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4화 〉 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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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쥐의 몸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소우주에 가까운 몸을 빌린 헤르메스는 곧바로 연산을 개시했다.
두 개의 인격이 한 몸에 있으므로, 사실 사고를 나눈다는 것에는 조금 어폐가 있었지만.
사실, 헤르메스와 그레이는 하나의 존재라고 봐도 무방했기에, 분리되었던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할 수 있겠지.
그레이가 몸의 주도권을 잡고 조금이라도 빠르게, 그리고 더 멀리 도망치려고 노력하는 동안, 헤르메스는 뒤에서 쫓아오는 하수처리 용 오토마타를 분석한다.
[재질은 녹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특수한 코팅이 되어 있지만, 그래도 강철인 것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군. 하수도의 물은 강한 산성을 띠고 있는 것 같으니, 녀석의 코팅을 벗겨내면 녀석의 몸에 불량을 일으킬 수 있을 거다.]
헤르메스의 차분한 목소리가 그레이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면, 그레이는 도망치면서도 슬쩍 뒤를 돌아본다.
그러자, 위이이잉!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을 향해 드릴을 들이밀려고 하는 오토마타를 보더니 다시 정면을 바라보고 전력 질주를 하는 것이다.
"저, 저런 녀석의 코팅을 어떻게 벗기란 검까!"
[지금 가지고 있는 도구는 대부분이 정탐용이라 전투에는 별로 쓸모가 없겠지만…. 무언가 방법이 있을 거다.]
"무책임함다!"
헤르메스의 아이디어에 원망스러운 목소리를 올리는 그레이.
그래도, 탐정답게 머릿속에서는 생각을 멈추지 않고, 그의 말대로 코팅을 벗겨내 볼 생각을 한다.
`잘 생각하는 검다. 다리가 긴 만큼, 이동 속도는 빠르더라도, 공격을 위해 휘두르는 데에는 분명 시간이 걸릴검다...`
공격 마법이라도 쓸 수 있다면, 도망치면서도 무언가 저항을 해보겠지만, 아쉽게도 그레이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주의. 너무 큰 소리를 내면 지상에서 지하의 소란을 눈치챌 수 있다.]
"그건 말 안 해도 아는 검다! 좀 더 상황에 도움이 되는 조언을 부탁함다!"
알고는 있지만, 목소리를 줄일만한 여유는 없었고, 그레이의 큰 소리가 하수도의 동공 안에서 울렸다.
어깨 위에 올라탄 채, 축 늘어져 있는 헤르메스의 본체.
지금은 그 안에 아무런 인격도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죽은 것 처럼 굳어서 흔들거린다.
그리고, 그레이는 뒤쪽에서 순식간에 가까워진 귀를 찢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허리를 구부려 몸을 숙인다.
그러자, 그레이의 머리 위로 거대한 절단용의 가위 같은 것이 `철컹!`하고 닫혔다.
"으헤엑!?"
입에서 칠칠치 못한 비명을 흘리면서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는 그레이.
다만, 조금 전의 그 자세 때문에, 어깨에 올라타 있는 헤르메스의 본체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헤르메스!"
[괜찮다. 저건 어디까지나 육체 중 하나일 뿐이야. 나의 자아는 지금 네 안에 있어.]
"그래도..."
다행히, 녀석이 밟지 않고 걸어와 준 덕분에 생쥐 형상의 오토마타는 부서지지 않았다.
다만, 아까부터 하수도의 안을 빙글빙글 돌면서 왔던 길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레이는 언제 헤르메스의 원래 몸이 밟힐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깨닫고는 눈을 크게 뜨고 헤르메스를 불렀다.
"헤르메스! 그럼, 저 하수처리 용 오토마타의 몸에 인격을 옮기는 것은 불가능한 검까!?"
[저 오토마타는 방금 땅에 떨어진 생쥐 형태의 오토마타보다도 훨씬 기술적인 차원에서 하위에 있는 물건이다. 당연하게도 나처럼 인격을 가진 자아가 들어있을 리 없다.]
헤르메스의 대답에 그레이는 딴소리를 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목소리를 높였다.
"가능한 검까 불가능한 검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하다. 다만, 저것은 너의 몸이나 생쥐와 다르게 원래부터 나의 인격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오토마타의 핵에 직접 접촉할 필요가 있다.]
그레이는 헤르메스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휙, 하고 뒤를 돌아본다.
거기에는 여전히, 어딘가의 살육 머신 처럼, 무자비한 무기들을 들고 쫓아오는 검은 그 녀석이 있었다.
"직접 접촉이라니... 저 괴물에게 말임까!?"
[오토마타는 괴물이 아니라 설계된 기계다. 인간의 설계지. 그렇기에, 분명히 허점이 있을 거다.]
그레이의 말에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헤르메스는 이어서 그레이의 안에서 이야기했다.
[그레이, 내가 네 안에 들어 있는 동안, 너는 나의 마력 리소스를 넘겨받아 신체 능력이 강화된다. 평소에는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지.]
"그건 알고 있슴다... 덕분에 이렇게 오랫동안 도망칠 수 있는 것도... 으으..."
결국은, 헤르메스가 말한 대로, 저 무기들의 사이로 빠져나가 녀석의 몸
아니, 핵이라고 한다면 분명 저 표면에서 붉은빛을 내는 보석이겠지.
아마, 저 신체에 마력을 공급하고 있는 마도석일 것이다.
필요 최소한의 명령만을 받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술식이 적혀 있겠지.
저기에 그레이의 신체 중 어디라도 가져다 대면, 그곳을 통해 헤르메스가 오토마타의 몸 안으로 침입할 수 있을 것이다.
"으으... 어디 하나 잘려 나가면 헤르메스 탓임다!"
[... ...]
그리고, 그레이는 달리던 것을 멈추고, 몸을 재빨리 돌려 오토마타와 대치한다.
"좋아... 클레온씨 처럼 싸움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해보겠슴다...!"
결의를 다져보는 그레이와, 그러거나 말거나 그레이에게 흉기를 들이민 채 가까이 오는 오토마타.
그레이는 우선, 자기 몸을 반으로 잘라내기 위해 다가오는 집게 가위를 보고 재빠르게 몸을 숙였다.
향상된 동체 시력과 반응속도가 없었더라면, 그 자리에서 고어한 장면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다음, 드릴이다. 오른쪽 위에서 내려찍는다.]
위이잉! 소리가 남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울리는 헤르메스의 목소리.
"이게 분할사고의 장점이지...!"
육체의 조종에 집중해야 하는 그레이와 다르게, 5감으로 얻어낸 모든 정보를 빠르게 분석하여 그 결과를 연산하는 것이 가능한 헤르메스의 자아.
따라서, 소리와 미세한 풍압만으로 다음에 그레이를 덮칠 공격의 존재를 예측하고 그 경로를 그레이에게 제시한다.
그레이는 고개를 돌려 헤르메스의 말이 맞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조차 아까웠는지, 그대로 몸을 앞으로 굴려 가까스로 드릴을 피해냈다.
뒤편에서 땅을 파고드는 흉흉한 소리가 들리는 것에 식은땀을 흘리고, 이어서 그레이의 눈앞에, 포박용의 집게 4개가 각각 다른 방향에서 그레이의 주변을 둘러싼다.
"어"
순간, 그레이의 집중이 흩어졌다.
[그레이. 집중해라! 점프하면]
헤르메스가 그레이를 다그치며 그레이의 신체 능력을 이용해 조금 높게 점프할 것을 이야기하지만.
"우앗...!"
결국, 네 개의 집게가 그레이의 몸을 각각, 상체에 두 개, 다리에 두 개 매달리며 그레이의 몸을 꽁꽁 묶어 버리는 것이었다.
"큭..."
팔과 다리를 구속당하여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그레이의 뒤쪽에서, 철컹거리는 가위 소리와 귀를 찢는 드릴의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그레이는 어떻게든 그 집게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쳐보지만, 강철로 된 집게를 풀어낼 만한 힘이 나오질 않았다.
[그레이. 집중하고, 마력을 자기 몸에 둘러라. 녀석이 녹이 슬지 않기 위해 몸의 주변을 코팅한 것처럼. 너도 마력을 통한 방벽으로 몸을 지킬 수 있을 거다.]
"그, 그런 거... 지금까지 해본 적도 없는 검다...!"
그레이는 그의 말대로 마력을 움직이려 해보지만, 애초에 마력을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그레이의 몸의 주변에서는 마력의 층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서서히 다가오는 흉기들.
그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여기까지인가, 하고 포기해버릴 것 같아지지만.
다음 순간, 자신의 발밑에 굴러다니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바로, 아까 전 자신이 떨어트렸던 헤르메스의 원래 몸이었다.
그레이는 곧바로 거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어떻게든 움직인다.
발끝, 손끝이라도 그 생쥐에 닿을 수 있다면
그렇게 염원하고, 마음을 강하게 먹자, 그레이를 붙잡고 있던 집게가 아주 조금 열리면서 그레이의 다리도 살짝이지만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작은 틈으로, 그레이의 발끝이 생쥐의 몸에 닿은 순간.
그레이의 몸은, 원래의 소년인지 소녀인지 잘 알 수 없는 외견으로 돌아가고, 몸에 가득 차 있던 마력의 기운도 사라진다.
다만, 널브러져 있던 생쥐의 눈은 다시 황동색으로 빛나면서 재빠르게 움직이더니, 그레이의 머리를 노리고 다가오던 흉기들이 몸이 닿기 전.
이동을 멈추고 있던 녀석의 몸을 타고 올라가, 붉은색으로 반짝이는 마동핵까지 일직선으로 돌진하더니
이내, 박치기를 하듯이, 녀석의 마동핵과 부딪힌 생쥐는, 그대로 다시 정신을 잃은 듯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철컹, 철컹, 위이잉 하는 소리가 어느샌가 멈췄다고 생각한 그레이가 질끈 감은 눈을 떠보면.
자신을 묶고 있던 집게조차도 서서히 힘을 풀며 자신을 놓아주는 것이었다.
"휴, 휴우..."
그레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 두세 번 반짝이던 붉은 마도석이 이내, 황동색으로 바뀐다.
[침입 완료.]
"주, 죽는 줄 알았슴다..."
헤르메스가 오토마타의 제어를 빼앗아서 가동을 멈추는 데에 성공한 것이었다.
그레이는 땅에 떨어진 헤르메스의 원래 육체를 손에 들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거대한 오토마타 조금 전까지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지만, 이제는 헤르메스의 새 몸이 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 안쪽은 어떻슴까? 생쥐보다 편함까?"
[부정. 리소스. 최소. 언어 능력. 부족함.]
대답해 오는 헤르메스가 짧은 단어로 만들어진 문장을 구성하자, 그레이는 그것이 꽤 이상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슴다. 빨리 원래 몸으로 돌아오는 검다. 아, 돌아오고 나서도 그 오토마타는 우리를 공격하지 않게 하는 것, 잊지마는 검다."
[알았다.]
그레이가 집어 든 생쥐를 마도석에 가져다 대자, 다시 한번 반짝이던 마도석의 빛은 그대로 생쥐의 몸으로 옮겨져 왔다.
[이걸로, 첫 번째 난관은 어떻게든 넘겨냈군.]
"이거보다 더한 난관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슴다... 이렇게나 소란을 부렸는데 위쪽에서는 눈치채지 못하는 검까?"
그레이가 천장을 올려다보면, 확실히 두꺼운 벽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어쩌면... 세토스경이 사람을 물려놓았을지도 모른다. 자기 아들을 데리고 가야 하니까 말이야.]
"과연... 그렇다면 다행인검다만... 저희도 빨리 가야 함다."
[그래. 조금이라도 많은 것을 관측하고, 그 정보를 가지고 돌아가야 한다. 알베인, 세토스. 그 둘은 분명히 `아담`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001
"당신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부정을 일으키는 건가요?"
알베인과의 면담을 마친 세토스의 뒤쪽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베인을 먼저, 부하들을 시켜 건물의 비밀통로로 빠져나가게 한 뒤, 자신은 이곳의 간수들에게 덕담이나 넘기며 시간을 끌 생각이었는데.
지금까지 세토스의 뒤에서 조용히 그를 수행하던 인물은, 검은 머리에 색안경을 끼고 있는 여성이었다.
세토스는 슬쩍 뒤를 돌아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혈육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하지. 나는 가정적인 인간이거든. 트로메이아 가문을 위해서 지금까지 일해 왔고, 형님을 위해서도 지금까지 노력해 왔으니까."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그분`을 위한 일이었죠. 세토스 경. 그 분께서는 필요하지 않은 일에 힘을 쓰는 것을 그리 원하지 않으실 겁니다."
여성의 말에, 세토스는 흥...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그녀를 향해 완전히 돌아보았다.
"그것이 나를 감시하기 위해 따라온 이유인가? 이블린?"
"저는 당신에게 고용되어있죠. 제 주인은 당신입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당신이 `그분`을 위해서 일한다는 조건 아래서 이루어진 계약일 뿐입니다."
색안경의 너머로 번뜩이는 살인자의 안광.
일반인이라면 섬뜩함을 느끼고, 그 살기에 짓눌릴 수도 있었지만 세토스는 `일반인`이 아니라 지금까지 몇 번이고 그런 이들을 상대해 온 잔뼈 굵은 전사이자 정치가이다.
그 정도의 살기를 느끼는 일 따위, 젊은 시절에는 더한 수라장을 견뎌왔다.
"말해 두자면... 이것은 모두 그분을 위한 일일세."
"...호오?"
세토스의 말에, 이블린은 예상 밖이라는 듯이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마치, 뻔한 거짓말을 들었을 때 더 지껄여 보라는 반응과도 같았다.
"믿지 않는다는 것인가? 알베인, 그 아이는 용사야. 선천적으로 용사로 태어난 아이지. 아루루처럼 말이야. 하지만, 그 아이의 마음은 아루루 만큼 강하지 않아. 정신이 육체를 받쳐주지 못한다고 해야겠지."
세토스는 자기 아들이 보지 않는 장소라고, 거리낌 없이 알베인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내뱉었다.
방금 까지 알베인의 앞에서 그를 위한다고 이야기하던 남자와 동일 인물인지 의심되는 수준이었다.
이블린 역시 같은 것을 생각했는지, 피식 웃으면서 세토스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의지력이 약한 용사는, `그분`을 위한 최적의 그릇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이블린."
"...아하. 과연, 그런 것이군요."
이블린은 세토스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의도를 이제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동시에 섬기고 있는 `그분`이라는 존재.
그 존재의 새로운 그릇으로서, 알베인을 바치겠다고 세토스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괜찮습니까? 아무리 젊은 시절의 치기에서 태어난 아이라고는 하지만, 당신의 아들인데?"
이블린은, 아까와는 반대로 그의 의지를 시험하듯이 물었고, 세토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내 아들이 대륙의 평화를 위한 반석으로 쓰일 수 있다면, 그것보다도 영광스러운 일은 없지. 그 녀석도 용사라면, 그 역할에 만족할 거다."
"후후... 당신의 그 대답이. 일시적인 변통이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세토스 경. 그분의 명령이라고 하더라도, 당신을 자르는 것은 저에게도 힘든 일이거든요."
이블린의 말에 세토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몸을 돌려 간수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이내 세토스는 발을 멈춘다.
"아아. 그렇지. 쥐새끼는 자네에게 맡기겠냬. 일을 마치기 전까지 소란을 일으켜서는 안 되기에 조금 내버려 두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군."
"알겠습니다. 세토스 경."
이블린이 그렇게 대답하자, 그녀의 몸이 마치 그림자에 녹아들듯이 사라져 버렸다.
적막만이 남은 방에서, 세토스는 헛기침을 한 뒤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레이는 황급하게 몸을 일으켜, 자신이 침입해 온 구멍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그레이, 서둘러라. 그녀가]
귀로 들리는 헤르메스의 목소리,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기에 알아듣기가 힘들었지만, 자신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어머,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니...? 꼬마야."
그리고.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린 목소리.
그레이가 황급히 몸을 돌린 그 순간, 그레이의 어깨에 단도가 틀어박혔다.
"아윽...!"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며, 그레이는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고개를 들어 앞을 올려다보면, 그곳에는 색안경의 너머로 감정 없는 눈동자를 번뜩이는 아름다운 여성이 서 있었다.
"설마, 여기까지 우리를 쫓아온 첩자가 이런 꼬맹이일 줄이야…."
피가 철철 흐르는 그레이를 내려다보며, 그녀는 조금 실망했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번 돌아가는 게 좋다고 경고는 했는데…. 어지간히 우리들의 뒤를 캐고 싶었나 보네?"
"그 그게 말임다... 사실은, 세토스 경의 팬이라..."
그레이가 그렇게 말하는 다음 순간. 이블린은 웃으면서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붉은 눈이 박혀 있는 장갑이, 인상적이었다.
"어머... 그랬구나. 하지만, 아무리 세토스 경의 팬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곳까지 들어오는 건 조금 그렇네…. 나쁜 아이에겐, 벌이 필요하겠구나."
"아"
다음 순간, 그레이는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자신의 관자놀이를 꿰뚫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몸이 차가워지고 안에 있는 피와 생명이 그 구멍을 통해 빠져나갔다.
[그레이! 늦었나... 하지만, 심문이 아니라 즉시 살해당한 것은, 불행 중의 다행…. 인가...]
헤르메스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는 이미, 그레이의 시체를 회수하는 것도 포기한 채로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다음 순간, 그레이의 목에 걸려있던 펜던트가 조금 반짝이는 듯하다가 그 빛을 잃었다.
마치, 사라져버린 그레이의 생명을 그대로 나타내는 듯했다.
"시체는 대충 눈밭에 묻어버리면 되려나~"
이블린은 그렇게 말하며, 그레이의 시체를 집어 들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감옥에는 여전히 적막만이 남아있었다.
002
어두운 연구시설로 보이는 장소에, 마력에 의한 푸른 빛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곳에는, 13개의 관이 있었는데, 그중 12개는 텅 비어 있고, 단 하나의 관에만 나체 상태의 인간이 들어가 있다.
[이브로의 업로드 확인. 다운로드 개시.]
[육체의 해동을 개시, 인격 재구축…. 완료.]
[개체명... 트리스 메기스토스 리파인 휴먼... 13번. 그레이.]
"푸하아...!"
소년인지, 소녀인지 알기 어려운 인간이, 푸른색의 액체가 가득한 수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조금 전 까지 얼어붙어 있던 곳에 있었고, 나체였기 때문에 추위를 느낄 법도 했지만.
그것은, 수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오더니 곧바로 몸에 묻어있는 용액을 말리기 위한 처치를 받았다.
놀랍게도, 그것의 몸 고간에는 어느 쪽의 성기도 달려 있지 않았다.
남성기는 물론, 여성기의 갈라짐도.
그것은 무성(無?)이었다.
간단한 의복과 함께, 그녀의 목에 펜던트가 걸려진다.
"아아 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는 지를 확인한다.
[일어났나, 그레이?]
"무서웠슴다... 그래도 이번에는, 어느정도 예상을 할 수 있어서 기억의 누락 없이 전부 옮겨올 수 있었슴다."
그레이는 자기 몸에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마지막 육체다. 소중하게 쓰도록.]
"물론임다... 돌아오는 데에 얼마나 걸릴 것 같슴까? 헤르메스."
[내일이면 도착할 수 있을 거다. 부상차를 회수해서 돌아가도록 하마. 너도, 곧바로 바깥을 돌아다니는 건 삼가도록. 아마 네 얼굴은 그 암살자에게 기억됐을 것이다. 사태가 끝날 때까지는 정체를 숨기고 행동해야 해.]
헤르메스의 말을 들은 그레이는 잠시 벽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달력이 걸려있었다.
"메르카 씨의 의수와 의족을 봐줘야 하는검다..."
[나중으로 해라.]
"히잉."
그레이는 짧게 불만의 소리를 내뱉으며 자신이 나온 관을 바라보았다.
잿빛으로 물든 그녀의 눈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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