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7화 〉 골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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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타고 올라간 원판의 상승기는, 이내 발할라의 아랫부분을 통해서 요새의 안으로 진입했다.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진동과 함께, 원판이 멈춘 것을 느끼고 주변을 둘러보면.
지상에서 채굴한 자원들을 곧바로 창고로 올려보낼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는 것인지.
원판 위에 올려진 일부 금속들과 비슷한 금속들이 어두운 공간 안에 잔뜩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우트가르트..."
주변에서 자신들을 덮칠만한 적들의 존재가 사라진 것을 느낀 이들은, 잠깐이었으나 동료였던 이가 스스로를 희생했다는 생각에 우울한 기분이 되었다.
클레온조차도, 그를 막도록 설득할만한 말을 찾지 못했었다.
그만큼, 그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그 위기를 돌파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의 이름을 중얼거린 클레온이 주먹을 쥐면, 시프가 손뼉을 마주쳤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의 쪽으로 집중되면, 그녀는 벗어버린 안대 밑에 숨어있던 룬의 눈동자를 반짝이며 이야기한다.
"자. 우트가르트에 관한 것은 일단 잠시 잊어 두자. 그 녀석이 우리를 위해서 시간을 벌어줬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추모가 아니라 목적을 달성하는 거야."
[그녀의 말이 맞다. 현재는 아직 발각되지 않았지만, 창고 내로 누군가가 들어오면 곧바로 에딘도 눈치챌 것이다.]
헤르메스의 말에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우트가르트와 가장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던 시프가 강한 척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 자리에 있는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뭐야, 그 표정은. 걱정해 주는 거야?"
그런 모두의 표정을 읽은 것인지 시프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쓴웃음을 짓는다.
"아까도 말했잖아, 각오는 해 뒀었다고. 이런 싸움에 아무도 잃지 않고 행복한 결말로 끝난다면 그거야말로 최고겠지만... 힘들단 건 모두 알고 있었을 테고."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창 궁니르를 뽑아들어 바라보았다.
"나의 창도, 우트가르트의 복수를 바라고 있어. 울고 슬퍼하기보다는, 행동해야 할 때야."
"... 경의를 표한다, 다크엘프."
시프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프레이야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시프는 쓴웃음을 유지한 채 고개를 저었다.
"복수는 다크엘프의 특기야. 종족적인 특성인 거지. 그래서 클레온? 주변을 조사해 볼 거지?"
"...그래. 그게 좋겠군."
클레온은 시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우선 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보고 자신들과 함께 올라온 금속의 무더기들을 살폈다.
창고의 모든 벽은 두꺼운 격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빠져나가는 것은 어려울 것만 같았다.
"이것들이 전부, 소울이터 메탈의 원재료인 건가?"
클레온은 그 금속들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것이 신기하다는 듯이 손을 올린다.
엘 카이로에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손을 올린 순간 몸 안의 기운을 빼앗기는 듯한 감각이 덮쳐올 것이라고 예상하여 긴장했지만.
예상외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뭐 하고 있는 검까?"
"아니... 이전에 봤던 소울이터 메탈과는 다른 것 같아서."
색도 검은색보다 회색에 가까웠고, 느껴지는 것은 금속 특유의 차가움과 단단함 뿐.
그 안에서 어떤 마력이나, 좋지 않은 성질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들의 세계의 소울이터 메탈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본질은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들의 세계의 것은 가공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영혼을 재료로 써서 주조된다.]
"... 그렇다면, 여기에는 인간의 혼이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일종의 '그릇'같은 역할만 하고 있는 건가."
[그래. 다만, 혼을 붙잡아 둘 수 있는 강도가 훨씬 약하다고 보인다. 그래서 육체가 파괴되면 그대로 영혼도 해방되는 것이지."
클레온은 헤르메스의 설명을 들으며 소울이터 메탈을 쥐어보았다.
"이걸로, 격벽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할까?"
"...제련할 방법이 없다면 무리겠지."
프레이야의 말에 클레온도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페루루카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 저기... 스, 스승님이 그 금속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해요. ...어, 어떻게 할까요? 나오게 해도 될까요?"
담피르로서의 힘을 각성하고, 완전히 크로울리와의 육체 지배의 상하관계가 역전된 페루루카.
아무래도 그녀가 허락하지 않으면 크로울리는 의식을 표면에 내보내는 것조차 힘들어진 것 같았다.
"괜찮겠나?"
"네, 네. 원한다면 바로 제가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어요. 헤헤..."
자기가 말하고도 그 사실이 기분이 좋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페루루카.
클레온도 고개를 끄덕이면,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고
이윽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눈빛은 날카로우면서도 굴욕에 가득 찬 분노한 눈빛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내가 어떻게 억누르고 있던 이 녀석의 본성을... 마검사, 무슨 짓을 한 거냐...!]"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표면에 나온 건가? 이 금속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해라."
클레온이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크로울리는 분하다는 듯이 주먹을 쥐더니 소울이터 메탈에 가까이 간다.
"[이건 엄밀히 말하자면, 고대의 인공 정령이 말했듯이 우리들의 세계의 소울이터 메탈과는 다르다. 하지만 영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선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지.]"
"사용하는 방법은?"
클레온의 질문에 크로울리는 양쪽 입꼬리를 아래로 구부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용광로와 망치는? 그런게 없다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영혼을 담을 수 있다면, 녀석이 자신의 부하의 영혼을 담아버리기 전에 다른 영혼을 담아버리면 되는 거다.]"
"그런 영혼을 어디서 구하란 거야?"
시프가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이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서 크로울리를 질책하면, 크로울리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시프를 돌아보았다.
"[사정령도 영혼이다. 그렇겠지?]"
"... ...아아!?"
시프는 그 말을 듣고 뭐를 하라는 건지 깨달았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둘만 아는 이야기 하지 말고 제대로 설명해 주란 검다...!"
그레이가 호기심이 동한 듯이 눈을 반짝이며 재촉하자, 클레온도 고개를 끄덕이며 크로울리와 시프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나의 정령술로 사정령을 소환해서..."
"[나의 골렘 제작 마법으로, 사정령을 코어로 담은, 메탈 골렘을 만들어내는 거다. 속성 골렘을 만드는 것 정도는, 수백 년 전에 숙달했으니 말이다. 이 벽도 제거하고, 너희들은 수족으로 부릴 수 있는 골렘도 손에 넣으니 일석이조. 아니, 상대방의 전력 감소를 생각하면 일석삼조로군. 역시 이 몸이다. 후하하.]"
과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앞머리를 넘기는 크로울리.
"... ..."
클레온은 그런 크로울리의 설명을 듣고 잠시 조용히 있다가.
"페루루카의 몸으로 가능한 건가? 그녀의 몸으로는, 대상의 정신에 영향을 주는 저주만 쓸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 ... 아아아앗!?]"
클레온의 말을 듣고 겨우 생각해 냈다는 듯이 크로울리가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가 말한 대로, 지금 그가 쓰고 있는 페루루카의 몸은 크로울리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덕분에 저주 마법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자신의 최고 마법서인 법의 서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부터 마법의 테크닉을 몸에 쑤셔 넣는 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면, 어쩔 수 없군. 다른 방법을 찾던가 이 금속을 어떻게 하는 건 포기하고 붙잡혀간 그 클레온의 동료를 찾으러 갈 수밖에."
프레이야도 고개를 저으면서 한숨을 내쉬면, 크로울리는 '큭...'하고 침음을 흘리며 자존심에 상처가 났다는 듯이 눈을 굴렸다.
"[자, 잠깐 기다려. 분명, 무언가 방법이 있을 거다. 잊었나 클레온? 이 녀석은 담피르. 마법에 대한 재능은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네가 가르치지 않았지. 자, 다시 페루루카에게 몸을 돌려줘."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크로울리는 손을 들어 보인다.
"[이야기를 들어라 무례한 놈! 너는 아까, 페루루카와 몸을 섞었다. 각인을 새길 조건 자체는 성립되어 있다는 거다.]"
"...몸을 섞...?"
시프는 그 이야기를 듣고 눈을 크게 뜨고, 프레이야는 거의 쓰레기를 보는 듯한 얼굴이 되어 클레온을 바라본다.
"잠깐, 두 사람 다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클레온은 우선 그쪽을 해결하려 하지만 크로울리는 고개를 돌리는 클레온의 머리를 붙잡아 자신 쪽을 보게 한다.
"[네 녀석이 페루루카의 몸에 각인을 새기고, 그것으로 몸을 조정해서 맞춰주면 내가 그 틈새로 가지고 있는 마법 지식을 이 녀석의 머릿속에 주입할 수 있다. 골렘 마법뿐만이 아니라, 공격 마법도, 치유 마법도 원하는 대로 말이야.]"
"...필사적이로군.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는건가?"
클레온이 그렇게 물어보면 크로울리는 본의가 아니라는 듯이 주먹을 쥐며 말한다.
"[이 녀석이 안쪽에서 말하고 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내 의식 자체를 지워버리겠다고. 그, 그것만큼은 안 돼...!]"
'자업자득이라 생각하지만...'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 좋아. 어이 제자! 그렇게 됐으니까, 네가 겉으로 나와라! 나는 안쪽에서 지식의 전수를 준비할 테니!]"
크로울리가 그렇게 외치자 그녀는 비틀, 하고 쓰러질 뻔하다가 제대로 서서 눈을 떴다.
다시, 원래의 페루루카의 눈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 아하하... 조, 조금... 방법이 막무가내일까요...?"
페루루카가 그렇게 물어보면 클레온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 그 인간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 원하는 바를 들어주겠지. 잘했다 페루루카. 다만... 지배의 각인이라는 건 너도 알다시피"
클레온이 거기까지 말하면, 페루루카는 클레온의 손을 잡았다.
"괘, 괜찮아요! 어차피, 처음을 준 사람 외의 사람과는 그런 일을 할 생각도 없고..."
"... ...정말로 그걸로 괜찮다면..."
"처음을 줬대..."
시프가 프레이야에게 속삭이면 프레이야도 조용히 눈을 감으며 고개를 저었다.
"클레온이라면 평범한검다. 제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여자가"
"그레이."
클레온이 웃으면서 그레이를 그렇게 부르면 그레이는 전신에 소름이 돋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클레온이 저렇게 만면의 미소를 짓는 것은 처음 봤슴다..."
[그를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지 마라.]
"사실을 이야기하려 했을 뿐임다..."
클레온은 일단 주변의 수군거림을 무시하고, 페루루카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친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그녀의 안에 남아있는 자신의 존재를 불러들여 그녀의 몸의 안에서 마력이 통하는 길을 찾아낸다.
지배의 각인은 그중에서도 가장 마력이 잘 통하는 장소에 새겨진다.
사샤라면 심장 부근, 쿠온이라면 단전이듯.
사람마다 그 장소에 관해서는 차이가 있다.
"읏..."
어딘가, 간지러운 느낌이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낀 페루루카의 입에서 그런 목소리가 흘러나오면.
서서히, 그녀의 목 부근에 마력의 흐름이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페루루카의 목에는 그 표면을 빙 둘러서 지그재그의 선 같은 것이 나타나 고리를 형성했다.
마치 목줄이라도 만들어내는 듯이 검은색의 선이 이어지면.
"...됐다."
이내, 그녀의 목에도 훌륭한 지배의 각인이 완성되는 것이었다.
"어, 어떤 형태인지 안보이네요..."
그야, 목에 생겼으니까 그렇겠지.
페루루카도, 목에서 무언가 신기한 느낌이 드는 것인지 그 부분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괜찮나? 이상한 느낌은 안 들어?"
"위, 위화감은 조금 있지만. 괘, 괜찮아요."
다행이라는 듯이 클레온이 고개를 끄덕이면, 이내 클레온이 그 각인 위에 손을 올렸다.
그의 딱딱한 손가락의 감촉이 목에서 느껴지면, 페루루카는 얼굴을 조금 붉힌다.
마치, 고양이가 목을 만져질 때처럼, 얼굴을 붉히며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면.
각인이 약하게 빛을 내면서, 그녀의 몸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웃... 윽...!"
페루루카의 작은 신음과 함께 각인의 표면에서 스파크 같은 것이 튀었다.
클레온도 자신의 각인 조정에 무언가 다른 의지 같은 것이 끼어드는 것을 느꼈으며 방대한 정보량이 각인을 통해서 그녀의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시간으로 치면 1분이 채 되지 않았겠지만, 페루루카는 그 순간을 마치 몇 시간에 가깝게 느낄 정도로 정보의 양은 막대했다.
잠시 후, 각인에서 발해지던 빛이 사그라지면 페루루카는 자신의 안에 새겨진 골렘 마법에 대한 지식을 한글자씩 곱씹을 수 있었다.
"정말로... 저한테 마법이..."
페루루카는 조금 감격했다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괜찮겠어?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한다면 바로 할 건데."
시프는 그런 페루루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 네, 네! 가, 가능해요! 배운 대로 하면...!"
페루루카의 대답에 시프도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창을 지팡이 삼아 사정령을 불러낼 준비를 마친다.
"...그럼. 갈게, 영혼을 내가. 육체를 네가 만들어 내는거야."
"네, 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페루루카, 시프는 정말로 괜찮은 것일까 조금 걱정하지만 이내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어둠의 권속. 천지의 정열. 검게 물들어버린 영혼은 규탄의 비명이 되어, 현세에 메아리친다. 어둠을 가리는 장막을 벗어던지고, 지금 이곳에 강림하라."
흑마력은 정령들이 숨어있는 세계와 인간의 세계의 사이의 벽을 얇게 만들어, 그 너머에서 불길한 존재를 불러온다.
시프가 불러낸 사정령은,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순수하면서도 원초적인 영혼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 편이, 금속이라는 그릇에 담기에 더욱 적합한 것이겠지.
허공에 구멍을 뚫고 꾸물렁 거리면서 기어나오는 검은 진흙과도 같은 그것은 눈도, 입도, 코도 없는 마치 슬라임 같은 형태의 영체였다.
프레이야도 그레이도 그것을 보고 본능적인 혐오감을 느꼈지만.
그 혐오스러운 것이 자신들의 편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어서 페루루카는 왼손에 법의 서를 쥔 채로 가슴에 끌어안으며, 오른손은 금속이 쌓여있는 곳을 향해 뻗어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별이여. 악의와 선의를 품은 별이여. 창세의 별이여. 나는 그대로 인해 태어났으며 그대로 인해 자라났고 그대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노니. 그대가 나를 빚었듯이 나의 생, 나의 혼, 나의 숨을 통하려 죄를 짊어질 인형을 빚으니라. 이는 죽음을 모르며, 삶을 모르는 존재일지니. 그대의 이름을"
이어지는 영창, 한문장, 한문장이 움직일 때마다 골렘을 만들어내는 주문은 소재로 삼은 금속들을 한군데로 뭉치며 서서히 거인의 형태로 만들어갔다.
하지만, 만들어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육체 뿐, 그 안을 담당해야 하는 영혼은 시프의 인도를 따라 땅바닥을 기어가더니 이내 페루루카가 만들어낸 금속 거인의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모든 것이 문제없이 진행되는 것만 같았던 그때, 페루루카의 영창이 멈추더니 금속 육체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 페루루카. 왜 그래? 영창을 마무리해."
"그, 그게... 이, 이 부분은 오리지널로 이름을 부여해야 한다고 해서..."
페루루카의 말에 클레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그 의미를 이해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 이름이나 지으면 되잖아?"
"골렘의 이름은 그 골렘의 형태에도 영향을 주니까 신중해야 해. 페루루카, 진정하고 머릿속에서 강한 아군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그 이름을 부여하는 거야."
시프는 클레온의 말에 뭘 모른다는 듯이 이야기하며, 그녀에게 조언을 주었다.
"...그, 그러면... 크흠..."
페루루카는 그녀의 말에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알겠다는 듯이 크게 심호흡을 한다.
"그, 그대의 이름은. 클레온."
──
다음 순간, 금속 골렘의 눈 부분이 번쩍하고 빛나더니.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돼, 됐다! 골렘이 문제없이 움직여요!"
"그, 그렇네. ...그건 그런데, 방금. 그 골렘의 이름, 뭐라고..."
시프도 고개를 끄덕이긴 하지만 떨떠름한 얼굴로, 방금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페루루카에게 되물었다.
"크, 클레온이요..."
"... ..."
모두가 침묵에 빠졌다.
그레이만 빼고.
"굉장함다! 금속 골렘임다! 오토마타랑은 다른, 순수하게 마법으로 움직이는 물건임다!"
[그레이 진정하고 목소리를 낮춰라.]
그레이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헤르메스가 있는 펜던트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헤르메스가 말했슴까?"
[아니, 아니다. 방금 것은]
[나의 이름은 클레온. 그대들을 지키기 위해 연성된 메탈 골렘이다. 이 몸에 한계가 도래할 때 까지 그대들의 방패이자 검, 그리고 공성추가 되도록 하지.]
"골렘이 말했슴다...!"
"어 잠깐. 골렘이 말을 하는 게 당연하던가?"
시프도 그 광경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하지만, 페루루카는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스, 스승님의 골렘은 대부분 대화가 가능했어요... 메이드 같은 모습이어서 아침부터 밤까지 시중을 들었는데... 그동안 계속해서 스승님을 찬양하는 말을 했었죠..."
'크로울리... 여러모로 대단한 인물이군...'
감탄보다도 비꼼에 가까운 생각을 하는 클레온, 이내 자신과 같은 이름을 부여받은 골렘을 올려다보았다.
[나의 이름은 그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인가.]
"물려받은 것이라 해야 할까..."
"드, 든든한 아군의 모습이라길래 저도 모르게..."
페루루카는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왔다.
클레온은 그런 페루루카를 보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어쩔 수 없지."
[그래. 어차피, 이름보다도 중요한 건 나 자신의 역할이다. 다른 금속들도 모두 흡수하여 스스로를 보강하고, 천둥 군주 에딘을 쓰러트리는 것을 돕도록 하지.]
"역시 클레온임다!"
"그건 어느 쪽에게 하는 이야기야."
클레온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어느 정도는 에딘에게 대항할 수 있는 전력을 보강한 것이다.
그 때였다.
[창고 내 비정상적인 마력의 움직임을 감지. 해당 구역을 폐쇄하고 병력을 보냅니다.]
"... 눈치챈 것 같군. 격벽을 파괴할 수고는 덜었어."
프레이야가 활을 잡아들고, 그녀와 일행 모두가 전투를 준비한다.
"... 아멜리아. 이제 곧이야."
클레온은 각인의 너머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존재를 가까이에서 느끼며, 아론다이트를 뽑았다.
"가자. 모두들."
각자의 대답이 울려 퍼지면서, 문이 열리면.
그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는 에인헤야르들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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