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6화 〉 불청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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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와 카시우스가 마지막으로 얼굴을 마주한 것은, 3년 전의 승전 기념일의 퍼레이드 전날이었다.
당시, 아멜리아는 아직 세인트 프린세스로서 활동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바깥에 나가는 일 같은 것은 꿈에도 꿀 수 없었고.
7살 여자아이는, 하루하루 변함없는 나날을 유폐된 방 안에서 보내며, 날짜의 감각조차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방에 찾아오는 것은 자신을 반역자의 피가 흐르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종들과, 트로메이아 가문의 여주인 오렐리아 뿐.
그나마도, 오렐리아가 없었더라면 아멜리아에게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인간의 감정이 아직 남아있는 덕분에, 그녀는 자신의 삶이 끝나기 전까지 영원히 계속될 이 유폐 생활에 대해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아버지 즉 국왕은 아멜리아가 유폐된 방에 단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었으며.
그와 만날 수 있는 것은, 매년 이루어지는 퍼레이드의 행사에서뿐.
그나마도, 그는 맨 앞자리의 마차에.
자신은 맨 뒷자리의 철창이 얹혀진 수레에 가만히 앉아서 가야 하므로, 얼굴을 마주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시종은 이야기했다.
"아멜리아님. 내일은 퍼레이드에 참석해야 하시니, 일찍 주무시기 바랍니다."
시종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아멜리아에게 따뜻한 차를 내밀었다.
그녀가 아멜리아의 몸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차 안에는, 수면제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아멜리아는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혹시라도 이동하는 사이에 아멜리아가 저항하여 도망칠까 봐, 퍼레이드가 시작되기 전날 밤에는 늘 약을 먹여 아멜리아를 잠재운 뒤에.
잠들어있는 사이, 그녀를 옮겨 수레에 넣어 퍼레이드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도망칠 곳 따윈 없는데.'
어쩌면, 트로메이아 가문의 저택으로 가면 오렐리아가 자신을 감싸줄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지만,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그녀에게 폐를 끼치는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아멜리아도 그 차를 받아들여 입에 가져다 대려 한순간이었다.
시종과 아멜리아, 단 둘뿐인 방의 문이 두드려진다.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는 무게와 리듬이었다.
"카시우스다. 안에, 아멜리아는 있니?"
바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종과 아멜리아는 서로를 바라본다.
하지만, 양쪽 모두 그가 찾아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는지, 시종은 황급히 몸을 일으켜 문으로 다가갔다.
"카시우스 님. 어째서 이곳에..."
"음. 시종이 있었나. 잠깐,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 조금만 문을 열어줄 수 있나?"
그의 말에, 시종은 당황한 듯이 잠시 고민하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시종 신분이고 상급자의 명령을 거절할 수단 따윈 없었다.
그리고, 그가 문을 열면 그곳에는 아멜리아의 아버지와 매우 닮은 인상의 소년이 서 있었다.
짧게 친 금발의 머리에, 푸른 색의 눈. 그리고 호리호리하지도, 우락부락하지도 않은 몸.
이대로 자라나면, 분명 왕국 귀족과 왕족의 모범이 될만한 청년이며, 남성으로 자라날 것이 분명했다.
왕세자 카시우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인 국왕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첫 부인이었던 아멜리아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아이를 가지지 못했고, 덕분에 왕실 내에서도 조금씩 그 입지가 줄어들어 가던 찰나.
카시우스가 태어나면서, 왕실 내의 힘의 균형은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봐도 된다.
카시우스는 아멜리아보다도 8살이나 위였으며, 차기 왕이 되기에 흠잡을만한 구석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성품과 지성, 그리고 타인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외모까지.
단 하나, 몸이 조금 약하단 것을 제외한다면.
아멜리아는 그런 카시우스에 관한 것을, 시종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 쪽도, 아멜리아를 일방적으로나마 알고 있겠지.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아멜리아와 접촉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마저도.
"... ..."
아멜리아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카시우스에 대해 무어라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듯 조금 긴장한 태도였다.
그리고, 이쪽에서 먼저 말 거는 것조차, 아마 용서되지 않으리라.
이미 잠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기에, 아멜리아는 침대의 안에 있었지만 카시우스는 그 모습을 보고 실수했다는 듯이 조금 곤란한 얼굴을 지었다.
"혹시, 벌써 자려고 했던 거니? ... 그렇다면 미안한걸."
"아뇨,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전하."
아멜리아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카시우스는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전하라니. 아멜리아, 너도 왕족이고, 너는 내 여동생이잖아."
카시우스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아멜리아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찾아오신 걸 국왕 폐하께서 아시면, 전하를 야단치실 겁니다."
시종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카시우스는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용건만 전달하겠다는 듯이 아멜리아에게 이야기했다.
"이제 곧 네 생일이잖아. 다른 분들은 전부 기념일의 행사 준비를 위해 정신이 없으니까, 이때가 아니면 이야기를 하지 못할 거로 생각해서 말이야."
아멜리아는 어째서 카시우스가 자신을 찾아온 것인지, 그리고 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해 전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오늘 밤하늘은 굉장히 맑아서, 별이 잘 보여. 이 방에는 창문이 없어서 보이지 않겠지만..."
카시우스는 아멜리아의 침대 옆에 앉아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혹시, 놀리러 온 것인가?
아무리 아멜리아라고 하더라도, 카시우스의 말을 들으면 그렇게 느껴졌다.
"선생님으로부터 재밌는 점성술에 대해 배워서 말이야. 영맥의 힘과 별의 힘이 공명하는 오늘 같은 날에는, 사람의 운명이 잘 보인다나 봐. 그래서, 아멜리아. 네 점을 봐 왔어."
"... ...?"
그의 말은, 어린 소년이 할법한 장난이나, 호기심에 의한 행동이었다.
지금 그의 나이가 15살이니, 그럴 시기는 조금 지난 것 같기도 한데.
"사실, 왕실 사람들 모두의 점을 봤지만... 그중에서도, 아멜리아의 결과가 가장 재미있었거든. 아멜리아. 앞으로 너는, 소중한 친구를 만나고, 여러 가지 사건에 휘말리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자신의 사명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될 거야."
카시우스의 말에 아멜리아는 조금 입을 다물었다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여기서 나가지 못하는데 대체 어떻게 친구를 만나고, 어떤 사건에 휘말리면서.
그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죄라는 듯이 여겨지는 자신에게 어떤 사명이 있는 것인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너의 운명은 세계의 운명과도 강하게 얽혀 있어. 분명, 너에게는 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장대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거야."
"전하께서는 장차 왕국의 국왕이 되실 분일 텐데... 어찌하여 제가 왕세자 전하보다 커다란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건가요?"
아멜리아의 대답을 듣자, 카시우스는 어깨를 으쓱하고 고개를 저어 보인다.
"글쎄. 거기까지는 보이지 않았어.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너를 도와주고 싶어. 너를 돕는 것이, 왕국과 대륙을 평화롭게 할 수 있다면 말이야."
"...전하께서는 점을 그렇게나 진지하게 믿으시는 거군요."
카시우스는 그저 웃어 보였다.
"아버님은 어째서인가, 너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가혹한 처사를 하고 계셔. ...그건, 아들인 나라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야."
"... ..."
"분명, 아버님께서 정해놓으신 왕실을 바꿀 수 있는 건, 다음 왕이 되는 나이겠지……. 하지만, 너를 구할 수 있는 건, 안타깝게도 내가 아닌 것 같아."
카시우스는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의 인도를 받은, 숙명의 저항자만이. 우리 모두를 구할 수 있단다. 아멜리아."
001
그 뒤 카시우스가 방을 떠나가고, 아멜리아는 곧바로 차를 받아 마셔 잠에 들었었다.
일어났을 때는, 카시우스와 했던 이야기의 내용 중 대부분을 잊어버린 상태였다.
그가 했던 말은 모두 모호했고, 추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시우스가 자신을 파티에 참여시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이전에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때는 몰랐지만... 설마 정말로 카시우스 전하는 미래를 예견하고?'
이번에도 그렇다, 어째서 자신을 불러온 것인지는 전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카시우스가 선한 인물이라는 것은, 아멜리아도 이미 충분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버지가 병상에 누운 틈을 타 자신을 파티장에 불러올 만큼 무계획인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아멜리아의 앞에서 연설을 마친 카시우스는 아멜리아와 아멜리아의 뒤에 서서 그녀를 보좌하던 시종.
엑시아에게 파티장을 돌아보고 오라고 이야기했다.
"...정말로 괜찮으신 건가요 전하? 멋대로 왕명을 어겼다고, 후에 큰일이 생기는 것은."
"걱정하지 마. 이건, 꼭 필요한 일이니까."
카시우스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아멜리아는 떨떠름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이고 뒤에 서 있던 엑시아를 돌아보았다.
처음 자신의 시중을 들게 된 날, 설마 이런 일에 엮이게 될 줄이야.
다만, 그녀는 여전히 무감정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 불편한 기색 따위는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어쩔 수 없이 단상에서 내려가기 위해 계단을 통해 이동하지만,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당황스러운 것과, 어딘가 경멸하는 듯한 것들뿐이었다.
전자는 둘째치고, 후자는 이미 익숙하다.
매년, 퍼레이드에서 받는 시선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그녀가 움직일 때, 마치 아루루가 그랬던 것처럼 인파가 저절로 벌어져 멀어져갔다.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사람들과의 간격이 크고, 무섭게 느껴졌다.
굳은 심지를 가진 아멜리아라 하더라도 손이 떨리는 것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가 다가오기 전까지는.
베일로 가려진 그녀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졌다.
아멜리아가 고개를 들어보면, 그곳에는 정장을 입은 흑발의 청년이 서 있었다.
"클레"
자신도 모르게 아멜리아가 그의 이름을 부르려 했지만 이내 자신의 입을 막았다.
자신과 그는, 이곳에서 처음 만난 것이어야만 했기 때문에.
모두의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된 상황에서.
또, 일부의 관중은 수군대는 상황 속에서 클레온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아멜리아에게 예를 갖추었다.
미리 왕족을 만났을 때 해야 하는 인사를 라일라에게서 배워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클레온이 입을 열었다.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왕녀님."
아멜리아는 잠시 입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다가, 이내, 그에게 손등을 내밀며 대답했다.
"고개를 들어 주세요. 낯선 이여. 당신의 이름을 들어도 될까요?"
"클레온이라고 합니다. 모험가입니다."
클레온의 대답이 들리자, 일부 귀족들은 웅성거렸다.
그들 중 대부분은 아카데미 출신이거나, 아카데미에 자식들을 보내놓은 이들이었다.
클레온의 이름은 귀족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유명해진 듯했다.
'역시 성학과의 강사는...' 같은 조금 모독적인 목소리도 들려왔지만.
하지만, 왕과 귀족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다른 이들에 비해, 이곳에서 유일한 평민인 클레온이라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라도 '평민이니까... 왕실의 예의를 모르고...'같은 식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컸다.
어찌보면, 가장 적절한 역할이겠지.
아멜리아가 고개를 돌려 단상 위를 보면, 카시우스가 자신들 쪽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클레온과 아멜리아 사이에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바로 오늘 새벽까지만 하더라도, 함께 있었는데, 모르는 사람인 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 때, 클레온의 옆에 한 사람이 더 가까이 와, 아멜리아에게 예를 갖춘다.
바로, 아루루 트로메이아였다.
"아루루..."
평민인 클레온과는 다르게, 아루루는 공작가의 영애, 당연하게도 주변인들의 평판에 신경을 써야 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아루루는 오로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에 전력으로 임하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기 보다도, 아멜리아에게 먼저 다가가기를 선택한 것이다.
"뵙게되어서 영광입니다. 아멜리아님."
아루루가 그렇게 이야기 하자, 아멜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꼭 쥐었다.
"저는... 반역자의 피를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분으로부터 인사를 받을 자격이 없어요.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파티를 즐겨 주세요..."
이것 역시, 아멜리아의 본심이었다.
자신 때문에 두 사람이 창피를 당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하지만, 클레온은 대답했다.
"평민인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죄를 지은 인물과 친인척이라는 것만으로, 그 죄를 이어받아 벌을 받고, 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받아야 한다니. 제가 예를 갖추는 것은, 왕실의 법이 정한 당신의 신분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아멜리아님 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이곳은 승전기념일의 전야제. 대륙의 평화를 지켜낸 싸움에서 승리한 것을 축하하는 장소입니다. 그 당시에는 평민도, 귀족도 구분 없이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싸웠으며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 왕국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장소에서까지, 타인의 죄를 짊어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멜리아님. 기념해야 할 것 앞에서는 너무나도 작은 것이니까요."
아루루가 그렇게 이야기 하면, 주변에 있던 아카데미의 학생 중 몇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멜리아를 향해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주변의 다른 귀족들도 아멜리아에게 예를 갖춘다.
어느정도 분위기가 그렇게 만든 것도 있겠지만, 적어도 아까와 같은 수군거림과 경멸의 시선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내, 회장에 모여있는 인물들 모두가, 그녀를 둘러싸고 무릎을 꿇었을 때, 클레온이 슬쩍 아멜리아를 올려다보았다.
아멜리아는 당황한듯하면서도, 어딘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 모두들, 고개를 들어주세요. 즐거운 파티니까요. 저 하나에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신경 쓰실 필요는 없답니다."
그리고, 천천히, 하지만 확실한 발음으로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소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작년처럼 덕담을 하면서, 매번 그랬듯이, 평화를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생각해 주세요."
비록 그녀 자신은 그 자리에 단 한번도 없었지만, 이 자리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이, 더 이상의 희생을 만들어내는 전쟁을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왕국, 나아가서 대륙의 안녕을 위하고 있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저에게는 자랑스러운 분들이에요. 제가 여러분을 방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멜리아는 다음 말로 이어지기 전에, 잠시, 심호흡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조금. 틈이 나서, 혹은 쉬고 싶어졌을 때. 괜찮다면. 저와도, 이야기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작은 소망을 담은 말을 마지막으로 아멜리아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클레온과 아루루가 몸을 일으켜 옆으로 피해 길을 만들어준다.
아멜리아가 향하는 것은, 회장 내에 놓여있는 작은 테이블과, 그 옆에 있는 의자였다.
그곳에 가서, 조금 부끄럽다는 듯이 다소곳이 앉으면, 다른 참가자들도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는 눈치를 볼 필요는 없어졌다는 듯이 몇몇 이들은 곧장 아멜리아가 있는 곳으로 향하면서, 파티는 다시 시작되었다.
002
"휴우..."
"잘했어 클레온."
어떻게든 상황을 넘겨낸 클레온이 지쳤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자, 옆에 서 있던 아루루가 그런 클레온의 옷매무새를 옆에서 다듬어 주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던 베아트릭스와 유스테스도 두 사람에게 다가온다.
"저분이 유폐 왕녀... 선배와 함께 지금 왕도에서 악마들과 싸우고 있다는..."
베아트릭스는 자신보다 머리 두 세 개는 더 작은 키의 소녀를 바라보며 조금 신기하다는 듯이 이야기 했다.
"저래 봬도, 나보다도 훨씬 강한 신성마력을 부릴 수 있어. 세인트 프린세스의 전설은 동화책 정도로 생각했는데 말이야."
유스테스는 먼저 움직이지 못한 자신이 조금 부끄럽다는 듯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였다.
"아멜리아의 진짜 강함은, 신성 마력이 아니야. 그녀가 가지고 있는 선함과, 강한 의지지."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 하면, 아루루도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아멜리아 님도 계시니까, 우리들도 조금 주의하면서 행동하자. 특히 클레온은 실수로라도 다른 사람 앞에서 아멜리아 님을 존칭 없이 이름으로 부른다든가 하면 안 돼."
"알고 있어."
아루루의 말에 짧게 대답한 클레온, 그 때 그들의 곁으로 인사를 하러 사라졌던 리오메스가 돌아왔다.
"후후, 강사님. 역시 여자아이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그냥 두고 있지 못하는군요."
"딱히 그런 건 아니야... 인사는 다 끝났어?"
리오메스의 놀림에 클레온이 질문하자, 리오메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네. 어느정도는요. 그리고, 강사님이 그렇게나 기다리시던 그때가 찾아왔답니다."
"그 때?"
그 말을 들은 아루루가 고개를 갸웃하지만, 클레온은 조금 경직된 듯하다가 떨떠름하게 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저와 함께 와주실래요?"
"미염공도 이번에도 와주셨구나..."
아루루가 그렇게 이야기 하면 클레온은 슬쩍 아루루를 돌아보았다.
"같이 와줄래?"
"음~ 아니. 나는 따로 갈게. 나와 클레온이 같이 있는 걸 보고 있으실 탠데, 클레온만 불렀다는 건 그럴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거니까."
그렇게 대답하는 아루루가 조금 야속하게 느껴진 클레온이었지만, 어쨌든 사람을 기다리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리오메스와 함께 발을 움직인다.
베아는 그런 클레온의 뒤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아루루에게 물었다.
"저기... 리오메스의 아버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좋은 분이셔. 백성한테서의 지지도도 높고, 외교 능력도 훌륭하신 분이시니까. 게다가 리오메스와 데미스의 무술 스승이기도 하고."
아루루가 그렇게 이야기 하면 베아트릭스는 조금은 안심이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클레온보다 키가 1m정도 크고..."
"... ...?"
그리고 다음에 나오는 정보는 조금 흘려듣기 힘들었다.
"엄청난 딸바보야."
003
클레온은 이동하면서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 느낌을 멈출 수 없었다.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 이 회장에 들어왔을 때부터 눈에 띄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초록색과 금색의 이국적인 복장을 하고, 키는 3m를 넘으며 거대한 몸집을 가진 남성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그의 길게 내려오는 검은 색의 수염.
말의 꼬리 같이 정돈되어 있었으며, 관리에 상당한 신경을 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클레온은 애써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마치 신전의 조각상과 같은 우락부락한 인상의 남성, 눈에서는 어째서인지 항상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리오메스가 그에게 가까이 갈수록, 클레온은 자신의 예감이 맞았다는 사실에 한숨이 흘러나온다.
"아버님, 클레온 강사님을 데리고 왔어요."
"그래..."
그리고, 리오메스가 이내 멈춘 것은, 클레온이 경계하던 그 남성의 앞에서였다.
이 키가 되고 나서는 램파트를 제외하면 사람을 올려다볼 일이 거의 없었다고 생각하며 클레온이 고개를 들면.
그곳에는 악귀를 쫓아내기 위해 험상궂은 얼굴을 한 신전의 석상과도 같은 남성이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음 뵙겠소. 클레온 공. 나는 사이오스. 리오메스와 데미스의 아버지이오."
"...처음 뵙겠습니다. 사이오스님. 성학과의 임시 강사를 맡았던 클레온이라고 합니다."
클레온이 그렇게 대답하자, 사이오스는 눈을 부라리며 클레온을 내려다본다.
묘한 긴장감과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서 흘렀을 때, 빼곰 하고 사이오스의 뒤에 가려져 있던 인물이 고개를 내밀었다.
"오, 클레온 씨. 왔구나!"
거기에 있는 것은, 아까 전 단상 위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던 인물.
"...카시우스 ...님?"
카시우스 칼데아리스 왕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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