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295화 (295/506)

〈 295화 〉 관측

* * *

000

클레온과 동료는 헤르메스가 안내하는 대로 지상을 이동했다.

주변의 황야는 여러 크기의 돌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거대한 산의 가파른 경사를 올라갔다.

"이거, 진짜로 올라야 하는 검까..."

헥헥 대면서 지쳐 하는 그레이의 목소리에, 제일 앞에서 나아가던 클레온이 뒤를 돌아보았다.

우트가르트야, 날아서 이동하니 괜찮았지만 시프와 프레이야도 그레이와 마찬가지로 오르막길이 힘든 것처럼 보였다.

"미, 미안... 내가 살던 곳에는 이런 산은 없었어서..."

"...나도다, 이 다리로는 경사진 곳을 올라가는 것이 힘들군."

시프는 자라난 환경 때문에 산 자체를 오르는 것이 처음이었고, 프레이야는 켄타우로스라는 신체적 특징 때문에 평야가 아닌 곳을 움직이는 것에는 불리한 것 같았다.

[날개가 없는 이들이여. 그대들을 동정하노라.]

그리고 그런 시프와 프레이야, 그리고 그레이를 바라보며 한마디 덧붙이는 우트가르트.

핑­! 하는 소리와 함께 겨우살이 화살과, 까악 하는 소리를 내며 검은 창이 허공을 가르면.

우트가르트는 재빠르게 지상으로 내려와 사사사삭 하는 소리를 내며 땅을 기는 것이었다.

"뭔가... 특이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그런지, 재밌는 것 같슴다."

그레이는 클레온이 데리고 온 셋에 대한 감상을 '재밌다'로 깔끔하게 정리한다.

한 편, 아까부터 말이 없는 페루루카는 어떤가 하면.

이미 산의 절반 정도를 올랐을 때 한 번 앞으로 고꾸라져서, 클레온의 등에 업혀서 올라가는 상태였다.

"괜찮나 페루루카?"

"으으... 죄송해요 클레온 씨..."

또 피를 마시게 한다면 체력을 회복 시킬 수도 있었지만, 아무리 담피르가 흡혈충동이 적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피를 마시는 것에 중독되면 안 된다는 이유로 헤르메스가 그녀에게 피를 주는 것을 자제하라고 부탁했다.

그레이의 파트너인 헤르메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했지만, 인공정령답게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헤르메스의 말투나, 분위기에서 이전 지하 연구소에서 만났던 머큐리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클레온은 헤르메스의 조언을 듣고 그에 따르기로 했다.

확실히, 페루루카도 흡혈을 한 뒤에는 조금 성격이 난폭해지거나, 거만하게 변하는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일행은 어떻게든, 가파른 지형을 오르고, 또 올라서 드디어 정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곳까지 도착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나지 않은 바위산을 오르고 나면 주변의 광경이 훤히 눈에 들어왔다.

물론, 그 반대로 밑이나 위에서도 자신들이 산을 오른 모습이 아주 잘 보이겠지만.

"...우와..."

그레이는 가까스로 정상에 올라 주저앉으려다가, 지금까지 오르던 산의 땅에 의해 가려져 있던, 너머의 지형을 보고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그곳에는 마치 거대한 폭탄 같은 것을 떨어트려서 강제적으로 만들어낸 것만 같은 커다란 구덩이가 있었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구멍이겠지.

여기저기에 그을려진 흔적, 그리고, 강제적으로 자리를 만들어서 그 위에 여러 가지 설비를 설치하기 위해 지형의 변화를 일으킬 정도의 병기를 투하한 흔적이 보였다.

그레이가 감탄한 것은 그 흔적들이나 구덩이 때문이 아니었다.

엄청난 크기의 거대한 굴삭기와, 채굴용의 중장비들이 수십 개나 늘어져 있었고 곳곳에서는 염소를 타고 날아다니던 천둥 군주의 권속들이 그 장비들의 사이사이를 걸어 다니면서, 장비의 관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돌을 캐내고 있는 건가?"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그레이의 목걸이에서 헤르메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들이 캐고 있는 것은 이 영역의 안에서 생성되는 특수한 금속의 재료이다. 천둥 군주의 권속들의 몸을 구성하는 것과 같은 종류지.]

"특수한 금속...?"

[영역의 구조는 지배자의 영향을 받는다. '이런 금속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할 때, 지배자가 그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로 그런 금속이 생성되는 것이지.]

헤르메스의 말에 클레온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리 자체는 마력으로 만들어내는 소영역과 같군."

"그래서 대체 그 금속이 무슨 금속임까?"

그레이는 더는 궁금증을 참지 못한다는 듯이 헤르메스에게 캐물었다.

그러자, 헤르메스가 꺼낸 이름은 클레온에게도 익숙한 것이었다.

[이 영역의 지하에서는 소울이터 메탈의 원재료가 되는 광맥이 깔렸다. 그것을 채굴하여 공중요새 발할라로 올려보내면. 그 안에서, 천둥 군주의 권속들의 신체와, 그들이 탑승하여 조종하는 염소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엘카이로에서 보았던, 영혼을 집어넣어 움직이는 기계 병사들과 같은 원리이지 않은가.

이차원의 침략자들과 싸우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술을 어째서 천둥 군주가 사용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태양왕과, 그의 가신들과 교감했던 클레온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이 시설을 파괴하면 천둥 군주에게도 타격이 생기겠군."

[그래. 물론, 요새 안에도 저장된 금속들이 많지만, 그것들이 다 떨어지고 나면 이 시설을 재건할 때까지는 추가로 생산할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지금 파괴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요새로 올라가기 위한 시설도, 이 안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헤르메스의 의지로, 그레이의 몸이 움직였다.

그레이의 팔이 들어 올려지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은 시설이 펼쳐진 구덩이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상승기였다.

그곳으로 광석들을 모아서, 위로 올려보내면, 요새가 다가와 회수하는 구조라고 헤르메스는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저 광석들 사이에 숨어들어 가야 하는검까?"

"그, 그게 가능할까...? 뭔가, 식별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페루루카의 말에 클레온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 부분은 그레이가 어떻게든 할 수 있다.]

"... 호오."

클레온의 감탄했다는 듯한 소리가 울렸고, 다른 이들도 역시 그레이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레이는 그 말을 듣더니 잠시 눈을 두 세 번 깜빡이다가, 자신의 펜던트를 잡으며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주저하다가 조금 곤란한 얼굴로.

"아니, 못함다. 무슨 이야길 하는검까."

"...본인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만?"

[미안하군, 설명이 부족했다. 정확히는 그레이와 내가 함께 제어 시설을 장악하면 된다. 나의 자의식은 그레이의 몸을 통해서 접촉한, 마도석으로 움직이는 기계에 옮길 수 있다. 그들의 염소를 제어한 것도 그런 원리이다.]

"뭐야. 그런 거였나... 나는 또 얘가 엄청난 마력 제어력을 가지고 있다는 줄..."

페루루카는 어딘가 안도했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 제어 시설은 어디에 있는 것이지?]

우트가르트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목소리를 내면, 헤르메스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다시 한 번 헤르메스에게 집중되면.

잠시 후, 다시 한 번 펜던트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에 관한 정보는 아직 획득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 상승기의 주변에 있는 잡다한 기계 중 하나라고는 확신한다.]

"뭠까 그게!?"

그레이는 헤르메스의 그런 조금 무책임한 말에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를 내질렀다.

[염소를 통해 요새의 제어 시스템에 접속한 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상세한 정보를 파악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그, 그건 그렇슴다만... 거기까지 자신 있게 이야기하길래 모든 것을 다 파악한 상태인 줄 알았슴다..."

그런 헤르메스와 그레이의 이야기를 듣고, 프레이야와 시프는 이야기한다.

"기계에 제어에, 인공 정령에... 우리 영역에서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라 끼어들지를 못하겠네."

"우연이군. 나도다. ...위그드라실 님의 영역에서는 금속이 만들어지지 않으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프레이야의 말에, 시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은 무기를 만들 금속은 있지만, 기계의 힘은 빌리지 않아. 사정령과 냉병기만을 만들어. 그것보다 우트가르트. 너는 저 이야기를 따라가는 거야?"

[당연하다. 나의 영역에서는 몇몇 현명한 동족들이 기계를 만들어서 사용했다. 사용할 수 있는 금속의 양은 한계가 있었지만.]

우트가르트의 말에 페루루카는 고개를 갸웃했다.

"... 저 벌레의 영역도 정글이니까 금속이 나오지 않을 텐데?"

[외부에서 떨어진 식량이 몸에 걸치고 있을 때가 많더군.]

"... ..."

그 말을 듣고 다른 모든 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특히, 거미들이 만들어내는 기계는 훌륭했다. 효율적으로 식량을 장기 보관하기 위해 저장할 수 있는­]

"아, 알겠어! 우트가르트! 그 이야기는 이제 됐으니까!"

우트가르트의 말이 이어지면 머릿속에서 그 광경이 상상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틀어막는 시프.

페루루카는 비위가 상한 듯이 입을 손으로 가로막고 핼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우선은 저 상승기의 주변까지 가는 것이 목표겠군."

[그렇다. 되도록,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말이지.]

[잠입작전인가. 후, 또 나의 실력을 보여줄 때가 왔군.]

"너는 제발 가만히 있어 줘. 날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소리를 내는 녀석이 어떻게 잠입 작전에서 활약하겠다는 거야."

시프가 차가운 표정으로 질린다는 듯이 우트가르트를 붙잡아 자신의 품에 안았다.

우트가르트는 끄응 소리를 내다가 이내 조용해진다.

그리고 이어서, 시프는 클레온에게 이야기했다.

"여기까지 와서 이야기하는 것도 뭐하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물론, 그럴 생각이야.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가기 위해서. 한 사람도 낙오되는 일 없이."

클레온이 그렇게 대답하면, 시프는 멋쩍게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 부분에 관해서는 신뢰하고 있어. ...내가 이야기 하는 건, 다른 세력의 이야기야."

"다른... 세력?"

클레온은 잘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 시프의 품에 안겨있는 우트가르트가 입을 열었다.

[클레온 님이시여. 절계 추방 영역에 9개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이미 들었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 다섯 영역이 멸망했고.]

우트가르트의 설명에 클레온이 고개를 끄덕이면 시프는 우트가르트의 말을 이어나갔다.

"나, 우트가르트, 저 마법사 여자애의 세계에서 한 사람씩 살아남았다고 한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화염의 땅에서도 누군가가 살아남았을 확률이 높아."

[화염의 땅은 끊임없이 싸우고, 재생하고를 반복하는 투쟁의 세계였다. 지배자였던 화염의 챔피언 '서터'의 권속들은 그의 눈에 띄어 그에게 도전하기 위해 매일 같이 서로 싸움을 벌였지.]

화염의 챔피언, 서터는 인간이었던 몸으로 화염의 정령으로 승화한 존재였다.

그 방법이라는 것이 물론,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니어서, 화염의 상급 정령을 토벌하고는 그 정령석을 통째로 삼킨 뒤.

몸이 불타는 고통을 견뎌내고, 그 힘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한 특급의 변태이다.

투기장 출신의 검투사였던 그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힘을 원했는지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그는 자신을 투기장에 가두었던 그 시절의 제국의 황제와 결투를 벌이려 했고.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황제와 결투를 하던 중 승기를 잡아 황제를 마무리하려던 찰나.

지옥의 문이 열려, 그를 끌고 갔다는 기록을 마지막으로 역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우리 둘이 이 황야를 1년 정도 돌아다녔지만, 불타는 녀석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그런 녀석이 싸운 흔적도 본 적이 없어."

"이미 죽었다는 가능성은?"

[서터의 투사는 정령이면서 동시에 언데드이다. 죽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에서 부활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물론, 영역이 사라진 지금도 그 힘이 남아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렇다면... 어디에 있을 거란 거지?"

클레온이 그렇게 질문하자, 페루루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죽음의 여신의 땅..."

"...죽음의 여신?"

지금까지 이곳에 오면서 들었던 지배자의 이름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이번에 들은 것은 클레온에게도 낯선 것이었다.

"...강력한 언데드 사령 술사가 지배하는 죽음의 영역이에요. 살아있는 생명체는 안에서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리고, 살아있는 상태로 서서히 언데드로 바뀌죠."

"... ... 위험한 곳이라는 것은 알겠군."

클레온의 말에 시프도 고개를 끄덕이고, 프레이야는 자신의 추측을 입에 담았다.

"...확실히. 그녀는 위그드라실 님도 에딘보다도 더 위험시하는 지배자이다. 에딘이 이렇게나 다른 영역을 흡수하는 동안 움직이지 않는 것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을지도 몰라."

"경계해야 하는 것은 서터의 투사보다도 그 죽음의 여신이라는 녀석이로군."

"그녀는 교활하고, 또 잔인한 지배자라고 들었어요. 또, 유일하게 스승님께서 피하던 존재라고..."

페루루카의 말을 들으면, 크로울리 마저도 그녀를 경계하고 있다는 이야기겠지.

"... 천둥 군주와 죽음의 여신인가... 어느 쪽도 방심할 수 없는걸."

[방심은 곧 죽음을 부를 것이다. 클레온 님.]

우트가르트의 말에 클레온은 입꼬리를 올렸다.

"알고 있어. 하지만 이곳까지 왔다면 그런 것에 겁먹고 그저 앉아 있을 수는 없어."

"...맞슴다. 아멜리아가 기다리고 있을 검다."

그레이가 의욕을 불태우며 고개를 끄덕이면, 클레온은 웅크려있던 몸을 일으켜 구덩이의 밑을 내려다보았다.

"움직이고 있는 녀석들은 전부, 적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그래.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될 수 있으면 조용히 잠입하는 것이 좋다. ...그것도 승강기를 가동하면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마검사는 동료가 없이 혼자서 움직이는 게 유리하다는 말이 있지."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며 흑마력을 끌어 올리자, 그의 몸 주변으로 흑마력의 장막 같은 것이 펼쳐지더니.

그의 몸을 깨끗하게 눈앞에서 지워졌다.

"은신의 마법...!"

페루루카는 감탄했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자, 그레이는 손을 뻗어서 클레온이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해 본다.

"오... 뭔가, 있는 건 알겠는데 보이지 않으니까 신기한검다."

클레온이 다시 마력을 해제하면 일행 전부를 돌아보았다.

"이 인원 전부를 한꺼번에 은신시킬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지만."

"그, 그러면 내가 도와줄게. 흑마력을 쓰는 마법이라면. 내가 어떻게든 보조할 수 있으니까."

시프가 손을 들어 보이면 클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크 엘프인 그녀라면, 확실히 흑마력을 다루는 제어 능력은 자신보다도 뛰어날 것이다.

"...이렇게 돌아보면, 특이한 파티로군."

마검사, 탐정, 사슴벌레, 식물 켄타우로스, 다크 엘프 주술사에, 담피르 저주 술사.

만약이 누군가가 이 조합으로 던전을 탐험하라고 한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의뢰를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향하는 곳은 던전보다도 더 위험한 장소였다.

안전의 보장이 안 된다고 한다면, 조합은 독특한 편이 좋았다.

예상 밖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언제나 조커 카드이니까.

"... 클레온, 어딘가 즐거워 보임다."

그런 그레이의 말을 듣고, 클레온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를 문질렀다.

확실히,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늘 왕도의 안을 다니거나, 모험다운 모험을 하지 않았으니까."

"...늘 위험한 일을 하고 다니는 것 같슴다만... 그건 모험이 아닌검까?"

"그것과 이것은 조금 다르지."

클레온의 말에 그레이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클레온은 원래 세계에서 모험가였던 건가... 모험이란 건 어떻게 하는 거야?"

시프는 그레이와 클레온의 이야기를 듣더니 조금 신경 쓰인다는 듯이 물어왔다.

클레온은 그 질문을 듣고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대답한다.

"... 모험이라는 건, 카드 게임 같아서─"

001

한창 검을 휘두르던 그것은 이내 고철로 만들어진 허수아비를 완전히 베어 쓰러트린 뒤에 들고 있던 검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검에 대한 긍지를 가진 검사라면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것이고.

예의범절을 중요시하는 병사나 기사라면 군비품인 검을 함부로 다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투사였다. 검사도, 병사도, 기사도 아닌 검은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존재였다.

"젠장... 이걸론 부족해. 어이...! 나는 대체 언제쯤이면 그 세계로 갈 수 있는 거야!"

굵은 여성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그 소리에 견디지 못하고 머리에 쓰고 있던 투구가 깨져나가면.

그 안에서, 마치 거대한 짐승의 갈기와도 같은 붉은색의 화염이 터져 나왔다.

아니, 그것은 그녀의 머리카락이었다.

키는 족히 2미터는 되어 보였고, 몸 전체가 엄청난 근육으로 채워져 있었으며 이빨은 마치 상어와도 같이 뾰족하게 자라나 있었다.

그녀는 인간이 아니라, 마치 화염이 형체를 갖추고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몸 전체는 구릿빛이었지만, 곳곳에 불이 붙은 채였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울부짖으면 나타난 것은 얼굴에 가면을 쓰고 몸에는 검은색의 갑주를 걸친 은발의 여성이었다.

목에는 붉은색의 흉흉한 기운이 느껴지는 펜던트를 건 채.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가면 너머로 자신을 향해 소리친 여성을 바라보았다.

"진정해 무스. 이제 곧이야. 그들이 천둥의 황야에서 일을 일으켰을 때가, 우리가 움직일 때니까."

"...그게 대체 언제냐는 말이다!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기서 허수아비나 상대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한테는 투쟁이 필요해! 싸움이!"

으르렁 거리는 화염과 죽음, 그리고 투쟁의 정령인 '무스'가 화를 낼 때마다 그녀의 머리카락과 몸 위에서 불꽃이 터져 올랐다.

그런 그녀를 조용히 달래던 은발의 여성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허리에 걸려있는 얇은 검집에서.

은색의 레이피어를 뽑아들었다.

"어쩔수가 없구나. 오랜만에, 내가 상대해 줄게."

"하, 하하! 그래. 그 정도는 돼야지. 좋아... 어디 한 번 죽여보라고!"

기다렸다는 듯이 떨어트렸던 쌍검을 손에 들고, 그녀는 눈앞의 존재.

죽음의 여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여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진심이 된 무스와 다르게, 그녀는 전혀 진심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은 죽음의 땅.

그리고, 거대하고 음울한 대성당의 안에서 유일하게 자기의식을 가진 존재는 단 한 명.

이 땅의 주인인 죽음의 여신이었다.

그런 이곳에, 다른 영역에서 도망쳐 나온 존재가 온 것은 반년하고도 조금 전의 일.

그 가면의 남자가 자신에게 그녀를 맡겼을 때, 그곳에서 그 가면 남을 죽여버려도 상관없었지만.

그에게서, 그리운 냄새가 났다.

자신이 이렇게 되어버릴 때 까지, 어딘가에서 내려두고 온 무언가 속에 섞여 있었던 것만 같은.

그런 모호한 추억 안에서.

그렇기에, 살려 두었었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다음 순간, 은색의 레이피어가 휘둘러지면, 그대로 무스의 몸은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옆구리까지 깔끔하게 베여서.

그대로 떨어졌다.

아직 움직이려고 하면, 죽음의 여신은 손을 휘두르고.

대성당에 걸려 있는 무너진 십자가에 그녀를 박아넣어.

재생할 때 까지 얌전하게 만든다.

"...이걸로 조금은 진정됐니?"

"크으으... 괴물 같은 녀석..."

무스의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죽음의 여신은 몸을 돌렸다.

아직,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