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화 〉 화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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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화염, 강욕의 열화라고 불리는 존재가 있었다.
이름은, 프로미스. 고대어로 `약속`을 의미한다.
이 시대에 남아있는 다섯 원소룡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많은 부를 축적했다고 알려지는 화염 원소를 담당하는 드래곤.
그 성격은 매우 오만하고, 난폭하며, 자기 중심적에, 인간을 싫어하는 성향은 드래곤들 중에서도 가장 강했지만.
그녀가 가진 루비색의 비늘과, 쌓아올린 금은보화, 그리고 모든 것을 녹이고 재로 바꿀 수 있는 화염의 브레스에 매료된 많은 이들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추종자를 자처하며 그녀를 위해 자기 삶을 바치는 인간이나 이종족들도 적지 않았다.
그녀에 대해 남아있는 가장 최근의 기록이라고 한다면, 레시아의 모험에 잠깐 그녀의 이름이 등장하는 정도일 것이다.
제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화염의 장벽을 뚫기 위해, 프로미스가 가지고 있는 보패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녀의 둥지에 몰래 숨어들어 간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레시아 본인은, 직접 이야기해서 빌려오기를 원했지만, 대현자 소피아의 반대가 심했었다고 했다.
프로미스는 자신의 둥지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보물 역시 끔찍하게 아끼는 성격이었다.
그런 그녀에게서 보물을 빌려달라고 하는 것은, 사자를 깨우지 않고 그 수염을 뽑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화염의 원소가 가지는 성질 그대로, 불타오르는 성질을 가졌다고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있는 인간이 그녀를 만나서 가능한 것이라고는 입고 있는 갑옷이나 천이 녹아서 살갗에 눌어붙어 더 큰 고통을 느끼는 것을 막기 위해 옷을 벗는 것이 전부라는….
그런 질 나쁜 농담이 돌 정도로, 그녀에 대한 평판은 경외보다도 공포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멜리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유폐 왕녀`라고 부르며, 정체를 드러낸 눈앞의 존재가 내뿜는 화염의 마력.
실체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방의 온도를 높일 정도였다.
아멜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
지 않았다.
"어, 어라..."
분명, 방이 뜨거워진 것은 알겠지만, 그녀 자신은 그런 뜨거움에 대해 아무런 불쾌감이나 컨디션 저하를 느끼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더 숨쉬기 편해진 것 같은 느낌이다.
"아아, 그 옷 덕분이지. 내 마력 안에서도 조금은 버티게 해주거든."
붉은 머리의 인간 소녀의 모습을 취한 프로미스는, 아멜리아가 어디에 의문을 느낀 것인지 바로 눈치채고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즉, 처음부터 아멜리아를 불러내서 이 옷을 입히고 정체를 밝힐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아멜리아는 그녀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잠시 고민되었다.
이곳에는 조언을 해줄 루베라도, 클레온도 없다.
오렐리아가 있었다면, 어떻게 하라고 이야기했을까.
아멜리아는 잠시 자기 옷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일부러 자신에게 격식 있는 `드레스`를 권해준 것이다.
그렇다면
아멜리아는 한쪽 손의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 드레스의 치마 부분을 살짝 들어 올리고, 발을 교차한다.
그리고. 허리를 살짝 숙이며 눈을 감고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왕국의 왕녀 아멜리아 칼데아리스가, 진실의 화염, 프로미스님을 뵙습니다."
"아아. 편하게 있거라."
프로미스는 그녀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금은 만족한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스를 쏟고, 창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봤던 소녀와는 정반대의.
왕족의 인사를 받아도, 그것이 당연한 자신의 권리라는 듯이 오만한 태도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정말로 그게 당연하겠지.
고작,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 종족.
그리고 그 안에서도 10살을 조금 넘긴 여자 아이 같은 미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위라는 것은, 드래곤들에게 있어서 아무런 판단 기준이 되지 않는다.
프로미스는 긴장한 듯한 아멜리아를 바라보며 팔짱을 낀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질문이 여럿 있겠지."
"네."
"내가 대답해주길 원하나?"
프로미스는 다시 한번 시험하는 듯이 이야기했다.
아멜리아는 그런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가를 지불하겠습니다. 부디, 미천한 저에게 프로미스님의 진실을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후후... 좋아. 너, 웬만한 인간 녀석들보다도 날 잘 이해하고 있군. 질문을 허락하마!"
프로미스는 이름 그대로 `약속` `계약`을 중요시한다.
자신의 심기를 건드린 이들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떠한 사소한 일에도, 무대가, 무담보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그녀가 인간들과 고대에 나눈 계약이었다.
용의 힘이 무차별적으로 인간들의 사이에 개입하게 된다면, 그 사회를 필시 망가트릴 것이다.
루티오스의 예만 보더라도, 그것은 이미 충분히 입증된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계에 개입하는 조건을 정해두었는데.
프로미스는 자신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녀 자신과 계약을 맺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조건으로 걸어두었다.
물론 용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재물 따위, 평범하게는 모이지 않는다.
철저한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 그녀는 지금까지도 단 세 번, 인간과 거래를 하여 역사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그 대가로, 왕국의 국고를 몇 번이고 가득 채우고 남을 금은보화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아멜리아는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지만, 어쨌든 긴장은 긴장대로 하면서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하는 것이었다.
"...어째서 왕도에서 이런 가게를 하고 계신 건가요?"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는 거네. 뭐, 그편이 돌려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지만."
프로미스는 어깨를 으쓱하고 움직인 뒤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혹시, 대가가 얼마나 필요할지 미리 들을 수 있을까요?"
"아하하! 왕국의 왕녀라고 하더라도 그런 부분에서는 신경이 쓰이나? 뭐, 유폐 왕녀인 네가 낼 수 있는 대가도, 한계가 있겠지. 걱정 마라, 너에게서는 재물 따위는 받지 않을 테니."
아멜리아의 불안한 목소리를 들은 프로미스는 재밌다는 듯이 대답했다.
"뭐. 말하자면…. 심사다. 심사를 위해 이곳에 와 있어."
프로미스는 입꼬리를 올리면서 아멜리아의 질문에 대답한다.
"...심사, 인가요?"
"그래. 곧, 이 왕도 아니 대륙. 이 세계 전체의 균형을 뒤흔들만한 일이 일어날 거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가 개입을 해야 할까에 대한 심사다."
그녀의 말은 아멜리아의 불안함을 더욱 키워내는 이야기였다.
세계의 균형이 흔들린다고?
거기에서 희생되는 것은 언제나 힘없는 평민들일 텐데.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우리 원소룡들이 개입해준다면 그 일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어째서,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사명인 용들이 심사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당연히, 우리의 개입은 최소화 되어야 하기 때문이야. 용이 가지고 있는 힘의 규모를 생각해보거라. 우리 원소룡이 모두 모여 일의 해결을 위해 힘을 행사한다면…. 적어도 그 근처는 쑥대밭이 되겠지."
"새, 생각을..."
"물론 읽을 수 있지. 나에게 거짓을 고하는 자는 죽여야 하니까."
프로미스가 대답하자 아멜리아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는 이미 한 번, 그녀에게 `리아`라는 이름으로 신분으로 속였었다.
"그것에 대해선 눈을 감아주마. 정확히는 네가 시작한 거짓말도 아니었으니."
"읏..."
프로미스가 아멜리아의 생각을 또다시 읽으며 먼저 대답해버리자 아멜리아는 조금 거북한 듯 침음을 흘렸다.
하지만 화룡은 그런 왕녀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아독존의 미소로 그녀를 바라본다.
"인간들끼리 벌이는 일에 관해서라면, 그리고 설령 악마가 끼어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우리들은 최대한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섯 용의 약조이다. 어떤 바보는 그걸 깨트렸다가 붙잡혔지만."
"... 하지만, 심사라고 하더라도. 어째서 이런 장소에서…. 어떻게 심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죠?"
아멜리아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더 파고들자, 프로미스는 아까보다도 더욱 기분 좋다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흉악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좋아 좋아. 점점 질문이 많아지고 있구나. 대가에 관한 것이 재물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니까 안심이 되더냐?"
"아..."
"뭐, 좋다.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기왕 이렇게 된거, 너도 알고 싶은 것에 대해 제대로 전부 묻는 게 좋을거다."
프로미스는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주변을 감싸고 있었던 의상실이 그녀가 만들어낸 환영으로 뒤덮였다.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아 루베라가 있는 의상실의 바깥.
아까까지 아멜리아가 있던 1층의 라운지를 보이는 듯했다.
"앞으로 너희들에게 닥치게 될 시련이라는 것은, 너희들의 `인간성`을 묻게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필요로 되는 것은…. 욕망에 대한 제어력이다. 강욕의 화염 같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나에게는 딱인 심사이지."
"욕망에 대한…. 제어력."
아멜리아가 프로미스가 내뱉은 말을 되풀이하듯이 중얼거리면, 프로미스는 이어서 이야기했다.
"너희들이 지금 싸우는 상대가 `악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질 나쁘고 추잡하고 더럽고 비천한 음마들이라는 것도."
"아스타로테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계신 거군요..."
아멜리아의 중얼거리는 듯한 말에, 프로미스는 잠시 표정이 굳는다.
"너는 그럼, 내가 그런 한낱 악마숭배자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냐?"
갑작스럽게 고압적인 말투가 되며, 치지직,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멜리아가 재빠르게 고개를 내려보면 드레스의 끝자락이 조금씩 타들어 가는 것이 보였다.
"죄, 죄송합니다…."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화염 그 자체.
불꽃 같은 성격이라는 것은 이런 것을 말할 것이다.
잔잔한 화롯불처럼 나아가다도, 불쏘시개로 쑤시면 화륵 하고 불타오른다.
하지만 아멜리아의 재빠른 사과에 프로미스도 조금은 기분을 풀더니 흥, 하고 코웃음을 한 번 치더니 이야기했다.
"이 장소에 들어온 이들은 각종 유혹에 시달린다. 술, 이성과의 관계, 식욕, 과시욕 등….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두었지."
"...그렇다면 인간들이 그 유혹에 굴하지 않는지를 보는 것인가요?"
"틀려, 욕망이라는 것은 곧 인간의 원동력이야. 그것 전부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보는 것은, 그 욕망에 과도하게 취해 판단력을 잃는 이들이 있는가를 보는 거다."
프로미스는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아멜리아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욕망은 자극이다. 자극받으면 그것에 반응하고 다음에는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듯이 상승하는 자극에 대한 허용치. 어느샌가, 처음에 느꼈던 자극의 정도로는 쾌감을 느낄 수 없게 되지."
그것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멜리아.
이어서 프로미스는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도 없이 거대해진 욕망은 자기 몸마저 잡아먹는다. 예를 들면…. 음마의 유혹에 빠져 그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한다던가."
"... ..."
아멜리아의 머릿속에, 클레온이 상대하러 간 서큐버스에 대한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심사의 결과는 조금 실망이었다. 이런 뒷골목에 가게를 낸 것은 아스타로테의 녀석들을 꾀어내게 위함이었는데…. 나는 한 번도 이 가게를 `귀족 전용`으로 한 적이 없다. 뒷골목에서 자극을 찾아 어슬렁거리던 귀족 청년들이 발견하더니. 그런 식으로 소문을 낸 것이지."
"그, 그런 거였나요...!?"
"그래. 심사하는데 귀족 녀석들만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말이야. 뭐, 그것도 `독점욕`, `특권의식`이라는 인간의 욕망 중 하나이니 굳이 고치지는 않았다만."
귀족이라는 것들은 몇 년이 지나더라도 변하질 않는군.
"그리고. 예상대로. 이 가게에도 숨어든 서큐버스가 있더구나. 몇몇 귀족 청년들이 그녀의 위험함을 본능적으로 깨닫고도 스스로를 멈추지 못해 매료되는 것을, 나는 지켜봤다."
"...그렇다면, 심사는..."
"그래, 이대로 간다면 우리 원소룡이 개입해야겠지."
과거의 기록에 용과 인간의 싸움에 관한 이야기는 몇 번이고 전해져 내려온다.
제국에 조종당해 절멸의 폭풍이라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루티오스는 물론이고.
프로미스가 말한 대로 용이 인간들의 앞에서 힘을 사용할 때는 언제나, 지형이 바뀌고,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었다.
아멜리아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아까와는 다르게, 지금은 용들의 개입을 막아야만 했다.
왕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기다려 주세요. 아스타로테는, 제가. 반드시 막아보겠습니다."
"세인트 프린세스로서 말이지. 그래, 너라면 그렇게 이야기할 거라고 생각했어."
프로미스는 그대답고 예상하였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서 대답한다.
"물론, 너의 힘은 그것을 위해 만들어졌다. 왕도의 수호자. 위협에 대한 억지력으로서 사람들의 기원을 받는 존재. 그 힘의 근원은 `성령`이라고 했던가. 확실히, 네 몸에서 느껴지는 신성 마력은 흔한 용사들과 비교하더라도 우수한 듯하구나."
그녀가 가지고 있는 힘은, 분명 악마들과 싸우게 위한 힘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이도 어리고, 무엇보다도, 아스타로테가 가지고 있는 미지수의 전력이 그녀와 그녀의 주변인들을 끊임없이 방해했다.
"하지만... 너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유폐된 탑에서 빠져나오는 것조차도 말이야. 그러므로 운명은 네 주변에 조력자를 준비했지."
아멜리아의 머리속에 오렐리아와 루베라, 그리고 클레온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렐리아는 이전 대전에서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했다. 그녀는 몇 안 되는 무인이자 책략가이고, 음마들 따위는 범접할 수 없는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것은…. 그 두 사람이지."
"클레온과 루베라... 라는 건가요?"
프로미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클레온도 루베라도, 저보다 훨씬 강해요. 절계수를 막았고, 이차원에서 넘어온 괴물과도 맞서 싸웠어요."
아멜리아가 두 사람을 변호하듯이 이야기하자, 프로미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더더욱 이다. 만약 두 사람이 음마에게 세뇌되어. 너에게 칼을 겨누게 된다면 너로서는 그들을 이길 수가 없을 테니."
"... 그건"
아멜리아는 그녀의 말을 듣고 주먹을 쥐었다.
물론 손쉽게 두 사람이 세뇌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상대가 서큐버스나 인큐버스라고 하더라도.
대처할 방법은 있다.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하지만 만약, 더 강한 적과 만나게 된다면 그때도 그들은, 그리고 자신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겨,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나에게 두 사람을 심사하게 해다오. 그걸 위해 악마들이 내 둥지에 숨어 들어오는 것도 눈을 감아둔 것이니까. 다음 이야기는 그 뒤에다. 특히 클레온이라는 마검사. 그 녀석은 여러모로 신경 쓰이니까."
"...클레온이?"
그녀의 말에 아멜리아가 고개를 갸웃하면 프로미스는 고개를 끄덕인 뒤, 손가락으로 자신의 아름다운 붉은 머리카락을 돌돌 말며 대답한다.
"그래. 그 녀석은…. 우리들의 `공용 남편`이니까."
"... ... ...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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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클레온은 루베라를 뒤로 한 채 자신을 유혹하는 카르밀라와 함께 업소를 빠져 나왔다.
들어온 입구와는 다른 방향 일종의 뒷문이라고 해야 할까.
뒷문으로 나가는데도, 입구에서 보았던 화염의 기운을 가진 언데드 점원의 옆을 통과했지만.
그들은 딱히 클레온들을 말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바깥으로 나가면 어두워진 하늘 아래 뒷골목을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와 이어져 있는 듯한 공간으로 나왔다.
안에서 느껴지던, 조금 뜨거울 정도의 화염의 마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깥에 나오자마자 자취를 감춘 채였다.
"자, 바깥에 나왔어요. 이제 조금은 괜찮아졌죠?"
"...네."
클레온이 그렇게 대답하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아직 기분이 안 좋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때를 위해서 약을 가지고 다니니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그녀의 주머니에서 작은 약병을 꺼내 들었다.
초소형의 포션병과 비슷한 형태를 한 그것의 안에는 검은색의 액체가 찰랑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블랙 메이커...! ...희석한 건가. 그렇다면 역시`
클레온이 그 액체를 보고 눈이 커진 것을 보자, 아무래도 그 색 때문에 겁을 먹은 것이리라 착각한 카르밀라는 상냥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약은 전혀 몸에 해롭지 않으니까. 오히려, 조금 기분이 좋아질 정도에요. 아까 제 주변에 있던 남성 분들은 모두 이걸 복용했답니다."
카르밀라가 그렇게 말하며, 약병의 뚜껑을 열려고 하자, 다음 순간.
파지직! 하고, 검은 번개가 뛰쳐나오며 그녀의 약병을 강타하여 떨어트린다.
번개가 뻗어 나온 것은, 클레온의 손가락 끝에서부터였다.
"무엇을"
카르밀라가 당황해하며 이야기하려 하지만, 클레온은 대답했다.
"... 슬슬 괜찮겠지. 안쪽에서는 미스테리어스한 마녀를 연기하느라 고생하는 것 같은걸."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자, 그녀는 조금 당황한 듯 뒤로 물러선다.
서서히, 클레온의 몸에서 환영과 폴리모프가 벗겨져 나가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 당신은...!"
그리고, 카르밀라는 클레온의 모습을 알고 있다는 듯, 그렇게 이야기하며 도망치려는 듯 날개를 펼친다.
"갈라테아!"
클레온이 마검의 이름을 외치자, 그녀의 몸에서 퍼져나온 마력이, 주변을 잠식해가며 풍경을 바꾸어간다.
결계 흑마력의 소영역.
클레온은 마력으로 일대를 감싸, 그녀가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었다.
"큭...! 마검사, 클레온... 설마, 처음부터 내 정체를 눈치채고…."
"뭐, 그런거다. 속여서 미안하군."
탈출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안 카르밀라는 저항을 포기한 듯이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리며 항복의 의사를 표하는 것이었다.
"언니들을 애먹게 만들고 있는 당신을 이길 수는 없을 것 같네. 항복이야."
그렇게 말한 그녀의 행동에 클레온은 잠시 침묵하지만, 경계를 풀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 설마, 내 쪽이 속고 있었을 줄이야…. 이제부터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이야?"
카르밀라의 질문에 클레온은 대답했다.
"심문이라도 해서 이것저것 알아내야겠지."
"... 심문이라, 꽤나 거친 수를 쓰네."
"네가 사람들에게 한 짓 마약을 복용 시킨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로 참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거야."
클레온의 으름장에 카르밀라는 잠시 두 눈을 깜빡이다 이야기한다.
"...잠깐, 마약?"
"그래. 네가 손에 들고 있던 그 약... 블랙 메이커. 그걸 마시게 되면 몸을 활성화 시켜주는 대신에 흑마력에 오염시킨다."
클레온의 말에 그녀는 잠시 떨어져 땅에 쏟아진 약병을 돌아보았다.
"그, 그런..."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클레온의 생각보다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마치, 정말로 몰랐다는 듯한 태도.
"모, 몰랐어. 나는 정말로, 사람을 젊게 만들어주는 약이라고…."
"─카르밀라, 너는"
마치 인간처럼 이야기하는 카르밀라.
설마, 라는 생각이 클레온의 머리속을 스쳐 지나간다.
블랙 메이커를 과다 복용한 인간은 영혼이 뒤틀려 마물이 된다.
개중에는 적성이 있어서, 인간의 형태를 유지한 채 악마로 전생하는 이들도 있었다.
"...카르밀라 너는"
만약, 그녀가 했던 이야기가 전부 사실이라면
소영역의 안에서 클레온의 당황한 목소리가 울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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