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2화 〉 복마(??)
* * *
000
라일라의 오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성좌 마법은 그 위력이 절대적인 만큼, 사용되는 마력의 양도 방대했다.
사람의 감정에 따라 생산되는 마력의 양이 변동한다고 하더라도, 클레온이 본래 가지고 있는 마력의 양만으로는 사용하기 힘든 마법인 것에는 틀림없었다.
허나, 내면세계에서 전생 인자와의 결별을 이룰 때 이뤄낸 마검사로서의 새로운 경지는 갈라테아와 클레온의 연결을 더욱더 강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이 같은 감정을 느끼면, 서로의 마력 기관이 공명하여, 평소보다도 훨씬 많은 양의 마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저런 악마 따위가 자신의 클레온에게 생채기 하나 낼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갈라테아는, 그 피를 보자마자 분노로 마음을 물들였다.
물리적인 육체 손이 아닌, 영혼으로 이어져 있는 두 사람이 이슈탈을 향한 분노를 불태우면, 그것만으로도 흘러넘칠 정도로 많은 양의 마력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두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었기에, 클레온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을 자아냈다.
칼리번의 빛과, 성좌 마법으로 소환된 별의 화염은 갈라테아가 만들어낸 어둠의 소영역의 안을 가득 채워 눈앞의 악마를 집어삼켰다.
이슈탈이 지배한 포츈의 육체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식물의 껍질로 만들어진 장벽에 감싸여지지만.
정작, 빙의한 이슈탈은 그녀에게 상극이라고 할 수 있는 신성 마력의 격류와, 화염의 마력에 의해 동시에 불태워지며 서서히 포츈에 대한 지배력을 잃어갔다.
하지만 이슈탈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드디어 클레온에게서 피를 볼 수 있었다는 점과 이 정도의 마법을 사용한다면 포츈의 몸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실제로, 성좌 마법은 포츈의 벽을 불태우며 서서히 그 안에 있는 포츈의 마력 방어에도 구멍을 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대로 그녀와의 연결을 끊고`
이슈탈의 빙의는, 그 몸을 그대로 차지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흑마력을 불어넣어 악마로 만든 몸에 미리 심어 놓은 분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포츈이 보는 것, 느끼는 것을 그대로 본체로 피드백하여, 그녀를 감시하고 그녀가 얻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고 있었기 때문에, 이대로 그녀의 몸 안에 계속 존재했다간 본체 쪽에도 강력한 마법을 받았을 때 느끼는 고통이 전달될 것이었다.
본체와의 연결을 끊게 되면, 그 시점에서 분신으로서의 그녀는 소멸해버리겠지만 그런 것은 악마의 관점에서 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실이었다.
클레온에게 남긴 육체적인 상처와 정신적인 상처는 이후의 계획에서도 요하게 사용될 수 있는 종류의 상처이다.
그 유폐 왕녀에게 남긴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콰직.
`이런. 생각보다도 껍질의 파괴가 빠른걸.`
이슈탈은 생각을 정리하다 말고, 껍질에 감싸져 있는 어둠 속에서 들려온 소리에 의해 강제적으로 현실로 사고를 되돌린다.
여유를 부리는 것은 좋지만, 그 사이에도 클레온의 마법이 그녀를 불태우기 위해 시시각각 그녀의 방어를 불태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을 뜬 뒤, 조용히 마력의 흐름을 멈추며 포츈의 몸과 이슈탈이 분리되려던 찰나.
콰드득!
하는 불쾌한 소리와 함께, 그 너머에서 검은 손이 튀어나왔다.
"윽!?"
이슈탈은 갑작스럽게 침범해 온 그 손에 의해 심장이 멎을 뻔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손 때문이 아니다.
분명, 바깥에는 성좌 마법의 열기가 남아있었음에도, 그 틈 사이로 보이는 것은 흔들리며 좀먹어오는 검은 마력이었다.
악마가 흑마력을 무서워하더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농축된 적의와 흑마력. 그 사이로 번뜩이는 흰색의 안광.
클레온의 신체가, 자신이 만들어낸 화염의 기둥 사이를 걸어 들어와 이슈탈에게 접근한 것이었다.
"제, 제정신이야? 아무리 당신이라도 그 정도의 위력을 가진 마법의 범위에 스스로 들어가다니!"
마법사는 스스로가 사용한 마법에 피해를 받지 않는다.
라는 것은, 일부는 진실이기도 하지만, 일부는 거짓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마법사는 자신이 만들어낸 마법의 효과 범위와 마력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으므로, 거기에 맞춰 자신의 마력 방어를 맞추거나, 애초에 범위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화염이나 빙결 같은 자연 원소의 마법은 단순한 마법적인 피해뿐만이 아니라 `열기` `냉기`와도 같은 자연적인 현상을 남긴다.
라일라 수준으로 천재적인 마력 컨트롤이 가능한 인간이 아니라면, 화염 마법에 머리를 그을리는 마법사들은 비일비재하고, 냉기 마법에 동상을 입는 마법사들도 차고 넘쳤다.
성좌 마법은, 그런 마력의 컨트롤 조차 아이의 장난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방대한 마력의 격류를 가진 마법이다.
당연히, 마법사들 심지어 라일라조차도 자신이 불러낸 별의 힘의 흐름에 몸을 던지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클레온은 격노에 반응해 끓어오르는 마력 기관의 힘을 빌려, 스스로의 몸을 검은 마력으로 뒤덮은 채.
전신에 만들어진 화상을 겁내는 일 없이 이슈탈이 있는 곳까지 당도했다.
마치 갑주와도 같이 그의 몸을 감싼 검은 마력, 그리고 대량의 마력을 사용하면서 빛나는 눈동자.
전승의 광전사와도 같은 그 모습에, 이슈탈은 다른 누군가의 모습을 겹쳐 본다.
`이게, 릴림이 그에게 집착하던 이유...!`
자신의 어머니가 충성을 맹세했던, 제국의 절대자.
대륙의 역사를 바꾼 황제.
황궁에서 지낼 때, 자신을 어디까지나 실험체로밖에 여기지 않았던 그 남자가 마치 눈앞에 되살아난 듯했다.
본능적으로, 그 존재를 자신이 거스를 수 없다는 것마저, 이슈탈에게는 공포심을 유발하는 것이었다.
"큿...!"
하지만 이내, 클레온이 벌린 틈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마법의 열기 덕분에 생존욕이 공포심을 누르는 것으로 몸이 움직였다.
벌어진 틈은 좁고, 클레온의 몸은 그 사이로 완전히 들어오지 못하는 상태이다.
그저 손을 뻗어, 자신의포츈의 몸을 잡으려고 하는 도중일 뿐.
"하하... 늦었어, 클레온. 당신의 노력도 집착도 모두"
이슈탈의 말이 이어지는 도중, 그녀의 영혼을 붙잡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몸의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서.
마치, 식물의 뿌리가, 덩굴이 벽을 타고 감아 오르며 묶듯이 악마의 영혼과 흑마력, 그리고 본체와의 연결을 이어간다.
"윽...!? 포츈! 이거 놔!!"
`절대로 놓지 않아... 나는, 당신을 믿었는데…! 절망의 늪에서 구해줄, 천사일지도 모른다고…!`
포츈의 응어리진 목소리가, 어두운 공간 속에서 울리며 이슈탈의 정신을 속박한다.
이슈탈이 그녀의 몸을 떠나기 위해 영혼의 결속을 약화한 그 타이밍, 이 자리에서 지금 그녀에 대해 가장 큰 원한을 가진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몸의 주인인 포츈이었다.
악마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정신적으로 내몰려 의지가 약해졌으리라 생각했던 포츈이 생각보다도 강한 정신력으로 떠나려는 이슈탈을 구속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했다.
검은 검사가, 식물의 껍질을 비집고 들어와 악마가 지배한 몸에 닿을 때까지는, 그 짧은 틈이면 충분했다.
이내, 완전히 열어젖혀진 틈 사이로 뻗어온 검은 팔이 포츈의 손을 붙잡았다.
"크윽...!"
이슈탈의 입에서 침음이 흘렀다.
이제, 그녀의 의지를 묶는 것은 포츈 뿐만이 아니었다.
챠르륵! 하는 귀에 거슬리는 쇳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하면, 클레온의 팔에서 검은색의 반투명한 사슬이 뻗어 나와 포츈의 가슴으로 향했다.
실체가 없는 그 마력의 사슬은, 그대로 포츈의 안에 숨어있는 악마의 영혼을 휘감더니.
강한 힘과 함께 그 영혼을 통째로 포츈의 육체에서 뽑아낸다.
어렴풋이 보이는 마력의 흔적과 함께, 붉은 악마의 형상이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그것과 함께. 포츈의 몸은 힘을 잃고 무릎부터 무너지듯이 땅에 주저앉으며 주변을 감싸고 있던 껍질부터 재로 흩어지듯이 사라지고.
그때는 이미 성좌마법은 사라졌었으며 또 바깥에 펼쳐져 있던 갈라테아의 소영역 역시 사라진 상태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달빛이, 차가운 돌바닥을 비춘다.
만약, 갈라테아가 영역을 펼쳐두지 않았다면 현실 세계 역시 거대한 피해를 보았겠지만.
다행히, 바닥이 조금 부서진 정도에서 그치었다.
서서히 흩어지며 사라져 가는, 클레온의 몸을 뒤덮고 있던 마력의 갑주도 공기 중으로 모습을 감추고.
그 안에는, 성좌 마법의 안에 뛰어든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른 탓에 몸의 곳곳에 화상을 입고, 피를 흘리는 클레온의 모습이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어깨에 틀어박혔던 이슈탈의 그림자 가지에서 시작된 출혈 역시 그대로 남은 상태이다.
누가 보더라도, 육체가 입은 피해와 상처는 쓰려진 포츈과 비교하더라도 클레온의 쪽이 더 심각해 보였다.
그리고, 그 클레온과 무릎을 꿇고 쓰러져 앉은 포츈의 사이에는.
반쯤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온 채, 클레온이 손에 쥐고 있는 마력의 사슬에 몸이 묶인 이슈탈의 영혼이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본체가 아닌 분신, 이슈탈의 힘과 마력의 일부. 조각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클레온과 싸우기 직전까지도 본체와 연결을 하고 있던 존재이다.
당연하게도 그녀에게는 본체가 가지고 있는 기억과 정보, 지식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슬에 묶여 굴욕스러운 포즈로 고개를 숙인 채 지면을 내려다보는 이슈탈.
"큭...윽..."
영혼을 감싼 마력의 사슬 덕분에 자가 소멸도 불가능한 채 침음을 흘리는 악마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현재 상황에 당혹을 감출 수 없는 상태였다.
이대로 가다간, 영혼을 추출 당해 클레온과 그 일행들에게 모든 정보를 넘겨주게 될 것이다.
그것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피해야만 했다, 아직, 그들과 정면에서 싸우기에는 준비가 부족했다.
[좋아. 드디어 꼬리를 조금 잡을 수 있을 것 같네. 저 영혼을 그대로 끌고 가서 정보를 추출하면 귀찮게 남은 영맥을 찾아가지 않아도 되잖아?]
갈라테아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인다.
클레온은 그대로 그 영혼을 적출해 내기 위해 팔의 힘을 넣는다.
하지만, 칼리번은 그런 클레온에게 [잠깐]이라고 말을 걸더니, 그의 행동을 제지했다.
[그녀의 영혼을 이용하면, 저 여성... 포츈이라는 사람의 몸을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어요.]
"뭐라고?"
"하아!?"
칼리번의 말에 놀란 것은 클레온 뿐만이 아니라 묶여 있던 이슈탈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순간, 성검 칼리번이 빛을 내더니, 평소와 같은 날개를 가진 금발 소녀의 모습으로 바뀌며 이슈탈의 분령 가까이로 다가갔다.
몸이 묶여 있는 그녀였기에, 자신의 가까이 다가오는 신성한 기운이 몸에 닿을 때마다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악마였지만.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이 칼리번은 이슈탈의 옆에 서서 이야기한다.
"그녀는 악마의 영혼. 그리고, 포츈씨의 육체는 `악마`의 영혼과 `인간`의 육체가 섞여 있는 상태에요. 악마로 변한 인간의 영혼에 문제없이 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악마의 영혼뿐이죠. 특히, 그 악마가 인간을 전생시킨 장본인이라면."
영혼이 가지고 있는 파장이라는 것이 원인입니다.
라고 칼리번은 전에 없이 진지한 어투로 덧붙였다.
"제가 신성 마력을 이 분령에게 불어 넣어서, 그녀의 몸을 일시적으로 조종하겠습니다. 그 뒤, 이 영혼을 마녀의 몸으로 되돌리면, 포츈의 안에 있는 `악마`로서의 부분과 이 악마의 영혼이 쌍소멸을 할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아스타로테의 정보는 날아가 버려.]
갈라테아의 말 역시 사실이었기에, 칼리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로 스스로 입을 열지 않을 이슈탈의 분령에게서 정보를 빼낸다면, 역시 그 영혼을 분해하여 가지고 있는 정보를 억지로 끄집어내는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라일라와 같은 마법사라면 그것이 가능하겠지만, 그 대가는 당연하게도 영혼의 소멸이다.
정보를 끄집어내고 포츈을 구하는 방법은, 사용할 수 없다.
"그러니 판단은 클레온에게 맡길게요. 마녀에게는 미안하지만, 조금 더 빠른 사태 해결을 위한 희생이 되도록 하는가. 아니면, 그녀를 구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을 기회를 놓아주는가."
클레온의 시선은, 말을 마친 칼리번에게서 시작하여, 분한 얼굴을 하는 이슈탈을 스쳐 정신을 잃은 포츈에게로 향한다.
그녀에게서 이슈탈을 분리해내려 했을 때, 그녀의 영혼에 닿았을 때.
의도치 않았지만, 그녀의 경험, 기억, 그리고 과거가 흘러들어왔다.
"... ..."
잠깐의 침묵이 클레온의 입에 맴돌았다.
그리고
"나는"
001
작은 악마, 알프는 후회하고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녀의 제안을 수락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붉은 머리를 가진 반인반마의 소환사는, 알프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성별을 정하기 전에, 대량의 인간 노예를 거느리게 되면, 강력한 몽마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수없이 많은 자기 누이들과 함께 밟은 인간의 땅은 생기가 넘치고 있었고, 그만큼 먹이인 인간의 수 또한 넘치고 있었다.
대부분이 악마의 힘에 대한 저항력 따위는 가지지 않는 나약한 존재들.
그러므로, 소환사와 협력하기만 한다면 전설적인 음마의 왕이자 여왕이 되는 것도 꿈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찰나.
소환사가 만들어낸 약 덕분에 음마가 되어버린 마녀의 감시라는 지루한 명령을 받아, 그녀의 뒤를 따라 사교 클럽에서 인간들을 상대하는 것.
귀족이라는 녀석들은 막무가내로 노예화하면 안된다고 당부해 온 소환사의 명령 때문에 정기를 조금 빼앗는 것으로 참고 있었지만.
마침, 오늘은 맘대로 해도 되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에 들떠서 그녀를 노린 것이었는데…!
"하아... 하아...!"
몇 번이고 베이고, 수복하고, 베이고 수복을 반복하면서 알프는 몰릴 대로 몰려 있었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마력에는 문제가 없고, 육체에도 문제는 없었다.
육체를 수복하는 마력은 소환사로부터 공급받아 보충하면 되는 것이었고, 패스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직접 베이더라도, 마력만 있다면 재생 따위 문제가 없는 알프의 육체적 특성 상, 전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알프의 승률이 올라가는 것이 당연한 이야기이다.
눈앞의 여자, 마검사는 인간. 마검과 함께 마력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무한에 가까운 자신의 마력과 비교한다면 당연히 그녀의 쪽이 먼저 한계가 오는 것이 당연한 이야기다.
알프는 자기 몸이 한번 베일 때마다, 인간이 느끼는 죽음의 공포와 함께, 그 고통을 전부 느껴야만 했다.
"아아아아악!!"
필사적으로 사고를 굴리며 물러서고, 뒷걸음질 치고, 땅을 기더라도 서걱, 하는 소리가 다시 한번 울리면.
그때는 몸의 어딘가가 피를 흘려대며 땅을 구르고 있는 것이었다.
"학습하지 않는 군요, 쓰레기. 제 공격에 베이는 것이 싫다면, 몸을 처음부터 마력의 안개처럼 흩어버리면 되는 것인데."
루베라가 말한 대로이다.
굳이 물리적인 육체를 유지하는 것을 포기한다면, 공격은 못하더라도 루베라에게서 도망치는 것은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곧, 자신이 노예로 삼을 존재로밖에 보지 않았던 인간에게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 다른 바가 없었다.
미성숙한 정신이 가지는 프라이드는, 그것만으로도 스스로의 존재의 존속을 위협한다.
무지와 경험 부족에서 오는 경각심의 부재는 알프에게 `후퇴`라는 선택지 위에 먹칠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인간 주제에... 인간은 우리 악마들의 노예로 사용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일 텐데...!"
"당신의 소환사가 이야기해 주지 않던가요? 벌써 몇 체나 되는 악마가 우리들 인간들에 의해 죽었다고…. 심지어, 당신들에게 있어서 전설적인 존재인 `데미우르고스`조차도, 과거의 인간들에 의해 쓰러졌다는 것을."
"데, 데미우르고스마저...!?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바리사다가 다시 한번 휘둘러졌다.
말을 하던 도중, 머리가 잘려 나간 알프의 몸이 한번 흩어졌다가 재구성된다.
"혀가, 혀가아아!"
"슬슬 재미가 없네요. 비명을 내지르는 것은 듣는 데에는 질렸습니다. 다른 리액션은 없나요? 썩을 꼬맹이."
루베라가 차가운 얼굴로 그렇게 이야기하자, 알프는 전에 없는 굴욕스러운 감정을 느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커다란 눈에는 전에 없을 정도로 마력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극한의 위기 속에서, 인간은 놀라운 성장을 이루는 경우가 있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던 잠재력을 개화하는 것이다.
던전 속에서 혼자가 된 모험가라던가에게 자주 있는 이야기이다.
다만, 그것은 비단 인간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악마라고 하더라도, 몇 번이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갑작스럽게 성장을 이루는 일이 있었다
알프의 경우엔, 그것이 바로 지금이었다.
이전까지는 사용하지 못하던, 눈의 한 부분에 마력이 집중되며 그 눈에는 강력한 매료의 기운이 발현됐다.
음마, 몽마의 종류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을 매료하는 마안, 매료의 힘.
하지만, 그가 발현한 것은 다른 동족들이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서도 훨씬 더 정교하고, 아름다운 이채를 발하는 마안이었다.
키잉! 하는 소리가 알프의 머릿속에 울렸다.
마력의 기관이 뜨겁게 홍채를 달구는 것이었다.
그리고 루베라와 눈이 마주친 순간, 상대방의 홍채에 마력이 흘러 들어갔다.
"... ..."
움찔, 하고 루베라의 몸이 순간 떨렸다.
하지만 이내, 검을 휘둘러올 기색도 없이 멈춘 것을 본 알프는 놀란 얼굴이 된다.
"서, 설마, 매료에 걸린 건가?"
자신이 무엇을 한 것인지도 잘 알아채지 못하는 상황에서 알프는 움직이지 않는 루베라를 보며 몸을 일으켰다.
"하, 하하..."
그리고, 복수했다는 성취감에 젖어 몸을 떨며 웃음을 흘렸다.
"바~보! 허접! 노예 주제에 주인님한테 덤비니까! 절대로 봐주지 않을 거야! 이 아줌마!"
그렇게 이야기하며 루베라에게 가까이 다가간 다음 순간.
이번에는, 몇 번이나 되는 `잘라내는 소리`가 울렸다.
"어...?"
그런, 멍청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스르릉, 하는 금속의 움직임 소리가 멈추면.
바리사다의 도신이 검집으로 되돌아 가 있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목, 어깨, 넓적다리뼈, 무릎, 발목이 거의 동시에 잘려 나갔다.
마지막으로는 머리가 정중앙을 두고 정확히.
마치, 데칼코마니와 같이 대칭을 이루며 잘려 나간다.
"당신들 악마는 희망을 부여하고 그것을 앗아가는 것을 좋아하죠. 저도 따라 해 봤어요."
루베라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흩어져 가는 알프의 마음속에.
`이길 수 없어`
라는 생각이 솟아났다.
이것으로 32번째의 베임을 경험하고 나서야 얻은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간단했다. 굴욕? 프라이드? 그런 것들은 이제 알프에게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야기였다.
도망쳐야 한다.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이 여자에게
그렇게 생각하며 안개의 형태가 되어 땅바닥을 기어 추한 꼴로 루베라의 앞에서 멀어져 가려 한다.
루베라는 절대로 달리는 일 없이 천천히 그 복도를 걸어가며 바리사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바리사다."
[응...]
그리고
002
그리고 다음 순간.
클레온과 포츈.
루베라와 알프.
그리고, 아멜리아와 프로미스가.
동시에 같은 공간에 전이되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공간의 이동에 클레온과 루베라가 놀라 주변을 살피면.
그곳에는 멋쩍게 순백의 의상을 입고 서 있는 아멜리아와.
그 옆에서 박수를 치며 두 사람을 맞아주는 붉은 머리의 소녀가 서 있었다.
"아멜리아! 무사했군요...!"
"루베라...? 그 악마는 대체."
루베라와 클레온이 각각 다시 만난 일행에 대한 반응을 보이자.
프로미스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큰 소리로 박수를 보낸다.
"두 사람 모두. 악마와의 싸움, 재밌는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군. 한쪽은, 악마에게 자비를. 한쪽은, 악마에게 공포를 부여했다."
"... 당신은"
클레온은 소녀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에 몸을 움츠렸다.
"아아…. 가까이에서 있으면 알 수 있다. 네가 가지고 있는, 내 자매들의 영혼의 파편을."
감응자가 가진 능력으로, 상대방의 정체가 그대로 보인다.
"...화룡, 프로미스."
"그래. 내가 바로 그렇다."
프로미스는 입꼬리를 올리며 허리에 손을 얹힌다.
"드디어 만났구나. 우리들의 공용 남편.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단다. 우선, 네 선택에 관한 이야기부터."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면.
붉은 소파와 원형 테이블이 나타나며.
손님을 맞이하듯이, 손으로 소파를 가리킨다.
"모두, 이곳에 앉도록. 이것은 이 공간의 주인 되는 이이며, 대륙의 균형을 수호하는 의무를 지닌 진실된 화염. 프로미스의 명이니라."
그들이 자신의 명령을 거절한다.
라는 일 따위는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 듯.
화룡은 클레온과 루베라를 자신의 가까이에 오도록 손짓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말한 대로, 해야 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았다.
예를 들면
악마에 대한 것.
대륙에 대한 것.
그리고, 자식에 대한 것?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