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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256화 (256/506)

〈 256화 〉 전조

* * *

000

"집행과를…. 정식적인 학과로…?"

한때, 아카데미의 부패의 상징이었던 모나드의 관에서, 베아트릭스는 교수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듯 입에 담았다.

원로들이 숙청된 이후, 이곳은 빙룡과 새로운 계약을 맺은 교사들에 의해 대대적인 개수를 거쳐 그 모습이 바뀌어 있었다.

안쪽과 바깥을 완벽히 분리하여, 검은 교전으로부터 숨어있도록 할 수 있던 폐쇄되고 격리된 공간이 아닌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

더 이상, 아카데미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어두운 비밀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 중심이라고 할 수 있던 원로들과 검은 교전이 모두 사라져준 덕분이다.

그와 함께 사라진 것이 있다고 한다면, 역시 집행과이다.

베아트릭스가 이끌던 수석파와, 그녀의 언니가 이끌던 차석파.

특히, 차석파의 경우에는 검은 교전의 끄나풀이 되어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왔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재판으로 넘겨진 상태였고.

수석파들이라고 하더라도, 집행과가 아닌 일반 학생들이 본다면 별 다를 바가 없는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타인의 눈을 피해 다녀야만 했다.

일련의 사건이 끝난 뒤, 교수들로부터도 집행과에 관한 안내가 이루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인식이 바뀌기에는 시간이 아직 많이 필요해 보였다.

그런 와중, 베아트릭스는 수석파의 학생들과 함께 아카데미에서 보내는 생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임시이긴 하지만 마법학과로 돌아가서 수업받기도 하였고, 그녀 자신이 가칭했던 조리학과에도 몇 번인가 발을 옮겨보았다.

그녀가 가진 붙임성 좋은 성격, 그리고 접근하기 쉬운 상냥함 덕분에 이야기를 나누면 친해지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지만.

그녀와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집행과의 학생들­ 자신을 믿고 따라주면 차석파의 학생들과 대립하던 아이들은 여전히 학교로의 복귀를 주저하고 있었다.

그런 학생들이 계속해서 눈에 아른거리는 덕분에, 어찌해야 할지 마음의 갈피가 제대로 잡히지 않던 차에, 마법 학과의 담당 교수로부터 이야기를 받은 것이었다.

과거, 아카데미가 세워졌을 시절, 집행과는 지금의 법률과가 행하는 학원 내의 질서유지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치안 유지 조직이었다.

그걸 위해서 어느 정도 비밀스러운 행동이 가능했던 것을 구실로, 원로들, 검은 교전들의 목적을 위해 이용당해왔던 것이지만.

그 둘이 사라진 지금, 집행과도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 교사들의 판단이었다.

"그러면... 집행과에 소속되어 있는 학생들에게도 정식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인가요?"

베아트릭스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상적인 교육은 물론이고, 그들이 받지 못한 학생으로서의 대우…. 그런 것들을 모두 보상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베아트릭스, 물론 당신에게도요."

자신이 집행과에 들어가기 전에도 마법 학과의 담당 교수를 맡고 있던 그녀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신비한 분위기를 가졌으며, 필요한 만큼만 말을 하는 인물이었다.

차석파의 인물들이 대부분 귀족파에, 그 특권 의식을 눈여겨 보여서 스카우트 된 이들이었다면.

수석파의 집행과들은 대부분 평민이 중심이었고, 원치 않았지만, 그 능력을 이용할 목적으로 집행과에서 그들을 고립시켜 어쩔 수 없이 영입된 이들이 대다수였다.

원치 않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었고, 차석파가 저지른 일의 악명을 같이 뒤집어써야 할 때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 모든 것들. 겪었던 아픈 기억을 조금이나마 치료할 수 있다면.

베아트릭스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교수님...! 저도, 있는 힘껏 도울게요!"

마법 학과의 교수는 끄덕이더니 이어서 그녀에게 이야기를 했다.

"담당 교수는 이미 정해졌습니다. 다시는 집행과가 누구에게도 이용되지 않도록,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중립을 지키며 여러분들을 교육할 수 있는 분이시죠."

"그, 그런 분이 계신가요?"

베아트릭스의 순수한 질문에 그녀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베아트릭스는 뒤쪽에서 느껴진 엄청나게 무겁고 차가운 마력압에 몸을 휙 하고 돌려보면­

그곳에는, 관자놀이에서부터 아름다운 한 쌍의 뿔이 돋아나 있는 냉기를 띈 여성이었다.

하늘색의 드레스에, 푸른색의 머리.

얼굴을 비롯한 드러나 있는 피부의 곳곳에는 머리카락과 비슷한 색의 비늘이 돋아나 있었고.

엉덩이에서부터 돋아난 심해의 푸른색과 같은 색의 굵은 꼬리가 돋보였다.

"드, 드래­"

"아나티스다."

베아트릭스가 그녀의 종족 명을 말하려 하자, 빙룡 아나티스는 그녀가 내뿜는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차가운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본래라면, 저번의 개입을 마지막으로 하려 했었지만…. 아무래도 한동안은 더 감시가 필요 할 것 같더군. 그리고­ 너희들같이 재능있는 아이들을 썩히는 일은 용서할 수 없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팔짱을 끼고 베아트릭스를 바라보았다.

"내가 너희들, 방황하는 아이들을 받아들여 지식의 탐구로의 길을 열겠다."

집행과가 정식학과로 복귀되며, 새로운 담당 교수가 생긴 것은.

클레온과 그 일행이 왕도로 떠난 지,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시점의 일이었다.

001.5

아나티스­ 빙룡이 집행과의 교수가 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교수진들과 집행과의 학생들을 제외하면 우선은 소문이 나지 않도록 조심하기로 했다.

존재 그 자체가 전략 병기이며, 신비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용의 교육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면.

너도나도 집행과로 가려고 하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론, 그녀는 공평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중시하는 용이었고, 절대로 필요 이상의 지식을 그녀의 입에서 전달하지 않았다.

지식이라는 것은 본래,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고, 그 대답은 책과 경험에 있었다.

아나티스는 정말로, 그 답으로 향할 수 있는 길의 입구 부분까지 학생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아카데미에 온 듯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꽤 긴 시간을 폐쇄된 교육 환경에서 지냈던 집행과의 학생들에게는 몇 년 동안 억눌려있던 지식욕에 다시 불을 지피는 일이 되었다.

모두가, 잃어버렸던 기회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며 집행과로서 학원의 질서를 지키려는 일에 열중하던 도중.

베아트릭스는 한가지, 문제에 직면 해 있었다.

"그래서 말이야~ 마스터가 한 파파와 착유 플레이의 영상이 내 쪽으로도 저언부 전송돼 온 거 있지~♡"

"정말 흥미로운 현상이네요! 마력적으로 이어져 있는 라일라 양과 당신 사이의 연결고리가 만들어 낸 거겠지요! 그렇다면, 이니스 양은 자연스럽게 무료 및 무상으로 라일라 양과 클레온 강사님의 섹스를 전부 관음할 수 있다는 것이군요...!"

바로, 눈앞의 이 여자들.

한쪽은 라일라가 그녀의 기숙사 저택을 맡기고 간 라일라의 첫 호문클루스인 `이니스`.

표정은 무표정하지만, 입을 열면 늘 `파파(클레온)`와 `마스터(라일라)`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베아트릭스에게 전달해주는데.

대부분은 고맙기는 하지만, 이렇게 적나라한 사생활까지 전달해주는 것은 듣고 있는 처지에서 라일라에게 미안해지는 것은 물론 얼굴이 불거지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차, 착유 플레이라니. 라일라의 가슴으로는 분명 무리일 텐데...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쪽은, 아카데미 최고의 유명 인사(안 좋은 의미로).

아카데미 탑클래스 빗치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성학과의 수석. 리오메스이다.

겉보기에는 청초한 미소녀에, 발군의 프로포션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두뇌 명석에 무술 실력도 뛰어난 문무겸비의 천재.

출신조차도 고귀하다는 어디 하나 빼놓을 곳이 없는 그녀이지만.

성격이, 매우 음란­ 아니, 개방적인 탓에 입을 열면 성희롱과 다를 바 없는 대사를 줄줄 내뱉어서 베아트릭스의 얼굴을 붉게 만든다.

그녀와는 이전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클레온과 함께 단 세 명만 기억을 조작당하지 않은 동료였으며.

그때 이후로도 계속해서 교류하고, 같이 차를 마시며 클레온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동료 같은 느낌이 되었지만.

역시 일반 소녀와는 감성이 조금 동떨어져 있는 그녀이기에, 스스로를 클레온의 육노예라 칭하면서 다른 남성들과 직접적인 성교는 이제 하고 있지 않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다만, 과가 과인 만큼, 간접적인 행위는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일까.

"아~ 클레온 강사님 따먹고 싶네요~"

"나두~"

"저, 저기! 아, 아무리 그래도 이런... 그, 광장의 노점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조금, 삼가는 게..."

주변의 시선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따가워지자, 베아트릭스는 얼굴을 붉힌 채 눈물이 고일 정도로 수치심을 느끼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리오메스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베아트릭스를 향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베아 양도 같은 생각이시죠?"

"아니요!?"

그녀는 다르냐면서 동족임을 인정하라는 듯이 말해오는 리오메스이지만, 베아트릭스는 기겁하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런가요? 곧 왕도에 갈 기회가 있을 텐데, 그렇다면 강사님과의 밀회는 저만 가지는 것으로 할까요…."

"읏... 와, 왕도에요?"

그녀의 말에 베아트릭스는 조금 당황한 얼굴을 하며 그녀가 했던 이야기에 흥미가 생긴 듯이 물어왔다.

"맞아요. 승전기념일의 전야제 파티에 관해서인데요­"

그것이, 베아트릭스가 왕도로 향하게 된 계기가 되는 이야기되었다.

002

클레온의 숙소의 거실은, 뒤늦게 합류한 베아트릭스를 포함하여 5명이 모인 상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만에 만나는 그녀는 이전에 비해서도 조금 더 밝아진 듯했다.

클레온도 라일라도, 그 사실에 어딘가 안심을 느끼면서 자신들이 없는 사이 학원에서 있던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분명히, 바쁘고 위험천만하다고 느꼈었던 아카데미의 생활보다도, 지금 왕도에서의 생활이 몇 배나 더 바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었다.

"역시 모든 일이 끝나면 은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아이도 기르고…."

라일라는 농담으로 어깨를 으쓱하고 이야기를 했다.

"그래, 동감이야."

클레온도 그런 그녀의 말에 동의하면서 소파의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 ..."

다른 여성들은 그런 라일라와 클레온의 이야기를 듣더니 조금 조용해져서 두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 먼저 입을 연 것은­

"그러고 보니 라일라양. 무사히 강사님의 아기를 임신했다고 들었어요, 정말 축하드려요."

"... ... 고마워."

"어째서 그렇게 미묘한 표정일까요... 충분히 순화해서 이야기 했는데... 정말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있는 거라고요?"

정말로 어째서일까, 그녀로부터 받는 축하는 순수한 감정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몸은 괜찮아? 라일라. 뭐하면 내가 여기서 머무는 동안 임산부에게 좋은 음식들을 만들까?"

"고마워 베아. 하지만, 베아는 손님인걸. 그거라면 쿠온이 해주고 있으니까 괜찮아."

베아트릭스의 말에는 기쁜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하는 라일라.

리오메스는 얼굴에 미소를 띄운 채로 말없이, 자신과 베아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 라일라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설마 사샤도 임신시킨 건 아니겠죠. 이 로리콘."

그리고 루베라의 화살은 클레온을 향한다.

"그럴 리­"

"잠깐, 클레온은 로리콘이 아니야."

클레온은 황당해하면서 루베라에게 대답하려 하지만, 라일라가 먼저 그의 말을 끊으며 클레온을 변호했다.

"내가 그 증거지."

그리고 자기 가슴에 손을 올리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라일라.

순간, 침묵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모였다가­

"그럴 리 없잖아 루베라... 사샤는 아직 많이 어린 애야."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잠깐! 뭐야! 방금 그 침묵은! 어째서 내 말은 `아무 일도 없었다`처럼 넘겨버린 거야!?"

라일라는 자기 말이 무시된 것을 느끼자마자 목소리를 높이지만 베아는 그런 그녀를 진정하듯이 이야기를 했다.

"자, 자. 라일라. 진정해, 화를 내면 배 속의 아기에게도 좋지 않으니까."

"베아도 내가 어린아이 체형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물론이야!"

미묘한 침묵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웃으면서 대답하는 베아트릭스.

라일라는 그런 베아와 눈을 마주치다가, 클레온 쪽을 보았다.

"클레온이 말해줘! 내가 임신했던 그때,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가슴이 수박보다 커다래져서 엄청났었다는 걸!"

그녀는 머리에 열이 오른 듯 초점이 맞지 않는 표정으로 열불을 낸다.

리오메스는 그저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클레온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 ...

결국 그 뒤, 참지 못하고 와인을 딴 라일라.

그 뒤에 일을 나가야 하는 클레온과 루베라를 제외한 세 사람은 쌓여있던 아카데미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이 되어 침실로 향했다.

조금 불안하기는 하지만 리오메스는 일단 클레온의 방으로, 라일라와 베아는 라일라의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취기가 돌아 얼굴이 붉어진 베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슬쩍, 클레온에게 다가와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선배..."

"조금 빠른 페이스로 마시는 것 같더니... 괜찮아? 물이라도 줄까?"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 하자, 그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클레온의 옆이 편하다는 듯이 있는다.

"선배... 저,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아카데미에서... 후후... 선배, 칭찬해 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베아는, 이미 많이 취한 듯 평소와는 다르게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클레온이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어 쓰다듬어 주자, 한껏 풀린 목소리를 내며 웃음을 흘렸다.

"후헤헤...♡"

"안 되겠다. 베아는 이미 만취야."

라일라는 아직 괜찮은 듯하였지만, 그녀 역시 얼굴이 뻘게진 상태였다.

"내가 방에 데리고 갈게. 리오메스. 당신도 슬슬 자."

"강사님의 침대를 빌릴 수 있다니... 오늘 밤은 과연 잠들 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츄릅, 하고 흘러나오는 침을 손등으로 닦아내는 리오메스는 공포 그 자체였지만.

"자기만 해 줘. 제발."

클레온은 그렇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정을 알리는 시계의 종소리가 들렸다.

"...슬슬 가보자 루베라.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물론 그녀라는 것은 `아멜리아`. 즉 유폐 왕녀이다.

그녀에 관한 것은 역시 대외비였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베아트릭스와 리오메스에게도 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루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세워두었던 바리사다를 정위치­ 허리의 뒤쪽으로 옮긴다.

"가죠."

앞장서서 현관으로 향하는 루베라를 눈으로 좇던 클레온은 뒤쪽에서 라일라가 다가와, 가볍게 입을 내미는 것을 바라본다.

"...응."

그러면서, 빨리하라는 듯이 재촉하는 라일라.

클레온은 조금 당황해하지만, 이내 멋쩍게 그녀의 입술에 다시 한번 입을 맞추었다.

"후후♡ 잘 갔다 와 클레온. 조심하고."

"...그래."

라일라의 애교가 늘어난 것은 좋았지만, 흥분한 리오메스와 술이 깬 듯한 베아트릭스의 표정을 뒤로한 채 클레온은 재빨리 발을 움직였다.

그렇게 집 바깥으로 나오면, 루베라가 한발 먼저 바깥에 나와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클레온이 나오는 것을 보더니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린다.

"아카데미에서 사귄 여성들은, 하나같이 특이한 사람들이군요."

"비단 아카데미에서 만난 사람들만 그런 건 아니지만."

이오나도 루베라도 그 두 사람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특이한 사람들이었다.

아니, 거짓말이다. 리오메스는 조금 격이 다를지도.

"...그 베아트릭스라는 아이. 라일라에게 있어선 당신만큼이나 특별한 존재인 듯하더군요."

"뭐, 그렇지. 어린 시절의 유일한 친구인데다가, 라일라의 마음을 바꿀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존재니까."

라일라의 마음에 한때나마 빛으로서 존재했던 베아트릭스.

헤어졌던 시간이 긴 만큼, 그것을 보충하는 데 필요한 시간도 길어야 할 것이다.

"유일한 친구…. 입니까."

루베라는 클레온의 말에 조금 입을 다물었다.

"조금 부럽네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달빛에 비쳐서 인가 어딘가 조금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모셔야 하는 주인도, 가르쳐 준 스승도. 저에게 있어선 악연에 불과했습니다. 제게 있어서 `인연`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어머니를 제외한다면 당신이 처음일지도 모르겠군요."

"... ..."

루베라는 그렇게 이야기 하다가 잠시, 시선을 돌린다.

그쪽 방향은, 귀족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렇네요. 첫 인연이라는 것은 분명히 소중하지만. 지금의 저에게는 다른 인연도 분명히 있습니다."

같이 왕도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배틀메이드의 동료들.

오렐리아와 아루루, 그리고 아멜리아.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루베라에게는 마음의 어딘가에서 인정하고 있는, 틈을 허락한 관계의 사람들이다.

"사실은, 페르디아에게서 양보받은 만큼... 당신에게 어리광을 부리기 위해서 이곳에 왔던 것입니다만."

클레온은 루베라의 말을 듣고 조금 놀란 얼굴이 되어 그녀를 바라본다.

루베라는 그런 클레온의 얼굴을 보며, 어딘가 즐겁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린다.

"됐어요. 어리광을 부리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 역시, 저는 당신을 놀리는 쪽이 즐겁네요. 이 로리콘. 바람둥이."

"...하하."

클레온은 그런 그녀의 말을 들으며 씁쓸하게 웃은 뒤 발을 옮겼다.

"뭘 웃는 건가요?"

그렇게 말하는 루베라는 자기 얼굴이 웃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더 늦어지기 전에 유폐탑으로 가자."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자 루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뒤를 따라간다.

바리사다로부터 안도의 한숨이 들려왔다.

003

"승전기념일의 전야제인가요."

탑에서 빠져나온 아멜리아와, 어쩌다보니 그 이야기를 하게 되자 아멜리아는 그 단어를 조금 곱씹듯이 이야기한다.

"...그러고 보니, 승전기념일의 행진이 곧이군요. 요즘에는 너무 바빠서 잊고 있었지만…."

아멜리아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조금 표정이 어두워졌다.

승전기념일의 행진은, 왕족들이 왕도의 거리를 행진한다.

그리고 그 최후미에는 늘, 철창에 갇힌 아멜리아가 있는 것이었다.

어째서 왕이 그런 일을 벌이는지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의 명령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저 표면적인 이유로는 1년에 한 번, 아멜리아 왕녀에게 유폐 탑 바깥을 보여주게 위함이라고.

자기 친딸을 그렇게 대하는 것에 대해, 다른 왕족들이 의문을 표하더라도 그는 명확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 ..."

루베라는 어두워진 표정의 아멜리아를 본다.

무언가, 위로에 말을 건내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자신이 말한다고 해서, 무언가 상황이 바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루베라. 매년 겪는 일이고, 사람들이 저에게 무언가를 하지는 않으니까요. 다만..."

"다만...?"

"퍼레이드에는 정해진 복장과 치장만이 허락되어서. 세인트 프린세스의 힘이 담겨있는 펜던트는 착용할 수 없어요. 만약 그사이에 악마들이 행진을 노린다면…."

아멜리아는 백성들과 다른 왕족들이 걱정된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기사단과 교단의 사람들이 있으니, 아무리 악마들이라도 신중해질 겁니다."

루베라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어찌 됐든,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클레온."

고개를 꾸벅 숙여오는 아멜리아.

클레온은 루베라와 마찬가지로 어린 그녀가 짊어져야 하는 비극의 무게에, 건네야 할 말을 찾지 못한 자신에게 조금의 화남을 느꼈다.

그저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곳에는 어느 때와 같이 밝게 뜬 달빛이 왕도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이렇게나 달이 밝은 날에는 어째선지 마음이 술렁인다.

무언가가 일어날 전조와도 같이 느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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