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220화 (220/506)

〈 220화 〉 나뭇가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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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전투에서 시작하여, 대규모의 합전, 그리고 모험가들이 행하는 탐험.

싸움이라는 것을 동반하는 모든 행위에서 절대적으로 상대방과 자신의 우위를 나누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고 한다면, 바로 `수`일 것이다.

당연하게도, 수가 적은 쪽은 많은 쪽을 상대할 때 보다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수없이 많다.

시선의 분산, 사각의 발생, 어쩔 수 없이 보여야 하는 틈.

그것뿐만이 아니라, 수적 열세라는 상황에서 오는 압박감을 생각하면 베테랑들이 어떻게든 자신들보다 수가 많은 이들을 상대하는 것을 피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판단이었다.

상대가 아무리 약하다고 하더라도, 그 수가 쌓이고, 또 쌓이다 보면 인간인 이상 체력에, 마력에 고갈은 발생하게 된다.

그걸 막는 데 필요한 것이 정찰, 사전 조사고, 필요하다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도주하거나, 임무를 포기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일정한 수준을 넘어, 흔히 말하는 `강자`라는 차원을 뛰어넘은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변함이 없으며.

클레온과 그 일행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초진동에 의해 발열하는 검이, 또 한 마리의 이형을 꿰뚫었다.

그대로 검은 기름같이 찐득한 몸체를 불태우고, 재로 바꾸어 버리지만 클레온의 소모는 생각보다 큰 것이어서.

서서히 검을 휘두르는 데에도 기세가 약해지고 있었다.

평소에 휘두르는 마검 갈라테아나, 성검 칼리번이 아닌 `소울 이터 메탈`이라는 사용자의 영혼을 흡수하여 그것을 힘으로 바꿀 수 있는 무기를 사용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훈련이 필요했다.

그런 과정을 뛰어넘고, 감각만으로라도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것에 메제드는 감탄을 내뱉었지만.

그것도 결국 한계가 찾아오기 마련이어서, 벌써 몇 마리를 베었을지 모를 상황. 끝나지 않는 싸움에 소모가 격해지는 것이었다.

"큭... 하아..."

방금 것이 마지막 한 마리였기에, 떨리는 손에서 검을 떨어트린다.

사용할 때마다 이렇게 체력을 소모한다면, 태양왕의 앞에 도달하더라도 전투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후우…. 뭐냐, 겨우…. 그 정도인가?"

그리고, 옆에서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베라스톨을 힐끗 바라보면.

그녀 역시 평소에 사용하던 방패는 등에 짊어진 채, 클레온이 챙겨온, 검과 같은 재질의 방패를 손에서 떨어트리며 지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크기는 애용하는 방패보다 작더라도 다루는 데에 필요한 테크닉은 비슷한 것인지, 곧잘 휘둘러서 이형의 존재들을 쓰러트리고 있었지만.

그녀 역시 클레온처럼­ 아니, 사실 클레온보다도 훨씬 더 한계에 도달해 있을 것을, 자존심과 호승심으로 감추어 싸움에 임하고 있었다.

"저기, 두 사람 모두... 그 장비를 쓰는 건 인제 그만두는 게 어떤가…?"

정작 두 사람보다도 훨씬 더 오랫동안, 그리고 오래전부터 같은 종류의 무기­ 메자이의 지팡이를 휘둘러온 메제드가 걱정하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면 클레온도 베라스톨도 묵묵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연구소에서 이곳까지 거의 1시간 정도,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하는 것을 반복하며 도중에 나타나는 이형의 괴물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는데도 갈라틴이 있는 태양왕의 제단과 옥좌의 앞에는 아직도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원인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검은 이형들.

인간으로의 의태도 이제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인지 처음부터 비틀린 괴물의 형태로 덮쳐오는데, 제단에 가까워질수록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쪽의 움직임을 학습하는 것인지, 무지성으로 공격을 받고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던 것에서 벗어나, 회피하거나 공격을 읽어서 방어하는 등의 행위를 보이고 있었는데.

덕분에, 상대하는 데에 난이도가 더욱 더더욱 높아지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강화형으로 보이는 개체의 등장이었다.

녀석은 다른 이형과 비교하더라도 나타날 때부터 크기가 어느 정도 완성이 되어 있었고, 재생력도 높아서, 흩어놓은 뒤에 불태우는 방식의 공격법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것이다.

이형의 개와도 같은 형상을 한 그 녀석은, 보고 있자면 전신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이한 형태였고.

또 영리하게도, 유일하게 싸울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쿠온을 집중적으로 노리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이유도 있어서, 아무리 지치더라도 클레온으로서는 지금 이 무기를 버리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으음... 고집이 센걸…."

그런 클레온을 바라보며 메제드도 심정은 이해한다는 듯이 어두운 표정을 짓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조금은 쉬도록 하지. 이대로 강행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방법이 아니야."

"쉬고 있는 동안에도 녀석들이 다가오면 결국 나아가지 못할 텐데."

베라스톨이 메제드의 제안에 그렇게 태클을 걸지만, 쿠온이 그런 베라스톨에게 대답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베라스톨씨도, 클레온도 이 이상 무리해서 나아가면 더 위험할 뿐이에요."

"... ..."

그녀의 말을 듣고 베라스톨은 잠시 자신의 방패를 내려보다가, 이내 그것을 땅에 내려놓으며 자리에 걸터앉는 것이었다.

클레온도 그런 베라스톨의 모습을 보고, 검을 땅에 떨어트린 다음에 거의 주저앉듯이 다리에 힘을 풀었다.

"이대로 가다간 확실히, 우리 쪽이 먼저 지치겠다는 걸. 쿠온, 남은 물의 양은?"

"수통 하나 분... 포션도 있지만, 목을 축이는 용도로 쓰는 건 조금..."

쿠온의 말을 들은 메제드는 좀 전보다도 더욱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역시, 이대로는 안 된다. 무언가 방법을 찾아서 심신을 치유할 방법을 찾아야 해."

쿠온도, 클레온도 동의는 하지만 마력이 없는 현재 상황에서 딱히 무언가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교단의 가호와 믿음이 있다. 나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건 오직 그것뿐이야."

베라스톨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메제드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렇게 강한 척을 하지 않아도 된다. 너 자신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좋지 않아. 사람은 사람인 이상 한계가 있다. 이형과의 괴물에서 그것을 느꼈기 때문에 몸을 기계로 바꾼 선조들을 생각하면, 사람의 몸으로 여기까지 싸울 수 있는 너희들도 대단한 수준이야."

메제드의 그런 지적에, 베라스톨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검은 방패를 바라보았다.

이형의 괴물들의 수는 정말로 무한에 가까웠다.

불을 이용해서 싸우면 됐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단순한 이야기여서, 마력이 없는 고대 왕국의 인간들이 가진 수단은 한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사람의 수도, 체력도, 생명도 한계가 있다.

지치지 않는 몸에 영혼을 이식하여, 사람의 육신을 버린 것에는 그 끝없는 적에 대항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기다려라, 무언가 수단을 생각해 낼 테니."

메제드는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자신의 지팡이를 양손으로 잡고 일행들이 앉아 있는 구역의 바닥에 내리꽂았다.

쿵! 하고 진동이 울렸다고 생각하면, 땅을 타고 무언가가 흘러서 메제드의 지팡이로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뭘 하고 있는 거지?"

"이 유적에 접속해서 지도를 보고 있다."

클레온의 질문에 메제드가 무심히 대답하면, 베라스톨은 심드렁한 얼굴로 `뭐든지 가능한 편리한 지팡이네`라고 비꼬듯이 중얼거린다.

쿠온은 조용히 메제드의 모습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메제드는 잠시 눈을 감아 무언가에 집중하는 듯하더니 움찔하고 눈썹을 떨며 무언가를 발견한 듯 소리를 냈다.

"이건…. 모두! 제단과 방향은 조금 다르지만,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있는 듯하다."

"물을…? 이런 지하 건물에서?"

마력의 영맥도 고갈되어 있어서 지상이 황폐해진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 이 안에는 갑옷의 제조시설이 있었으니까. 냉각을 위해 먼 곳에서 물을 끌어오는 시설이 있다. 그곳에서 물을 좀 얻을 수 있을 거야."

"거리는 어느 정도지?"

"그렇게 멀지는 않아. 조금만 더 걸어가면 된다."

메제드의 대답에, 클레온과 쿠온은 `휴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그럼 일단 그곳으로 가자. 또 이형의 괴물이 나타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물만이라도 보충해 두고 싶어."

"진심인가…? 곧바로 제단까지 향하더라도 시간이 부족할지도 모르는데…. 어이가 없군."

베라스톨은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원래 나아가려던 방향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잠깐. 설마 혼자 갈 생각이야?"

"...그래. 너희들이 없더라도... 과거의 망령 따위…."

그때, 문뜩 그녀의 목소리와 걸음걸이가 이상한 것을 깨달은 클레온이 그녀를 붙잡으려던 찰나.

손이 허공을 스치면서, 그녀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쓰러진 그녀의 머리에서 충격으로 투구가 떨어져 나왔고.

이전에 본 적이 있는 벚꽃색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듯 그 모습을 드러냈다.

"베라스톨!"

클레온이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 몸을 일으키기 위해 갑옷에 손을 댄 순간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갑옷의 표면에 닿은 손에서 무언가가 익은 듯한 소리가 들렸다.

"큭!"

클레온도 손끝을 달구는 고통에 깜짝 놀랐지만, 그녀의 갑옷에서 느껴지는 온도는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아니…. 당연한 건가."

전신을 감싼 판금 갑주. 재질은 불명이지만 금속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고열을 내는 방패로 한 시간 가까이 싸운 것이다. 경갑을 입고 있는 클레온도 검을 잡으면 화악 하고 다가오는 열기를 느끼는 판에, 그녀의 갑옷은 마치 베라스톨을 위한 찜통처럼 달구어져 있었다.

물도 부족한 상태에서 그런 가혹한 싸움을 계속하는 것은 당연히 자살행위에 가까워서, 정상적인 판단력조차 앗아갈 정도로 탈수증세를 일으키고 있던 것이었다.

"갑옷을 식히고, 이 녀석에게도 물을 먹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클레온의 말에 메제드는 `끄응.`소리를 내며 쓰러진 베라스톨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니까 무리하지 말라고 그렇게…. 어떻게 옮기지?"

당연하지만 지금 손을 대면 그 부분이 맛있게 익어버릴지도 몰랐다.

이대로 방치하면 천천히 식겠지만, 그 사이에 베라스톨의 상태가 악화할 수도 있었다.

"...하아~"

클레온은 입고 있던 로브를 벗어 팔에 둘둘 감쌌다.

그리고는, 양팔을 이용하여, 뻗은 채인 베라스톨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는 것이다.

아까와 같이 무언가가 타들어 가는 듯한 `치익`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다행히 로브에는 약간의 그을음만 생길 뿐이었다.

"크, 클레온? 괜찮아? 아무리 그렇더라도 뜨거울 텐데…."

"이정도는... 괜찮아. 이 로브는 일단은 열에 견딜 수 있는 소재를 썼으니까…. 사막 대책으로."

하지만 팔에 전해져 오는 고온 자체를 완벽히 차단할 수는 없었는지 조금은 괴로움이 느껴졌지만, 이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메제드, 안내를."

"응, 알았다. 그렇게 멀지 않으니 조금만 참아다오."

메제드는 머릿속에 기억해둔 약도에 따라 두 사람을 이끌고, `냉각수`가 가득 찬 저수조로 향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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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도착한 곳은 말 그대로 거대한 수조에 물이 가득한 방이었다.

사람이 쉽게 수십 명은 들어갈 듯한 크기에 저장된 물은, 어떤 원리인지는 몰라도 오랫동안 보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썩지 않고 그 수질을 유지한 상태로 마시는 데에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이 있다면 수조는 평범한 육면체의 형태가 아닌, 완전한 `구`의 형태라는 것이었다.

"엇...차…."

클레온은 그 수조의 앞에 베라스톨을 내려놓은 뒤, 메제드에게 저수조의 물을 꺼내도록 부탁하였다.

구에 연결된 관에서 물이 빠져나와, 클레온 일행의 눈앞에 놓여있는 그릇에 쌓여가는 것을 보면 아까까지 물이 부족하다는 것에 고민하고 있던 것이 조금 바보스러울 정도였다.

"이렇게나 많은 물을…. 그것도, 마실 수 있는 물... 마을 모두에게도 가져다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메제드는 그렇게 말하며 물을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거대한 수조를 지하에서 지상으로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영맥을 부활시킬 방법은 없는 걸까?"

쿠온이 메제드의 그런 모습을 슬프다는 듯이 바라보면 메제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 방법을 찾는 것은 수천년 전의 선조들도….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게도 불가능하다. 영맥은 별의 혈관. 우리들의 선조는 그 혈관을 틀어막고, 그곳에서 피를 뽑아서 사용하여 괴사시킨 것과 다름없으니까."

한번 기능을 멈춘 영맥이 부활했다는 이야기는 클레온 역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쿠온은 조금 생각하듯이 중얼거렸다.

"오염된 영맥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오염되는 데에 걸린 시간보다도 훨씬 긴 자연적인 치유가 필요해. 정말로, 시간을 조작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

"자연적인 치유력을 강화하는 방법은 없을까?"

클레온의 질문에 쿠온은 고민한다.

그녀 역시, 고향에서는 성스러운 나무의 무녀로서 영맥에 관한 기본적인 것은 전승으로나마 배운 몸이기 때문이었다.

"나무­"

"나무?"

쿠온이 그렇게 중얼거리면, 클레온이 되풀이하듯 질문했다.

"응. 고향에 있던 성스러운 나무. 별의 촉각이기도 한 그 나무라면, 그 자체가 하나의 영맥과도 같아서. 영맥에 연결하면 영맥을 조금씩이나마 치유할 수 있을지도 몰라. 물론, 그냥은 안 되고…. 기도와 신앙 같은 것이 모여야 하지만. 정령처럼."

"...그런 게 가능하다면, 이 일이 끝나면 쿠온의 고향에서­"

클레온의 말이 끝나려던 찰나, 그는 무언가 머릿속에 걸린다는 듯이 쿠온을 바라보았다.

"...쿠온. 혹시, 가방 안에, `그거` 있어?"

클레온의 질문에 쿠온은 고개를 갸웃한다.

아무리 두 사람이 척하면 척하는 관계까지 발전했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거`만으로는 무엇을 칭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전에 내가 아카데미에서 줬던…. `나뭇가지`."

클레온의 말에 쿠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눈을 크게 뜨는 것이었다.

"아, 응…! 가지고 있어! 부적처럼…. 클레온이 줬던 거니까."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가방에서 그것을 꺼내려고 하면, 클레온이 황급히 쿠온의 손을 멈췄다.

"쿠온! 괜찮아. 여기서 꺼내지 않는 게 좋아…. 그 괴물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아."

"응...?"

클레온의 말에 쿠온도 고개를 갸웃하지만, 그녀는 일단 가방의 입구를 꾸욱 잡으며 클레온의 말의 다음을 기다렸다.

"그 나뭇가지는…. 내가 꿈에서­ 미래의 쿠온에게 받은 물건이야. 그러니까…. `시간을 뛰어넘어서` 우리들의 곁에 있는 물건이라는 거지."

"...아."

클레온의 말에 쿠온도 그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응. 녀석들이 시간을 조종하는 기술이나…. 시간 축에 손을 대는 것을 막으려는 존재들이라면. 그 나뭇가지가 이 영맥이 흐르지 않는 땅에 들어온 것이 원인이야."

쿠온은 눈을 크게 뜨고, 메제드는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 나 때문에, 괴물들이 다시 나타났다는…. 거야?"

쿠온이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하면 클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쿠온의 탓이 아니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그런 쿠온을 진정시키려고 클레온이 이야기하지만 쿠온은 이미 발걸음이 떨려오고 있었다.

"쿠온, 진정해. 그 나뭇가지를 버린다든가 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게 클레온과 모두를 괴롭게 만든다면…."

쿠온은 자기 가방을 꽉 쥔 채로 클레온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또다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증오와 클레온, 그리고 베라스톨과 메제드를 향한 미안함이 섞여 있었다.

"...그 흑마의 일족의 말대로입니다. 쿠온양."

어느샌가 눈을 뜬 베라스톨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며 쿠온을 향해 입을 열었다.

차가운 물이 가득한 그릇의 곁에 있던 덕분에 조금은 빠르게 갑옷이 식은 것인지 더 이상 갑옷에서 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메제드가 서둘러 수통에 물을 담아 베라스톨에게 건네면 그녀는 그것을 받아 서 들고 목을 축인 뒤 쿠온에게 이야기한다.

"자신 때문이 아닌 일로 괴로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래. 필요한 건, 그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니까."

클레온은 베라스톨의 말을 거들며 쿠온에게 다가갔다.

"...내가 만난 쿠온은, 미래의 쿠온이야. 그런 그녀가, 그저 아무런 의미도 없이.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그 나뭇가지를 건네줬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아. 무언가, 분명 의도가 있었을 거야."

"... ..."

쿠온은 잠시 침묵했다.

"...나는…. 이번에도 내 의지로 무언가를 정하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자조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쿠온..."

"으응, 아니야. 미안해 클레온. 클레온이 말한 대로…. 이건, 나에게도 클레온에게도 소중한 물건이니까."

클레온은 쿠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침울해진 그녀의 기분을 되돌리는 것은 지금으로선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 ..."

그렇기에 클레온은 생각했다. 정말로 미래의 쿠온이 클레온에게 가지를 건네주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로 부적 삼아? 아니면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무언가 그 이유를 알아내지 못한다면 쿠온이 이 가지를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본인이 납득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 ..."

그리고 그때, 클레온의 머리에 스쳐 지나간 것은 `태양왕`의 존재였다.

태양왕은 그 육체를 소울 이터 메탈로 이루어진 육체로 옮겼다.

그것은 당연하지만, 별의 섭리를 벗어나는 행위이자, 그 몸을 이루는 재료 자체가 금기에 가까운 존재였다.

성스러운 나무의 가지는 그 자체가 거대한 신성 마력의 덩어리이자 영맥의 일부...

별의 섭리를 거스르는 존재에 대해, 강력한 카운터가 될 수 있었다.

"즉…. 태양왕을 쓰러트리는 데에는, 그 나뭇가지가 필요하단 거야."

클레온은, 자신의 추측이 맞기를 바라며 세 사람에게 이야기했다.

"태양왕 폐하는 강력한 전사이시다…. 그 육체도, 기계인 만큼 단순한 공격으로는 파괴할 수 없어. 하지만, 그 정도로 거대한 신성 마력이라면... 마력에 대한 저항도가 없는 그 분의 영혼은 견디지 못하고 육체와 분리될지도 모른다."

클레온의 설명을 들은 메제드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클레온도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베라스톨."

베라스톨은 가만히 있다가 클레온에게서 말이 날라오자, 퉁명스럽게 대답할 뿐이었다.

"...나에게 동의를 구하지 마라. 이론상으로는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가능할지는 해보지 않으면 안 돼."

하지만 베라스톨의 말까지 들으면 쿠온도 조금은 진정이 됐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응. 알았어. 그러면, 이건 태양왕을 쓰러트리기 위한 비장의 패로 일단은 가지고 있을게."

쿠온의 대답에 클레온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수통을 집어 들었다.

"좋아. 태양왕에 대한 대책도, 괴물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원인도 알았군."

"남은 건, 옥좌로 가서 갈라틴과 태양왕. 양쪽 모두를 어떻게든 하면 되는 거네."

클레온과 쿠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며, 조금은 긴장이 풀려 왕도에서 기다리고 있을 동료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베라스톨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머리를 만지작거린다.

"... 아."

그리고 그때가 돼서야, 자기 머리에 쓰고 있던 투구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다.

"이걸 찾는 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베라스톨에게 다가간 메제드가 손에 깡통 투구를 들고 가까이 가면, 베라스톨은 큭 소리를 내며 그 투구를 빼앗아 머리에 뒤집어쓰는 것이었다.

"이미 얼굴을 봤는데 그럴 필요가 있나?"

"이 몸은 교황 예하를 지키는 철벽의 방패…. 나라는 개인을 타인에게 알리는 일은 본래 있어선 안 된다."

베라스톨의 말에 어깨를 으쓱인 메제드는 그녀에게 가득 채운 수통을 건네면서 이야기했다.

"이방의 전사­ 클레온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게 좋을 거야. 그가 팔의 화상을 감내하면서 널 여기까지 안고 왔으니까."

"... ..."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얼마 전의 추태.

술에 취해 흑마의 일족의 등에 업혀서 대신전까지 옮겨진 뒤.

완전히 열받은 에스카에 의해 두들겨 깨워졌던 날.

그때의 수치심을 잊지 못하여, 클레온과는 말을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분위기에 흘러가 버렸다.

그리고 이번에도 또 한 번, 그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에 베라스톨은 입을 다물고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쿠온과 즐겁게 이야기 하는 클레온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클레온... 너는 어째서."

그 뒤의 단어는, 그녀의 입안에서 맴돌다가 결국 흩어지는 메아리처럼 사라졌다.

입 바깥으로 꺼내 소리로 만들기에는, 너무나도 지리멸렬한 감정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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