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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217화 (217/506)

〈 217화 〉 전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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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 보이던 벽을 겨우겨우 다 올라온 뒤, 클레온은 조심스럽게 쿠온을 내려주면서 이마에 난 땀을 닦았다.

사람 한 명을 업고서 벽을 등반한다는 것은 생각보다도 힘든 일이었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쿠온도 땅에 발을 디딜 때는 자기 몸무게를 팔로 지탱했던 탓에 팔이 뻐근하였지만, 중간에 떨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겠지.

"클레온, 괜찮아?"

"응. 문제없어. 그보다, 내가 이런 일에 이 둘을 사용했단 건 비밀이야."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며 암벽등반에 사용된 두 검을 바라보았다.

성검과 마검이었기에 날이 상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꽤 거칠게 사용된 것이다.

마력이 멈춰있는 역마력장의 영항 아래이기 때문에 자아가 활성화되지 않은 채라 다행이었다.

깨어 있었다면, 불평이나 불만이 조금 나오더라도 할 말이 없었을 거다.

물론, 마력이 멀쩡했다면 비행 주문을 사용하여 빠져나올 수 있었겠지만.

"아하하... 응, 알았어."

클레온의 부탁에 쿠온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을 허리로 되돌리며, 클레온은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통로를 살펴보았다.

아래쪽에 버려진 고철­ 오토마타의 폐기물들의 크기나 양을 생각하면, 통로도 그만큼 거대해야 하기는 했지만.

사람 수십 명은 족히 동시에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거대한 크기에, 클레온은 조금 압도되어 있었다.

이전, 아카데미의 지하에서 보았던 지하 유적과는 그 규모가 비교되지 않을 정도였다.

"통로의 길이도 꽤 되는 것 같네…. 체력을 유지하면서 걸어갈 수 있도록 조심하자."

"응...!"

클레온의 말에 쿠온도 고개를 끄덕이며 옷매무새를 고친 뒤, 그에게 따라붙었다.

통로 내에는 마력 등조차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안에 촛불이 들어있는 랜턴 정도였다.

이것마저도 다 되고 나면, 어스름한 어둠을, 눈을 의지해서 어떻게든 나아가야만 했다.

넓은 공간에서는 바람이 불지 않더라도, 목소리나 발소리가 메아리쳐서 `웅웅`하고 울린다.

성직자로서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유령이나 어둠에 관해서, 쿠온은 일반적인 여자아이와 그리 다를 바 없는 감정을 품고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그런 것에 대한 공포는 인간 누구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어둠 너머에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러트리면서 클레온의 곁으로 나아갔다.

클레온은 그런 쿠온의 불안을 느낀 것인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손을 건 내고, 쿠온은 그 손길을 살며시 붙잡았다.

조금이지만, 그의 손길의 따스함을 느낀다면 이 불안과 공포도 사그라드는 듯했다.

클레온이 조심스럽게 랜턴을 이용하여 앞길을 비추고 걸어가던 도중, 쿠온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렇게 둘이서만 행동하는 거, 어쩐지 오랜만이네."

"아­ 그런가? 확실히, 최근에는 나도 단독행동을 하거나 일행이 아닌 사람이랑 같이 다니는 일이 많아졌으니까. 라일라도 그렇고, 쿠온이랑도 단둘이 모험을 다니는 건 꽤 오랜만일지도 모르겠네."

"뭐어... 둘이서만 다니는 일 자체가 그렇게 없긴 했지만."

쿠온의 말에 클레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라일라가 일행에 들어오기 전, 알베인과 클레온, 쿠온의 세 사람의 파티였을 때도 쿠온과 단둘이 지내거나 의뢰를 나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것은, 알베인과 클레온의 사이가 벌어지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쿠온은 기본적으로 알베인에게 딱 달라 붙어 지냈었고, 그가 혹시라도 실수하거나, 무리하면 그 커버를 하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당시의 파티는 세 사람이 함께…. 라기 보다는 쿠온과 알베인이 합쳐서 한 명 몫을 하고, 클레온이 한 사람 몫을 하는 형태에 가까웠다.

그런 파티에 전환기가 찾아왔다면, 역시 성검에 대한 계시를 받은 쿠온이 그 용사로서 알베인이 선택되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겠지.

충분한 준비를 하고, 며칠이나 걸려서 유적에 도착하여, 그 안을 탐사했다.

몇 개나 되는 시련을 뛰어넘어, 호수의 유적이라 불리는 던전의 가장 깊은 곳에서.

검에 박혀 있는 채로 방치된 `칼리번`을 발견했다.

그리고, 소년은 용사가 되었다.

"...만약. 내가... 성검의 계시를 받지 않았다면. 알베인이 그렇게 뒤틀리는 일은 없었을까…? 클레온이 상처 입는 일도…."

"...그럴지도. 그 녀석, 결국 꽤 성검의 악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되어버린 감이 없지 않았으니까…. 본래의 성격이 조금 자기 과시적인 면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클레온은 알베인에 대해 떠올리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대한 복수는 마쳤다.

하지만, 사이가 틀어지고, 원한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즐거웠던 경험, 나날을 완전히 없던 것으로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알베인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알베인을 제일 우선으로 두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었어. 세계에 관한 것은, 그다음이었으려나. ...그래도, 계시를 받아서 알베인이 성검의 용사가 된다면…. 그것으로 세계에 평화가 찾아온다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것에 대해서는 클레온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처음을 받았을 때 그녀의 기억을 보았으니까.

...보고 있어서, 그렇게 기분이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알베인을 지키고, 그의 곁에서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쿠온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쿠온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어린 시절부터 주입해 온 것이다.

쿠온에게 있어서, 그것이 당연하다고.

쿠온과 그녀의 어머니는 알베인에게 남은 둘뿐인 가족이었으니까.

물론 거기에는 쿠온의 어머니가, 그녀의 언니­ 즉, 알베인의 어머니에게 지나치게 헌신적이었던 면이 있던 점도 부정할 수 없었다.

가족애가 투철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녀의 그것은 조금 도를 넘어 있었다.

결국 그런 그녀의 마음은 알베인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 듯했다.

알베인에게 있어서 쿠온은 자신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인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여자아이라고 무의식적으로나마 각인되었다.

그것이 그의 성격을 얼마나 어둡게 비틀었는지는, 굳이 말을 다 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실... 조금 무서워. 성검은 분명, 평화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어야 하는데. 또다시 알베인과 같은 용사가 나타날까 봐..."

쿠온은 그렇게 말하면서 떨림을 억누르기 위해, 자기 손을 쥐었다.

성검의 탐색은 성녀의 의무이고, 교단의 교리에 따른 평화의 도래를 위해서 성검과 그에 선택받은 용사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더군다나, 지금 클레온과 일행들을 방해하는 이들이 `악마`라는 것을 생각하면, 후에 힘을 빌려줄지도 모르는 성검과 용사의 힘은 중요했다.

하지만, 한 번 일어났던 일이 또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에스카는 이번에 발견한 성검을, 베라스톨에게 넘긴다고 하였지만... 베라스톨의 비정상적인 감정은 그리 관계가 깊지 않은 쿠온에게도 느껴지고 있었다.

때때로 자신에게 보이는 차가운 눈빛도.

하지만, 클레온에게 있어서 소중한 사람인 에스카의 말을 믿고, 이번 성검 탐색에 동행하게 된 것이다.

"...거절해도 괜찮았어. 쿠온."

"으응, 그럴 수는 없어. ...에스카님은 클레온을 위해서라고 이야기하셨으니까."

클레온은 쿠온의 그 말을 듣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클레온의 손길에 쿠온 본인도 조금 놀란 표정이 되었지만, 클레온은 상관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거야. 쿠온. ...너는 좀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야 해. 라일라처럼."

"... 하지만­"

쿠온이 머뭇거리는 표정으로 입을 열면, 클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네가 나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몇 번이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 왔으니까."

엘레시아에서, 아카데미에서, 그리고, 왕도에서도.

쿠온은 몇 번이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속죄하고, 자신의 목숨을 클레온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건... 네가 알베인에게 하던 것과 같아. 대상이 그 녀석에서 나로 바뀌었을 뿐."

"...그건..."

클레온의 말에 쿠온은 조금 충격을 받은 듯이 입을 다물었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모든 것을 바친다. 라는 것 자체는 분명 삶의 방식일 수 있어. 그게 나쁘단 건 아니야…. 하지만 쿠온, 너는 어린 시절부터 그 방법밖에 알지 못하고 살아왔어."

여러 가지 길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길을 고른 것이 아니다.

쿠온은, 처음부터 그 방법밖에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게밖에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나이 17, 17년이라는 세월은 사람의 수명을 생각했을 때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의 사고를 고정시켜버릴 수 있을 정도만큼은,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좀 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져도 돼.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나도 도와줄 테니까."

"클레온..."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게.

사욕을 버리고, 사리를 금하고, 공익을 꾀하고, 공리를 추구하는 것이 성직자의 삶이라고 배워왔다.

세상을 위한 도구이자 신의 사도로서,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도록.

클레온의 말은, 그 가르침에 정반대되는 말이었지만, 그가 하는 말이, 그 가르침을 부정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응! 나, 노력해 볼게."

쿠온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인 뒤 손에 넣은 힘을 강하게 했다.

아까와 같은 불안과 공포에 의한 떨림은 없었다.

두근 거리는 가슴 안에서, 무언가 지금까지는 없던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샘솟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주변을 감싼 차가운 공기도,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공간도, 자신을 덮은 이 어둠도 전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할래? 쿠온. 이대로 두 사람을 찾고 성검은 놔두고 돌아가는 것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해. 그렇게 하고 싶다면 말야."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쿠온은 고개를 저었다.

"으응. 역시, 성검은 세계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나 자신의 불안에 삼켜지지 않고, 정말로 세계를 생각한다면."

"...그런가. 알았어. 그러면 빨리 두 사람과 합류하자. 랜턴이 다 되면, 앞이 보이지 않게 될 테니까."

"응!"

클레온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인 쿠온은 커다랗게 한 발짝,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녀의 발걸음은, 아까와 같이 무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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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그렇게 걷기를 10분 정도.

두 사람의 앞에는 거대한 벽과 같은 것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어서, 그 진로를 막고 있었다.

"...통로는 여기까지인가?"

클레온이 조심스럽게 랜턴을 벽에 가까이 가서 살피면, 다행히 폐기장의 고철들과 다르게 이것은 평범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문이 아닐까?"

쿠온의 말에 클레온은 조심스럽게 벽을 타고 움직이며, 문을 열 수 있을 만한 장치가 있는지를 살피기 시작했다.

확실히, 통로의 가운데쯤 되는 부분에 아주 미세한 `틈`과 같은 것이 보였다.

문이 열린다면 그 틈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열리는 형태이겠지.

"...없네, 그럴듯한 장치."

쿠온의 말에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통로의 양옆, 한쪽에서 반대편 끝까지 살펴보았지만, 문을 여는 데 사용될만한 장치나 도구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던전이라면 보통, 이런 곳은 숨겨진 장치가 있어서 그것으로 문을 열어야 하지만.

이곳은 던전이 아니라 무덤, 그리고 연구 시설이었고 폐기장으로 통하는 문을 폐기장 쪽에서 열 수 있게 하는 것은 확실히 이상했다.

"정규루트가 아닌 방식으로 들어온 벌이라는 건가…."

클레온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다시 한번 문의 정중앙, 틈의 앞에 섰다.

그 틈은 거의 완벽하게 틀어막혀 있어서 개미 한 마리조차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단단히 막혀 있는 것이었다.

"...이거, 부수면 `메제드`가 화내려나?"

"그, 글쎄..."

클레온의 말에 쿠온도 자신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면, 클레온은 갈라테아를 뽑아 든다.

그리고, 쿠온을 향해 위험하니까 조금 뒤로 물러서라는 듯이 손짓한다.

쿠온이 후다닥, 조금 거리를 벌리고 멀어지면 전신의 호흡을 집중하여, 검을 쥔 팔에 힘을 넣는다.

마력을 두르지 않은 상태의 검은, 평소보다도 훨씬 그 절삭력이 떨어지겠지만….

검성 탈체크는, 검으로 산을 베었다.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몸으로. 그 낡은 붉은 검을 이용하여.

후우... 하고, 클레온의 입에서 호흡이 흘러나온 뒤, 정적이 흘렀다.

머릿속에 탈체크의 목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바위를 베었을 때, 그는 뭐라고 했었지.

[어떻게 바위를 베냐고? 거야…. 그거다. 팔에 힘 빡 주고, 다리에 힘 딱 주고…. 단숨에…. 저걸 베지 못하면 네 검이 부러진다고 생각하고 하면 돼.]

`도움이 안 되는 군.`

그렇게 생각한 뒤, 검은 섬광이 사선으로 일어나, 강철의 벽을 달렸다.

구부러진 부분 없는 직선은, 한 번의 휘두름으로 두꺼운 구조물을 마치 달군 나이프로 버터를 잘라낼 때와 같이 절단했다.

그리고, 한 번 더.

이번에는 그 직선에 교차하듯이 반대 방향으로.

키잉­! 하는 소리와 함께, 울렸던 파공음이 메아리치며 사라지고, 갈라테아는 그대로 호흡을 재개한 클레온의 허리춤으로 되돌아왔다.

문에 만들어진 거대한 X자의 절단면.

클레온이 천천히 다가가서 만들어진 절단면의 아랫부분을 밀면.

끼이익­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잘린 부분이 쓰러지며, 지면의 위에 삼각형의 모양으로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좋아. 어떻게든 됐나."

"음... `어떻게든 됐나` 수준이 아닌 것 같지만…. 응."

해냈다는 듯이 쿠온을 돌아보며 말하는 클레온을 보며, 그녀는 마른 웃음을 보였다.

무덤지기 같은 사람이 있어서, 이걸 보게 된다면 비명을 지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안으로 들어가자. 여기보다는 쓸만한 정보가 있겠지."

그렇게 말하며 움직이는 클레온과 그 뒤를 따라간 쿠온이 두꺼운 문을 통과해서 본 것은 거대한 창고와도 같은 공간이었다.

아니, 창고라고 하는 것은 조금 어폐가 있겠지.

두 사람의 양옆에 동상과도 같이 세워진 것은, 검은 강철의 몸체를 가진 `오토마타`들이었다.

인간의 형태를 한 그것들은 클레온의 키보다도 조금 높은 신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무장으로서 한 손에는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시미터 형태의 검과 마찬가지로 검은 색조의 방패를 들고 있었다.

하나같이, 아카데미에서 상대했던 오토마타와는 차원이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당연한가. 그런 레플리카들 보다도 훨씬 엔키두에 가까운 녀석들이니.`

"...이거, 혹시 안에 영혼이 들어 있는 걸까?"

쿠온이 그렇게 말하면 클레온은 베라스톨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금기의 기술로, 갑주의 안에 영혼을 담은 병기를 만들었다. 라고 했었나.

"...그럴지도."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것 같네..."

쿠온의 말대로, 이들의 안에 자아가 깃든 영혼이 들어있다면, 두 사람의 등장에 무언가 반응을 보여도 될 법한데, 이들은 그저 가만히 멈추어 서서, 마치 진열된 상품과도 같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오토마타의 가까이 가서 무언가에 집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영혼이 안에 머무르고 있던 흔적은 있어…. 하지만, 정말로 흔적 밖에. 그대로 안에서 사라진 것 같아."

"...어쩌면, 영혼의 힘에도 한계가 있어서, 그게 고갈된 것일지도 모르겠군."

영혼은 마모된다. 육체를 떠나있던, 떠나지 않던.

몸이 살아있던, 살아있지 않던.

불사에 가까운 생명력을 가진 `언데드`들이 인간성을 잃는 것도 그런 연유이고, 훔바바를 불러냈던 검은 교전 역시 마모된 영혼이 절망에 물들어 이성을 잃은 것이 그 폭주의 원인이었다.

"...그럼­ 어쩌면…. 이곳은, 이 사람들의 무덤. 이었을지도 모르겠네."

쿠온의 말에, 클레온은 잠시 그 오토마타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금기된 기술로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왕국과 대륙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것이다.

연구 시설이라고는 하지만, 본래 이 건조물의 목적이 무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자신이 모시던 왕과 함께 묻힌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이 쉴 수 있도록 놔두자. 그 외에 또 눈에 띄는 건..."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돌아보면, 이 방의 중심이 되는 위치.

거대한 기계장치와 그 위에 얹힌 `거대한 구`가 보였다.

"저건­ 머큐리의 연구소에 있던."

그 구조물의 형태는 세세한 부위는 조금 달랐지만, 머큐리가 관리하고 있던 연구소의 중심부­ 에메랄드 태블릿이 봉인된 동력 발생 장치와 흡사했다.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그 기계장치에 다가가면, 머큐리가 조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의 버튼으로 이루어진 자판과 유리로 된 스크린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버튼에 쓰인 문자는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쿠온도 클레온도 읽을 수 없는 것이었다.

"라일라가 있었다면…."

"응..."

클레온의 말에 쿠온도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리려던 찰나였다.

[... ...]

"...클레온, 방금 무언가 말했어?"

쿠온은 갑작스럽게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 듯한 목소리에 의문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아니?"

하지만, 클레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그녀의 물음에 머리를 저을 뿐이었다.

[... ...]

"...무언가, 있어... 이 기계를 움직이는 법을 알려주려고 하는 것 같아."

쿠온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자판의 앞으로 나아가, 천천히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클레온은 그런 쿠온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괜찮은거야? 쿠온."

"응. 이 목소리... 적의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아. 우리를 도와주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있어."

쿠온의 영 감응 능력이 클레온보다 높기에 그녀에게만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겠지.

클레온은 그녀를, 그리고 그녀에게 속삭이고 있는 `무언가`를 믿기로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뒤로 물러섰다.

타닥, 탁... 타닥.

어설프지만, 정확하게 버튼을 입력하면, 기계가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한다.

동력 발생 장치의 터빈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고, 그 위에 얹혀 있던 거대한 구는 중력을 무시하고 조금 위로 떠 올랐다.

파직, 하는 스파크 튀기는 소리가 들리며 하나둘, 이 방에 있던 조명에 불빛이 들어온다.

마력과는 다른 에너지로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떠오른 구는 에메랄드 태블릿을 봉인하고 있던 구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전개되며 그 안에 있는 것을 두 사람에게 보여준다.

"... 이건­"

클레온은 그 안에 있는 물건을 보고 숨을 삼켰다.

그곳에 있는 것은 `오토마타`였다.

하지만, 주변에 멈춰있는 것과는 그 형태가 조금 달랐다.

우선 검을 쥐고 있지 않은 것.

그리고, 전신의 도색이 검은색이 아닌, 흰색을 바탕으로 되어 있는 것.

그리고­ 머리 부분에 위치한 위로 솟은 길다란 귀.

조금 주둥아리가 튀어나온 형태의 얼굴.

눈에 띄는 역관절.

"...늑대­ 아니, 자칼인가?"

[그렇다. 이방의 전사여. 그리고, 신의 가호를 받은 아이여.]

그 오토마타의 붉은 눈에, 빛이 깃들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닌 듯 그대로 고정된 형태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나의 이름은 `아누비스`. 태양왕을 수호하던 메자이이자, 신염의 용사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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