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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281화 (281/506)

〈 281화 〉 얼음의 땅

* * *

000

천지가 뒤집히는 감각.

중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아멜리아는 던져진 방향으로 끊임없이 나아가게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강한 빛이 자신의 눈 앞을 감쌌다고 생각한 다음 순간, 발밑이 꺼지는 감각과 함께 자신의 주변을 뒤덮은 광경이 반전되었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것은, 이 안에 갇혀 있는 자들의 절규와, 광기와, 그리고 서서히 좀먹어 들어오는 섬뜩한 마력의 감각들.

몸을 지키지 않으면.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낀 아멜리아는, 제대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조차 어떻게든 마력을 끌어 올려 스스로의 몸을 감싼다.

신성한 마력은, 그녀를 집어삼키려는 이차원의 힘으로부터 그녀를 지켜줄 것이다.

하지만, 성령과의 연결이 끊어진 상태에서 그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신성 마력의 양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결과적으로, 완전하지 않은 보호막이 펼쳐져 그녀의 몸을 덮어주지만, 이차원의 마력은 마치 의지를 갖춘 생명처럼 가시같이 변하여 그녀의 방어를 뚫고 들어오려고 한다.

고독과 함께 자신을 뒤덮는 그 아찔한 감촉에 아멜리아가 눈을 움츠리면.

그것을 기점으로 삼아, 어두운 마력이 그녀의 몸 전체를 덮어버리는 듯했다.

그리고 침묵만이 남았다고 생각한 다음 순간.

그녀의 뒤를 쫓아서, 이차원의 틈으로 뛰어든 무언가가 있었다.

확실한 의지를 갖추고, 빠른 속도로 날아와 아멜리아에게 접근하는 그것은, 은색으로 빛나는 별빛과도 같이 날아와 아멜리아의 몸을 붙잡았다.

은빛의 혜성은 아멜리아를 감싸고 있던 더러운 마력을 전부 날려 버리고, 정신을 잃은 아멜리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녀를 감싼다.

그리고 둘은 함께 절계 추방 영역의 어딘가로 끊임없이 추락하는 것이었다.

001

차가운 무언가가 볼에 닿았다.

그리고, 무언가가 자신을 흔들고 있었다.

아멜리아의 의식이 돌아오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몸에 아픔은 없었지만, 어째서일까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아멜리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닥은 차갑지만 푹신했고, 자신을 꽉 붙잡아 놓아주질 않았다.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고 생각한 다음 순간, 짜악! 하는 소리가 울리면서 자신의 볼이 얼얼해졌다.

"일어나는 검다, 아멜리아!"

그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이것이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은 아멜리아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면, 그곳에는 잿빛의 머리를 한 소년인지 소녀인지 잘 구분할 수 없는 인물­ 그레이가 있었다.

"그레이...? 어째서 당신이... 그보다, 이곳은­"

아멜리아는 그제서야, 어째서 이렇게나 자신의 근처가 차가운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어두운 눈밭 위에 있었다.

태양의 빛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검은색의 물감을 뒤집어 쏟아 놓은 듯한 도화지처럼 새까만 하늘은 어디까지나 이어져 있었고.

조금씩 떨어지는 눈송이가 수북이 쌓여있는 땅에는 말라 비틀어진 나무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어디까지나 흰색의 바닥만이 펼쳐져 있다.

"휴우, 이제야 일어난 검다... 떨어진 충격으로 어딘가 잘못된 건가 걱정했슴다."

그레이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아멜리아는 여전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잘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레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그레이는 그런 아멜리아의 얼굴에 붙어있는 눈을 떨어트리며 이야기했다.

"왕녀님은 왕성의 파티에서 왕녀님을 노리는 이상한 놈들 때문에 이곳으로 떨어진 검다."

"... 엑시아..."

그리고, 이제서야 기억난다는 듯이 아멜리아가 오늘 처음 만난 소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무언가가 일어나기 직전, 단상 위에 모습을 드러냈던 수상한 인물.

모두가 갑작스러운 일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던 그때, 그는 분명히 자신의 뒤쪽에 서 있던 엑시아를 불렀다.

그리고 엑시아가 그것에 대답했을 때, 아멜리아는 중심을 잃고 주둥아리를 벌린 차원문으로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그레이가 이곳에 있는 것은 조금 의문이었다.

"그레이는 왜..."

"왕녀님이 떨어진 구멍으로, 저도 쫓아서 떨어진검다. 왕녀님뿐만이 아니라, 그곳에 있던 클레온 씨랑, 카시우스 왕세자님도 왕녀님처럼 구멍으로 떨어졌슴다."

아멜리아는 그 이야기를 듣고 벌떡 일어났다.

몸에 걸친 것은 평소에 입는 것보다도 조금 얇은 드레스였기에, 강한 추위가 그녀를 덮쳤지만, 그것을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클레온과... 왕세자 전하가...? 두 사람은 어디에..."

당황하여 안절부절못하는 아멜리아를 진정시키듯이, 그레이는 그녀의 팔을 잡았다.

"진정하는검다... 아마, 두 사람 모두 이 공간의 어딘가에 떨어졌을 검다."

"... 이 공간은 대체 어떤 곳인 건가요? 차원문을 통과했으니 먼 거리를 이동했을 텐데."

그녀가 그렇게 질문하면 그레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태양도, 구름도 없이 끝없는 어둠만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은, 흔히 이차원의 틈이라고 불리는 공간임다. 우리는, 이 공간에 추방되었슴다."

"...이차원의, 틈..."

아멜리아도 그 명칭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사는 차원과 또 다른 차원.

예를 들면­ 악마들의 고향인 '지옥'과도 같은, 본래는 결코 이어질 수 없는 다른 세계.

그 둘의 사이에 존재하는 무한에 가까운 거리가 존재하는 공간이야말로, '이차원의 틈'이라고.

그 안을 걸어 다닐 수 있는 몇 안 되는 마법사, 대현자 소피아가 집필한 책에 그렇게 적혀 있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이차원의 틈의 안에는 들어온 자를 침식하여 변이시키는 이차원의 마력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또, 그렇게 변이되어 버린 괴물들이 존재한다.

인간의 상식이 통용되지 않고, 광기가 사람의 의지를 오염시키는 장소.

그렇기에, 인간이 결코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곳.

아멜리아는 자신이 읽고 배웠던 모든, 이차원의 틈에 대한 안 좋은 정보들을 떠올리며 마음속에 스멀스멀 공포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지만.

이내, 주먹을 꽉 쥐고 그것을 억누르기 위해서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레이는 그런 아멜리아의 주먹을 슬쩍 바라보았다가,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 묻는다.

"... 무리해서 강한 척을 할 필요는 없슴다. 왕녀님이 잘 알고 계시듯이, 이곳은 매우 위험한 장소임다. 그중에서도, 한층 더 성가신 장소... '절계 추방 영역'이니까 말임다."

"절계 추방 영역?"

"이차원의 틈 내부에 존재하는, 차원의 폐기물들을 추방해 가두어 놓는 영역임다."

그레이가 그렇게 대답하면 아멜리아는 자신이 어디까지 정확하게 이해했는지,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기에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설원의 위에서 무언가가 열심히 이쪽을 향해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레이는 그쪽에서 등을 돌리고 있었기에, 먼저 확인한 것은 아멜리아였다.

"그레이, 뒷쪽에서 무언가가...!"

아멜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혹시라도 괴물이라도 튀어나올까 봐 걱정된 아멜리아가 펜던트에 손을 얹고 성령의 가호를 받아들이려 하지만.

차원의 틈에 들어온 탓에 이어지지 않은 공간 속에서, 그녀의 펜던트와 성령은 아무런 답을 주지 못했다.

다음 순간, '그것'이 눈밭에서 크게 도약하며 튀어 올랐다.

그것은 그대로, 그레이의 어깨에 착지하는 것이다.

"으햐앗! 차갑슴다, 헤르메스!"

[참아라 그레이. 내 육체는 금속이니 어쩔 수 없다.]

그것은, 황동 색의 기계­ 쥐의 형태를 한 오토마타였다.

"... 오토마타...?"

"직접 보여주는 건 처음임다만, 이쪽은 제 파트너인 헤르메스임다."

그레이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헤르메스의 머리 위를 쿡 눌렀다.

[지금까지 그레이의 곁에서 당신을 지켜봤지만. 이렇게 직접 말을 나눌 기회가 오게 될 줄은 몰랐군, 아멜리아 왕녀.]

"...굉장해요. 진짜로 자아를 가지고 있는 건가요?"

아멜리아가 질문하면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임다! 헤르메스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인공 정령임다!"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조금 다르지만,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빠르겠지.]

헤르메스는 그렇게 말한 뒤, 그레이와 아멜리아에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레이. 네가 부탁한 대로 주변을 조금 살펴보고 왔다. 내 예상대로, 이곳은 추방 영역의 안에 존재하는, 상위존재의 영토이다.]

"그렇슴까..."

그레이는 조금 미묘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지만, 아멜리아는 여전히 둘이 너무 전문용어로 이야기하고 있었기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그레이는 아멜리아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조금 고민하다가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이차원의 틈 안에도 나라가 존재함다. 아주 강한 힘을 가진 존재가 영역의 안을 자신의 결계로 덮어서, 마력으로 형성된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됨다."

"...일부 마법사들이나, 악마들이 만들 수 있는 '소영역'같은 건가요?"

"그렇슴다! 그것이 엄청나게 커다랗게 만들어졌다고 보면 됨다."

그레이는 '역시 왕녀님은 박식하심다!'하고, 칭찬하는 이야기를 하면 아멜리아는 어디까지나 펼쳐진 설원을 돌아볼 뿐이었다.

"...그 상위 존재라는 것이, 이곳의 지배자인 거군요."

[그렇다 왕녀. 그리고 다행히도 이곳의 지배자가 있는 위치를 알아냈다. 그곳에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이 눈과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장소 정도는 있는 것 같더군.]

헤르메스의 말에 그레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렇다면 빨리 그곳으로 가는검다! 이런 곳에 있다간, 둘 다 얼어 죽어버릴검다! 이번에는 다음이 없는데!"

그레이가 그렇게 외치면, 아멜리아도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그레이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느낀 것인지 멈칫한다.

"...다음?"

"아­ 아, 크흠. 아무것도 아님다!"

그레이는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당황하여 헛기침하더니 헤르메스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아멜리아를 선도했다.

아멜리아는 그런 그레이의 뒤를 쫓아가다가, 문득 무언가가 자신을 찾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잠시 뒤를 돌아보지만.

이내, 그 느낌이 너무나도 약했던 탓인가, 추위와 어지러움에 먹혀, 다시 앞을 보며 나아갔다.

002

두 사람과 1기가 도착한 곳은, 거대하고 검은, 돌인지 얼음인지 알 수 없는 성의 앞이었다.

왕도의 성벽도 훌륭하고 높았지만, 눈앞의 성을 둘러싼 성벽은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게, 또 굳건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정말 여기임까?"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이 거대한 장벽, 그리고 문 앞에 선 채 그레이가 헤르메스에게 질문하면 헤르메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이 안에서 거대하고 강력한 마력반응이 느껴진다. 틀림없이, 이 영역을 지배하는 상위존재는 이 안에 있다."

"하지만, 이렇게 커다란 문... 열고 들어갈 수 있을까요?"

아멜리아가 그렇게 질문하면 그레이는 문에 손을 가져다 대 보았다.

"흐약! 차갑슴다! 역시 이거, 석재가 아니라 색을 입힌 얼음임다...! 동, 동상 걸릴 뻔 했슴다..."

하지만, 이내 그 차가움을 견디지 못하고 재빠르게 손을 뗀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힘을 합치더라도 열릴만한 크기와 무게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다못해, 성령의 힘이 있었더라면, 어떻게든 신체를 강화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레이는 헤르메스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헤르메스. 분할사고 모드로 신체를 강화해서 어떻게 안됨까...?"

[미안하지만, 그 정도의 스펙 강화는 상정되어있지 않다.]

"...끄응..."

헤르메스의 정신을 그레이의 육체로 옮기고, 마력의 리미터를 해제하여 몸을 강화하더라도, 이렇게 거대한 문을 움직일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곤란해하는 그레이를 슬쩍 바라보며, 아멜리아는 주먹을 쥐었다.

세인트 프린세스로서, 왕도의 주민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무언가, 손을 쓰지 않으면.

그렇게 생각한 아멜리아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저 높은 곳에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을만한 높이에 '종'으로 보이는 것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혹시, 저걸 울려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으엑... 엄청 높은 곳에 있는검다. 저기까지는 못 올라감다. 벽도 얼음이라 미끄럽고..."

그레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아멜리아가 가리킨 종을 포기하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부품 교환으로, 스파이크가 달린 발바닥을 사용한다면 가능하겠지만. 이곳에는 그 부품이 없으니 지금의 나로도 무리로군.]

둘의 말을 들은 아멜리아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갔다 올게요."

"...?! 무슨 소릴 하는검까 아멜리아! 저런 높은 곳에 올라갔다 다치면 큰일임다!"

그레이가 말리듯이 이야기하지만, 아멜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죠? 그레이가 저를 도우러 와줬으니, 저도 그레이를 돕게 해 주세요."

"...하지만, 어떻게..."

아멜리아는 그레이의 말을 듣더니, 심호흡하고 자신의 안에서 자체적으로 생산되는 마력을 끌어 올렸다.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신성 마력의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 컨트롤 만큼은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해온 것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좋다, 응축해서 물리력을 가질 수 있는 신성마력을.

아멜리아가 정신을 집중하여 손으로 흘려보내면, 그녀의 손에는 마치 송곳과도 같은 신성마력의 응축체가 한 쌍 나타났다.

[설마, 그것으로 벽을 타고 올라가겠다는 건가?]

아멜리아가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것은 즉, 줄 없이 암벽등반을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 안됨다!? 딱 봐도 20m는 족히 되어 보이는 높이인데, 보호장비도 없이 그런 식으로 올라가면..."

그레이가 아멜리아에게 이야기 하지만, 아멜리아의 마음은 이미 방향을 정한 뒤였다.

조심스럽게, 아멜리아가 송곳을 벽에 가지고 가면.

신성 마력의 송곳은, 마치 버터를 가르는 달구어진 나이프처럼 얼음의 벽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것은, 송곳이 벽보다 강도가 강하거나, 아멜리아의 숨겨진 괴력 같은 것이 아니라.

얼음의 보이지 않는 분자 단위의 틈 사이로 송곳의 마력이 파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어떻게든 스스로의 몸을 지탱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긴 아멜리아는 심호흡한 뒤에 자신의 키보다도 높은 위치에 마력의 송곳을 박아넣었다.

"...읏..."

하지만, 얼음의 한기 역시, 마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송곳을 타고 전해져 오는 차가움은, 그녀의 손을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역시, 무리임다. 차라리, 아래서 눈덩이를 만들어서 위로 던지는 게..."

[그것도 불가능하다.]

"으으..."

딱 잘라서 말하는 헤르메스, 하지만 그의 눈은 조용히 아멜리아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내, 그레이의 어깨에서 튀어 오른 헤르메스는 아멜리아의 어깨로 옮겨탔다.

[아멜리아 왕녀. 막무가내로 송곳을 찔러 넣어도 그곳이 무너져 내리면 그대는 크게 다치게 될 것이다. 내가 최대한, 송곳을 꽂는 데에 적합한 위치를 알려주겠다. 그레이, 혹시라도 왕녀가 떨어질 것 같으면 밑에서 받아줄 준비를 해라.]

"...감사합니다, 헤르메스."

헤르메스의 말에 조금이나마 용기를 얻은 아멜리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그레이도 당황해 하지만 알겠다는 듯이 아멜리아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아멜리아는 조심스럽게, 얼음의 성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검은 색의 얼음은, 석재와 같이 위장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전부가 누군가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얼음이었다.

마력은 사람의 마음을 반영한다고 했던가, 이렇게나 거대한 성벽을 짓고, 안쪽에서는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바깥을 거부하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벽에 손을 가져다 댈 때마다 그것이 느껴졌다.

한 번, 한 번, 팔을 움직이고, 헤르메스가 지정한 위치에 송곳을 꽂아 넣을 때 마다.

자신들이 안으로 들어가서 만나게 될 존재가, 자신들을 강하게 거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렇게, 절반쯤 올라왔을 때, 아멜리아의 송곳이 흐려지는 것이 보였다.

"읏...!? 마력이..."

그녀 자신은 무의식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이차원의 틈의 마력은 이 장소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으로부터 스스로의 몸을 지키기 위해 마력을 계속해서 소모하고 있던 그녀였기에, 송곳을 유지하는 마력의 결핍도 빠르게 찾아왔다.

물리적 실체가 약해진 마력의 송곳에서, 아멜리아의 손이 미끄러질 것만 같았다.

헤르메스는 재빠르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마력 일부를 그녀에게 양도했다.

"가, 감사합니다. 헤르메스."

[따라와서 정답이었군. 하지만 이것도 오래 버틸 수 없다. 조금 스피드를 올리도록 하지.]

헤르메스의 말에 아멜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그리고, 어떻게든 성벽에 달린 커다란 종의 위치까지 도달했을 때.

아멜리아의 손가락은 동상에 의해 거의 움직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떻게든, 종이 달려 있는 벽에서 튀어나온 기둥 부분에 몸을 걸치자 간신히 유지되던 송곳이 사라졌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저 밑에, 점과 같이 그레이의 모습이 보였다.

"올라온 것은 좋은데... 내려가는 게 문제네요..."

[...그렇군.]

"...일단은, 종을 칠게요."

헤르메스도 동의는 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어떻게 할 방법은 없었다.

거의 기어가듯이 매달린 곳의 위를 움직여, 종이 있는 곳까지 도착한 아멜리아.

이내, 발을 움직여, 그 종을 걷어차면.

커다란 종소리가 울리며, 벽에 반사되어 되돌아온다.

생각보다 커다란 종소리는, 벽은 물론이고 그녀가 올라타 있던 기둥마저 흔들었고.

"웃... 아앗!?"

중심을 잃은 아멜리아는, 기둥에서 미끄러진다.

"아멜리아!"

그레이가 밑에서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 그리고 자신을 받아주기 위해 팔을 벌린 채 있었지만, 이 높이에서 떨어지는 자신을 받았다간 그레이가 크게 다치고 말 것이다.

"피하세요, 그레이!"

"괜찮으니까!"

그레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비킬 생각을 하지 않고, 이내 두 사람은 강하게 충돌하게 될 것이다.

아니, 할 터였다.

다음 순간, 아멜리아를 누군가가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것은, 성벽의 위쪽에서 내려온, 구름과도 같은 눈 덩어리의 집합체였다.

그것은 부자연스럽게 하늘을 움직이면서, 떨어지던 아멜리아를 공중에서 받아주고, 천천히 움직여 그녀를 땅에 내려 주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아멜리아와 그레이가, 동시에 그 눈덩어리들이 나타난 성벽의 위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걸친, 금발의 여성.

머리에는 푸른 얼음의 관을 쓰고, 그 색과 마찬가지의 드레스를 입은 청아한 여성이.

지금까지 닿았던 얼음과 마찬가지로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인간...?"

무엇보다도, 그녀가 인간이라는 사실에, 아멜리아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성벽에 굳게 닫혀있던 문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자신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명백했다.

그레이와 아멜리아는 잠시 시선을 교환한 채,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한 번, 성벽의 위를 바라보았을 때, 자신들을 내려다보던 그녀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방금 그녀가, 이 영역의 지배자인검까...?"

[그래. 감지하던 마력은, 그녀에게서 느껴졌다. 한 사람이 가지기에는 너무나도 커다란 마력이야. ...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여왕."

아멜리아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레이와 헤르메스는 동시에 아멜리아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를 아는 건가?]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그렇게 불러야 할 것만 같았어요."

"확실히, 여왕님이라는 느낌이었슴다... 영역의 지배자이니, 진짜 여왕이라고 부르는 게 좋을지도 모름다."

그레이는 아멜리아의 말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듯했지만 헤르메스는 조용히 아멜리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성의 안으로 들어오면, 마치 모든 것이 얼어붙은 것만 같은 거대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내리는 눈과 바깥의 한기는 차단되었지만, 이제 안쪽을 걸을 때 마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했다.

그리고 저 멀리, 거대한 탑의 가장 높은 곳에서 푸른 빛이 반짝이며, 마치 두 사람을 부르는 것만 같았다.

향해야할 장소는, 바로 그곳이라는 듯.

"...가죠, 그레이.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

"...알겠슴다."

그리고, 그때. 아멜리아는 다시 한 번,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 듯했다.

자신이 최근에 들어서, 가장 의지하게 된 사람의 목소리.

"...클레온?"

자신도 모르게 그 이름을 중얼거리고 뒤쪽을 돌아보면.

여전히, 그것은 너무나도 작고 미세한 감각이었다.

그래고, 그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기다려요, 클레온. 저도 꼭 당신과 왕세자 전하를 찾아낼 테니까."

그렇게 다짐하며, 아멜리아는 그레이와 함께 걸어갔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여왕을 위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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