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2화 〉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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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들어선 얼음의 성 안은 공허와 적막, 그리고 쓸쓸함이 가득한 장소였다.
곳곳에 누군가가 살았던 흔적이 보였지만, 그것은 머나먼 과거의 일이라는 듯이.
대부분의 물건은 먼지가 쌓인 채로 질서없이 굴러다니거나, 심하게 훼손되어 있어서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런 시간마저 얼어버릴 듯한 영구동토의 땅에서도, 무언가가 썩어 사라진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꽤 슬픈 일이었다.
또 한가지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렇게 버려져 있는 물건들의 크기 대부분이 인간이 사용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하다는 것이었다.
성 내의 구조가, 하늘에 닿을 것만 같이 높은 천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또, 인간이 걸어 다니기에는 방의 문과 문 사이의 간격이 마치 운동장 하니만큼이나 벌어져 있었고, 또 성문처럼 거대했다.
"진짜로 큰검다... 여기에는 거인이라도 살고 있던검까?"
[거인... 거인족.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레이는 반쯤 농담삼아서 이야기 한 것이었지만 헤르메스는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나는 농담으로 한검다. 거인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지 않슴까."
[그렇기에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특히나, 북부의 땅을 드워프들과 함께 양분했던 고대의 서리 거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어쩌면, 그들도 이쪽에 추방되었던 것일지도 모르지.]
헤르메스의 말에 아멜리아는 아까 전, 자신을 구해주었던 여성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작게 보였다지만, 그녀는 보기에는 평범한 인간으로 보였다.
"성의 가장 중심부까지는 얼마나 남았을까요?"
아멜리아가 그렇게 물으면 헤르메스의 눈이 반짝이며 저 너머를 바라본다.
[그 '여왕'이 있는 곳을 성의 중심이라고 한다면, 아직 조금 거리가 있다. 워낙 이 안이 넓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 그 사람은, 이곳에서 혼자서 지내고 있는 것일까요? 이렇게나 넓은 곳인데,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아요."
아멜리아의 말에 헤르메스도, 그레이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둘은 이 안에 살던 것이 만약 거인이라고 한다면, 그들이 없다는 사실 자체를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으니까.
특히 서리 거인은, 식인한다고 알려졌을 정도로 흉포하고, 위험한 존재들이다.
그런 서리 거인들이 살던 영역에 실수로라도 들어갔다간, 아작아작 씹혀서 고깃덩어리가 되는 것이 결말일 텐데.
다만, 아멜리아가 그런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말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저, 이런 곳에, 혹한의 땅에서 혼자 지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고통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차곡차곡 쌓아놨다가 장본인에게 물어보면 되는검다."
그레이는 그렇게 말하며 아멜리아를 강하게 붙잡았다.
지금 자신들이 있는 공간, 주변은 온통 어둡고, 바깥보다는 낫다고 하지만 차가운 공기가 아직 남아있는 곳에서.
저절로 기분이 어두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그레이조차도 조금은 텐션이 낮아졌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서 자신들까지 어두워져 버리고, 마음이 약해진다면.
그 틈을 파고들고, 이차원의 마력들은 덮쳐올 것이다.
[그레이의 말이 옳다, 아멜리아 왕녀. 이곳은 절계 추방 영역. 우리들이 모르는 역사가 감춰진 장소이기도 하다. 불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억측은 괜한 불안을 일으킬 뿐이다.]
헤르메스 역시, 그런 아멜리아의 정신상태를 고려해서 그녀를 위로하는 말을 건넸다.
아멜리아는 그런 둘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 정도 마음을 다잡은 듯이 눈에 생기를 되돌렸다.
그 모습을 보고 그레이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이 시리니까, 잡고 가는검다. 이러면, 조금은 따뜻할검다."
"...네!"
아멜리아가 그렇게 말하며 그레이의 손을 잡으면, 확실히 혼자서 걸을 때보다도 손이 따뜻해지고 조금이지만 기운이 나는 듯했다.
"아, 그리고. 왕녀님은 저보다 높으신 분이고, 나이도 비슷하니까. 말을 놔도 되는 검다."
"...그러면, 그레이도 저한테 말을 놓는 걸로 해요."
아멜리아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그레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멋쩍게 웃었다.
"저, 다른 사람한테 말을 놓아본 적이 거의 없어서 못할 것 같슴다."
"저도 그래요. ...후후, 말을 놓지 않더라도, 친근함은 느껴지는 걸요."
아멜리아가 작게 웃어 보이자, 그레이는 그 말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001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걸었을까.
성문을 통과한 지 꽤나 먼 거리를 이동한 뒤에야, 일행은 성의 중심 가장 높은 곳에서 반짝이는 푸른 빛이 나는 곳에 도달했다.
그 푸른 빛의 정체가, 거대한 얼음으로 이루어진 마력 결정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두 사람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못했다.
그것은, 왕국의 사람들 전체의 마력을 모아도 그 수정의 절반 정도의 크기에도 미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마력이 응축된 결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마력 결정을 지키듯이, 굳건히 서 있는 '왕좌'.
그 왕좌에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 푸른 색의 드레스를 몸에 걸친 여성이 앉아 있었다.
문의 종을 울렸을 때 모습을 드러냈던 여왕, 바로 그녀였다.
그레이와 아멜리아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이곳까지 온 것은 좋지만, 어떻게 그녀에게 다가가야 할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리가 꽤 있었기에, 작은 소리로 이야기 하면 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레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함까? 다가가서 깨워 봄까?"
"그, 그건 좀 실례가 아닐까요...? 일단 인사를 하는 게..."
아멜리아도, 그런 그레이에 맞추어서 소곤대는 목소리로 입을 열면, 다음 순간.
"그럴 필요는 없다. 짐은 일어나 있으니까."
아멜리아와 그레이의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 황급히 두 사람이 그곳을 돌아보았다.
그러면, 그곳에는 왕좌에 앉아있던 여성과 똑같은 모습을 한 인물이 그 자리에 선 채로 아멜리아와 그레이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손에는 자신의 키만 한 지팡이를 든 채로, 이렇게나 추운 곳인데도 어깨 부분이 얇은 재질의 천으로 덮여 있어서 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등골이 서늘해진다.
물론, 그것은 아멜리아도 비슷한 차림이었기에 무어라 말할 수 없었지만.
[... 아멜리아 왕녀, 그레이. 왕좌 쪽을 봐라.]
그 때, 헤르메스가 목소리를 내어 두 사람이 그 말대로 하면.
그곳에는 아까 보았던 그대로, 여성이 눈을 감은 채 앉아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바로 뒤에도 같은 모습의 여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보고, 그레이는 소스라치게 놀라 하며 외쳤다.
"쌍둥이임까!?"
"아니다. 어느 쪽도 짐이니라. 그저, 육체에서 영혼을 끄집어내,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지. 짐의 육신은 저 왕좌에서 일어날 수 없느니라."
그레이의 추측이 보기 좋게 빗나가면,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영체라고 칭한 그녀는 그대로 두 사람의 사이를 걸어가더니 옥좌로 다가가서, 자신의 몸에 앉듯이 무릎을 굽혔다.
그러자, 마치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났던 그녀의 몸이, 옥좌에 앉아있는 몸으로 흡수되듯이 사라지며.
눈을 감고 있던 육신은, 천천히 그 눈을 뜨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잘 왔다. 현세의 아이들이여. 그대들의 방문을, 짐은 기쁘게 허락하노라."
"... 저는 아멜리아라고 합니다. 당신의 성함을 여쭈어도 괜찮겠습니까?"
근엄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환영한다고 이야기하는 여성에게, 아멜리아가 물었다.
아멜리아가 말했던 대로, 그녀에게서는 여왕과도 같은 품격이 엿보였다.
"짐에게 이름은 없다. 이 옥좌에 앉기 위해 '나'라는 존재를 버렸기 때문이지. 짐은 그저, 이 얼어붙은 땅의 여왕. '얼음의 여왕'이니라."
얼음의 여왕은 그렇게 대답하며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그 눈은 여전히 차가웠고, 자신을 구해준 것이 무언가의 변덕은 아니었느냐고 생각될 정도로 감정이 없는 것 처럼 보였다.
아멜리아는 그녀의 시선이 마치 자신의 몸을 날카롭게 꿰뚫는 칼바람과도 같게 느껴졌다.
여왕은 아멜리아에게 보내던 시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대들이 짐에게 묻고 싶은 것은 많겠지. 이곳은 대체 어떤 장소인가, 어째서 이곳에는 짐 외의 살아있는 자가 없는가. 짐은 대체 어떤 존재이며, 어째서 그대들을 이 안으로 받아들였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곳을 나갈 수 있는가."
여왕은 거침없이 입에서, 말 그대로 진실만을 쏟아냈다.
그녀가 말하는 것 모든 것이, 그야말로 아멜리아와 그레이가 원하고 있는 정보들이었으니까.
특히 마지막. 여왕이 그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한다면 반드시 들어야만 했다.
"우선 사과하마, 그대들이 지금 이곳에서 나갈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녀는 마치 그런 희망 자체가 덧없다고 이야기하듯이, 그녀들의 앞에서 선언했다.
이곳에 들어온 자,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라고.
지옥에 발을 들인 방랑자에게 도움을 주듯이 나타난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길을 안내하는 시가 아닌, 여행을 마치는 끝맺음의 말이었다.
아멜리아도 그레이도, 그녀의 태도에서 그녀가 농담하거나 협박을 하거나, 겁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진실이라는 것을,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여왕의 목소리는 '진리'인것이다.
적어도, 이 영역의 안에서는.
두 사람은 그렇기에, 너무나도 쉽게 찾아온 여행의 끝에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헤르메스는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기다려라. 여왕. 나갈 방법이 '지금'없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렇다면, 이후에는 나갈 방법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고대의 영혼이여. 그대는 짐보다도 오래된 정신을 지니고 있구나."
여왕은 조용한 눈으로 헤르메스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가르쳐주세요, 여왕 폐하. 어떻게하면, 이곳을 나갈 수 있는 것인가요?"
아멜리아의 질문에, 여왕은 입을 잠시 다물었다.
"대답해주는검다! 우리는 빨리 돌아가야함다...! 안 그러면 모두가 위험한검다!"
그레이도, 여왕을 재촉하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여왕은 그런 둘의 재촉에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으며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곳은 서리 거인의 땅. 그대들은, 그 여왕의 앞에 있노라. 짐은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는 이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분명, 조용히 말하는 것임에도, 옥좌에서 울려 퍼진 그녀의 목소리는 커다랗게 퍼져 나가며 그 방 전체를 뒤흔들었다.
목소리에 강한 마력이 담겨 있었고, 그것은 강력한 압박이 되어 두 사람을 짓눌렀다.
"아윽...!"
"읏..."
그레이와 아멜리아는 동시에 여왕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땅에 대면서 쓰러졌다.
거대하고 무거운 마력압이 동시에 덮쳐왔기 때문이었다.
[기다려라 여왕. 이 둘을 헤치는 것은 용서되지 않는다.]
헤르메스가 그녀에게 말하려 하지만, 여왕이 다음 순간, 지팡이를 들어 땅에 내려찍으면.
그대로 헤르메스가 얼어붙어, 지상으로 떨어졌다.
"헤, 헤르메스...!"
몸이 무거운 돌에 의해 짓눌리는 듯한 압력을 느끼는 그레이는 간신히 그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내었다.
"짐이 이곳으로 그대들을 데리고 온 것은, 그대들에게 시련을 내려 그 가치를 보기 위함이다. 혹한의 땅, 별이 없는 곳. 생명이 숨죽이는 얼음의 정원에서 그대들이 가지고 있는 나약함은 노출될 것이고. 동상 입은 정신은 겉 부분이 썩어 떨어지면서 본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것이다."
여왕의 푸른 색 눈이 더욱 파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들고 있는 무거운 지팡이의 끝에 달린 푸른 색의 보석이 환한 빛을 내면.
아멜리아와 그레이, 각각의 앞에 커다란 거울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그 안에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서서히 흐려지면서 두 사람을 집어삼키는 듯 했다.
"고대인의 안배여, 비극의 왕녀여. 그대들의 고뇌가 만들어낸 시련의 속에서, 그대들의 가치를 증명하라."
여왕이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 번 지팡이를 땅에 내려친 순간.
거대한 진동이 두 사람의 몸을 흔들며, 아멜리아와 그레이는 동시에 정신을 잃었다.
이내, 두 사람은 거울의 위로 쓰러지는 것이었다.
헤르메스는 얼어붙은 상태에서도 간신히 의식을 유지하면서 그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002
세상의 모든 것은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존재한다.
만약에, 스스로의 인생을 바꿀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면.
또, 그 결과가 지금의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라고 한다면.
이런 질문을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것 같다고 한다면, 그럴지도.
또다른 인생을 엿보는 것은, 누구라도 하고 싶어하는 일이니까.
아멜리아 칼데아리스 아니, 지금은 칼데아리스라는 성도, 아멜리아라는 이름도 버린 채 살아가는 한 명의 소녀.
그녀의 동료들은, 그녀를 '메아'라고 부른다.
조금, 뻔한 가명이기는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쪽이 더 자신에게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어느새 번듯한 17살의 처녀로 성장한 그녀는 세인트 프린세스로서의 힘을, 왕도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닌 왕국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사용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오렐리아와 왕도의 바깥으로 나가서 그 모습을 확인했을 때.
아멜리아는 자신의 힘이 필요한 곳이 너무나도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오렐리아에게 부탁하여, 자신을 죽은 것으로 위장해달라고 하고 그녀는 유폐 생활에서 벗어난 것이다.
과거의 모든 인연을 떨치고, 그녀는 오직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해 평생을 살 것이라는 맹세를 바치며.
그녀에게 성령의 힘을 건네주었던 펜던트를 녹여, 철퇴와 방패에 각각 그 조각을 섞어 만들었다.
비록, 악마를 멸하기 위한 전사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힘을 잃었을지언정.
언데드, 악마, 그리고 이 차원에 속하지 않은 모든 부정한 존재들과의 싸움에서 그 방패와 무기는 뛰어난 힘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 서 있는 동료들.
7년이 넘는 시간을 동고동락하며, 이제는 가족과도 같은 관계가 되었다.
"메아. 17살 생일 축하해."
그날도 무사히 모험을 마치고, 엘레시아로 돌아온 메아에게 쿠온은 이야기했다.
그녀가 건넨 것은, 쿠온이 직접 만들어낸 신성한 힘이 깃들어있는 묵주였다.
"와아... 고마워요! 쿠온!"
메아는 환하게 웃어 보이며 동료의 선물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처음으로 메아를 만났을 때는, 이렇게나 키가 작았는데... 이제는 나만 해졌네."
쿠온은 7년 전의 첫 만남이 그립다는 듯이 이야기했고, 메아는 조금 부끄럽다는 듯이 스스로의 금발을 긁적였다.
"정말이야. 그땐 깜짝 놀랐지. 그 녀석이 갑자기 어린 애를 데려와서, 동료로 하겠다고 했을 때는. 어디서 유괴라도 해온 줄 알았었어."
"크, 클레온 씨가 그럴 리 없잖아요~"
그 옆에 선 채로 술을 들이켜던 붉은 머리의 마법사 라일라와, 이제는 대륙에서 이름을 날리는 사냥꾼이 된 사나시아가 이야기했다.
7년 전. 아멜리아는 아카데미의 일을 해결한 모험가 클레온에게 맡겨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클레온이 오렐리아로부터 의뢰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아멜리아를 데리고, 왕도를 떠나 어딘가 멀리 가서, 그녀를 보살펴 주었으면 한다는 의뢰였다.
그것이 아멜리아의 의지이기도 했고, 클레온은 아멜리아의 사정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클레온은 처음에 그녀를 자신의 딸이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당시 클레온의 나이는 아직 20살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씨알도 먹히지 않는 거짓말이었지만.
무섭게 눈을 뜨고 이야기하는 마검사에게 뭐라고 지적할 수 있을까.
결국, 아멜리아 아니, 메아는 클레온의 딸로서 자라나, 지금까지 함께 모험해 온 것이었다.
유폐왕녀로서, 갇혀 지낸 10년이라는 세월 보다.
클레온과 그의 동료들과 함께 보낸 1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값어치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드넓은 초원을 함께 달리거나, 어두운 지하던전에서 함정을 피해 도망 다니거나.
모험과 함께 보물을 찾고, 곤란해하는 사람들을 구하고.
길게 땋은 금발을 휘날리며, 철퇴와 방패로 악을 멸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미 모험가들은 물론 왕국의 시민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서.
섬광의 전처녀(발큐리아)라는 이명이 붙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그냥 '마검사'인데... 라고 씁쓸해하던 클레온의 모습을 봤을 때는 조금 미안했지만.
"그래서? 정작 그 녀석은 어디에 있는데?"
라일라는 자리에 앉으며 턱을 괴고 클레온을 찾는다.
"루티오스씨와 이야기를 하고 있나 봐. 다음 의뢰가 벌써 들어온 것 같다고..."
"메아 덕분에 일이 줄지 않는 건 나쁘지 않네. 연구 자금도 끊임없이 벌 수 있고."
"하지만, 왕도의 사건 이후로 확연하게 마물들의 수가 늘어난 것 같긴 해요."
사샤가 이야기하는 왕도의 사건이라는 것은, 아멜리아가 왕도를 떠난 지 정확히 6개월 후에 일어난 일이다.
왕도에, 대규모 악마들의 습격이 벌어졌다.
그 결과, 왕도에 주둔하던 왕국 병사들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고, 대신전은 불탔으며 많은 이들이 희생당했다.
그 중에는, 선대 왕, 아멜리아의 아버지도 있었다.
하지만, 왕세자 카시우스가 병사들을 지휘해 어떻게든 악마들을 몰아내는 것으로 왕도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지만.
그 뒤로, 대륙 각지에서 악마나 마물들이 날뛰는 숫자가 늘어난 것은 확실한 듯하여서 모험가들에게 있어서는 몇 년 째 성수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메아, 뭔가 안절부절못한 것 같은데."
"엣!? 그, 그런가요? 아, 하하하!"
메아는 라일라의 지적에 뜨끔해하면서 몸을 움찔했다.
메아가 그러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그 클레온 때문이었다.
오늘은 자신이 17살이 되는 날.
클레온과 자신이 약속을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라일라에게는 대량의 술을, 쿠온은 적당히 눈치를 채고 있는 것 같으니 눈빛 교환으로.
사샤는... 미안하지만 페르디아에게 부탁해서 떼어놓기로 했다.
그리고, 클레온과 단둘이 되는 상황을 만들면
"아, 저기 오네."
그리고, 라일라의 목소리가 들리자, 계단을 내려오는 클레온의 모습이 보였다.
7년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흑발과 흑안. 그리고 조금은 헤졌지만 익숙한 갑주를 걸친 청년이 모습을 드러내면.
메아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클레온에게 달려갔다.
"클레온!"
"우옷... 메아. 갑자기 이렇게 달려들면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확실히, 부러운 자식... 이라는 눈빛으로 클레온을 바라보는 이들이 많았다.
"괜찮아요. 오늘은 제 생일인걸요. 하루 정도는 어리광을 부리게 해 주세요."
"네 어리광을 늘 받아주는 건 나지만 말이야. 우선, 자리로 가자."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 하면, 메아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클레온의 귀에 속삭였다.
"...오늘 밤. 제 방이에요."
"... ..."
메아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누르면서 클레온에게 부탁하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약속, 지켜주실 거죠?"
"...그게 네 진심이라면 말이야."
클레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면서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멜리아와 클레온은 약속했다.
아멜리아가 17살이 되는 생일, 그녀의 처음을 받아주기로.
다른 사람은 싫었다.
그저, 자신을 구해준 오렐리아와 또 한명 클레온이 아니라면.
자신이 어린 시절 바라던,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멜리아는 빨리 밤이 되기를 바라면서 동료들이 기다리는 테이블로 돌아갔다.
지금의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있었다.
7년전의 자신에게, 이 모습을 보여줄 수만 있더라면.
그녀는 조금 더 빨리 왕도를 나섰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따끔... 하는 감각이 어깨에서 느껴졌다.
"... ...?"
아멜리아는 갑작스러운 감각에 조금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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