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6화 〉 어긋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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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전투 때문에 쑥대밭이 된 천둥 황야의 위에서 몇 개나 되는 폭음이 울렸다.
폭발과 함께 떨어져 나간 것은 다시 한 번 터져버린 화염의 여전사의 몸뚱어리.
허리에서부터 윗부분이 깔끔하게 박살 나 버린 그녀의 하반신이 수십미터를 날아가 땅에 처박히면.
그녀의 방어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싸움 법이 정말로 효용성이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허나, 대미지는 확실하게 축적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거신에서 떨어져나와 묠니르를 쥔 채로 광전사처럼 싸우는 에딘의 몰골은 도저히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자기 몸이 박살나더라도 금세 재생해서 계속해서 달려드는 무스의 공격으로 팔과 다리, 수염이나 머리카락 일부분이 타들어 간 상태였고.
심지어 한쪽 허벅지는 잘려나간 살점의 안쪽에 뼈가 보이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계속해서 전투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은 온전히 묠니르의 힘이 그의 생명을 억지로 이어붙이고 있기 때문이었지.
원래는 움직일 수 없게 됐어야 할 근육도, 뼈도, 마치 기계처럼 강제적으로 움직인다.
가만히 놔두면 무스와 에딘 둘이서 이 일대를 전부 엉망진창으로 만들 게 뻔했기에, 아멜리아를 비롯한 일행들도 무스를 도와 에딘의 폭주를 멈추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신과의 싸움에서 대부분의 힘을 소모한 그들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에딘과의 전투에서 모든 실력을 낼 수 없었고 에딘의 공격을 한 번씩 막을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이었다.
"뭔가, 이상함다... 아까 그 커다란 기계를 쓰러트리면, 우리가 이기는 거 아니었슴까...?"
그레이의 지친듯한 목소리가 들리면 페루루카도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로 싫은 얼굴이 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제 착각인가요...? 어쩐지, 전투를 이어나갈수록 상대방이 더 강해지는 것 같은데..."
페루루카의 말에, 아멜리아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것이 착각이 아니었다는 듯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카시우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어느 정도 여유롭게 넘기고 있던 카시우스도, 조금 심각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원래라면, 우리가 시간을 끄는 동안 회복한 클레온 씨가 개입하면서 그를 완전히 마무리 지었어야 해. 그런데 그가 없어진 것으로, 내가 예지했던 미래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원인을 찾는다면, 역시 자신이 준비해 두었던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 현재 상황이겠지.
골렘의 안 페루루카의 소영역 안에 있었어야 할 클레온이 사라진 것은, 카시우스에게도 예상 밖의 일이었다.
다른 이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예상되는 범인이 있다고 한다면, 죽음의 세계의 여신.
광범위에 전이용 차원문을 여는 것이 가능한 그녀라면,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고 페루루카의 소영역을 열어젖혀서 그 안에 있던 클레온을 데려갈 수 있었다.
'클레온 씨... 대체 어떤 운명을 하고 있길래, 이렇게나 복잡하게 사건이 뒤틀리는 걸까.'
속으로 자신이 도저히 전부 가늠할 수 없는 그의 운명력에 혀를 내두르면서, 카시우스는 자신의 손에 들린 아난시의 알을 내려다보았다.
쐐기라고는 하지만, 그 알에 담겨있는 마력도 무한한 것은 아니었다.
거신과의 싸움에서 그 대부분을 사용한 것도 있지만, 안쪽에서 느껴지는 마력이 서서히 고갈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지금, 다른 이들을 보조해줄 수 있는 것은 온전히 이 알이 있기 때문.
쐐기의 힘이 모두 소진되고 나면 일행의 전력은 크게 깎여버릴 것이다.
게다가 눈에 띄는 것은 에딘의 현재 상태.
페루루카가 말한 대로, 에딘을 끝장내지 못한 채 전투가 이어지면서 그의 마력이 서서히 강해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움직일 때마다 번개가 나타나고, 천둥이 치는 상황.
전신이 까맣게 타버리더라도 계속해서 전진해 오는 그는, 마치 생명체라는 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듯이 보였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도저히 멈추지 않는 저 파괴 전차의 앞에서 모두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원래라면 이곳에서 묠니르를 회수하고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비해야만 했지만...
한번은 물러나서 모두의 체력을 정비할 필요가 있는 걸까.
"제엔자아아앙!"
그 때, 멀리서 들려오는 분노에 찬 고함 소리.
하늘까지 닿을 것 같은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오르면, 모두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그쪽을 향하고.
아까보다도 더욱 흉악하게 화염을 불태우며, 너덜너덜해진 몸뚱아리를 재생해서 일어나는 무스의 모습이 보였다.
얼핏 보면 악역으로 보일 정도로 임팩트가 강력하지만, 그녀가 지금은 자신들의 아군이라는 사실에 일단은 안심하는 아멜리아.
하지만, 카시우스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운 편이었다.
'믿음직한 전투력이지만... 이 이상 전투가 길어진다면, 여기서 그녀의 화염을 모두 소진하게 할 수는 없어.'
이미 계획했던 것보다 많은 변수가 생긴 상태였다.
클레온이 없는 이상 그를 확실하게 끝장낼만한 일격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전투를 이어나가는 것은 무의미했다.
하지만, 카시우스의 이성이 아닌, 본능 쪽은 그의 이성에 계속해서 경고음과 같은 불안한 예감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에딘을 끝장내지 않는다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그렇다면 그 답을 줄 수 있는 것은 이 안에서 단 한 명 뿐.
"알레이스타! 지금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
카시우스가 목소리를 높이자 놀란 표정을 지은 페루루카는, 이내 자신의 안에서 조용히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스승을 불러일으켰다.
"[물어보지 않으면 답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역시, 사기꾼이지만 현자를 자칭할 만한 판단력과 관찰력은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나에게 가르침을 구하] 쓸데 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알려 주세요!"
알레이스타는 음흉하게 웃으면서 카시우스를 조롱하지만, 이내 페루루카의 윽박지름에 '크윽...'하고 몸을 떤 뒤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한계를 초월한 전투가 계속되면서, 묠니르의 마력과 호응하며 '전생 승화'가 일어나려고 하고 있는 거다.]"
"...전생 승화?"
처음으로 듣는 단어에 카시우스가 의문을 표하면 알레이스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런 것도 모르는 채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온 것인지. 현자라는 호칭이 썩고 있군.] 스승님! [알았으니까 그렇게 소리 지르지 마라. 뭐, 그들의 시대에서는 그렇게까지 널리 알려진 현상은 아닐지도 모르지.]"
다음 순간, 카시우스의 옆을 질주해서 달려나가는 무스의 불길이 지나가면, 다시 한 번 죽지 않는 두 사람의 전투가 시작된다.
그 싸움을 말려야 하는지, 아니면 그대로 둬야 하는지는 알레이스타의 대답에 달려있었다.
"[너도 전생의 의식 정도는 알고 있겠지. 스스로의 종족을 바꾸는 금기이다.]"
"...물론입니다. 인류의 역사상 그것을 목적으로 행동한 이들 중에 멀쩡한 결말을 맞이한 이들은 없었지요."
부귀영화를 누렸던 이들, 복수를 꿈꾸던 이들, 힘을 바라던 이들.
그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자신에게 정해진 여러 가지 운명을 개척해 나갔지만, 결국 인간이라는 종족의 틀에 갇혀 있는 한 도달할 수 없는 경지를 실감한다.
그렇기에 몇 번이나 되는 고배를 마시며 꿈꾸던 이상에 닿기 위해, 그 틀을 벗어나겠다는 결심마저 한다.
인간을 초월하기 위해, 다른 종족이 되는 비술이자 금술. 그것이 바로 전생의 의식이다.
물론, 대부분 이들은 실패한다.
전생의 의식은 대체로 많은 마력이나, 생명력, 혹은 재료를 요구한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희생이 동반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고.
그 결과, 전생의 의식이 완료되기 전에, 혹은 시작도 못 한 채 계획을 저지당해 그 꿈이 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었다.
"[전생 승화라는 것은, 특별한 의식이 없이도 종으로서의 한계를 초월하여, 다른 종족이 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는, 묠니르에 의해 점점 몸이 정령화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군.]"
"정령... 그러면, 쓰러트리기 더욱 힘들어집니다."
카시우스의 지적에 알레이스타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이야기를 듣던 아멜리아 역시, 그 의견에 동의하는 것인지 망치를 쥔 손에 힘을 넣는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그 전에 쓰러트려야죠. 무언가, 방법이 있을까요?"
"[글쎄... 정령으로 승화하려 하고 있더라도, 결국 아직은 인간이야. 묠니르를 떼어놓은 상태에서 급소를 찌르면 죽지 않을까.]"
꽤나 어정쩡한 알레이스타의 대답에 프레이야는 얼굴을 찌푸렸다.
"간단하게 말해주는군...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 해결된다면 다행이지."
프레이야는 그렇게 말하면서, 땅에 떨어져 있던 궁니르를 손에 집어들었다.
"그거 쓰는 검까?"
"흑마력은 없지만, 평범한 무기로서도 상당히 훌륭한 무기다. 쓰지 않을 이유는 없어."
프레이야는 그렇게 말하며 궁니르를 허공에 휘둘렀다.
그러자, 프레이야의 체급에 맞추어서, 창의 길이가 길어지는 것이 보였다.
"...시프도 그걸 바라고 있을 거다."
"맞슴다...! 그럼, 한꺼번에 달려들어서 어떻게든 해보는 검다!"
아멜리아도, 페루루카도 고개를 끄덕인다.
카시우스역시, 우선은 이 싸움을 끝내야 무스에게 죽음의 여신에 관한 것을 질문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클레온 씨, 부디 무사해 줘. 당신을 잃을 수는 없으니까.'
약간의 초조함이 느껴지는 얼굴로, 카시우스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 어딘가에 있을, 죽음의 여신이 있는 영역.
카시우스의 눈은 그 너머에 있을 클레온의 위치를 찾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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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흔들렸던 감정을 추스르는 메이드 장.
축 처진 어깨에서는, 그녀가 떠올린 기억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클레온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조금 고민했지만, 이내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괜찮아요?"
여전히, 존댓말이었지만.
"네, 고마워요. ... 하지만 설마 이렇게 클레온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클레온의 기억 속에서,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은 역시 담피르와 헤어진 그 마을에서였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친근감은, 그런 짧은 만남에서는 만들어지기 힘든 것이었다.
"저도에요. 절계 추방 영역에서 만난 것도 그렇지만... 그 모습은..."
클레온은 말끝을 흐린다.
유령이 되었다는 것은 큰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으로 사는 삶을 마치고 말았다는 것.
하지만 클레온으로서는 그 사실에 대해 그녀에게 깊게 추궁할 수는 없었다.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큼 잔혹한 것은 할 수 없었으니까.
"응... 하하, 결국, 저도 이렇게 되어 버렸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멋쩍은 듯이 볼을 긁적이는 그녀.
하지만, 이내 무언가 떠올린 듯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이 있어요. 그 아이 일레누에 관한 것이에요."
일레누라는 이름에 클레온은 잠시 굳었다.
기억 속에 남아있었던 그 이름은, 자신과 함께 악몽과도 같은 강함을 자랑했던 흡혈귀를 상대로 공투했던 담피르 소녀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일레누도, 이곳에 있는 건가요?"
"맞아요. ... 당신도 이미 만났을 거에요."
"설마"
클레온의 머릿속에서, 일레누의 외견이 떠오르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것은 자신을 구했던 백발의 가면녀.
죽음의 여신이 보였던 모습 그 자체였다.
"눈치 챈 것 같군요. ...이 세계의 지배자인 죽음의 여신이, 바로 일레누라는 것을."
"어떻게 그게 가능한거지...?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클레온의 말을 들은 일레누는 과거의 일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듯이 잠시 어두운 얼굴이 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들의 모험이, 끝난 것이죠. 최악의 방향으로."
"우리들의... 모험..."
그녀는 마치, 그 우리들에 '클레온'도 포함되어 있다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네. 기억하시나요? 당신과 일레누가 흡혈귀를 쓰러트린 다음 날. 저희는"
메이드는 괴로웠던 기억과는 다른, 조금 즐거운 기억을 떠올린다는 듯이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저희는, 세 사람이서 함께 모험을 떠났죠."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클레온의 기억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같은 과거, 같은 경험을 했을 것으로 생각했던 두 사람의 사이에서.
무언가, 어긋난 톱니바퀴의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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