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5화 〉 파티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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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메스와 함께 왕성의 파티장에 도착한 클레온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감탄밖에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모험가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귀족의 저택에 방문한 적도 몇 번이나 있었고, 아카데미의 거대한 회장을 본 적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봐 왔던 것과 눈앞의 파티 회장을 비교하면, 어쩔 수 없이 지금까지 봐 왔던 모든 '호화'나 '사치'라는 것이 조금 그 정도가 덜해 보이게 되는 것이었다.
눈 앞에는, 그야말로 왕국 아니, 대륙 전체의 사치를 긁어모아 만든 것 같은 장소가 펼쳐져 있었다.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는 황금색으로 빛나며, 수십 가지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안에는 한번 마력을 주입하고 나면 스스로 마력을 생산하여 반영구적으로 동력을 공급할 수 있는 마석이 들어있었다.
저 샹들리에 하나를 만드는 데에,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고, 얼마나 많은 기술자가 힘을 보탰을지 클레온으로서는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것이 일정 간격을 두고, 회장 안에 여러 개가 배치되어 있으니, 회장 안은 실내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대낮의 바깥처럼 밝았으며, 넓은 회장 곳곳에 빛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천장 뿐만이 아니라, 지상에 놓여 있는 거대한 테이블이나, 벽에 갈려 있는 커튼, 바닥의 카페트.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모든 것이 최상품으로 보인다.
"굉장하네요... 역시, 대륙 최강국의 왕성..."
베아트릭스 역시, 주변을 둘러싼 환경이 모두 신기한 것인지, 감탄의 말을 내뱉으며 클레온 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 작년에 왔을 때보다 조금 더 호화스러워진 것 같기도 하고. 역시, 매년 실내장식을 조금씩 바꾼다는 소문은 사실인 것 같네요."
"...아무리 제국이 사라진 뒤 커다란 재앙 없이 왕국이 통치되고 있다곤 하지만... 이렇게까지 화려하게 꾸밀 필요가 있는 건가?"
리오메스의 말에 클레온은 조금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이 묻는다.
그러자 리오메스는 조금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하다가, 클레온에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방금 베아 양이 말했듯이, 왕국은 이제, 대륙의 최강국이에요. 제국이 멸망하고 난 뒤, 왕국을 견제할 수 있는 나라가 없어지긴 했죠. 악의 축이었던 제국을 제압한 왕국은 자연스럽게 대륙의 수호자로서의 위치를 얻게 되었구요. 그러니까, 이런 곳에 모이는 다른 나라의 외교관이나 귀족, 왕족들에게는 왕국이 가지고 있는 힘 그중에서도 재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거에요."
"힘을 보여주는 것으로, 주변국들이 반항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건가..."
"맞아요. 반대로, 이렇게나 번영하고 있는 나라가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안심감을 줄 수도 있는 거죠."
클레온은 알겠다면서도, 다만 그 정도가 지나친 것 처럼 느껴지는 기분을 떨칠 수 없는 것인지 조금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문이 드는 것은 이해하지만, 일단은 이 자리에서는 참아주세요. 주변에는 다른 귀족들도 있고... 저 처럼 다른 나라에서 온 왕족들도 있으니까요."
리오메스는 작게 미소를 지으면서 클레온을 달래듯이 이야기했다.
물론 클레온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한숨을 내쉬면서 베아를 바라본다.
베아트릭스는 여전히 주변의 장식들이 신기한 것인지, 어느샌가 주머니에서 분석용의 단안경을 꺼내 주변의 가구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베아 양도 잘 챙겨주시구요."
리오메스의 말에 클레온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인다.
"베아. 오늘은 견학이 아니라, 파티의 손님이니까."
"그, 그랬죠. 죄송해요 선배."
베아트릭스도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들고 있던 단안경을 황급히 허리 뒤로 숨긴다.
다행히, 주변에 모인 손님들은 아직 그 수가 적었고 본격적인 파티는 시작되지 않은 것 처럼 보여 베아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면, 저는 먼저 다른 분들께 인사를 하고 올게요."
리오메스는 작게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하더니 클레온과 베아트릭스를 두고 회장의 안을 걸어나갔다.
그녀 정도의 실력자라면, 에스코트는 없어도 괜찮겠지만.
"그럼... 우리도 아루루를 찾아볼까?"
"바, 바로 만나러 가는 건가요? 휴우..."
베아트릭스는 조금 긴장된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카데미에서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한 번 봤었잖아?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그, 그렇죠... 하지만 이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만나는 건, 역시 처음이라..."
클레온은 그녀를 조금 진정시켜주려는 듯이 손을 붙잡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의 감촉과, 그녀의 맥박이 느껴졌다.
"가, 감사합니다. 선배..."
베아트릭스는 조금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인다.
진정시켜 주려 한 것인데, 오히려 맥박이 조금 빨라진 것 같았다.
클레온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그때.
"... ..."
무언가, 자신을 노려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클레온의 고개가 돌아가지 않고 시선만이 그쪽을 향해 움직였다.
베아트릭스를 향한 것이 아닌, 명백하게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암살자가 내뿜는 살기와는 달랐지만, 그럼에도 그리 기분 좋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주변에 자신들과 관계없는 이들도 많이 있었다, 휘말리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클레온이 베아를 이끌어 아루루가 있을만한 장소를 찾아 회장의 안을 움직인다.
걸어가는 도중, 주변에 있는 인물들을 돌아보면 역시 왕국의 귀족들이 많은 것일까, 대부분 사람들이 금발인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서 있을 때 보다, 움직이고 있을 때 주변의 시선을 더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대부분은 클레온의 옆에 서 있는 베아트릭스에게 시선이 한 번 갔다가, 바로 옆에서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끄는 클레온을 한번 보고는 시선을 돌려 버린다.
과연, 리오메스와 라일라가 원했던 것은 이런 구도였나, 같은 것을 생각하면서 회장의 가장 안쪽으로 걸어가면.
클레온의 예상대로 아루루는 그곳에 서 있었다.
옆에는, 유스테스도 함께였으며, 많은 귀족이 그녀의 주변에 모여 공작가 영애인 그녀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루루는 많은 사람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이 익숙하다는 듯이 여유로운 미소마저 띤 채 주변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루루를 둘러싼 인파 중에는, 아카데미에서 본 적이 있는 듯한 얼굴의 사람들도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되기 전인만큼, 조금이라도 빨리 그녀의 눈에 들고 싶은 것이겠지.
"...조금 기다릴까?"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클레온과 베아트릭스는 주변의 인파가 조금 줄어들 때 까지 거리를 두고 기다리려 했다.
그때, 그런 아루루가 대화하는 옆에서, 한량과 같이 조금 치기 많은 귀족 남성들과 대화하던 유스테스가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클레온을 발견하고는 손을 들어 흔들어 보인다.
"클레온."
그녀가 조용히, 이름까지 부르고 나면, 아루루의 시선도 클레온을 향하는 것이었다.
"클레온...! 베아트릭스도!"
아루루도 두 사람의 이름을 부르자, 주변의 귀족들이 단번에 두 사람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렇게 많은 시선이 자신들에게 집중되는 것에 그렇게 익숙하지 않았던 두 사람은 순식간에 긴장을 느끼지만.
아루루가 걸음을 걸을 때마다 인파가 자연스럽게 벌려지면서 그녀를 위해 길을 내 주는 것을 보고는 조금 감탄하고.
순식간에 자신의 앞까지 다가온 아루루와 마주 보는 형식이 되었다.
언젠가, 그녀의 아버지와 만났을 때와 같은 붉은색의 드레스 차림은 역시 그녀에게 잘 어울리고 있었다.
"라일라에게서 미리 이야기를 들었어. 잘 왔어, 베아트릭스 양. 왕도에."
"아, 아루루 님. 아카데미에서는 여러모로 시, 신세를..."
베아트릭스는 전에 없이 긴장한 듯이 말까지 더듬어가며 대답하지만, 그런 그녀를 보고 아루루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그녀의 손을 잡았다.
"'님'은 필요 없어. 우리 둘 다 귀족이고... 아카데미의 학생이니까."
"맞아. 평민인 나도 아루루를 경칭 없이 부르는걸."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면, 베아트릭스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고쳐 불렀다.
"...아, 아루루..."
"좋아. 그럼 나도 베아라고 부를게. 역시 이 편이 좋지."
아루루가 미소를 지어 보이자, 베아 역시 조금 부끄럽지만, 라일라 처럼 터놓고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상대가 생겼다는 것이 조금 안심되는 지 조용히 웃어보았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귀족들은 어떤가 하면, 갑작스럽게 나타난 베아와 클레온을 보고 조금 수군대는 이들도 있는 것이었다.
"...귀족인데 잿빛 머리...? 혹시, 그 휴트러스 가문의..."
"설마... 두 자매가 다 죽었다고 하던데... 그보다도, 옆에 있는 건 흑마의 일족 아닌가?"
아무래도, 베아의 가문도, 클레온의 종족도 왕국 귀족들이 보기에는 조금 껄끄러운 것 같았다.
그런 이들을 뒤로하고 유스테스가 가까이 와 클레온에게 인사한다.
"크, 클레온. 오늘 파티에 온다고 아까 들었을 땐 놀랐어."
"어디까지나 이쪽의 에스코트와 경호를 위해서지만."
클레온이 베아트릭스를 가리키면, 유스테스도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는 '응...'하고 대답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득, 클레온은 그녀가 손에 잡고 있는 커다란 가방을 내려다 보고, 안 쪽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에 다시 유스테스를 바라보았다.
"... 어째서 미스틸테인을 이곳에..."
클레온이 조금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질문하자, 유스테스는 멋쩍게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건"
"그건 내가 대답해 줄게. 여기서 이야기하기엔 조금 그러니까... 다른 방으로 이동해도 될까?"
유스테스가 이유를 이야기하려는 찰나, 아루루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무래도 주변에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의도치 않게 그들의 말이 들리는 것을 피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클레온도 베아와 시선을 교환하더니 아루루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저는 조금 이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오겠습니다. 파티가 시작하기 전까진 돌아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루루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자, 주변의 귀족들도 하나 둘 떠나가면서 그녀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었다.
"굉장한 인기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나의 용사라는 직책과 트로메이아 가문에 대한 신뢰지만 말이야."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아루루가 대답한다.
하지만 클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아루루의 인간으로서의 매력이 더 크다고 봐."
"저, 저도요. 아루루."
"...고마워. 후후. 클레온과 베아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네."
배시시 웃어 보이는 아루루는 조금 전 늠름하게 주변을 휘어잡던 귀족이며 용사가 아닌, 평범한 소녀와 같이 순수해 보였다.
유스테스는 그런 아루루와 클레온을 바라보면서 무언가 복잡한 심정을 느끼면서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001
네 사람이 이동한 것은, 회장 바로 옆에 준비된 작은 사실(??).
본래라면,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하기 어려운 외교적인 이야기나, 분위기를 탄 남녀가 빠져나와 쓸 수 있도록 준비된 방이었기에, 방음은 완벽한 장소였다.
아직 파티가 시작되지 않은 만큼, 아무도 사용하고 있지 않아 가볍게 들어올 수 있었지만, 파티가 시작되고 나면 금세 사람이 들어와 버린다고 아루루가 부연 설명을 해준다.
"그렇구나... 유스테스는 들어와 본 적 있어?"
"아니. 들어오고 싶었던 적은 많았지만. 아쉽게도. 설마, 이렇게 들어오게 될 줄이야."
클레온이 질문하자, 유스테스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루루는 그런 유스테스를 조금 측은하게 바라보지만, 유스테스는 아루루에게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줘...'라고 조용히 대답할 뿐이었다.
"그래서... 아루루가 아론다이트를 늘 데리고 다니는 건 언제나의 일이지만, 유스테스에게까지 성검을 들고 오라고 한 이유는 대체 뭐야?"
클레온이 그렇게 질문하면, 아루루는 조금 진중한 표정이 되어 클레온에게 이야기했다.
"지금 왕도 안에, 허가를 받지 않은 침입자들이 있어. 그것도, 마법이나 무언가의 수단을 통해 성벽과 왕도의 결계를 그대로 지나쳐서."
왕도에 펼쳐진 결계는, 정해진 관문을 지나치지 않고 통과한 이들을 모두 감지한다.
라일라가 평소에 사용하는 것처럼 차원문 주문을 이용해서 왕래할 수 있는 것은 허락을 받은 마법사들 뿐이고.
그 외의 모든 이들은 한 번 그 결계에 의해 걸러지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침입한 이들은, 마치 투명한 액체를 거대한 욕조 안에 떨어트린 것 처럼, 아무런 위화감 없이 왕도의 안으로 섞여 들어와 있었다.
왕도의 결계는 대륙 최고의 마법사들이 유지보수를 하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감지가 가능한 것이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의 정체나 현재 위치를 알아내는 것까지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승전기념일의 파티, 그리고 곧 있을 퍼레이드 때문에라도 대륙 각 곳에서 왕족과 귀족들이 모여든 상황이야. 이런 중에, 왕도의 결계를 넘어오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대응할 수 있도록, 유스테스에게도 성검을 가지고 오라고 한건가. ...왕성에는 알렸어?"
아루루는 클레온의 질문을 듣더니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버지와 나. 그리고 아버지 휘하에서 왕도의 결계를 유지하고 있는 마법사들뿐이야."
클레온은 아루루의 말에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왕성의 근위대는 대륙 최고의 기사단이야.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분명 더욱 쉽게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 텐데."
클레온의 말대로, 왕성의 경비를 담당하는 이들은, 제국과의 전쟁에서 커다란 활약을 펼친 기사나 병사들, 그리고 그들로부터 훈련을 받은 잔뼈가 굵은 정예 중의 정예였다.
개개인의 무술 실력을 두고, 대륙 최강이 누구냐고 하는 질문에는 여러 가지 답이 나올 수 있었지만.
집단전에서라면 누구라도 왕성의 근위대를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왕성의 근위대는 오직, 국왕의 명령만을 받는다.
방위대신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명령할 권한은 없었고, 제안이나 부탁에서 멈추는 것이었다.
"그게... 폐하께서는 요 몇 달 동안, 요양 중이시라는 것 같아. 이번 파티에도 불참하고, 누구도 만나지 않은 채 지내고 계셔."
"...근위대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그 상태면, 근위대는 움직일 수 없다는 건가."
"...답답하네요."
베아트릭스는 느낀 바를 그대로 입에 담았고, 유스테스도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사건이 일어나면, 왕성의 경비를 명받은 근위대도 움직일 수밖에 없어. 하지만 중요한 건 일어난 뒤에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선제적 방어야. 클레온, 베아, 우리를 도와줄래?"
클레온은 아루루의 말을 들은 뒤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베아트릭스 역시, 클레온과 함께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는 말에 고민 없이 아루루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다.
"고마워. 두 사람 다. ...베아트릭스는 마법사라서 괜찮을지도 모르겠지만, 클레온은 오늘 무장 없이 온 건가?"
"설마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칼리번을 부를 수 있으니까."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며, 각인 너머로 그의 성검을 불러들이려 하자, 아루루가 그의 손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왕도와 마찬가지로 왕성 역시 결계가 펼쳐져 있어. 바깥에서 무기를 가지고 왕성에 들어오는 것은 위법행위야. 발각된다면, 근위병들이 잡으러 올 거야."
"...그 가방은 어떻게 넘겼는데?"
"내 여벌 드레스와 속옷이 들어있다고 하고."
클레온은 아루루의 말에 당황해 하고 있을 근위병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걸로 통과시켜준단 말이야?"
"실제로 무기가 들어있기엔 좀 많이 가볍거든."
"하지만, 선배라면 리오메스씨의 무술을 빌려 오는 것도..."
"... ..."
확실히, 그녀에게도 지배의 각인이 깃들어있지만, 그녀의 무술은 원리를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았기에 각인의 힘을 쓰더라도 제대로 다룰 수 있을지 의문인 것들뿐이었다.
게다가, 그를 보조해 줄 갈라테아도 지금 곁에 없는 상황.
클레온은 잠시 고민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무기는 없어도 괜찮아. 여차하면, 적의 것을 뺏어서 쓰던가. ...근위대의 것을 빌려 쓰지 뭐."
클레온의 말에 유스테스는 조금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봤지만, 아루루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클레온에게 대답했다.
"클레온 다운 대답이네. 걱정하지 마, 무장 없이 왔다고 했다면, 내 걸 빌려줄 생각이었으니."
아루루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자신의 귀걸이에 손을 댄다.
그러자, 푸른색의 수정 귀걸이는 아루루의 손안에서 한번 변화하여, 똑같은 형태의 귀걸이가 하나 더 복제되듯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클레온의 한쪽 귀에 걸어주는 것이었다.
"... 아론다이트는 편리하네."
클레온은 자신의 귀에서 흔들리는 귀걸이를 손으로 만지작거린다.
[너무 그렇게 만지시면, 부끄럽습니다. 클레온 님.]
그 때, 자신의 귀에도 아론다이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깨닫곤 황급히 손을 내리는 것이었다.
"...맞아. 응큼해."
아루루가 그렇게 말하며 클레온을 바라보면, 클레온은 조금 봐달라는 듯이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연인끼리 악세사리를 맞춘 것 같네요..."
베아가 조금 부럽다는 듯이 두 사람을 보면서 이야기하면 유스테스도 고개를 끄덕인다.
"뭐. 그다지 틀리진 않지. 안 그래 클레온?"
"너무 놀리지 말아줘..."
아루루가 싱긋하고 웃으면서 이야기하면, 클레온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때, 정각을 울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슬슬 시간이야. 우리도 회장으로 돌아가자."
아루루가 그렇게 설명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머지 세 사람도 함께 일어나 사실을 빠져나와 회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회장에 들어가면...
회장의 안에 있는, 계단 위의 단상.
주최자의 연설이 행해지는 곳에, 금발의 잘생긴 청년이 선 채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클레온과 비슷하거나 조금 밑... 어쩌면 알베인보다 조금 위일지도 모른다.
벽안은 총명하고 이지적인 빛을 띤 채 빛나고 있었고, 입가에는 여유로우면서도 선한 미소를 띤 채였다.
"...저건?"
아루루에게 슬쩍 질문하면, 그녀도 조금 놀란 듯이 대답했다.
"카시우스 칼데아리스. 왕국의 왕세자야. 몸이 조금 병약해서, 사람들 앞에서는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클레온은 아루루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즉, 그는 아멜리아의 혈육이었고, 지금의 왕이 죽게 되면 그 뒤를 이어 이 왕국을 통치할 남자였다.
"그에 대한 평가는 들은 적이 없네."
"지금 왕성에서 가장 백성들의 호감도가 높은 인물이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대신들과 협력해서 백성들을 위한 여러가지 정책을 펼치고 있어. 그를 가르치는 선생과는 아는 사이인데, 현명하고 선한 남자라 장차 성군이 될 거라고 하나 봐."
클레온 역시, 아루루가 말한 것과 비슷한 것을 느낀 듯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서는 지금까지 클레온이 봐 왔던 위정자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리고 여러분. 저는, 오늘 여기서 여러분들께 한 사람을 더 소개하려 합니다. 비록, 저와는 어머니도 다르고,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 평소에는 탑에서 나오지 못하지만. 그녀 역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이런 즐거운 날을 함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카시우스가 그렇게 이야기 하자, 클레온과 아루루는 단번에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
"설마."
그리고, 카시우스가 손을 뻗어, 자신의 뒤에 있는 커튼 너머로 향하면.
그곳에서 걸어나오는 것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채, 드레스를 몸에 걸친 작은 키의 소녀였다.
카시우스의 이야기에 환호하고 있던 귀족들은 단번에 정적에 휩싸이고 만다.
"...아멜리아..."
클레온이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리면, 귀족들 사이에서도 웅성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자. 진정하세요. 이 애는 그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의해 운명을 속박당한 가엾은 제 여동생입니다.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 계신 덕분에, 파티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셔서 이렇게 행사에 부를 수 있었습니다."
카시우스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이야기한다.
"깜짝 게스트가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군요. 그럼, 지금부터 승전기념일 전야제의 파티를 시작하겠습니다."
누구 하나 반박할 틈도 없이, 카시우스는 잔을 들어 올렸다.
"왕국과 대륙의 영원한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건배!"
그렇게, 파티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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