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9화 〉 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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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의 땅, 어디까지나 이어진 녹색 숲의 세계.
이 작은 마을에는 인간, 엘프, 켄타우로스와 같은 현세의 종족들의 모습을 가졌지만, 그 몸은 식물로 된 주민이 힘을 합쳐 살아가고 있었다.
마을의 중앙에는 어머니라고 불리는, 아니 실제로 이 마을의 모든 생명체를 창조하고 보살피는 세계수 이그드라실이 하늘의 어디까지나 높은 곳까지 뻗어 있었으며.
그 가지, 이파리는 마치 구름과 같이 펼쳐져 있어서, 그 끝없는 자애를 나타내는 듯했다.
얼핏, 어디까지나 평화로워 보이는 성서속의 낙원과도 같은 이 영역.
하지만, 이런 영역에도 한가지 골칫거리라고 해야 할까, 근심거리가 있다고 한다면.
영역의 경계선을 넘어, 목재와 영혼을 노리고 침략해오는 난쟁이 군주의 군세들.
기계로 된 염소가 끄는 마차를 타고, 강철로 된 무기들을 휘두르는 권속의 존재였다.
이그드라실의 성향에 따라, 대부분은 싸움을 싫어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존재들로 탄생한 형제자매들.
그런 그들을 지키는 것은, 강인한 말의 하반신과, 아름다운 인간의 상반신을 가진 그들의 장녀.
위그드라실의 첫 번째 자손. 켄타우로스 드라이어드인 프레이야다.
팔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줄기와 덩굴의 활은 노린 것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 명궁이었고, 말 그대로 그녀의 몸의 일부이기도 했다.
또한, 마력만 있다면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는, 겨우살이의 화살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어떠한 두꺼운 장갑이라도 가볍게 꿰뚫는다.
그녀가 이 마을의 수호자로서의 싸움을 짊어지고 있기에, 그녀의 자매들은 안전한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 프레이야가 클레온과 자리를 비웠을 때로부터 위그드라실의 영역의 시간으로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태양이 없기에 해가 지고 뜨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위그드라실이 잎사귀를 펼치고 닫는 것으로 하늘 위에 떠오른 인공적인 마력의 불빛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그녀가 없는 동안, 천둥 군주 측의 침략군이 영역을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최소한의 위안이겠지.
수단이 없다고는 하지만,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프레이야에 대한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슬슬 마을의 주민들 사이에서도 퍼져 나가던 도중.
차원문이 열리면서, 장녀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며칠만에 집으로 돌아온 감각에, 프레이야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원문이 열린 곳은, 어머니 이그드라실의 바로 옆이었다.
회전하는 마력의 덩굴너머, 이그드라실의 영역과는 전혀 다른 허허벌판의 풍경에서,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천둥군주를 쓰러트리기 위해 함께 힘을 합친 동료들이었다.
"...돌아왔군요, 프레이야."
"네. 위그드라실 님."
거대한 나무에서 빛이 새어나왔다고 생각하면, 일행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름다우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진 여성이었다.
녹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가 주는, 어딘가 쿠온과 비슷한 느낌에 아멜리아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바라보면.
프레이야에게서 시선을 옮긴 위그드라실과 아멜리아의 눈이 마주쳤다.
어디까지나 깊은 눈빛을 가진 그녀의 눈동자에, 어딘가 '두근'하고 울리는 심장의 고동.
아멜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후후."
위그드라실의 웃음을 들은 프레이야는 고개를 갸웃하지만, 이내 조금 어두운 얼굴이 되어서 이야기한다.
"클레온의 동료들을 구하는 데에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클레온이"
"알고 있습니다. 클레온은... 사자와 망념의 영역에 간 것이로군요."
위그드라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어느 정도 예견된 운명이겠죠. 이 영역에 남아있는, 가장 마지막의 어둠……. 그리고, 가장 위험하고 커다란 어둠."
"...위그드라실 님?"
프레이야는 그녀 말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는 듯이 질문하지만, 이내 위그드라실은 고개를 저으면서 그녀의 뒤에 있는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각자 다른 영역에서 넘어온 존재들이다 보니, 하나같이 개성이 강한 이들이 모두 조용한 것은, 이곳에서 넘어오기 전에 프레이야에게 한껏 경고를 받은 덕분이겠지.
특히, 아멜리아에게 한쪽 손이 잡힌 무스는 힘이 계속 빠진다는 듯이 기운 빠지는 신음을 내며 조용히 있을 뿐이었다.
등 위에 페루루카와 시프를 태운 우트가르트.
그리고, 그레이에게 부축을 받는 카시우스.
위그드라실의 시선은, 카시우스에게서 멈춘다.
"아아... 당신이군요. 천둥군주에게 나타난 예언자가."
"...세계수 위그드라실. 당신이 클레온 씨를 돕지 않았더라면, 천둥 군주의 야망도, 추방 영역 어둠과도 싸울 수 없었을 겁니다."
카시우스가 가슴에 손을 올리고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자, 위그드라실은 웃어 보였다.
"대부분 당신의 계획 대로인가요?"
위그드라실의 질문에, 카시우스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한 행위는, 지금 추방 영역의 바깥을 사는 인간들을 위한 행위였지.
엄밀히 말하자면, 이곳에 모여있는 다른 영역의 생존자들에게 있어서는 그 영역을 멸망시킨 주 범인이기도 했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에는 입을 다물어 버리는군. 좋네, 딱 내가 아는 현자다운 태도야.]"
그런 카시우스를 비웃는 것은, 페루루카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페루루카 안쪽에 있는 그의 스승이겠지.
"크로울리..."
위그드라실 역시, 크로울리의 존재를 느낀 것인지 페루루카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로군. 늘 내 사역마를 보냈었지.]"
"네, 가지와 이파리, 그리고 열매를 바라고 말이죠."
위그드라실의 말에 프레이야는 놀란 얼굴이 되더니, 이내 페루루카를 노려보았다.
"[이봐 그렇게 노려보지 말라고. 언제나 허락을 받고 가져갔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영역에 사역마를 보내다니... 그리고, 나 자신도 그걸 눈치채지 못하다니...!"
프레이야는 상당히 못마땅하다는 듯한 얼굴이 되어 인상을 찌푸렸고, 위그드라실은 조용히 그런 프레이야를 말렸다.
"괜찮아요. 그의 경우, 지식욕만 충족되면 다른 영역을 침략하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믿어주고 있었다니 영광이로군. 뭐, 네 말대로지만 말이야.]"
프레이야는 여전히 크로울리에 대해서는 경계를 풀지 못한다는 듯이 그를 노려보았다.
그 때, 아멜리아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기! ...죄송한데, 클레온을 구하려 가야 해요. 위그드라실님께서, 그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는 차원 문을 열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아멜리아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납치된 클레온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눈빛으로 가득했다.
"물론이랍니다. 저는, 이 추방영역에서 어느 영역으로라도 가지를 뻗어, 여러분이 통과할 수 있는 차원 영역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요. ...하지만"
위그드라실은 작게 미소를 지으면, 아멜리아는 움찔, 하고 몸을 떨었다.
그녀의 미소에 공포를 느꼈다던가, 그런 이유는 아니었고, 땅을 기어서 다가온 나무줄기가, 자신의 몸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기분나쁘거나 하는 감각은 없었다, 조금 미끈거려서 익숙하지 않은 감촉이라고 느꼈을 뿐.
줄기의 가장 끝 부분, 조금 넓적한 이파리가 닿는 것은 아멜리아의 배나, 목덜미, 그리고 이마와 같은 부분이었다.
"무, 무슨...?"
"걱정하지 마세요. 그저, 몸 상태를 조사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역시, 제 생각대로 마력소모가 심하군요."
그녀의 말대로, 아멜리아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에딘과의 긴 싸움에서 지쳐있는 상태였다.
도저히 이 상태로, 다음 싸움을 계속할 수는 없겠지.
"클레온이라면 아직은 괜찮아요. 아니, 오히려 지금은 조금 혼자 두어야 할 때이죠."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위그드라실의 말에 아멜리아가 의문을 표하자,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 영역에서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위험을 이겨내기 위해서죠."
"...어디까지 알고 계신 건가요? 위그드라실."
카시우스가 그녀에게 질문하자 위그드라실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이야기한다.
"저는 이 추방 영역에서 가장 오래된 존재입니다. 다른 추방영역의 땅까지, 제 뿌리가 닿아있죠. 그렇기 때문에…. 뿌리에 어떤 '이질적인 존재'가 닿는다면 바로 눈치챌 수 있죠."
"이질적인 존재...?"
그녀가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 아멜리아를 비롯한 이들은 모르는 듯 했지만, 카시우스만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이. 사기꾼. 그리고 장작. 너희 둘이 뭘 꾸미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숨기다 보면 다른 녀석들이 질려버릴 거다."
그 때, 아멜리아에게 붙잡혀서 조용히 있던 무스가 이야기하자, 프레이야는 정신이 빠진 듯 놀란 얼굴을 한다.
"자, 장작이라니! 설마 위그드라실 님을 장작이라고 부른 거냐!? 역시 네 녀석은 용서할 수 없어!"
프레이아는 화살을 꺼내서 무스를 겨누고, 무스는 으르렁대면서 그런 그녀를 지켜보지만.
위그드라실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고개를 저었다.
프레이야는 '크윽...'하고 분한듯한 표정으로 얼굴을 울그락풀그락 하다가, 활을 내리고 뒤로 물러선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그 존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운명이 크게 바뀐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나 그쪽의 현자분과같이 이 영역에 강력하게 엮여있는 존재가 '그것'의 정체를 명확하게 이야기하면... 그것은 즉시 힘을 얻어버리죠."
"...언령 같은 건가?"
시프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질문하면, 위그드라실은 '비슷한 것이라고 해두죠'라고 대답하고는 몸을 돌렸다.
"프레이야. 이 분들이 쉴 수 있는 곳에 안내해 드리렴."
"...알겠습니다. 위그드라실 님."
그 때, 우트가르트는 하늘로 날아오른다.
[미안하지만, 이렇게 넓은 숲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진정되지 않으니 좀 주변을 날고 오겠다. 괜찮겠지? 괜찮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본 자연환경에 신이 난 것인지 날아오르는 것이다.
"잠깐! 그렇게 멋대로...!"
"괜찮습니다. 그도 자신이 살던 환경과 가까운 영역에 도착한 것이 기쁜 것이겠죠. 무엇하면, 당신도 어떤가요?"
위그드라실의 제안을 받은 시프는 '엇...'하고 약간 곤란한 표정을 하다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니, 이곳은 '우리들의 숲과 늪'이 아니니까."
시프의 대답에 위그드라실은 가볍게 미소를 지을 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본체인 거목의 안으로 스며들어 가는 것이었다.
"...들었겠지? 위그드라실 님은 너희가 최적의 컨디션이 되었을 때, 문을 열어주신다는 거다. 알았다면, 얌전히 숙소로 가도록 하지."
마치, 학교 소풍의 인솔자라도 된 것 같은, 프레이야의 말에 '네'하고 일행이 대답하면, 그녀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앞장서서 마을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아멜리아는 그저, 위그드라실을 슬쩍 바라본 뒤, 눈을 감고 자신의 각인을 타고 흐르는 클레온의 마력을 쫓아본다.
확실히, 그는 아직 무사한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건강해진 것 같기도 하고
그 때였다.
각인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클레온의 강렬한 시각정보.
누군가와 알몸으로 껴안고 있는, 그의 모습이.
"...읏...!?"
화들짝, 마력연결을 끊어내면서 놀라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클레온, 설마 지금 상황에서..."
어째서인지 위험한 상황에서 여성과 몸을 섞는 것이 클리셰가 되어버린 그를 생각하면 아멜리아는 조금 씁쓸한 표정이 되었다.
동시에, 가슴의 옛 상처가, 조금이지만 욱신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이번엔, 제가 구하러 갈 테니까요.'
하고, 그녀 나름대로의 투지를 불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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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라는 클레온의 기억을 엿본 직후, 그를 변태라 매도하고 나서 자신의 공방까지 날아서 돌아와 있는 상태였다.
화악 달아오른 얼굴의 열이 식히지 않는 것을 느끼면서 그녀는, 가면을 두고 온 것을 그때가 돼서야 눈치채고 말았다.
"하아~~~~! 겨우 그런 것 때문에 당황하고...! 나도 아직 멀었네..."
그런식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써 보지만, 되살아나는 것은 평정심이 아닌
머릿속에 떠올랐던, 클레온과 자신의 격렬한 정사씬.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건 자신이 아니었다.
다른 세계의 라일라 플레임워치.
클레온의 세계에서, 용사를 납치하려고 계획을 세웠다가.
클레온에 의해 저지당해서... 그 뒤에는 진정한 의미로 클레온의 동료가 된 여자.
자기 자신의 기억조차 확실하지 않은 리치였지만, 클레온의 기억을 읽으면서 그녀가 사용하던 마법들은 아직도 눈에 똑똑히 서려 있었다.
성좌의 마법, 화신의 마법, 순수한 화염의 마법.
가장 첫번째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둘은 지금의 자신은 사용하지도, 생각해내지도 못한 마법이었다.
그런 것의 정보를 얻은 것은 괜찮았다.
문제가 있다면 그 마법을 사용하는 데에는 조건이 필요하단 거겠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은 신념. 그리고 그 신념에서 이어져 나와, 나를 묶어줄 쐐기. 인연."
그런 것을 입에 담더라도, 리치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녀가 되살린 것은 자신의 이름뿐.
'진짜 자기 자신'도, 그녀의 인연도.
지금의 리치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거, 마법사로서 실격이란 거야?"
마치, 다른 세계의 라일라가 자신을 비웃는 듯 했다.
너는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혼자인 이상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자신은 있다고.
리치가 되어 수백 년의 마법 연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클레온이 없는 라일라 플레임위치가 도달하는 한계는,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고 말이다.
"웃기지... 마...!"
라일라는 물을 들이켜던 컵을 벽면에 던지고는 끓어오르는 분노에 머리카락이 붉게 빛났다.
누구도 자신을 얕볼 수 없었다, 자신은, 반드시 새로운 마법의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그걸 위해서라면.
라일라는 냉정한 눈이 되어 고개를 들고.
자신이 뛰어들어온 문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 직선으로 이어진 곳.
그곳에 있을, 그 녀석.
"...어떤 것이라도, 해주겠어. 빼앗아주겠어."
아플정도로 손을 쥐면서, 독기를 품는다.
지고만은 있을 수 없다.
패배는, 승리로 갚아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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