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7화 〉 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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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의 틈이라는 공간은 쉽게 비유하자면 건물 안의 복도와도 같은 공간이다.
각각의 차원을 하나의 방이라고 한다면, 차원의 틈은 방과 방 사이에 펼쳐진 일종의 연결통로이다.
클레온의 사는 차원, 악마들이 사는 차원인 지옥, 하나의 차원에서 선택의 결과에 따라 무한히 파생되는 또 다른 차원.
모든 차원이, 하나의 차원에서 시작되어서 분기되어 태어난 세계이었기에 차원의 틈은 무한하게 팽창하며, 또 그들을 연결하는 공간 역시 단 하나만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 클레온과 일행들이 있는 차원의 틈이다.
차원의 틈은, 시간도, 공간도 초월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클레온의 시점에서 보자면 머나먼 미래의 시간선과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으며, 아주 오래전의 과거와도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눈앞의 메이드 일레누와 함께 떠났던 그녀가 하는 이야기는, '이 클레온'의 기억과는 다른 것이었다.
선택에 의해 분기된 또다른 세계의 일레누와 메이드.
이 세계에서, 클레온은 또다른 모험의 동료를 얻어 다른 미래를 나아간 것이다.
"...자세하게 들려줄 수 있나요? 아무래도, 제가 아는 것과는 다른 것 같아서."
"어...?"
클레온의 말을 들은 메이드장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가 겪었던 과거를 세세하게 설명해 나가는 것이었다.
001
흡혈귀와의 결전에서 크게 다쳤던 클레온을 치료하여 저택의 침대 위에 눕힌 뒤, 일레누 아가씨는 다른 마을 사람들이 모이기 전에 이 마을을 떠나려고 했다.
잠깐 눈을 뗀 사이에 마을의 입구까지 가버린 그녀를 서둘러서 쫓아가면, 그녀는 지도를 펼친 채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정하려 하고 있는 듯했다.
"하아, 하아... 잠깐, 일레누! 이대로 가는 건가요?!"
"이곳의 흡혈귀는 쓰러트렸지만, 아직 이 대륙에는 여기저기 숨어서 사람들의 피를 탐하는 흡혈귀들이 많아. 그들을 쓰러트리기 위해서, 여행을 멈출 수는 없어. 당신도, 아버지의 세뇌에서 벗어났으니까 평범한 삶을 살도록 해."
그녀가 말한 대로다.
내가 모시고 있던 주인님은, 몇 년 전에 이미 죽은 것이었고.
그 시체를 흡혈귀가 차지해서, 주인님의 행세를 하며 나를 세뇌하여 마을을 찾은 외부인들을 저택에 불러들이기 위한 장깃말로 사용되었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지만, 원인이었던 흡혈귀를 쓰러트리고 마을과 주민들을 구한 것은 클레온과 일레누였다.
그러니 이 빚을 어떻게든 갚지 않으면.
"클레온이 일어날 때까지만이라도 조금 기다려줄 수 있잖아요...!"
게다가, 클레온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기절한 상태였다.
깨어났을 때, 그녀에게 해야 할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고, 일레누 역시 클레온에게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이야기'에서 도망치려는 듯이 어딘가 조금 급히 그의 곁을 떠나려는 듯 했다.
"크, 클레온은, 상관없잖아! 그 녀석이랑은, 한번 손을 잡은 것뿐이고... 무, 물론 혼자서라면 흡혈귀를 쓰러트릴 수 없었겠지만..."
"그러면, 더더욱 이대로 헤어지는 건 너무해요!"
나의 호소에, 그녀는 머뭇거리면서도 얼굴을 붉혔다.
두 사람과 흡혈귀의 싸움, 나 같은 약한 일반인이 끼어들 수 있는 싸움은 절대로 아니었으니 그 싸움에서 정확하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흡혈귀를 쓰러트리면서 두 사람의 사이에서 무언가 중대한 일이 있었다는 것만을 추측할 뿐.
"다, 당신에게는 관계없잖아!?"
일레누는 더더욱 목소리를 높이면서 나를 쏘아붙였다.
"아뇨! 관계 있어요! 당신에게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당신이 또 혼자가 되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어요!"
물론, 오지랖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두 사람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연장자로서 사람의 눈을 보면 그 생각이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흡혈귀를 사냥하는 자신의 여행에, 누군가가 끼어들어.
그 누군가가 자신 때문에 상처 입게 되는 것을.
클레온도, 죽을 뻔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살아남은 것은 요행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다른 사람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면, 당신 역시 다른 사람에게 지켜질 이유가 있다고요!"
엉망진창일지도 모르는 말, 그녀는 그 이야기를 듣더니 무언가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지도를 쥔 손에 힘을 넣더니, 나를 향해서 집어 던지는 것이었다.
"멋대로... 그렇게 멋대로 말하고! 당신 같이 힘도 없이 착한 사람들이 제일 문제야! 여기저기에 참견하면서, 결국 아무것도 못 하잖아!"
"그, 그건..."
그녀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를 돕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마력적성이 없어서 흡혈귀의 권속조차 되지 못한 인간이다.
앞으로 강해질 가능성마저, 한없이 적은, 잠재력조차 낮은 약자.
그런 내가, 아무리 그녀를 위해서라고 외치더라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 사실을 상기 당하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질 수 밖에 없었다.
"...미안, 말이, 심했어."
일레누는, 그런 나를 바라보더니 심호흡을 하다가 가까이 다가왔다.
땅에 떨어진 지도를 집어들고, 그녀는 나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당신의 말이 맞아. 나는 지금까지, 혼자서 이 싸움을 견뎌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 그 녀석과 같이 싸우기 전까지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 나의 앞에서 조금 고개를 숙인 채, 풍성한 은발이 만들어낸 그늘진 일레누의 얼굴은.
어딘가 분한 듯, 어딘가 기쁜듯한 복잡한 얼굴이었다.
"흡혈귀는 강했어. 분명, 나 혼자서는 이길 수 없었겠지. 그러니까 함께 힘을 합칠 동료가 있어야 한다면... 그 부분은 부정할 수 없어. 응."
일레누는 나에게 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설명하듯이, 생각을 언어로 풀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러니까. 그러니까 더더욱, 이 싸움에 누군가를 휘말리게 할 수는 없어. 힘이 부족하다면, 내가 더 강해지면 돼. 설령 고독한 싸움을 계속하더라도"
"그건 변명 아니야?"
그 때, 일레누의 말을 막는 목소리가 있었다.
우리 둘 모두의 고개가 돌아가면, 그곳에는 한쪽 다리를 비틀거리면서 정신을 차리고 뛰쳐나온 클레온의 모습이 보였다.
"클레온...! 일어났군요...!"
내가 그렇게 그의 회복에 기뻐하는 것에 반해, 그의 부정적인 말에 반응하는 일레누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클레온을 바라본다.
"무슨 소리야? 변명이라고?"
날이 선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두 사람의 사이에 무언가, 좋지 않은 기류가 느껴졌다.
"그래.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해서, 누군가와 함께 있을 수 없다고? 그러면, 나는 짐이었다는 거냐?"
"큿... 그래! 네 말대로야! 결국, 네가 쓰러지고 난 다음에 내가 흡혈귀를 쓰러트린 거니까!"
클레온의 말에 완전히 열이 받은 듯이, 목소리를 높이는 일레누.
바로 옆에서 큰 소리가 나면, 귀가 키잉 하고 울려왔다.
"자, 잠깐, 진정해, 두 사람 다."
어떻게든 흥분해서 격양한 두 사람의 싸움을 말리려고 하지만, 두 사람은 멈추지 않는다.
"동료를 지키지 못하는 게 무섭다면, 그런 두려움마저도 이길 정도로 강해지면 되는 거야."
"그런 것 따위는 알고 있어! 하지만 너도 겪어봐서 알잖아! 흡혈귀의 힘은, 1년이나 10년 정도의 경험으로는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란 걸...!"
그것은, 진짜 공포를 눈앞에 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정이다.
나같은 부외자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두려움.
클레온의 부상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는, 분명히 그곳에서 한 번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떤 운명인가, 아니면 무언가 그를 되살릴 방법이 있었던 것일까.
클레온은 살아남기는 했지만, 그의 부상을 보면서, 함께 싸웠던 그녀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 그렇다면 어떻게 할 건데? 혼자서 싸우러 가서 죽을 거냐?"
"... ..."
클레온의 질문에, 일레누는 입을 다물었다.
그저, 혼자서 이 마을을 떠난다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만한 계획이 없었던 것 같다.
"일레누"
클레온이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했을 때, 나는 어째서일까.
쥐어짜내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그런 자격,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같이 가줄게요, 일레누."
"... 하, 하아~~~!?"
나의 그런 발언에 일레누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를 높였고, 클레온도 예상 밖이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일레누는 혼자 두면, 위태위태하니까... 그게 걱정인 거죠? 클레온."
"아니... 응, 그렇긴 하지만... 메이드 씨는 싸움을..."
"전력이 못 된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혼자서 여행하는 것보다야 훨씬 나아요. 여행은 전투가 전부가 아니니까요."
메이드로서 쌓은 경력은 절대 헛되지 않았다.
"요리부터 세탁, 그리고 이것저것... 아, 글도 읽고 쓸 줄 알고, 회계부도 쓸 수 있어요. 그걸로 괜찮죠?"
나의 말에, 일레누는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그만두는 게 좋아, 라던가,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 라던가. 자신의 미련을 끊어주길 바라는 것이었을까.
미안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해요.
"하아..."
그리고, 나의 그런 눈빛을 그녀도 이해한 것일까 한숨을 내쉬고.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클레온도, 그런 일레누의 반응을 보더니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클레온은 어떻게 할 거에요?"
그리고, 그런 클레온에게 나는 이야기했다.
"...나?"
"클레온도 일레누가 걱정되는 거잖아요? 이 뒤에도 계속해서 흡혈귀와 싸운다고 한다면... 당신도, 그들의 위험성은 잘 알고 있으니까."
나의 말에 클레온은 잠시 고민하는 듯한 얼굴이 되었다.
"나는"
"...저녀석은 괜찮아.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하지만, 클레온의 대답을 막은 것은, 일레누이다.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일까.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녀는 클레온의 피를 흡혈했을 때 그의 과거 일부를 보았다고 한다.
클레온이 모험을 하는 이유를, 만나고 싶은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있다는 것을 일레누는 이미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지? 클레온."
"... ..."
클레온은 침묵한다.
그녀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지는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포기하는 일 따위, 그에게는 있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클레온은 거기서 대답했다.
"좋아. 나도 같이 갈게."
"어...?"
일레누는 그런 클레온의 대답이 의외라는 듯이 다시 한 번 얼빠진 얼굴이 된다.
"네가 나에 대해 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메이드 씨 처럼 너같이 위태위태한 녀석을 그냥 둘 생각은 없어."
"누, 누가 위태하다는 거야!? 그리고, 너 같은 부상자를"
일레누의 말에, 클레온은 자신의 부상 부위에 감아 두었던 붕대를 풀어헤친다.
그곳에는, 깊게 잘려나가 뼈나 내장이 보일 정도였던 상처가 이미 회복되어 있었다.
"...어떻게"
"글쎄. 네가 내 피를 흡혈한 덕분일지도 모르지."
놀란 듯한 나와 일레누의 표정에, 클레온은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널 그냥 두지 않아. 해야 할 일도 하고, 흡혈귀의 사냥도 하고. 둘 다 하지 뭐."
"그렇게 쉽게─"
일레누의 갈등하는 듯한 얼굴에,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조금만, 솔직해져요."
"─읏..."
나의 말이, 아무래도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듯 했다.
일레누는 몸을 획 돌리면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바보 같아. 이런 일에 어울리면, 자기들 수명이 줄어들 뿐인데..."
"애초에 오래 살 생각은 안 했어."
"저, 저는 그런 건 아니지만요. 연장자로서, 동생들이 위험해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어요."
그런 나의 말을 두 사람은 조금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지만, 어쨌든 진심은 전해진 것 같았다.
"우선, 저택으로 돌아가요. 저와 클레온은 짐을 싸야 하니까."
"...빨리 준비해. 가야 할 길이 머니까."
그렇게, 우리는 셋이서 모험을 떠났다.
흡혈귀의 소문을 쫓으면서, 클레온이 찾는 사람을 쫓고.
대륙의 서쪽을 향해서, 향해서.
그리고
002
원래라면, 클레온은 일레누의 말 클레온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말에 동의하면서 그녀와 헤어졌다.
메이드가 함께한다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있었지만, 그때의 그에게는 레시아를 찾는다는 목적 외의 다른 목적을 가질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메이드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면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여행의 도중. 클레온이 죽었어요."
"... ..."
응?
잠깐의 침묵이 두 사람의 사이에 머물렀다.
메이드가 내뱉은 말은, 클레온 본인에게 있던 일이 아니었던 만큼, 충격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 자, 잠깐. 내가 죽었다고요? 뭔가, 강한 적이 나타났던 건가?"
"그렇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이어지는 메이드의 설명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클레온과 일레누. 두 사람은 흡혈귀와의 싸움에 필요한 힘을 얻기 위해, 정기적으로 클레온이 일레누에게 피를 주는 관계를 이어나갔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의 사이에서 특별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이었고.
메이드도, 또 한 명의 동료도 그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면, 클레온의 몸 상태가 서서히 악화하기 시작했단 것이었다.
오래 산 흡혈귀에게 직접 흡혈을 당해도 권속화 하지 않았던 메이드와 다르게, 클레온은 마력 적성이 굉장히 높았다.
완전한 흡혈귀도 아닌, 담피르인 일레누에게 지속적으로 흡혈을 당하면서 클레온이 서서히 흡혈귀의 권속이 되어간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더라도, 더욱더 강력해지는 사냥감(흡혈귀)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피의 주고받기를 멈출 수 없었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그런 생각을 몇 번이나 했을지 모른다고, 메이드는 이야기했다.
하지만, 결국 클레온은 완전히 흡혈귀의 권속이 되어 이성을 잃기 전에 자신을 어떻게든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일레누의 검에 찔렸다.
이미 반쯤 흡혈귀화 되었던 클레온은, 은제 레이피어에 심장을 꿰뚫린 순간, 전신이 성스러운 불꽃에 휩싸이면서 재가 되어 육체가 불탔다.
일레누와 일행들의 절규가 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메이드는 또다시 이야기 했다.
"... ..."
"눈 앞의 클레온에게서는, 흡혈귀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정말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클레온과는 또 다른 것 같네요."
메이드의 말은 충격적인 것 그 자체였지만, 클레온은 어떻게든 감정을 추스르면서 이야기했다.
"그러면 그 뒤에 일레누는..."
"당신을 되살릴 방법을 찾기 위해, 이런 저런 방법을 찾다가... 강령술을 쓰는 흡혈귀와 만났어요. 그리고 그 뒤는... 저도 자세히는 알지 못해요."
아마, 그 부분은 클레온과의 마력 교환으로도 채 떠올리지 못하는 기억이겠지.
"... ...그런가. 미안, 나 때문에"
"정확히는 당신이 아닌 걸요. ...우리들의 방법이 잘못되었던 것이었죠. 당신이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
사과하는 클레온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메이드는 이야기했다.
"...하지만,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은 있어요. 바로, 지금의 일레누가 위험하다는 거에요."
"...일레누가? 그녀는 이 영역의 지배자잖아? 죽음의 여신이 됐을 정도로."
메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금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당신과 일레누, 두 사람이 협력해서 쓰러트렸던 최초의 흡혈귀 일레누의 아버지가, 아직 살아있어요. 그리고, 이 영역에서 일레누의 힘을 흡수해서 되살아나려고 하고 있죠."
클레온은 그 말에 얼굴에서 웃음기가 싸악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된 거야? 분명히, 나와 일레누가 마무리를 했을 텐데"
"그는, 자신의 딸의 피안에 기생해서 살아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그녀가 이 추방영역에서 지배자가 된 뒤에도 그녀의 힘을 이용해서 육신을 재구성하려 하고 있구요."
클레온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메이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니, 그녀가 말하는 것이니 사실이겠지.
그녀에게서는 전혀 거짓이나, 속이려는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일레누와 이야기를 해야 해."
만약, 그 흡혈귀가 지배자의 힘을 흡수해서 되살아난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이 땅뿐만이 아니라 절계 추방 영역 전체에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그것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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