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7화 〉 번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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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들의 가문이 늘어있는 거리에서 트로메이아 가문의 저택이 어디 있냐고 물어본다면 사람들은 보통 `어느 쪽?`이냐고 되물을 것이다.
외부인에게 있어서는 그 대답에 의미를 잘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왕도에 사는 귀족들에게는 당연하였다.
그야 그렇겠지. 실제로, 왕도 내에는 트로메이아 가문의 저택이 두 채 위치하고 있었다.
하나는, 클레온과 일행들이 수시로 방문하며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는 퍼시스 트로메이아가 거주하는 대저택.
퍼시스 본인은 국정이 바빠서 아주 가끔 밖에 저택에 돌아오고 있지 못하고, 거의 대부분 시간은 왕궁의 집무실에서 보내지만.
엄연히, 이 왕도에서도 왕성 다음으로 긴 역사를 자랑하는 건물이었으며, 왕국의 방패의 위엄 그 자체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귀족들이나 사람들은 존경의 의미를 담아 그 저택을 `트로메이아 대저택`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저택.
퍼시스 트로메이아의 남동생이며, 형과 마찬가지로 왕국의 중신인 세토스 트로메이아가 거주하는 저택.
그 크기는 형의 것에 비해서 작은 편이었지만 웬만한 귀족 가문의 저택들과 비교하면 조금 더 큰 수준으로.
퍼시스가 오렐리아와 결혼할 때, 세토스가 `형님의 부부 관계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라면서 따로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제는 완전히 또 하나의 트로메이아 저택으로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으며, 퍼시스 경의 저택과 비교하기 위해 `트로메이아 소저택`이라고 불린다.
자연스럽게 형과 비교당하는 이름이었지만, 세토스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내색이었다.
굳이 그런 거로 기분이 상하기에는 형도 자신도 따로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다.
게다가, 귀족 거리의 중심지에 떡하니 있는 트로메이아 대저택과 다르게.
세토스가 거주하는 소저택은, 그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뒷골목으로 통하는 곳과 가까운 위치에 지어져 있어서.
귀족들은 웬만하면 그 가까이에 다가오지 않는 구석진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뒷공작을 좋아하는 세토스인 만큼, 사람들의 시선이 잘 모이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어느 정도 의도된 것이었다.
덕분에, 좋은 점이 있다고 하면.
사람 하나를 숨기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라는 것이겠지.
마차에서 내리면,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인물이 빠른 걸음으로 소저택의 정문을 통과하여 저택의 안으로 들어섰다.
이틀 정도 일찍, 왕도로 돌아와 있던 세토스는 드디어 자신이 기다리던 남자가 도착했다는 사실에 입가에 미소를 띤 뒤, 두 팔을 벌리며 그를 맞이했다.
"어서 와라, 알베인. 고생이 많았겠구나."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소중한 부하들을 대할 때보다 더한 상냥함이 깃들어 있었다.
"... 당신의 부하들이 저를 보내주더군요. 이게 트로메이아 공작 가문의 힘인 겁니까?"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의 후드를 내리면, 그 안에는 정돈되지 않은 금발에, 퀭한 눈을 가진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며칠 전, 북부 지역의 감옥에서 자신을 아버지라 칭하던 세토스와 만난 그는.
그의 도움을 받아 강제 노역의 감옥에서 탈출해, 왕도로 올 수 있던 것이었다.
지금쯤, 감옥에서는 난리가 났겠지.
간수들은 대부분, 세토스의 부탁이나 명령을 곧이곧대로 들어주는 허수아비와 같은 이들이었다.
아니 상대가 세토스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겠지.
반란군들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구국의 영웅 중 한 명인 그이기에.
위험 지역에 나와 있는 간수들을 누구보다도 생각하며 왕국 병사들의 기본 권리를 주장하는 세토스 트로메이아이기에.
그들은, 세토스에게 열광하고, 심취하며, 그의 판단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따르는 것이었다.
세토스는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알베인에게 그것을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저, 지금은 순수하게 그가 그 얼음 지옥에서 빠져나왔다는 사실에 일말의 기쁨을 느끼며 팔을 벌린 채로 알베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알베인은 그런 그를 보며 슬며시 뒷걸음질 치며, 그의 포옹을 거부했다.
"왜 그러느냐. 이 아비가 한 번은 안아보겠다는데."
세토스가 섭섭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면, 알베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아직 당신을 제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내 어머니를 버렸으니까."
"... ...그건"
원망스러워 하는 목소리. 그 얼음 지옥에서 빠져나오게 해준 것은 감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자신의 아버지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아직 부족했다.
그리고 알베인이 말하는 것 역시, 세토스에게 있어서는 뼈아픈 부분이었으며 그의 어머니와 헤어진 것이 자의던 그렇지 않든 간에, 변함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들어다오 알베인. 세츠나와 헤어진 것은, 그녀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정해진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어 아들을 향해 변명의 말을 쏟아 놓는다.
알베인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찌푸려지지만, 세토스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트로메이아 가문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귀족의 견제를 받는다. 그야말로, 피보다도 더한 것이 흐르는 더러운 정치싸움의 판이야. 왕도에서 있는 한 나의 곁에 있는 한 그런 싸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평민이었던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운 짐이고, 잘못하면 그녀의 목숨마저도 위협받을 수 있었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그의 말에 알베인은 주먹을 쥐었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그녀를 버린 것으로 그녀가 살아남았나요? 어머니는 저를 낳고 죽었습니다. 당신에게서 버려졌다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그건..."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변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되살아나지 않는 이상."
알베인의 말에 세토스는 꾹, 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독기로 가득 찬 청년의 눈빛이 자기 심장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포옹은 뒤로 미루자꾸나. 우선은, 네 방을 소개해 줘야지. 한동안은 이곳에서 지내면서 몸을 숨기거라. 쥐새끼들이 네 뒤를 쫓더라도 이곳까지는 쉽게 들어올 수 없을 거다."
"... 쥐새끼?"
"왕국의 수사관이지. 일단은 걱정은 접어두거라,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네가 타인들의 앞에 서는 것은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란다."
세토스의 말에 알베인은 입을 다물고 자신의 아버지 라는 남성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무한한 자신감과 앞날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으며
자신이 누구를 닮은 것인지, 이제는 알 수 있는 듯했다.
"당신이 나를 써서 뭘 하고 싶은 것인지는 모르고, 상관 없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도 하고 싶은 일이 있죠."
"하고 싶은 일이라. 말해보거라."
알베인의 말에, 세토스는 눈빛을 바꾸며 물어보았다.
그가 원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허락하고 도와줄 듯한 기세였다.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간 그 녀석에게 복수하는 것입니다."
"... ...클레온인가."
"거기까지 알고 있었군요. 녀석이 지금 왕도에 있다면, 당신의 힘을 써서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알베인의 말에 세토스는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지금 형수님의 총애를 받고 그녀의 딸과 함께 행동하고 있어. 아무리 나라고 하더라도, 권력과 지위만으로 그를 어떻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은 말이지."
"...지금은?"
세토스는 실망한 눈빛의 알베인을 달래듯이 그렇게 덧붙인다.
"그래. 곧 알게 될 거다. 역사가 긴 가문이라는 것은, 그 안에 늘…. 어둠을 품고 있는 마련이지. 그건 우리 트로메이아 가문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 ..."
알베인은 그런 아버지의 말을 듣고는 잘 모르겠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사용인에게 네 방을 안내하도록 전해두마. 우선은 푹 쉬면서 노동시설에서 잃어버렸던 기력을 되찾는 것에 집중하거라."
그렇게 말하며, 저택을 나서 왕성으로 향하는 세토스를 잠시 바라보던 알베인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메이드복을 걸친 여성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었다.
갈색 피부라는 것에서 이전에 자신을 속였던 `갈라`를 떠올려 불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눈앞의 여성은, 그녀를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다운 외견을 가지고 있었다.
"세토스님께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알베인님."
붉은 머리를 찰랑이며 그렇게 이야기하는 그녀는 살짝 허리를 숙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알베인에게 인사한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은 도저히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이 저택의 시종장을 맡은 `벨릴리`라고 하옵니다."
악마와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알베인을 안내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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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왕도에서 클레온이 묵고 있는 팔라나티아의 관.
거실에는 손님을 맞이한 채, 사샤, 라일라를 포함하여 숙소 내의 모든 사람이 모인 채.
우아한 포즈로 차를 마시고 있는 귀족 소녀를 둘러싼 채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이 되어 있는 것이다.
단 한 명, 소란을 몰고 온 장본인인 소녀 메르카를 제외하고서.
"음! 상당히 훌륭하네요. 이 차를 끓인 건 누구죠?"
"저, 전데요…?"
조심스럽게 한쪽 손을 쭈뼛거리면서 들어 올리는 사샤.
메르카는 대접받은 찻잔을 살며시 내려놓으면서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 정도라면 우리 저택에서 메이드로 일하더라도 문제가 없을 정도네요."
"치, 칭찬해 주시는 거죠?"
"물론이에요! 저희 후작 가문의 메이드라면, 그야말로 귀족의 자제들이 교육받기 위해 찾아오는 일도 있을 정도랍니다."
그렇구나! 하고 안도와 함께 칭찬받은 것에 기쁨을 느낀 사샤가 목소리를 높이지만.
어쩌다 보니 그대로 따라온 아루루는 조용히 그런 메르카를 바라볼 뿐이었다.
"메르카. 알았으니까 `알베인`이라는 그 탈주범에 대해서."
아루루의 말에, 메르카는 후우~하고 다시 한번 차를 들이마신 뒤 따뜻한 입김을 내뱉는다.
그리고는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아루루를 돌아보고는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방금 막 왕도에 도착한 몸이야. 조금은 쉬게 해 줬으면 하는데."
"먼저 찾아온 것은 그쪽이잖아. 이야기는 할 대로 해놓고서 그렇게 뜸을 들이는 건 좋지 않은걸."
드물게 아루루가 타인에 대해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을 보자, 클레온은 조용히 라일라에게 속삭인다.
"...아루루, 묘하게 기분이 좋지 않은걸."
"그야 그렇겠지. 저 드릴 머리, 아까부터 아루루의 질문에 대해서는 교묘하게 빠져나가면서 중요한 정보를 넘기려 하지 않으니까. 인내심이 깊은 아루루라 하더라도 당연히 사나워질 수밖에."
라일라의 말에, 조용히 듣던 쿠온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킨 메르카는 잠시 그 차를 음미하듯 하다가.
이내 눈을 뜨면서 클레온과 그 일행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자기소개를 하도록 하지요. 저의 이름은 `메르카 알카디아스`. 알카디아스 후작 가문의 현 당주이며, 왕국의 `특무수사관` 직책을 가지고 있답니다."
"특무수사관. 왕국영토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사관…. 이라는 거였지."
클레온의 말에 메르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저희가 하는 일은 단순해요.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친 개자식들을 붙잡아서 상응하는 벌을 받게 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따지자면. 또 하나의 왕국의 방패. 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분히 아루루를 의식한 말에, 아루루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알카디아스에겐 다른 별명이 있잖아?"
아루루의 말에 메르카는 입꼬리를 올리면서 후후하고 웃어보았다.
"다른... 별명?"
"네. 부끄럽지만 저희 가문은 예로부터. `왕국의 번견`이라는 천박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그 말에 질문한 클레온을 포함하여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확실히, `번견`이라는 것은 충성스러운 이미지가 있다지만 `수호자` 등의 다른 어감이 좋은 단어들도 많다.
하지만, 그런데도 후작 가문이라는 대귀족에게 붙은 이명치고는 경멸의 어조가 적지 않게 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 저는 좋다고 생각해요! 귀, 귀여운 느낌도 들어서…."
그런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사샤가 목소리를 높이자, 메르카는 조금 놀란 듯이 두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마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그러니. 딱히 그 이름에 대해 부정할 생각은 없어요."
메르카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사샤도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왕국의 특무수사관인 당신이 지금 쫓고 있는 것이…. 북부 노동시설의 감옥을 탈주한 그 멍청이 `알베인`이라는 거야?"
라일라는 결국, 참지 못하고 직설적으로 입을 열어 물어보았다.
메르카는 그런 라일라의 질문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서 이야기한다.
"정확히는 `놓아준 것`이지만요. 그 감옥의 간수들이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그 말에, 아루루는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메르카의 그 발언은 간수들 모두를 무시하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었다.
"북부 지역의 병사들은 하나같이 왕국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이들로만 구성되어 있을 텐데. 대체 누구의 부탁을 들었다는 거야?"
"그야 당연히 네 작은 아버지지. 세토스 경이 알베인 탈옥 며칠 전에 감옥을 찾았다는 정보는 이미 입수해 있어."
그 말에, 라일라가 `칫`하고 혀를 차는 소리를 내뱉으며 턱을 괴었다.
"작은아버지가?"
아루루만이 그 이야기를 듣고 잘 모르겠다는 듯이 표정을 바꾸면, 클레온은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알베인은 세토스 경의 사생아야."
"... ..."
클레온의 말을 듣고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 되어 클레온을 바라보는 아루루.
그리고 그런 클레온과 아루루를 바라보며 즐겁다는 듯이 웃는 얼굴을 띄우는 메르카.
"알고 있었군요? 역시 당신들은."
"알고 있었지만 밝히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혹시라도 세토스 경이 알게 되면 그를 빼낼까 봐."
"그리고 그 걱정은 현실이 되었죠. 간수들은 모두들 세토스 경의 추종자들입니다. 그가 부탁한다면 서로를 찌르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를 정도로요. 수감자 한 명을 빼내는 것은 일도 아니죠."
그녀의 설명을 들은 아루루는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날 수 없는 표정이 되어 있었다.
"아루루…. 괜찮아?"
"... ...아니, 솔직히 별로 괜찮진 않아. ... 작은아버지께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충격이지만 그것보다도 충격적인 건. 그가 사적인 감정을 앞세워서 범죄자를 풀어주는 데에 자신의 지위를 사용했다는 거야."
아루루는 그렇게 말하면서 스스로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우리가 폐하로부터 허락받은 권력은, 모두 백성들의 안녕과 평화를 위한 것인데."
"그 점에 대해서는 완벽히 동의하고 있어. 그 점을 망각한 모든 쓰레기 같은 귀족들보다야 역시 당신 같은 정직한 사람이 낫지."
주먹을 쥔 아루루를 바라보며 메르카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아루루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를 가려는 거야?"
"당연히 세토스 경의 저택이야. 그곳에서 알베인의 모습을 확인하고 제압해서 네게 넘겨줄게."
메르카는 잠시 아루루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젓는다.
"무리라고 생각해. 분명 당신은 본가 퍼시스 경의 친딸. 하지만, 가지고 있는 지위는 `아카데미의 학생`입니다. 방위 대신의 바로 밑의 지위에 있는 세토스 경보다는 분명히 밑 사람. 그가 구실을 대서 당신의 방문을 거부하면, 당신으로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그럼"
아루루가 다른 무언가를 말하려 하자, 메르카는 우선 한 번 한숨을 크게 내쉰 뒤에 아루루에게 이야기한다.
"우선은 진정해. 당신 답지 않아, 그렇게 흐트러진 모습. 10년 만에 만나서 유해진 모습을 보였기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과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부분이 물러져서는 곤란해. 차기 왕국의 방패."
"윽..."
아루루는 그 말을 듣고, 한 방 먹은 듯이 침음성을 내뱉었다.
"아루루. 아쉽지만 지금은 그녀가 말하는 대로야. 당신도, 아무런 방법이나 수단 없이 왕도로 오진 않았겠지? 거기까지 알고 있다면"
"오호호호! 물론이에요 마검사 클레온. 당신, 듣던 대로 상황판단은 빠르군요!"
과장된 웃음소리와 손등을 입에 대고 웃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프라이드 높은 귀족 영애 그 자체였다.
그 모습에 클레온은, 그녀가 전형적인 귀족 소녀인지, 아니면 지위에 걸맞은 실력과 냉철함을 겸비한 여성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상황판단이 빠르다는 칭찬을 들었음에도 말이다.
"간단해요, 저희가 들어갈 수 없다면 그쪽에서 나오게 하면 되는 것이죠."
메르카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검지를 치켜들며 이야기한다.
"뭐. 논리적으로는 맞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
"후후. 듣고 놀라지 마세요, 이 특무수사관 메르카가 떠올린 탈주자 `알베인`포획 작전을."
모두가 침을 삼키며 메르카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저택에 불을 지르면 아무리 알베인이나 세토스라고 하더라도 저택 바깥으로 나와야겠죠? 그러면 그사이에 알베인을 붙잡는 거예요."
"... ..."
정말로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리고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모두가 침묵에 휩싸였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서로의 표정을 살피다가.
결국 라일라에 의해 손등을 꼬집혀진 클레온이 조용히 손을 들면서 묻는 것이었다.
"음…. 그러니까 그건, 수사관 특유의 농담이나. 그런 건가?`
"...? 아뇨. 진심으로 이야기 한 것인데요."
그리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해오는 그녀를 바라보며 클레온은 오른손을 들어, 미간 사이를 주물렀다.
갑자기 눈앞이 침침해진 듯한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잠시만요. 마치 제가 엄청나게 헛소리를 한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 있지만.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알베인을 끄집어내서 잡을 방법은 이거라구요?"
"그렇다 하더라도 방법이 너무 난폭하잖아…."
클레온이 그렇게 중얼거리면 아루루는 이제서야 무언가를 떠올렸다는 듯이 입에서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기억났어. 메르카 너... 어린 시절부터 그런 식이었지. 어떤 일이라도 최고효율과 최단의 기간으로 해결하려고 해서..."
그야말로 저돌맹진. 머릿속의 계산기가 들어있는 것처럼 수지타산, 힘의 역학관계 등에 관해서는 순식간에 도출해내는 것을 보아 머리가 나쁜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결론으로 도달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타인들은 용납하기 힘들어하는 파괴적이고, 저돌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무적의 전차 같은 아가씨이다.
"... 아아. 그런 거군."
클레온은 그제야, 아까 자신이 그녀를 판단하기 어렵게 느꼈던 것을 떠올렸다.
실제로, 그녀는 양쪽 모두 해당되는 인간이었으니까.
"메르카님. 화재는 주변 저택들에도 피해가 갈 위험이 있습니다. 조금 더 온건한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지요."
"그 배상은 전부 세토스에게 맡길 생각이었지만…. 뭐, 알겠어요. 아스칼론 당신이 이야기한다면."
그동안 단 한마디도 안 하고 있다가, 겨우 입을 연 아스칼론의 조언에 메르카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방화가 안 된다면 지금 당장은 딱히 이렇다 할만한 결론이 나오질 않네요. 조금 더 수단을 생각할 필요가 있겠어요."
"세토스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알베인을 쉽게 바깥에 내보내진 않겠지. 아마 자신의 수중에 두려고 할 거야."
클레온의 말에 메르카는 눈을 반짝이며 그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조금은 시간이 있다는 것이겠군요. 좋아요. 알베인을 잡을 때까지 이 왕도에 머물면서, 방법을 좀 찾아봐야겠어요."
메르카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맛있는 차 고마웠어요. 그럼 저희는 잡아둔 여관으로 가볼 테니 클레온."
사샤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시선은 움직여 클레온을 향한다.
"당신은 이미 한 번, 알베인의 심리를 예상하여 계획을 세우고, 그를 무너뜨린 전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번에도 그 힘을 빌려줬으면 하는데. 가능하겠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안 된다고 하지는 못할걸?`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메르카를 향해, 클레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야. 녀석도 분명히 날 노리려고 하고 있을 테니까."
"좋아요. 그렇다면, 클레온. 당신을 저 메르카의 임시 보조수사관으로 임명하겠습니다."
"그래…. 아니, 뭐라고? 잠깐"
그렇게 말하거나 말거나, 메르카에게서 무언가를 건네받은 아스카론이 클레온에게 다가와 그의 손에 무언가를 건넨다.
삼각형의 형태를 한 금속의 마도구였다.
귀걸이일까, 아스카론이 귀에 차고 있는 것과 같은 형태이기도 했다.
"그걸 늘 몸에서 떼지 말고 가지고 있으세요. 제가 신호를 보내면 울릴 테니까 바로 저를 찾아올 수 있도록 하시고. 그 귀걸이가 방향을 알려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막무가내로 귀걸이를 떠넘기고 저택을 떠나는 메르카의 뒷모습을, 일행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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