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5화 〉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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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흔들리는 마차에 몸을 실은 채, 창밖으로 흐르는 광경을 바라본다.
아카데미에서 왕도로 가는 길은 잘 정비된 덕분에 오랜 시간 달리더라도 흔들림이 적은 편이었고, 말들 역시 익숙한 길을 따라 달리는 덕분에 얌전하고 분주하게 다리를 움직일 뿐이었다.
오늘은 어젯밤에 비가 내린 탓인지, 길의 옆 포장되지 않은 초원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주변을 감싸는, 옅은 은빛의 안개 너머의 세계가, 나에게는 미지의 광경으로 보였다.
조심스럽게, 가방의 안에서 고급스러운 봉투를 꺼내 본다.
한번 뜯어낸 밀봉 녹아내린 붉은 밀랍 위에 왕국의 심장, 왕성의 문장이 찍혀 있었다.
안에 들어있던 편지는 이미 한 번 읽었지만 다시 한번 그 내용을 확인하고 싶어진 것이다.
사실, 아카데미에서 지내던 나날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역시 `그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헤어진 후에 보내는 아카데미의 생활에는 조금 무언가 맛이 빠진 껌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무언가 명분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왕도로 달려가서 그와 만날 수 있을 텐데.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던 찰나 도착한 이 초대장은, 그야말로 그녀 자신의 욕망이 현실에 반영되어 일어난 일 같았다.
크게 기지개를 켜자, 마차에 앉아 있는 동안 찌뿌둥해져 있던 몸이 조금은 개운해진 느낌이 들었다.
머지않아 만나게 될 `그`와의 재회를 기대하며 두근거리는 가슴 위에 손을 올리는 것이었다.
001
클레온이 숙소로 돌아온 것은 해가 진 뒤에도 꽤 지난 뒤의 일이었다.
갈라테아가 이야기했던 대로, 라일라는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클레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 놓여 있는 탁자에는, 편지가 한 장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클레온이 돌아온 것을 확인하더니 시선을 그에게 돌리며 이야기한다.
"왔구나 클레온. 다친 곳은 없고?"
조금은 자상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어와 주는 라일라의 목소리에,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배 속에 아기가 생긴 영향일까, 최근의 라일라는 조금 더 독기가 빠져서 어딘가 어른스러운 여유마저 보일 정도였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뭐, 그 정도의 일에 클레온이 다칠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사실은 아스타로테가 엮여 있었고, 제국의 암살자도 자신을 노리게 되었다는 일이 있었지만.
일단은, 그녀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말하는 것은 다른 타이밍을 노리도록 하자.
그러자, 그녀는 잠시 클레온의 표정을 살피더니 이야기한다.
"뭐야. 무슨 일 있었어? 입이 간지러운 것 같은데."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마음속에서 `뜨끔`한 감각을 받으며 클레온이 고개를 젓자.
라일라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듯한 눈길을 보내더니 이야기한다.
"...그래? 잠깐 이쪽으로 가까이 와 봐."
그러더니 휘적휘적, 손을 움직여서 클레온이 자신의 쪽으로 가까이 오도록 하면.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얼굴을 스윽 가까이 대더니.
그대로 클레온의 입에 자기 입술을 겹치는 것이다.
"응...♡"
가볍게 붙었다가, 떨어지고 얼굴을 붉히는 라일라.
그녀의 얼굴에서 정말로 김이 솟아오르는 듯한 착각마저 느껴졌다.
"...왜, 뭐."
그러더니 팔짱을 낀 채로 얼굴을 휙 돌리는 것이었다.
"...라일라 씨? 방금 그건"
"이, 입술이 간지러워 보였으니까! 별다른 이유가 필요해?!"
뭐한 놈이 성낸다고 했었을까, 오히려 자신이 목소리를 높이는 라일라를 바라보며, 클레온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 어쩔 수 없잖아. 안정기에 들어갈 때까지 모, 몸을 섞는 건 무리고. 최근에는 바빠서 잘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데. 불만 있어?"
당당한, 그러면서도 어딘가 부끄러운 듯한 그녀의 말이 끝나자 클레온은 좌우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라일라가 읽고 있던 편지에도 눈이 간다.
"라일라, 이건..."
그 옆에는 편지가 담겨 있던 봉투도 함께 놓여 있었다.
낯에 익는 봉투의 디자인이었다.
"아아, 맞아. 그 이야기를 하려 했던 거야."
라일라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편지지를 집어 든다.
"베아가 왕도에 온대. 그렇게 오래 머물 예정은 아니지만, 이 숙소에서 머무르게 하고 싶어."
"베아가? 무언가, 용건이라도 있는 건가?"
클레온의 질문에 라일라는 조용히 클레온을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뜬다.
"글쎄? 나는 잘 모르겠는데."
"잘 모르겠다니…. 그 편지에 쓰여 있는 거 아니야?"
클레온이 그렇게 질문하자, 라일라는 흥 하고 편지를 바라보더니 이야기한다.
"별로, 여기 쓰여 있던 건, 그냥 언제 왕도에 올 거라는 이야기뿐이야. 그리고, 나와 클레온이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는 글들."
그런 글들로 편지지가 꽉 차서, 아무래도 본론을 빼먹은 것 같아.
라고, 그녀는 대답한다.
베아 답다면, 베아 답다고 해야 할까...
어째선지, 다 쓰고 난 뒤 우체통에 넣고 나서
`앗! 그러고 보니!`라고 발하는 베아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라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 나랑 같은 생각을 했나 본데."
"...아마 그런 것 같아."
라일라는 그렇게 웃어 보이는 클레온을 보더니, 그녀 자신도 씨익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언제 온다는 것 같아?"
클레온이 그렇게 질문하면, 라일라는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무언가를 계산하더니 대답했다.
"어제 출발했다고 하면, 오늘 밤에는 왕도에 도착할 거야. 이곳에 주소에 관한 건 예전에 편지로 이야기해 두었으니까 바로 집으로 오지 않을까?"
라일라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바로 그때.
딩동. 하고, 느긋하게 현관의 벨이 울렸다.
라일라와 클레온의 시선이 교차하였다고 생각한 순간.
라일라가 후다닥, 달려 나가더니 현관 앞에서 심호흡한다.
클레온은 그런 라일라를 뒤에서 바라보며, 팔짱을 끼고 그녀의 행동을 지켜본다.
천천히, 라일라가 손을 움직여 현관문의 손잡이를 돌리고 무거운 철문을 열면
"평안하셨나요~ 클레온 강사님. 당신의 육노예, 리오메스가 찾아왔답니다~ 이곳에 오면서 낀 안개 때문에 초원의 수풀이 젖어 있는 걸 보면서 저도 젖어버렸지 뭐예요?"
콰당! 하고 문이 다시 닫힌다.
두 사람 사이에서 침묵이 흘렀다.
조용히, 라일라가 고개를 돌려 클레온을 바라보았다.
인간이 포용할 수 있는 공포나 그런 부정적인 감정의 한계를 뛰어넘었을 때 나오는, 지독할 정도로 혼란스러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아... 으..."
입이 열렸다, 닫혔다 하면서 흘러나오는 것은 문장이나 단어로 이어지지 않는 아이 같은 목소리였다.
그때 였다.
콩콩콩, 하고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리면 화들짝 놀란 고양이처럼 라일라의 등이 튀어 올랐다.
"히익!"
"저기 강사님? 라일라양? 혹시 잊어버리신 건가요? 저예요 저~! 라일라양의 기둥 자매! 성학과의 수석인 리오메스라구요~?"
"네가 아니야!"
"제가 뭐가 아니라는 거에요~?"
라일라가 히스테릭하게 그녀의 존재를 부정하자, 그녀는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이 물어온다.
클레온은 그런 라일라를 잠시 바라보다가, 각오를 굳힌 얼굴이 되어 현관으로 다가갔다.
뒷걸음질 치며 현관에서 멀어졌던 라일라는 그런 클레온의 손목을 붙잡았다.
"안 돼 클레온! 문 바깥에 있는 건 베아가 아니야! 아카데미 탑클래스 빗치야!"
"...알고 있어 라일라."
"지금 그 문을 열면... 분명 클레온은 미이라가 될 때까지 정기를 빨려 버릴 거야!"
"...리오메스는 서큐버스가 아니야. 그렇지?"
클레온이 라일라를 달리듯이 이야기하면, 문 너머에서 `으응~`하고 고민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큐버스가 아닌 것은 맞지만, 그 행위 자체에는 관심이 없지 않은데요. 들은 바에 의하면 강사님, 다른 분이랑은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에 갇힌 적도 있으시다고…. 어째서 거기에 갇힌 게 제가 아니었을까요.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딱 한 번`만은 합법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인데. 저라면 24시간 정도 강사님을 계속해서 애무해서 꾸욱 꾸욱 농축시키고 눌러 담은 다음에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한 발을 만들어 드릴 수 있거든요~."
망상이나 다를 바 없는 리오메스의 말에 클레온의 등에는 소름이 주르륵하고 달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사정하지 않고 자극을 계속하는 것은 교육 과정에 있으니까요. 검증된 기술이랍니다. 혹시 강사님만 괜찮다면 오늘밤 부터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안으로 들여보내 주신다면, 제가 하나하나 차근차근, 알려드리면서 진행해보도록 할게요~"
"...그 말을 들으니까 열어주게 더 어려워졌는 걸."
클레온은 식은땀을 흘리며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때
"어, 어라? 저기... 아, 네... 그런데요... 아 아뇨!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 저기"
무언가 당황한 듯한 리오메스가,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상대는 문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는 듯,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그 리오메스가 당황해하고 있다는 것에 클레온이 의문을 느끼지만
"저, 저기 강사님? 무언가, 메이드 복을 입으신 검은 머리의 여성분이 저를 수상한 사람 취급하고 베어버리려고 다가오시는데요! 도와주실래요!?`
사태는 조금 더 복잡해질 듯했다.
002
"즉. 그녀는 단순한 변태가 아니라... 클레온이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던 변태 학생이었다는 것이로군요."
루베라는 라일라에게서 차를 건네받으며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사실, 알았다기보다는 그냥 있는 사실을 들은 대로 반복한 것이지만.
루베라 본인도, 자신이 하는 이야기가 뭘 뜻하는 것인지는 제대로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머리가 아파지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렇답니다... 흑흑. 라일라 양도, 강사님도. 저를 무언가의 괴물처럼 취급해서…. 저희가 함께 했던 시간에서 쌓아 올린 유대는, 그런 거짓된 것이었나요!?"
노골적으로 가짜 눈물을 흘리는 듯한 그녀를, 라일라가 짜게 식은 얼굴로 바라본다.
"물론 도움을 받은 것은 맞지만…. 여기는 왕도야. 아카데미의 `성학과니까...`라는 것으로는 음담패설이 용서되지 않는다구."
턱을 괸 채 대답하는 라일라를 바라보며 리오메스는 입을 가리고 웃어 보인다.
노출도가 거의 없는 드레스에, 푸른색의 길게 내려온 머리. 그리고,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빛을 받아 반짝이는 피부와 백옥 같은 얼굴.
여전히. 그 모습만 보면 절세의 미녀, 청순한 여성 그 자체였지만.
머리속이 핑크빛을 뛰어넘어 질 나쁜 음욕의 지옥 그 자체인 리오메스의 압력을 견뎌낼 수 있는 인물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아, 물론, 안쪽의 압력도 마찬가지이다.
"어째서 네가 온 거야. 베아는?"
"잠시 다른 일을 처리하러 왕도에 도착한 뒤에 헤어졌어요. 곧 올 테니까, 그렇게 경계하지, 말아주세요."
베아도 일단은 왕도에 도착한 듯하지만, 오랫동안 잠적해 있던 인물이었던 만큼 신분을 증명하는 것이 조금 힘들었던 탓에 새롭게 신분증을 발급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아카데미에서 그녀의 신분을 보증해 주는 서류를 발행해 주었기 때문에 그것을 관리소에 제출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만.
왕도의 관문에서 클레온의 숙소와 관리소는 반대 방향이기에, 먼저 마차에서 내려 그쪽 일을 처리하러 갔다는 것이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라일라는 그녀의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는지 푸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루베라는 클레온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페르디아가 내 스승을 막으려고 그녀와 싸웠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까?"
"그래. 도중에 연락을 해보았는데 되지 않아서 걱정했어…. 혹시, 만난 건가?"
"그녀라면 수도원에서 자고 있습니다. 상처는 없지만…. 체력이 고갈됐다고 해야겠죠."
루베라는 클레온에게 그녀가 자신의 스승에게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는 아끼도록 했다.
그녀와 결착을 내야 하는 것은 클레온이 아니라 자신이니, 클레온이 그녀에게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은 꺼려졌기 때문이다.
"나중에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겠네."
"그렇게 해 주세요. 그 아이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것 같았으니."
클레온은 그 이야기를 듣더니 조금 씁쓸한 얼굴을 하는 것이었다.
마치, 나에게 그럴만한 가치는 없는데.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손님이 온다고 하면 오늘의 새벽 순찰은 무리겠군요. 그쪽의 상대를 해야 할 테니."
원래라면 정찰 시간이 될 때까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페르디아에게 양보받은 클레온의 옆자리를 조금이나마 길게 느낄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듯했다.
"아니, 그럴 순 없어. 엘 카이로에 다녀오느라 며칠이나 순찰을 다닐 수 없었고."
하지만 클레온은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베아와는 낮에도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뭐. 그렇네. 잘됐네 루베라, 이쪽도 훌륭한 일 중독이라서 말이야."
라일라는 마치 루베라의 심리를 조금은 읽고 있었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그러면 루베라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눈을 지그시 감으며 대답한다.
"그렇다면. 시간이 될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려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야. 피곤하다면 조금 눈을 붙여도 좋아. 내 방을 빌려줄 테니까."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리오메스가 덜컥,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네가 아니야, 앉아 있어."
라일라가 그런 리오메스를 자리에 다시 앉힌다.
"뭐야. 섹스의 이야기가 아니었나요…."
라일라는 아쉽다는 듯한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다시 앉는 것이다.
후우. 하고 엉덩이를 내려놓는 리오메스.
정적이 흘렀다.
"... ..."
리오메스가 말을 한 번 꺼낼 때마다 공기가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그것을 노리고 하는 것이라면, 어쩌면 굉장한 재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 오는 도중 선물로 무엇을 사 오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시장에서 바나나를 발견해서 사 왔답니다. 강사님의 바나나가 있으니 이 집에는 필요 없을지 모르지만요."
아니,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은 재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지.
클레온은 머리가 아파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에게 물어봤다.
"그래서? 어째서 베아와 함께 아카데미에서 이곳까지 온 거야?"
"아아, 그건 말이죠. 제가 왕성에 초대받았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가슴골 사이에서, 왕성의 인장이 찍혀 있는 봉투를 꺼내는 리오메스.
어째서 그곳에서? 같은 사소한 의문은 이제 일일이 지적하지 않는다.
"...리오메스가 왕성의 초대를?"
클레온은 의문이라는 듯이 입을 열지만, 라일라는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이야기했다.
"별로 의문일 건 없잖아? 수석들의 대부분은 귀족들이야. 왕성에서는 1년에 몇 번 정도, 귀족들을 향해 파티의 초대장을 보내. 저것도 그런 것이겠지."
"리오메스도 귀족인가?"
클레온은 그렇게 질문하자 리오메스는 `음~`하고 조금 고민하는 듯 입술 위에 검지를 올려놓고 생각하다가, 이내 대답한다.
"아뇨, 저는 귀족이 아니에요."
"...귀족이 아니야?"
그러자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은 라일라였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녀의 외모는 분명 왕도의 일반적인 귀족들 금발 벽안과는 다르다.
하지만 음란한 비속어를 입에 담지 않았을 때의 그녀는 어딜 보더라도 훌륭한 귀족 영애, 기품 있는 여성이었기에.
그녀가 귀족일 것이라는 사실에는 그다지 의문을 품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귀족이 아니라면 어째서 초대를 받는 건데?"
"아아. 그건 말이죠. 저는 귀족이 아니라 왕족이거든요."
덜그럭, 하고, 모두의 찻잔이 흔들렸다.
"와, 왕족? 네가?"
"네. 아! 물론, 이 왕국의 왕족은 아니에요. 아카데미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동쪽에 있는 작은 나라랍니다. 왕국의 영지 중 하나 정도의 넓이밖에 되지 않아요."
리오메스가 웃으면서 대답하자, 라일라는 그것까지는 몰랐다는 듯이 입을 뻐끔거렸다.
"...터무니없는 학생이로군요."
클레온에게 조용히 말하는 루베라, 그녀의 말대로라고. 클레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과는 화평조약을 맺고 있어서요. 아마, 저에게도 파티에 참여해 달라는 것이겠죠. 매년 참석했던 행사니까요."
리오메스는 평소에는 지루한 행사지만, 올해는 조금 다를지도요. 라고 말하며 클레온에게 눈웃음을 지어보았다.
"그럼 베아도 그 행사에 참여하는 건가?"
"맞아요. 귀족의 지위도 되찾았을 겸, 조금은 그 사회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말이에요."
리오메스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라일라는 미묘한 표정이 되었다.
"베아가 귀족 사회에 물든다라…."
"물든다, 라기보다는 배운다. 라고 하죠."
리오메스가 그렇게 지적하자 라일라는 그 말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정확히는 어떤 행사인거지?"
"곧 있을 승전 기념일의 전야제 같은 거죠.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 말이에요. 귀족의 청년과 영애들이 모여서 가면을 쓰고 모이는 자리랍니다. 일종의... 사교 파티이죠."
사교 파티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는 라일라가 시답지 않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아루루도 참여하겠군."
"물론이에요. 한 번은 같이 마차를 타고 왕도에 온 적이 있었는데, 어째서일까 그 뒤로는 늘 혼자서 가겠다고 하더군요."
리오메스는 정말로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래서 말인데요. 귀족들은 행사에 참여할 때 시종을 한 명 데리고 입장할 수 있어요. 안전을 위해서죠."
리오메스는 그렇게 말하며, 후후하고 입을 가렸다.
"괜찮으시다면, 클레온 님께서 함께 입장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 내가?"
클레온은 자신이 지목되었다는 사실에 의문을 느낀다.
"네, 평소에는 데미스를 데리고 들어갔었는데, 데민안은 지금 아카데미에서 새로운 기술의 개발에 전념하고 있더군요. 좌달근과 우달근을 이은, 양달근이라고 하던가…."
"열심히 하고 있나 보군... 아니, 그것보다. 어째서 나인 거지?`
클레온이 그렇게 질문하면 리오메스는 대답한다.
"젊은 귀족들은 방탕하게 사는 것이 공공연하다고 해야 할까요…. 행사에서 마음에 드는 짝을 찾아내면 그대로 침실로 향하는 일도 있답니다."
그 말을 들은 라일라의 머리카락이 화륵 하고 불타올랐다.
"베아에게 그런 행사에 참여하라고 하는거야...?"
"진정하세요. 그러니까 강사님과 함께 가려는 거니까요."
리오메스는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한다.
"그야, 강사님 같은 분이 옆에 붙어 있으면, 웬만한 귀족 청년들은 대부분 꼬리를 말고 도망칠 테니까요."
"... 그건 그것대로, 복잡한 기분인데."
덩치도 있겠지만, 본능적으로 내뿜는 마력압이라고 해야 할까, 아우라라는 것이 있겠지.
클레온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알았어. 그렇다면 내가 베아와 네 보디가드로 행사에 참여하도록 하지. 행사는 언제지?"
"내일 밤이에요. 멋진 옷을 입고 와주세요."
리오메스가 웃으면서 이야기하자, 클레온은 한숨을 내쉰다.
"멋진 옷이라…. 또 그 정장인가."
"왜,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라일라는 킬킬 웃으면서 클레온을 바라본다.
그때, 다시 한번 딩동하는 현관문의 벨이 울렸다.
"...베아다!"
라일라는 그 소리를 듣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서 현관으로 뛰쳐 나갔다.
느껴지는 마력은 확실히. 그녀의 것이었다.
이번에는 틀림없겠지.
클레온과 리오메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며 두 사람의 재회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베아! 어서 와!"
라일라의 밝은 목소리가, 현관에서 거실에까지 울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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