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218화 (218/506)

〈 218화 〉 아누비스

* * *

000

자신을 `아누비스`라고 소개한 그 흰색 갑주의 오토마타는, 기계의 위에 있는 구 안에서 중력을 무시한 채 눈으로 추정되는 부분만을 반짝이며 클레온과 쿠온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태양왕을 섬기던 마지막 메자이.

그리고, 신염의 용사­ 갈라틴을 손에 쥐는 자로서 이형의 괴물들과 싸웠던 전사이다.

하지만 기분 탓일까, 그 갑주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변조는 되어있을지언정 `여성`의 것에 가까웠다.

아누비스의 신체인 오토마타 역시 부분부분 굴곡이 들어가 있는 디자인이 되어있어서, 남성적이라기보다는 여성에 가까운 형태를 한 것도 특징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흉부나 둔부의 각짐은 도저히 성적 매력을 의도로 디자인되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이방인의 전사. 그리고, 성직자. 너희들이 이 유적에 들어온 뒤, 폐하­ `태양왕`의 영혼이 날뛰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누비스의 말에 쿠온과 클레온은 유적의 입구에서 자신들을 덮쳐왔던 그 안개와도 같은 것을 떠올렸다.

메제드의 지팡이가 없었다면 유효한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베라스톨도 위험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칭은 아니었던 거군…. 그 안개. 정말로 `태양왕`이었나."

"그래. 그분은 틀림없이 태양왕 본인이시다…. 왕국이 멸망할 때…. 나와 함께 이 무덤에 봉인된."

아누비스의 말에 쿠온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클레온은 아누비스의 말을 듣고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봉인된... 이라고? 매장된 이 아닌?"

클레온의 질문에 아누비스는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태양왕께선 돌아가시지 않으셨다. 나와 마찬가지로, 기계에 몸을 옮기셨다."

"... 아니 잠깐, 아까 우리가 만난 것은 유령 그 자체였다. 실체가 없고 안개와 같이 움직이며 자유자재로 형태를 바꿨어. 그게 어떻게 기계라는 거지?"

아누비스의 말에 클레온이 고개를 저으면서 항의하면, 아누비스는 쿠온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말하는 대로 입력해라. `스카라베`라고."

"아, 네...!"

아누비스의 명령대로, 쿠온은 자판 위에 올려두었던 손가락을 움직였다.

잠시 뒤, 입력이 끝나면 그들의 앞에 반투명한 환영이 출력된다.

이것 역시 머큐리의 연구소에서 볼 수 있던, 기록을 투영하는 환영 기술의 일종이었다.

하지만 마력이 없는 곳에서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찌 됐든, 환영 속에서 보이는 것은 사람의 손톱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풍뎅이` 형태의 기계장치였다.

하나하나의 크기는 그렇게 작았지만, 무리를 지어서 움직이면 모래바람이나 안개와도 같은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스카라베는 지금 나의 육체로서 기능하고 있는 갑주­ `샤브티`와 같은 시기에 개발된 기계 병기이다. 샤브티는, 인간의 영혼을 연료로 움직이는데…. 태양왕의 갑주가 조종하는 `스카라베`는 유기물을 분해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전사의 갑주를 걸친 우리 메자이가 재액의 이형(??)들을 틀어막는 동안 스카라베가 그들을 분해하여 처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지."

`그것이 벌써, 천년도 더 전의 일인가.`라고, 아누비스는 덧붙였다.

"그렇다면... 태양왕은 이 조그마한 기계로 정신을­ 영혼을 옮겼다는 건가? 그렇게나 많은 수의 기계에?"

"아니. 정확하게는, 그 스카라베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샤브티`다. 원래대로라면, 그분께서 지금 내가 있는 이 봉인의 구 안으로 들어와 안식을 취하셨어야 했는데…."

아누비스는 어딘가, 회한이 섞인 듯한 말투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클레온과 쿠온이 눈을 마주치며, 이 무덤의 주인들에게도 여러 가지 사연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우선은 그것보다도 다른 두 사람과 합류하는 것이 먼저였다.

"우리에게 당신을 깨우라고 한 것에는 무언가 목적이 있겠지. 하지만, 우리도 목적이 있다. 우선, 같이 들어온 두 사람과 합류하는 것."

"그것에 대해선 문제없다. 이쪽에서 조명을 통제하여 그들을 이곳으로 유도하고 있으니까."

쿠온이 안심했다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 클레온은 이어서 이야기하려 했다.

"그리고­"

"성검 갈라틴이겠지. 그대들의 목적은."

아누비스는 처음부터 예상하였다는 듯이 클레온보다도 먼저 이야기했다.

클레온도 그 지적에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걸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빠른걸."

"하지만…. 원래의 사용자가 아직 남아있다고 하면... 성검은…."

아누비스의 이해에 고개를 끄덕인 클레온과 다르게, 쿠온은 아누비스라는 용사가 아직 현존하고 있는 것을 걱정했다.

성검과 용사는 영혼으로 이어져 있어서, 용사가 타락하여 성검 사용자의 자격을 잃거나 하지 않는 이상 그 연결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아루루의 아론다이트처럼, 가문의 혈통 자체와 계약이 묶여 있어서, 당대의 사용자가 생전에 다음 사용자를 지정하지 않는 이상 용사는 한 번 용사가 된 이상 영원히 용사이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론다이트가 특이한 것으로, 성검측에서 용사의 교체를 거부한다면 새로운 용사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성검의 힘을 끌어내는 것은 물론, 성검을 잡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갈라틴과 이야기해 두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그녀가 주인으로 인정할만한 이가 나타난다면, 그 힘을 빌려주어, 세상에 빛을 가져오도록 할 것이다."

아누비스는 쿠온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것보다도, 지금 더 걱정해야 하는 것은 그대이다. 이방인의 성직자여."

"...저, 인가요?"

아누비스의 시선은 쿠온에게 고정된 채였다.

"그래. 그대의 영혼에서는, `태양왕`과 비슷한 파장이 느껴진다. 뛰어난 영 감응 능력…. 쉽게 볼 수 있는 재능이 아니야."

쿠온이 가진 감응 능력은 그녀의 고향에서 무녀들이 가지는 특수한 능력이었다.

혈통으로서의 능력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그녀가 걱정을 받을 일은 없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이어서 아누비스가 말한 것은, 클레온의 얼굴을 험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 재능과 육체…. 태양왕은 어쩌면 그대의 육체를 노릴지도 모른다."

"그건 무슨 소리지?"

클레온의 목소리가 험악하여지면, 쿠온은 클레온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태양왕의 현재의 육체­ 스카라베를 조종하는 갑주로는 이 무덤을 나갈 수 없다. 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의 몸을 빼앗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그분은, 오랜 세월을 이곳에 갇혀 지내며 서서히 제정신을 잃고 광기에 사로잡히셨다. 스스로를 정당한 이 땅의 지배자라고 주장하며, 태양의 왕국을 다시 한번 지상에 건설하겠다는 야망에 사로잡히셨지."

불사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탓에 일어난, 영혼의 열화.

한 시대를 지배한 왕조차도, 그것을 피해 갈 수 없었다고 아누비스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쿠온의 육체이지? 그저 살아있는 인간의 몸을 원한다면 누구라도 상관없을 탠데."

"그것은, 영혼의 파장이 맞는 육체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태양왕께서는 마력을 가지지 않으셨지만 태어나셨을 때부터 강한 영혼 감응 능력을 갖추고 계셨다. 무한에 가까운 스카라베를 조종할 수 있는 것도, 그런 능력 덕분이다. 이 아이…. 이방의 성직자에게는 그분과 비슷한 수준의 잠재력이 깃들어 있어."

즉, 쿠온의 몸은 태양왕이 현대에 부활할 육체로 사용하기에는 최적의 그릇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거, 용납할 수 없어. 그 녀석을 모시는 당신에게는 미안하지만."

클레온이 쿠온을 지키듯 한 발짝 앞으로 나서서 이야기하면, 아누비스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다. 그런 계획이 `왕의 광기`일 뿐인 것은…. 그렇기에 나도 그대들에게 이것을 밝히는 것이다."

"목적이 뭐지?"

"그 분을... `태양왕`의 영혼을 해방시켜 주었으면 한다. 칼리번을 지키기 위해 현대에 남은 기계의 육체에서…. 영원히."

아누비스의 말에 두 사람은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자기 왕을 죽여달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그게, 너의 바람이로군."

"그래…. 왕의 곁을 지키지 못한 불충과 자신의 손으로 그 분께 선사해드리지 못하는 불의….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하다못해 그분께 안식을 가져다드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목소리는 기계음이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애와 후회로 가득 차 있었다.

서로 무언가를 생각하는지, 잠깐 공간에 침묵이 흘렀다.

그것을 깬 것은 의외로 쿠온의 쪽이었다.

"...알겠어요. 그 소원. 저희가 이루어드리겠습니다. 아누비스. 당신의 충의는 분명 태양왕을 구원할 것입니다."

그녀는 각오를 굳힌 듯한 결의에 찬 표정으로 자기 가슴에 손을 올리며 이야기했다.

사실, 성검만을 원한다고 한다면 그것을 회수하는 것으로 이곳에서의 임무는 종료될 것이었다.

태양왕이 쿠온의 육체를 원한다고 하더라도, 메제드와 합류하여 아까와 같이 그 안개­ 아니, 정확하게는 스카라베의 군체를 물러나게 하면 됐다.

그들에게는 `태양왕`을 굳이 쓰러트려야 할 만한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남아있는 자들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였다.

영원히 썩어가는 영혼을 간직한 채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된 태양왕.

그리고 그런 주군의 타락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아누비스.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이상­ 아니, 설령 멸망하더라도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 영원한 지옥을 끝맺을 수 있는 것은.

지금 이곳에 모인 클레온과 쿠온, 그리고 나머지 둘을 제외하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을 깨달았다면. 행동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죄악이라고 쿠온은 생각했다.

"아, 미, 미안. 클레온. 나도 모르게…."

다만 그 과정에서, 클레온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린 쿠온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클레온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아까도 말했잖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해지라고…. 평범하게 다른 사람을 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쿠온이 하고 싶은 거라면 나도 도와줄게."

"...응. 고마워, 클레온."

클레온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쿠온은, 다시 한번 아누비스를 돌아보았다.

"...고맙다. 그 마음의 진실함이 갈라틴의 불꽃을 다시 한 번 피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성검 갈라틴과 태양왕님의 본체는 같은 곳에 있는 것일까요?"

쿠온이 그렇게 질문하면, 아누비스는 다시 한번 환영의 지도를 두 사람의 앞에 보여주었다.

그것은 무덤 유적 내부의 설계도와 같았으며,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무덤의 가장 깊은 곳에 `갈라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양 옥좌의 대신전.

무덤 안에 있는 거대한 옥좌와 그 앞에 있는 제단.

옥좌에는 태양왕의 갑주가 앉아 있었으며, 갈라틴은 그런 옥좌를 지키듯이 제단 위에서 꺼지지 않는 태양과도 같은 불꽃을 품은 채 다음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스스로 부탁한 것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는 것은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폐하는 강하시다. 성검의 힘을 사용하시지 못하셨지만 수많은 `스카라베`는 재앙 그 자체야…. 그 분은 우리가 상대한 것과는 또 다른 `재앙`을 수족으로 삼아 싸우시는 분이시다.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이 안에서 그분을 상대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어."

아누비스의 말에 클레온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전의 싸움에서 눈에서 벼락과도 같은 광선을 발사하던 것을 떠올린다.

만약 그것이 그의 전력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무언가, 방법은 없는 건가?"

클레온은 최대한 위험 요소를 줄이기 위해 아누비스에게 물었다.

그의 모험가로서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상대의 패를 미리 알아두기 위해서였다.

"역시, 약점이 된다면 스카라베를 통제하고 있는 태양왕의 본체이겠지…. 어떻게 해서든 그분의 사각으로 파고들어 코어를 파괴할 수 있다면 스카라베는 움직임을 멈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두지는 않겠지? 늘 자신의 주변에 일정 이상의 스카라베를 두고 있을 거야."

클레온의 말에 아누비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것을 위해서라도 누군가가 갈라틴의 힘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갈라틴은... 어째서 `역마력장`의 영향 아래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거지?"

"이 묘지 전체에 펼쳐진 역마력장 자체가 `갈라틴`의 힘으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그것을 해제할 수 없어. 왕국을 수호하기 위해 맺은 맹약 때문이다."

즉 누군가가, 아누비스를 대신하여 갈라틴의 사용자가 되는 계약을 맺는다면.

그자의 의지로 역마력장을 해제하여 태양왕과의 싸움도 비교적 수월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은 베라스톨과 메제드와 합류해야겠는걸. 갈라틴을 회수하려고 할 때도 태양왕이 방해할테니... 메제드의 힘이 필요해."

"응…. 그렇네. 그럼, 여기서 기다리자. 두 사람에게도 사정을 설명하는 편이 좋을 테니까."

클레온의 말에 쿠온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린 탓인지 `후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쿠온을 격려하기 위해 클레온이 몸을 움직이려던 순간 아누비스가 입을 열었다.

"...잠깐. 너희들의 일행인 두 사람의 이동이 멈췄다."

"함정인가? 아니면, 또다시 태양왕이?"

"...아니, 이것은­"

아누비스는 말꼬리를 흐리며, 쿠온에게 다시 한번 자판의 조작을 지시하는 것이었다.

001

"하앗!"

기합이 울리면서,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주먹이 휘둘러졌다.

강철의 판금 건틀릿을 착용한 주먹이 무거운 소리를 내면서 후려친 것은 메제드와 베라스톨을 둘러싼 이형의 존재였다.

눈이 몸의 곳곳에 달린, 검은 진흙과도 같은 그것은 두 사람이 차례대로 켜지는 전등을 따라 걸어가던 도중, 갑자기 천장에서 나타나 두 사람을 습격해왔다.

그로테스크한 생김새와 둔해 보이는 찐득한 몸체와 다르게 녀석은 몸 이곳저곳을 변화시키며 두 사람을 공격해왔다.

더군다나, 때리고, 박살 내고, 자르더라도 흩어졌다가 다시 뭉치는 녀석의 몸은 무한히 재생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건 이 땅의 토착 생물 같은 것인가?"

"그, 그럴 리가 있나! 이게 바로, 과거에 선조들이 상대했던 `이형의 재앙`이다. 몇몇은 이렇게 유적이나 무덤으로 도망쳐서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다. 결국 이 안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만."

"...혐오스럽군."

베라스톨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건틀렛 달라붙은 녀석들을 완전히 떼어내기 위해 쾅! 하고 땅바닥을 내리쳤다.

그러면, 검은 괴물들은 그 충격으로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본체인 가장 커다란 덩어리에 흡수되듯이 빨려 들어갔다.

"상대법은?"

"으, 음... 가장 좋은 것은 불에 태우는 것이다."

전승에 의하면 신염의 성검과 함께 가장 많은 재앙을 태운 것은 태양왕이 가지고 있는 궁극의 병기인 `태양 첨탑의 빛`이라는 광선 병기였다.

태양의 빛을 모아 발사하여 상대방을 태워버리는 무지막지한 위력을 자랑하는 물건으로, 만약 이것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데에 사용되었다면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을 것이다.

"...등불이 밝혀져 있으니, 랜턴은 필요가 없겠지."

그 대답을 들은 베라스톨은 허리춤의 벨트에서 성전사들이 사용하는 성유를 자기 주먹과 방패에 뿌리더니….

곧바로 랜턴을 박살 낸다.

"앗, 잠깐!"

메제드가 말릴 사이도 없이, 그녀의 주먹과 방패에 성스러운 불꽃이 붙는 것이었다.

"그분의 이름하에…. 그대를 성스러운 화염으로 정화하노라."

베라스톨이 짧게 기도문을 외우며 불타는 주먹을 휘두르자, 이형의 괴물은 그 불꽃을 두려워하듯 몸을 재빠르게 웅크려서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주먹과 동시에 휘둘러진 불타는 방패는 피할 수 없었는지 그대로 방패에 얻어맞아, 뜨거운 철판에 짓눌리며 그 자리에서 불타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날카로운 이빨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이내, 녀석은 완전히 불타서 없어지며, 베라스톨은 방패를 회수하여 자기 주먹과 장비에 붙은 불을 꺼버렸다.

"무, 무서워... 설마 자기 장비에 불을 붙일 줄이야…. 아무리 갑옷을 입었다지만, 뜨겁지는 않나?"

"아픔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신경쓸 정도는 아니다."

중도의 M인 베라스톨에게 있어서 그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었다.

"그, 그런가. 굉장하네."

베라스톨의 그런 대답에 메제드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순수한 감상을 내뱉었다.

"하지만... 태양왕의 무덤에조차 이형의 잔재가 남아있다니…."

"당신들의 선조는 성검의 힘과 금지된 기술을 이용해 이것들을 전부 몰아냈다고 들었는데."

베라스톨의 말에 메제드는 `으음...`하고 앓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도 메자이로서 활동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려오는 전승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가끔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면, 사실 재앙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닐지도…."

그런 메제드를 힐끗 바라보던 베라스톨은 방패를 손에 쥔 채 전등이 깜빡이는 통로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불은 괜히 껐나."

그리고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기분 나쁜 무언가가 기어 다니는 소리.

마치 집 안에 숨어있는 바퀴벌레와 같이, 소리를 듣고 나면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메자이에게도 저 괴물을 상대할 수단은 존재하니까."

메제드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지팡이를 180도 회전하여 거꾸로 잡은 채 땅을 향해 쿵 하고 내리쳤다.

그러자, 지팡이의 끝에 약하지만, 불이 붙는 것이 보였다.

"그 지팡이는 대체 어떻게 만들었길래 마력도 없이 그런 것이 가능한 거지?"

"그, 글쎄... 구조에 대해선 나도 잘 모른다. 어디까지나 물려받은 거니까."

그녀의 말에 베라스톨은 투구 안에서 얼굴을 찌푸리고 자기 주먹을 다시 쥐며 성유를 한 병 더 사용하여 아까와 같이 불을 붙인다.

"좋아 이걸로­"

"...잠깐만, 무언가 이상한데."

베라스톨이 앞으로 나아가 이형의 괴물을 다시 한번 때려눕히려고 할 때, 저 너머에서 다가오는 이형의 존재가 크게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두 사람의 모습을 취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쪽은, 검은 피부를 가진 지긋한 나이의 노인.

또 하나는, 분홍색 머리를 가진 소녀로 착각될 정도로 가녀린 외모를 가진 소년이었다.

"...!?"

"할아버지!? 아, 아니... 의태인가! 의태가 가능할 정도로 기능이 남아있는 잔재라니…! 주의해라! 저 녀석들은 우리들의 파장을 읽고, 기억 속에서 공격하기 힘든 인물의 모습을 복사…. 성전사?"

메제드가 그렇게 설명하던 찰나, 베라스톨의 손이 크게 떨리는 것을 확인한 메제드가, 퍼뜩 그녀를 돌아보았다.

"정신 차려라!"

"큭... 시끄러워... 알고 있어, 그 정도는…."

그녀는 아랫입술을 강하게 물더니 단숨에 앞으로 뛰어간다.

소년은 베라스톨의 돌진에 양팔을 펼치더니 마치 그 공격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젠장...!`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휘둘러진 화염의 주먹은 그대로 소년의 배를 꿰뚫는다.

"몸을 부풀린 탓에 내구성은 낮은 건가…."

"하, 할아버님은 내가!"

베라스톨이 중얼거리면, 그녀의 뒤로 뒤틀린 고깃덩어리의 낫을 번뜩이던 노인 모습으로 의태 한 잔재를, 메제드가 꿰뚫었다.

이내 두 인형 모두 불타서 재가 되어 땅으로 쓰러지는 것을 확인하면 베라스톨은 자기 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성가신 적이로군."

"응... 그러니까 단독행동은 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좋다."

메제드가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베라스톨은 `흥...`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이제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통로를 향해 걸어간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메제드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