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5화 〉 서리 옥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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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 메기스토스가 사망한 뒤, 그의 의지를 이어받아 가동을 시작한 3기의 이브 중에서, 남성형 흑마의 일족을 만들어냈던 이브.
그 개체는, 전생인자를 심어서 만들어낸 흑마의 일족의 전생체들이 그 인자에 역으로 집어삼켜 져 힘을 추구하기 위해 폭주하고, 지상에서 크고 작은 사건을 일으키는 것을 관측했다.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아담의 폭주.
무언가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지하 연구소와의 연락도 끊긴 뒤, 그는 스스로 몇 번이고 유전자배열을 재구축하여 세계를 관측하고 정보를 수집하여, 때로는 아담에 저항할 수 있는 활동이 가능한 단말 개체를 만들기로 했다.
이런 저런 유전자 샘플을 배합해 보기도 했고, 때로는 엘프와 드워프의 혼종을 만들어 낸 적도 있었으며.
너무나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는 홧김에 악마의 힘을 주입한 인간을 만들어낸 적도 있었다.
모두가 실패에 가까웠고, 안정되지 않는 유전자에 의해 제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었다.
그런 과정을 거듭하면서, 이브는 점차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힘들어졌다.
모든 생명체는 소중하다.
자신의 창조주인 트리스 메기스토스가 언제나 입에 달고 살았던 이야기였으며, 그렇기에 인간을 유전자 치료할 목적이 아니라면, 인간을 만들어내는 힘을 가진 아담을 사용하지 않으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이 하는 일은, 그 아담과 비교하더라도 지지 않을 정도로 생명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었는가.
이대로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이브는 스스로의 자아를 셋으로 분리했다.
지금까지처럼, 시설을 관리하기 위한 인격이지만, 뚜렷한 자의식은 가지고 있지 않은 기계적인 자아.
그리고, 만들어지는 인간을 관리하고 옆에서 보조하여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자아.
마지막으로 자신이 만들어낸 육체에 직접 업로드할 자아였다.
누군가를 만들어 희생시키는 것이 아닌, 그 희생의 주체를 자신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었다.
처음에 육체에 들어간 자아는, 명확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본인이 이브에서 분리된 존재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무엇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지도 뚜렷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트리스 메기스토스의 유지를 이어 아담을 저지하고, 흑마의 일족이 폭주한다면 그것을 막을 것.
지금까지 자신이 만들어냈던 그 어떤 생명체들보다도 더욱 적극 행동하며, 인간들에게 개입하여 아담과 싸우려 한 결과.
그녀는, 가동 3년 만에 살해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은 괜찮았다.
어차피 자신의 몸은 얼마든지 복제할 수 있는 몸이었고, 자아는 죽기 전에 이브의 서버로 되돌려서 재 업로드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이전의 실패에서 배운 그녀는,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했고 이전의 육체와는 생김새도 바꾸어서 다시 세상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3년보다는 조금 더 긴 시간을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목숨을 잃었다.
이브의 분신은, 그런 식으로 오랜 세월 인간들의 역사에 개입해 왔다.
죽으면 다음 육체로.
때로는 성별도 바꾸어 보았고, 연령대도, 종족도 바꾸어 보았지만.
결국, 최종 조정된 육체는 여성에 가까운 무성. 잿빛 머리에, 10대 초중반의 외견이라는 모습으로 안정화되었다.
그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유전자 샘플 중에서도, 가장 궁합이 좋은 것을 조합하여 안정성을 중시한 결과였다.
그 때 부터, 스스로의 이름을 '그레이'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머리와 눈동자가 그런 색이었으니까.
많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았다.
악마들의 침공부터 시작하여, 정령신들과 인간의 싸움도 보았고.
사악한 마법사에 반란을 일으킨 전쟁, 왕국의 건립.
성자의 가호 교단이 탄생하는 장소에도 그레이가 있었다.
이렇게 인류를 관찰하고, 아담의 흔적을 쫓아 싸워나가던 그레이였지만, 아쉽게도 그레이역시 신은 아니었다.
몇번이고 죽었다 살아나면서, 부작용이 없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자아의 열화였다.
기계의 몸을 가지고 있는 관리 인격은, 몸의 내구성이 좋은 것은 물론이었지만, 신체의 생명활동이 정지되었을 때 영혼이 받는 충격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레이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레이의 원본이 되는 인격은.
죽을 때마다, 그 피드백을 서버에 업로드했고.
몇번이나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녀의 자아는 열화 되었고, 기억은 마모되었으며.
자신이 이브의 분신이라는 사실마저도 관리 인격이 이야기해 주지 않으면 기억해내지 못할 정도로, 약해진 상태였다.
그것은 더는 이브의 분신이 아니라, 그레이라는 하나의 독립 개체일 뿐이었다.
그저, 고대의 기술에 대한 지식이 이상할 정도로 많은.
또 한가지는, 생성할 수 있는 육체의 수에도 한계가 오기 시작했단 것이었다.
인간을 만들어내는 데에 필요한 재료는, 트리스 메기스토스가 만들어낸 재료를 바탕으로 원초 세계에서만 배합할 수 있었던 소재를 사용했다.
그렇기 때문에, 계승 세계인 지금은 그 재료를 수급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고, 또 그럴만한 설비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어떻게든 아끼고, 또 아껴서 지금까지 왔지만.
그레이로서 세상에 나서서 활약할 기회는, 정말로 한계가 와 있었다.
조금이라도 영혼이 길게 버틸 수 있도록, 관리 인격은 몇 번이나 일부러 죽음의 피드백이 전달되지 않도록 기억을 누락시켜서 전송하기도 했다.
그 결과, 그레이가 이번의 삶에서 배우고, 성장했던 부분마저도 초기화되어 버리는 일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그레이의 인격은 소멸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이번에는 옮겨갈 수 있는 육체 쪽이 먼저 바닥이나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
관리 인격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또 하나의 분리된 존재인 시설의 관리 자아에게 마지막 육체의 해동과, 인격의 업로드를 지시했다.
[그레이...]
황동의 생쥐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어두운 시설 속에 울렸다.
"이것이, 그대들의 이야기인가."
그리고 그 때,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헤르메스가 그곳을 돌아보면, 거기에는 자신들의 영혼을 환영 속에 가둔 여왕의 모습이 있었다.
동결 상태에서 빠져나와, 알몸이 된 그레이는 콜록 이면서도 비틀거리며 일어나 여왕을 바라보았다.
이 일 자체는 바로 얼마 전에 겪은 일이었지만, 그 자아는 아까 전 여왕의 마법으로 환영의 거울 속에 갇힌 상태의 그레이였다.
[과거를 살피다니, 좋은 취미라고 말할 순 없군.]
헤르메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여왕을 바라보았지만, 여왕은 그들이 있는 시설의 안을 살피었다.
어디까지나 헤르메스의 기억을 바탕으로 해서 재현된 곳이었지만, 기계에 가까운 헤르메스에게 기억의 누락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보이는 것이 모두, 현실의 그것과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그대들의 과거는 흥미로웠다. 어린 왕녀의 쪽도 그러했지만."
아멜리아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레이는 어느새 자신의 몸에 옷이 들러붙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헤르메스가 있는 곳까지 걸어왔다.
"...우릴 어쩔검까. 대체 목적이 뭠까...!"
조금 날이 선 듯한 목소리였지만, 당연하겠지.
자신들의 비밀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들키고 만 것이었다.
물론 그녀가 아담과 한패일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영혼을 옮겨, 무한에 가까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나에게 있어서, 영원한 생명은 아무런 가치도 없으니까."
하지만,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마치 그레이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영원 따위, 저주와 다를 바 없다. 얼어붙은 대지에, 봄이 찾아와 그것이 녹지 않으면 작물을 키울 수 없듯이."
여왕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그곳은 이내 이브가 배치되어있는 지하의 연구시설이 아닌, 다른 곳.
온통 검고 어두운 얼음으로 뒤덮인 것을 보아, 아까까지 자신들이 있었던 얼음의 성의 안. 어딘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
그레이는 그렇게 주변의 풍경이 바뀌고 나면, 아까보다는 조금 더 삶의 흔적이 느껴지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려보았다.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지. 그것에 답해주겠다. 그대들의 존재의의는 잘 알았으니까."
여왕이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자, 쿵... 쿵... 하고 지면이 울렸다.
그레이와 헤르메스가 황급히 진동의 발생원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족히 10m는 되어 보이는 여성이 서 있었다.
하늘 색의 피부를 가지고, 푸른 머리카락을 한 그녀는 기괴하기보다도, 귀여운 인상이나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인체 비율 상, 소녀의 그것을 하고 있었지만 누가 보기에도 거인이었다.
그것도,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서리 거인이었다.
"...히익."
그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꼴사나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가 자신들이 있는 쪽으로 가까이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커다란 발이 자신들의 위를 덮친다고 생각했을 때, 그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웅크렸지만.
이내, 그것은 마치 유령인 것처럼 그레이와 헤르메스를 통과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몸을 숙이고 땅에 놓여있는 것을 바라보며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휘슬! 아직도 자고 있는 거야? 빨리 나와봐! 눈이 그쳤어!"
그레이가 그쪽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 있는 것은 조금 허름하지만 아기자기한 장식이 붙어있는 커다란 상자였다.
커다랗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레이와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로, 작은 집만 한 크기처럼 보였다.
하지만 물론, 거인인 소녀에게는 무릎보다도 아래에 오는 크기겠지.
그러자, 그 상자의 아래 있는 문이 끼익, 하고 열리면서 수수한 옷을 입은 소녀가 걸어나왔다.
나이는, 그레이와 비슷하거나 조금 위였다.
금발에 벽안, 귀족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지만, 입고 있는 옷은 평범했다.
"스, 스카디님... 좋은 아침이에요..."
아마, 그녀가 휘슬인 것이겠지, 잘 씻지 못한 것인지, 헝클어져서 눈을 반쯤 가릴 정도로 길어진 앞머리.
스카디라고 불린 서리 거인의 소녀는 그런 휘슬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치, 이 위에 올라타라는 듯했다.
"시, 실례하겠습니다."
휘슬은 익숙하다는 듯이, 말을 더듬으면서 그녀의 손에 올라탔고, 스카디는 떨어트리지 않고 조심해서 그녀를 자신의 어깨 위로 올렸다.
"후후, 잘 잡아야 해. 저번처럼 떨어지면 안 돼. 눈밭이라고 해도 다칠 수 있으니까, 내 머리카락을 꼭 잡아."
스카디는 휘슬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며 미소 짓지만, 휘슬은 송구하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방을 나서려는 그 때, 한발 먼저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 거대한 소녀보다도 두 배는 더 커다란 몸집을 가진 진짜 거인이었다.
마찬가지로 푸른 피부를 가지고 있는 그는 수염이 덮수룩 했고, 독수리를 형상화 한 듯한 관을 쓴 채로 자신의 딸을 내려다보았다.
"스카디, 밖에 나가지 말거라."
"어째서죠? 오늘은 한달 만에 눈이 그쳤는데!"
"...그들이 왔다. 지금부터 성에 보호 마법을 걸 테니까, 성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단다."
"...그들이라뇨?"
스카디는 고개를 갸웃하고, 휘슬도 잘 모르겠다는 듯이 있었다.
다음 순간, 커다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진동이 성 전체를 휩쓸었다.
"꺄악...!"
"스카디! 방에서 나오지 말고, 기둥을 붙잡고 있어라!"
그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한 뒤 방에서 뛰쳐나갔고.
스카디는 아버지가 시킨 대로, 방 안에 있는 기둥을 붙잡았다.
물론, 흔들리는 지면 위, 평평하지 않은 스카디의 어깨 위에 타고 있던 휘슬은 그 진동을 버티지 못하고 밑으로 떨어질 뻔했다.
"안 돼, 휘슬!"
9m의 높이에서 딱딱한 지면으로 떨어지면 휘슬 같은 약한 몸을 가진 존재는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스카디는 재빨리 손을 뻗어 휘슬을 받아내지만.
다음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성은 그대로,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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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어디까지나 검은 공간만 펼쳐진다.
그레이와 헤르메스는 방금 것을 보고, 조금 전에 느낀 그 진동이, 자신들이 아까 느낀 것 처럼 강제적으로 차원의 틈으로 던져지는 때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또 하나, 휘슬이라는 소녀.
금발에 벽안 그리고 가려져 있었지만 아름다운 얼굴이었던 것.
"...설마, 방금 그 휘슬이라는 여자아이가, 여왕님임까?"
그레이가 그렇게 여왕에게 물으면, 여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침묵은 대답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어떻게 서리 거인과 인간이 함께 살 수 있던 것이지? 서리 거인은, 인간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었나?]
"...그대들의 시대에는, 그런 식으로 전승되어있나. 누가 퍼뜨렸는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군."
여왕은 기가 찬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면서 이야기를 했다.
"서리 거인은 북방의 주인이었다. 현명하고, 강인하며. 마법에도 능한, 설원의 현자들이었다. 서리 거인은 북방의 작은 인간의 나라와 협력하면서 살고 있었지. 나는... 그 나라의 지도자의 딸이었다."
여왕은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얼음으로 된 형상을 띄워 보였다.
사람과 서리 거인이 서로 도우면서 생활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북방의 척박한 환경 덕분에, 대륙의 중심부와는 교류가 그리 활발하지 못했고. 우리들의 주술사들은 대륙의 중심에 좋지 않은 것이 자리잡고 있으니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모든 것의 아버지'라고 칭하는 오만한 존재가, 인간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이다."
[모든 것의 아버지... 아담인가.]
헤르메스가 이야기하자, 여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대륙 중앙에서의 사절단을 모두 거부한 우리를, 북방의 야만인으로 취급한 그들은 군대를 이끌고 와 나의 고향을 멸망시켰다. 우리가 모든 것의 아버지에 대해 경고를 했지만, 듣지 않고 우리를 배척했다. 결국, 살아남은 것은 나 혼자였다."
여왕의 지팡이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 듯 했다.
여러가지 분노가 느껴졌다.
"...내가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그들의 군대가 나의 나라를 멸망시켰을 때 찾아온 서리 거인들 덕분이었다. 늦었다고 사과하는 그들의 왕을 바라보며 나는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내, 여왕이 보여주던 얼음의 환상은 그 모습을 바꾸었다.
"서리 거인의 왕 트야치의 딸인 스카디가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고, 나를 보살피기로 했다. 조금이나마, 가족과 고향을 잃은 아픔이 치유되어 갔다고 생각했다. 서리 거인의 땅에서 살아간 지 1년이 되는 해에, 그들이 나타나서 우리들을 차원의 틈으로 던져버리기 전까지는."
여왕이 주먹을 쥐면, 얼음은 산산이 부서지며 이제 주변의 광경은 옥좌가 있던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많은 서리 거인들이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하여 마력을 바쳐. 차원의 틈에 우리만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사냥감도 없고, 그저 눈과 얼음만이 존재하는 곳에서. 많은 이들은 그저 다가오는 굶주림과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서리 거인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안에는, 스카디의 아버지였던 트야치의 모습도 있었다.
"서리 거인의 주술사들은 이곳에서 빠져나갈 방법으로, '거대한 마력과 영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서리 옥좌'이다."
여왕이 지팡이로 옥좌를 가리키면, 그곳에는 어느샌가 성인이 된 스카디가 앉아 있었다.
어린 시절의 귀여운 인상은 사라진 채로, 어딘가 냉철해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에 반해, 휘슬은 매우 수척해진 상태였다.
스카디의 마력을 나누어 받아,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비축해 놓은 식량이 거의 다 떨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서리 옥좌의 뒤에 있는 거대한 마력 결정.
두 명의 서리 거인이 스카디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하더니 덤덤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 마력 결정을 향해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들의 몸은 그 자리에서 빛으로 변하면서 그대로 마력 결정에 흡수되었고.
마력 결정은 더욱 커지는 것이었다.
"그 그러면... 그 마력 결정이 전부, 서리 거인들의 생명력을 마력으로 전환했던 것이었습니까...?"
그레이는 조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이야기했지만, 여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리 옥좌는, 그 결정을 유지하고, 또 관리하기 위한 마도구였다. 옥좌에 앉은 이는 서리 거인의 왕좌를 이어받아, 마력을 모아 언젠가 원래의 세계로 되돌아갈 문을 열기 위한 기둥이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시선을 움직였다.
그곳에는, 휘슬이 떨리는 몸으로 스카디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었다.
"...잠깐, 설마"
그레이가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휘슬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들을 구해준 서리 거인들이 잠들어있는 마력 결정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손을 뻗으려 한 순간.
"안 돼, 휘슬."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휘슬의 몸이 붕 뜨더니. 그녀의 몸이 커다란 옥좌 위에 앉혀졌다.
"윽...!?"
마력 결정의 마력과 연결되면서, 그녀의 몸 전체에 생명력이 돌아왔다.
"스카디...!? 무엇을!"
하지만, 그것은 곧 스카디가 자신의 옥좌에서 일어났다는 뜻이었다.
"알고 있잖아, 휘슬. 모든 서리 거인의 마력을 쏟아 부어도, 이곳에서는 나갈 수 없어. 그렇다면... 휘슬이 목숨을 잃을 필요도 없다는 거야. 이제 이 성에 남은 것은 나와, 너뿐이니까."
"그렇다면, 스카디도...!"
스카디는 고개를 저었다.
옥좌에 앉을 수 있는 것은 단 한 사람 뿐이었다.
"이곳에서 영역을 유지하다 보면... 분명, 바깥에서 오는 사람이 있을 거야. 휘슬... 너는, 그들과 함께 돌아가도록 해."
스카디는 그런 말을 남기고, 마력 결정에 손을 대 그곳으로 흡수되었다.
그것이, 환영의 끝이었다.
그레이와 헤르메스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저희를 설마, 마력 결정에 흡수시킬 생각인검까...?"
"... ..."
여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지팡이로 땅을 찍었다.
그러자, 그레이는 잠깐 정신이 흐려지는 듯한 착각을 느끼고.
다음 순간, 자리에 엎드려 깨진 거울을 바라보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옆을 돌아보면, 아멜리아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를 데리고, 침실로 가서 조금 쉬게 해 주어라."
여왕이 손을 들어 올리면, 푸른 색의 빛이 나타나, 그레이에게 길을 안내했다.
"...그녀가 깨어나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겠노라."
그리고, 눈을 감은 채, 옥좌에서 잠들듯이 굳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레이는 그런 그녀를 조금 불안하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아멜리아를 둘러업어 푸른 색의 빛을 따라갔다.
옥좌의 방에는, 다시 한 번 적막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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