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236화 (236/506)

〈 236화 〉 귀환

* * *

000

차가운 냉기가 지천에 깔린 북부지방의 마을.

어떻게든 사람 살 구석을 만들어 놓고, 조금씩이지만 발전해 나가던 그곳에서도 범죄자들이 기거하는 감옥이나 숙소에는 자비를 베풀 의향이 없는 것인지.

곳곳에 서리가 끼고, 뼈를 갉아 먹는 듯한 추위가 갇혀 있는 이들 전부를 괴롭게 하며, 고된 노동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주범이었다.

허나, 동정심을 가져선 안 된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중범죄자.

단순히 도둑질이나 길 가다 침을 뱉는 등의 가벼운 수준의 범죄로는 이곳으로 끌려 오지 않는다.

어느 정도 죄질이 무겁지만, 사형까지는 가지 않을 이들이나, 몇 번이고 가벼운 범죄를 거듭해 일으켜서 경비들과도 얼굴 보고 아는 사이가 된 겁 없는 악당들이야말로.

재판받아, 노역형에 처해져서 이곳에 끌려 오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이런 곳에 갇히는 이들 중에는 `사상범`과 같은 위험분자들도 섞여 있었으며.

물리적인 힘을 가진 이가 있는가 하면,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전부 평등하게 다루어져, 손발에 마력을 억제하는 구속 마술이 걸리고, 그 위에 덧붙여서 무겁디무거운 무쇠의 족쇄를 차게 된다.

마법 걸린 족쇄는, 사용자의 근력을 전부 확인하여, 딱 제대로 걸어 다닐 수는 있지만 뛰어다니려고 하면 순식간에 물을 머금은 듯이 무거워지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설령 족쇄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갇혀 있는 곳은 24시간 늘 삼엄한 경비가 배치되어 있으며.

1일 3교대로 8시간 단위로 모든 경비가 번갈아 가며, 번개 같은 눈빛으로 이들의 동향을 살핀다.

설령 한 명이 다른 마음을 먹거나, 매수된다고 하더라도, 지하 3층까지 내려가는 모든 층에는 동시에 3명의 경비가 순찰하고 있으므로.

이곳을 나서기 위해서는 앞으로 11명의 경비를 더 제쳐야만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통로와 계단 그리고 문에 펼쳐진 각종 경계용 마법.

결계를 비롯하여, 감시체제가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위험한 범죄자라도 이곳에 들어오게 되면 한낱 쥐새끼에 불가했다.

아무도 나갈 수 없다, 그 죗값을 치르고 이제 그 몸을 자유롭게 만들어도 된다는 국왕의 명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아니, 설령 국왕이라고 하더라도 잘못된 판결을 한다면 이곳의 감옥에서 범죄자를 내보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당신들은 얼마 전, 이 감옥에서 중요한 범죄자를 한 명 놓쳤습니다. 아니, 보내줬다고 해야겠죠."

차가운 감방 속에서, 본래라면 이곳에 갇혀 지내는 이들을 향해 윽박지르거나, 권위를 보이기 위해 몽둥이를 잡고 철창을 두들겨야 하는 간수는.

범죄자들이 받는 모든 조치를 취해진 채, 차가운 돌의자에 앉혀 몸을 구속당하고, 눈앞의 장신의 여성이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는 `큭….` 같은 그럴싸한 분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사실은 반성 따위는 하고 있지 않았다.

`그분`의 명령을 받아 행한 일이다, 분명 나라를 위한 것임에 틀림없어.

그것을 모르고 있는 눈앞의 수사관 나으리야 말로, 왕국의 번영에 방해가 되는 인간이라고.

남자는 진심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 여성은, 웬만한 성인 남성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키가 커다란 늘씬한 체형의 여성이었다.

목부터 무릎보다 조금 아래까지 내려오는 검은색의 가죽제 코트를 입고, 안쪽에는 셔츠와 바지라는 여자 같지 않은 남성적인 패션과.

머리카락은 베이지가 조금 섞인 은색으로, 역시 다른 여성들에 비하면 충분히 짧은 숏컷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얼굴이 남성적이냐고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뚜렷한 이목구비, 그중에서도 역시 눈에 띄는 것은 날카로우며 차가운 인상을 가진 눈이었다.

그야말로 냉정한, 살얼음과 같은 인상을 가진 그녀는 눈앞의 남성 같은 범죄자를 몇 명이고 심문해 온 경력이 있었으며.

개중에는 그녀에게 매도당하거나, 차가운 눈빛을 받는 것에 일종의 쾌감을 느끼기 시작한 이상자들도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양쪽 귀에 걸려 있는 가문의 문장이라 할 수 있는 작은 황금색 삼각형의 귀걸이가,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흔들거렸다.

"우리는 국왕 폐하의 이름에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하며 입꼬리를 올리는 것을 보고, 수사관은 차가운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간수였던 배신자를 내려다본다.

"아무래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듯하군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양손에 끼고 있던 붉은 색의 가죽 장갑 중, 오른쪽의 가운뎃손가락의 끝을 살며시 잡고 잡아당긴다.

그러면, 바깥의 눈밭 보다도 훨씬 흰색일 것만 같은 가느다라면서도 여성적인 손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극한의 지역에서, 여성들을 만날 기회가 적은 간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그녀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키며 그녀의 손이 스르르 움직이는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이 닿은 것은 그의 머리였다.

"쇼크."

파지직! 하는 스파크를 동반한 높은음이 간헐적으로 울려 퍼지며, 그녀의 손에서 전기가 일어나 남자의 머리를 덮친다.

"크아아아아악!!!"

당연하게도, 남자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며 전신을 비틀어 대지만, 전신에 걸려 있는 구속 덕분에,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물 위로 올라온 생선처럼 펄떡이다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며 전격이 사라지면, 잠든 듯이 `추욱`늘어진다.

"칫…. 이 정도에 기절하다니…."

여성은 남자가 기절한 것을 확인하더니 혀를 차면서 두 걸음 정도 남자에게서 멀어졌다.

이 정도의 심문을 견디지 못한다니, 이곳에 갇혀 있는 범죄자 중 절반 정도를 심문한 전적이 있는 그녀가 보자면.

이곳의 경비들은, 갇혀 있는 범죄자들에 비해서 근성도, 육체적으로도 약하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했지요? 그들은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고."

그리고, 그런 여성을 방의 바깥에서 지켜보다가, 남자가 기절한 것을 확인하더니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

마치, 수사관과는 모든 것을 의도적으로 반대로 만들어 버린 듯한 모습을 가진 소녀였다.

키는 수사관의 가슴보다 조금 낮은 위치에서 성장이 멈추어 있었고, 머리끝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금빛의 머리카락.

그리고, 그 머리카락은 한껏 웨이브가 진 트윈테일로 내려오며, 그대로 도중에 빙글빙글, 잘 세팅된 롤헤어로 얼핏 보면 `드릴`로 보일 정도로 그 볼륨감이 상당했다.

수사관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라는 듯한 웃음을 띠고 있는 표정.

눈앞의 여성과 마찬가지로 신이 직접 빚어낸 듯한 아름다운 조형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지만, 눈이 커다랗고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으며.

입가는 절대로 누구에게도 질 생각이 없다는 듯한, 확신에 가득 찬 미소를 입가에 띄운 뒤 수사관을 바라본다.

몸에 걸치고 있는 옷도, 이런 누추한 곳에 있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고딕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으며.

아직 성장 도중이겠지만, 부풀어 오른 가슴 부분을 비롯하여 검은색의 망사로 이루어진 장갑과 스타킹. 그리고 검은 구두라는.

그야말로 자신의 취향이 확고한 의복을 몸을 걸친 채, 허리에 손을 올리고 삐딱하게 서서 수사관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말한 대로`. 그들이 입을 열지 않은 것에서, 그녀는 어느 정도 확신을 얻고 있었기에.

"자. 이곳을 떠나 왕국으로 향할 준비를 하세요 아스칼론."

소녀가 그렇게 명령하듯이 이야기하며, 머리를 쓸어 넘기면. 수사관 여성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메르카 아가씨. 마차를 수배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공손히 가슴에 손을 얹고 허리를 숙이는 그 모습은 마치 주인에게 모든 충성을 바치는 집사와도 같았다.

그런 그녀의 대답을 듣고, `메르카`라고 불린 소녀는 팔짱을 낀 채,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자아. 트로메이아…. 당신들의 수호가 흔들리려고 하고 있어요. 과연. 어떻게 행동할지…. 방패의 썩은 부분을 꿰뚫리고 싶지 않다면, 조심스러워야 할 겁니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이들에게 조언하듯 중얼거린 뒤, 더 이상 볼 일이 없는 이 차디찬 공간을 당당한 발걸음으로 걸어 나간다.

그리고, 그런 소녀의 뒤쪽으로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아스칼론이 훑으며 지나가는 것은­

바로 자신과 그녀의 주인인 메르카가 심문하여 쓰러트린 모든 간수들의 늘어진 모습들이었다.

001

구 엘카이로 지역에서의 모든 일을 마치고 왕도로 돌아온 클레온 일행은 곧바로 숙소에도 들리지 않고 우선 대신전으로 향해 에스카에게 보고를 마치기로 했다.

자신의 힘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달라는 메제드와의 약속을 뒤로한 채 마차에 올라탄 세 사람이었지만.

베라스톨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갑주를 차려입은 뒤로는 단 한 번도 얼굴이나 표정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침묵만을 유지하며, 왕도에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두꺼운 투구 속의 표정이 한껏 구겨져 있으리라는 것은, 쿠온과 클레온. 두 사람 모두 열어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베라스톨이 선도하여 대신전의 입구를 통과하면, 경비들은 알아서 양옆으로 비켜서며 나머지 두 사람을 안으로 들인다.

그중에는 이전 클레온이 대신전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은 전적이 있는 경비도 있어서.

눈이 마주치면 그는 상당히 껄끄럽다는 듯 표정을 구기지만, 클레온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의 앞을 걸어 지나갔다.

그리고, 에스카가 기다리고 있을 그녀의 집무실까지 거침없는 걸음으로 나아가 문을 열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에스카가 얼굴을 밝게 하며 세 사람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클레온! 돌아왔구나...! 베라스톨, 쿠온 양도, 모두 고생이 많았어요."

세 사람, 특히 클레온의 귀환을 가장 기쁘게 여긴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난 에스카는 그대로 다가와 클레온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심을 느낀 듯, 자상한 어머니와 같이 그를 끌어안아 준다.

"... ..."

베라스톨에게서 엄청난 열기의 시선이 느껴져 오는 것을 느낀 클레온은, 조금 당황해하며 자신을 끌어안은 에스카를 마주 안아주지 못한 채, 이야기한다.

"에, 에스카씨. 두 사람이 보고 있으니까."

"아아, 그랬죠. 죄송해요…. 후후."

에스카는 그런 클레온의 말을 들으며 몸을 떨어트린 뒤,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웃어 보였다.

조금 부끄러운 느낌이 들어, 얼굴을 붉힌 클레온은 이내 베라스톨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면 베라스톨은 역시 클레온을 여전히 불타는 눈빛으로 조금 바라보다가, 헛기침한 뒤 에스카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있던 일들을 가감 없이 모두 설명한 뒤.

쿠온이 소중히 품에 들고 가져온 아름다운 태양의 성검­ 갈라틴의 새로운 소유주가.

바로, 성녀인 쿠온이라는 것을 듣고, 에스카의 표정은 놀라움을 느낀 듯했다.

"쿠온 양이... 갈라틴의 사용자?"

"사태가 긴급해서, 죄, 죄송해요. 어쩌다 보니..."

쿠온은 에스카를 향해 허리를 꾸벅 숙이면서 사과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는 듯 갈라틴의 검신이 은은하게 빛나며 마력을 보이는 것이었다.

에스카는 그런 쿠온과 갈라틴을 잠시 바라보다가, 두 사람 사이에 확연한 연결을 느끼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요. 저도 전례가 없는 일이라서 당황했을 뿐. 성검이 쿠온양을 자신을 잡기에 어울리는 이로 인정했다면. 그 계약에 대해서는 제가 어떻게 의견을 낼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리고 상냥한 얼굴을 보이며 쿠온에게 이야기했다.

그런 에스카의 반응에, 쿠온도 다행이라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해에 감사를 표하는 것이었다.

"어찌됐든, 갈라틴을 회수하는 임무는 무사히 완수.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왕도로 돌아와서 다행이네요."

그렇게 말하는 에스카를 바라보며, 클레온은 잠시 머뭇거리다가도 베라스톨을 향해서 입을 연다.

"이 녀석도 열심히 했으니까. 칭찬해 주라고."

물론 그 말이 향한 것은 에스카의 쪽이었다.

베라스톨은 `뭣...`같은 당황한 목소리를 내다가 에스카 쪽을 바라보고.

에스카는 아주아주 짧은 찰나와도 같은 순간.

얼음장과도 같이 차가운 얼굴이 되었다가, 그것을 미소로 덮으며 웃어 보인다.

"물론이에요. 베라스톨과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며 상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클레온. 쿠온 양. 두 사람 모두 긴 여행에 지쳤을 테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쉬도록 하세요."

에스카의 말에 클레온과 쿠온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작별 인사를 나누며 그녀의 집무실을 천천히 나섰다.

그리고 두 사람이 모두 나가고 집무실의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을 확인한 다음 순간­

쾅! 하는 소리가 울릴 정도로 무서운 마력압이 방 전체를 짓누른다.

"... 베라스톨. 너는, 정말로. 정말로…. 못된 아이구나."

"앗, 윽... 쿳..."

베라스톨은 그 마력압을 느끼는 것만으로 전신이 찌그러지는 듯한 압박감과 숨이 도저히 쉬어지지 않는 공포를 느끼며 패닉 상태에 빠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에, 스카, 님. 죄송, 합니다..."

그저, 눈앞에서 분노를 표하는 에스카를 바라보며 머리를 조아리고, 자비를 구하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중도의 마조히스트인 그녀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부류의 고통과 공포에서는 결코 쾌감을 느끼거나 할 수 없었다.

"저는 당신에게 세 가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나는, 갈라틴을 회수할 것. 둘째는 쿠온을 사고를 위장해서 죽일 것."

손가락을 하나씩 펴가면서 조신 조신 말해오는 에스카를 바라보며, 베라스톨은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하지만 양쪽 모두 실패했죠. 오히려 쿠온에게 갈라틴이 감으로서, 함부로 그녀를 해칠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죽으면 갈라틴이 폭주할 것이고, 그 기회조차 그녀의 감시하에서 무산될 테니까."

그야말로, 틈이 없는 방어체계가 완성되며 에스카는 더 이상 쿠온에게 손을 대는 것이 부담스러워질 정도였다.

"아아... 그것만이 아니죠. 클레온이 당신 따위에게 신경을 쓰게 만든 것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네요."

그리고 조금 전의 클레온의 행동으로 완전히 빡돌아버린 에스카는 그대로 머리를 조아린 베라스톨에게 다가가 천천히 그녀의 머리, 투구를 벗겨낸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의 분홍색 머리카락이 스르륵, 흩어지듯이 떨어지며 땅으로 내려갔다.

"베라스톨. ...설마. 클레온에게 다른 감정을 품거나 하진 않았겠지."

그리고 지옥에서 올라오는 듯한 목소리로 그녀의 귀에 속삭이면.

베라스톨은 몸을 굳혔다가도 곧바로 고개를 들어 좌우로 흔드는 것이었다.

그것이 살아남기 위한 거짓말인지, 아니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인지.

에스카의 눈빛이 그녀를 관통하며 그 안을 살핀다.

"아아... 후후후... 아하하하...!"

그리고, 그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본 에스카는 이내 표정을 바꾸어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너에 대한 벌은 필요 없었나 보네. 스스로를 그렇게나 괴롭히며 자책하고 있는 감정이 전신을 짓누르고 있다니…."

"읏...!"

에스카의 말에 베라스톨은 어딘가 충격을 받은 듯이 주춤, 하고 뒤로 물러섰다.

"알겠어. 베라스톨. 너에 대한 벌은, 너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으로 대신하도록 하자. 부디 그 감정에 스스로 짓눌려 고통받길 바라."

"...죄송, 합니다..."

에스카는 그렇게 말한 뒤, 시선을 돌리는 베라스톨의 턱을 잡고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자. 그럼 마지막 명령에 대한 결과를 들을게. 부탁한 것은, 가지고 왔겠지?"

베라스톨은 덜덜 떨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운반한 가방을 열어젖힌다.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물건들­ 검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방패와 검들.

바로, 그 지하무덤에 보관되어 있던 `소울 이터 메탈`로 만들어진 그것들을 보이는 것이었다.

"...좋아. 이 정도면 `그녀`의 빈 부분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충분할 것 같네."

그리고 에스카도 거기에 대해선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그걸 가지고 연구소에 다녀오렴. 나머지는 그곳의 인간들이 알아서 할 테니."

"...알겠, 습니다. 에스카님..."

그리고 그렇게 차가운 어투로 명령을 내리고 베라스톨은 전이 마법을 사용하여 물건들을 챙긴 채 방에서 사라졌다.

에스카는 아무도 없어진 방의 창밖을 내다본다.

`이슈탈. 세토스. ...당신들과는 분명히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일단은 협력하는 관계…. 하지만. 필요한 열쇠들은 하나둘 나의 손에 모이고 있어.`

그리고, 그녀가 손을 들어 내려다보이는 왕도의 모든 풍경을 움켜쥐듯이 손을 쥐었다.

`반드시... 레시아와 클레온을 위해... 내가 `옥좌주`를...!`

`그날`로부터 단 하루도 잊지 않은 스스로의 맹세를 반복하며 의지를 굳히는 것이었다.

002

대신전을 빠져나온 클레온과 쿠온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두 사람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얼굴을 보러 온 아루루였다.

두 사람이 없는 동안 왕도는 아무탈 없이 지내고 있었으며 아스타로테의 영향력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

그리고 떠나기 전에 이야기해 놓았던 불의 영맥이 잠들어있는 땅에 대한 출입 허가도 곧 떨어질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후후후~"

그리고, 쿠온과 클레온으로부터 두 사람의 모험 이야기를 들은 아루루는 기분이 좋다는 듯이 콧노래를 울렸다.

"기분이 좋은 것 같은데."

"그야 그렇지. 두 사람이 무사히 돌아와 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쿠온이 `용사`가 되었다는 게 기뻐."

"내가...?`

쿠온이 고개를 갸웃대며 의문을 느끼면, 아루루는 대답한다.

"응. 어릴 때부터 용사인 게 당연했던 나지만…. 정작 주변에 같은 또래의 용사는 없었거든. 그러니까­"

"어머. 그것은 조금 틀린 것이 아닌지."

무언가 이야기의 방향이 좋은 이야기로 흘러가려던 찰나.

그런 세 사람의 감상을 방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성검 사용자`라면. 당신의 주변에 저도 있었잖아요?"

자신도 모르게 그쪽을 바라보면­ 그곳에는 금발의 롤헤어를 하는 소녀와.

그런 소녀를 수행하는 장신의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오랜만이군요. 아루루 트로메이아. 마지막으로 직접 만난 것은 10년 정도 전의 일인가요?"

아루루는 자신을 향해 당당히 말해오는 소녀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기억났다는 듯이 표정을 조금 놀란 듯이 바꾸며 이야기한다.

"그 엄청난 드릴 머리... 설마, 메르카 알카디오스...?"

"사람을 여전히 머리카라 모양으로 기억하고 있는 건가요... 뭐, 그 부분은 바뀌지 않은 듯하네요."

메르카는 아루루의 말에 얼굴을 찌푸리지만, 이내 손을 휘저으며 그 이야기는 됐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알카디오스... 알카디오스 후작 가문인가."

"어머. 생각보다 공부를 잘 하는 듯하네요. 마검사 클레온."

자신의 가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대견하다는 듯 칭찬해 오지만, 후작 가문은 공작 가문 다음으로 가는 권력을 가진 지위의 가문이다.

그중에서도 알카디오스 가문은 과거 트로메이아 가문과 비교하더라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명문가라는 이야기를 아루루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근거지를 왕도에 두지 않고, 자기 영지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 것 때문에 왕도에서는 지방 귀족이라는 인식이 큰 가문이기도 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나에 대해서도 알고 있고."

"그야, 한 차례 조사를 마쳤으니까. 이번 일에 대해서는."

"이번 일...?"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클레온은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며 되묻는다.

"마검사 클레온. 성녀 쿠온. 그리고­ 당신들의 숙소에 있을 마법사 라일라. 세 사람은, 제 일을 도와주셔야겠어요."

"잠깐. 그렇게 갑작스럽게…. 애초에 일이라는 게 뭔데?"

클레온은 멋대로 그렇게 이야기 해오는 여성을 바라보며 묻는다.

"­메르카는 왕국의 특무수사관이야. 각종 지역에서 일어나는 범죄 사건의 진상을 쫓는 것이 일이고."

그것에 대해 아루루가 대신 대답하면 메르카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가 말한 대로에요. 그리고 제가 지금 쫓고 있는 것은­ 탈옥하여 도주 중인 범죄자입니다. 클레온과 쿠온, 두 사람과 관련이 있는."

"... ... 잠깐­ 설마."

클레온의 불안은 서서히 현실로 바뀌어 가는 듯했다.

쿠온 역시 그녀의 말의 의미를 깨달은 것인지 품에 안고 있는 갈라틴을 더욱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 범죄자의 이름은. 알베인. 과거, 당신들과 같은 파티에 소속되어 있던 `용사 나부랭이`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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