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225화 (225/506)

〈 225화 〉 선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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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날씨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밝은 날이었다.

햇빛이 제대로 내리쬐지 않는 용의 협곡의 사이에서 살아왔던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정말로 같은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가끔, 의심하고는 했었다.

평소에는 탈체크와 함께 서는 훈련장에, 오늘은 레시아와 함께 선 클레온은 양손으로 목검을 잡은 채 그녀와 마주 보고 있었다.

탈체크는 아이 상대로도 (에스카가 보지 않을 때면) 진검을 사용하여 훈련에 임하지만.

역시 레시아도 그 부분은 에스카쪽에 가까운 의견인지, 클레온과 마찬가지로 목검을 잡은 채 그것을 내려다본다.

"우와~ 요즘은 이런 목검도 나오는구나."

평소에 자신이 휘두르는 성검 `칼라드볼그`과 그 크기도, 모양도 완전히 같지만, 재질만 목재인 그것은.

탈체크가 특별히 주문해 둔 엘레시아의 대장장이 `볼트`가 만든 훈련용의 목검이었다.

물론,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검인 칼라드볼그는 금속이기 때문에 무게는 목검 쪽이 조금 더 가볍겠지만.

안에 철심을 심어 최대한 무게는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탈체크가 이야기하는 것을 엿들은 클레온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목검으로 얻어맞는 것도 상당히 아픈 경험이지만.

그런 것보다도 레시아와 대련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클레온은 조금 마음이 들뜨는 것이었다

"탈체크와는 늘 어떻게 하고 있어?"

레시아가 그렇게 질문하면 클레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대답했다.

"그가 검을 휘두르면, 최대한 그걸 피하면서 내가 그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을 때까지 반복."

"여전히 막무가내네…. 아하하..."

레시아는 그렇게 쓴웃음을 지으면서 검을 잡아 보였다.

레시아 본인은 왕국을 구한 용사이고, 본인도 일단은 왕국령에서 태어난 왕국민이지만.

그녀가 사용하는 검술은,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제국`의 국군검술에 가까웠다.

물론 그 당시, 어린 시절의 클레온은 알지 못하던 사실이었고, 이후에 그녀의 흔적을 쫓으면서 알게 된 내용이었지만.

레시아에게 검술을 가르친 것은, 마검 황제의 통치에 반발한 퇴역 군인 여성이라는 것이었다.

제국과의 전쟁에서 한번 완전히 불탄 뒤, 재건이 진행되고 있는 그녀의 고향을 찾았을 때 몇 안 되는 생존자들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실제로 검술 스승은 탈체크니까. 나도 그쪽에 맞춰주는 게 좋으려나?"

그렇게 말하며 레시아가 살짝 스텝을 밟자.

순식간에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오는 그녀에게 클레온은 전혀 반응하지 못하고.

톡. 하고 자기 머리 위에 가볍게 올라오는 그녀의 목검의 감촉을 느끼고 나서야.

그녀가 마력조차 사용하지 않은 가장 손대중한 공격이 방금의 그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었다.

"... ..."

"... ..."

클레온과 레시아, 양쪽 모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내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레시아가 목검을 떼어내며 허둥지둥 손을 저으며 이야기한다.

"미, 미안 클레온! 사실은 검술을 누군가에게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 방금 건 너무했다, 그렇지? 하, 하하."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클레온은 고개를 젓더니 목검을 바로 잡는다.

"나, 레시아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고 싶어. 그러려면 역시, 평범한 훈련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그런 어린아이의 허황하고 당돌한 말.

만약 탈체크가 들었다면 배꼽 잡고 웃으면서 땅을 굴렀을 것이다.

하지만 레시아는 정면에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고는 잠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대답한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건, 탈체크말고는 클레온이 처음이야."

어딘가 조금은 기쁜 듯한 얼굴이 되어, 그녀는 다시 원래 서 있던 자리까지 돌아가서 다시 한번 자세를 잡는다.

클레온 역시 이번에는 1 합이라도 받아쳐 내기 위해서 호흡을 정돈하고.

자연스럽게, 눈에 마력을 흘려 넣어 동체 시력을 강화한다.

어린 시절의 자신에겐 불가능한 묘기였지만, 어른이 된 후에 터득한 사용법을 다행히 어린 몸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듯했다.

당연하게도, 각인으로 연결되어있던 힘을 끌어오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마력의 컨트롤 정도라면 지금의 자신에게도 가능했다.

"!"

레시아도 그 미약한 마력의 흐름을 감지한 것인지, 클레온이 마력시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약간은 놀란 듯한 얼굴이 되지만­

이내, 눈빛을 날카롭게 하며, 아까와 같이 가볍게 스텝을 밟은 것만으로 한 번의 도약.

그대로 클레온의 바로 앞까지 뛰어 들어와 위에서 아래로 검을 휘두른다.

`큭, 여전히 엄청난 속도다…!`

눈으로 본다고 해서 대응할 수 있냐고 하면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로.

어느 정도 예측을 섞어 검을 움직이지 않으면 그녀의 공격을 받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다만, 기술과는 다르게, 그 부분은 경험에 의지하는 부분이 컸다.

머릿속의 기억이 아닌, 몸에 새겨진 기억이었다.

클레온의 손이 어떻게든 움직여서 레시아의 검을 받아내는 데에 성공하면, 그것은 정말로 아까의 공격을 답습한 것을 먼저 알아챈 것에 의한 요행이었고.

그 뒤에 이루어지는 횡 베기는 그대로 클레온의 옆구리에 때려 박히며 레시아는 그를 베면서 지나가는 것이었다.

"크악!"

따가운 감각이 옆구리를 덮치면, 클레온은 얼굴을 찌푸리며 고통 섞인 비명을 내뱉었다.

자신의 뒤로 돌아간 레시아를 어떻게든 돌아보면, 레시아는 그곳에 선 채 `후우~`하고 호흡을 뱉으며 클레온을 돌아보았다.

이내, 얼굴 한가득 미소를 띠더니 클레온에게 다가와 그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인다.

"마력시는 언제 터득한 거야~! 정말로 열심히 연습했구나!?"

"레, 레시아... 잠깐..."

탈체크도 그렇고, 레시아도 그렇고. 기분이 좋으면 클레온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는 것을 좋아한다.

탈체크가 하는 것은 짜증이 날 뿐이었지만, 레시아가 그렇게 하면 어쩐지 낯간지러운 기분이 들어서 저항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검을 잡는 법도. 상당히 숙련된 사람의 잡는 법이 되어 있어. 역시 탈체크가 실전으로 가르치는 게 효과가 있는 걸까?"

한가지 한가지 지적해 나가며. 클레온 본인도 의식하지 못한, 그때와는 미래의 클레온이기에 가능한 싸움법을, 방금의 1함으로 전부 알아낸 것인지.

레시아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클레온을 한가득 칭찬한 뒤에 무릎을 구부려서 클레온을 끌어안았다.

"우극."

편한 옷을 입고 있었기에 얼굴 전체를 가득 채우는 부드러운 감각과 동시에, 코와 입이 그녀의 가슴에 의해 뒤덮이면 클레온은 자신도 모르게 호흡이 막히는 소리를 내고 마는 것이었다.

레시아의 곤란한 버릇 중 하나는 감정이 벅차오르면 이렇게 사람을 강제로 껴안는 부분이었다.

에스카도, 루티도, 소피아도. 심지어 탈체크도.

사람을 가리지 않고 가까이 있는 상대를 끌어안는 턱에 주변이 이상한 눈으로 보는 일도 있었으면 본인들도 꽤 많이 당황했다는 것 같다.

"있지 클레온. 클레온은 정말로 나를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고 싶어?"

끌어안은 팔에서 힘이 조금 풀리면 클레온은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역시, 내가 흑마의 일족이 원래 살아가던 제국을 멸망시킨 장본인이니까?"

어딘가 조금 슬픈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그렇게 물어보면 클레온은 그런 레시아의 팔을 풀어내고 대답했다.

"그게 아니야! ...레시아를 지킬 수 있으려면…. 레시아보다 강해져야 하니까."

"...나를? 클레온이?"

어째서? 같은 표정이 된 레시아를, 불만인 듯이 클레온이 바라보았다.

그녀는 용사. 사람의 희망을 등에 짊어지고 성스러운 검으로 `악`과 `마`를 멸하는 수호자이며.

그 정점에 서는 존재이다.

그러니까 제국과의 싸움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긴 시간 동안, 누군가를 지키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누군가가 심부름 수준의 부탁을 하더라도 군말 없이 들어주고, 평범한 인간이라면 진작에 포기할만한 일에도 끊임없이 도전한다.

용사의 본분에 누구보다도 충실하면서, 그 길을 끝까지 걸어 나간 인물.

그것이 황금의 용사 레시아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클레온은 그녀가 가진 고독을 지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모두를 지키기 위해, 너무나도 강해진 그녀는.

반대로 너무나도 강해진 탓에, 누군가의 위협이 될 수도 있었다.

만약에라도 그녀의 의지가 잘못된 방향으로 뒤틀린다면…. 세계를 멸망시키는 것조차도 가능한 것이었다.

원초 세계를 파괴한, 황금의 혜성처럼.

"...레시아는 왕국도, 세계도... 수많은 사람들과 나를 지켜줬어. 하지만 나도, 그런 레시아를 지켜주고 싶어."

"...흐응. 클레온은 내가 누군가에게 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조금 심통이 난듯, 클레온의 대답에 레시아가 눈을 가늘게 뜨면,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인다.

"... 레시아가 자기 자신에게 지지 않도록. 내가 레시아를 지킬 거야."

그 말에 레시아는 가늘게 떴던 눈을 완전히 크게 뜬 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생각하듯이 눈을 굴리다가 클레온을 품에서 해방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클레온. 너는..."

레시아가 그렇게 말하며 클레온에게 무언가를 전하려 망설이려 할 때.

"황금의 용사. 레시아."

갑작스럽게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클레온과 레시아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동물을 본뜬 듯한 가면을 쓰고 있는 인물이 서 있었다.

레시아는 고개를 갸웃하지만, 클레온의 눈은 크게 뜨여졌다.

`그녀석이다.`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잊을 수 없는 그 모습.

이차원의 통로를 열어젖히고, 그 너머로 레시아를 추방하던 녀석 중 한 명.

"당신은... 누구시죠? 처음 뵙는데…."

상대방은 가면을 쓰고 있기에 당연하였지만, 레시아는 그런 그를 경계하며 클레온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듯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클레온을 지키듯이 팔을 뻗었다.

"왕국의 평화를 어지럽히는 존재를 방치한 네 죄를 물으러 왔다."

"... ..."

그리고 그 가면의 남자가 말하는 것에 레시아는 놀란 얼굴이 되었다.

클레온 역시 그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루티...!`

그날, 레시아에게 걸려있던 죄목은.

제국의 밑에서 수많은 왕국 군을 학살하는 병기로 사용되었던 악룡 `루티오스`를 숨겨서 보호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녀가 세뇌되어 있었다는 것은 이후에 왕국을 향해 밝힌 내용이지만.

왕국에서 보자면 엄연한 배신행위였다.

"당신은... 왕국의 사람인가요?"

"그래. 나의 이름은 `엘리야`. 만물의 아버지를 섬기는 왕국의 `추방집행관` 중 한 명이다."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밝히는 그를 바라보며, 클레온은 눈을 크게 떴다.

`왕국의... 추방집행관!? 녀석은 왕국의 신하라는 건가…!?`

"그런 직책은 들어본 적이 없네요."

"우리는 네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깊은 어둠과 그림자 속에서 움직이는 존재들이다. 한낱 용사인 네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지."

두 사람 사이에서 침묵이 흘렀다.

"루티는 어떻게 했죠."

"죄를 인정한다는 것인가?"

"당신들이 저에게 어떤 죄를 물으려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심한 짓을 하는 것은 용서하지 않아요."

레시아가 손을 치켜들자, 허공에서 빛무리가 모여들며 7개로 갈라진 칼날을 가진 황금의 성검.

칼라드볼그가 그 모습을 드러내며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

"... ..."

엘리야는 눈을 찌푸리더니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악룡 루티오스는 지금... 나의 동료들이 구속했다. 뿔에 봉인구를 씌워, 그녀는 아무런 저항도 불가능한 상태이다."

"당신들...!"

레시아가 목소리를 거칠게 하며 분노하자, 그녀의 몸에서 신성 마력이 흘러나오며 주변을 뒤덮기 시작했다.

상당한 농도를 가진 신성 마력은 파직, 하고 스파크를 튀기며 주변에 있던 물건들에도 영향을 끼친다.

꽃을 심은 화분이 저절로 깨지거나, 나무 상자에 금이 가서 부서지거나.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목검이 쩍 하고 갈라지는 등, 원한다면 그 마력을 파도처럼 쏟아부어 눈앞의 남자를 집어삼킬 수 있었다.

클레온은, 이렇게나 강한 레시아가 어째서 그때, 이 남자에게 당해 차원의 저편으로 끌려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엘리야는 그런 광경을 보더니 잠시 입을 다물다가 조용히 목소리를 내었다.

"그저 감정의 고삐를 조금 느슨히 했는데도 이 정도의 출력인가…. 확실히, `오리지널`답군."

"...뭐라고요?"

무언가, 걸리는 듯한 말을 한 엘리야를 바라보며, 레시아가 물어보자.

엘리야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는 것이었다.

"주변을 둘러봐라, 용사 레시아. 가만히 서서 힘을 방출한 것 만으로, 주변의 사물을 파괴하는 이 광경을. 네 녀석의 힘은 위험하다. 이 세계에 존재해선 안 되는 힘이야.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겠지. 너무나도 강력한 힘은, 설령 수호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가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 ...!"

그 말을 들은 레시아의 표정은 한 번 경악으로 바뀐 뒤, 이내 남자에게 겨누던 칼끝을 아래로 내린다.

그리고, 주변을 뒤덮던 신성 마력이 서서히 사그라든다.

그녀의 눈에 담겨있던 투지 역시, 천천히 약해지는 것이었다.

클레온은 갑작스럽게 힘을 거두는 레시아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남자가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고, 어딘가 레시아 본인도 느끼고 있는 것이겠지.

"우리 추방집행관은 인간들의 세계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고대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위협을 배제시켜왔다. 용사 레시아. 지금의 너는, 틀림없는 `세계의 위협`이다. 존재해선 안 될, 인류의 적이다."

"나는..."

"그렇지 않아!"

클레온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신체에 이끌린 것일까, 어린애 같은 말투가 되었지만 그런데도 그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레시아는 세계의 적 같은 게 아니야.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 눈을 돌리고 사람들을 구해왔어…! 나도 그렇게 구원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클레온의 외침에, 엘리야는 물론이고 레시아마저 클레온을 돌아보았다.

"클, 레온..."

"흑마의 일족... ... 너는­ 설마?"

엘리야는 그런 클레온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듯했지만, 클레온을 보자 가면 너머의 눈을 조금 크게 뜨며 반응했다.

"...이 아이는 관계없어요. 당신의 목적은, 즉 저를 `죽이는 것`인가요?"

레시아는 엘리야의 시선이 클레온에게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지 목소리를 내어 그의 시선을 자신 쪽으로 돌렸다.

"너를 죽이면, 네 그 성검이 폭주하겠지. 너만큼이나 위험한 존재인 그 성검을 이 세계에서 폭주시킬 수 없다."

"그렇다면­"

엘리야는 레시아의 의문에 대답하듯 손을 비틀었다.

그러자, 파직하고 유리를 깨부수는 듯한 소리가 울리며 허공이 정말로 유리창처럼 깨져나간다.

그리고 그 너머에 보이는 것은 `이차원의 틈새`였다.

"너를 이 너머로 추방하겠다. 영원한 어둠으로 가득한 `차원의 틈`으로."

레시아는 그것을 바라보더니 얼굴을 찌푸린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뒤에 서 있는 클레온을 바라보더니 엘리야를 향해 한 발짝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것이었다.

"... 약속해 주세요. 제가 당신의 명령을 따르면, `루티`에게도, `클레온`에게도 손을 대지 않겠다고."

"...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레시아는, 칼라드볼그를 허리춤으로 되돌리더니 다시 한번 클레온을 돌아보며 그를 안심시키듯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미안 클레온. 저 사람이 말한 대로야. 내가 가진 힘이 모두를 위협한다면…. 나는 용사로서. 세계를 위해 행동해야 해."

"안 돼, 레시아. 잠깐, 기다려...!"

클레온이 손을 뻗어오지만 레시아는 몸을 돌리고 클레온에게서 멀어져 엘리야가 열어젖힌 틈으로 걸어간다.

레시아를 붙잡기 위해 발을 움직였을 때, 시간이 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다음 순간, 클레온의 시야의 구석에 무언가가 보였다.

그것은 검은 그림자­ 클레온과 같은 형상을 취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라는 것을 클레온은 알 수 있었다.

[자아, 선택의 시간입니다. 이대로 그녀를 보내고, 같은 후회를 반복하실 겁니까? 아니면…. 저 남자를 죽여서라도 그녀를 막겠습니까?]

그 검은 그림자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오직 클레온에게만 말을 걸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클레온의 손에는 갈라테아가 들려져 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클레온의 각성하지 않은 갈라테아가 아닌, 원래의 클레온이 휘두르던 갈라테아였다.

이 검의 힘을 사용한다면, `무상멸진`의 힘을 사용한다면.

마검황제 마저 베어낸 힘을 이용한다면, 저 가면의 남자를­

[­레온...]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클레온을 향해 날아들어 왔다.

그 목소리는, 익숙한 목소리였다.

[쿠온...?]

[클레온. 지금, 네가 보고 있는 건, 진짜 과거가 아니야. 이차원의 생명체가 만들어낸, 가능성의 세계일 뿐...]

클레온의 시선은 `검은 그림자`를 향했다.

그는 여전히 입꼬리를 비튼 채로 클레온을 바라보며, 그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 나는 어떻게 하면 되지? 쿠온. 이 세계에서 벗어나려면­]

[... 클레온은 정말, 그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지금, 그 손에 쥔 검을 휘두른다면 분명 레시아씨를 구하고…. 그녀와 함께 지내는 가능성을 잡을 수 있어. ...설령 클레온과 헤어지게 될 거라도, 클레온 네가 행복한 삶을 보낼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해.]

쿠온의 그런 말에 클레온은 잠시 대답하지 못하고 손에 쥐고 있는 갈라테아를 내려다본다.

레시아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

클레온에게는 너무나도 매혹적인 이야기였고, 이길 수 없는 유혹이었다.

[쿠온. 나는...]

[나는 늘, 클레온의 행복을 바라고 있어. 클레온은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지만. 응, 역시 나는. 클레온이 행복해졌으면 해.]

[...무엇을, 할 생각이야?]

클레온의 질문에 쿠온은 잠시 조용해졌다가, 이어서 목소리를 자아냈다.

[클레온이 봉인한 내 안의 천사의 힘을 해방하면. 클레온이 선택한 가능성의 세계를 관측해서 고정할 수 있어. `가능성이 현실이 된 세계`로.]

그녀에게 깃든 천사의 힘은 세계를 창조한 네메아의 힘을 일부였다.

본래 가능성에 불과하여 금방 사라져야 하는 세계라고 하더라도, 옥좌주인 네메아가 관측하는 것으로 실존한 평행세계로 분리된다.

나뭇가지의 가지를 꺾어, 새롭게 심어 또 다른 나무를 자라나게 만드는 행위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옥좌주`라는 모든 것을 초월한 위치에 있는 존재이기에 가능한 것.

만약 쿠온이 천사의 힘으로 그 정도의 일을 하려 한다면…. 모든 힘을 사용하여 존재 자체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쿠온 그건­]

[그 세계에도 분명. 내가, 라일라가. 그리고 사샤가 있어. 분명 클레온이 원한다면 만날 수 있을 거야. 우리는 모두, 클레온에게 구원받았고…. 어쩌면 지금. 누군가가 자기를 구해주길 바라고 있을 수 있어.]

쿠온은 클레온을 안심시키려는 듯이 그렇게 대답했다.

즉, 자기 자신은 사라지지만, 이 세계의 세 사람이 존재하고 있으니 괜찮다는 것이었다.

클레온은 쿠온의 이야기를 듣고, 검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넣었다.

감정에 반응하여, 마력의 불꽃이 검신을 타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다시 흘러간다.

클레온은 검을 쥔 채로 한 발짝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림자가 입꼬리를 비트는 것이 보였다.

"레시아!"

하지만 클레온은 검을 휘두르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울부짖듯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언젠가 이 선택을 또다시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클레온은­ 레시아를 배신할 수 없는 것처럼.

지금까지의 동료들과의 인연을 배신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레시아는 클레온을 놀란듯이 돌아보았다.

손에 들고 있던 마검과, 클레온을 번갈아 보더니 조금 상냥한 얼굴이 되었다.

"강해졌구나. 클레온."

"...윽...!`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레시아의 눈빛에, 이어지지 않는 호흡을 삼키며 말을 이어 나갔다.

"...언젠가…. 꼭. 레시아를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해져서­ 내가, 레시아를 지킬게."

"응."

클레온은 한 발짝 더 앞으로 걸어 나갔다.

마검의 마력은 서서히 사라진다.

"레시아로부터…. 세계로부터. 누구보다 상냥한... 레시아 당신을…."

한 발짝. 더, 그녀에게 가까이 갔다.

"그러니까... 레시아도. 지지 말아줘. 조금만 더, 기다려 줘. 반드시 당신을 구하러 갈 테니까."

클레온의 발걸음이 레시아의 앞에서 멈췄다.

"알았지...?"

"...응! 고마워, 클레온!"

그리고, 다시 한번 언제나처럼 버릇처럼.

레시아는 애정이 어린 손길로 그를 끌어안았다.

몇 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는 이제 클레온에게서 떨어져 `이차원의 틈새`로 통하는 구멍을 통과했다.

"...레시아..."

클레온의 중얼거림과 함께 공간이 서서히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주변의 모든 것이 허상처럼 사라지면, 남은 것은 입꼬리가 아까와 정반대로 아래로 비틀린 `그림자`였다.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그녀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이 남자는 분명 선택을 바꾸었을 텐데.]

요그토스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어느샌가 어른의 모습으로 돌아온 클레온은 조금 허망한 듯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클레온...]

갈라테아의 위로하는 듯한 목소리가, 인제야 그의 귀에 닿았다.

그것을 들은 클레온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뒤. 그림자를 노려보았다.

"너는­"

"당신이야말로. 무엇이 미학이라는 거죠? 어떻게든 클레온이 다른 선택을 하도록 유혹했잖아요. 사람의 과거는 바뀌지 않아요. 선행도 악행도, 우행도, 모두 포함하여 그 사람을 이루는 겁니다."

클레온이 그에게 무언가 하려 하기 전에, 쿠온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화가 난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표독스러운 표정과 격양한 목소리.

그렇게 격노한 쿠온을 보는 것은, 클레온도 처음이었다.

[룰 위반은 룰 위반입니다. 그의 도전도 `실패`였다는 것으로 하죠. 다른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다음 순간, 그림자의 한쪽 팔이 거대한 개의 머리로 변하여 클레온과 쿠온을 덮쳤다.

"큭...!"

클레온이 갈라테아를 휘둘러 그것을 막으려 하면, 그 전에 쿠온이 한쪽 손을 앞으로 내밀더니 신성 마력의 방어벽을 형성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반투명한 벽이, 찬란하게 빛나며 이형의 개 머리를 틀어막으면 쿠온은 여전히 화가 난 얼굴로 요그토스를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사람의 기억에, 가장 후회하는 부분에 파고들어. 유혹하고, 타락시키는 당신은. 악마보다도 더한 악마입니다. `요그토스`. 저는…. 당신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요. 제 소중한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입힌 당신을!"

신성한 방벽이 펼쳐진 상태에서, 한 발짝. 앞으로 걸어 나가자 개 머리는 그 기세에 짓눌려 밀려 나갔다.

[엄청난 출력이군요…. 이것이 별의 의지를 가진 자의 힘입니까? 옥좌주가 당신을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군요. 하지만, 출력 대결로는 당신은 절 이길 수 없습니다. 잊으셨습니까? 이곳은 틴달로스의 뱃속. 이차원의 마력으로 넘쳐나는 공간이라고요.]

다음 순간, 벽면에서도 몇 개씩이나 같은 개 머리가 나타나더니.

그대로 순식간에 쿠온을 방벽째로 덮어버린다.

"쿠온!"

클레온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갈라테아를 휘두르려던 찰나.

[숙이세요.]

라는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려와 본능적으로 몸을 숙이면.

무언가­ 화염을 품은 것이 빠른 속도로 날아와 쿠온을 뒤덮은 개머리들을 찢어발기며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방금, 것은­"

자신이 잘못 본 것은 아니겠지.

다음 순간, 개머리들이 강렬한 화염에 휩싸이며 불타올랐다.

쿠온을 뒤덮고 있던 신성 마력의 방벽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부정한 것을 불태우는, 신성한 불꽃으로.

또각. 하는 소리와 함께 그 방벽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화염의 대검을 손에 잡은 채, 평소의 녹색과 흰색 기조의 성직자의 복장이 아닌.

흰색과 붉은색의 신성한 아름다운 전신 갑주를 몸에 걸치고.

에메랄드빛의 머리카락조차 그 끝이 붉게 물든 여성이었다.

"...고마워요, 갈라틴. 힘을 빌려줘서."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린 뒤, 성검에서 끌어올린 성스러운 화염을 퍼뜨리며 주변의 부정한 모든 것을 태워 나간다.

[거짓말이지...?]

갈라테아가 중얼거리며 쿠온을 바라본다.

"신염의 성녀­ 쿠온이. 당신의 부정을 모두 불태우겠습니다. 이차원의 포식자... 요그토스."

그 당당함은 마치 `레시아`와 같이.

신염의 성녀가 화염의 대검을 치켜들어, 부정한 그림자를 가리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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