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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332화 (332/506)

〈 332화 〉 회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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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여신은, 고통스러운 감각 속에서 작게 몸을 움직이다가 겨우 눈을 떴다.

자신이 있는 곳은 대성당에 있는 옥좌.

등 뒤에는, 저주받은 역십자가 땅에 처박혀 있는 채.

눈 앞에 펼쳐진 난장판은, 성당의 의자가 몇 개씩이나 어지럽혀져서 자신의 길을 막고 있는 것이 보였다.

떠오른다.

오래된 것이 아니 바로 직전의 기억.

메이드가 일으킨 폴터가이스트 현상으로, 성당의 내부를 엉망으로 만들고 자신을 방해했다.

그녀가 지키려고 하던 것은 무엇이었지?

'검은 마검사'

아아. 그렇지, 그자이다.

자신이 천둥 군주의 땅에서 데리고 와서 살려낸 마검사.

처음 봤을 때, 어째서 그 남자에게 흥미를 느낀 것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저, 마음속에 조절할 수 없는 충동이 일어났을 뿐.

'충동은 변화를 일으킨다'

알고 있어. 알고 있으니, 자신의 손으로 고쳐보려 한 거야.

지끈거리는 머리에, 손을 들어 이마로 올리려고 하지만, 몸이 전혀 움직이질 않는다.

마치, 잠들어 있는 동안 몇십, 아니 몇백 명 분의 일을 혼자서 한 것 같이 지쳐 있었다.

'잠들어...'

잠들었다.

이 몸이 되고 나서부터, 대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겪지 못한 현상이었을까.

응당 생명체라면 당연히 일어나야 할 현상임에도, 나는 일부러 생명체이기를 포기한 존재인 것처럼 수면이라는 필수조건을 포기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식사도, 호흡도 필요없는 몸.

한 영역의 지배자가 된다는 것은 생물로서의 종을 초월하여 더 높은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근본 자체는 바꿀 수 없다.

내게 힘을 부여하는 근본은­ 피. 혈액이다.

전생하기 전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존재에서 비롯됐는지는 인식하고 있었다.

담피르.

뱀파이어와 인간의 혼혈.

그 사이에 사랑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흡혈귀의 변덕으로 태어난다.

피를 마시지 않아도, 죽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흡혈귀와는 다르게, 태양을 극복하기도 했다.

마늘에도, 십자가에도 약하지 않다.

그러나, 흡혈의 공백이 오랫동안 이어지면, 분명하게 영향은 나타난다.

정신이 혼탁해지거나, 몸을 가누기 힘들어지거나, 환청을 듣거나, 환영을 보거나.

인간으로 따지면, 체력이 떨어졌을 때와 비슷한 것이다.

이 몸은 필멸자를 초월하여 불멸자가 되었어도 여전히 피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힘의 열화가 필멸자일 때보다 훨씬 느려졌을 뿐.

'목이...'

갈증이 느껴졌다.

이 갈증은, 자신이 의도적으로 육체의 감각을 차단해도 영혼에 남겨진 갈증이다.

흡혈귀라는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존재라 하더라도, 육체에 불합리함 보다, 영혼의 불합리함에 고통을 받는다.

이 갈증을 수백 년 동안 느껴도 버틸 수 있던 것은, 스스로 자아를 죽여두었기 때문.

피를 향한 갈증과 욕망에 폭주하지 않도록.

애당초, 이곳은 변화하지 않는 죽음의 땅.

신선한 혈액을 가진 존재 따위는 없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바라봤자 별수 없기에, 그녀는 그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클레온을 본 순간, 그녀는 자신의 목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영역의 지배자가 되고 난 뒤로는, 처음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역시, 나는 그 남자를 알고있­'

클레온에 관한 것을 떠올린 다음 순간, 그녀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던 몸에, 겨우 다시 마력이 돌면서 팔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아니... 그런 것은 용납되지 않아. 과거, 기억, 감정... 그 모든 것이, 이 세계의 파멸을 초래한다면­"

여신의 의지가 깃든 붉은 눈동자가 가면 속에서 빛났다.

그렇다면, 그 남자를 붙잡을 필요가 있다.

아직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지만, 이 몸이 회복되고 나면­

[그 남자의 전신에서 모든 혈액을 뽑아내 우리들이 취하는 거다.]

"그래... 그렇게 하면 내 갈증도­"

자신의 사고에 끼어든 목소리.

소름 돋을 정도로 사악하고, 낮은 그 목소리에 그녀는 온몸에 오한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옥좌 뒤, 거꾸로 박힌 십자가에 달라붙어 지워도 지워도 끊임없이 생겨나는 그 살점들.

자신에게만 들려오는 목소리로, 힘에 대한 유혹과, 자신을 부활시킬 것을 종용하는 그를.

지금 당장에라도 옥좌에서 일어나, 그것을 찢어발기지 않으면.

"큭...!"

하지만, 빠져나간 힘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 몸을 움직이는 것은 힘든 상태이다.

자신이 움직일 수 없다면, 수하의 언데드들을 사용하면 된다.

리치와 데스나이트라면, 작은 살점 정도라면 그들의 실력만으로도 태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영역의 주인으로서 이어진 정신의 실로, 그들을 불러본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였다.

'...그 둘에 대한 간섭력이 약해졌어...?'

마치, 그 둘과 자신 사이를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설마­'

불안한 상상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001

몇번이고 커다란 폭음이 울리면서, 검은 그림자 두 개가 서로 뒤엉키고 격투를 벌이고 있었다.

팔과 다리에 검은 마력을 휘감은 클레온.

그리고, 손에 마법이 깃든 검을 휘두르며 대응하고 있는 해골의 검사.

손목이나, 발목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마력을 이용하여 따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클레온.

게다가 떨어져 나간 부분끼리 다시 붙으면 원래대로 돌아오는 재생능력까지 갖추고 있는 까다로운 적이다.

"하앗!"

클레온의 돌려차기가 휘둘러지면, 해골 검사의 두꺼운 갑주에 둘러싸인 팔이 그것을 막는다.

마력을 감고 있었기에 갑주와 비슷한 강도까지 강화되어 있었지만, 클레온의 공격은 실패한 것 처럼 보였다.

"플레임 버스트!"

하지만, 다음 순간 다리와 팔이 맞닿은 부분에서 마법의 전조가 일어나면.

해골의 검사는 막아냈던 팔을 밀쳐냄과 동시에, 검을 세워서 자신의 몸을 지킨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일어난 강력한 화염의 폭발.

아까 전, 클레온이 공중에서 이동할 때 사용했던 것 처럼, 몸 일부분에서만 국소적으로 폭발을 일으킬 수 있도록 개량된 마법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근접전에서도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다.

클레온으로서는 좀 더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갈라테아가 없는 지금,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종류는 한정되어 있었다.

'체술의 재현도도 떨어진 것 같고... 수행 부족이군.'

스스로의 어설픔에 혀를 차면서, 클레온은 일어난 폭발을 검의 마력을 이용해서 막아내는 해골을 보면서, 거리를 벌리지 않고 곧바로 공격으로 이어나갔다.

곧바로 손날에 마력을 감아 해골의 왼쪽 옆구리를 노렸다.

방금 전, 폭발의 충격을 완전히 흡수하지는 못한 것인지, 왼팔의 갑주가 떨어져 나간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떨어진 부분을, 계속해서 노리는 것은 당연한 전술이었다.

소용돌이 치는 마력은, 마치 칼날의 폭풍같이 되어서 클레온의 손의 주변을 맴돌다가­

해골의 옆구리에 닿은 순간 분쇄기가 되어서 그 부분의 갑주를 깎아내려 한다.

하지만, 재생이 채 되지 않은 해골의 왼팔이 움직이더니, 그대로 클레온의 마력을 감은 손을 붙잡는다.

새하얀 백골이 갈려나가면서 가루가 되어가는 것이 보였는데도, 그 손은 멈추지 않았다.

특유의 괴력으로 클레온의 손을 찌그러트리려는 듯이 강한 악력으로 쥐더니­

그대로, 클레온을 몸째로 들어 올리더니 휘둘려서, 땅에 내려친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클레온의 등이 땅에 부딪히면서 커다란 진동이 일어났다.

"크윽...!"

고통을 느끼지 않는 적이라는 것은 성가신 법이다.

게다가, 스스로의 몸이 파괴되는 것을 개의치 않는 적이라면 더더욱.

마치, 클레온이 어떤 공격을 하더라도, 재생하면 그만이라는 듯이 상대 해 오니, 재생을 늦출 방법이 없는 한 클레온의 공격은 전부 이렇게 대응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고를 머릿속에서 굴리는 도중에도, 해골의 공격은 멈출 줄을 모른다.

곧바로, 땅에 처박힌 클레온의 머리를 향해 대검을 내리꽂았다.

"클레온!"

다시 한 번, 메이드의 비명 같은 것이 들려오지만, 클레온은 재빠르게 몸을 굴려서 어떻게든 그 공격에서 벗어났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해골의 움직임은 하나하나가 위협적이었지만, 동작과 동작 사이에 틈이 크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마저도 적의 공격을 받아도 별 피해가 없는 몸과 시너지를 일으키기에 약점다운 약점은 아니었지만.

황급히 몸을 일으킨 클레온.

"...뭔가, 의미 없는 공방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은데."

듀라한은, 그런 클레온의 움직임을 보면서 조용히 평가했다.

"저 해골은 피해를 받더라도 계속해서 재생해. 그만큼, 강력한 원한과 집착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그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정면에서 승부를 겨루려는 이유가 뭐지?"

"클레온, 괜찮은 것 맞죠…? 방금 전 공격도 그렇고... 클레온만 다치고 있는 것 같은데..."

메이드의 걱정에, 듀라한은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작 클레온의 입가에는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클레온의 시선이 가있는 곳은, 방금 전 클레온의 수도가 망가트린 해골 검사의 손이었다.

흩어졌던 골분(??)이, 마치 안개처럼 흩어져 있다가 다시 손의 위치로 모이면서 손가락이 빠르게 재생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시간이 되돌아가고 있는 것 처럼 재생하는 그것은, 평범한 적이었다면 상대방을 불사신으로 보이게 했을 것이다.

"예상대로군."

클레온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이번에는 자세를 바꾸었다.

한 손에는 마법을, 그리고 다른 손에는 검은 마력의 소용돌이이다.

하지만, 아까까지 사용하던 라일라의 화염 마법이 아닌, 에메랄드 빛을 띄운 쿠온의 바람 속성 마법이었다.

양쪽 손에 휘몰아치는 마력은 위협적인 소리를 내면서 공기를 찢는다.

그 위협적인 마력의 형성에, 해골 검사는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검을 높게 치켜들더니, 주변을 향해 마력을 퍼트렸다.

클레온도, 그 현상을 그저 지켜보지 않고 차분히 호흡을 고르면서 앞으로 뛰어들면.

뒷 쪽에서,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빠르게 쇄도하는 것이 느껴졌다.

"읏...!"

황급히 몸을 꺾으면, 자신을 향해 날아온 것이 바로 조금 전까지 뒤에 박혀 있던 녹슨 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게, 하나둘이 아닌, 주변에 꽂혀있는 모든 검이 모여드는 것이었다.

날아온 검들은, 해골검사의 츠바이핸더에 달라붙으면서, 마치 고슴도치처럼 바깥을 향해 날을 세운다.

마치, 한몸이 된 것 처럼 츠바이핸더의 마력이 달라붙는 검들에 옮겨가면서 녹이 슬었던 검들 역시 마법 검의 성질을 띠게 된다.

"...하, 그렇게 하면 확실히 부러지지는 않겠지."

클레온의 눈앞에서 완성된 츠바이핸더의 새로운 모습은 얼기설기 달라붙은 수많은 검이 하나의 검을 만들어내고 있는, 고슴도치 같은 형태의 검이었다.

무게는 물론, 굵기와 길이마저도 더 거대해졌기 때문에, 잘못 닿는다면 그 자리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었다.

"...그게 전력이라는 거로군. 당신, 땅에 묻혀있는 병사들의 대표격­ 뭐, 대장 같은 건가?"

클레온의 말­ 하지만, 자아가 없이 집착만이 남은 언데드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안된다면, 어쩔 수 없지. 성불시켜 주마...!"

다음 순간, 클레온의 몸이 석양에 진 그림자처럼 길게 늘어진다.

잔상이 생기면서, 그 몸이 길어지는 것 처럼 보인 것이지만, 그만큼 빠른 속도로 달려나갔다.

순식간에 해골 검사의 품으로 파고든 클레온, 오른손의 검은 마력이 담긴 손으로, 다시 한 번 해골 검사의 오른쪽 다리를 내리쳤다.

카가가각!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가루가 되어가는 해골 병사의 다리.

하지만, 곧바로 재생하려는 듯이 주변에 흩어진 가루들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모여들려고 하면­

클레온의 왼팔에 감겨있던 바람의 마력이 터져나가면서.

해골 검사의 분쇄된 가루들이 순식간에 저 멀리 떨어져 나갔다.

"...!"

듀라한은, 그 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떨어져나간 가루가, 되돌아오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게 되면서 재생의 속도가 확연하게 느려진 것이다.

"설마, 재생되는 걸 알면서도 계속 정면에서 덤볐던 건... 재생하는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서인 건가...!"

"이쪽은 재생 괴물 따위 몇 번이나 상대해 봤다고...!"

클레온의 한어린 외침. 다리의 재생이 늦어지면, 당연하지만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해골 병사의 몸이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는 한쪽 다리로 간신히 자리에 서더니, 클레온을 향해 고슴도치검을 휘둘렀다.

"큭...!"

예상했던 대로, 충격파가 강해진 것도 있었지만.

클레온의 오른 팔에 휘감긴 마력과 마찬가지로, 이쪽은 닿은 것을 날카롭게 관통하는 마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력검에 붙어있는 검들의 수만큼, 적의 원군이 붙어있어서 자신을 포위한 듯한 감각이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다!"

몸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개의치 않고, 클레온의 양팔이 동시에 휘둘러지며 해골 검사의 몸을 분쇄하고, 바람을 일으켜서 그 가루를 떨어트려 놓는 것을 반복한다.

그에 호응하듯이, 몸의 부분이 점점 떨어져 나가는 데도 불구하고, 해골검사의 손은 끊임없이 휘둘러지며 클레온의 몸에 상처를 남겼다.

두 전사가 포효하듯이, 서로 어느 쪽이 먼저 쓰러지는가를 대결하는 듯.

검과 마력의 폭풍이 몰아치고 나면­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전장 속에서, 클레온은 마침내 그 오른팔로 해골의 심장 부분을 꿰뚫는다.

그 안에 존재하는, 언데드의 핵.

클레온의 마력에 닿은 순간, 그 핵은 갈려나가듯이 깨져버리고.

핵을 잃은 언데드은 서서히 눈에서 안광을 잃더니,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하아... 하아..."

승리한 클레온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곳저곳에 상처를 입은 채였고, 마력의 소모 역시 심했다.

하지만, 해골검사가 남긴 츠바이핸더에서 붙어있던 검들이 떨어져나가는 것을 보고, 자신의 승리를 직감했다.

"...어이!"

그리고, 듀라한을 돌아보면서 이야기한다.

"이걸로 된 거겠지...!"

"...훌륭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실력이야, 마검사 군."

듀라한은 웃으면서 클레온에게 다가오더니, 그의 몸에 손을 올리고 자신의 마력을 불어넣는다.

흑마력과는 다른 따뜻한 기운이, 클레온의 몸을 치유했다.

'...치유 마법...'

"내가 치유 마법을 쓰는 게 이상한가?"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면서 땅에 박힌 채인 츠바이핸더를 잡아들었다.

[이 검을 잡았다면... 우리들의 회한... 그대에게 맡긴다...]

그 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생각하면, 클레온은 갑작스럽게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환영을 보았다.

그것은­ 이 땅에 묻힌 존재들의 '종말의 때'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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