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8화 〉 생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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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와 그레이는 헤르메스의 인도에 따라 에딘의 성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황야가 계속된 것 같은데, 거대한 요새가 어디에 있다는 것인지.
헤르메스를 통해 전달되는 여왕의 인도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는 도저히 알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레이는 금방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쏟아지던 이곳의 환경에 질리고는 뒤로 걷거나, 깡충깡충 뛰어서 걷거나 하며 심심함을 푸는 것이었다.
[그레이. 조금은 진정해라. 혹시라도 주변에 천둥 군주의 권속이 있다면, 눈에 띄어서 공격 당할 거다.]
"하지만 지루한검다... 대체 이 황야는 어디까지 가야 하는 검까? 기왕이면 성의 근처에 차원문을 열어줬으면 한검다."
"그, 그렇게 되면, 곧바로 들켜버리지 않았을까요..."
그레이의 말에 아멜리아가 이야기하면 헤르메스도 그녀의 말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멜리아 왕녀는 훌륭하군, 그런 무거워 보이는 무기를 잡고도 군소리 하나 없이 이 거리를 걷고 있지 않은가. 그레이도 조금은 본받아 줬으면 하는데.]
"저는 헤르메스보다 무거운 물건은 못듬다."
그레이가 능청스럽게 그렇게 대답하면 아멜리아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여왕에게서 받은 늑대 머리의 망치를 올려다보았다.
"신기하게도, 그렇게까지 무겁지 않아요. 세인트 프린세스의 상태에서 휘루드는 망치보다는 무게가 있지만... 아마, 그건 제가 그 모습으로 변신하면 힘이 세져서 그런 것 같구요."
[여왕의 마법이 만들어낸 망치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인가.]
그레이는 그런 아멜리아의 말에, 망치에 흥미가 생긴듯이 아멜리아에게 가까이 가서 물어본다.
"한번 들어봐도 됨까?"
"물론이에요. 아, 하지만 조심하세요, 얼음이니까 차가울 수도..."
그레이는 아멜리아에게서 망치를 받자마자 땅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차가운 것도 차가운 것이었지만, 역시 무게는 그녀가 들만 한 무게가 아니었다.
"...지, 진짜로 무거워서 놀란검다. 아멜리아는 내장형의 근육을 가지고 있는 검까...?"
"그, 그렇게까지 차이는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레이가 그런 아멜리아의 팔을 잡아보면 확실히, 말랑말랑 하지만 그 안에는 망치를 들고 가볍게 휘두를 수 있을 정도의 굉장한 근육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탑에 갇혀있는 것 아님까...? 대체 어떻게 훈련하고 있는 검까..."
"오렐리아가 늘 닭가슴살이라던 가를 가져다주고... 방 안에서도 조용히 할 수 있는 근력 트레이닝 방법을 알려줘서... 예를 들면, 턱걸이라던가..."
아멜리아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그레이는 조금 질색이라는 듯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아멜리아가 생각보다도 몸만들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슴다..."
[모두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겠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만.]
"저는 못함다..."
[그렇지도 않다. 지금의 너는 아니지만.]
헤르메스의 말에 그레이는 잠시 입을 뿌우, 하고 내밀면서 고개를 저었다.
"흥임다. 헤르메스는 파트너인 저보다 아멜리아 왕녀님이 더 좋은 검까?"
[좋고 싫고의 이야기를 떠나, 사실만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레이, 네 몸은 이제 정말로 소중히 다뤄야 한다. 그래서, 그 몸을 조금이라도 상상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훈련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헤르메스는 변명이라는 생각 없이 덤덤하게 이야기하지만, 그때, 그레이가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잠시 주변을 돌아본다.
"...뭔가... 시선이 느껴짐다."
[말을 돌리지 마라 그레이.]
"아니 진짜임다! 누군가가 우릴 지켜보고 있슴다."
그레이는 숨을 죽이고는, 땅바닥에서 작은 돌멩이를 집어 든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더니
"거김까!"
팟! 하고 눈을 떠서 몸을 휙 돌리더니, 아멜리아의 뒤 쪽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이었다.
아멜리아도 헤르메스도 당황하여 뒤쪽을 휙 하고 돌아보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허공을 가르며 돌이 날아가다가
딱! 하는 소리가 나며 공중에서 무언가에 부딪히듯이 멈추더니,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아,파아...!"
그리고 그 너머에서 무언가, 소녀의 것으로 보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나는 것에, 아멜리아는 눈을 크게 뜨면서 곧바로 자신의 망치를 양손으로 잡아 자세를 취했다.
"뭐, 뭐죠...?"
그레이도, 아멜리아의 옆에서 어설프게나마 파이팅 포즈를 잡지만, 이내, 허공에서 천막 같은 것이 움직였다고 생각하면.
그 아래에서, 청록색의 머리카락과, 창백한 피부를 가진 소녀가 나타났다.
나이는 아멜리아보다는 2~3살 위. 사샤와 비슷한 수준일까.
조금 깡 마른 인상이었지만, 몸에 입고 있는 것은 검은색의 후줄근한 로브이고.
무언가, 거적때기 같은 것을 뒤집어쓰는 것으로 몸을 감추는 것만 같았다.
눈동자의 색은 보라색, 그리고 다크서클이 진하게 있는 얼굴이라 건강하지는 않아 보였다.
그레이가 던진 돌에 맞아 이마를 부여잡은 그녀는 울상을 지으면서 그레이와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런 모습을 보며, 그레이는 경계심을 최대치로 키워서 그녀에게 소리쳤다.
"누굼까! 왜 우릴 쫓아다닌 검까!"
"으으... 너무해, 갑자기 돌을 던지다니이..."
그녀는 말꼬리를 흘리면서, 눈물을 글썽이면서 대답하는 것이었다.
"...죄송해요. 저희가 사과해야 할 것 같네요."
아멜리아는 어째선지, 그녀에게서 적의나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은 그녀에게 사과한 뒤, 다시 한 번 입을 연다.
"저는 아멜리아. 이쪽은 그레이. 당신은 누구시고, 어째서 저희의 뒤에 계신 건가요?"
아멜리아가 상냥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면, 소녀는 조금은 진정이 됐다는 듯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나, 나는. 페루루카... 마법사...의 노예였어. 나, 나도 일단은, 마법사지만..."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며 자신을 소개하는 소녀의 말에 아멜리아는 일단 고개를 끄덕인다.
"페루루카씨 군요... 마법사의 노예, 였다는 건...?"
"위, 위대한 마법사였던 크로울리님의 영역에서, 그분의 마법 실험을 돕고 있었어. ...이, 이곳의 난쟁이가 갑자기 군대를 끌고 와서, 주인님을 죽이고, 영역을 흡수해 버려서. 나도 있을 곳이 없어졌지만..."
그녀의 말에 헤르메스는 '크로울리...'하고 그녀가 입에 담은 이름을 되새겼다.
"역사 강의임까...?"
[크로울리는 금기에 손을 대 엄청나게 강력한 힘을 손에 넣은 존재였다. 그 마력은, 별의 촉각인 천사마저 타락시키고, 자신의 사역마로 했을 정도였지. 수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이내 그의 압제를 견디지 못한 반란으로 사망했다고 들었다.]
헤르메스의 말에 페루루카는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마, 마지막을 제외하면. 맞아. 크로울리님은, 자기가 죽으면 주변 일대를 흑마력으로 오염시켜 버리는 폭탄을 준비하고 계셨는데, 갑자기, 동물 가면을 쓴 녀석들이 나타나서... 우리들이 있던 탑을 그대로 이곳으로 떨어트려 버렸어..."
페루루카의 말을 들은 그레이는 고개를 갸웃한다.
"그게 언제 일임까?"
[우리들의 세계에서는 에딘만큼이나 오래전의 일이다.]
"그럼 몇살임검까!?"
에딘이 천 년도 더 전의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 역시 그 정도의 나이일 것이다.
"우, 우리들은 이곳에 온 지 10년 정도밖에 안 됐어..."
하지만 페루루카가 그렇게 대답하면 그레이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하는 것이었다.
[이차원의 틈은 우리들의 차원과 비교했을 때, 시간축이 비틀려 있다. 현실과 이곳의 시간을 비교해도 의미가 없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이기도 하지. 우리들보다 미래의 시점에 있는 이들이 이차원의 틈으로 들어왔을 때, 지금의 우리보다도 과거에 이곳에 도착해 있는 것도 가능하다.]
헤르메스의 설명에, 그레이도 아멜리아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 되자, 헤르메스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조금 더 쉽게 설명하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어렵게 이해하지 않으려도 된다. 이곳은 원래 그런 곳이니까.]
"그렇슴까... 하지만, 그 '크로울리'라는 마법사가 죽었다면, 님은 왜 여기 있는 검까?"
"그, 그야. 나도 죽기는 싫으니까... 주인님의 보물 중 하나였던 이 걸치면 투명해지는 모포를 훔쳐서, 몰래 이 영역에 숨어 들어온 거야. 어떻게든, 그 드워프의 부하들의 눈을 피해서 살고 있었는데... 너희가 차원문을 통과해서 넘어오는 걸 봐서..."
말할 때마다 말끝을 늘리는 그녀의 말투에 그레이는 조금 답답한 것 같았지만, 어떻게든 참을성을 발휘해서 이야기를 듣는다.
"과연. 도망자였단 검까."
"으윽..."
그레이의 말이 비수처럼 꽂힌 것일까, 페루루카는 고개를 축 늘어뜨리며 침음성을 흘렸다.
"하지만, 저희는 지금 천둥 군주의 요새로 향하는 중이에요. 따라오시면 위험해 질 것 같은데요?"
"무, 뭐!? 너, 너희들. 자살하러 가는 거야!? 어째서! 인제야 기계인형이 아닌 사람들과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페루루카는 패닉을 일으키면서 아멜리아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저, 저희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처, 천둥 군주가 가지고 있는 무기가 필요해요~!!"
아멜리아가 몸이 흔들리면서도 말을 이어나가자, 페루루카는 팟, 하고 그녀에게서 손을 떼면서 제정신이냐는 듯이 바라보았다.
"뭐...? 아니... 뭐...?"
그러면서,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보거나, 가슴 위에 손을 올려보거나, 손목을 잡아본다.
"모, 몸상태는 정상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역시 머리에 문제가 있는 거구나..."
"실례인검다... 이래 봬도, 이쪽 분은 한 왕국의 왕녀님인 검다. 예를 갖추는 것이 좋을 검다..."
그레이는 그런 페루루카가 못마땅한 것인지, 팔짱을 끼면서 이야기하지만, 페루루카는 그 말을 듣고는 '와, 왕녀님...?'같은 말을 한다.
"...아무리 나라도 그런 거짓말에는 안 속아. 확실히 인형같이 예쁘긴 하지만, 공주님이 왜 이런 곳에 있어? 추방당하는 건, 나쁜 일을 한 사람들인데."
"...여러모로 사정이 있는 검다. 그럼, 페루루카는 나쁜 사람인검까?"
"나야, 같이 있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었던 거지."
그녀의 대답에 그레이는 끄응, 하고 소리를 내지만 아멜리아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아멜리아의 표정을 본 페루루카는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우울한 얼굴로 이야기한다.
"...그 얼굴을 보니, 진심 오브 진심인 것 같네... 잘 들어. 그 난쟁이 똥자루가 가지고 있는 망치는 그냥 망치가 아니라... 드래곤의 심장과 비늘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그 녀석의 보물이야. 강력한 번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던지면 돌아오면서, 주인을 위해서 혼자 날아다니면서 싸우기까지 하지."
생각만 해도 겁이 난다는 듯이, 페루루카가 팔을 붙잡고 몸을 떨자 그레이는 고개를 갸웃한다.
"드워프의 무기도 망치인검까?"
"드워프니까 망치를 무기로 쓰지. ...아니, 그러고 보니 너도 가지고 있었네. 뭐야, 그 커다란 얼음 망치는...? 설마 그게 네 무기?"
아멜리아는 페루루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자신의 망치를 보여주며 대답했다.
"서리 왕국의 여왕님께서 만들어 주셨어요."
"... ... 너희들 거기서 온거야!? 어떻게 안에 들어갔어!? 그 성, 절대로 주인님한테는 안 열렸는데!"
"종을 친 검다."
그레이가 그렇게 대답하자, 페루루카는 머리를 쥐어 잡는다.
"종? 아니 우리도 종은 쳐봤지만 안열렸는데. 그렇다면 이 아이들에게 뭔가 특별한 게? 하, 하지만 주인님은 이미 께꼬닥 죽어버렸으니까 알아도 소용이 없나...?"
"...진짜로 이상한 인간인검다. 어쨌든, 우리는 그 난쟁이가 가진 망치를 찾으러 갈 거니까, 겁먹었으면 따라오지 말란 검다."
그레이의 말에, 페루루카는 퍼뜩 고개를 들더니 이야기한다.
"하, 하지만... 너, 너희들. 진짜로... 그냥 가면, 죽어..."
페루루카는 그것만큼은 멈추고 싶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그녀의 표정은, 꽤 간절해 보였다.
고독속에서 발견해낸 또 다른 인간과 헤어지는 것은 싫다는 얼굴이었다.
"...그렇다면 같이 오실래요?"
그러자, 아멜리아는 페루루카에게 이야기했다.
페루루카는 눈을 깜빡거리더니 소스라치게 놀라 하면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페루루카씨가 가지고 계신 그 투명해지는 모포가 있다면, 천둥 군주의 눈도 피할 수 있는 거죠? 저희를 도와주시면, 안될까요? 그러면, 이곳에서 서리 왕국으로 돌아갈 때, 페루루카씨도 같이 가실 수 있을 거에요."
"...그, 그건... 너무 위험한데..."
아멜리아는 페루루카의 말에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이곳에 있어도 위험한 건 매한가지에요. 게다가, 페루루카씨도 이 황야에서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하셨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으으..."
그레이는 그렇게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는 페루루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데려갈 필요는 없슴다. 왕녀님. 어차피, 따라와 봤자 겁먹어서 다리를 못 움직일 검다."
"그, 그런 일은... 아, 하지만 역시 무리일지도..."
페루루카는 흔들리는 동공을 아멜리아에게 향했다, 그런 아멜리아의 눈동자는 곧은 의지로 페루루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라면 괜찮을 거라는 어렴풋한 믿음이 있는 것만 같았다.
"...이, 일단은, 알았어. 하지만 위험해지면 바로 도망치기로, 약속해 줘."
"물론이에요. 그레이도 그걸로 괜찮죠?"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슴다. 왕녀님은 아직 여기서 죽으면 안됨다."
그레이도 고개를 끄덕이자, 페루루카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투명 모포를 접어서 자신의 커다란 등가방에 집어넣었다.
"다, 다시 한 번 자기소개하자면... 페, 페루루카 로로키 루페페이....야."
"... ???"
그녀의 말에 아멜리아도 그레이도 고개를 갸웃, 하고 저었다.
"그게 전부 이름인검까...?"
"으, 응..."
그레이는 오묘한 표정이 되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함다... 걍 페루루카라고 부르면 되는검까?"
"그, 그렇게 해 줘. 나도 뒷 이름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까..."
페루루카의 말에 아멜리아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붙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잘 부탁해요! 페루루카!"
"나, 나야말로. 아멜리아..."
그렇게, 기묘한 동행자를 얻게 된 소녀들은, 다시 한 번 난쟁이의 요새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었다.
001
한 편, 빠르게 질주하고 있던 프레이야의 등 위에 올라 타 있던 클레온은, 어느샌가 주변의 마력 조성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상하군."
"뭐가?"
"이 주변에서, 지금까지의 영역과는 다른 마력이 느껴져. 두 개의 섞일 수 없는 짙은 마력이 섞여 있다는 느낌이야."
클레온의 마력적 촉각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프레이야는 클레온의 설명을 듣고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다시 앞을 보며 달려나가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그 때, 자신의 앞으로 날아오는 날카로운 투창을 보고 재빠르게 발을 멈추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프레이야의 상반신이 꿰뚫려,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클레온은 곧바로 프레이야의 몸에서 뛰어내리며 창이 날아온 곳 비교적 낮은 낭떠러지 바위산의 위를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는, 빛을 등지고 선 한 인영이 클레온과 프레이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멈춰라, 이곳을 지나고 싶으면 통행료를 내라."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클레온은 조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놀랍군, 이 영역에도 도적이 있는 건가?"
하지만 프레이야는 고개를 저었다.
"이곳의 인격체들은 전부 천둥 군주에 의해 몸을 잃고 전기로 바뀌어 버렸다. 도적이 있을 리 없어."
"... 그렇다는데. 위의 너, 존재가 부정당하고 있다고."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한 다음 순간, 프레이야는 갑작스럽게 클레온을 밀쳤다.
그의 몸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 하며 옆으로 이동하지만, 다음 순간, 클레온이 서 있던 지면에서 무언가가 뛰쳐나와 하늘로 솟구쳤다.
그것은, 거대한 사슴벌레였다.
크기는 클레온의 얼굴보다도 조금 더 컸고, 톱날 같은 두개의 뿔이 자라나 있었다.
그 자리에 계속 있었더라면, 아래에서부터 반으로 잘려나갔겠지.
사슴벌레는 하늘로 솟구쳤다가 공중에서 몇 번 돌더니 낭떠러지 위의 여성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감이 좋군.]
"...지금 저 사슴 벌레, 말한 건가?"
"...식인 곤충. 정글의 벌레인가."
프레이야가 그렇게 말하면 클레온은 눈을 크게 떴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위그드라실로부터 설명을 들었던 이미 멸망해버린 다섯의 영역 중의 하나가 바로, 그 식인 곤충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옆은"
"벌레를 다룬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지만. 그녀가 던진 창의 양식은, '다크 엘프'의 것이다."
프레이야가 그렇게 대답하자, 낭떠러지 위의 그녀는 자신이 던진 투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을 향해 다시 창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위협으로 끝나지 않을 거야."
[그녀의 창은 꽤나 정확하니 말이다.]
곤충과 여자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클레온은 그것을 막으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미안하지만, 너희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없어."
"거짓말하지 마라. 너희들, 천둥 군주의 부하이지? 그 철가면을 쓴 녀석처럼, 신입이렷다."
"철가면...? 아니, 우리는 위그드라실의 영역에서 왔다. 이 영역의 어딘가에는 동료들을 찾기 위해서."
"위그드라실 이라고...?"
클레온의 말에, 낭떠러지 위의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야. 우트가르트. 어떻게 된 거야?"
[나에게 물어봐도 곤란하다. 이곳으로 오는 녀석이 있다면 알리라고 한 건 너잖나. 시프]
"...천둥 군주의 부하가 오면 알리라고 했잖아...!"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갑자기 싸우기 시작한 두 존재를 올려다보며, 클레온은 잠시 얼이 빠졌다.
"한심한 녀석들이군..."
프레이야도 그런 둘을 바라보며 질렸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자.
이내, 여성과 벌레가 절벽을 타고 빠르게 지면으로 내려왔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천가죽의 경장을 걸친, 다크 엘프의 여전사.
양쪽 눈을 가리는 안대와도 같은 것을 착용하고 있었고, 뾰족한 귀에 갈색의 피부.
그리고 백발.
일반적인 인식의 다크 엘프와는 다르게 노출은 그렇게 심하지 않은 편이었지만.
그 옷 위에서도 알 수 있는, 육감적인 몸매의 소유자였다.
다만, 팔과 다리에 흉터가 있었다.
마치, 번개에 지져진 듯한 것이었다.
"... 미, 미안해... 보다시피 눈을 나빠서... 이 멍청이한테 알려달라고 했는데. 곤충이라 뇌가 없는 것인지 너희들을 천둥 군주의 부하라고 생각한 것 같아."
의외로 빠르게 사과하는 것을 보며 클레온도 머리를 긁적이지만, 옆에서 붕붕 날고 있던 사슴벌레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철컹하고 톱날의 뿔을 교차시켰다.
[곤충이라 뇌가 없다는 것은 차별 발언이다. 이 충종차별 주의자. 나 우트가르트는 동족 중에서도 가장 고등적인 회화가 가능한 존재였으며. 야만적인 식인을 하지 않았다.]
"식인 곤충의 정글에 저런 별종이 있는지는 처음 알았는데..."
프레이야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우드가르트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인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지?"
프레이야가 묻자, 사슴벌레는 대답했다.
[착각한 모양이군. 내가 하지 않은 것은 어디까지나 야만적인 식인이다. 동족들이 살해해서 죽은 뒤의 인간을 먹는 것은 야만적이지 않지. 살아있는 채로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아아, 그래."
프레이야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대답하자, 클레온도 껄끄러운 표정이 되었다.
"너희들은 대체 뭐지?"
그리고,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는 듯이 프레이야가 질문하면 사슴벌레와 다크엘프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반란군이지. 단둘만의."
[천둥 군주의 살점을 도려내기 위해 손을 잡은 관계다.]
"...자세히 들어볼까."
클레온은 흥미가 생겼다는 듯이 이야기하지만, 프레이야는 진심이냐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시프. 이쪽의 사슴벌레는 우드가르트. 우리 둘은 같은 처지야. 천둥 군주에게 자신들이 살고 있던 영역을 흡수당했지. 원래는 영역이 사라지면서 같이 흡수되어야 했지만. 각자 살 방법을 찾아 이곳으로 도망쳐 왔어. 그래서... 뭐. 이렇게 같이 다니고 있는 거지. 이 영역에서는, 먹을 것을 먹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거든."
[아마도, 천둥 군주의 마력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같더군. 다행인 이야기지. 안 그랬으면 굶어 죽었을 테니까.]
둘의 이야기에 클레온은 잘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너희들은 이곳에 숨어서 지나가는 천둥 군주의 권속을 습격하고 있었다. 이건가?"
"맞아. 녀석들의 몸은 금속으로 되어 있어서, 빼앗으면 무기를 만들어서 쓸 수 있으니까."
[내 아이디어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보따리에 매고 있던 금속의 덩어리들을 보여주었다.
"용케 천둥 군주에게 들키지 않았는걸..."
"그건, 내 주술로 영혼의 기억을 지울 수 있거든. 녀석들이 육신을 잃고 영혼만 빠져나와 천둥 군주의 요새로 돌아가기 전에 내가 처리한 거야."
간단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너희들은... 동료를 찾고 있다고 했나?"
"맞아. 나처럼, 인간이고.. 여자아이인데, 혹시 못 봤나?"
우드가르트와 시프는 서로를 바라보더니 이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너를 본 것으로, 살아있는 생명체를 본 것은 반년만이다.]
"그래..."
클레온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시프와 우드가르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보니, 너희 이름은 못 들었네."
"나는 클레온이야. 이쪽은..."
"프레이야. 위그드라실 님의 수호자이자, 장녀이다."
프레이야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시프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우드가르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클레온이라고? 설마, 거미줄의 주인인 '아난시'님의 반려자인?]
"...아난시는 알고 있지만, 반려인지는..."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자, 우드가르트는 갑자기 날개를 접더니 땅으로 내려와 마치 머리를 조아리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아난시님은 나의 고향인 정글의 지배자였던 거대 거미의 조상이 되시는 분이셨다. 그분은 늘, 아난시님과 클레온님의 재림을 바라고 있었지. 곤충과 인간이 다시 사이를 회복할 수 있도록 말이다.]
"... ..."
프레이야와 클레온은 입을 다물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너는 대체 어떤 일을 하다 온 거지."
프레이야의 질문에 클레온은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설마, 살아있는 클레온 님을 보는 날이 올 줄이야. ...이 우드가르트,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것만 같다. 눈물을 흘릴 수 없는 몸이지만.]
"얘가 이러는 건 처음 보네... 너, 굉장한 사람이구나."
시프는 감탄했다는 듯이 클레온에게 이야기하면, 클레온도 뭐라 대답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클레온 님. 이 우드가르트가 도울 수 있는 것은 없나? 당신과의 만남이 모두 아난시님의 운명의 거미줄의 인도라고 한다면, 분명 나에게도 당신의 도움이 될 일이 있을 것이다.]
"...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는 인간의 여자아이를 찾고 있어. 일단 방향은 알고 있지만... 어쩌면, 천둥 군주의 요새로 향했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많은 전력이 필요하겠지."
클레온이 그렇게 대답하자, 우드가르트는 알겠다는 듯이 다시 하늘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 찢어발기는 톱날의 우드가르트가 힘을 보탤 시간이로군.]
"자, 잠깐! 이 남자를 따라가겠다는 거야?"
시프는 우드가르트의 말에 놀란 듯이 목소리를 냈다.
[그래. 다크 엘프. 너와의 동업은 즐거웠지만, 나는 나의 사명을 찾아낸 듯하다. 내가 살아남아 이때 까지 살아 있던 것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 ...아, 아니... 그러면 우리들의 반란은..."
시프는 조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야기하지만, 클레온은 그런 그녀에게도 말을 건넸다.
"...그렇다면, 같이 가면 되지 않나? 어차피 반란을 획책한다면, 인원수는 많은 편이 좋으니까 말이야."
"... ... 뭔가, 그럴듯한 말에 넘어가는 것 같지만... 알았어. 이 눈으로는 혼자 지내는 것도 힘드니까."
클레온이 그렇게 결정을 내리면 프레이야는 조금 못 미덥다는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이 둘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인가?"
"그편이 전력 보강도 되고, 좋지 않아? 아슬아슬 하지만, 네 속도를 따라 창을 던질 정도의 실력이었다고."
"...흥."
그 말이 양쪽 모두를 칭찬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프레이야는 고개를 저었다.
어째선지, 그녀의 꼬리가 조금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럼. 출발할까. 그녀가 이동하고 있는 게 느껴져. 서둘러 합류해야겠어."
[알았다. 척후는 나에게 맡겨다오.]
우트가르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하늘로 떠올라 조금 앞으로 날아갔다.
"... 잠깐, 그렇게 하늘을 날면."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프레이야지만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고 우트가르트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곧바로, 우트가르트가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 뒤에, 천둥 군주의 권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운이 나빴군.]
"클레온..."
"아무 말도 하지 말아줘."
프레이야의 원망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클레온은 중얼거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