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305화 (305/506)

〈 305화 〉 용의 의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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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온의 손끝이, 푸른 비늘의 갑주에 닿은 순간.

아멜리아의 안에 있는 백룡은 자신과 클레온이 이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결과 자신이 빙의한­ 아니 강제로 빙의 된 아멜리아의 시야가 안대를 통하여 보는, 왜곡된 시야가 아닌.

그녀가 가진 영혼의 시야를 통해 자신에게 닿은 인간의 존재를 눈치챘다.

그리고 동시에, 그가 가진 반지에서 느껴지는 아주 친숙한 느낌.

[이 따스한 느낌은... 세계수의... 그리고, 동족의 마력...?]

영혼이 느끼는 시간의 감각은, 물질적인 세계의 시간보다도 빠르게 흘러간다.

두 영혼의 교감이 시작되었을 때 주변의 시간은 마치 멈춘 것 처럼 정지해 버렸고.

오직 클레온과 백룡만이 인지할 수 있는 교차하는 영혼의 지점.

아멜리아의 등에서, 흰색의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그것은 서서히 인간의 형체를 갖추었다.

땅까지 내려오는 긴 백발을 지닌, 아름다운 여성은 뾰족한 귀와 동시에, 머리에는 부러진 뿔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등에서 자라난 꺾인 날개와 몸 곳곳에 보이는 흰색의 비늘.

그것이 아멜리아에게 빙의한 백룡이라는 것을, 클레온은 그 모습을 보고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백룡, 아스테로페테스...!"

클레온은 전승 속에 존재하는 그 이름을 불러, 그녀의 의식을 자신에게 향하게 했다.

아스테로페테스의 눈은 감겨 있었지만, 그 목소리를 듣고 클레온의 방향을 바라본다.

"인간의 목소리... 오랜만에 듣는 노성이 아닌, 평범한 목소리로군요."

에딘을 향해 증오의 울부짖음을 계속하던 그녀와는 정 반대의,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당신에게서는 저와 닮은 영혼의 조각이 느껴집니다. ...그것도 두 개나. 말해보세요, 당신은 누구이고 어째서 저와 이런 접촉이 가능한 것이죠?"

아스테로페테스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동시에 단호하기도 했다.

대답여하에 따라선, 자신과 마주한 클레온의 영혼을 찢어발기는 것도 고려하는 듯했다.

그녀는 이미, 필멸자에게 자신의 영혼을 빼앗긴 기억이 있었다.

눈 앞의 남자­ 흑마의 일족의 마검사가 에딘과 같은 존재라면 이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나는... 클레온. 당신과 같은 세계에서 왔어. 내가 당신과 접촉을 할 수 있었던 건, 이 반지 덕분, 이라고 생각해."

그 외에도, 위그드라실의 도움이라던가.

그렇게 클레온이 덧붙이면 아스테로페테스의 한쪽 눈이 조금 띄어졌다.

그녀의 눈은 마치 맹목인 사람 처럼 초점이 흐릿한 백색의 눈이었지만.

마치 기척을 쫓듯이 시선이 돌아가며 클레온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용의 반지를 향했다.

"분홍색, 하얀색, 그리고 붉은색의 마력이 느껴지네요. ...세 마리의 용의 영혼의 조각이 결정화된 보석이군요."

"그래 맞아. 나는 그녀들과 연을 맺어서, 이 반지를 받았어. 이 반지는­"

"감응자를 위한 것이로군요. 당신이 어느 시대에서 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의 후예들은 재밌는 것을 생각해 낸 듯합니다."

아스테로페테스는 클레온의 이야기를 자르며, 자신이 분석한 결과를 입에 담았다.

클레온도 그녀의 말이 맞았기에 고개를 끄덕일 뿐 그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판단하는 것은, 그녀의 몫이었으니까.

"당신은 용의 감응자. 우리들 용과 맺어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간이라는 것인가요?"

"그렇다는 것 같아. ...여전히 실감은 들지 않지만­ 그것보다. 지금 당신이 어떤 상황인지는 알고 있어?"

클레온의 말에 아스테로페테스는 눈을 감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잊을 수 없군요. 에딘의 요새, 그 공방의 안. 처음으로 그 드워프와 만났던 곳은 바로 이곳이었죠. 드워프들의 군세가 인간과 자연신들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하여, 자원을 수탈하고 땅과 산을 황폐화했습니다. 저는, 에딘에게 그만둘 것을 전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었죠."

"...그렇다면, 당신은 그때 에딘과 싸운 건가?"

클레온의 질문에 백룡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그 때는 저도, 그와 싸울 생각은 없었습니다. 에딘도, 요새의 안에서 제가 본래의 모습을 취하면 요새가 무너질 것으로 생각한 지, 일단은 알겠다고 거짓말을 해서 저를 돌려보냈죠."

그 뒤, 에딘은 아스테로페테스를 쓰러트리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백룡의 뇌격을 견뎌낼 수 있는 갑주를 만들고, 그 뇌격을 집어삼켜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망치도 만들었다.

자신 휘하의 병사들에게도 같은 갑주를 나누어 주었고, 모험가들을 부추겨서 아스테로페테스의 둥지를 찾아내게 했다.

당시, 아직 하늘을 날지 못했던 에딘의 요새 발할라는 비록 하늘을 날지 못하더라도 지상을 이동할 수 있는 이동 요새였다.

에딘은 찾아넨 아스테로페테스의 둥지로 찾아가, 그곳을 포위하고 포격을 개시했다.

다른 용들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속전속결로 끝낼 생각이었던 에딘은, 병사들의 죽음을 되돌아보지 않고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어차피, 용을 죽이면 자신이 잃은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다는 계산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스테로페테스의 패배에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은, 바로 그녀의 알이었다.

아스테로페테스에게는 오래전에 죽은 감응자가 있었다.

그 감응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한 쌍의 알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불리한 지형에서 싸우는 것을 마다치 않았으며.

드워프들이 알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고, 스스로 방패가 되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 맞이한 것은 자신의 죽음이었다.

뿔이 부러지고, 심장을 도려내 지고, 날개를 꺾인 뒤, 비늘이 벗겨졌다.

자신의 알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부분만큼은, 아스테로페테스도 알지 못했다.

그저, 드워프들을 향한 증오만을 간직한 채, 그녀의 목숨은 끊어졌다.

백룡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그 증오와 분노를 견디지 못하는 듯이 주먹을 쥐었다.

날카로워진 손톱이, 영체임에도 피를 손바닥에서 피를 흘러나오게 하였다.

"에딘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를 죽여야만 해요. 제 손으로..."

"... 이해해, 그 복수심은, 정당한 거야. 당신에게는 마땅히, 그걸 이룰 자격이 있어."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백룡의 심정을 이해했다.

"하지만, 네가 빙의한 소녀는 거기에 휘말려 죽어가고 있어."

"... ..."

클레온의 말에 백룡은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클레온을 향한 채 멈춰있는 아멜리아의 모습을 보았다.

"저의 비늘로 만든 갑주­ 저의 영혼과 저주가 함께 새겨져 있는 이 물건을 입은 이들은, 저의 증오를 빌려 싸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오직 에딘만을 향하죠."

"... 하지만 너는 나를 공격했어."

클레온의 말에 백룡은 조금 미안한 듯한 표정이 되어, 아멜리아의 눈에 씌워진 안대를 가리켰다.

"아무래도, 저 안대가 시야에 환각을 씌워서 모든 살아 움직이는 것을 에딘으로 보이게 하는 것 같군요."

클레온 역시 그 안대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종의 저주와도 같은 마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 안대보다도, 푸른 비늘의 갑주에서 느껴지는 어두운 마력이 더 강해서 상대적으로 안대의 마력이 묻혀있었지만.

"그렇다면 그 안대를 파괴하면 되는 건가."

"아뇨, 안대는 저의 저주를 빨아들이는 것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제 의지가 이 세계에 남아있는 한, 저 안대를 파괴하는 것은 결국 그 장착자에게도 커다란 고통과 육체적인 상처를 남길겁니다."

백룡의 말에 클레온의 몸은 움찔하고 멈추었다.

역시, 이대로 가다간 아멜리아가 크게 다치는 결말만이 남아있다는 건가.

클레온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서서히 끝이 다가오는 이 영혼의 교감의 제한시간에 초조함을 느낀다.

그 때, 백룡은 클레온의 손을 붙잡아 그 반지를 살폈다.

"...이 반지의 힘을 쓰면, 이 소녀를 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용의 반지의 힘을...?"

아스테로페테스가 고개를 끄덕이면 그녀는 이야기한다.

"이 반지에 담긴, 용의 영혼을 정제하는 힘을 사용해서 제 영혼을 보석의 형태로 정제하는 거에요. 그러면, 제 비늘에 남아있는 저의 사념은 모두 사라질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렇게 하면 그녀의 영혼은 완전히 소멸하여 그 힘만이 남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원하던 에딘을 향한 복수를 스스로 이룰 수 없게 될 것이다.

"저의 증오가 에딘 외의 누군가를 상처입힌다면. 저 스스로를 멈춰야 할 필요가 있겠지요."

백룡은 각오가 되어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반지의 위에 손을 올렸다.

"저는 제 감응자와 그리 긴 시간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저의 감응자는 저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일찍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죠. ... 이 반지를 가진 당신이라면 그런 일은 없을테니..."

그리고 반지가 끼워진 클레온의 손을 꼭 붙잡아 주었다.

"부디 그녀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해 주세요."

"...물론이야."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스테로페테스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다음 순간, 그녀의 몸이 서서히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그녀의 영혼은 그대로 보석으로 정제되기 위해 존재가 옅어지고 있었다.

'나의 아이들... 만약, 살아있다면 부디 싸움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모든 종족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기를...'

그런 그녀의 바람에, 어째서일까.

용의 반지에 박혀있던 두 보석­ 분홍색과 흰색의 보석이 반짝하고 빛을 내는 듯 했다.

"...이건­"

아스테로페테스는, 그 순간 반지를 통해 흘러들어온 기억을 느꼈다.

그리고­ 조금 슬픈 얼굴이 되었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거였군요. ...당신이, 두 아이의..."

"... ...?"

클레온은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비록, 당신의 세계에는 아직 싸움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싸움을 멈추는 힘을, 그 아이들과 당신은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스테로페테스의 몸은 거의 완전히 투명해지면서, 그 자리에는 정제된 듯한 뿔의 형태를 한 보석만이 자리에 남았다.

백룡의 영혼이 사라지면서, 멈추었던 시간은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고­

육체의 시야로 되돌아온 클레온이 재빠르게 아멜리아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멜리아!"

"클, 레온..."

백룡의 주박으로부터 벗어난 아멜리아가 힘겨운 목소리를 내었다.

비록, 아스테로페테스는 사라졌지만, 그 사이에 갑주가 빨아들이던 그녀의 마력도 생명력도 되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치유 마법을..."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며 위그드라실의 마법을 다시 한 번 빌리려 했지만, 쿨럭 하고 자신의 입에서도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큭... 너무, 무리했나...!'

갈라테아의 마력 제어의 보조가 없는 지금, 각인을 통해 타인의 힘을 빌려 오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위그드라실은 클레온과의 거리도 멀뿐더러 인간이 사용하기에는 너무나도 진한 농도의 대지의 마력이었다.

방금 전의 마력 사용이 클레온에게도 한계였다는 듯이 흘러나온 피를 닦으면서도 다시 한 번 회복 마법을 사용하려 했을 때.

"이, 이제 무리임다!"

그레이의 그런 목소리가 들리더니 묠니르를 막아주고 있던 무기들이 깨져나가면서 묠니르가 다시 한 번 시프를 향해 날아갔다.

[몸을 움직일 수가...]

골렘 역시, 박살 난 팔다리로는 움직이는 것이 한계라는 듯,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페루루카는 물론이었고, 그레이는 제어하던 무기들이 깨져나간 반동 때문에 몸이 잠시 굳어있었다.

그렇다면­

"...미안, 아멜리아! 조금만 더 기다려 줘!"

"클레온...?"

클레온은 시프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녀가 묠니르에 맞게 되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뇌격을 멈출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묠니르에 의해 머리가 깨져서 죽을 것이 분명했다.

"잠깐, 클레­!"

시프도 클레온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것을 본 것이겠지.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클레온도 자신만큼이나 경장이었다는 것과.

그의 몸상태도 거듭된 전투와 무리한 마력 사용 때문에 엉망진창이었다는 것.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번개가 터져나갔다.

맞은 것은 물론, 클레온이었다.

다행히라면 머리와 같은 급소 부위가 아닌, 팔을 들어서 막아냈다는 것.

"──!"

얼마만에 겪는지 모를 격통이 그의 팔에서 느껴졌다.

"클레온!"

누구의 것인지 모를 비명이 터져 나왔다.

뼈가 작살이 난 클레온의 팔, 그는 낙법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땅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다행히, 시간을 번 일행은 그레이가 뛰어와 묠니르를 블랙아웃 슈트로 쳐내는 것으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페루루카가 주변에 부서져서 주변에 흩어진 장비들을 골렘의 몸에 이어 붙이는 것으로 골렘을 수복해내서 머리에서 떨어지는 벼락을 틀어막게 했다.

"아멜리아! 정신이 드는 검까?"

묠니르를 쳐낸 그레이가 재빨리 아멜리아에게 다가가면, 아멜리아는 여전히 안대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목소리를 따라 그레이 쪽을 돌아보았다.

"네, 네... 그보다, 클레온이..."

"다치긴 했지만 살아있슴다! 아멜리아도 이쪽으로 오는 검다...!"

그레이는 그런 아멜리아를 부축해서 골렘이 지키는 벽 뒤로 온다.

"어, 어떻게 하지. 다시 스승님을 불러내야 하나..."

[의지를 약하게 하지 마라. 그렇게 되면, 그가 네 몸을 다시 완전히 지배하려 할 테니.]

페루루카에게 헤르메스가 조언하고, 골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아, 묠니르로 그 몸을 다시 한 번 부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클레온, 괜찮아?"

움직임이 자유로워진 시프가 클레온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살피면 출혈은 없었지만, 그 안의 뼈들이 산산조각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아... 고통은 있지만... 괜찮아."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데...! 이 팔로 더 싸우는 건 무리야...!"

아직 정신을 잃은 채인 프레이야의 회복마법을 쓰더라도 이 팔을 완전히 복구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야말로, 성녀급의 치유술을 가진 성직자라도 없는 이상은.

"나는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아멜리아를 봐 줘... 비늘의 갑주에 생명력이랑 마력을 너무 많이 빼앗겨서... 위험한 상태야."

"아멜리아, 몸이 너무 가볍슴다...!"

그레이도 아멜리아를 부축하면서 그녀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것인지 표정이 창백해져 있었다.

"헤르메스... 그녀의 안대를 제어해서 벗겨 내 줘."

[그것도 기계장치인가. 알겠다. 그레이, 안대에 손을 올려라.]

그레이는 재빨리 아멜리아의 안대에 손을 올렸고, 헤르메스가 그녀의 안대에 침투하여 그 안대의 잠금장치를 벗겨 냈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아멜리아의 얼굴에서 안대가 떨어져 나가면, 짙은 눈그늘이 생긴 채, 핼쑥해진 표정으로 아멜리아가 눈을 깜빡였다.

빛이 들어오는 것에 익숙해져 가며, 쓰러진 클레온에게 시선이 향해지면 아멜리아는 힘겹게 클레온 쪽으로 다가가려 하는 것이었다.

"클레온, 죄, 죄송해요... 나, 때문에..."

"괜찮아... 괜찮으니까. 진정하고, 잘 들어... 에딘을 쓰러트리려면, 모두의 힘이 필요하니까."

클레온의 말에 아멜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각인을 통해서 내게 남아있는 마력과 체력을 대부분 너에게 넘겨줄 거야."

"하지만, 그런 짓을 하면 클레온은­"

"하하... 이 팔을 고치지 않는 한, 나는 전력이 못 돼..."

클레온의 자조하는 듯한 말에 아멜리아는 주먹을 꼭 쥐며 슬픈 얼굴을 했다.

"죽는 게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조금 쉬면 나을 수 있어."

아멜리아는 다시 한 번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하지만 저는... 클레온만큼 잘 싸울 자신이 없어요... 성령의 힘이 없는 곳에서의 저는... 세인트 프린세스도 뭣도 아닌걸요..."

망치를 빼앗기고, 몸을 조종당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무력함을 깨달은 아멜리아는, 육체와 함께 의지도 상당히 나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클레온은 고개를 젓는다.

"너는 강해. 성령의 힘은 그저, 너를 도와주는 힘일 뿐. 그걸 다루는 건 네 능력이야."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면서, 아멜리아의 손에 부러지지 않은 자신의 손을 얹었다.

그러자, 각인을 통해서, 아멜리아는 서서히 잃어버렸던 마력과 생명력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것과 함께, 사라진 상태였던 손의 감각이 돌아오면 자신의 손에 쥐어진 무언가의 감촉이 있었다.

그것은, 순수한 마력으로 만들어진 결정.

서리 여왕의 옥좌 뒤에서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혼이 물질화된 물건.

바로, 백룡 아스테로페테스의 뿔의 보석이었다.

아멜리아는 언젠가 오렐리아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세인트 프린세스란, 아멜리아와 아멜리아의 일족이 가지고 있는, 마력 결정을 매개체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일족의 전사.

성령의 힘을 가장 잘 끌어낼 수 있도록 가공된 성스러운 날개의 펜던트처럼, 어떤 마력이라도 그 매개체의 힘을 빌릴 수 있다면 상식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아멜리아는 돌아온 힘과, 손에 쥐어진 용의 뿔을 내려다보았다.

그 때, 생각보다도 잘 버티고 있는 골렘을 바라보던 에딘은 짜증 난다는 듯이 옥좌에서 일어났다.

백룡의 갑주고 날뛰는 것을 멈춘 듯하고, 남아있는 무기들은 모두 흡수당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클레온과 프레이야라는 적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전사 둘을 무력화시키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일까.

에딘은 전혀 자신이 패배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직접 움직인 것은.

이 짜증 나는 싸움을 슬슬 끝내기 위해서였다.

묠니르의 자동타격 능력을 사용해봤자, 사용자인 자신의 손에서 떠난 상태로 싸우면 그 위력은 3분의 1도 채 되지 않았다.

역시, 도구는 주인의 손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법이었다.

옥좌에서 내려와, 역장의 바깥으로 걸어나온 에딘의 손에 묠니르가 되돌아왔다.

"날 여기까지 귀찮게 하는 것은, 너희가 처음은 아니다만..."

에딘의 손에서 빙글, 하고 돌려진 묠니르.

어째서일까, 조금 전 보다 훨씬 강력한 뇌전을 두른 채였다.

"이 싸움은 전혀 날 즐겁게 만들지 않는군. 너희들이 너무나도... 질기고, 짜증나는 벌레 녀석들이어서 말이다."

에딘이 다음 순간, 직접 휘둘러 골렘을 내리치면.

골렘은 그 부분이 마치 비스킷으로 만들어진 듯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 ...]

골렘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핵 부분만을 남긴 채로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골렘이 가리고 있던 일행의 모습이 드러나면.

에딘은 아멜리아의 눈에서 안대가 사라진 것을 보았다.

"뭐지? 백룡의 주박에서 벗어난 건가?"

"에딘...!"

시프와 그레이가 클레온과 아멜리아를 지키듯이 가로막았고.

페루루카도 저주를 쓰기 위해 마력을 소환하면.

다음 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이 세 사람을 그대로 그 자리에서 굳게 만들었다.

"멍청한 녀석들... 상대방과의 역량의 차이도 채 눈치채지 못한다니. 나는 이 영역의 군주. 지배자이자 신이다. 너희 따위가 나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나? 이 힘은, 드래곤에 필적한단 말이다!"

그렇게 크게 호통을 치면서 웃어젖히는 에딘.

클레온은 아멜리아의 손을 놓았고.

아멜리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에딘을 바라보았다.

"네 녀석도 더는 쓸모가 없어졌군... 잘됐다. 쓸모가 없어진 도구는 폐기 처분해야겠지."

에딘이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도 벼락을 내리치면.

아멜리아는 그에 맞추어, 자신이 손에 들고 있던 뿔을 치켜들어 거기에 벼락이 쏟아지게 했다.

뿔은 마치, 보호막처럼 작동하며 아멜리아의 몸을 번개로부터 지킨다.

아니, 오히려 그 번개를 흡수하더니 두근, 두근 하고 맥박 하기 시작했다.

"저는─ 당신을 용서하지 않아요. 제 동료와 소중한 사람을 상처입혔고... 신하와 백성들을 도구 취급하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슬픔을 안겨준 당신을...!"

"뭐라고...?"

다음 순간, 그런 아멜리아의 의지에 반응하듯이 그녀의 손 위에서 백룡의 뿔이 크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아멜리아 칼데아리스... 세인트 프린세스의 이름으로. 왕국­ 아니, 저의 소중한 모든 것에 위협이 되는 당신을 쓰러트리겠습니다!"

그리고, 뿔의 빛은 이윽고 아멜리아를 집어삼켰다.

그녀의 몸에 걸쳐져 있던 푸른 비늘의 갑주에서­ 더럽혀진 푸른 색이 벗겨져 나가며.

순수한 백색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아멜리아의 손에는 용의 머리를 본뜬 듯한 거대한 전투망치가 쥐어지면서.

마력으로 이루어진 날개와 꼬리, 그리고 뿔이 그녀의 몸에서 자라난다.

이윽고, 아멜리아는 새로운 형태의 세인트 프린세스로 변신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 뭐냐, 그 힘은..."

"인연의 힘입니다...! 당신을 쓰러트리기 위한!"

호기롭게 외치는 아멜리아가, 망치를 들고 에딘을 향해 뛰어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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