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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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제드와 베라스톨이 이형의 괴물들에게 공격받아 발이 묶여 있는 동안, 클레온과 쿠온 역시 갑작스럽게 연구실을 습격한 괴물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바깥의 두 사람의 이동이 멈춘 것을 확인하려던 찰나, 천장의 환풍구의 틈에서 흘러내리듯이 떨어진 그것은 곧바로 앞에 있던 클레온과 쿠온을 공격해 왔다.
클레온의 검이 빠르게 휘둘러지면, 그것은 공격 도중에 그대로 반으로 절단되어 버리지만, 형태를 무너트릴 뿐 곧바로 땅바닥에 떨어져 다시 붙더니 공격을 재개하려 하고 있었다.
"젠장, 이런 녀석들은 죄다 재생 괴물들이냐…!"
아카데미에서의 악몽 같았던 훔바바전을 떠올리며 클레온은 혀를 찼다.
그때는 신성 마력이라는 강력한 카운터가 있었기에 어떻게든 처치할 수 있었지만,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지금, 이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이방의 전사여! 그 녀석들은 불과 열에 약하다!"
"불과 열이라고? 큭... 이렇게 라일라가 그리워지는 모험이 있을 줄이야…!"
굳이 따지자면, 라일라가 있다고 하더라도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니 특기인 화염 마법을 쓸 수 없었겠지만.
쿠온도 그런 클레온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일행의 사이에서 역시 불이라고 하면 라일라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공통된 사항이었던 것 같다.
"뭔가 쓸만한 거 없나…!?"
클레온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것은, 주변에 조각상처럼 세워져 있던 오토마타 메자이의 샤브티로 향한다.
그들은 검과 방패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이 이형의 괴물이야말로 그들이 상대하던 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무언가 대항 수단이 있을 터였다.
"아누비스! 저 갑주에는 괴물들이랑 싸우기 위한 무기가 달려 있겠지!?"
재생해서 달려들려는 적을 양손의 검으로 잘게 쪼개서 재생이 늦어지도록 만든 뒤, 클레온이 그렇게 외치자 아누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다. 그들의 검과 방패는 진동으로 열을 일으킬 수 있는 기능이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쓰지 않을 이유가 없지…! 빌린다!"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며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갑주에게 달려가, 기능이 정지한 뒤에도 검과 방패를 놓지 않은 그들의 손에서 그것들을 잡아서 뽑으면
"크윽!"
순식간에, 전신의 생명력이 그 검과 방패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샤브티의 무기들은 전부 영혼의 힘을 마력 대신의 동력으로 사용한다. 살아있는 인간이 영혼으로 다루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해."
아누비스의 조금 늦은 조언을 들으면서도 클레온은 어떻게든 그 자리에 쓰러지지 않게 땅을 강하게 디딘다.
`검의 진동 때문에 휘두를 때도 자세가 흐트러지지만…. 이 정도라면…!`
클레온은 이를 꽉 문 채로, 열을 발하기 시작한 검을 붙잡은 채 재생을 거의 끝마친 괴물을 향해 꽂아 넣었다.
그와 동시에, 붉게 달아오른 인장과도 같이 빛을 내는 방패를 이용하여, 검으로 고정한 괴물의 몸을 짓누른다.
녀석은 들리지 않는 비명을 내지르는 듯 전신을 비틀지만, 이내 화염에 휩싸여 재로 변해서 사라져 버렸다.
녀석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클레온은 빠르게 무기를 놓고, 자리에 주저앉아서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이런 괴물은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훔바바의 진흙과 생김새도, 성질도 비슷했지만, 그것과는 무언가 다른 것이 느껴졌다.
서서히 형태를 갖추던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부피를 늘리고 있었다.
슬라임이라면 주변의 물질을 흡수해서 자신의 덩치를 키운다.
훔바바의 진흙은 흑마력을 통해서 질량과 부피를 늘릴 수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서서히 커지려 하고 있었다.
녀석의 재생은, 그런 원리로 발생하는 것이었다.
잘려나간 부분이 다시 붙는 것이 아닌, 없어진 부분을 어디에선가 보충해서 회복한다.
그것은 명백하게 이 세계의 생명체(마수, 마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에게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
클레온의 피로를 본 쿠온이 클레온에게 다가가 물을 건넸다.
신성 마력에 의한 치료술도, 포션도 소용이 없겠지만 심신을 안정시키는 데에는 일단 목을 축일 필요가 있었다.
자신이 휘두른 무기에 의해 땀을 흘린 덕에 입 안이 바싹 마른 클레온은, 그녀가 건네준 물통을 조심스럽게 받아 서 들고 목을 축인다.
아누비스는 재가 되어 흩어진 괴물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클레온의 질문에 답하듯이 다시 목소리를 내었다.
"이들은…. 왕국의 실험 도중, 왕가의 무덤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실험…. 분명, 금지된 기술들의 실험이라고 들었는데."
클레온이 그렇게 대답하자 아누비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이들은 선왕 폐하 태양왕의 아버지의 주도로 진행되던 `시간을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던 도중 나타났다."
"...마법이 아니라 과학 기술로 그런 것을 행하려 했단 건가?"
시간에 관련된 마법은 이론상으로만 존재한다고, 이전 현자 소피아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또, 인간의 몸으로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마법이며,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고대의 드래곤들 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드래곤들 역시 그 마법을 사용하는 것에는 목숨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으며, 시간 축을 건드리는 것은 세상의 섭리를 커다랗게 해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사용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고 한다.
현대에 남은 다섯 원소룡 루티와 레티를 포함한 다섯 마리에게는 그 마법이 전승되지 않은 것에서, 시간에 손을 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시에는 거의 실현 직전까지 갔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현재의 물건을 과거로 보내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성공했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이 나라의 멸망을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라고 이야기하려던 것을 클레온은 입을 다무는 것으로 막았다.
현실을 보면, 문제가 있었던 것이겠지.
그 당시의 인간들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가.
"그래. 네 예상대로, 연구를 방해하듯이 나타난 것이 방금 그 괴물들이다. 지성도, 이성도 없이 본능적으로 연구소와 연구원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연구원들에 따르면, 영맥의 고갈이 원인으로 `무언가 좋지 않은 것`이 이 세계로 넘어오는 것을 막지 못하게 된 것이 원인이라고 하더군."
"... ..."
쿠온은 방금 것들이 대량으로 나타나 인간을 학살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랐는지, 손을 꾹 쥐었다.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선왕은 그것을 보고 나서도 연구를 멈추지 않으려 했다. 연구가 멈춘 것은…. 선왕이 누군가에 의해 독살당하고 나서였다. 하지만 남은 연구원들과 시설을 모두 없애려는 듯한 기세로 녀석들은 나타났다."
"이형의 괴물들은, 시간 조종의 기술을 연구하던 너희들을 막기 위해 나타났다는 것이로군... 본래라면 영맥이 그것을 막아 주었겠지만, 영맥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 나라는 계속해서 이형의 괴물들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는 건가."
계기는 연구이지만, 원인은 결국 이 땅의 영맥과 마력이 모두 고갈된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선왕께서도, 만약 시간을 자신들의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이 모든 비극을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이겠지. 어떻게든 버티면서, 과거를 바꾸는 것으로 현재를 바꾸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그도 독살당했다…. 범인은"
아누비스는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아마, 아누비스는 선왕의 독살범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말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의 왕의 명예를 위해 먼저 이야기해 두자면, 태양왕 폐하께서 그러신 것은 아니시다. 왕가의 인간을 어리석은 얼간이들이라고 칭하시는 분이지만, 가족애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쓸데없는 의심을 피하고자 그렇게 못을 박아둔다.
"그래. 누가 독살했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거지? 너희들 그리고 성검 갈라틴의 힘으로 이형의 재앙은 전부 몰아낸 것이 아니었나?"
클레온이 당연한 의구심을 가지고 아누비스에게 질문하면 그녀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기계의 몸이 되어 감정이 옅어진 덕분에 제대로 표현을 못 하고 있지만…. 이래 봬도 꽤 놀라고 있다. 시간 연구에 관련된 것은 결국, 왕국이 멸망할 때 폐하의 명령으로 우리가 전부 폐기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그들이 쏟아져 나오던 문은 닫혔고, 남아있던 잔당들은 모두 불태웠다."
"...당신도 모른다는 건가…. 어쩌면, 꽤 심각한 사태일지도 모르겠군."
쿠온도 클레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혹시라도 이게 단순한 잔당이 아니라, 새롭게 나타난 거라고 하면…."
만약 이것이, 당시의 재앙이 다시 나타난 것 혹은 나타나려는 것의 전조라고 한다면. 무덤 근처에 있는 마을의 주민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물론, 사태를 방지하면 이 땅 바깥 왕국이나 다른 지역에 까지, 퍼져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불을 사용하면 물리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대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며
단순히 불이 약점이라고 한다면, 이 왕국이 갈라틴을 손에 넣을 때까지 궁지에 몰려있을 리 없었다.
"이것의 원인도 밝혀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군…."
클레온은 머릿속의 퀘스트 창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는 것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이 안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세 개나 된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 아까웠다.
"아누비스. 당신이 모른다고 한다면…. `태양왕`은 어떻지?"
"그분께서는…. 적어도 나 같은 무인보다는 연구원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계셨다. 어쩌면, 그분께서라면 무언가 알고 계실지도 몰라. 하지만"
"하지만, 지금부터 싸워야 할 상대에게 알려줄까. 라는 건가. 걱정하지 마, 그 부분에 관해선 우리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클레온의 말에 아누비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건 챙겨갈게."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며 떨어트린 검과 방패의 손잡이에, 가방에서 꺼낸 붕대를 묶어 직접 살을 대지 않도록 하여 손에 들었다.
그렇게 하면 열을 발생시키는 기능을 사용할 수는 없더라도, 운반 자체는 가능할 것이다.
"...내가 그대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짊어지게 하는군."
기계음 섞인 목소리에서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미안한 목소리에 클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뿐이야. 별로, 세계를 구한다던가 그런 것이 아니라…. 놔두면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갈 테니까."
"...그런가."
아누비스는 클레온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들어왔던 문과 반대편에 있는 막혀 있던 문이 열리면서 통로에 불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 통로를 직진하면, 그대들의 동료들과 만날 것이다…. 폐하와, 갈라틴을 잘 부탁한다."
아누비스의 배웅을 받으며, 두 사람은 방을 나섰다.
천천히 닫히는 문 너머로 느껴지는 것은, 기대, 그리고 미안함이었다.
001
파스스…. 하는 소리와 함께 흩어지는 재.
메제드와 베라스톨은 또 한 마리, 이형의 괴물을 쓰러트린 뒤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베라스톨은 혀를 차며, 꺼져가는 방패와 손의 불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왜 그러는가?"
메제드가 그렇게 물어보자, 베라스톨은 조용히 대답한다.
"성유가 다됐다. 방금 게 마지막이었어."
"으, 으음... 애초에 불을 피우는 용이 아닌 것 같으니까…. 그렇다면 이 앞은 내가 혼자서 해야겠군."
베라스톨은 그런 메제드의 지팡이를 바라본다.
자신이 피우는 불과는 다르게, 그녀의 지팡이에 붙어있는 불은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이글거리는 것이 보였다.
"네 그건…. 어떤 원리인 거지."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언가 연료를 보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텐데, 메제드가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은 이곳까지 오면서 본 적이 없다.
메제드는 그런 베라스톨의 질문에 두 눈을 깜빡이더니, 자기 가슴에 손을 올리곤 말한다.
"이것의 힘이다!"
"가슴의 힘이라고?"
확실히 메제드의 가슴은 베라스톨과 비교하면 반죽과 부풀어 오른 빵 정도의 차이가 있을 정도로 커다랗지만….
베라스톨이 험악한 눈이 되어 메제드의 가슴을 바라보면 메제드는 버럭 화를 내면서 대답한다.
"가슴의 힘은 대체 무슨 힘이냐! 마음의 힘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 ..."
"우와 엄청나게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는구나…."
메제드는 베라스톨의 그런 시선을 느끼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마음의 힘은 영혼의 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영혼을 태워서 만들어내는 힘이지."
"영혼을 태워…?"
단어 자체는 그럴듯했지만, 자세히 생각하지 않아도 조금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륙에, 마력 외의 힘을 다루는 기술을 가진 이들이 많다는 것 자체는 베라스톨도 알고 있다.
어딘가의 무도가들은 생명력과 마력을 혼합하여 만든 `기`라는 것을 이용하여 자기 몸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몸을 조종하는 것도 가능하다던가.
또 대륙 어딘가의 사악한 존재들은 흑마력과는 또 다른 사악한 기운인 장기(??)를 다룬다고 한다.
하지만, 영혼의 힘이라니. 그런 단어는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 등에나 나올법한 단어였다.
"믿지 않는다는 눈치로군."
"잘 알고 있는걸."
베라스톨의 대답에 메자이는 조금 뚱한 표정이 되어 양쪽 허리에 손을 올린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영혼의 힘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자신의 존재 자체를 태운다는 이야기니까. 알기 쉽게 말하자면 `수명`을 힘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메제드의 말을 반쯤 흘려듣던 베라스톨은 그녀의 마지막 말에 움직임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수명... 이라고?"
"그래. 우리 메자이는 선조로부터 이 땅을 수호할 의무를 지고 태어났지만, 마력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거기서 생각해낸 것이, 이 지팡이 `소울 이터 메탈`을 이용해서 만든 무장을 사용하는 것이다."
메제드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지팡이를 휘릭 하고 휘두르면 베라스톨은 잠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선조들은 같은 재료로 갑주를 만들어서 거기에 영혼을 옮겼지만…. 지금은 그 기술이 남아있지 않으니까. 이 정도의 물건밖에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제 알겠지?"
설명을 마친 메제드가, 이제 믿겠냐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면 베라스톨은 잠시 그녀를 마주 보다가... 중얼거렸다.
"미쳐있군."
"뭐라고!?"
"그 의무라는 것을 위해 수명을 깎아서 싸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이 정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인간은 원래, 자기 목숨이 아까운 것을 첫 번째로 생각하는 인간이니까."
베라스톨은 그렇게 말하며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메제드는 무언가 반박하려다가, 그녀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슬며시 입을 다물었다.
"바보 취급해서 미안했군."
"아니...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응? 바보 취급?"
무언가 흘려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은 듯한 메제드가 머리 위에 의문부를 띄우지만 그러기도 전에 앞쪽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두 사람은 다시 앞을 노려보며 자세를 잡았다.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이곳까지 오면서 여러 번 의태 한 녀석들을 본 두 사람에게는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해서 적이 아니라고 판단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 나타난 건가…. 끊이질 않는군..."
조금 짜증이 나기 시작한 베라스톨은 곧바로 방패를 치켜세우고 앞으로 뛰어갔다.
"아니, 잠깐! 불을 쓸 수 없다면서 그렇게 튀어 나가면…. 정말이지!"
메제드 역시 그런 그녀를 따라서 빠르게 달려가면, 방패가 무언가 단단한 것과 부딪히는 소리가 귀를 찢으며 울려 퍼졌다.
"호오. 이제는 무기를 사용하는 녀석도 나타난 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다짜고짜 방패를 휘두르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베라스톨의 방패가 부딪친 것은, 그녀가 들고 있는 것보다는 조금 크기가 작지만 검은 방패였다.
그리고 그것을 잡은 것 역시, 검은 머리에 검은 눈.
"...클레온?"
베라스톨은 자신을 틀어막은 그를 바라보며 살짝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 무사해서 다행이군, 이렇게 날뛸 정도로 힘이 남아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클레온은 그런 그녀를 비꼬듯이 중얼거리면, 메제드도 베라스톨의 뒤편에서 조심스럽게 다가와 두 사람을 확인하고 바로 얼굴을 밝게 하는 것이었다.
"오오! 이방인들! 무사했구나!"
쿠온은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난 거의 전라인 소녀를 바라보며 얼굴을 붉힌 뒤, 한 손으로 클레온의 눈을 가리려고 했다.
갑작스럽게 시야가 가려지지만, 그 직전에 본 광경이 이미 눈에 박혀 있는 클레온은 쿠온에게 무엇이라 말하지 못하고 조용히 기다릴 뿐이었다.
"저, 저기... 혹시, 메제드 씨인가요...?"
쿠온이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메제드는 `그렇다!`하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뭐, 뭐라고 해야 할까. 너무 자극적인 복장이 아닌가요…?"
"이것은 우리 메자이의 전통 복장이다. 내 쪽에서 보자면, 너희들이야말로 너무 꽉 껴입은 것 같이 느껴져. 그래서는 여차할 때 몸이 무거워서 피하기가 힘들 텐데."
그녀의 말에 베라스톨은 무어라 반박하려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면서 침묵을 지켰다.
"그보다. 어떻게 이곳까지 돌아온 거지? 정말 깊숙이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설명하려면 여러모로 기니까. 일단 쿠온, 이 손을 좀 비켜줬으면 좋겠는데."
클레온이 살짝 한숨을 내쉬면, 쿠온은 손을 가져다 댔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또다시 손을 내렸다.
그의 눈앞에 들어온 메제드의 모습은 확실히, 쿠온이 말한 대로 자극이 꽤 강한 복장이었지만
평소에 보는 쿠온의 나체 쪽이 훨씬 자극적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은 평온함. 그 자체였다.
"어떻게 된 것인지부터 설명하지..."
... ...
"아, 아누비스 님을 만났다는 거야!? 이방인들!"
메제드는 평소의 말투도 잊어버린 채 놀란 얼굴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쿠온도 고개를 끄덕이면 베라스톨은 투구의 입가에 손을 가져간 채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 그러고 보니, 그녀는 네 선조인 건가?"
"지, 직계는 아니지만 같은 가문이라고 들었어…. 그렇구나. 아누비스 님도 아직, 이 무덤 안에…."
그녀는 지팡이를 잡은 손에 힘을 넣으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생각보다도 임무의 난이도가 높아졌어. 태양왕과 이형의 괴물들..."
"크흠…. 나로서는 태양왕께서 아직 이 무덤에 영혼을 간직하신 채로 계신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아누비스 님께서 직접 그분을 해방시켜달라고 하신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이내 조금 진정한 듯한 메제드가 평소의 말투를 되찾아서 이야기하면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갈라틴도 태양왕의 곁에 있다…. 라는 것은 확실한 거겠지."
"그래. 아누비스가 그렇게 이야기했으니. 그는 아직도 성검의 소유자야, 성검의 위치라면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베라스톨은 클레온의 대답을 듣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다면 서두르지, 언제 또 그 괴물들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그래그래... 아."
클레온은 문뜩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몸을 일으키다가 멈춰서 베라스톨을 바라보았다.
"...뭐지?"
"아니…. 평범하게 대답해주고 있어서."
"... ..."
그러고 보니 라고 쿠온도 대답하며 베라스톨을 바라보면, 베라스톨은 조금 당황한 듯 뒤로 물러선다.
"그, 그건..."
무언가 변명거리를 찾는 듯 눈을 굴리며, 잠시 이어지는 침묵.
"그건…. 임무가 어려워졌으니까, `어쩔 수 없이`다. 의사소통을 소홀히 하면 목숨이 위험해지니까…. 잊고 있었다던가, 그런 게 아니야."
마지막 말은 조금 작은 목소리였지만, 클레온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아, 알았다면 너희도 움직여라. 체력도, 물도 무제한인 건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며 조금 빠른 발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가는 베라스톨을, 나머지 셋은 조용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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