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화 〉 저돌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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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올라서 위층의 통로까지 온 클레온은, 먼저 도착한 다른 일행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돌파전에 의해 마력과 체력을 어느정도 소모한 상태였지만, 모두 큰 문제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단 한 명을 빼면...
여전히 향상된 신체능력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듯이 제자리에서 아등바등 거리면서 몸에서 올라오는 마력의 잔향이 만들어내는 연기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아무리 봐도, 위험해 보이는 그 기술과 현상에 클레온은 약간의 불안을 느끼면서 입을 연다.
"그레이, 아니, 헤르메스. 그레이의 그 모습은 대체 뭐지?"
[고대의 기술력으로 만든 갑주를 착용한 거라 생각해라. 그보다, 골렘은 어떻게 됐지?]
"...골렘은 올라오는 녀석들을 막기 위해 스스로의 몸을 방패로 했다."
그 말을 들은 시프는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이름이 성격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네. 술자가 명령을 내리지 않더라도 그런 선택을 하다니 말이야. 어쩌면, 페루루카가 클레온에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투영된 걸수도?"
"어, 그, 그런 건가요? 응... 그런 걸지도..."
시프의 말에 페루루카는 조금 당황해 하면서도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나로 존재할 수 있도록 이름을 부여한 나의 소환사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
그 때, 클레온은 뒤쪽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들어 황급히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몸의 크기를 대부분 잃고 그레이보다도 작은 키가 된 골렘이 서서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왓, 작아."
시프가 깜짝 놀란 듯이 그런 목소리를 내자, 소환자이자 제작자인 페루루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설마 골렘이 이런 크기까지 작아질 수 있는지는 몰랐다는 눈치였다.
"설마, 스스로 다른 육체를 분리해서 벽으로 만들어놓고 온 건가...?"
클레온이 그렇게 질문하면 그레이는 감탄한듯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신기한검다...! 나중에는 3단 합체도 가능해지는 것 아님까?"
"아니, 지금 여기서 제일 신기한 건 너니까..."
시프의 그런 태클에 그레이는 헤헤, 하고 쑥스럽다는 듯이 웃으면서 자신의 콧등을 손가락으로 훔쳤다.
그레이의 모습을 바라보던 시프는 조금 질린듯한 헬쑥한 표정이 되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클레온에게 질문한다.
"응, 칭찬한 거 아니니까. 하아, 그래서? 이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해? ...그렇다 하더라도 통로는 올라온 곳을 빼면 대부분 막혀 있는데. 클레온의 동료 레이더는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 중이야?"
시프의 묘한 단어 선택에 무어라 형용하지 못할 느낌을 받은 클레온이었지만, 그녀가 말한 대로 주변은 두꺼운 격벽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강철의 격벽으로도 클레온과 아멜리아를 연결한 각인의 이끌림을 막을 수는 없었다.
"방향은 이쪽이야... 하지만 이 격벽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겠군."
클레온의 말을 듣고 일행이 모두 침묵에 휩싸이면, 이내 헤르메스의 목소리가 그들의 걱정을 지우려는 듯이 울렸다.
[이 요새의 제어 시스템이라면 잠깐이라도 침입할 수가 있다. 그레이, 벽 위에 손을 올려라.]
"또 침입임까! 역시 헤르메스는 약삭빠른검다!"
[그러니까, 그건 칭찬이 아니다.]
그레이는 으쓱거리는 어깨가 내려가지 않았다.
자신과 헤르메스가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클레온이 가리킨 방향을 막고 있는 격벽으로 다가간 그레이가 손을 슬쩍 올려놓으면.
블랙 아웃 슈트의 손가락 부분에 흐르는 마력의 흐름이 그대로 벽의 위를 달렸다.
그 벽의 안에 포함된 강철의 회로 안을 마구잡이로 휘저으면서.
헤르메스의 의지가 격벽을 지배하기 위해 퍼져 나가는 것이었다.
이윽고, '쿠궁'하는 진동이 울렸다고 생각하면 그 격벽이 위로 올라가며 통로를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저 여자아이가 함께한다면, 닫힌 벽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군."
프레이야의 말이 들리자 그레이는 후후하고 웃으며 자기만 믿으라는 듯이 허리에 손을 올렸다.
[열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회로로 제어되고 있는 기계의 벽이나 문뿐이다. 기계장치가 사용되지 않은 벽은 열 수 없어.]
"뭐, 그쪽은 힘으로 열어버리면 되는 검다."
"잠깐, 그레이. 문에서 떨어져. 너머에 뭔가 있어."
서서히 올라가는 격벽 너머에서 무언가의 기척을 느낀 클레온은 그레이에게 벽에서 떨어질 것을 이야기한다.
그레이도 자신의 뒤에 무언가가 서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인지 재빨리 벽에서 떨어지며 격투기의 자세를 잡아 격벽 너머를 경계했다.
그러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기계의 멧되지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보았던 다른 기계들과 다르게 황금색으로 빛나는 몸을 가지고 있었으며, 목에는 주렁주렁 진주로 된 보석의 장신구를 달고 있는 모습이.
솔직히 아름답다고는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 수정으로 만들어진 갈기를 보고 있자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보이기도 했다.
"... 새로운 오토마타인가, 질리지도 않고 내보내는군."
"질리지도 않는 것은 네 녀석들 쪽이다. 이 망할 침입자 녀석들!"
클레온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그 황금 멧돼지의 눈이 붉은색으로 빛나며, 안쪽에서 목소리가 났다.
걸걸한 남성의 목소리에 일행 전원, 특히 시프는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 목소리... 들은 적이 있어. 영역을 침범해왔던 병사 중에서 일부에게서 났던 목소리... 천둥 군주 에딘이야."
"거기 있는 다크 엘프는 그 창녀들의 영역에서 도망쳐 나온 녀석이로군. 어떻게 살아남았지? 영역의 지배자였던 족장이 가호라도 내린 건가?"
시프와 그녀의 동족들을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모욕한 에딘.
당사자인 그녀는 조금 표정이 차가워지며 손에 쥔 궁니르에 흑마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 ..."
"네 녀석이 어떻게 이 벽을 그렇게 쉽게 열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곳에 온 목적은 알고 있다. 내 목, 그리고 망치겠지."
멧돼지의 몸을 빌린 에딘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다른 이들의 고개는 끄덕여지지 않는다.
"어, 어라? 모두들 다른검까?"
"같다고 하더라도 목적을 알려줄 필요는 없지."
클레온의 말에 프레이야도 고개를 끄덕이면, 이내 페루루카는 법의 서를 뒤적이다가 눈앞의 멧돼지를 바라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저 멧돼지는 굴린이라는 에딘의 탈것이에요... 원래 살아있는 장수하는 멧돼지라 마법 생물로 분류됐는데, 그걸 에딘이 기계로 개조한 거라고 써 있어요."
"너는 그 잘난 체하던 마법사 녀석의 영역에서 온 거군. 뭐냐, 각 영역에서 한 명씩 살아남은 존재들인가. 그렇다면... 역시 네가 무언가 수작을 부린 것 같군, 미미르."
멧돼지를 통신기 대신으로 사용하고 있는 에딘의 곁에는 그 외에도 다른 사람이 있는 듯했다.
"미미르...?"
어째선지 그 이름이 걸렸던 클레온.
하지만 불행히도 멧돼지에게서는 에딘을 제외한 이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내 그 너머의 존재와 대화가 끝난 것인지, 멧돼지가 다시 클레온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흥. 뚫린 입은 막히지 않는 군. 뭐 좋다. 어이, 그쪽의 마검사 쭉정이 녀석."
"뭐지."
클레온이 짧게 대답하자, 그 건방진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멧돼지의 눈이 번뜩였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마. 만약, 네가 이대로 물러나주거나, 나의 편이 되어준다면. 네가 찾고 있는 계집을 풀어주도록 하지."
에딘의 말이 울리고 나면, 클레온도 다른 일행들도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레이는 물론 안된다는 듯 팔을 교차시켜서 X자를 만들지만, 특히 클레온의 곁에 있던 프레이야는 조금 긴장한 눈치로 클레온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금 상황을 보고 있자면 남은 영역들을 전부 흡수하여 추방 영역을 탈출할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은 에딘이었다.
만약 클레온이 그의 편에 붙는다면, 그 힘의 강함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프레이야도 알고 있듯이.
순식간의 자신의 고향도 불타오르리라.
"... ..."
클레온은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끼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내 지친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들 같은 족속이 자주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고 하는데... 그런 뒤에 나오는 말의 특징이 뭔 줄 아나?"
클레온의 말을 들은 에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클레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아주 높은 확률로 고려할 가치도 없는 제안을 한다는 거다. 조금 전의 네가 그렇듯이 말이다. 천둥 군주."
그의 그런 대답을 들은 프레이야와 그레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역시, 에딘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듯 했다.
자신의 제안을 클레온이 거절하는 것은 즉 자신과 대적한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이 세계의 지배자이자, 과거에는 대륙 전체를 호령하기 직전까지 갔었던 전설적인 드워프인 자신을.
멧돼지 굴린은 주인의 분노에 반응하듯이, 빛나던 눈에서는 이제 번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너희들 필멸자 인간들은, 하나같이 어리석고, 건방지고, 제 명을 스스로 재촉하는구나...! 상대와 자신의 힘의 차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네 실력은 알아보지 않아도 되겠군...!"
다음 순간, 굴린의 입이 열리면, 거기서 마치 나뭇가지처럼 퍼져 나가는 번개가 터져 나와 일행 전체를 덮쳤다.
하지만, 클레온은 마치 그런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마나 쇼크를 일으켜 분산하는 검은 번개로 에딘의 번개와 맞부딪힌다.
굴린을 통해 에딘의 놀란 표정이 보인 듯 했다.
크게 벌린 입과 같이, 눈을 크게 뜬 굴린.
그리고 대항하는 힘의 승부의 사이로 아론다이트를 손에 쥔 클레온이 질주했다.
굴린은 그 커다란 몸집에 걸맞지 않은 속도로 뒤로 물러나려고 하지만.
클레온은 손에 들고 있던 아론다이트를 던지더니, 검은 마력을 머금은 수정검은 회전하면서 날아가 굴린의 다리를 절단해 버렸다.
본래 생물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피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은 멧돼지의 다리.
에딘의 분노로 가득 찬 고함이 복도의 안에서 울려 퍼지지만.
클레온은 손을 뻗어 굴린의 머리를 붙잡고 크게 도약하여 녀석의 등 위에 올라탔다.
에딘의 손에 붙잡혀 개조당해, 지금까지 에딘이 전장을 누빌 때에 그 등을 빌려주었던 굴린의 등은.
수천년 만에 자신의 등에 에딘 외의 존재를 태운 것이 되었다.
하지만 클레온의 행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곧바로 자신이 손을 올려놓은 굴린의 머리에 대고, 마나 쇼크를 발동하여.
영거리에서 발동된 파괴 마법은, 장갑을 꿰뚫고 안쪽으로 들어가서 오토마토의 가장 핵심적인 부품까지 한꺼번에 일직선으로 파괴하는 것이다.
눈 앞을 어지럽게 만들던 흑백의 번개 줄기가 서로 뒤엉키면서 주변의 물건들을 파괴한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굴린 쪽의 번개가 멈추고, 눈의 안광을 잃으면서 땅으로 무너지듯이 쓰러지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클레온이 손을 뻗으면 그의 마력에 반응해서, 날아가 벽에 박혀있던 아론다이트가 클레온의 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클레온은 그 굴린의 안에서 마력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부분에 손을 박아넣고.
마치, 제비뽑기라도 하는 듯이, 그 파츠를 붙잡아 손을 강하게 빼내는 것으로 분리와 적출을 동시에 해내는 것이었다.
클레온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금이 가서 서서히 그 힘을 잃어가던 마도석이었다.
치직, 하는 노이즈가 섞인 목소리가 그 마도석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는 듯 했다.
클레온은 그 마도석을 들고 자신의 입 근처에 가져간다.
"들리나 에딘? 내가 거기까지 갈 때까지, 아멜리아에게 손가락이라도 하나 까닥했다간, 곧바로 네 녀석의 목을 날려 버리겠다."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클레온은 손에 힘을 주어 악력만으로 마도석을 박살 내 버렸다.
마도석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돌보다 훨씬 단단하단 것을 생각하면, 그의 분노가 꽤나 높은 수준까지 차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오~ 역시 클레온. 왕녀님의 기사님인검다."
그 모습을 보며 박수를 치는 그레이.
다만, 부숴져 버린 멧돼지의 몸은 조금 아쉽다는 듯이 쳐다본다.
"기사가 아니라 모험자야."
에딘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굴린마저 파괴한 것으로 조금은 화가 풀린듯한 클레온이 그렇게 대답하면.
어느샌가 가까이 다가온 페루루카가 멧돼지의 몸의 잔해를 살폈다.
"뭐하는 거야 페루루카?"
"아, 아뇨. 스승님이 안 쪽에 쓸만한 재료가 있으니 살펴보라고 하셔서..."
크로울리는 여전히 자신의 의지로는 겉 표면에 떠오르지 못하는 듯 했다.
"...아, 혹시 이거려나..."
그리고 페루루카가 손에 든 것은 처음 멧돼지와 마주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어울리지 않는 목걸이었다.
방금 전의 전투의 흔적으로 여기저기 그을려져 있었기에 악세서리로서의 가치는 현저하게 떨어졌지만.
확실히 아름다운 물건이라고, 클레온은 생각했다.
"어떻슴까?"
"이, 이건, 브리싱가멘 엔진이라고 해서... 목걸이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사, 사실 거기에 더해 장착자의 수명을 무리하게 늘려주는 장치야."
클레온은 멧돼지 따위에게 그런 물건을 맡기는 에딘의 감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 브리싱가멘은... 어떻게 할 거야? 역시, 파괴가 답인가?"
"그, 그렇지 않아요. 잘못된 사용법이 아닌 올바른 사용법을 통하면... 더 많은 힘을 얻어낼 수 있을 거에요."
브리싱가멘을 손에 쥔 채 페루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클레온은 멧돼지가 죽은 방향에서 시선을 돌린 채, 일행 전부를 되돌아보았다.
"걱정하지마 모두들. 나는, 천둥 군주의 부하 따윈 되지 않으니까."
"제발 그러길 바래."
클레온을 비꼬는 그 모습은 평소에 프레이아의 그리 다를 바는 없었다.
하지만, 클레온은 그녀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 다시 출발하는검다!"
그레이가 호령을 외치면 모두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조금 더 윗층. 에딘의 분노가 누구에게 작렬하는지를 알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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