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1화 〉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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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집인가?"
미미르가 회수해 온 수확물에 대해, 에딘이 내뱉은 첫 번째 감상평은 그것뿐이었다.
아름다운 백금색의 머리를 가진 가련한 소녀.
피부는 새하얗고, 잔 상처 하나 없어 보였으며.
가녀린 팔뚝은 몸 전신이 근육으로 울룩불룩한 드워프인 에딘의 엄지손가락만 한 굵기였다.
게다가 신분이 꽤 높은 것인지 입고 있는 것들도 하나같이 화려했다.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이 꽤나 고급진 드레스였지만, 자신의 부하들과의 싸움으로 이곳저곳이 헤진 것이 조금 보이는 것을 보아.
방어적인 면을 생각하고 만들어지지 않은, 에딘의 기준에서는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소녀는 미미르가 준비한 치료용 겸 탈출을 막는 결계의 안에 누운 채로 있었다.
혹시라도 모를 일을 위해, 마력을 억제하는 족쇄까지 채워둔 채.
일어나서 난리라도 친다면, 자신이 발을 구르는 것만으로 그녀의 전신에 전기를 흘려보낼 수도 있었다.
준비는 만전, 흥미로운 무기였던 얼음 망치도 뺏어둔 상태이다.
"부하들이 보고한 바로는 녀석들은 '셋'있었다고 하던데."
"그중에서도, 그녀만 살아남았습니다. 나머지는 떨어지면서 흩어진 것인지, 아니면 가루가 되어 사라진 것인지 보이질 않더군요."
미미르가 그렇게 대답하자, 에딘은 '흐음'하고 침음을 내뱉었다.
현자의 말을 완전히 신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발사한 것은 자신의 요새가 가진 무기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인 '뇌신의 창'이다.
그것을 하나 발사하는 것만으로, 이 이동 공중요새 '발할라'의 동력의 70퍼센트를 사용한다.
"네 녀석이 갑자기 화기제어실로 들어와서, 그것을 쐈을 때는 놀랐다. 야만적인 무기라고 하며 싫어하지 않았나?"
"때와 상황에 다른 것이죠. 가장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는 수단을 취한 것입니다."
에딘은 미미르의 대답에 '흐음'하고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에 대량파괴 병기는 필요하지 않다고 늘 에딘에게 이야기하던 미미르가 직접 자신이 조종간을 잡아서 발사한 것이다.
물론, 앞으로 전력이 되어줄지 모르는 상대를 향해 '비교적'약한 무기인 구식 대포만을 사용하여 놓칠 뻔 한 것은 에딘의 실책이 맞았지만.
"어째서 이 계집과 그 동료가, 내 부하들의 염소를 조종할 수 있었던 거지?"
"적어도 그녀가 한 것은 아닌 것 같군요. 대답해줄 수 있는 이가 사라졌지만, 위협도 함께 사라졌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현자의 그런 능청스러운 말을 들은 에딘은 쉽사리 고개를 끄덕일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신의 오토마타, 자신의 기술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염소가 그렇게나 쉽게 타인의 조종을 받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면, 그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 기술자의 일이었다.
천둥 군주 에딘은, 정복자이며 침략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대장장이, 즉 기술자이기도 했다.
그가 만들어낸 요새, 그가 만들어낸 무기, 그가 만들어낸 병사들 전부의 설계도가 에딘의 머릿속에 있었다.
필요하다면 다른 문명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아끼지 않았고, 그렇기에 자신은 강대한 강철의 드워프 왕국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의 기술의 결정체중 하나인, 오토마타를 어떻게 지배했는지.
흥미가 샘솟아서 어쩔 수 없는 것은, 그의 안 좋은 점이기도 했다.
"그녀가 깨어나면 그것에 대해서 물어봐라. 직접 한 것이 아니더라도, 함께 행동한 녀석이 그런 짓을 했다면 이유 정도는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하죠. 답변에 관해선 그다지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만..."
미미르가 덧붙인 말에, 에딘은 손가락을 들이밀며 이야기했다.
"네 녀석의 그 잘난 혀와 주둥아리로 어떻게든 불게 만들어라. 그게 아니라면 다음에는 내 번개가 계집과 대화해야 할 테니까."
"... 알겠습니다."
에딘의 말이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미미르는, 조금 낮아진 목소리로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런 미미르를 둔 채, 에딘이 방을 나서고 나면.
아멜리아는 조용히 눈을 떴다.
지금 까지의 이야기를 전부 들으며, 기절한 척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미미르는 그런 아멜리아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먼저 입을 연 것은 아멜리아 쪽이었다.
"무엇을 하고 계신 건가요. 카시우스 전하."
"이런. 알고 있었니."
아멜리아의 말에, 미미르는 뜻밖에 쉽게 인정했다.
그 가면 밑의 얼굴이, 아멜리아와 닮은 금발 벽안의 호청년이라는 것도, 자신이 아멜리아의 이복 오빠인 카시우스 칼데아리스라는 것도.
하지만 아멜리아는 카시우스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방금 전의 이야기로는, 자신들에게 그 번개를 발사한 것은, 바로 카시우스였기 때문이었다.
아멜리아로서도, 그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 엉뚱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런 그가, 설령 자신인지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런 무기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했을 것일까.
"이것저것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멜리아의 대답을 들은 카시우스는 아무것도 없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아멜리아와 마주 본다.
얼굴에 쓰고 있는 철가면과, 유일하게 그 안이 보이는 눈동자의 위에서 빛나는 각인을 아멜리아는 이전에는 본 적이 없었다.
"우선. 이곳으로 오게 된 경위부터 이야기해야겠지. 나는, 이곳의 시간으로 1년 전에 이 땅에 떨어졌어."
"...1년 전...!? 저는, 고작해야 몇 시간 정도 전인데..."
아멜리아의 말에 카시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차원의 틈이란 건 원래 시간의 흐름이 이상한 곳이야. 동시에 그 문을 통과했다 하더라도, 이 안에서, 어느 시점에 나타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
카시우스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자신의 손을 들어 보였다.
그 손에는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이내 그것을 벗기면 그 안의 손 원래라면 다른 젊은 왕족들과 마찬가지로 상처 없는 손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것은 검은색으로 물들어서 좋지 않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는 손이었다.
"설마, 이차원의 마력에 침식된 건가요...!?"
"맞아. 아니, 정확하게는 '줬다' 라고 해야겠지."
그다지 보기 좋지 않은 그것을 다시 장갑으로 가리면서 카시우스는 이야기했다.
"정신이 들은 나는, 클레온과 아멜리아... 그리고, 아멜리아 너를 쫓아 뛰어든 또 한 아이를 '같은 시간대'에 절계 영역에 떨어지게 했어. 소피아 선생님께 배웠던 틈새를 걷는 법을 알고 있던 덕분이지. 하지만 그것도 완전하지는 않아서, 나만 1년 정도 먼저 떨어지게 됐고, 각자 다른 곳에 떨어지게 되었지만... 이건, 그런 마법을 사용한 대가로 이차원의 마력에 빠르게 물들어 버린 거야."
역시 나한테는 소피아 선생님만큼의 재능은 없단 거겠지.
라고, 덧붙인다.
아멜리아는 그의 말에서, 천둥 군주가 최근 1년 동안 다른 영역을 흡수하는 전쟁을 벌였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카시우스 전하께서, 천둥 군주를 도와서 다른 영역을 침략하신 거군요."
"맞아. 이차원의 틈에 침식된 덕분에, 내 예지 능력도 조금은 강해져서. 어느 정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거든. 그걸 이용했지."
"... ..."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카시우스를 보며 아멜리아는 침묵했다.
다른 영역을 흡수하는 것은, 그 안에 존재하는 다른 이들의 영혼과 마력, 그리고 생명력을 흡수하기 위해서.
페루루카의 이야기를 들은 바로는, 그 영역에 존재하는 다른 이들을 모두 없애야만 했다.
에딘이, 그리고 그의 참모가 되어 전쟁을 지휘한 카시우스가 한 것은.
비록 자신들의 세계가 아닌, 이차원의 틈 안에서라고 하더라도 '학살'이라는 것에 변함은 없었다.
아멜리아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본 카시우스는 무엇인가 말하려다가 이내 그것을 그만두고.
다른 이야기를 하려 했다.
"이곳에서 나가는 힘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것은, 역시 강대한 마력이야. 천둥 군주가 가지고 있는 무기 '묠니르'가 5개의 영역을 흡수하여 축적한 마력도 물론 굉장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그것과 비견될 정도라고 하면, 서리 여왕이 가지고 있는 마력 결정일까."
아무런 대답이 없는 아멜리아에게, 카시우스는 설명을 계속한다.
"너는 분명, 서리여왕이 천둥 군주의 망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겠지.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는 해. 그러니, 그 망치를 탈취해서 서리 여왕의 곁으로 돌아가면 분명,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어."
"당신은, 무엇이 하고 싶으신 건가요."
아멜리아의 말에 카시우스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힘겹게 웃어 보인다.
"그야 물론, 너와 클레온을 원래의 세계로 무사히 되돌려 보내는 거지. 거기에, 다른 영역들은 그대로 두기에는 위험한 곳이야. 추방 교단이 왜 그들을 이런 곳에 유폐시킨 것일까, 이해가 될 정도로 말이야. 혹시라도 그들이 다른 영역을 모두 집어삼켜서, 우리들의 세계로 넘어오는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멈출 수 없는 재앙이 될 거야."
"그것을 막기 위해서, 미리 이 세계 안에서 천둥 군주의 힘 아래 흡수시키는 것으로 우리들의 세계로 넘어올 위협을 저지했다는 건가요?"
카시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피아 선생님은 말씀하셨어. 미래를 보는 힘을 지닌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왕국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대륙 나아가 세계를 지키는 일에 사용되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마음의 천칭에 확실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그 천칭에서, 언제나 아래쪽에 내려가 있는 것은"
아멜리아의 질문에, 카시우스는 대답한다.
"물론, 왕국의 백성. 대륙의 평화. 세계의 안녕."
아멜리아는 그 대답에, 입을 다물었다.
세인트 프린세스인 아멜리아는 지금까지, 많은 악마와 싸워왔었다.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배제한다.
아멜리아가 하는 것과, 카시우스가 하는 것은 스케일이 다를 뿐 본질은 같은 것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현시점에서도 왕도를 위협하고 있는 악마들과 다르게, 그들은 장래 자신들의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측 하에 이루어진 행위라는 것.
전설 속에서도, 신화 속에서도.
예언자들의 예언, 혹은 미래를 아는 자의 행동은 늘 다른 이들의 이해를 받지 못했다.
아멜리아는 카시우스가 어떤 미래를 보고 그런 행동을 한 것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행위가 옳은 일이하고 이해를 하려 해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쉽게 내려지지 않는, 그의 행동에 대한 자신의 판단에 아멜리아가 침묵을 이어나가면.
카시우스는 그런 아멜리아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한 행위에 대한 것이, 물론 전부가 전부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렇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너희를 원래 세계에 되돌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할 생각이야. 그리고, 그에대한 업도. 내가 짊어지어야 할 것이지."
"...전하께서는"
아멜리아의 말에 카시우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회를 봐서, 네 구속을 풀어줄게.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클레온이 이곳으로 올 거야. 그럼 그와 합류해서 묠니르를 탈취할 수 있도록 도울게. 조금이라도 체력을 비축해 두렴."
그의 가면 밑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아멜리아는 상상이 가질 않았다.
또, 그가 무엇을 짊어지고 있는지도.
자신에게는, 동료가 있다.
오렐리아, 루베라, 클레온. 그리고 그레이와 페루루카까지.
카시우스는 분명, 왕궁의 안에서는 차기 왕으로서 많은 이들의 선망과 존경을 받고 있었지만.
그에게도, 자신과 같은 동료가 있었을까?
그리고, 그들과 힘든 것을, 그리고 기쁜 것을 나눌 기회는?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파져 왔다.
무엇이 옳은 일인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결국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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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너는 죽기 전에 페루루카에게 영혼의 조각을 심어서. 네 영역이 사라지기 전에 빠져나왔다는 거로군."
"[그래. 이 녀석은 처음부터 혹시라도 있을 그런 일을 대비해 키운 노예니까 말이야.]"
페루루카 아니, 그녀의 몸을 지배하는 크로울리는 여전히 자신의 책인 법의 서를 뒤적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딘가, 루벤이 빙의한 사샤를 보는 것 같았다.
"...변명할 수가 없는 악인이로군."
프레이야는 그런 크로울리를 혐오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지만 클레온은 우선 그녀를 진정시켰다.
"[위그드라실의 정의로우신 장녀는 아무래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군. 걱정하지 마, 그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네 어머니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너희만을 지키기 위해 영역의 확장에 전혀 신경을 안 쓰고 있었지. 덕분에, 우리가 에딘에게 침략받을 때도 다른 영역들과 마찬가지로 방관하고 있었고.]"
"네 녀석...!"
프레이야가 당장에라도 활을 꺼내 크로울리를 쏘려 하자, 시프가 프레이야에게 달려들어 그 팔을 붙잡았다.
"지, 진정해! 저 몸은 어디까지나 여자애고, 저 마법사는 기생충 같은 거라구!"
[그건 벌레 차별 발언 아닌가?]
"넌 좀 조용히 해!"
"쓸데없이 타인을 도발하지 마. 네 목적은 뭐지?"
"[그야 살아남는 것이지. 가능하다면, 너희가 살고 있던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도. 그걸 위해서 내 마탑을 내어준다는 거래를 했으니까 말이야.]"
"...거래?"
클레온의 질문에 크로울리는 손을 들어 보였다.
저 멀리, 하늘에서 서서히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공중 요새가 보였다.
"[천둥 군주의 녀석 밑에, 최근 들어서 이상한 애송이가 들어왔다. 철가면을 쓴 녀석이었는데, 예지능력이 있다고 하더군. 천둥 군주를 타도하고, 내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선, 지금의 영역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해서 그렇게 하도록 했지.]"
"영역의 지배자가 자신의 영역을 포기한다고...? 그런 바보 같은... 널 따르고 있던 다른 이들은 아무래도 좋다는 건가!"
"[그 녀석들은 전부 내 노예야. 내가 원하는 대로 쓰는 거지. 목숨도, 마력도, 심지어 영혼까지도 말이야. 그걸 대가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할 뿐이다.]"
크로울리의 윤리관은 다른 이들과 비교하더라도 심하게 비틀려 있었다.
그야말로, 자신외의 존재들은 모두 자신의 도구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클레온. 이 녀석과 더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
"화가 나는 건 이해해. 하지만 필요한 정보는 모두 들을 생각이야."
클레온의 말에 프레이야는 큭...하고 주먹을 쥐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로 가려고?"
"이 녀석과 같은 빛으로 광합성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잠시 주변을 순찰하고 오지."
프레이야가 그렇게 말하며 일행의 곁을 벗어나려 하면 시프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나도 같이 갔다 올게."
클레온이 고개를 끄덕이자 시프는 우트가르트에게 방향을 알려달라고 부탁하며 함께 곁을 떠났다.
"[각 영역에서 생존자들이 모인 것이 우연이라 생각하나? 별의 인도를 받은 마검사.]"
"클레온이다. ──우연이 아니라고 하는 건가?"
떠나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린 크로울리가 그렇게 말하면, 클레온이 질문했다.
"[당연하지. 모든 영역은 '합의하고' 에딘에게 흡수된 것이다. 전부, 그 애송이의 작품이지. 영겁에 가까운 시간을 이 안에서 보내며, 멸망한 영역의 지배자들은 모두 지겨운 시간을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야. 영역을 철거한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은 다시 이차원의 틈으로 던져질 뿐이었다. 달라붙는 마력들 때문에 자살을 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침식되어 변이해 버리겠지.]"
크로울리의 말을 들은 클레온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불멸자라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영생이라는 저주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라고 이전, 루티오스에게 들은 것을 떠올렸다.
"[그러던 와중 녀석이 나타난 거다. 그 애송이는, 우리의 영역을 에딘의 무기 묠니르에 흡수시키는 것으로 차원문을 열 계획이라고 했다. 그것으로 이 지겨운 추방에 끝을 가져오겠다고. 그 벌레도, 검정 귀쟁이도. 같은 제안을 받은 것이겠지.]"
"하지만 그들은 너처럼, 영혼을 기생시키진 않았어."
"[그야 그건 나만 쓰는 방법이니까. 하지만 저 녀석들도 각 영역에서 핵심이 되는 존재이거나, 그런 것을 가지고 나왔을 거다. 그것이 자신의 의지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크로울리의 말에 따르면, 에딘의 부하가 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으면, 그 존재가 에딘의 부하인 것치고는 에딘을 위해서 일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다른 영역의 지배자에게 계획을 이야기하고, 스스로 영역을 내놓게 한다는 것을 에딘은 알고 있었을까?
"...설마."
클레온의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것은, 자신에게 미래를 볼 수 있다고 이야기했던 청년.
카시우스 칼데아리스였다.
시간대가 맞지 않지만, 이곳이 이차원의 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상식적이지 않은 일도, 가능해지는 장소이다.
"[게다가 녀석은 너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지배의 각인을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이라고 말이야. 그것도 네가 가진 마검의 힘이겠지.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그건 지배의 각인이 아니라]"
"그렇다면 너도, 저 안에 들어가서 묠니르를 찾는 것에 협력해 줄 것이란 이야기군."
크로울리가 신나서 이야기 하는 것을, 클레온은 끊어버리면서 이야기했다.
크로울리는 그 말에 입을 딱 멈추고는, 인상을 찌푸렸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거다. 하지만 이 몸은 어디까지나 내 영혼을 담기 위해서 조정되어 있어. 공격 마법 같은 것은 배우지 못하도록 해 두었다. 잠재력은 있었지만 말이야.]"
"그럼, 뭐가 가능한 거지?"
크로울리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했다.
"[인간에게 내재한 '죄'를 불러일으키는 마법이지. 들어 본 적 없나? 인간은 7가지의 죄를 가지고 있다고.]"
"쿠온이 그런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클레온은 잘 모르겠다는 듯이 이야기하지, 크로울리는 웃어 보였다.
"[아무래도 강의가 필요한 것 같군.]"
"아니, 괜찮은데. 그저, 네가 전력이 되어준다면 그걸로 상관없어."
하지만 크로울리는 그런 클레온의 대답은 듣지 않은 채, 완드를 꺼내서 자신을 겨누었다.
"[러스트.]"
그러자, 그녀의 완드에서 강렬한 분홍색 빛이 터져 나와, 그대로 페루루카의 몸을 뒤덮었다.
눈이 부신 그 광경에 클레온이 손을 들어 자신의 눈을 보호하고.
잠시 뒤, 빛이 사그라진 그곳에는, 페루루카의 눈에서 생기가 없어진 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갑자기 마법을 쓰면... 잠깐, 괜찮나?"
"읏... 누, 누구죠. 당신... 그레이랑, 그 공주님은..."
클레온이 그녀를 부르자, 페루루카는 클레온을 보고는 놀라서 몸을 움츠린다.
"크로울리... 아니, 네가 페루루카인가. 나는, 클레온이라고 한"
"으햣...!?♡"
클레온이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녀에게 손을 내밀자, 그녀는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어째서인지, 얼굴이 붉고 호흡이 거칠었으며.
몸의 안에 불이 붙은 것만 같이, 배의 안쪽이 뜨거워졌다.
"크로울리, 무슨 짓을 한 거지...?"
"[인간의 죄 중 하나인 '색욕'의 마법이다. 말하자면, 적을 유혹하는 데에 쓸 수 있는 마법이지.] 크, 크로울리님!? 어디 계신건가요!? [멍청한 제자 같으니라고. 네 그 빈약한 몸으로 저 녀석을 유혹해 봐라]"
한 사람의 입에서 두 개의 말투가 번갈아 나오는 것을 보며, 클레온은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되었지만.
꺼내는 이야기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잠깐, 뭘 한다고?"
다음 순간이었다, 클레온이 페루루카와 눈을 마주치면 그의 머릿속으로 마력이 흘러들어왔다.
이전, 프로미스의 클럽에서 잠깐이나마 느낀 적이 있는 달콤하고 매혹적인 마력이었다.
다만, 그때는 어느정도 대비가 되어 있었기에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을 이번에는 마력을 모아 방어하는 데에 약간의 시차가 생기며.
마력이 침투하는 것을 허용하고 말았다.
"죄, 죄송해요...! 크, 클레온 씨라고 하셨던가요...! 마, 마력을 제어할 수가 없어서...!"
페루루카도, 자신의 마력이 클레온을 침범한 것을 확인하고는 그에게 사과하기 위해 가까이 가지만.
"[덮쳐라! 페루루카!] 네, 네엣!?"
그대로 크로울리가 또다시 몸을 빼앗아, 클레온을 밀어 넘어트린다.
그것과 동시에, 크로울리가 마력의 소영역을 펼쳐 클레온과 페루루카를 가둔다.
"크로울리...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었던 건가...!"
"[지배의 각인을 직접 볼 기회니까 말이다. 협력 부탁하마, 나도 네게 협력해 줄테니... 크하하하!] 크, 크로울리님...? 어, 어떻게 하면... [에에잇! 일단 옷을 벗어!] 모, 못해요~!"
자신을 밀어 넘어트린 뒤 크로울리와 페루루카가 만담을 시작하는 와중에도, 클레온은 자신의 몸에 서서히 열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클레온의 의식은 서서히 몽롱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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