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2화 〉 유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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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화염의 폭발은, 하늘까지 솟아오르는 기둥을 만들었다가 이내 시간이 지나면서 잠잠해졌다.
거신이 있던 곳에는, 불에 타 까맣게 녹아버린 지면과, 바람에 흩날리는 재만이 있을 뿐.
잔해들은 수백미터 너머까지도 날아가서 흩어져 버렸으며, 하늘에서는 자기력을 잃은 여러 가지 구조물들이 쿵, 쿵,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졌다.
그 때 마다 커다란 먼지 구름이 솟아올랐으며, 일행들은 카시우스의 보호 아래서 어떻게든 지면에 내려올 수 있었다.
페루루카는 땅에 도착하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린 듯이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하, 하아... 이, 이걸로 천둥 군주는 어떻게든 된 건가요..."
"방금 전의 폭발에서도 살아남아 있다면, 순수하게 존경의 박수를 쳐주고 싶군."
프레이야의 말에, 페루루카도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 무사한 것 같네."
카시우스는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그레이는 자신이 어떻게든 챙겨서 내려온 궁니르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모두가, 아님다. ...시프가..."
그런 그레이의 말을 들은 일행의 표정은 일순 어두워지지만 그 때.
콰앙! 하는 폭발음이 다시 한 번 들려오면, 잔해들의 사이에 파묻혀있던 무언가가 기세 좋게 튀어나와 하늘을 돌더니.
이내, 땅에 착지해서 화려하게 웃어 재낀다.
"크하하하!! 이거다!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파괴와 살육의 전장이다!"
화염과 함께 뛰쳐나온 그것은 양손에 글라디우스로 보이는 검을 한 자루씩 들은 채로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카시우스를 제외한 일행의 표정이 조금 신중하게 바뀌면, 아멜리아는 카시우스에게 묻는다.
"저 분이, 카시우스 전하께서 말씀하셨던 마지막 쐐기를 가지고 있는 아군이지요...?"
"그래 맞아. 서터의 투기장의 마지막 생존자인 '무스'지. 서터의 검이었던 '레반테인'의 파편을 가지고 있어."
"...조금, 위험해 보이는 분인데요?"
아멜리아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페루루카, 실제로 무스의 눈빛은 광기에 사로잡힌 채로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걸론 부족해... 1년만에 찾아온 전쟁이라는 축제가, 나의 무대가 이렇게 막을 내리는 것은 너무나도 빠르단 말이다!! 누구라도 좋아! 나와 싸워서 피가 튀기는 살육의 연회를 펼치자!"
투기가 불타오르며, 땅을 타고 흐르는 화염의 열기.
"...입에서 나오는 단어가 하나같이 위험한데요...?"
아멜리아의 불안한듯한 시선에 카시우스 역시 식은땀을 흘리며 시선을 돌렸다.
페루루카도 걱정 가득한 눈으로 무스 쪽을 바라보았고...
그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
마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싸움이 개시되었다는 듯이, 무스는 불타오르는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리며 일행이 있는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한다.
"하하하! 있지 않냐! 싸우기 좋아보이는 절호의 먹잇감이!"
달려나가면서 박차는 땅에서 파편이 튀어 오르고, 페루루카는 그런 무스를 바라보며 공포에 얼어붙은 듯 입을 딱딱거리면서 뒤로 물러서지도 못한 채 있었다.
이내, 무스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페루루카를 공격하려는 찰나.
카앙! 하는 경쾌한 금속음이 들리면서 아멜리아의 얼음 망치와 그레이의 주먹이 무스의 글라디우스를 각각 하나씩 막아냈다.
"뭐야, 너희도 싸움에 끼고 싶은 거냐?"
무스가 즐겁다는 듯이 목소리를 내며 그 뾰족한 이빨이 보일 정도로 환하게 보이자.
아멜리아도 그레이도 눈을 찌푸린 뒤 타이밍을 맞추어 검을 튕겨내고, 몸을 돌려 발로 그녀의 몸뚱어리를 차서 뒤쪽으로 멀리 날려버렸다.
"진정하는 검다! 갑자기 나타난 화염 여자!"
"어째서 저희를 공격하는 건가요? 싸울 이유가 없는데..."
그레이와 아멜리아의 말에, 무스는 하아? 하고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양손을 펼치자 글라디우스는 흩어지는 화염으로 사라졌다.
한쪽 손의 새끼손가락으로 자신의 귀를 파대면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야, 너희가 싸울 수 있는 녀석들이니까지. 그거 외에 싸움을 거는 이유가 있나? 나는 그쪽의 반껌댕이 녀석이, 일생일대의 싸움을 시켜준다고 해서 이날 까지 지루한 시간을 버텨온 거라고."
그 말에 일행의 시선이 카시우스를 향하면 카시우스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확실히, 나는 그 말을 했지만, 아직 우리랑 싸우는 것은 이를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카시우스의 말을 들은 무스는 이내 흉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상어의 이빨로 웃어 보이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위쪽으로 치솟으며, 강렬한 열기가 그레이와 아멜리아를 덮치면 페루루카는 땅바닥을 기어가듯이 골렘의 뒤로 가는 것이었다.
"나는 싸움에 편식을 하는 편은 아니야. 상대가 누구라고 하더라도 즐겁게 서로의 생명을 뺐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기다려 줘. 일단은 이쪽도, 상처를 치료해야 할 환자가 있으니까."
카시우스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페루루카를 보면, 페루루카는 그 이야기를 듣고 눈을 크게 뜨면서 자신의 앞에 있는 골렘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 맞아요! 클레온이..."
그 이야기를 들은 아멜리아도, 그레이도. 프레이야마저도 골렘의 근처로 다가가면, 무스는 두 눈을 깜빡이다가 김이 빠졌다는 듯이 불꽃이 잠잠해졌다.
"뭐냐, 너희들... 이쪽은 불완전 연소"
그렇게 말하면서 누구 한 명을 베어버리면 강제적으로 싸움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찰나.
뒷 쪽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오는 감각에, 몸을 돌리면
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일격이 무스의 머리를 덮치고, 그 부분을 완전히 박살 냈다.
튀어나온 화염과, 마그마와 같은 피가 주변에 퍼지면서 무스의 몸은 그 자리에서 풀썩, 하고 쓰러졌다.
"으아...!"
그 모습을 본 페루루카가 비명을 내지르면, 일행의 앞까지 날아온 것은
천둥을 휘감은 이상할 정도로 손잡이가 짧은 망치.
"묠, 니르..."
천둥의 망치의 이름을 부른 다음 순간, 망치는 허공에서 멈추었다가 다시 왔던 궤도를 타고 되돌아갔다.
그것을 붙잡은 것은, 전신을 번개와 불로 지져져서 몸의 곳곳이 재처럼 까맣게 변한 상태의 에딘이었다.
자랑스러운 수염은 중간 중간이 불타서 끊어져 있었고.
한쪽 눈은 추락에 휘말린 것인지 뭉개져 있었으며, 갑주는 이곳저곳을 꿰뚫려서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도 그의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것은 역시, 그가 이 영역의 주인이라는 점과, 그 영역을 유지하기 위한 쐐기 묠니르가 가진 마력 덕분이겠지.
"■■■■──!!"
푸른 안광을 눈에서 빛내며, 분노에 차올라 포효를 내지르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천둥의 군주였다.
비록, 몰락한 외관이고, 권속들은 전부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 힘, 그 괴력, 그 뇌전을 휘감은 위협적인 그에게서는 아직, 전설 속 정복자의 위엄이 남아있었다.
허나, 그것도 그 힘에 남은 잔향일 뿐이었다.
한계를 넘은 데미지를 입고, 갈기갈기 찢어진 프라이드.
이성을 잃고 폭주하기 시작하는 힘에 이끌리듯이 움직이는, 살아있는 송장에 가까운 에딘을 일행은 동정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하지 않았다.
"그, 그보다. 저 사람, 죽어버린검다...?"
그레이는 에딘의 묠니르를 얻어맞고 머리가 터져버린 무스의 몸을 가리켰다.
땅에 엎어진 채, 목 위가 사라진 상태에서 용암의 혈액을 흘리던 그녀, 몸의 불꽃이 서서히 작아져 갔다.
"아니, 그녀는 화염 투기장의 전사. 머리를 파괴당한 것 정도로는, 그 불꽃은 꺼지지 않아."
하지만, 프레이야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과 동시에, 작아졌던 불꽃은 갑작스럽게 크게 피어오르더니.
얼굴의 부분이 재생을 시작하면서 마치 시간을 되감듯이 몸을 일으킨다.
머리의 밑 절반 부분이 재생되면서 입이 돌아오면, 보이는 것은 즐겁다는 듯한 표정의 입이었다.
"좋네... 그 근성만큼은 칭찬해 줄게, 이 난쟁이 똥자루 녀석... 잘도 내 머리를 날려버렸겠다...!"
싸울 상대가 남아있다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머리를 날려버린 이에 대한 분노가 함께 차오르면, 무스의 양손에 다시 한 번 화염의 글라디우스가 나타났다.
"베어주마! 목을 베고, 척추와 함께 머리통을 뽑아서 관중들을 향해 자랑해 주마! 전설적인 천둥 군주는, 역시 난쟁이에 불과했다고 말이야! 하하하하!!"
"잠깐!"
아멜리아의 제지 따위를 들을 일 없이, 무스는 몸을 완전히 일으키더니, 눈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에딘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가 양 손에 든 글라디우스가, 위에서 아래로, 두 개의 선을 그리면서 휘둘러졌다.
2m가 넘는 거구는 몸 대부분이 화염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엄청나게 무거운 일격이었다.
에딘은, 이성이 남아있지 않아서였을까,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두꺼운 건틀릿이 남아있는 손과 망치 묠니르로 하나씩 그 글라디우스를 틀어막았다.
묠니르의 쪽은 쐐기의 내구도가 있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에딘의 손은 그렇지 않았다.
불타오르는 화염은, 추방 영역에서 가장 높은 열기를 가진 불꽃이다.
아무리 두껍고 좋은 완성도를 가진 갑주라고 하더라도, 그 열기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녹아내리는 에딘의 건틀릿, 그 안에 착용한 가죽 장갑 따위는 쉽게 찢어지고, 불타버린다.
"하하! 그딴 갑옷을 입고 나를 어떻게 하려고 생각한 게 문제지...!"
무스의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내, 맨손이 닿겠지만 에딘은 오히려 건틀릿이 사라지면서 더욱 자유롭게 움직이는 손으로 글라디우스를 붙잡아 버리는 것이었다.
"뭐, 뭐야? 이 녀석, 정신이 나간 건가?"
자신 같은 언데드라면 문제없겠지만, 에딘은 엄연히 아직 살아있는 상태였다.
묠니르의 힘으로 생명력의 한계가 거의 없어지더라도, 고통을 느끼는 것은 여전할 터였다.
양손을 봉쇄당하여 무방비가 된 무스.
약간의 당황함이 틈을 만든 것인지, 순간의 판단력을 잃은 순간.
에딘의 머리가 뒤로 멀어졌다가
콰드득! 하는 소리를 내면서 무스의 이마를 박살냈다.
"크아악!"
무스는 그 충격으로 뒤로 밀려 나가고, 에딘으로 부터 떨어지려고 하지만.
에딘은 자신의 손을 희생으로 하면서 붙잡은 그녀의 검을 놓지 않고, 힘이 빠진 무스의 검과 마주치고 있던 묠니르를 떼어내더니.
그대로, 몇 번이고 그녀를 향해 내려치면서, 몸을 박살 내려 하는 것이었다.
"제, 젠장, 이 난쟁이 새끼가...!'
"하아아앗!"
당황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무스가 어떻게든 그 공격에서 벗어나려는 순간, 아멜리아의 기합음이 들려오면.
무스가 싸우는 와중에 용의 힘으로 변신한 아멜리아가 뇌전의 망치를 휘두르며 에딘의 팔을 때렸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번개가 울리는 소리가 한꺼번에 울렸다고 생각하면 에딘은 그 충격에 몸을 몇 번이나 구르는 것이었다.
머리가 깨져나가고, 몸이 박살 난 무스는 비틀거리면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괜찮으신가요?"
"크으..."
아멜리아는 그런 무스를 걱정하는 듯이 그녀의 표정을 살피지만.
아까와 마찬가지로 재생을 시작하는 무스의 눈은 분노로 가득한 상태였다.
그런 무스와 아멜리아의 뒤쪽에서 카시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싸우는 것은 상관없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지금 그는, 묠니르의 힘 때문에 강제로 생명을 연장 당하면서 싸우는 기계 같은 것이니까."
"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떻게... 하기는...!"
무스의 몸이 화르륵 불타오르면서 그녀가 다시 몸을 일으키면, 붉게 빛나는 눈으로 에딘을 노려보았다.
에딘 역시, 방금 공격으로 몸 안의 뼈가 이곳저곳 부러졌을 텐데 비틀 거리면서도 일어나는 것이었다.
"더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사지를 잘라버려야지! 유지할 생명조차 남지 않는다면 되는 거잖나!"
"지, 진심이신가요...!?"
잔혹하기 그지없는 말을 내뱉은 무스는 그대로 다시 한 번 만들어낸 화염의 검을 가지고 돌진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강력한 완력을 이용해서 화염의 검을 던져버렸다.
"하하! 가까이 가면 억지로 붙잡히니, 이렇게 멀리서 다트 하듯이 죽여버리면 되지!"
무스의 그런 모습을 보며, 다른 이들은 질린 얼굴이 되지만, 공격받은 대상은 그 칼들을 묠니르로 빠짐없이 쳐내버리는 것이었다.
"이 자식! 얌전하게 잘려서 죽으라고!!"
"어, 어처구니가 없네요..."
페루루카는 그런 무스의 난폭한 전투방법을 바라보다가 카시우스를 올려다보았다.
"...저 사람은 저렇게 계속 재생할 수 있는 건가요? 그렇다면 처음부터 저 사람에게 맡겨두면 됐던 게..."
"화염 투사의 재생에도 한계는 있지. 재생 횟수를 늘리는 방법은, 동족을 죽이고 그 생명의 화염을 빼앗는 것뿐이야. 무스는 서터를 제외하면 최강의 투사였고, 많은 생명의 화염을 빼앗아 왔겠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다는 소리야."
"그, 그렇군요..."
카시우스의 말에 페루루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갑작스러운 무스와 에딘의 난입으로 방해받았던 일을 계속하려고 했다.
여전히 늑대의 모습을 하는 골렘에게 가까이 가서 손을 올려, 골렘 제어 마법을 이용해 표면을 열어젖혔다.
안쪽의 소영역에 보관해서 상태가 악화 되는 것을 막고 있었던 클레온.
페루루카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서 클레온을 감싼 소영역을 꺼내면
"...어?"
소영역의 내부에서 느껴져야 할, 생명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자, 잠깐...!"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재빨리 소영역을 해제시키려 하지만, 폭주에 가까운 형태로 만들어냈던 소영역이었기에 담피르의 힘이 바닥난 상태의 그녀로는 소영역을 해제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좋지 않은 생각이 몇 개나 스쳐 지나갔다.
안쪽에서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소영역 안에 있는 클레온의 생명반응이 사라졌다는 것.
'서, 설마, 골렘을 공격받았을 때 안 쪽에서 충격이...?'
알레이스타가 말했던 대로, 그의 몸에 무언가가 일어났다면 그것은 온전히 그녀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최악의 상황이 머릿속을 맴돌면, 서서히 녹아내리는 소영역의 껍질.
그리고, 이내 안쪽이 보이기 시작한순간, 페루루카의 눈은 당황에 더하여 경악에 가깝게 크게 떠졌다.
"어, 엇, ...? 어라...? 왜!?"
말을 더듬을 정도로 흘러나오는 당황한 목소리에, 프레이야도 그레이도 그쪽으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무, 무슨 일임까? 혹시, 클레온 씨 죽었슴까?"
"... ..."
프레이야는 침묵하면서 페루루카를 바라보지만, 페루루카는 이내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한다.
"어, 없어요... 없어졌어요."
"없다니...?"
프레이야도 그 말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지, 되물어보지만.
"소, 소영역 안에 있어야 할 클레온 씨가, 없어졌어요!"
"...뭐?"
001
클레온은, 자신을 감싸는 부드러운 감각에 눈을 떴다.
"윽..."
익숙한 감각이었다, 열심히 싸우다가, 다쳐서 기절하고.
그리고 다시 일어났을 때는 침대의 위.
이번에도 무사히, 모두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서서히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있는 곳이, 왕도에 있는 모두와 함께 사용하는 숙소의 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워있는 침대는 숙소의 것보다도 훨씬 컸지만, 주변은 싸늘한 침묵과, 생기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 인테리어.
그리고, 자신이 누운 침대에 비해서 너무나도 오래된, 폐허와도 같은 천장과 벽들.
"...여긴, 어디지? 모두는..."
혹시라도 누군가의 대답이 돌아올까, 클레온은 독백을 입에 담아 목소리로 발한다.
그 때, 자신의 몸에 났던 상처들을 덮고 있는 것이 붕대와 같은 것이 아닌, 검은 천이라는 것을 눈치챈다.
"...이건..."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재질의 그것에 손을 대려 한 순간.
끼이익, 하는 문소리가 들려 재빨리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그곳에는 검은 드레스를 몸에 걸치고, 얼굴에는 눈가를 전부 가리는 검은 가면을 착용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발이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고 있었고, 창백한 피부에서 느껴지는 것은 '무(無)'.
어떠한 감정의 변화도 그녀에게서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에,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섬뜩할 정도로 강하고 짙은 마력의 기운.
발할라에서 대치했던 에딘과 비교하더라도 손색이 없는, 아니 오히려 그 이상으로 느껴질 정도의 검은 마력이었다.
클레온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몸의 근육을 긴장시키고, 마력을 어떻게든 끌어올리려 한 다음 순간.
10걸음 정도의 거리가 있던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클레온의 코앞까지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시야를 가득 채우는 그녀의 모습에, 클레온은 당황하여 얼어붙지만, 코와 코, 입술과 입술이 닿을만한 거리에서 자신을 뚫어지라 바라보는 그녀.
마치, 신기한 것을 보고 있다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 클레온은 어떻게 해야 할지 제대로 된 판단이 서지 못하고 잠깐 그녀의 호흡소리만이 울리는 것을 들었다.
"... ..."
침묵이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1분 정도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는 상황이 이어지고 나면.
이내, 그녀는 방금 그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조차 이야기해주지 않고 얼굴을 떼어냈다.
그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클레온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당신. 이름은?"
"...클레온."
자신에게 이름을 물어오는 그녀에게, 클레온은 순순히 대답해 주지만 그녀는 그 대답을 듣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클레온."
되새기듯이, 중얼거렸다.
"여기는 어디지? 나는, 에딘과 싸우고 있었을탠데... 그리고 네가 누군지도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클레온의 말을 들은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내 방 안에 있는 작은 의자에 앉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곳은, 나의 영역. 나의 대성당. 나와 당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죽은 자로 이루어진, 유골과 망념의 세계."
"...그렇다면 네가 바로 이 영역의 지배자인 죽음의 여신이로군."
클레온의 말에 죽음의 여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내가 여기에 있는 거지?"
"당신이 죽을 것 같아서... 이곳으로 데려와서. 이곳에서 죽으면, 그대로 언데드로 부활할 테니까."
클레온은 그 말을 듣고 등골에 약간의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설마, 지금의 내가 언데드인건가?"
클레온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조금 생명력을 나눠주니까 살아남았어. 원래는, 죽음을 가속시킬탠데."
"... ...죽이려고 한 건가?"
"그쪽이 편안해 보였거든."
"괜한 참견이군... 다음부턴 그러지 마."
클레온은 조금의 분노를 느끼면서 그녀에게 이야기하고, 그녀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악의가 없다는 것은 알겠어. 하지만... 나는 살아서 이곳을 벗어나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야 해."
"그런 이야기는 이곳에서는 너무나 흔한 이야기야.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렇네, 당신들은 천둥 군주의 거신을 쓰러트렸으니... 가망이 있을지도."
클레온은 그 이야기를 듣고는 일행이 무사히 에딘에게 승리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인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나도 이제 슬슬 동료가 있는 곳으로 되돌려 보내줘."
"그건 안 돼. 당신의 치료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런 몸으로 이차원의 문을 넘어가 봤자, 도중에 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죽을 뿐이야."
클레온은 그녀의 말에 인상을 조금 찌푸리지만, 눈앞에 있는 것은 그 에딘과 마찬가지로 영역 하나를 통째로 만들어내서 지배하는 영역의 지배자이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루 정도면 모두 낫겠지. 당신의 생명력은 생각보다 끈질긴 듯하니까.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불러."
"...부르라고? 어떻게?"
클레온의 질문에 그녀는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여신님이라고."
"여신님이라니. ...그거야 그렇지만, 나는 네 신자가 아니고, 그건 칭호잖아? 이름은?"
"...그런 것은 무의미해. 이 세계에서 이름이란 것은 묘비에 새겨질 때나 필요한 것이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나는 내 이름을 몰라."
조금 차가워진 말투로 그렇게 내뱉은 뒤, 클레온을 방에 두고 그녀는 문을 통과해서 나가버렸다.
"...이상한 녀석이네. 이곳의 지배자도."
클레온은 그렇게 중얼거린 뒤, 자신이 사라졌다는 것을 일행이 알고 있을지 걱정하며 침대에 몸을 눕혔다.
그녀가 말한 대로, 클레온의 몸은 한계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각인에서는 아직 모두의 생명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 신호가 닿는다면 그들에게도 자신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으면 클레온의 의식은 점차 멀어져만 갔다.
한 편, 방을 나선 죽음의 여신은 자신의 얼굴을 덮고 있는 가면에 손을 올렸다.
"...클레온. 어째서 그의 이름을. 나는..."
무언가, 기억의 흐름을 막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흔들리는 정신을 붙잡은 채, 무스를 다시 불러오기 위해 성당의 힘이 집중되는 역십자의 앞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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