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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308화 (308/506)

〈 308화 〉 낙하

* * *

000

스테인드 글래스로 달빛이 흘러들어오는 신비한 분위기의 대성당.

거꾸로 매달린 십자가가 땅에 박혀 있었고, 그 앞에는 성당에는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옥좌가 놓여 있었다.

"...상당히 재밌는 싸움을 벌이고 있네."

죽음의 옥좌에 앉은 채, 한쪽 손으로 우아하게 턱을 괸 죽음의 여신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왼쪽 눈은, 마치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듯이, 초점이 맞지 않은 채로 공허한 보랏빛을 띄우고 있었지만.

그녀의 다른 쪽 눈은 붉은색으로 빛나며, 감정이 없어 보이던 가면을 뒤집어쓴 얼굴에 조금이나마 생기나 감정 같은 것을 더해준다.

또한, 갑주를 벗은 그녀가 몸에 걸치고 있는 검은 실크 드레스의 옷감이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창백할 정도로 흰색 피부가, 그녀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이! 몸의 재생이 끝났어! 빨리 아까의 계속을 하자!"

그때, 그녀가 있는 옥좌의 방의 문이 강렬한 화염에 의해 터져 나간다.

그리고 들어온 것은, 죽음의 여신에 의해 몸이 잘려나갔던 불사의 화염 전사. '무스'이다.

정령이면서, 동시에 언데드의 성질을 가진 그녀는 언데드의 왕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역에서 죽음을 맞지 않으며 몇 번이고 부활한다.

불씨라고도 할 수 있는 그녀 본인의 핵이 남아있는 한.

"또 문을 날려버렸네. 수리하는 아이들에 관한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구나."

죽음의 여신은 그런 무스의 태도에 질린다는 듯이 보라색 쪽의 눈을 감았다.

"아까도 말했잖아? 이제 곧이라고. 재밌는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네가 망쳐버렸어."

"싸움...? 싸움이라고!? 드디어 그 망할 가면 녀석이 움직인 거냐!? 그렇다면 내가 나서야 할 차례잖아!"

무스의 전신에 붙어있던 화염이 커다랗게 타올랐다.

그녀의 핵과 사슬로 연결되어있는 단검이, 그 불꽃에 호응하듯이 빛나는 듯했다.

"진정하렴 무스. 예언자와 약속한 시간까지는 아직 조금 남아있으니. 내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몸을 다시 망가트리지 않도록 얌전히 있어."

"아아 젠장! 빌어먹을! 지금 당장에라도 누군가를 베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다고! 싸움이 있는데 뛰쳐나가질 못하다니...!"

무스의 강박증에 가까울 정도로 타오르는 투쟁 본능에 죽음의 여신은 무표정하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땅바닥을 뚫고 솟아오른 거대한 해골의 손이 무스를 붙잡아서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젠장! 이거 놔!"

"너는 귀중한 상품이야 무스. 그 예언자와의 거래에 사용될."

그녀의 말에 무스는 으르렁 대는 것을 멈추지 않고 오히려 죽음의 여신을 노려보았다.

"네가 만약 그대로 에딘의 영역에 쳐들어갔으면, 이 기회가 올 때 까지 살아남지 못하고 그 요새의 보조 동력원 정도로 쓰였겠지."

끊임없이 열과 불을 발생시키는 존재라니, 번개를 만들어내는 에딘의 다음으로 효율이 높은 배터리가 아닌가.

"자, 내가 보던 것을 같이 보여줄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렴."

그 다음­ 그녀가 한 것은, 가면을 벗고 자신의 왼쪽 안구에 손을 가져가더니­ 그것을 붙잡아 뽑아 보였다.

그것이 진짜 안구가 아닌, 흑마력의 수정으로 만들어진 가짜 안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충격적인 비쥬얼에 무스는 '으윽'하고 싫은 소리를 내버리고 말았다.

사람을 찢어 죽이고, 씹어먹을 수 있을 정도로 난폭한 그녀였지만, 산채로 눈을 뽑는 취미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가면을 쓴 그녀가 수정을 강하게 쥐면, 마치 진액과도 같은 보랏빛의 액체가 흑마력의 수정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진액은 서서히 뭉치고, 또 형태를 바꾸더니 거대한 거울이 되어.

무스와 죽음의 여신, 두 사람의 앞에 먼 곳­ 천둥 황야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전투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식물로 된 켄타우로스, 거대한 망치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휘두르는 소녀, 커다란 마도서를 품에 쥔 채 골렘을 타고 날아다니는 마법사.

눈동자에서 신비한 빛을 내며 창을 휘두르는 다크 엘프, 그리고 몸의 절반이 침시된 채로 손에 든 흰색 돌에서 힘을 빌려 마법을 행사하는 예언자.

검은 색의 특이한 옷에 몸을 감싼 채, 요리조리 뛰어다니는 은빛 머리의 소녀.

"저 녀석이 그 가면 녀석이군."

무스는 단번에 그 정체를 알아보고, 싫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무너져 내리는 발할라의 잔해 위를 뛰어다니면서, 거대한 기계의 마신과 싸우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무스는 싸움의 흥분을 다시금 불태우려고 하고 있었다.

"... ..."

그 때, 여신의 시선이 한 인간에게 멈추었다.

바로, 부러진 검을 들고, 한 쪽 팔이 성하지 않은 채 힘겹게 싸우고 있는 흑마의 일족이었다.

"뭐야 저건... 꼴사나운 녀석이 하나 껴있구만."

무스도, 그의 모습을 본 것인지 코웃음을 치며 비웃었다.

그러자­ 꽈아아악 하고 쥐어지는 느낌과 함께 무스를 잡고 있던 해골의 손의 악력이 강해지는 것이었다.

"어, 어이! 나를 터뜨릴 생각이냐!? 그러면 재생까지 몇 시간이나 걸려버린다고!"

심상치 않음을 느낀 무스가 재빨리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면, 그녀가 말한 대로 무스가 펑하고 터져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머리부터 발끝 까지 완벽하게 재생하는 것이 가능하다지만, 그래서는 예언자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그런 무스의 항의에, 죽음의 여신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는 듯이 눈을 깜빡이며 그녀의 몸을 강하게 쥐던 해골의 손을 조금은 느슨하게 해 주었다.

그러면 무스도 살았다는 듯이, 캑캑하고 기침하면서 여신을 흘겨보는 것이었다.

"또 뭐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거야?"

"...별로, 그런 것은 아니야. 그보다,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고 네가 좋아하는 전투의 구경을 하도록 해."

여신은 그렇게 말하면서 앉아있던 옥좌에서 일어나 그 뒤로 돌아갔다.

"뭐야, 너는 보지 않는 거야?"

"흑수정의 환영은 물리적인 시야로 보지 않더라도 나에게 흘러들어와. 걱정하지 말고 조용히 하렴."

무스는 죽음의 여신에게 들리지 않도록 '재수 없네 진짜' 같은 말을 흘렸고.

죽음의 여신은 그런 무스의 말을 들었다고 해도, 굳이 신경 쓰지 않은 채 옥좌의 뒤에 있는 역십자를 향해 걸어갔다.

무너져내린 천장에서 떨어져, 썩은 나무로 된 바닥을 꿰뚫고 틀어박힌 그것에는 오래된 핏자국과, 아직 살아있는 것인지 조금은 꿈틀대고 있는 살점들이 보였다.

그녀의 허리춤에서 은제 레이피어가 뽑혀 나와, 그것들을 썰어버리고 나면.

이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이 영역을 만들기 전의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에 관한 것을 떠올려보려 하지만.

역시, 풍화된 기억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 ..."

침묵과 함께, 조금 전 보았던 수정검의 검사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자신이 그를 알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그 기억과 추억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잊고 있었음에도 갑자기 찾아온 갈증에 목을 쓰다듬었다.

반짝이는 송곳니 한 쌍이, 입안에서 반짝거렸다.

001

강렬한 뇌전의 창이 일행을 덮친 순간, 일행을 구한 것은 골렘이었다.

이미 메탈 골렘이라고 해야 할지도 의문인, 거대한 손 모양이 되어버린 골렘이 일행 전부를 빠르게 붙잡아서 뇌전의 창의 범위에서 일행을 벗어나게 한 것이다.

"휴, 휴우..."

페루루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 골렘에게 비행능력이 더해진 것만으로도 상당히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서리 여왕님이 주신 망치를 찾아야 해요!"

아멜리아의 말에 그레이가 주변을 둘러보면, 낙하하는 잔해 속에서 푸른 빛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저거 아님까!?"

"맞는 것 같아요...!"

아멜리아는 자신의 등에 있는 용익(?)의 힘을 믿고 그대로 골렘의 손에서 뛰어내리더니 활강­ 아니 비행에 가까운 묘기를 보이며 잔해의 사이를 날아가 망치를 잡았다.

다음 순간, 비행을 계속하던 골렘의 몸이 흔들거리더니 그대로 파편 중 일부가 떨어져 나간다.

"마, 마력이..."

알레이스트가 부여한 마력이 다 되자마자, 페루루카의 마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골렘.

그러면, 시프와 클레온이 동시에 팔을 내밀었다.

"피를 마시면 되는 거지? 클레온은 지금 환자니까 내 쪽을 마셔."

"... ..."

시프의 말에 클레온은 아무 말도 못했지만, 페루루카는 시프와 클레온 두 사람을 조금 번갈아 보더니­

이내, 클레온이 뻗은 팔의 손가락 끝을 깨물어 거기서부터 피를 흡수했다.

"죄, 죄송해요. 역시, 마셔본 피가 제일 익숙할 거라 생각해서..."

피를 마셔 머리가 조금 하얘진 페루루카는 시프를 향해 그렇게 사과했다.

"어머니 밥상도 아니고, 익숙한 맛이 제일이라는 건가...?"

시프는 그런 말을 하다가, 이내 아멜리아가 망치를 회수하여 골렘의 위로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는 카시우스를 봤다.

"네 말대로라면, 묠니르의 힘은 아마 저 거신의 신체­ 각각에 퍼져 있겠지.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마력 기관'이 말이야."

시프의 말에 카시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심장을 파괴하면 된다는 검까?"

인간이 가진 마력을 제어하는 기관, 그리고 전신에 마력을 흘려보내는 기관은 역시 술식이 새겨지는 '심장'이었다.

그레이도 그것을 알고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겠지.

실제로, 거신의 몸은 심장에서 가장 강력한 마력 반응이 느껴졌으며, 그 부분에서 푸른색의 빛을 발광하고 있는 것이 딱 보아도 그 거신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니, 심장은 가장 마지막이야. 그곳에 묠니르가 있으니까."

하지만 카시우스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그레이의 말을 부정했다.

"확실히 심장을 부술 수 있다면 무력화시킬 수 있겠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묠니르를 직접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해. 그러니까, 거신의 다른 마력 기관을 파괴하는 거지."

"다른, 마력 기관?"

그레이가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면 목에 걸려있던 헤르메스가 대신 대답한다.

[인간의 마력 기관은 심장뿐만이 아니다. 전신에 마력이 흘러다닐 수 있도록, 각각의 신경계가 마력기관의 역할을 대신하지. 우수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일수록, 이 부위의 능력도 강하다. 정수리, 미간, 목, 배꼽, 단전. 이렇게 다섯 군데가 심장 외에 마력 기관이 깃들어있는 부위이다.]

헤르메스의 말에 클레온은 거신을 바라보며, 마력시를 활성화한다.

그러면, 그가 말한대로 그 거신의 몸에 흐르는 마력의 흐름이 덩어리를 만드는 부위가 눈에 들어왔다.

"저곳을 쐐기의 힘으로 공격해서 파괴하면 된다는 건가."

"그래. 그리고 마지막에 심장이지."

카시우스의 말을 들은 일행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모두 똑같았다, 한 번에 한 곳을 노린다면 에딘은 쉽게 대처할 것이다.

그렇다면 완벽하게 일치하는 타이밍이 아니더라도, 동시에 여러 곳을 노릴 필요가 있었다.

클레온과 프레이야는 거신의 자기력에 의해, 그 주변에 떠 있는 잔해를 향해 뛰어내렸다.

시프는 그레이와 함께 궁니르를 빗자루 삼듯이 날아올라 머리 쪽으로 향했고, 남은 것은 카시우스와 아멜리아였다.

아멜리아는 용익을 다시 한 번 펼쳐 골렘에서 뛰어내리기 전 카시우스 쪽을 돌아보았다.

"...카시우스 전하. 전하의 예지 능력은 이 미래를 본 것이겠죠...?"

아멜리아의 말에 카시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들은, 이길 수 있나요? 모두, 무사한가요?"

아멜리아의 말에 카시우스는 잠시 침묵했다.

"너는 내가 만약 패배한다고 한다면... 포기할 거니?"

"...아뇨."

"그렇다면 예지의 결과를 아는 것만큼 무의미한 것은 없단다. 말했잖아. 나의 예지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보는 것이라고. ...진실된 미래는 스스로의 손으로 쟁취하는 법이란다."

카시우스의 말에 아멜리아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가­ 이내 조금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전하가 그런 말을 하시면, 왠지 미래를 본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좋은 일만은 아닌 것 같네요."

그런 아멜리아의 말에 카시우스는 두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폭소하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대로야. 쓸데없이 많은 걸 걱정하게 될 뿐이지."

카시우스의 대답을 듣고 어딘가 만족한 표정이 된 아멜리아는 골렘의 손에서 뛰어내렸다.

이내, 바람을 타고 하늘로 솟아올라 시프와 그레이가 있는 곳보다도 더욱 높은 곳을 향해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자, 그럼 이제 나도인가. 골렘 클레온. 나를 거신의 배꼽 쪽으로 데려다 줘."

[알겠다.]

손의 형태가 되었어도 언어 능력을 잃지는 않은 것인지 대답하는 골렘.

그대로 빠른 속도로 날아가 카시우스를 원하는 위치까지 옮기는 것이었다.

한 편, 에딘은 일행이 흩어지면서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다가오자, 그 표면에 부착되어있는 모든 무기들­

대포는 물론이고, 공방에서 흡수한 병기들. 그리고 달라붙은 채 영혼이 남아있는 에인헤야르들을 총동원해서 그들을 막으려 하고 있었다.

귀를 강렬하게 때리는 천둥소리와 같은 대포의 폭발음이 몇번이고 울린다.

날아온 포탄을 아슬아슬하게 피해서 날아다니는 시프, 그리고 정통으로 맞을뻔한 대포알을 어떻게든 쳐내는 그레이.

"미간에 이 창을 박아 넣으면 되는검까?"

"그래 맞아! 하지만, 궁니르의 힘을 쓰려면 내가 흑마력을 주입해야 해. 시간이 좀 걸리니까, 그 때까지 나를 좀 도와줘."

시프의 말에 그레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그재그, 곡예비행을 펼치면서 눈이 돌아갈 것만 같은 속도로 대포들을 피해 가며 거신의 미간이 있는 얼굴 부분까지 올라가려 한다.

시프는 궁니르에게 있는 힘껏 마력을 쏟아부어 스피드를 내지만, 어느 순간, 그 움직임이 살짝 멈추면서 그녀의 입에서도 검은 피가 터져 나왔다.

"쿨럭...!"

"가, 갑자기 왜그럼까!? 독에라도 당한검까?!"

"아, 아니야... 마력이... 슬슬 위험할지도..."

클레온이 보였던, 마력 부족의 현상과 같은 종류였다.

그와 동시에 궁니르의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곧장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세심한 마력 컨트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이 속도로는­

거신의 몸 이곳저곳의 부분에 몇 문이나 달린 대포들이 일제히 시프쪽을 노렸다.

수많은 포구가 자신들을 향하는 것을 느낀 그레이가 날아드는 포탄을 쳐내기 위해 자세를 잡지만.

일렁거리는, 지금은 없는 친구의 환영을 본듯한 시프가 결심한 표정을 지으면­

"...하아앗...!"

시프는 자신의 남아있는 모든 마력을 그대로 궁니르에 쏟아부었다.

그러자, 궁니르는 그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듯이 검게 물들면서 일렁이는 모습을 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내, 시프는 미끄러지듯이 정신을 잃으며 궁니르에서 떨어지려 했다.

"자, 잠깐!"

그레이는 그런 시프의 손을 붙잡으려 하지만.

"미안."

시프가 손을 움직이면, 그레이와 궁니르는 동시에 그녀에게서 멀어지면서 거신의 머리 쪽을 향해 날아올랐다.

"뭠까!? 무슨 일이 일어난검까!?"

[...남아있는 모든 마력으로 궁니르의 쐐기로서의 힘을 활성화 시키고, 우리들과 함께 올려보낸 것이다. 자신이 없더라도, 이렇게 하면 우리가 미간에 궁니르를 박아넣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겠지.]

"뭐, 뭠까 그게!? 자기는 죽어도 상관없단 검까!? 지금 당장 내려가서­"

[궁니르의 제어는 이미 그녀가 정해놓은 상태다……. 그리고, 추락속도를 생각하면­]

헤르메스의 말에 그레이는 손을 강하게 쥐면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꾹 참은 채, 궁니르와 함께 거신의 얼굴 앞.

미간의 정면에 도착한다.

[그레이.]

"알고, 있슴다!"

그레이는 그대로 궁니르에 매달린 채 마력을 강하게 분사해서 궁니르의 궤도를 꺾었다.

방향은 그대로, 거신의 미간­ 그곳에 존재하는 마력 기관을 파괴하는 루트였다.

"가라아아아앗!"

궁니르 역시, 최후로 남아있는 마력을 역분사하며, 회전을 더하더니.

그대로 거신의 미간을 꿰뚫고 틀어박혔다.

파직! 하고 무언가 중요한 것이 깨지는 감각이, 궁니르를 손에 쥐고 있는 그레이에게도 느껴졌다.

"이, 이걸로 하나, 임까..."

그녀는 진이 빠진 듯이 궁니르를 빼내려 했지만, 깊게 틀어박힌 그것을 빼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시프..."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자신에게 뒤를 맡긴 동료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만이 존재했을 뿐이었다.

002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가녀린 육체가 떨어졌다.

"...으, 으으..."

몸 전체에 충격이 퍼지기는 했지만, 못 견디는 수준은 아니었다.

무엇이 일어난 것인지, 잠시 상황을 살피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이 떨어진 곳이, 무언가의 구덩이 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는... 나, 죽을 각오를 하고 떨어지긴 했는데 지옥으로 직행한 거야...?"

시프의 그런 시답잖은 농담이 들리면, 자신의 아래가 어째서 부드럽게 충격을 일부 흡수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거미줄과 같은 실이 수십, 수백 개로 이루어진 그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이거?"

시프는 끈끈하지 않은 거미줄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고.

거기에서, 충격적인 것을 목격했다.

"어, 어어!?"

그녀의 예상을 손쉽게 뒤집는 무언가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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