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7화 〉 추방 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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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온이 본 왕족은 카시우스가 두 번째 였다.
아멜리아를 처음 봤을 때, 그녀에게서 느껴진 것은 왕족이 가지고 있는 고귀함 보다도, 그녀의 선한 인품을 느낄 수 있는 인상.
그리고, 스스로를 희생하여 왕도의 평화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보이는 그녀의 고결함이었다.
그 속은 아직 어리고, 스스로가 짊어진 사명에 대한 신념과 끊임없이 고뇌하고 있다는 것을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청년 카시우스 칼데아리스는 달랐다.
왕세자라는 지위에 걸맞은 무언가가 그에게는 있었다.
그것은 타인의 위에 서는 자가 가져야 하는 책임감을 느끼게 해주는 '고귀함'이라던가, 혹은 그것과는 반대되는 '거만함'과는 다른 초연함이었다.
카시우스가 어떤 이와 마주하더라도, 모든 이들을 평등하게 대할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클레온은 의문 부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저의 이름을 알고 계시군요."
"물론이야. 바로 옆에 계신 미염공에게서도 이야기를 들었고... 아카데미에서의 활약도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왔지."
카시우스는 미소를 지으면서 클레온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설마 왕세자가 일개 모험가에게 악수를 청하는 일이 있을까, 클레온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를 무안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당신의 이름을 알게 된 건, 확실히 아카데미에서의 일 뒤이지만. 당신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손을 마주 잡은 카시우스가 그런 이야기를 하자, 클레온은 침묵한 채 그의 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선 악의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이를 신뢰할 만큼 클레온은 경험이 적지 않았다.
세계에는 악의가 없이, 태연하게 타인을 상처입히는 자들이 많으니까.
"실례하지만 저는 오늘 처음 전하를 뵙습니다. 존함도 처음 들었고요."
"하하! 클레온 씨가 그런 일에 관심이 없다는 건 어렴풋이 분위기로 느끼고 있었어. 미염공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카시우스는 클레온의 대답에 웃으면서, 옆에 서 있는 리오메스의 아버지 미염공에게 의견을 물었다.
"속세에 엮여있지 않고, 더욱더 먼 곳. 별들의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이라고 느꼈소. 다만, 당신을 속세에 묶어두기 위한 사슬들이, 수없이 많이 보이는군."
미염공은 수염을 조용히 쓰다듬으면서 그렇게 대답하고, 리오메스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리오메스는 알겠다는 듯이 아무 말 없이 세 사람의 곁에서 떠나가 회장 속 인파의 너머로 사라져갔다.
미염공의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클레온에게는 커다란 위압감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클레온 씨는 미염공에게 조금 겁을 먹은 것 같은데요?"
"으음... 클레온 공. 나는 별로 그대가 나의 여식을 안은 사나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추궁할 생각은 없다오."
카시우스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미염공은 조금 미안한 얼굴이 되어 클레온을 내려다보며 이야기했다.
어찌보면 왕족의 입에서 나올만한 말은 아니었기에, 클레온은 조금 당황하지만 카시우스는 '와우'하고 감탄사를 내뱉으며 클레온을 볼 뿐이었다.
"그리고 나의 이 외모는... 유전적인 것으로 생각하시오. 나의 3대 위... 즉, 할아버님의 아버님께서는 대지 거인과 인간의 혼혈이셨소. 그 피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지."
대지거인은 지금은 이제 남지 않은 고대의 이종족 중 하나로, 드워프, 엘프와 같이 인간의 역사에 몇 번이고 모습을 드러냈던 거인 중에서도 유일하게 인간들과 평화를 유지해 온 종족이었다.
인간보다 수명이 길고, 대지의 정령과 깊게 교감하지만 그들의 힘을 노렸던 사악한 마법사에 의해 조종당했다가, 종족 전체가 멸망해버렸다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미염공의 석상 같은 외모도, 대지 거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 의문에 대답은 된다.
또, 인간 같지 않은 거대한 키와 덩치도 마찬가지였다.
"...죄송합니다 미염공. 외견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리오메스와의 일도 있었기에 제가 너무 걱정했던 것 같습니다."
"상관하지 않소. 이 나이가 되도록, 나를 외모로 판단하지 않은 것은 그 아이의 어머니뿐이니까. 자, 그것보다도 해야 할 이야기는 따로 있소. 카시우스 공. 그에게 설명을."
미염공은 다시 한 번 수염을 쓰다듬으며 클레온을 용서하고, 카시우스에게 고개를 돌려 이야기한다.
그러자 카시우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튕기자, 클레온과 미염공, 그리고 클레온을 둘러싼 방음의 결계가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하는 이야기는 세 사람에게만 들리는 이야기이고, 바깥으로는 빠져나가지 않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야기라 미안하지만... 클레온 씨. '추방 교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추방... 교단...?"
카시우스에게서 나온 이름에, 클레온은 마치 멈춰있던 태엽장치의 태엽을 돌리는 듯, 머릿속에 고정되어 있던 과거의 기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 앞에서 사라지는 레시아, 그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던 자신.
이전, 회귀자들과 대치했을 때, 그 광신도가 이야기했던 것을 떠올린다.
레시아에게 일어난 일은 절계 차원 영역으로 추방되는 것이었다고, 모험을 통해 지식을 쌓은 클레온은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 엘카이로에서 만났던 이차원의 틈의 괴물 '시간 포식자' 요그토스.
그가 보여주었던 환영 속 정확하게는 같은 선택의 순간을 불러온 다른 세계의 때이지만.
그곳에서 만난 '동물의 가면'을 쓰고 있던 남성.
레시아를 이차원의 틈 너머로 보내버린 그 남자.
"...처음으로 듣는 이름이지만, 그들 중 하나를 만난 적은 있다고 생각됩니다. 동물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사람을 이차원의 틈 너머로 보내버릴 수 있는 이들을 말하는 것 아닌가요?"
"맞아. 정확하게 알고 있네."
카시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염공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미염공 역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추방 교단은 아주 오래전부터 대륙의 역사 뒤 쪽에서 암약해 오며, 세계에 위협이 될 만한 존재들을 차원의 틈 너머로 보내버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소. 역사 속에서 의문 많은 행방불명을 겪어 소식이 끊긴 자들은 그들에 의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겠지."
"... 세계에 위협... 말이죠."
클레온은 레시아에 관한 것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씁쓸하게 그 말을 되새겼다.
카시우스는 그런 클레온의 표정을 보더니, 마치 그를 위로하듯이 클레온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야기했다.
"그들에 대한 것을 알고 있다는 건, 적어도 클레온 씨도 그들과 접촉한 적이 있다는 것이네. 우리로선 설명하기 편해서 좋지만, 시간이 그렇게 많이 없으니 짧게 이야기할게. 당신과 아루루, 그리고 몇몇 동료가 대비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 왕도 내에는 허락받지 않은 이들이 침입해 있어. 그리고 그들이 바로 방금 이야기에서 나온 '추방 교단'이야."
"추방 교단이... 어째서?"
"그들은 고대의 계약에 따라 '만물의 아버지'라는 존재를 섬기고, 그에게 위협이 될만한 이들을 용서하지 않아."
카시우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클레온을 바라보았다.
"... ..."
그리고 그 시선의 의미를 클레온은 단번에 이해했다.
만물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클레온은 쿠온에게서 들었다.
바로, '아담'을 지칭하는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담과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제가 여기서 나가는 게 좋겠군요."
"아니, 그렇지 않아. 그들이 노리는 것은 클레온 씨 당신뿐만이 아니니까."
클레온은 카시우스의 이야기를 듣고,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그래. 나와 아멜리아 역시, 그들의 목표이지. 아멜리아가 가진 '세인트 프린세스'의 힘을 그들은 위험시하고 있어."
카시우스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뭐 보다시피. 정면으로 만물의 아버지와 추방 교단에 대한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지 않는 인물이지."
그렇게 말하는 카시우스는, 여전히 초연한 태도였다.
하지만, 그의 태도,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는 마치 이 모든 것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그의 태도는 마치, 예언자와 같아서 듣는 이에게 확신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전하께서는, 미래를 보실 수 있는 겁니까?"
"비슷해, 어디까지나 예지. 예견이 아니라, 예측에 가까운 것이지만. 하늘의 별의 움직임을 보고 사람의 운명을 살피는 거지."
"...점성술이로군요."
클레온 역시 자주 별을 보기에, 점성술에 관한 것이라면 조금이나마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클레온 본인은 아쉽게도 실제로 사람의 미래를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재능있는 자들은 실제로 하늘의 별을 보고 사람의 운명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수년 전, 소피아 선생님의 점성술 수업에서 많은 것을 알게 된 죄라고 해야 할까."
"... ..."
대현자 소피아의 이름이 나오면 클레온은 이제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왕족, 그것도 다음 왕이 될 이의 스승으로 어울리는 자라고 한다면 대현자 소피아 외에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스승이 그에게 있었겠지만, 소피아라고 한다면 부족함은 없겠지.
그리고, 클레온에게 점성술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것도 바로 그녀였기에, 클레온은 납득했다.
"아멜리아를 이번 파티에 데려온 이유는, 그들이 왕도의 곳곳에서 사건을 일으키게 두는 것 보다, 한곳에 모여주기를 바래서야. 나와 클레온 씨, 그리고 아멜리아가 모여있다면. 당연히 이곳에서 일을 벌이겠지."
"이곳에는 왕성의 근위대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저희를 노려서 행동에 옮길까요?"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 하면, 미염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들은 상황과 시간, 그리고 장소에 연연하지 않고 제 일을 행한다네. 차원의 문을 여는 것은 조용히, 그리고 또 은밀하게 이루어지지."
"게다가, 그들은 그렇게 해서 사라지게 한 인간들에 대한 기억을 조작하는 것도 가능해. 절계 추방 영역으로 사라진 존재들과 강하게 연결되어있지 않은 이들은 본능에 따라 그들에 대해서 망각하게 되지."
그 이야기를 들은 클레온은 잘 알겠다는 듯이 주먹을 쥐었다.
카시우스는 그런 클레온과 다시 한 번 손을 잡은 상태에서 이야기했다.
"클레온 씨. 나와 내 여동생, 나아가서 만물의 아버지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힘을 빌려주지 않겠어?"
그렇게 말하는 카시우스는 옅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클레온이라면 거절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클레온은 고개를 젓지 않았다.
카시우스는 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는 예지를 통해서 어느정도 예상한대로야. 하지만 이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나도 완벽하게 아는 것은 아니야. 별의 움직임은 산만하고, 예측 불허의 길을 만들어냈어. 그러니 클레온 씨, 부탁하는 데에 더해서, 하나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어."
클레온은 카시우스의 어딘가 조금 쓸쓸해 보이는 표정을 보고, 조금 불안한 예감이 들었지만, 우선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멜리아를 내 여동생을 잘 부탁해. 그녀의 운명이 옳지 않은 흐름으로 변한 것에는 분명히 누군가의 개입이 있어. 그리고... 그녀에게는 아직도 하나 더 커다란 위협이 남아있고."
"그것은... 전하와 함께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까?"
아멜리아를 잘 부탁한다는 것을 거절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카시우스의 표정은 마치, 자신에게는 그녀를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듯한 말투와 태도였다.
카시우스는 그런 클레온의 말을 듣고 어딘가 정곡을 찔렸다는 듯이 손을 살짝 떨면서 대답했다.
"다음에 만났을 때, 내가 지금의 나였다면. 클레온 씨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나에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것도, 점성술에 의한 예지에서 온 결과입니까?"
카시우스는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운명의 때는 한 걸음 한 걸음,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어. 거대한 파도와도 같은 그 흐름 속에서, 우리가 어느 쪽으로 키를 잡아야 하는지는 예지에 의해서는 결정할 수 없어. 운명에 따르는 것과, 운명에 거스르는 것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것이기도 하니까."
"카시우스 공의 이야기는 때때로 너무 추상적이로군."
미염공은 카시우스의 말에 그런 감상을 남기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 감상에는, 클레온도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예언가가 보는 미래가 무엇을 그리는지.
그리고, 그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것은 그때가 닥쳐왔을 때가 아니면 알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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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이,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알베인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레밀리아의 곁에 선 채로 회장 안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길게 길어진 금발과, 얇아진 팔. 그리고 턱의 라인.
몸에 걸친 것은 도저히 남성용으로는 보이지 않는 드레스.
알베인의 모습은 이전에 클레온의 집을 찾아갔을 때처럼, '여성'의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왜 내가 또 이런 모습을 해야 한다는 거야...!"
항의하듯이 레밀리아를 바라보면,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알베인에게 대답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당신과 그녀... 벨릴리가 맺은 계약에는 그녀가 건네는 약을 하루에 한 번 반드시 복용하라는 것이 있었잖습니까?"
"...그 약을 먹으면 나에게 힘을 준다는 것이 계약이었으니까...! 이게 그 힘이라는 거냐고!"
알베인이 그렇게 이야기 하면 레밀리아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를 돌아보았다.
"실례지만 알베인님. 도련님은 원래라면 북부의 노동시설에 있어야 하는 인물입니다. 여기 있는 귀족 중 누군가는, 당신의 재판에 참여해서 당신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있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겠죠."
"머라우드는 나에게 쓰라고 가면까지 줬는데..."
알베인이 그렇게 가면을 꺼내 보이면 레밀리아가 재빨리 손을 뻗어서 그것을 빼앗았다.
"무슨 짓이야...!"
"그 모습을 십분 활용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약을 먹고 여자아이가 된 도련님 아니, 아가씨는 외견만큼은 미소녀이니까요."
레밀리아의 이야기에 알베인은 눈을 두 세 번 깜빡이더니 팔짱을 끼고 회장의 안을 둘러보았다.
약을 먹은 탓에 조금 출발이 늦어져, 시작 연설이 끝난 뒤에 입장하였지만 어째선지 사람들은 한구석에 몰려 있었다.
지나가면서 자신에게 시선을 보내는 것은 기분 나쁜 사내 녀석들의 것들뿐.
대부분이 얼굴에 기름기가 낀 변태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활용하라고 해도. 나는 여기에 여자를 찾으러 온 거지 남자를 찾으러 온 게 아니라고."
"어리석은 도련님. 귀족의 사회는 도련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복잡하고, 또, 수많은 음모와 욕망이 휘몰아치는 곳입니다. 머라우드 영감이 당신에게 뭐라 이야기 했던, 이런 사교의 장을 고작 '짝 찾기'로 써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아까운 이야기이죠."
마치 알베인을 깔보는 듯한 레밀리아의 말투에 알베인은 속에서 열불이 났지만, 이곳에 오기 전 자신에게 약을 먹이려는 그녀에게 반항했다가, 대걸레 자루로 얻어맞아 머리에 혹이 난 것을 떠올린 알베인은 일단 분노를 식히려고 노력했다.
"미소녀의 모습은 남성의 경계심을 누그러트립니다. 남자와 남자가 이야기 할 때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할 때도 있죠. 인간의 무른 부분입니다"
"...그런가?"
알베인 본인, 세상에서 가장 여자에게 약한 남성 대표일 정도로 여자에게 쉽게 넘어가는 성격이었지만 본인은 그런 자각이 없는 듯했다.
"그렇답니다."
레밀리아가 그렇게 추가로 덧붙이면, 알베인도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역시, 이 모습이 된 알베인의 INT(지능 능력치)는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듯 했다.
"자, 그렇다면 부끄러운 도련님. 지금부터 제가 도련님께 한가지, 조언을 해 드리겠습니다."
"... 뭔데?"
앞의 말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알베인은 레밀리아가 손가락을 들어 회장의 한쪽을 가리킨다.
그곳에는 거대하고 험상궂게 생긴 인상의 남성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특이한 양식의 복장에, 길게 기른 수염, 그리고 우락부락한 외모.
보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만 같았다.
"저쪽에 있는 남성분과 이야기를 하고 오세요."
"...싫어!"
단번에 알베인이 거절하는 이야기를 하자, 레밀리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제가 잘못 들었을까요 도련님?"
"대체 저런 이방인과 친해져서 뭐가 된다는 거야! 죽어도 싫거든!"
"...하아... 무슨 소리를. 저분은 바로 왕국과 동맹국인 타국의 왕 '미염공'입니다. 그리고, 그의 밑에는 아름다운 딸이 있다고 하죠."
그 말에 귀가 조금은 솔깃해 지지만, 그것보다도 목숨이 더 중요한 알베인은 연거푸 고개를 저었다.
"... 그렇다면 그 밑에 있는 금발의 남성분은 어떠십니까?"
"... 저건 누군데?"
알베인의 시선이 그제야 밑으로 향하면, 그곳에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원래 모습과 비슷해 보이는 연령대였다.
"카시우스 칼데아리스. 왕국의 왕세자... 즉, 다음 왕이 될 남자입니다."
"왕자...? 생각보다도 별 볼 일 없네."
알베인은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 레밀리아는 그런 알베인을 보며 '하아...'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내 알베인은 그가 대화하고 있는 대상을 보고 눈을 크게 뜬다.
"...잠깐, 저기서 대화하고 있는 건... 클레온 아닌가?"
"... ..."
그리고, 레밀리아도 그것을 눈치채고는 알베인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하! 마침 잘됐네, 이 모습으로 녀석의 정보를 캐 주겠어."
"바보 같은 생각은 하지 말아주세요 도련님. 당신이 그런 모습으로 변한 상태라 하더라도, 클레온은 마력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위화감을 느끼면 곧바로 당신의 정체를 알아챌 겁니다. 저쪽으로 가는 것은 그가 두 사람의 곁을 떠난 뒤에"
하지만, 그런 레밀리아의 만류에도 알베인은 발을 내디뎌 그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마력시라고...? 클레온 주제에 내 변화 마법을 꿰뚫어 볼 리 없잖아?'
하지만 알베인의 근거 없는 자신감과 클레온에 대한 호승심은 그런 그에게서 이성적인 판단을 빼앗아 갔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알베인이 세 사람이 모여있는 곳에 도달하기 직전이었다.
"이곳에 모인 신사 숙녀 여러분. 잠시, 실례하겠소이다."
정중하면서도, 낮은 울리는 목소리가, 조금 전 카시우스가 연설을 하던 단상 위에서 울렸다.
마치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모두가 그곳을 바라보면.
그곳에는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지 모를, 허름한 로브를 뒤집어쓰고 얼굴에는 동물의 가면을 쓴 남자가 서 있었다.
알베인 역시, 그를 바라보는 순간, 정체를 모를 기분 나쁨이 자신의 등골을 스쳤다고 생각하면.
다음 순간, 거대한 빛이 그들의 눈앞을 가렸다.
따뜻함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너무나도 기분 나쁜 빛이었다.
"엑시아."
"...네. 스승님."
그리고,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하면. 어디선가, 소녀의 비명이 들렸고
이내, 빛이 사그라졌을 때. 사람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뭐였던 거지... 방금 그건..."
알베인은 식은땀이 흘러나오는 이마를 훔치며, 클레온이 서 있던 곳을 바라보지만.
그곳에는, 거구의 남성만이 신중한 얼굴로 서 있었고 클레온과,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카시우스는 사라져 있었다.
"...? 어디로 간 거지?"
그리고, 한쪽 구석에 모여있던 인파들도 고개를 갸웃하면서 각자 주변으로 퍼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마치, 조금 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방금 전의 빛 속에서 몇 명의 사람이 회장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채는 이는, 몇 없는 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알베인도 곧바로, 자신이 지금 누구를 향해 가고 있었는지를 잊어버린 채, 레밀리아가 서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회장의 구석에는 옅은 미소를 띤 메이드만이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동물을 본딴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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