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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221화 (221/506)

〈 221화 〉 결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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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주받을 존재들에게도 언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비극과도 같았다.

겉보기에는 검고 끈적하고, 지성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인간의 끔찍한 상상력의 산물.

날카로운 이빨을 게걸스럽게 번뜩이며, 수많은 눈이 표면에 거품처럼 나타났다가 터져서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는 이 녀석은.

유일하게 스카라베로도 침입할 수 없는, 이 태양왕의 새로운 기계 옥체의 아주 가장 깊숙한 부분.

인간으로 치자면 `뇌`에 해당하는 부분에 눌어붙어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나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역사의 모래는 멈추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 세상 만물의 섭리를 거스르고 그 영혼의 부패와 함께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간의 왕이여.`

이것의 목소리가 자신의 의지로 나오는 것인지, 나의 머릿속에 있는 부정적인 생각을 흉내 내 만드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신경을 거스르는, 그리고 나의 오장육부를 뒤집어 놓는 증오스러운 목소리.

단어의 선택은 학자의 그것이었고, 말투는 잠드는 아이의 머리맡에서 아이에게 속삭이는 어머니와 같았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주언(?)`이었다.

아무리 천사와도 같은 근엄한 목소리라고 하더라도, 우리들의 멸망을 기계처럼 바라는 존재에게서 느낄 수 있는 위엄이라고는 없었다.

`우리는 시간의 비밀을 풀어헤친 비밀의 실타래를 간직한 그대가 이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대야말로, 우리를 이 세계와 이어놓는 마지막 쐐기이다.`

녀석이 나에게 속삭이는 문장은 이것이 전부.

끊이지 않고, 일정 간격으로. 이 영혼을 담은 기계 육체보다도 더욱 기계처럼.

1년... 10년... 그리고 수천 년이 지나는 세월을 나에게 끊임없이 속삭였다.

왕은 누구보다도 참고 견디는 것을 시험받는 자리이다.

이런 멍청하고 어리석은 녀석의 저주 따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지 못한다면 한 나라의 왕의 자리 따위는 맡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설령 진짜로 이 목소리가 나의 정신을 영원히 갉아먹는다고 하더라도.

나의 의지로 견뎌낸다면, 이 영원에 가까운 봉인에서도 나의 벗, 나의 마지막 충신들을 지켜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잠들 수 없는 육체를 가지고 1초 1초의 시간의 모래를 손에 움켜쥐며.

하지만, 때때로.

천장의 타일을 세는 것에 문뜩 지쳤을 때.

시각을 차단하면 들려오는 것은 메아리치는 벗의 목소리.

온기를 지닌 인간 여성의 몸에서 벗어난 나와 같이, 영원히 기계의 몸 안에서 지내며, 어리석은 인간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그녀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화인 이 태양왕 `호루스`가 영혼에 남겨놓은 마지막 인간성이 더할 나위 없이 쑤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조금 있으면 끝난다.

바깥의 세계가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설마 현대에도 나와 비슷한 수준의 감응 능력을 갖춘 인간이 태어났다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

이것이라면, 이 모래와 강철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시 한번 벗을 만나러 갈 수 있다.

그리고, 그녀를 이곳에서 해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누비스..."

벗의 이름을, 존재하지 않는 입에 담아 부른다.

그리고, 나의 주변을 맴도는 `풍뎅이`들의 무리가 `그릇`을 내 앞에 데려다 놓기 위해 소용돌이치며, 물결과 같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001

"... ...!"

갑작스럽게 느껴진 무언가, 좋지 않은 감각에 쿠온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이 아닌 어딘가­ 더욱 깊은 곳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행동을 개시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쿠온을 옆에 두고, 클레온은 거대한 `구형(??)`의 수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어째서 수조를 이런 형태로 만든 것이지? 어항처럼…. 공간을 대비 효율을 생각한다면 상자의 형태가 나은 것 아닌가?"

이 방에 들어온 순간 메제드를 제외한 누구라도 느꼈을 의문점을 클레온이 입에 담으면 메제드는 그런 클레온의 의문에 대답하였다.

"그것은, `각이 없는 것`이 재액을 쫓아낸다는 이 땅의 믿음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각이 없는 것?"

메제드가 말한 단어를 그대로 반복하는 클레온을 보며 메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대의 악마는 `각이 있는 곳`에서 찾아온다는 전설이 있어서 말이다. 태양왕의 시대에는 중요한 물건을 `원`이나 `구`의 형태로 만드는 것이 전통처럼 되어있었다."

"특이한 전승이군…. 그럼, 이 수조도 중요한 물건이었다는 건가?"

"그, 그건 잘 모르겠지만…. 으응. 역시 냉각수의 역할이 아니었을까? 금속으로 만들어진 기계는 고열인 채로 놔두면 쉽게 상하니까. 전투를 끝마친 수호병들을 식힐 용으로 말이다."

두 사람의 그런 그다지 의미 없는 이야기를 듣던 베라스톨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 체력이 회복하는 걸 기다리려고 그런 의미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만둬. 이제 움직일 수 있으니까."

"으, 응... 그, 그런가."

그녀의 말에 메제드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면 클레온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쿠온. 이제 다시 출발하려고 하는데, 괜찮아?"

"응... 그것보다 방금, 무언가가 움직인 것 같았어."

경계를 멈추지 않으며 지팡이를 잡은 손에 힘을 넣는 쿠온의 말에, 다른 이들도 표정을 굳힌다.

"이형의 괴물인가, 태양왕인가. 어느 쪽이 됐든, 이 방을 나서면 또 싸움이 격렬해질 것 같군."

"거리는 아직 조금 남았다. 그때까지 체력이 버틸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위치상으로는 바로 이 아래인데 말이다."

메제드의 말에 클레온은, 잠시 자신들이 서 있는 바닥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바로 아래…. 아까 아누비스가 있던 곳에 들어갔을 때처럼 바닥을 부숴서 내려가면…."

"응? 부숴?"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부쉈다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메제드이 그렇게 되물으면 클레온은 뜨끔한 표정과 함께 그녀로부터 시선을 피한다.

"아하하..."

쿠온은 그런 클레온을 보며 마찬가지로 마른 웃음을 내뱉고 베라스톨만이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클레온... 설마 안에 있는 시설을 부수거나 한 건…."

"잠깐 메제드, 무슨 소리 안 들려?"

"말을 돌리려 하지 말고 제대로 대답을­"

클레온이 말을 얼버무리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인지 메제드가 그에게 다가오려 한 순간, 클레온이 그녀에게 달려들어 그녀를 크게 뒤로 밀치며 땅바닥을 굴렀다.

그러자, 발밑이 커다랗게 진동함과 동시에­

쾅! 하고, 무언가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리며 커다란 구멍이 나타났다.

구멍을 만들어낸 것은 무덤의 입구에서 일행을 공격했던 안개와 같은 것­ 초소형의 기계형 병기의 군집.

태양왕의 스카라베 무리였다.

거대한 물줄기와 같이 솟구쳐 올라오는 그것을 바라보며 일행은 식은땀을 흘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구멍을 가운데에 두고, 스카라베의 벽이 만들어지며 일행은 쿠온과 베라스톨, 클레온과 메제드의 두 그룹으로 나누어지는 것이었다.

입구에서의 공격보다도 그 크기도, 밀도도 비교가 되지 않는 파괴 병기의 물결에 서로의 모습마저도 가려지면 클레온은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쿠온!"

"괜찮아 클레온! 베라스톨 씨가 방패로 지켜주고 계시니까…!"

쿠온의 그런 대답에 한시름 놓으면, 메제드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서며, 자신의 지팡이를 잡고 날을 뽑아냈다.

"하아앗!"

그리고, 힘을 주입하는 것으로 날들이 회전하여 바람을 만들어내면 아까와도 같이 스카라베들이 흩어지기는 하지만­

"우웃... 수가 너무 많아서 이 정도의 출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전력을 다해 바람을 만들어내더라도, 스카라베의 숫자들이 아까에 비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탓에 흩어진 공간으로 금방 새로운 스카라베가 치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라는 것은 그다지 적절한 질문이 아니로군…. 어리석은 침입자들.]

그리고 그런 메제드의 말을 가로막듯이 들려온 목소리.

스카라베들을 통해 들려오는, 태양왕의 목소리였다.

"태양왕…! 우리를 너무 내버려둬서 포기한 줄 알았는데…!"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스카라베들이 그를 향해 쇄도하고, 클레온은 이형의 괴물들 용으로 챙겨두었던 소울 이터 메탈의 검에서 열을 발생시키며 휘두른다.

일반적인 검보다는 열기로도 공격이 가능한 이쪽이, 이런 작은 입자와 같은 공격을 상대하는 데에는 유용하다고 판단한 결과였지만.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는지, 가까이 다가온 스카라베는 검이 내뿜는 열에 조금 녹아내리며 그 기세를 약화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수가 많은 탓에 전부를 어떻게 하지는 못하고 날카로운 송곳과도 같이 뭉쳐 클레온의 팔을 스치고 지나간다.

입고 있던 의복은 물론, 그 아래의 피부마저도 찢어발기는 소름 끼치는 위력에 클레온은 식은땀을 흘렸다.

"꺗...!?"

그때, 스카라베의 격류 너머에서 들려오는 쿠온의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에 클레온이 당황하여 소리쳤다.

"쿠온!"

[그런 식으로 짐을 도발하여, 그릇에서 관심을 떨어트리려는 의도겠지만…. 굳이 대답해주마 이방의 마검사…. 너희들을 남김없이 이 사막의 모래로 만들어버리기 위해 잠들어있던 스카라베를 모두 기동시키는 데에 시간을 잡아먹었을 뿐이다.]

태양왕의 목소리에 클레온은 아랫입술을 깨물면서도 검을 휘둘러 스카라베의 벽을 베어내려 하지만 그것마저도 태양왕은 어림없다는 듯이 더 많은 양의 풍뎅이로 이들을 감싸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그런 상황에, 눈을 빙글빙글 굴리며 혼란에 빠진 메제드가 중얼거리자, 클레온은 그녀의 팔을 붙잡는다.

"메제드! 정신 차려! 이 벽을 뚫고, 두 사람이랑 합류 해야 해!"

"그, 그렇지만 이렇게 많은 양을…. 바람만으로는 무리야…!"

완전히 울상이 되어 말하는 메제드를 바라보며, 클레온은 자신이 잡은 검을 보인다.

"바람만으로는 무리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거기에 공격을 더하면 되는 거야. 조금이라도 좋아, 벽을 얇게 만들어서 움직여야 해...!"

"그, 그렇지... 응...! 알았어!"

클레온의 격려, 설득이 통한 것인지 그녀는 다시 한번 잡은 지팡이에 힘을 주입하며 아까보다도 더 강력한 바람을 만들어낸다.

확실히 흩어지는 스카라베의 양은 많아졌지만 역시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하지만, 클레온은 다시 한번 그녀에게 지시하는 것이었다.

"일점돌파다 메제드! 바람을 넓게 흩지 말고 한곳으로 집중해!"

"으, 응!"

그러자, 바람은 좁은 범위로 모여들어 풍압의 칼날처럼 스카라베의 무리를 분쇄한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클레온이 열기의 검을 휘두르면 반쯤 얇아진 스카라베의 벽이 그곳을 중심으로 갈려 나가는 것이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메제드와 클레온이 벽의 틈으로 뛰어들면, 비록 팔다리에 스쳐 베이는 상처가 만들어지더라도 베라스톨과 쿠온이 있는 곳으로 넘어가는 것에 성공한다.

그곳에는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방패와 열기의 방패로 벽을 만들어 쿠온을 지켜내고 있는 베라스톨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신성한 갑주도 스카라베에는 소용이 없는지 군데군데가 파여 들어가 있었고, 마치 우박처럼 휘몰아치는 충격의 폭풍이 그녀의 전신을 같아하고 있었다.

"쿠온! 베라스톨!"

클레온의 목소리와 메제드의 바람이 휘몰아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순간적으로 공격이 멎어 들면, 쿠온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구제할 도리가 없는, 어리석은 침입자들. 너희들의 그런 저항은 시간을 낭비하는 의미 없고 부질한 노력이다.]

"어...!?"

갑작스럽게 바람이 멈춘다.

메제드와 클레온이 동시에 그녀의 지팡이를 바라보면­

지팡이의 안으로 파고든 스카라베의 무리가 그것을 안에서부터 망가트리는 것이었다.

"하, 할아버님의 지팡이가…!"

정밀기계에 모래 먼지가 쌓이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듯이, 지팡이도 끼기긱...하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프로펠러를 정지시킬 수밖에 없었다.

바람의 가호가 사라지면, 고난은 거침없이 네 사람을 덮쳤다.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 죽음의 격류를 막아낼 수 있는 인물은 이곳에는 없었다.

스카라베는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거대한 새의 형태를 취한다.

그것은 마주치는 이들 모두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왕의 휘광을 체현하는 검은 태양의 새.

거대한 날개와 날카로운 부리로 모든 것을 사막에 만재한 먼지로 바꾸어 버리는 존재였다.

이내 그것이 날개를 펼치며 일행을 덮치려 한 순간­

"... 멈추세요! 태양왕!"

목소리를 낸 것은, 쿠온이었다.

그녀의 당당한 목소리에, 태양왕도 스카라베의 움직임을 멈추어 정지한다.

그녀는 베라스톨의 방패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쿠온...!"

"괜찮아 클레온…. 이게, 내가 해야 하는 일. 아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쿠온은 클레온을 돌아보며 그를 안심시키듯 이야기 한 뒤 태양왕의 권속들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당신의 목적은 제 육체이죠. 만약, 당신이 이곳에서 다른 세 사람을 상처 입힌다면, 저는 스스로 목숨을 끊겠어요."

[... ...]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자기 손에 묶어놓은 단검을 보였다.

그것은, 출발하기 전에 클레온이 건네준 물건이었다.

"마력을 사용할 수 없고, 기계의 육체를 가진 당신에게 제 몸을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선택하세요. 태양왕. 그 분노를 잠재우고, 저를 온전히 얻을 것인지. 아니면,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를 기회를 잃어버릴 것인지."

[... 가증스러운 이방의 성직자…. 그릇 주제에 감히 짐에게….]

다음 순간 쿠온의 손이 거침없이 자신의 가슴 위로 올라갔다.

손에 묶인 단검의 칼날 끝은, 그녀의 가슴을 향하고 있었다.

[멈춰!]

그리고, 그것을 막으려는 태양왕의 간절한 외침에 쿠온은 손을 멈춘다.

[빌어먹을 계집...!]

태양왕은 더 이상 무언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스카라베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저를 당신이 있는 곳까지 안내하세요…. 그리고, 나머지 셋에는 손을 대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쿠온의 다음 말은, 클레온을 위해 아껴졌다.

사랑하는 이의 앞에서 꺼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좋다. 태양왕의 이름을 걸고, 네가 약속을 어기지 않는 한…. 그들에게는 손을 대지 않겠다.]

그럼 클레온이 뛰쳐나가려고 하는 것을 베라스톨이 붙잡는다.

"쿠온...! 젠장, 이거 놔!"

"... ..."

베라스톨 역시 찌그러진 투구 사이로 입술을 꽉 깨물며 그런 클레온을 억누른다.

하지만, 베라스톨이 놓는다고 하더라도, 쿠온과 나머지 세 사람 사이에 펼쳐진 스카라베의 벽이 클레온이 그녀에게 달려들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오히려 베라스톨은, 그런 스카라베의 벽으로부터 클레온을 지키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윽고 다시 움직인 스카라베는 마치 발판과도 같이 뭉쳐, 쿠온의 발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가만히 서서 그것을 받아들인 쿠온을 올려 들어 자신들이 만든 구멍을 통해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이내, 쿠온과 클레온의 시선이 마주친다.

그녀의 입이, 조용히 움직였다.

목소리로 이루어지지 않는 말이, 클레온에게 닿았다.

클레온의 발버둥이 멈춘다.

이내, 그녀의 모습은 완전히 지하로 사라져갔다.

그것과 함께 스카라베의 벽은 구멍을 타고 흘러 내려가는 물처럼 사라진다.

다만, 세 사람이 따라오는 것을 막으려 한 것일까.

뚫린 구멍은 스카라베의 무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여 채워져 단단하게 막혀버리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지."

메제드는 이제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유일한 대항 수단이라 할 수 있던 지팡이는 망가졌고, 쿠온을 빼앗긴 일행에게 더 이상 승기는 없어 보였다.

베라스톨의 안에도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녀의 선함을 의심하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하지만 베라스톨 역시 에스카에게서 받은 명령이 있었다.

쿠온의 죽음과, 임무를 완수했다는 두 가지의 감정 속에서 베라스톨은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가장 필사적으로 저항했던 클레온은 천천히 걸어가….

쿠온이 남긴, 그녀의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성스러운 나무의 나뭇가지`를 확인했다.

"...가자. 베라스톨. 메제드."

"클레온...?"

그렇게 말하는 클레온을 두 사람은 조용히 바라봤다.

"쿠온은 우릴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게 아니야. 우리를 믿고, 시간을 벌어준 거야."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가방을 클레온이 대신 맨다.

아직 비장의 수는 온전히 남아 있었다.

승리를 확신했을 태양왕에게 닿을, 유일한 독을 바른 비수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클레온은 눈을 잠시 감았다 뜨며, 그 눈에 결의를 되새겼다.

그 눈빛에는 아직, 포기나 절망이 깃들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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