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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232화 (232/506)

〈 232화 〉 보답

* * *

000

클레온이 정신을 차린 것은, 모든 환상이 끝난 뒤 자신의 주변을 감싸던 빛이 사라진 뒤였다.

네메아...로 추정되었던 인물의 모습도 사라졌었고, 자신의 품 안에서 쿠온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지만.

몸이 그렇게 차게 식지 않은 것을 보면, 길게 느껴졌던 환상은 마치 이전에 보았던 사샤와의 또 다른 결말처럼.

현실에서는 짧은 시간 동안 보여지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감기에 걸리겠는걸."

클레온은 우선 머리를 저으며, 인상 깊었던 환상 그 자체를 털어내듯이 기분을 전환했다.

자신도 쿠온도 나체인 상태로 몸을 겹친 채로 누워있는 상태.

"정말. 갑자기 두 사람 다 잠들어 버려서 놀랐다구."

그때, 클레온의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면, 그 자리에는 갈라테아가 허리에 손을 올린 채 클레온과 쿠온을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경고...일까. 큰 힘을 사용하는 데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클레온이 느낀 바를 그렇게 이야기하면, 갈라테아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한 뒤에, 클레온의 옷과 장비들을 그의 얼굴 위에 떨어트린다.

"자. 빨리 갈아입어. 그리고, 위를 한번 봐봐."

클레온은 시야를 가리고 있던 옷가지를 치우면서 갈라테아가 말한 대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까까지 없었던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너머로, 푸른색의 하늘이 보이며 구멍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자신들이 싹을 틔운 나무를 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무가 싹을 틔우면서 발생한 빛이, 그대로 천장으로 치솟으며 중간을 가로막고 있던 것들을 전부 소멸시켰어."

"이 나무도 자라나는 데에 햇빛이 필요한 건가?"

"글쎄. 워낙 일반적인 식물과는 다르니까."

갈라테아도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면, 클레온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몸 위에서 잠들어 있던 쿠온을 들어 올려 잠시 갈라테아에게 맡긴다.

"쿠온의 옷을 부탁할게."

"나는 유모나 메이드가 아니야."

`내가 왜`라는 표정으로 볼을 부풀린 채 클레온에게 말해오면, 클레온은 잠시 그런 갈라테아를 보고, 피식 웃으면서 자신도 옷을 입기 시작한다.

"동료지."

"...흥."

갈라테아는 그런 클레온의 대답에 코웃음인지, 질린 것인지 모를 숨소리를 내더니 결국 옆에 가지런히 정돈해 두었던 쿠온의 의복을 그녀에게 입혀주기 시작한다.

"쿠온은 마력 소모가 심해서 한동안은 못 일어날 거야."

"네가 마력을 빨아들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

아까의 정사에서, 그녀의 마력을 모유로 만들어서 쪼옥쪼옥 빨아먹던 갈라테아를 떠올리며, 클레온이 장난스럽게 이야기하자.

갈라테아는 `크흠`하고 헛기침하더니 조용히 대답한다.

"부정은 안 할게."

"... 있지 클레온. 예전에... 라일라와 싸우고 난 뒤. 그 저택에서­ 네가 내게 했던 말. 기억해?"

서로 묵묵히 손을 움직이며, 의복을 챙기던 도중.

갈라테아가 조용히 입을 열며 클레온에게 질문했다.

"내게 동료는 너뿐이라고 이야기했던 거?"

"기억하고 있구나. 솔직히 잊었을 거라 생각했어. 그때보다 지금의 클레온은 훨씬 생기가 넘치고…. 주변에 사람들도 많으니까."

클레온은 갈라테아의 말에 옷매무새를 정리하던 손을 멈춘다.

"있지 클레온. 그건, 그때 내 기분을 맞춰주게 위한 거짓말이었어?"

갈라테아는 어딘가, 불안한 눈빛으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녀와 영혼으로 이어져 있었기에, 클레온은 그녀가 느끼는 약간의 혼란스러움과 질투. 그리고, 조금의 후회.

소용돌이쳐서 끈적끈적하게 얽혀 있는,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그녀 안에 자리 잡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선 그녀의 질문에 대답해야겠지.

클레온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똑바로 갈라테아와 눈을 마주친 채, 그녀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아니. 적어도 그때는, 거짓말은 아니었어."

"...그렇겠지.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때의 클레온에게 있어서, 정말로. 100% 믿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나 하나뿐….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갈라테아는 잠들어 있는 쿠온을 내려다보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 저택에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고 쿠온과 라일라, 두 사람을 바라보던 시선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눈빛이었다.

클레온이 복수를 마치고, 독기가 조금 빠진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갈라테아 역시, 다른 인간과의 관계에,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몇 번이고 클레온은 느낄 수 있었다.

"마검사의 힘의 근원은 그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욕망. 부정적인 감정. ...타인을 증오하고, 원망하고, 그들을 이길 수 있도록 힘을 갈구할수록. 나와 너의 힘은 강력해져."

갈라테아는 그렇게 말하며 쿠온의 배 부분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그녀의 힘과 클레온의 의지로 새겨진 `지배의 각인`이 있었다.

"나는 네 마검으로서. 네가 강해질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생각이야. 하지만... 최근 알게 된 게 하나 있어."

그리고, 갈라테아 역시 조금 전의 클레온처럼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검사`의 힘은 분명 어둠에서 나와. ...하지만. `인간`의 힘은 그것과는 다르단 거야."

"... ..."

갈라테아의 말을 듣고 클레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마검사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마검황제와, 그의 마검인 판도라는. 힘을 추구하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힘을 포기했어. 그리고…. 그거야말로 `레시아`를 이길 수 없었고, 아담에게 닿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일 거야."

갈라테아는 그렇게 말하며 클레온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클레온은 달라. 클레온은 절대로,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클레온은 무르니까."

"그래. ...하지만, 무른 건 나 뿐만이 아니야."

클레온은 조심스럽게 갈라테아의 손을 받아 서 들며 그녀의 말에 답했다.

"판도라는 옆에서 마검황제에게 고독해지기를 종용했어. 오직 자신과 그. 두 사람만의 세계를 만들도록 했지…. 그만큼, 판도라의 힘은 강력해졌고."

물리적인 검신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너무나도 강대해진 힘을 봉인하기 위한 껍질일 뿐.

마검을 초월한 듯한 그녀의 힘의 편린을, 클레온은 과거의 환상에서 보았다.

판도라는 마검 황제의 정신에 알게 모르게 간섭하며, 그의 선택을 조금씩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고 있던 것이었다.

오직 자신과 황제에게 새겨진 사명을 달성하게 위하여.

어쩌면, 황제 이전의 모든 전생체들의 마검들이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갈라테아는 달라."

"... ... 우리들 마검은, 사용자의 마음 속 어둠에서 태어나서 그것을 증폭시켜…. 내가 무른 건, 모두 클레온 덕분이니까. 네가 아무리 커다란 어둠을 품는다고 하더라도…."

갈라테아는 자기 손을 붙잡은 클레온의 손을 강하게 쥐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응시하듯이. 절대로 어둠 속에서 완전히 빛을 잃지 않으니까."

그날 밤, 소년이 보았던 한줄기의 섬광은.

소년을 몸을 구하고, 소년의 영혼을 구원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는, 만천의 어둠 속에 반짝이는 별이 짙게 깔린 그 광경이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이었다.

황금색의 용사님과 함께.

001

클레온이 쿠온을 등에 업은 채 계단을 올라, 옥좌의 방으로 되돌아오면.

옥좌에는 몸이 파괴된 채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는 호루스가 머리만 덩그러니 놓인 채였고.

갈라틴은 그 옥좌의 옆에선 채,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내, 마지막 계단에 올라선 클레온에게 갈라틴은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 손을 모아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의식은 무사히 성공하신 듯하군요. 약하게나마, 생명의 나무로 추정되는 기척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짐에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말이다."

갈라틴의 말에 호루스가 `흥`하고 코웃음을 뱉으며 이야기하자, 클레온은 쓴웃음을 지으며 갈라틴에게 이야기했다.

"이걸로 된 건가? 생명의 나무는 확실히 싹을 틔웠고…. 멋대로긴 하지만 천장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서 자기한테 필요한 햇빛도 받고 있어."

"네. 이것으로 됐습니다. 남은 것은 이제, 이곳을 떠나는 것뿐이군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나무는 천천히 영맥을 회복시켜줄 것입니다."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갈라틴을 본다.

"마스터 쿠온은... 마력 고갈 덕분에 정신을 잃으신 듯하군요. 제가 옮기겠습니다. 클레온님께서도, 의식에 참여하셔서 지쳐계실 터."

갈라틴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클레온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조심스럽게 쿠온을 갈라틴에게 옮겨주었다.

"이런 작은 몸으로... 인간의 몸으로. 큰일을 해주셨습니다. 그녀의 성검이 될 수 있었던 것을, 저는 긍지로 여깁니다."

그렇게 말한 뒤, 쿠온을 가볍게 등에 업는 그녀.

역시 외견은 가녀린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녀 역시 성검이기에 신체 능력 만큼은 인간을 초월한 수준이겠지.

"...잠깐. 기다려라 외부인들. 그리고, 성검 갈라틴."

그렇게. 이곳을 떠나려 할 때, 호루스는 옥좌의 위에서 목소리를 높여 둘을 불러세웠다.

그러고 보니, 라고 생각하며 클레온이 몸을 돌리자.

호루스는 그대로 옥좌위에서 머리를 움직이더니 떽데굴 굴러 떨어져서 클레온의 발치까지 와서 `툭...`하는 소리를 내고 멈추었다.

"짐을 데리고 중추 제어실로 가다오…. 아누비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건 상관없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앞으로, 이 무덤을, 이 땅을... 그리고. 이 육체를 어떻게 할지에 관한 이야기니라. 너희들이 종지부를 찍었으니, 마지막까지 책임을 지도록."

다소 억울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그녀의 말에도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기에, 클레온은 어깨를 한차례 으쓱인 뒤 그녀의 머리를 집어 들었다.

... ...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이 전부 사라진 무덤의 통로는 조용하고, 또 불쾌한 감각도 없는 평범한 공간이었다.

다만 호루스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이동 중에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클레온과 갈라틴의 발소리만이 공간 안을 조용히 울린다.

이 어색한 침묵은, 일행이 아누비스와 만났던 곳­ 중추 제어실의 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이 문은 결국 어떻게 여는 건지 모르겠는걸."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호루스는 한숨을 내쉬더니 이야기한다.

"본래라면 짐의 손을 가져다 대는 것으로 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네 녀석들이 파괴해 버렸으니. 안쪽에서 열어주길 바랄 수­."

그렇게 이야기하는 호루스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무거워 보이는 철문이 들어 올려 지면서 일행을 안쪽으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아누비스는 아직 가동 중인가 보군."

그렇게, 문이 열린 중추실로 들어가면, 이곳을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중앙의 제어장치 위에, 아누비스의 기계 육체가 떠 있는 것이 보였다.

"폐하. 직접 뵙는 것은 수천 년만이군요."

아누비스의 메인 카메라가 클레온과 그의 손에 들려있는 호루스를 바라보더니 목소리를 울렸다.

"그래 아누비스. 네 후예가 짐을 배신하고, 이방인들을 돕더구나."

"현명한 아이라서 다행인 것 같습니다."

아누비스의 대답에 갈라틴이 쓴웃음을 지으면 호루스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나는­ 세월에 의한 영혼의 풍화에서. 너를 지키기 위해…. 너를, 그 안에 봉인했어."

호루스는 그렇게 이야기한다.

더는 자신을 `짐`이라 칭하지 않고, 왕의 권위를 벗어버린 그녀가.

그녀의 신하이자 친구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언젠가…. 이 땅에 왕국이 부활할 날을 꿈꾸며…. 그날이 오면, 너를 해방하고…. 다시 함께 지낼 수 있는 날들을 꿈꿨다…. 그런 것, 조금만 생각하더라도 정말로 꿈속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녀의 몸은 기계로 바뀌면서, 인간의 육체였을 때보다도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해졌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더라도, 인간의 영혼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함과 어리석음만큼은 사라지지 않아서.

잘못된 욕망을 향해 폭주하는 자아는, 타인의 제지도 받아들이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 잘못을 깨달은 것이야말로, 호루스가 얼마 남지 않은 육체의 기능으로 가능한 모든 것이었다.

"언젠가­ 먼 미래에, 이 땅의 영맥은 부활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도 되살아날 것이고, 사람들도 다시 마력의 축복을 받은 채 별의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되겠죠. 당신이 이 무덤을 긴 시간 지켜내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던 일일 겁니다."

"...너는 여전히 나를 잘 위로하는구나. 아누비스. 하지만…. 그것이 결과론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결국, 이방인들에게 승리했다면…. 나는."

호루스가 말꼬리를 흐리면, 아누비스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들었던 목소리 중 가장 상냥한 목소리와 함께 호루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요. 호루스. 당신은 나의 왕이며, 친구이자….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아누비스..."

기분 탓일까, 아누비스의 기계 육체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있는 듯했다.

"우리들의 신화에서, 죽은 자의 영혼은 저승의 천칭에 올려집니다. 깃털과 영혼 중 영혼이 더 무겁다면 지옥으로­ 깃털이 더 무겁다면 천국으로 가게 되지요."

"...그래. 분명, 나의 심장은 아래로 향하여 지옥으로 떨어지겠지."

호루스가 그렇게 대답하면 아누비스는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함께 심판관 앞에 서게 된다면. 저의 깃털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설령. 그 무게로도 모자라다 하더라도. 저는 당신과 어디까지나 함께할 것입니다."

"...바보 같은 녀석…. 그러니까 짐 같은 머저리에게도 이용당하는 것이다…."

호루스는 더는 눈물을 흘릴 수 없는 몸이었다.

하지만, 턱 막히는 숨 사이로 간신히 말을 내뱉는 것이었다.

"이방인. 그리고 갈라틴. 폐하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누비스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클레온과 갈라틴을 내려다보았다.

"...마스터..."

갈라틴이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그 호칭으로 부르자, 아누비스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의 마스터는 이제, 제가 아니니까요. 새로운 마스터를, 저보다도 더욱 소중히 여겨주세요. 그리고, 이방인."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클레온이 그녀를 향해 대답했다.

"그래, 뭐지?"

"저의 후예­ 마지막 메자이인 그녀에게 전해주셨으면 하는 물건이 있습니다."

그러자, 무언가가 전송되어 오는 듯한 공간의 뒤틀림이 발생하더니, 그녀의 몸 앞에 파피루스로 된 두루마리가 나타났다.

그것은 천천히 클레온의 손으로 내려와, 그에게 들려졌다.

그것을 받아 서 든 클레온은 봉인된 부분을 바라보더니, 자신이 안을 읽어도 될만한 물건은 아니라고 느껴 그대로 가방에 집어넣는다.

"마지막으로…. 호루스 님을 저에게."

그리고 아누비스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클레온은 손에 들고 있던 호루스의 머리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녀의 머리는 두루마리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상승하여, 이내 아누비스가 있는 봉인 장치의 안까지 들어갔다.

"지금부터, 이 유적의 모든 기능을 정지시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와 그녀의 동력을 유지하고 있던 무덤 내의 제어장치 들도 정지하겠죠…. 저희는 드디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아누비스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소중한 것을 끌어당기듯 호루스의 머리를 잡고 자신의 품에 안았다.

양쪽 모두 기계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그 해후와 마지막은, 부드러움 그 자체였다.

"...작별입니다. 갈라틴. 그리고­ 이방인."

서서히, 두 사람의 주변에 펼쳐져 있던 봉인의 구가 닫히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마지막은, 조용히, 그리고 영원히 이어지는 어둠 속으로.

아누비스와 호루스의 모습은 그렇게 사라지고.

서서히, 주변을 감싸고 있던 불빛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귀에 울리고 있던, 중추 제어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서서히 줄어든다.

"...가죠. 클레온. 아누비스 님께서 무덤의 동력을 완전히 정지시키면, 나갈 때 조금 어두울 것입니다."

"...그래."

클레온 역시,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왕의 무덤은­ 이제 수천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정말로, 안식을 취할 수 있는 무덤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었다.

... ...

클레온이 왕의 무덤을 빠져나오면, 하늘은 여전히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태양 빛은 강하게 내리쬐지만, 오히려 그 강한 태양 빛이 무덤 안에 자리 잡은 나무에게 충분한 빛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참을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아침 일찍 들어온 건 정답이었네. 안에서 몇 시간이나 있던 거지..."

클레온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입구를 벗어난 무덤을 슬쩍 돌아보았다.

"성전사와 메자이는 먼저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돌아가자…. 슬슬 왕도로 돌아가지 않으면."

002

숙소가 있는 마을은 이곳을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황폐하고, 사람들의 표정에는 생기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서든 살아가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클레온은 메제드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은 `어떻게 힘내야 하는지`를 잊어버렸을 뿐, 나름대로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식으로 나름대로 생각의 정리를 마친 뒤 숙소가 있는 장소로 향하려고 하면­

앞에서 갑주도 벗은 채로 베라스톨이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 초조한 표정으로,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베라스톨."

클레온이 그렇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려 놀란 표정으로 클레온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린다.

"...왔나."

"그래. 무덤은 봉인됐어. 태양왕도, 그녀의 마지막 신하도…. 이제 이 세상에 없어."

베라스톨은 클레온의 말을 듣더니 잠시 침묵하다가 클레온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 ...아무래도 좋아. 그런 건. 임무는 완수했어. 성검­ 갈라틴도 회수됐고."

"뭐. 그렇게 말할 거라 생각했지만. ...메제드는?"

"... 자기 집으로 갔다. 망가진 무기를 수리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면서."

베라스톨의 대답을 들은 클레온은 자기 가방을 만진다.

그 안에는, 아누비스의 마지막 부탁으로 전달받은 두루마리가 들어 있었다.

"그래…. 떠나기 전에 만나지 않으면. 출발은 내일인가?"

"... ..."

클레온이 그렇게 질문하자, 베라스톨은 침묵을 이어 나갔다.

"... 베라스톨?"

"... 어째서, 그녀인 거지?"

클레온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 베라스톨은 그 부름에 대답하지 않고 역으로 질문을 해왔다.

그 질문은 클레온을 향한 것이 아니라.

클레온의 곁에 선 채 쿠온을 업고 있는 갈라틴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성녀다. 성검은 `용사`에게 주어지는 것일 터. 성녀가 성검을 잡고 휘두른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어."

베라스톨의 말에 갈라틴은 조용히 있다가 그녀의 의문에 대답하겠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성녀가 용사가 되어선 안 된다는 법칙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 ..."

갈라틴의 대답에 베라스톨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아니 바꾸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태양이라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불태워, 주변에 빛을 비추는 존재. 제가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는 `희생`입니다. 타인을 위하여­ 소중한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

갈라틴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슬쩍, 자기 등에 업힌 채 잠들어있는 쿠온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클레온을 구하기 위해 보여준 모습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자기희생이었습니다. 그를 생각하고, 그를 위해서라면 스스로의 위험도 돌아보지 않는 모습. 비록 그 근간이 죄책감이라고 할지라도­ 그녀의 마음은 진짜입니다."

베라스톨은 그 이야기를 듣고 주먹을 쥐었다.

"그런 건... 나도…."

"알고 있다고 하실 것입니까? 그렇다면, 자신이 저를 잡는 것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자각하시겠지요."

갈라틴의 말에 베라스톨은 주춤, 하고 뒤로 물러섰다.

"저희 성검은 인간의 마음속 어둠에 강하게 반응합니다. 당신은­ 모든 것에서 도망치려 하고 있어요."

"아냐."

"자신의 감정, 자신의 과거, 자신이 진짜 해야만 하는 일. 모든 것에서 도망치고, 그것을 새롭고 이상적인 자신으로 덮어씌웠죠. 그것이, 지금의 당신…. 모든 것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당신의 욕망이, 당신에게 어떤 특별한 힘을 가져다준 것일까요."

"틀려, 나는…!"

갈라틴의 말이 이어지자, 베라스톨은 괴로운 듯 가슴을 쥐어 잡은 채 거칠게 호흡하며.

어딘가,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이 되어 몸을 움츠렸다.

"당신에게서 희생은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저를 잡게 할 수 없어요."

"아, 아아..."

머리를 부여잡은 채, 잊고 싶은 무언가가 머릿속을 뒤덮는다.

그녀의 이상한 반응에, 클레온은 팔을 뻗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갈라틴."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마치, 마스터 쿠온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듯해서…. 그녀를 지키려고."

갈라틴의 이야기에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베라스톨. 안에 들어가서 조금 쉬어 줘. 성검에 관한 것은, 내가 에스카 씨에게 잘 말할 테니까."

"에스카... 님... 아, 아아…. 맞아. 나는. 에스카님을, 위해…."

베라스톨은 그녀의 이름을 듣고 나서야 조금 진정한 듯이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클레온…. 나는…."

그리고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괴로운 표정으로 클레온을 바라보다가.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푸욱 고개를 숙인 뒤.

"나는, 에스카 님을 배신할 수 없어…."

"... ..."

그렇게 말하며 기운 없이 숙소의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클레온은 갈라틴을 돌아보았다.

"쿠온을 부탁해. 그리고…. 베라스톨도."

"...그녀가 가진 어둠은, 그녀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알겠습니다. 마스터 쿠온은 제가 반드시."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인 뒤 양쪽 허리에 자리 잡은 성검과 마검에도 손을 얹었다가 떼어낸다.

그러자, 갈라테아와 칼리번이 그 자리에서 인간의 모습을 취하는 것이었다.

"갈라테아, 칼리번. 잠깐 메제드에게 다녀올 테니까. 이곳은 부탁해."

"하아암…. 외박은 아니시겠죠~?"

칼리번이 하품하며 질문하자 클레온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와는 어제 만났는데. 그럴 리 없잖아."

"어떨는지. 손이 빠르니까 클레온은."

그렇게 자신을 놀리는 두 검들을 뒤로 한 채, 클레온은 발을 옮겼다.

메제드가 지내는 곳은 이 마을 안에서도 가장 제 형상을 취하고 있는 낡은 저택이었다.

바깥에서 보기에도, 슬슬 무너지는 것이 불안해 보이는 다른 건물과는 다르게 관리가 어느 정도 되어있는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낡은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허름한 문으로 가까이 가 문을 두들긴다.

"메제드. 클레온이다. 전해줄 것이 있어서 왔는데."

"으엣!? 크, 클레온!? 자, 잠깐…. 아, 우왓!?"

우당탕쿵탕! 하는 소리가 들리며, 그녀의 비명 같은 것이 들리자.

클레온은 재빨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거기에는 메자이의 의복을 밟고 자빠진 채,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상태의 메제드가 보였다.

다행히, 안에는 옷을 제대로 걸치고 있었지만­

클레온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

"...?"

바로, 메제드의 머리 위에 생겨나 있는 `동물 귀`.

자칼의 것과 비슷한 그것은, 그녀의 머리카락과 비슷한 색이었으며.

아까까지 있던 `인간의 귀`의 위치는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채였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메제드 너…. 수인이었던 건가?"

"트, 틀려! 이, 이건…. 저주, 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말하며 어떻게서든 자리에서 일어선 메제드.

그러면­ 그녀의 키는 아까까지와 비교해서 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으으…. 보여져 버렸어... 이 모습을 다른 사람한테..."

그녀는 얼굴을 감싼 채로 그렇게 중얼거린다.

"...무슨 일인 거야? 대체."

"...우리들 메자이는 필연적으로 엄청난 양의 영혼의 힘을 소모해야 해서…. 태어날 때, 그 영혼의 힘을 충당할 수 있도록 상성이 좋은 `동물령`을 체내에 봉입하는데... 영혼의 힘을 너무 많이 사용하면, 이렇게. 동물령의 영향이 육체에도 나타나게 되는 거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기 몸을 돌아본다.

"...나 같은 경우엔 이렇게, 머리 위에 귀가 생기고, 키가 좀 커지고…. 정확히는 다리가 길어지는 거지만…."

"아아…. 그래서 어젯밤에 만났을 때랑 오늘 아침은 키가 차이가 났던 거로군."

"그, 그래 맞아... 으으….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그녀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감싼 채, 귀를 손으로 눌러 감추려는 듯했다.

"뭐어. 괜찮아. 동물귀를 가진 여자아이는 익숙하니까."

"어... 정말?`

클레온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물론 지금쯤 왕도에서 릴림을 돌봐주고 있을 주황 머리의 사냥꾼 소녀이다.

"그, 그렇다면, 다행. 이고…. 역시, 이방인의 모험가는 뭔가 다르구나."

클레온은 어깨를 으쓱하고,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 한번. 이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인 적이 있어서…. 그때,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는 콤플렉스였거든."

"별로 이상한 건 아니잖아? 전부, 마을을 위해 열심히 훈련이나 일을 한 증거니까…. 응. 그리고, 귀엽다고 생각해."

"귀엽…!"

클레온의 말에 그녀는 여전히 조금 부끄러운 듯 숨길 수 있는 부분은 숨기려는 듯했다.

입가에 헤실거리는 미소가 띄워진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 그런데 어쩐 일이야? 혹시, 벌써 떠나려는 거야?"

"아니. 아누비스에게서 전달해 줬으면 하는 물건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말하며, 가방에서 꺼내든 파피루스 두루마리.

클레온의 말을 들은 메제드는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두루마리를 받아들였다.

"...혹시, 아누비스 님과 태양왕 폐하의 마지막을 이야기해 줄 수 있어?"

"물론이야."

... ...

한차례 그녀들에 관한 이야기를 마친 뒤, 메제드가 내준 차를 입에 털어 넣은 클레온은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두루마리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결국 그 두루마리는 뭐야?"

"나도 아직 내용물은 모르겠어. 확인해 보지 않으면…."

메제드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파피루스의 봉인을 풀어내고, 클레온의 앞에서 양옆으로 펼쳐 보였다.

그리고, 그녀에게만 보이는 두루마리의 내용을 보더니­

"...으엣!?"

펑! 하고 얼굴이 불이라도 난 듯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더니, 두루마리와 클레온을 몇 번이고 번갈아 본다.

"...왜그래?"

"아, 아니. 그... 그게... 하, 하하..."

그리고 명백히 수상한 태도가 되어, 말을 더듬는 그녀를 클레온은 이상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으에... 하지만…. 으응... 아니... 하아."

그리고 다시 한번 두루마리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그녀.

어쩌면, 자신이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것일까.

클레온은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전해줘야 하는 물건은 전했으니까. 나는 이만 가볼게."

"어!? 자, 잠깐만!"

그렇게 이야기하며 떠나려는 클레온의 반응에 놀란 듯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면.

그 충격으로 그녀의 옆에 있던 찻잔이 쓰러지면서 쏟아진 액체가 클레온의 바지에 흩뿌려졌다.

"아아아아앗!?"

다행히 다 식은 상태였기에 클레온은 다치지 않았지만 메제드는 패닉상태가 된 듯이 머리를 붙잡더니 재빠르게 클레온에게 다가와­

그의 바지를 화악! 하고 내려버린다.

"...뭐 하는 거야...?"

덕분에 메제드의 앞에서 속옷 차림이 된 클레온이 당황하여 이야기하면, 그녀는 횡설수설하듯이 이야기한다.

"나, 나 때문에 이렇게 됐으니까! 말려줄게! 그, 그리고. 요, 욕실 써도 되니까!"

"아니... 괜찮은데…."

"그런 말 하지 말고! 자! 빨리 들어갔다 와!"

그렇게 말하며 클레온의 손을 끌고 성큼성큼 욕실로 가는 그녀의 필사적인 태도를 보고.

클레온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003

결국 메제드의 집에서 목욕을 마친 뒤, 클레온이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거실로 돌아오면.

그녀는 메자이의 천을 뒤집어쓴 채 침대 위에 주저앉은 채 또다시 두루마리를 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메제드."

"아... 응. 끝났구나."

조금은 진정한 듯했지만 여전히 어딘가 불안정한 그녀를 바라보며, 클레온은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자, 메제드는 샤샤샥. 하고 뒷걸음질아닌 뒷걸음질을 하며 클레온으로부터 도망가려는 듯이 물러서는 것이었다.

"...혹시 그 두루마리에 쓰인 거, 나와도 관계있는 건가?"

"아니... 응... 솔직히 말하자면, 맞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슬쩍, 메자이의 천을 들어 올리며 맨얼굴을 보인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들 메자이는 영혼의 힘을 써서, 영혼이 굉장히 불안정하거든…. 왕국 시대에는 대량의 메자이가 있었으니까. 분명 그걸 안정화할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할아버님은 말씀하셨었어."

메제드는 그렇게 말하며 두루마리를 내려놓는다.

클레온의 시선도 두루마리를 향하지만, 그것은 엘카이로 특유의 언어로 적혀 있어서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게 뭔데?"

"그, 그건... ... 사랑하는 사람이랑, 몸을 섞어서... 영혼의 연결을 만드는 거라고…."

클레온은 그 말을 듣더니 눈을 두세 번 깜빡인다.

사실 모험가 생활을 하다 보면 유사한 이야기는 자주 듣는 것이고, 비슷한 것은 마법사들도 자주 하는 것이었다.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통로를 통해 좀 더 효율 좋은 형태를 만들어낸다.

그런 것이겠지.

그녀 정도의 소녀라면, `사랑`이라던가 `몸을 섞는다` 같은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렇군. 그래서 그렇게 당황한 거였구나."

"으, 응..."

"뭐. 이 마을에도 또래의 청년이 있을 테니. 너도 마음에 드는 사람 정도는 있는 건가?"

클레온이 그렇게 질문하자 메제드는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젓는다.

"...이, 이 마을에는, 또래의 남자는 없어. 다들 할아버지나…. 아주 어린 아이들 뿐…."

"그런가…. 그럼 몇 년 더 기다려야 하는 건가?"

클레온은 곤란하다는 듯이 이야기하지만 메제드는 조용히 다시 천을 뒤집어쓰더니.

그 아래서 조그마한 소녀의 손이 슬쩍 삐져나와, 클레온의 소매를 붙잡았다.

"... ...메제드씨?"

"클레온, 에게는... 감사하고 있어. 태양왕 폐하라던가, 선조님이라던가... 생명의 열매의 나무라던가... 보, 보답…. 이라고 생각해줘."

"... ..."

그렇게 말하면서, 소매를 붙잡고 있던 손은 조금씩 움직여 클레온의 손목을 붙잡는다.

"그, 그리고…. 이런 모습이 된 나도…. 귀엽다고 해 줬으니까…."

"... 그래도. 만난 지 하루밖에 안된 사이인데?"

"응…. 이상하단 건 알고 있지만. 이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동생 같은 느낌이고…. 역시, 클레온이랑…. 하고 싶어."

그리고, 다시 한번 손이 끌어당겨진다.

뒤집어쓴 천 너머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클레온의 손이 닿았다.

부드럽고, 따뜻한 그것에서는 `두근, 두근`하는 맥박이 느껴져 왔다.

"거기에, 몸을 섞는 것에서 `사랑`이 시작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며, 클레온을 잡아당기며, 함께 침대 위로 쓰러지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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