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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278화 (278/506)

〈 278화 〉 틈의 너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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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아가 열어젖힌 차원의 틈새 너머로 카시우스와 클레온, 그리고 아멜리아 세 사람을 던져버린 남성은 회장을 감싸던 빛이 사그라지기 전에 자신 역시 차원 도약을 이용하여 왕도를 빠져나왔다.

그가 가면을 벗자,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낮에 클레온에게 모험가들의 유품을 팔아 재낀 청년이었다.

가면에는 음성을 변조하는 마법이 걸려 있어서, 그것을 쓰면 정체를 알아챌 수 없도록 목소리를 바꿔주는 기능이 들어 있던 것이었다.

왕도를 둘러싼 성벽을 올려다보며, 그가 임무를 무사히 완수한 것을 스승에게 보고하기 위해, 자신의 반지를 착용한 그 순간이었다.

"거기까지."

자신의 목에, 칼날이 드리워지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동작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슬쩍, 검신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면, 그곳에는 귀신과도 같은 얼굴을 하고, 안광을 빛내는 흑마의 일족 여성이 서 있었다.

몸에 걸친 것은 시녀의 복장으로 그녀가 진짜 메이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그 청년에게 살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이봐. 진정하라고 누님. 나는 그저, 별 볼 일 없는 마법사야. 차원문의 연습을 하려고 왕도를 빠져나온 것뿐이라고."

청년은 미리 생각해 놓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그녀를 진정시키고 이 상황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던 그녀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듯이, 더는 입을 나불거리면 혀를 잘라버리겠다는 경고를 받을 뿐이었다.

"당신에 관한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차원 교단."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가 귀를 때리면, 남자는 조금 전 까지 실실거리던 얼굴을 곧바로 차갑게 바꾸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손을 타고 이차원의 마력이 깃든 역장이 발생하며, 루베라를 날려버리려고 하지만.

루베라는 곧바로 떨어지기 전에 검을 휘둘러, 마력을 두른 바리사다를 통해 역장을 베어내서 그것을 막아낸다.

"미안하지만, 너 같은 녀석을 상대하고 있을 틈은 없다."

거리를 벌린 사이, 남성이 다시 한 번 손을 휘둘러 차원 도약을 통해 그곳을 벗어나려 하지만.

순간, 몸이 붕 뜨는 감각과 함께, 주변을 강한 결계가 감싸는 것을 느꼈다.

"뭐야...!?"

남성이 당황한 듯이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곳에는 붉은 머리를 가진 소녀가 따분하다는 듯이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둥지로 돌아가기 전에, 기분 나쁜 기운을 느껴 경계해 보았더니. 오래전부터 우리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던 녀석들이 맞았구나."

그녀의 목소리는 조곤조곤했지만, 어째서인지 청년의 귀에도 곧바로 들려왔다.

"차원 도약이... 어째서 안 되는 거지...!"

"바보 같은 녀석. 그건 너희가 이차원의 틈을 강제로 끌어다 쓰는 힘이다. 나의 결계, 나의 영역은 차원의 힘과는 정반대되는 자연의 원소 마력. 네 녀석이차원의 틈을 열어버리려고 끌어들이는 마력 따위, 진실된 화염 앞에서는 무력해."

붉은 머리의 소녀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남성은 경악한 표정으로 그 소녀의 진명을 중얼거렸다.

"진실된 화염... 프, 프로미스..."

"당신의 상대는 저입니다."

그때, 한눈을 파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루베라가 곧바로 그에게 달려들어 바리사다를 휘둘렀다.

차원도약이 불가능하다면, 남은 것은 정면에서 맞서 싸워 그녀에게 승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했던 대로. 내가 개입할 수 있는 것은 녀석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어 주는 데 까지다."

"알고 있습니다."

프로미스는 계약과 약속을 관장하는 드래곤 답게, 자신이 정한 법칙에 예외는 없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드래곤은 본래, 스스로의 의지로 인간끼리의 싸움에 개입해서 결과에 영향을 끼쳐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루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리사다를 바로잡았다.

"이 자가 이곳으로 이동하기 전, 클레온과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역시, 프로미스 당신이 이야기 한 대로, 그들의 목적은 클레온이었던 것 같군요."

"그뿐만이 아니야. 아멜리아도 함께이지. 또 한 명­ 젊은 현자가 섞여 있으니, 그쪽은 걱정하지 말거라."

"...젠장."

남자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소매 속에 숨겨 두었던 두 자루의 단검을 꺼내 잡는다.

"만물 아버지의 위협이 될만한 존재는, 모두 우리가 처단한다."

"...광신도가."

남자의 말에 루베라는 짧게 답하며, 소중한 이에게 손을 대려 한 존재를 용서치 않겠다는 듯이, 무자비한 기세로 검을 휘두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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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산뜻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감각. 따뜻한 흙의 감촉과, 부드러운 풀의 냄새.

자연이 가득한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 느껴지는 그 느낌에, 클레온은 서서히 눈을 떴다.

몸의 이곳저곳이 조금 쑤시기는 하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는 정도였고, 정신은 생각보다도 멀쩡했다.

지면에 엎드린 상태로 뻗어있던 그는, 천천히 팔에 힘을 주면서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클레온의 키보다 몇 배는 더 높이 뻗어있는 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고.

본적도 없는 식물들이 파릇파릇하게 땅의 곳곳에서 자라나 저마다 뿌리를 뻗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여긴 대체..."

자신은 분명 조금 전까지, 왕성의 파티장에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면서 클레온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조금 씩, 조금 씩, 머릿속이 정리되어가기 시작하면, 그 직전까지 하고 있던 이야기.

추방 교단에 관한 것, 그리고 카시우스가 아멜리아를 부탁한다고 했던 것.

그리고­ 단상의 위에서 보았던, 동물의 가면을 쓴 로브의 남성의 목소리.

다음 순간, 눈을 가리는 빛이 모두를 감쌌고, 갑작스럽게 발밑의 지지대가 없어진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설마, 차원의 틈새로 떨어진 건가?"

자신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남자.

쓰고 있던 가면의 종류는 달랐지만, 그 형식과 허름한 로브는 분명 10년 전의 그 때, 레시아를 눈앞에서 사라지게 한 남자의 것과 같은 부류의 것이었다.

역시, 레시아를 추방한 것은 추방 교단이 한 일이라는 것을, 클레온은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들을 찾아서 심문하면, 레시아를 되찾아올 방법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드디어 자신의 앞에 가장 확실한 흔적이 아른거리고 있다는 사실에 클레온은 조금 흥분하지만.

이내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어찌됐든, 왕성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문득, 다시 한 번 주변의 풍경을 돌아보면 이전에 요르문간드를 막기 위해 이차원의 틈에 들어왔을 때와는 완벽히 다른...

마치, 자신이 살고 있던 현실과 그리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은 울창한 숲 속이었다.

그 때는 조금 더... 뭐라고 해야 할까.

광인(?人)의 머릿속을 그대로 공간으로 표현한 것 같은 혼돈만이 가득했다고 한다면.

이곳은 이미, 훌륭하게 사람이 살아도 문제가 없을 것만 같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마력적인 감각을 곤두세우면 주변을 가득 채운 땅의 마력과 함께, 적게나마 느낄 수 있는 이차원의 마력.

평범한 장소였다면 느껴질 일 없는 그 이질적인 마력의 존재가, 이곳이 틀림없는 이차원의 틈새의 안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번처럼 칼리번을 불러서..."

클레온이 그렇게 하며 손을 뻗어 칼리번을 향해 신호를 보내보지만.

자신의 마력은 물론이고, 갈라테아의 마력마저도 느껴지지 않는 지금, 칼리번과의 연결마저 단절되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 ...위험한걸."

자신이 그 때 그 공간을 빠져나와 모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칼리번과 갈라테아의 연결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만약 칼리번이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공간의 틈을 열고 자신이 살던 차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누군가... 마력의 연결은­'

클레온이 그렇게 하며, 각인으로 연결된 모든 이들에게 조금씩 마력을 흘려보내 보지만, 이내 답이 돌아오는 것은­

"... 아멜리아...! 그렇지, 카시우스와 아멜리아도 이 차원의 틈으로 떨어진 상태인 건가...!"

클레온은, 각인의 너머에서 느껴지는 아멜리아의 존재를 느끼며, 카시우스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추방 교단의 목표는 클레온 뿐만이 아니라, 자신과 아멜리아도 그렇다는 것을.

하지만, 그녀와의 연결은 매우 미약해서 도저히 텔레파시가 닿을만한 느낌은 느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을 찾아야 해. 서두르지 않으면..."

클레온이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수풀을 헤치고 일단은 앞으로 나아가려 한순간.

너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자신도 모르게 발을 멈춘다.

생각해 보면, 이곳은 숲 속이다, 숲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조금이나마 동물의 소리가 나야 하는데.

생각에 몰두해 있던지라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곳에서는 새의 지저귐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이차원의 틈이니까. 그건 당연한 건가.'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 수풀 너머에서 나타날 것은 대체 무엇인가.

클레온은 긴장한 표정으로 격투술의 자세를 잡고 나타날 존재에 대해 경계하면.

"분명히 이 근처에 떨어진 것 같았는데..."

목소리를 내면서 나타난 것은­ 자신의 키의 절반 정도 되는 작은 인간형의 무언가였다.

피부는 연초록색에, 머리카락처럼 묶여 있는 것은 잎사귀와 같은 형태였다.

그리고, 손가락은 각각 6개씩 있었고, 그것도 사람의 것이 아닌 식물의 줄기와도 같은 형태였다.

그러니까­ 식물이 인간처럼 생겨서,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있었다.

클레온과 그것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잠시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사, 사, 살아 움직인다!"

그리고, 클레온의 앞에 있던 그것은 클레온이 일어난 것은 예상 밖이었는지 놀라서 곧바로 뒤를 돌아보고 도망치는 것이었다.

"자, 잠깐!"

클레온도, 말이 통하는 상대가 나타났다는 것에 당황하여 그의 뒤를 쫓기 위해 발을 움직인다.

수풀 사이를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빠르게 달려나가는 그것을, 클레온은 어찌어찌 마력을 통한 신체 강화를 이용해 따라가고.

우거진 잎사귀들 덕분에 햇살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던 숲의 저편, 환한 장소가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 달리는 속도에 박차를 가해 앞으로 뛰어나간다.

그리고, 그 사이를 헤쳐나가 밝은 공간에 발을 디딘 다음 순간, 클레온의 발은 저절로 멈춰질 수밖에 없었다.

저 멀리 눈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마을이었다.

아니, 어쩌면 도시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거대한 나무를 중심으로 펼쳐진 그 마을은, 바위와 돌로 된 건물들이 몇 개나 존재했고.

그 사이를 걸어 다니는 것은 하나같이 방금 전 클레온의 눈 앞에 나타났던 그것과 비슷하게.

식물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처럼 움직이는 존재들이었다.

게다가 그들 중에서는, 마치 하피나 미노타우로스를 본뜬 듯이 동물의 일부 특성이 있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들 역시, 동물적인 부분은 전부 '식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 이건 대체..."

클레온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자신이 쫓고 있던 그것이 어느샌가 멀리 사라졌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일단은, 언어는 통하는 것 같으니까 무언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앞으로 걸어가려고 한 순간.

파바박! 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발 앞에 박히는 화살.

아니, 정확히는 화살의 역할을 하는 것 같은, 식물의 가지였다.

클레온이 멈칫, 하고 다리를 멈춘 순간, 하늘 위에서 그늘이 졌다고 생각하면.

그의의 뒤쪽에서 무언가가 뛰어나와, 클레온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그것은, 반인반마의 모습을 한 존재였다.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있었고, 인간의 형태를 한 상체에는 다른 존재들과 다르게, 정체불명의 금속으로 된 갑주를 착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밑, 말의 하반신은 어딜 보더라도 식물로 구성된 것 같았고.

그들이 이 마을의 주민과 비슷한 존재라는 것을, 클레온은 눈치챌 수 있었다.

"멈춰라. 너 같은 이형의 존재를, 우리들의 마을로 들여보낼 수는 없다."

투구 너머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형의 존재.

클레온은 그 말을 듣고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만, 피부색부터 몸을 구성하는 무엇까지 확실히 그들이 보기에는 자신의 쪽이 이형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클레온은 양쪽 팔을 들으며 저항할 의지는 없다는 듯이 동작을 취했다.

"기다려 줘. 나는... 별로 너희를 헤치려고 하는 게 아니야. 길을 잃고 동료랑 떨어져서... 그들을 찾으려고 하는 거지."

"길을 잃었다고...? 숲에서 이곳까지 곧장 뛰어 오는 것을 보았다. 그런 거짓말은 통하지 않아."

클레온은 나름 우호적으로 상대방을 대하려 했지만, 그 쪽은 아무래도 클레온을 자신과 말이 통하는 괴물 정도로 보는 듯했다.

"그리고... 동료라고 했겠다. 그들도 너와 같은 이상한 피부색의 괴물들이겠군. 그들을 찾아 우리를 해치려는 것인가?"

"그런 짓은 하지 않아.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것뿐이야..."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상대방은 이해해주지 않는 듯이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

켄타우로스 식물의 그런 태도에 클레온은 한숨을 내쉬면서 질문한다.

"이봐. 그렇다면 당신이 대답해 줘. 여기가, 이차원의 틈의 안은 맞는 거지?"

"이차원의 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아무래도, 그녀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 듯 했다.

"안으로 들어가게 해 줘. 날 감시해도 좋아. 봐봐. 난 무장도 하지 않았다고."

자신은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클레온은 주장하지만­

"괴물에게 무장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켄타우로스의 태도는 단호했다.

"좋아. 그렇게까지 이야기한다면, 나도 생각이 있지."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며 각인을 통해 사람을 진정시키기 위한 쿠온의 마법을 끌어오려 한다.

그러자­

마력 자체는 움직이지만, 마법은 발생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

각인의 연결이 끊겨있는 지금, 마력을 움직이는 것은 가능해도 마법 그 자체를 빌려 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뭘 하려 한 거지?'

"아니­ 조금 진정하게 하려고..."

"기절시키려 한 건가! 이 괴물!"

다음 순간, 켄타우로스의 팔이 움직이며 다시 한 번 자신을 향해 화살이 날아왔다.

클레온은 혀를 차면서 몸을 굴리고 그것을 피해내지만, 슬쩍 뒤를 돌아보면 그녀가 발사한 화살은 바위를 꿰뚫어 버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살벌한 그 실력에 클레온은 꿀꺽 침을 삼키고 어떻게든 그녀를 제압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움직였다.

우선, 방해되는 활을 떨어트리도록 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강화한 신체로 상대방의 품으로 파고들려고 하면­

켄타우로스는 곧바로 껑충 하고 뒤쪽으로 뛰어오르며 연사로 클레온의 다리를 노려왔다.

"칫...!"

클레온이 혀를 차면서 곧바로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면 발을 꿰뚫려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을 것이다.

마법이라는 원거리 수단을 잃은 지금, 저 기동력을 가진 상대로 싸우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일 듯 했다.

"하앗!"

그리고 그렇게 움직임을 멈춘 클레온을 향해, 상대방이 다시 한 번 화살을 발사하면 일단 몸을 젖혀서 그것을 간발의 차로 피해낸 후.

각인을 통해 능력을 빌려 올 수 없더라도, 이미 수 없이 많이 해 온 무술의 동작 정도는 따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마력을 발판 삼아, 허공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켄타우로스의 머리 위로 이동한 클레온은, 곧바로 다리를 초승달과 같이 휘둘러 내려친다.

"크윽...!"

클레온의 갑작스러운 기이한 움직임에, 켄타우로스는 하늘을 향해 활을 조준했다가, 그 움직임이 너무나도 빠른 것에 당황하여 겨누던 활에서 시위를 놓고 두 팔로 그의 발차기를 막았다.

하지만, 그 결과 켄타우로스의 손에 들려 있던 활이 땅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런...!"

켄타우로스는 당황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클레온의 연격에 활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려 했다.

곧바로 몸을 180도 돌려, 그 강인한 뒷다리로 클레온을 뻥 차버리려고 하지만.

클레온은 그것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슬라이딩으로 켄타우로스의 긴 다리 사이를 빠져나가, 곧바로 올려 차기를 먹인다.

결과, 클레온의 발차기가 상대방의 턱에 명중하고, 강한 충격으로 머리를 뒤로 젖히면서.

머리에 쓰고 있던 투구가 벗겨져 나가면­

클레온은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머리를 붙잡고 받은 충격을 떨쳐내려는 듯이 고개를 젓는 그곳에는, 예상했던 대로 연두색의 피부를 가진 인간이 있었다.

하지만, 긴 청록색의 머리와, 뾰족한 귀. 그리고 연초록의 눈.

인간 중에서도 몇 없을 정도로 정돈된 이목구비와, 생기 넘치는 그 외모는.

마치, 전설 속의 엘프와도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여성 엘프였다.

"...이... 침입자..."

엘프의 상체와 켄타우로스의 하반신을 가진 식물이라니, 클레온은 더이상 머릿속에 정보가 과해지는 것을 참으며.

정신을 차리고 다시 대적하려는 상대방의 앞에서 자세를 잡지만.

[거기까지.]

어디선가, 두 사람을 말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클레온도, 그녀도 갑작스럽게 들려온 그 목소리에 당황한 듯, 소리가 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

시선의 끝에는 마을의 중심에 있던 거대한 나무가 있었다.

"위, 위그드라실...님..."

여자가 송구하다는 듯이, 나무가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숙이면 클레온은 그런 그녀를 슬쩍 바라볼 뿐이었다.

[그를 데리고, 제가 있는 곳까지 오세요. 프레이야.]

"...알겠습니다."

클레온은, 그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 '위그드라실'이라는 존재라는 것과.

눈 앞의 그녀가 프레이야라는 이름이라는 것까지 이해한 후 그녀를 바라보았다.

프레이야는 조용히 떨어진 투구와 활을 집어 다시 착용하고 클레온을 바라보았다.

"...따라와라."

일방적으로 공격해 온 것에 대해 사과는 없었지만, 클레온은 그녀에게 뭐라고 따지지는 않기로 했다.

그녀가 보기에, 자신이 분명 이질적인 것은 맞았고, 그녀의 실력과 성향을 보아, 그녀가 이 마을을 지키는 존재라는 것은 알 수 있었으니까.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뒤를 따라 마을의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길을 걸으면 좌우에서 엄청난 시선이 느껴졌지만, 프레이야가 가까이에 있는 덕분에 다른 이들은 별다른 간섭을 해오지 않았다.

어쩌면, 프레이야가 함께가 아니었다면 결국 다른 이들에게 같은 시비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금 긴 길을 따라 걸어서 마을의 중심부에 있는 가장 거대한 나무의 앞에 섰을 때, 클레온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마치, 하늘 저 너머까지 뻗어있는 듯한 그 거대한 높이에 압도되었기 때문이었다.

[잘했습니다. 프레이야. 돌아가서 상처를 치료하고 휴식을 취하도록 하세요. 필요하다면 부르겠습니다.]

"하지만 위그드라실님. 이 괴물을­"

[그는 괴물이 아닙니다.]

프레이야는 클레온을 잠시 노려보았지만, 위그드라실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는 것인지, 터벅터벅 걸어서 나무에서 멀어져 갔다.

클레온은, 자신을 부른 그 거대한 나무를 올려다보다가.

곧이어, 그 나무의 뿌리 부분에서 빛 무리가 올라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자, 곧이어서 조금씩 그 빛무리가 사람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더니.

클레온의 눈 앞에, 아까 전 보았던 켄타우로스와 마찬가지로 엘프와 같은 모습을 한 성인 여성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엉덩이 부분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와, 뾰족한 귀.

프레이야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얼굴과, 자연의 풍요를 상징하는 듯한 커다란 가슴

게다가, 피부색은 이곳 까지 오면서 봤던 이들과는 다르게, 제대로 클레온과 비슷한 살색을 가지고 있었다.

몸에는 드레스처럼 보이는 의복을 걸친 그녀는, 월계수의 관을 쓰고 있었으며 마치 여신처럼 느껴질 정도로 강한 마력을 품고 있었다.

다만, 신성 마력이 아닌 대지의 마력인 것을 보아, 그녀가 신이 아닌 정령의 일종이라는 것을 클레온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클레온을 향해 가까이 다가오더니, 클레온이 먼저 인사말을 건네려는 찰나, 클레온의 몸쪽에 얼굴을 대고 냄새를 맡았다.

"자, 잠깐. 무슨­"

클레온이 당황해 하면, 그녀는 작게 미소를 짓더니 뒤로 물러서며 이야기했다.

"얼마 만에 맡아보는 인간의 냄새인 줄 모르겠네요. 어서 오세요, 고향에서 온 이방인. 저는, 이 영역에 뿌리를 내린 존재. '위그드라실'이라고 합니다."

"...고향?"

클레온은 그녀가 말하는 고향이라는 것이, 곧 자신이 살던 차원이라는 것을 이해하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 저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차원에서 추방된 존재. 한 때, 세계를 자신의 영역으로 덮어 개변했던 자."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설명이다.

"세계수라고 하는 종족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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