕가에만 충성을 맹세한 가신들을 제외한 모든 신하를 숙청하는 것이었다.
그 뒤에는 어떻게든 기울어져만 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마음만으로 어떤 것이든 해왔다.
영험한 신관을 데려다가 제사를 지내보기도 하고, 비옥한 땅을 가진 곳으로 이주하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국민은 마력에 대한 저항력이 거의 없어져서, 다른 땅으로 가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뿐이었다.
이제, 이 나라의 멸망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찬란한 영광은 빛바랜 구리 동전과도 같이 모래바람에 파묻힐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형의 괴물들…. 왕가의 무덤들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나 왕국을 덮친 재앙.
그것이 영맥의 고갈 때문에 나타난 존재들이라는 것을 밝혀낸 연구진 중 3명의 머리를 치고 나서야, 속이 좀 풀렸다.
이것들을 방치한다면, 나라가 멸망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고한 백성들과 인근국에까지 커다란 피해가 끼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왕국의 이름은 세계에 재앙을 가지고 온 어리석은 이들의 왕국으로 영원히 역사 속에 남게 되겠지.
선조들에게 맹세코, 그것만큼은 막아야만 했다.
하지만, 이미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이 없어진 우리에게 남은 것은, 결국 괴물들을 불러온 과학기술이었다.
발굴된 고대의 검은 갑주에서 얻어낸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검은 강철.
그것을 사용하여 인간의 영혼 그 자체를 동력원으로 삼아 움직이는 살아있는 `오토마타`를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지상의 사막화가 가속되면서, 왕국의 연구진들은 그 시설을 가장 안전한 곳으로 옮기라고 나에게 진언해 왔다.
멍청한 것들…. 그 연구가 없었더라면 애초에 이런 재앙이 찾아오지도 않았을 텐데.
이 왕국을 다스리는 짐조차 보지 못한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녀석들은, 서서히 나의 명령조차 무시하고 행동하려 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대해 분노를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정해진 곳은,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던 무덤이었다.
선왕이 만든 것이었다.
"후우…."
내가 그렇게 한숨을 내쉬면, 그 녀석은 나를 돌아보며 이야기했다.
"그렇게 크게 한숨을 쉬면, 수명이 줄어듭니다."
전신을 강철의 갑주로 감싼 채, 그 위에 흰색의 천을 덮은 전사.
나의 충실한 종복, 가장 믿을 수 있는 신하.
근위대인 `메자이`의 수장이자, 어린 시절부터 나를 지켜온 왕의 수호자.
"맥주를 마시고 싶어…."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면, 그 녀석은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쉰다.
"아직 업무 중이십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마시고 싶다고 말하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으냐. 내가 어제 시종에게 시켜서 준비해 둔 차가운 맥주가 있느니라. 지금 마시고 싶도다."
너도 사막화된 이곳에서 그 갑주를 걸치고 있는 것은 고통이겠지.
나는 그 녀석을 생각해서 그렇게 이야기했건만, 그 녀석은 손에 들고 있는 황금색의 지팡이로 땅을 찍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시종이 저에게도 이야기했으니까요. 왕께서 하루에 허락된 맥주의 양을 훨씬 넘는 만큼 준비해 놓으라고 하셨다고."
"윽... 그 녀석…. 감히 고자질을…."
귀여운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적은 가까이에 있었나 보다.
"충신이지 않습니까. 폐하의 건강을 생각하면 원래는 음주조차 삼가야만 합니다."
"육체의 건강이라면 그렇겠지만, 정신의 건강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역시 맥주뿐이니라."
나의 대답에 녀석은 한숨을 내쉰다.
"다른 것에 도전해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선왕 폐하처럼 음악을 즐기신다던가."
"음악은 지루하니라. 듣다가 잠들어 버릴 것이 뻔해."
선왕의 왕궁 악사들을 전부 해고해버린 것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할아버님처럼 낚시를 즐기시는 건"
"나라 전체의 연못이 말라가고 있는데, 취미를 위해 왕궁 내에 인공 연못을 만들어 낚시하던 어리석은 선대를 따라 하라는 것이냐?"
참고로 그 연못은 이미 흙으로 덮어서 매웠다.
"막무가내시군요…."
"나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느니라. 이 나라의 왕이니까."
나의 태도에 그 녀석은 골머리가 아픈 것인지 손을 투구에 올리고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문득, 어젯밤의 일을 떠올린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아아, 맥주 말고 하나 더 있구나. 네가 해주는 마사지다. 그것은 기분이 좋더구나, 뭉친 어깨나 피로가 싸악 가시는 것이."
"...다행입니다. 할아버님께 자주 해드리던 것이었으니 자신은 있었습니다만. 아직 젊으신 폐하께서도 맘에 들어 하신다니."
응응. 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찰나, 무언가 그 녀석의 말이 이상한 것을 눈치챘다.
"간접적으로 나를 애늙은이라고 한 것이냐?"
"설마요…. 후유. 그럼 조금 휴식을 하도록 하지요. 침대 위에 누워주시면 어제와 같이 마사지를 해드리겠습니다."
그 녀석이 그렇게 말하면서 손에 착용하고 있던 건틀릿을 벗는 것을 보며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음♪ 부탁하마. 아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내가 그 녀석에 가까이 가 투구에 손을 가져다 대면, 그 녀석은 당황하여 나의 손을 붙잡는다.
"무슨..."
"어제는 오랜만에 네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더 기분이 좋았느니라. 오늘도 보여줄 수 있겠지?"
내가 그 녀석의 투구의 틈을 바라보며 그렇게 이야기하자, 녀석은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한다.
"...하지만, 메자이는..."
평소에는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직언하는 녀석이, 자신에 관한 일에 관해선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우유부단하다.
"왕의 명령이니라."
"아, 알겠습니다…. 폐하."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녀석은 천천히, 뒤집어쓰고 있던 천을 조심스럽게 벗은 뒤 투구에 손을 올려 천천히 그 얼굴을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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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온…. 정신이 들어?"
어둠 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쿠온이 천천히 고개를 뜨면, 지상에서 꽤 깊은 곳까지 내려온, 지하에 처박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력으로 몸을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에, 순전히 육체로 그 충격을 받아내야 했지만, 역시 쿠온은 클레온에 비하면 단련되지 않은 몸.
올라타 있던 바닥과 함께 미끄러지듯이 떨어졌다 하더라도, 정신을 잃을 만큼의 충격을 받기는 한 것이었다.
"응... 미안해, 클레온. 내가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던 거야?"
"3분 정도야. 괜찮아, 움직이기 힘들다면 내가 업을 테니까."
클레온의 제안에 쿠온은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는 듯이 몸을 움직여 보였다.
클레온도 그런 쿠온의 행동을 보고 안심했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어 보였다.
"베라스톨과 메제드는 위쪽에 남았어. 위험하니까 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클레온이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둘러보면, 바닥은 역시 모래로 가득했고, 주변에는 고철 더미나 무너진 건물의 잔해들이 한가득하였다.
"무덤 안에 어째서 이런 것들이 있는 거지…."
특히나, 고철들에서 느껴지는 좋지 않은 감각에 얼굴을 찌푸리며 그것에 손을 대려 한 순간
"크, 클레온! 안 돼!"
쿠온이 목소리를 높여, 클레온의 그런 행동을 저지했다.
클레온도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손을 멈추며 그녀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쿠온, 이게 뭔지 아는 거야?"
"응... 아마, 클레온도 알고 있는 물건이야."
그런 쿠온의 말에 클레온은 그 고철의 표면을 살피다가, 퍼뜩 그 정체를 깨닫고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소울 이터 메탈...!"
"응…. 역시, 그렇구나…."
칠흑의 표면과 그 주변의 공기를 얼어붙게 할 정도로 지독한 한기.
그리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속을 술렁이게 하는 알 수 없는 사기(??).
이전, 아카데미에서 본 적이 있는 마수 훔바바의 원형이 되는 갑주 `엘키두`의 제작에 사용된 것과 같은 재료였다.
만드는 데에, 인간의 목숨이 필요하고, 그렇게 제작된 특수 합금은 영혼을 흡수하여 자신을 강화하거나, 영혼 그 자체를 가두는 성질을 가지는 사악한 금속이다.
제조하는 방법은 소실되었지만, 그 흉악한 만큼은 엘키두를 직접 상대한 클레온이라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만질 뻔했네... 고마워, 쿠온. 하지만, 어떻게 안거야?"
"사실….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꿈을 꾸었어…. 거기서, 누군가의 기억을 대신 보았는데. 그 안에 소울 이터 메탈이나, 연구시설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서..."
마력은 사용할 수 없지만, 그녀의 성직자로서의 기질이, 이 무덤에 남아있는 영혼의 흔적을 읽어낸 것일까.
성녀의 자격을 가질 정도로 높은 신성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쿠온이었기에 가능한 계통의 일이었지만, 덕분에 클레온도 무사할 수 있었다.
"꿈의 주인이 누군지는 알 수 없던 건가?"
"으응, 아마 이 무덤의 주인인 `태양왕`이라고 생각해. 왕님인 것은 확실했고, `재앙`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 아마 틀림없어. 생전에 재앙에 대항할 수 있는 연구시설을 자신의 무덤으로 옮겼다는 것 같아."
클레온은 쿠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소울 이터 메탈의 고철들을 혐오스럽게 바라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역시 인간이 입을 수 있는 갑주의 부분부분 같은 형태를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그 연과의 성과물... 혹은 실패작인 폐기물인 건가."
다행인 것은, 이곳에서는 더 이상 영혼의 흔적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이네. 그냥 잔해들이 쌓여 있는 흔적 같은 곳이 아니라. 폐기물을 모아둔 곳이라면 분명 나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거야."
클레온의 말에 `그렇구나!`하고 쿠온이 고개를 끄덕이고 주변을 둘러보면,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지만, 한쪽 벽의 중간 부분에 거대한 입구와도 같은 것이 보였다.
"아마. 저기에서 아래로 밀어 넣는 방식으로 이 고철들을 폐기하고 있던 것 같네. 위쪽 천장이 무너지면서 우리가 아래로 떨어진 거고."
"우와 꽤 높네... 7m... 아니 9m 정도는 되려나…."
쿠온의 계측에 클레온도 고개를 끄덕인다.
도움닫기를 할 수 있는 거리를 재고, 목표로 하는 입구 부분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클레온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점프해서 올라갈 수 있을만한 거리가 아닌데."
"...그럼, 어떻게 올라가야 해? 로프도 없는데…."
그렇게 질문해 온 쿠온을 잠시 바라보다가, 클레온은 벽으로 가까이 가서 갈라테아와 칼리번을 뽑아 든다.
그리고는, 두 검을 역수로 쥐고 그대로 벽을 향해 찔러 넣는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철판으로 만들어진 벽이 꿰뚫리며 두 자루의 검이 문제없이 박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좋아. 이거라면…."
"무언가, 방법이 있는 거야?"
클레온은 쿠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녀에게 등을 보인 채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 ...?"
그런 그의 행동에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는 쿠온이었지만, 이내 클레온이 말했다.
"업혀. 쿠온. 벽을 기어 올라갈 거니까."
"...응?"
잘못 들었나? 같은 생각을 하며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되묻지만, 클레온은 이어서 이야기했다.
"암벽타기의 요령으로 갈라테아와 칼리번을 번갈아 박으면 어떻게든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
"무, 무리야 클레온! 혼자서라면 괜찮겠지만…. 나, 나를 업고서…."
쿠온 본인도, 자신의 컴플렉스인 몸무게에 대한 자각은 있었는지, 얼핏 무모한 이야기를 하는 클레온을 말리려고 했다.
"뭐야, 부끄러워하고 있는 거야? 확실히, 마지막으로 업혔을 때는 좀 더 키가 작았으니까…."
"그, 그런 게 아니라…."
클레온의 말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쿠온은 무언가 다른 방법이 없는지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지만, 이내 고개를 푹 숙이는 것이었다.
"미안... 내가 좀더 단련을 해뒀더라면."
"그런 말 하지 마. 쿠온은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몸을 쓰는 건 나에게 맡겨."
그런 클레온의 상냥함에, 조금은 어리광을 부려도 되는지 고민하던 쿠온은 조용히 클레온의 등으로 다가가 몸을 얹어서 그의 등에 업히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클레온의 등에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이 꾸욱 들러붙었다.
마음속으로 이전 에스카에게 배웠던 유일하게 아는 찬송가를 불러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클레온은 몸을 일으킨다.
다행히, 그렇게까지 무겁지는 않게 느껴졌다.
"벽을 타기 시작하면, 내가 손으로 받쳐주지 못하니까 팔에 단단히 힘을 줘야 해, 알았지?"
"그, 그러다가 클레온의 목을 조르기라도 하면..."
"걱정하지 말고."
그렇게 말하며 쿠온을 안심시키는 클레온은, 크게 심호흡을 한 채, 벽에 한쪽 발을 얹으며 갈라테아를 박아 넣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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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스톨은 `팟`하고 눈을 뜨면서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그 안개 괴물에게서 해방된 후, 클레온이 자신을 놓음과 동시에 정신을 잃었던 듯했다.
`이런 추태를... 그 녀석과 쿠온은...`
베라스톨이 주변을 둘러보지만, 마지막 기억대로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하로 떨어진 건가? 그건 그것대로, 쿠온을 매장할 수 있어서 상관없지만 문제는 클레온인가.`
에스카 톨로지의 역린인 그녀의 가족 `클레온`과 `레시아` 중에서도 한쪽이라도 죽는 날에는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베라스톨로서는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쿠온은 둘째치고라도 클레온에 관해서는 설령 죽었다 하더라도 시체 정도는 찾아서 돌아가야 했다.
그래야
"오, 일어났는가. 성전사."
그 때, 자신을 부르는 듯한 목소리를 들어 베라스톨이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는 갈색의 건강한 피부와 남색의 머리를 가진 소녀 나이는 17 정도로 쿠온과 비슷해 보이는 여자아이가 손에 지팡이를 든 채 서 있었다.
베라스톨은, 단번에 그녀가 `메제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녀의 너무나도 노출도가 높은 의복이었다.
검은색의 천으로 보이는 재질로 된 옷이 그녀의 국부와 가슴의 꼭지 부분만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적당하게 살집이 잡혀 있는 몸과, 거대한 가슴 그리고 엉덩이에 파고든 천 때문에 더욱 그 부위가 강조되어 보인다.
아까까지 몸 전체에 걸치고 있던 흰색의 로브는 후드를 벗어 망토와 같이 두르고 있었지만.
정면에서 본다면, 치녀나 다름없었다.
"뭐,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나를..."
"그 정신 나간 복장은 뭐지..."
"저, 정신 나간 복장이라니!? 엄연히 메자이의 전투복이야!"
다른 지역의 문화를 존중하라는 것이 교단의 가르침이긴 하지만, 그것에도 정도가 있다고 생각하며 머리가 아파진 베라스톨은 미간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봐도 방어력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의장용의 갑옷은 있지만, 모래가 불어치는 곳에서 싸울 때는 그런 갑옷은 오히려 방해되니까. 지팡이와 최소한의 방어구로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이다. 남성은 하의 속옷 한 장을 입고 싸우는 것이지."
"메자이는 경비대가 아니라 노출광의 집단이었던 건가..."
베라스톨은 어이가 없어서 그녀의 말에 그렇게 답한 뒤, 몸을 일으킨다.
"겨, 경비대도 노출 집단도 아니고, `수호자`야..."
"무슨 바람이 불어서 흰색 누더기를 벗은 거지?"
베라스톨의 질문에 메제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팡이로 땅을 찍은 뒤 대답했다.
"아까까지의 나는 `안내인`으로서의 메자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수호자`로서의 메자이로 너희들의 곁에 서기 위해서이다."
"... 마음가짐을 바꾸어서 복장도 바꾸었단 건가."
"뭐, 그런 느낌이지."
"...좋겠군. 옷을 갈아입으면 그런 식으로 자신을 바꿀 수 있다니. 단순함이 부러울 지경이야."
베라스톨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메제드는 그런 그녀의 말을 듣고 눈을 두세 번 깜빡인다.
"그건…. 칭찬하는 건가?"
"글쎄.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지하로 떨어진 클레온과 쿠온의 뒤를 쫓아 구멍을 뛰어내릴까?"
마력을 쓸 수 없기에 전이 능력조차 봉인된 베라스톨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메제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너무 막무가내이다. 아마 두 사람이 떨어진 것은, 이 무덤에 있는 `폐기처리실`이다. 그걸 생각하면, 거기서 탈출했을 때 합류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게 좋겠지."
"그게 어디지?"
베라스톨이 그렇게 질문하자, 메제드는 바로 발아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 무덤 안에 있는 연구시설이다. `기계 수호병`들을 연구하던"
기계 수호병... 금지된 기술을 연구하던 곳이다.
그런 곳에 발을 디딜 생각을 하니 조금 속이 뒤집히는 베라스톨이지만 침착을 연기하며 이어서 이야기한다.
"...갈라틴도 거기에 있나?"
"아니. 갈라틴은 왕의 무덤 최심부 왕의 관과 제단에 모셔져 있다. 어디까지나 두 사람을 마중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좋아."
소녀의 말에, 베라스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먼저 떠오른 것은, 클레온의 얼굴이었다.
그 녀석, 자신을 구하고 나서도 마치 진짜 동료인 것처럼 걱정해왔다.
자신이 그를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 이유가 뭐지. 무엇이 목적이지. 클레온…."
베라스톨은 자신에게만 들릴만한 크기의 목소리로 그렇게 이야기한 뒤, 메제드를 바라보았다.
"그럼 안내해라. 조금이라도 빨리 임무를 완수해서 이런 저주받은 곳은 나가고 싶으니까."
"으, 우와... 일단은 우리 선조들의 유산이고, 무덤인데…. 역시 이방인의 성직자는 무섭네…."
또다시 조용히 이야기하는 메제드.
베라스톨은 더 이상 그녀에게 그 조용한 목소리의 내용을 되묻지 않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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