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화 〉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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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음 아니, 붉은색을 뛰어넘어 황금에 가까운 찬란한 화염이 틴달로스를 불태우고 소영역을 철거시켰다.
현실을 좀먹는 이차원의 포식자는 그 형체를 더는 유지하지 못하고 그 자신의 나락으로 끌려들어 가듯 소멸해 버렸다.
"하아... 하아...!"
쿠온은 자기 손에서 발현된 갈라틴의 무지막지한 화염을 쏟아 내는 데에 자신의 마력은 물론 클레온의 마력마저도 끌어서 사용한 덕분에.
상당히 지친 기색이 되며 손에서 성검을 놓았다.
그러자, 갈라틴은 그대로 허공으로 떠오르면서 쿠온의 몸 위에 형성되어 있던 순백의 갑주는 그대로 마력으로 화해 흩어지고.
머리카락의 색이나, 성직자의 의복도 원래대로 돌아와 평소의 쿠온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대상의 퇴거를 확인. 고생하셨습니다. 마스터 쿠온.]
갈라틴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렸다고 생각하면 그녀는 그대로 검의 형태에서 모습을 바꾸더니, 붉은색의 화려한 깃을 가진 아름다운 새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일몰과 일출,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새.
피닉스의 모습이었다.
하늘로 높이 날아올라, 방의 안을 한 바퀴 돌면서 남아있는 틴달로스가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그대로 쿠온의 어깨 위로 돌아와 자리를 잡듯이 앉았다.
그 힘의 크기를 생각하면, 쿠온의 양 손바닥 안에 감싸질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한 크기의 모습이었다.
"인간이 아닌 모습을 취하는 성검도 있는 건가."
클레온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그의 허리춤에서 칼리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희가 취할 수 있는 모습은 어디까지나 제어 인격이 가진 `역할`에 가깝게 설정되니까요~]
"역할인가... 응?"
자연스럽게 대답한 칼리번의 목소리에 클레온이 눈을 두세 번 깜빡인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두세 번 쥐락펴락 하면서 체내의 마력 기관에 마력을 흘려 넣으면
"마력을 사용할 수 있어."
"정말이야... 갈라틴이 역마력장을 해제해서 그런 걸까?"
쿠온도 이미 마력을 잔뜩 소모하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안이나 클레온에게서 느껴지는 남아있는 마력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 마스터인 `아누비스`님의 명령을 따라, 새로운 사용자와 계약할 때까지 펼쳐두었던 결계를 해제하였습니다.]
갈라틴의 말에 드디어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쿠온도 클레온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그런 상황에서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베라스톨이었다.
"... ..."
투구를 벗은 채, 어딘가 분한 표정으로 쿠온을 바라보고 있던 베라스톨은, 눈치를 챘을 때 자기 손에서 피가 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불편한 감정을 지워내지 못하고, 침묵을 유지하며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돌리면.
메제드가 잘려 나간 호루스의 머리통을 집어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 호루스 폐하..."
그녀는, 선조가, 그리고 본래는 자신도 충성을 바치고 수호했어야 할 호루스를 속이기 위해 클레온 일행에게 힘을 빌려주었다.
그것은, 아무리 태양왕이 섬겨야 할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현대를 살아가는 타인의 육체를 빼앗으려 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는 그녀 자신의 가치관에 의해서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금 복잡한 감정은 남아있겠지.
과거의 엘카이로, 그곳에 꽃피웠던 찬란한 왕국의 역사는 지금.
이곳에서 막을 내렸다.
그렇게 생각하며 비록 기계의 육체라고 하더라도 생전의 모습과 그리 다를 바가 없는, 차갑게 식은 그녀의 머리를 자기 가슴에 강하게 끌어안았다.
"멋대로 죽이지 마라."
"으엑!?"
그때 갑작스럽게 감겨 있던 눈이 떠지면서 목소리를 내는 호루스의 머리통에 메제드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그녀를 떨어트리고 뒤로 자빠진다.
덕분에 땅으로 떨어진 호루스의 머리는, 데굴데굴 굴러가서 쿠온의 발밑에 부딪히며 멈추었다.
그녀의 시선은 쿠온의 눈과 그 옆에 앉아있는 갈라틴에게 향했다.
"그래... 네 말대로 되었군. 이방의 성직자."
"... 네."
그녀는 어딘가, 분한 표정임과 동시에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인 듯한 얼굴이었다.
그런 표정에서, 더는 그녀가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일까, 쿠온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집어 들었다.
호루스는 가까이에서 쿠온의 눈동자를 바라보더니 이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틴달로스가 우리 모두를 삼켰을 때. 나 역시 과거의 환영을 보았다."
일행은 눈치채지 못했었지만, 호루스 역시 요그토스의 소영역에서 과거의 후회를 직면했다.
수천 년을 쌓아 올린 후회를, 모두 해소할 수 있을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았지만.
자신들의 운명을 크게 비틀어 버린, 자신의 아집이 불러온 이 상황을 끝낼 수 있다면.
그녀는 그 안에서, 본래의 역사와는 다른 선택을 하는 것으로 있을 수 있던 미래를 보았다.
"어떤 길을 가더라도. 나의 왕국은 멸망했다. 싸우다가 멸망할 것인가, 싸우지 않고 멸망할 것인가. 그 대신,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인가, 혹은 인간인 채로 역사의 마지막을 볼 것인가. 그 정도의 차이이다."
"폐하..."
메제드는 그런 호루스의 말을 듣고, 누구보다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착각하지 마라, 메자이. 비록 인간의 삶을 포기했다 하더라도. 내가 다른 선택을 한 것은 혹시나 모를 가능성을 보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지금은 말할 수 있다. 비록, 나와, 나의 가신들을 모두 희생시켰다고 하더라도. 재 한 줌 남지 않은 왕국보다, 쓰러져가는 잔해가 남아있는 `이 세계`가 옳다고."
호루스가 본 또 하나의 미래에서는, 영혼을 기계로 옮기는 기술을 개발하지 않고 모제스를 처형한 덕분에 왕국은 틴달로스에 의해 집어삼켜지며 쌍 소멸했다.
시간 간섭 기술에 대한 지식을 가진 이가 모두 없어졌으니, 틴달로스들도 소멸한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메제드를 비롯한 현재를 살아가는 후손들마저도 단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결말을 맞이했다.
관점에 따라선 깔끔한 결말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비록 멸망한 땅의 잔해에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그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메제드와, 그녀가 지키는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부정하는 행위였다.
"인정하마. 지금 이 땅의 주인은, 너희들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라는 존재는 더는 이 세상에 필요로 되지 않음을."
호루스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일행은 모두 침묵에 잠겼다.
잠시 후, 베라스톨이 입을 연다.
"더 이상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없다…. 시간이 더 지체되기 전에 이곳을 나가도록 하지."
"그, 그렇군. 그대들도 목표로 하고 있던 성검을 찾았으니…."
메제드가 그렇게 이야기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여전히 몸에 걸치고 있던 베라스톨의 갑옷이 무겁다는 듯 어깨를 푸는 것이었다.
"그 갑옷도. 빨리 돌려줘."
"아, 알았다. 나도 이렇게 무거운 건 사양이야…."
메제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에서 갑옷의 조임쇠를 풀려고 하자, 베라스톨이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의 귀를 잡아당겼다.
"어째서 사람이 보는 앞에서 갈아입으려 하는 거야…! 네가 그러면 나도 이 자리에서 옷을 벗어야 하잖아! 이 천연 치녀가!"
"아파파파! 미, 미안! 밖에 나가서 갈아입을 테니까…!"
그런 소란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던 클레온과 쿠온은, 두 사람이 먼저 옥좌의 방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호루스의 머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였다.
"마스터 쿠온. 클레온. 제안이 있습니다."
쿠온의 어깨 위에 올라와 있던 갈라틴이 무언가 이야기를 꺼내려는 듯 목소리를 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그녀를 돌아보면 갈라틴은 쿠온의 어깨에서 내려온다.
"현재의 위치 옥좌의 방에 지하에. 아누비스 님께서 비밀리에 만드신 공간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주시지 않겠습니까?"
갈라틴의 말에 쿠온과 클레온은 서로를 바라보지만, 쿠온의 손에 들려 있던 호루스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뜬다.
"...아누비스가? 어째서…. 나에게도 비밀로 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아누비스 님께서는 호루스 님께도 알리지 않으시고 묘지 내의 시설을 증축하셨습니다."
"사실관계를 묻는 게 아니야! 이유를…. 아니, 아누비스라면 무언가 생각이 있는 것이겠지."
갈라틴의 대답을 들은 호루스는 잠시 침묵하지만, 이내 쿠온은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요. 어째서 저희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쿠온의 대답에 갈라틴은 하늘을 날아오르더니 태양 첨탑의 사출구 안에 숨겨진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그 밑에 숨겨져 있던 계단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갈라틴은 다시 쿠온의 어깨 위로 돌아와 두 사람에게 그 밑으로 내려갈 것을 부탁한다.
쿠온은 호루스의 머리를 손에 든 채로, 어두운 계단의 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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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걸었을까. 꽤 깊은 곳까지 내려가면 아래쪽에서 습기가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자연 마력이 없는 공간에 있었기에 알 수 있었지만.
계단을 따라 밑으로 내려갈수록, 조금씩이지만 마력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주의 발밑이 젖어있어 미끄러울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계단의 가장 아래에 도달하면, 갈라틴이 말한 대로 바닥에 물이 고여 있어, 움직일 때마다 자박거리는 소리가 어두운 복도에 울렸다.
그리고, 아까보다도 뚜렷하게 마력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 공간은…. 뭐지?"
클레온 역시, 조금 가슴이 술렁거리는 느낌이 들어 의문을 표했지만 명확한 답변을 내릴 수 없었다.
마력 자체는 존재하고 있지만, 바깥 평소에 클레온들이 생활하는 곳에 비하면 그 농도는 매우 낮은 편이었다.
그것도 공기 중에 퍼진 것이 아닌, 두 사람이 발을 밟고 있는 물의 안에 마력이 녹아들어 있어서.
은은한 물의 마력 덕분에 마치 물속을 걸어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본래 이 시설 내에 존재했던 `냉각수의 저장시설`은, 지하 깊은 곳에 있는 물을 끌어 올리는 기능이 내재 되어 있습니다. 그 물의 일부를, 이쪽 시설로 흘려보내 조금씩 저장해 온 것입니다."
"지하수를…. 어째서죠?"
"마력을 수용할 수 있는 매개체로써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틴의 말에 클레온은 잠시 이전의 라일라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대기 중에 확산한 마력은 서서히 흩어지며 이동한다, 하지만 식물, 동물, 사물, 그리고 자연계의 각종 물질에 깃든 마력은 흩어지기 어렵고, 오랫동안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인간에게 마력이 깃들면, 마법사의 자질이 있다는 것이고.
도구에게 마력이 깃들면, 그것이 곧 마도구가 된다.
이외에도, 땅의 마력이 깃든 광물, 화염의 마력이 깃든 불꽃, 바람의 마력이 깃든 구름.
자연계의 4대 원소는 역시 자연물에 쉽게 깃들며, 그중에서도 가장 큰 내포 한계량을 가진 것이 바로 `물`이었다.
"지하수에 마력을…. 하지만, 그 마력은 어디서 오는 것이지?"
"본래 지하수에 포함되어 있던 것입니다. 마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물도 만들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다만, 이 땅에 들어오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 영맥이 고갈되어 있으므로 마력을 손실하게 됩니다."
갈라틴의 대답에 호루스는 분하다는 듯이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그래. 지하수로도 이 땅의 풍요를 회복할 수 없는 것은, 역시 영맥이 문제였다."
"그러므로, 아누비스 님은 저에게 `역마력장`을 펼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역마력장은 마력을 없애는 결계가 아니야. 마력의 변화와 흐름을 멈추는 결계지. 즉, 역마력장 안에 들어온 마력은 그대로 고정되어서, 영맥에 관계없이 물 안에서 유지된다는 이야기네.]
갈라테아가 그렇게 대답하자, 갈라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두 사람이 도착한 것은 꽤 넓은 방이었다.
길의 끝에는 밑이 얼마나 깊은지 모를 정도로 한가득 물이 가득 차 있었고.
수면에는 발을 디딜 수 있는 돌로 된 발판과 곳곳에 `연꽃`으로 보이는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식물...!"
호루스의 놀란 목소리가, 공동에 메아리쳤다.
이 땅에 온 뒤 본 식물이라곤 말라비틀어진 나무들의 잔해 정도였는데, 이곳에서 자라나는 연꽃들은 모두 다른 곳에서 보는 것만큼 건강해 보인다.
또 한 가지, 일행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발판을 밟아 넘어갈 수 있는, 방의 중앙.
유일하게, 돌이 아닌 흙으로 된 바닥이 되어 있었으며, 그 주변에도 연꽃과 같은 식물의 줄기 같은 것이 뻗어 올라와 있었다.
흙으로 된 바닥 위에는 신전의 성물을 보관해 놓은 것과 같이, 주변에는 몇 개나 되는 성스러운 부적이 장식되어 있었고.
그 부적들의 중앙에는 흰색 기조에, 황금색의 장식이 부착된 화려한 상자가 놓여 있는 것이었다.
갈라틴이 날아서 그 중앙으로 넘어가면, 그곳에서 그녀는 다시 한번 빛으로 모습을 바꾸어
이번에는, 붉은색에 가까운 분홍빛의 머리카락, 지면에 닿을 정도로 긴 흰색의 사제복.
의복에 붙어 있는 붉은색의 깃털은 쿠온과 융합했을 때 보였던 갑주의 장식과도 비슷한 느낌을 보인다.
붉은색의 눈이 특징적인 정결한 숙녀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변화시켰다.
갑작스럽게 사람의 모습이 되었지만 쿠온과 클레온은 놀라지 않은 채, 그녀가 있는 곳까지 발판을 밟아 넘어간다.
사람이 올라타면 그 무게로 물 밑으로 가라앉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갈라틴은 두 사람이 자신이 있는 곳까지 건너오자, 상자를 집어 들어, 조심스럽게 그 안을 열어 보였다.
그 안에 있는 것은
"...사과?"
클레온이 자신도 모르게 반응한 것처럼,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것은 붉은빛을 띄는 작은 열매로, 표면이 조금 뒤틀려 있긴 했지만 생긴 것 자체는 사과와 굉장히 닮아 있었다.
"... 아냐, 이건"
쿠온은 놀란 얼굴이 되어 그 열매를 보고 표정을 굳혔다.
"이것은 `생명의 열매`라고 불리는 성스러운 나무의 열매입니다."
"생명의 열매...?"
"응. 갈라틴이 말한 대로야. ...고향에 있는 성스러운 나무에서 나는 열매랑 똑같이 생겼어. 굉장히 귀한 물건이라…. 백 년은 커녕, 천년에 한 번도 잘 열리지 않는다고 들었어. 그곳에 남아있는 열매도 한 개밖에 없고…. 무녀의 일에는 그 열매를 관리하고 지키는 일도 포함되어 있거든."
쿠온의 말에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런 귀한 물건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듯이 갈라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갈라틴은 그를 돌아보며 대답한다.
"이것은, 모제스의 연구소에 숨겨져 있던 물건입니다. 그가 호루스님에 의해 숙청된 후 연구소가 불태워질 때, 아누비스 님께서 회수하셔서 보관하신 물건이죠."
"모제스라고!?"
호루스가 그 말에 격양하여 대답했다.
당연하지만, 그녀의 모제스를 향한 증오는 전혀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쿠온 역시, 호루스의 기억을 주입받은 영향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듯 손에 들어간 힘이 강해졌다.
"지금 당장 그 물건을 불태워라…!"
호루스가 말하지만 갈라틴은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기다려 주십시오. 호루스 님…. 이 성스러운 열매를 심는다면, 이 땅의 영맥을 부활시킬 수 있습니다."
"... ..."
분노해 있던 호루스도, 갈라틴의 말에 눈을 크게 뜨면서 입을 다물었다.
"완벽히 부활하는 데에는 정말 긴 시간이 들겠지만…. 영맥의 가호를 잃고 모든 지력을 잃은 이 땅을 부활시킬 수 있는 것은. 이 방법뿐입니다."
갈라틴의 말에 쿠온과 클레온은, 아까 전, 냉각수를 보관하는 장소에서 이야기했던 것을 떠올렸다.
"이방의 성직자여. 모제스가 어째서 생명의 열매를 가졌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은가?"
호루스는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듯이 쿠온에게 질문했다.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전승에 따르면 생명의 열매를 먹은 자는, 강인한 생명력과 죽더라도 부활할 수 있을 정도의 치유력을 가지게 된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인간이 먹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죠. 불로불사의 영약의 재료로도 사용된다는 것도…."
"정말로 그런 힘이 있다면, 자신이 숙청되기 전에 먹어 치웠겠지…. 다른 것은?"
클레온의 질문에 쿠온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아`하고 탄성을 내뱉은 뒤 이야기했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이 세계에는 `생명의 열매`와 대칭되는 `지혜의 열매`라는 것이 있어서. 그 둘이 한자리에 모이면 신의 자리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하, 하지만 이쪽은 아까의 전승보다도 훨씬 그 출처가 애매한 것이라. 무녀의 일족들도 아무도 믿지 않았어. 지혜의 열매라는 것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거든."
쿠온의 대답에 호루스는 잠시 입을 다문다.
그리고는 잠시 후, 대답하는 것이었다.
"지혜의 열매라는 것은 존재한다."
"...네?"
"지혜의 열매라는 것은, 인간의 영혼의 안에서 생성되는 어떠한 `물질`을 이야기하는 옛 방식이다. 사용자에게 무한한 마력을 가져다준다고 하며, 그 마력을 이용하면 어떤 소원이라도 이룰 수 있다고 전해지지."
호루스의 말을 들은 클레온은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무언가를 붙잡았다.
"... `완벽의 결정`."
"그래. 잘 알고 있군. 나의 왕국에서도 완벽의 결정을 찾아 영맥을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결국, 찾아내는 것도 만드는 것도 실패했지만."
호루스의 대답에 클레온도, 쿠온도 눈앞의 열매를 바라본다.
"열매에서 싹을 틔워내기 위해, 아누비스 님은 대량의 마력을 저장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열매를 땅에 심더라도 싹이 피어나지 않겠죠."
갈라틴은 그렇게 말하며, 열매를 집어 쿠온에게 건네주었다.
"부탁드립니다, 마스터 쿠온. 별의 무녀인 당신의 힘을 이용하여, 이 열매를 발아(??)시켜 주세요."
"... ..."
쿠온은 갈라틴의 부탁을 듣고, 열매를 잠시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무녀의 일족에게는, 성스러운 나무를 늘려선 안 된다는 규칙이 전해지고 있어요. 생명의 열매가 아무리 오랜 시간에 걸쳐서 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모체수가 늘어나게 된다면, 열매를 맺는 수도 늘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상에 거대한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쿠온은 호루스와 갈라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하지만, 정말로 꼭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저의 힘이 필요하고, 성스러운 나무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무녀의 사명에 따라, 사람들을 돕기 위해 나무의 힘을 끌어내도록 하겠습니다."
이윽고, 눈을 뜬 그녀의 표정은 결의에 가득 차 있었다.
일족의 규칙, 무녀로서의 법을 어기는 것은 그녀에게도 커다란 각오가 필요한 일이어서, 단순히 인간들끼리 정한 것이 아닌, 세계의 균형을 위해서 부여받은 율법이라고 오래전부터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쿠온은 클레온에게서 들은 대로.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는 욕망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마스터 쿠온."
"아…. 하지만, 식물의 발아를 위해선, 의식이…. 필요해요. 열매의 안에 깃들어 있는 별의 힘을 일깨우는 의식이…."
고개를 숙여오는 갈라틴에게, 쿠온은 쑥스러운 듯 손사래를 치며, 그렇게 대답했다.
"의식. 입니까?"
"네. 그리고, 저 자신도 대량의 마력이…. 그러니까…."
그리고, 얼굴을 붉히면서 클레온을 바라본다.
"아."
그리고, 갈라틴도 무언가를 알겠다는 듯이 그렇게 탄성을 내뱉는 것이었다.
"과연...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더듬더듬. 그녀도 얼굴을 붉힌 채 헛기침하며 대답했다.
쿠온은 멋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호루스의 머리를 갈라틴에게 건네주었고, 반대로 그녀로부터 생명의 열매를 건네받았다.
"...잠깐, 설마"
호루스도 쿠온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눈치챈 것인지 무언가 말하려 하지만, 갈라틴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으며 이야기한다.
"시간이 걸릴 것 같군요. 먼저 바깥으로 나간 두 사람에게는 제가 전달 해 두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인간의 모습을 유지한 채, 발판을 밟고 계단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 안에 두 사람만 남게 되면... 쿠온은 천천히 무릎을 구부려, 조심스럽게 흙을 조금 파내더니 그 아래 생명의 열매를 묻었다.
그 뒤에는, 클레온과 마주 본 채로, 몸에 걸치고 있던 의복을 벗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오해하지 말고 들어줬으면 해. 클레온. 무녀의 힘은 `무아지경`의 상태가 되었을 때 최대한 끌어올려지는데…. 그 방법의 하나가 `황홀경`이라는…. 성적 쾌감을 통해 들어가는 트랜스 상태야."
"아, 응..."
클레온이 그렇게 멋쩍게 대답하자, 쿠온은 여전히 얼굴을 붉힌 상태로 이어서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격렬하게, 해도 돼…. 응. 쾌감을 잔뜩 느낄수록, 빨리 그 상태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정말로?"
클레온이 조심스럽게 물어오면, 쿠온의 몸에서 `스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성직자의 의복이 전부 벗겨졌다.
"사실…. 오랜만이라…. 클레온을 더 강하게 느끼고 싶어….♡"
그렇게,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진 쿠온이 팔을 뻗어오며
조심스럽게, 클레온과 서로를 끌어안은 뒤.
부드럽게, 입을 맞추는 것으로 `의식`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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