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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335화 (335/506)

〈 335화 〉 이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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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라일라의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그녀를 돌아본 엠마의 공허한 눈에 빛이 돌아온다.

"...어?"

그리곤, 자신이 지금 있는 위치와,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라일라.

손에들고 있는, 어울리지 않는 도구를 바라보더니, 덜컹하고 마음이 주저앉으며 손에서 삽을 놓쳐버리고 만다.

"어, 어째서 이곳에..."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엠마. 이 마을에 온 지 4년... 설마, 네가 유적을 파헤치고 있었을 줄은..."

라일라의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에, 엠마는 부정하듯이 팔을 휘둘러 라일라의 손을 뿌리치고는 머리를 감싸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인지부조화로 인한 패닉으로, 몸의 곳곳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오면서, 깨질듯한 두통이 그녀를 엄습한다.

"...엠마?"

라일라 역시, 그런 엠마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불안에, 또 다른 불안이 더해지면서 그녀의 몸 상태를 마력시를 사용하여 살핀다.

인간이 평소에 볼 수 있는 것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시야로 전환되면.

라일라는, 엠마의 안쪽에 자리 잡은 작지만 확실한, 이질적인 마력을 확인한다.

그 마력은, 마치 기생충과 같이, 그녀의 심장 위치에 자리잡은 채, 신경을 타고 전신으로 아주 가느다란 실과 같은 줄기를 뻗어서 그녀의 손과 발, 그리고 정수리까지.

몸의 곳곳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마력에 의한 침식... 이런 걸 눈치채지 못하다니...'

엠마는, 일행 중에서 가장 마력에 대한 적응력이 약한 인간이었다.

그것은, 그녀 본인이 소유한 마력의 양도 적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만약, 엠마의 마력량이 미세하게나마 변했다면, 일반인의 몇 배는 마력에 민감한 라일라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그렇다면, 이 마력은 라일라와 엠마가 처음 만났을 때, 아니, 그보다도 전부터 그녀의 안에 있었고.

엠마도, 라일라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씩, 미세하게 그녀의 몸 안에 퍼져 나가 그녀를 침식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라일라와 엠마가 알고 지낸 지도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마치 의지를 갖춘 듯이 엠마의 몸을 침식한 마력.

불길하고도, 섬뜩하면서도, 끈적한 피와 같은 마력이었다.

문득, 라일라는 여행의 도중 엠마, 그리고 일레누와 함께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 클레온에게 설명을 들었던 것을 떠올린다.

중간 과정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어째서인지 말을 삼갔지만, 엠마는 원래, 어떤 마을에 흡혈귀에 의해 세뇌되어 그의 메이드로서 일한 경력이 있는 여성이었다.

세뇌, 피, 그리고 엠마의 몸에 잔류한 마력.

퍼즐의 조각이 조금씩 맞춰지고 나면, 라일라는 곧바로 엠마의 몸에 손을 올린다.

"...미안, 엠마. 조금 아플지도 몰라."

"라일라...?"

라일라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아직 눈치채지 못한 엠마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시야가 어두워지는 것을 보았다.

정확하게는, 라일라의 얼굴이 자신에게 가까워지면서, 그 시야를 전부 가린 것이었지만.

그리고, 입술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아픔.

라일라가 말한 '아플지도 모른다'라는 것은 이것이었을까.

"읏...!"

클레온을 제외하면 누구와도 입술을 맞댄 적이 없던 엠마는, 그제야 라일라가 자신의 입술에 그녀의 입술을 가져다 댔음을 알 수 있었다.

당황하여 때어내려고 하지만,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시킨 라일라의 힘은 강하게 그녀의 몸을 구속하고 있었고, 그녀의 송곳니가 라일라 자신의 입술과 엠마의 입술을 깨물어서­

입맞춤과 함께 서로의 피를 교환하려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제대로 된 비명 하나 내지르지 못하면서, 라일라의 의도대로 피를 삼켜버리고 마는 엠마.

그러자, 라일라와 엠마의 사이에 존재하는 마력적인 장벽에 작지만 확실한 통로가 생성된다.

'...왔다...!'

그리고, 라일라는 예상했던 대로 그 통로를 틈으로 자신의 안으로 파고들려 하는 엠마의 안에 있는 부정한 마력의 흐름을 눈치챘다.

역시, 엠마의 안에 자리잡은 그 마력은 마치 의지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와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마력에 대한 저항력이 없는 엠마와는 다르게, 라일라는 마력에 관해서는 대륙의 그 누구보다도 철저하면서도 처절한 공부를 반복하며 그 제어 능력을 갈고닦아온 마법사이다.

억지로 자신의 안을 파고들어 오려고 하는 마력을 역으로 밀어내고, 자신의 마력을 주입하는 일 따위.

라일라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뭉쳐서 응어리진 피와 같은 끈적한 마력은, 라일라의 불타오르는 듯한 뜨거운 마력에 의해 밀려 나간다.

그리고, 그녀와 엠마 사이에 만들어진 마력의 통로를 통해 어떻게든 그 마력을 꾸역꾸역 밀어 넣으면, 엠마는 또 다른 자신의 것이 아닌 마력이 자신의 사지를 타고 흐르는 감각과 함께.

강한 열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태우는 듯한 감각을 받아 자리에 주저 앉았다.

사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라일라의 화염의 마력이, 그녀의 안에서 가지를 뻗어있던 부정한 마력을 전부 불태워서 소멸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염이 가진 파괴의 힘은, 때때로 사람들의 사이에서 부정을 태우는 정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것은 단순한 미신이 아닌,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이야기였으며.

그러한 성질은 화염의 마력에도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엠마의 몸을 정화한다.

물론, 몸에서 발생한 열 때문에 엠마는 괴로운 듯이 몸을 감싸고 전신에서 땀을 흘렸고.

라일라 역시 그녀에게 마력을 주입하기 위해, 자신의 마력을 아끼지 않고 활성화한 덕분에 탈력감과 피로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이마에 난 땀을 닦아낸다.

"...네 안에 남아있던 건, 흡혈귀의 마력이야. 클레온이 널 세뇌에서 해방했을 때, 그의 마력이 강하게 남아있어서 흡혈귀의 마력은 거의 사라진 것 같았겠지만... 어찌 보면, 성질이 비슷한 흑마력이니, 클레온의 마력에 섞이듯이 잠복해 있었던 것이겠지."

이것에 관해선, 클레온이 나쁘다거나, 엠마가 둔감한 것이 나쁘다거나 하는 수준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만큼, 그들이 상대한 흡혈귀가 집요하고, 끈질긴 존재란 것일 뿐이다.

"아마, 그 마력은 너를 조종해서, 이 유적에 묻혀있던 윌헬미나의 유물을 손에 넣으려 한 것이겠지. 이 4년 동안, 조금씩... 우리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말이야."

엠마가 주변의 인물들로부터 받는 신뢰, 그리고 모험에서 손에 넣은 공격을 피하는 기술이나, 사람의 눈을 피해 움직이는 기술 등을 전부 활용한 결과였다.

"하아... 윽..."

엠마는 조용히 라일라의 말을 들으면서, 서서히 몸에서 열기가 빠져나가면서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안에 남아있는,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응어리마저도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것이 설마 흡혈귀의 마력이었다는 것은, 그녀조차도 지금 처음으로 안 것이지만.

"저... 어떻게 하면 좋죠...? 마을 사람들이랑... 여러분꼐... 너무나도 많은 폐를..."

그러면서 그녀의 머리속을 채우는 것은, 흡혈귀의 마력에 당해 조종당했다는 사실 때문에 모두의 신뢰를 배신해버렸다는 사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죄책감이었다.

그녀 자신이 마력에 조금 더 민감하였더라면, 스스로의 이상을 느끼고 다른 이에게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안에 존재한 흡혈귀의 마력은, 그런 위화감 자체를 그녀에게 느끼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그녀의 몸을 조종했다.

유적에서 땅을 파는 일을 하고 나면 흔적이 남을 법도 한대, 이미 전신을 갉아먹고 있던 마력은 그녀의 신진대사를 조종하여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도록 했고.

유적으로 향했다가 저택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준비해둔 여벌의 옷으로 갈아입어서 흙먼지조차 묻어있지 않게 했다.

게다가, 늦어진 시간은 다른 일을 했다는 것으로 인식을 조작하여 엠마 본인도 스스로가 유적에 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한 것이다.

라일라는 문득, 죽은 흡혈귀의 남아있는 잔류 마력만이 그 정도로 고도의 세뇌와 조종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우선은 엠마를 진정시키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여, 그런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우선, 저택으로 돌아가자. 이 일은, 우리만 아는 일이야. ...일레누가 기다리고 있어."

상황을 경비대에 보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겠지.

흡혈귀의 세뇌를 받아서 유적을 뒤집어엎고 있었다는 일을 경비대가 전부 이해해줄 것이라고는 라일라도 생각하지 않았다.

4년 동안 잡히지 않은 범인.

엠마가 이제 유적을 출입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흔적이 끊겨서 그들도 추적을 그만둘 것이다.

라일라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엠마가 떨어트린 삽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특징 없는 평범한 대삽이었지만, 엠마의 흔적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른다.

라일라는 곧바로 손가락을 튕겨 그 삽을 화염에 감싸게 했다.

나무부분은 타올라 잿가루로 바뀌었고, 강력한 화염은 쇠로 된 부분마저도 그 자리에서 녹여 땅의 밑으로 스며들게 했다.

그리고, 엠마를 부축하여 하늘로 떠올라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저택으로 돌아갔다.

입막음을 해 두었기에, 엠마가 다른 일행들에게 유적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저택에서도, 일레누의 몸 상태가 악화하여간다는 걱정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표정은 마냥 밝을 수만은 없었다.

부디 이 상태에서, 새로운 고민거리가 나타나지 않기만을, 그리고 일레누가 마음을 고쳐 누군가의 피를 다시 한 번 마셔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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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램은, 바로 다음 날 아침에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그들이 지내는 저택의 문을, 아침 일찍부터 누군가가 두드려왔다.

어제 있던 일 때문에 바짝 긴장하고 있던 라일라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노크 소리에도 커다랗게 반응하며 베아트릭스의 눈길을 끌었다.

방문자를 마중 나가려던 베아를 제지하고, 경계의 태세로 현관의 문으로 다가가 살며시 문을 열면.

그 너머에 보인 것은, 일레누와 비슷한, 170㎝를 넘은 장신의 여성이 서 있었다.

머리카락은 금발이었고, 눈은 파란색.

반짝이는 금발의 끝이, 백금색으로 빛나는 것은,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신성마력의 증거이기도 했다.

라일라는 처음에, 그녀가 누구인지 눈치채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내 그 얼굴의 생김새에서 아직 앳돼 보이던 옛 지인의 면모를 발견하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솔리나?"

"라일라 씨, 오랜만이에요."

그녀를 찾아온 것은, 솔리나였다.

"네가 어째서 여기에..."

라일라는 이 타이밍에 갑자기 나타난 솔리나를 어쩔 수 없이 경계하며 그녀를 마냥 반기지만은 않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솔리나로서는 그저 3년 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옛 지인을 찾아온 생각이었기에 그런 라일라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는지 조금 쓸쓸한 듯한 표정이 되어 대답했다.

"성기사단의 임무를 받아서 돌아왔어요. 오늘 아침 일찍... 그래서, 여러분께도 인사를 드리려고 했던 건데... 혹시, 아직도 3년 전의 일을 마음에 두고 계신 건가요?"

무슨 이야기인가, 라일라는 잠시 생각하다가 3년 전, 솔리나가 자신을 유적을 멋대로 드나드는 범인으로 생각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미안,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신경이 좀 날카로워져 있었을 뿐."

괜히 가시를 세운 태도를 유지하면, 그녀로부터 의심을 살 수 있다고 판단한 라일라는 가벼운 사과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리스 한테서 이야기를 들었어요. 일레누 씨,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지셨다고..."

"...뭐, 그렇지."

확실히, 일레누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도 지금 라일라의 기분을 날카롭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라일라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솔리나의 모습이었다.

3년 전, 마을을 떠났을 때의 그녀는 자기 오빠와 같은 갈색의 머리카락에, 녹색의 눈을 하고 있었다.

금발의 푸른 눈이라니, 그런 건 마치 왕도 귀족들의 상징과도 같은 외견이 아닌가.

인종 자체가 바뀌어 버린 듯한 그녀의 모습, 게다가 키도 크게 성장하여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그런 그녀의 안에서도, 어느정도 옛 모습의 흔적이 남아있었기에 라일라도 겨우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지만...

라일라의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솔리나는 씁쓸한 얼굴을 하면서 자신의 머리카락에 손을 올렸다.

"...역시 신경 쓰이나요, 이 머리카락."

"머리카락뿐만이 아니야. 그 눈의 색도 그렇지. 내가 알기론... 왕도에 '성기사단' 시험을 보러 가서 그대로 입단까지 한 걸로 알고 있는데. 성형수술을 받은 건가?"

라일라의 말에 솔리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리스와 같은 말을 하네요... 수술을 받긴 했지만, 성형은 아니에요."

"...그럼?"

라일라의 질문에, 솔리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조용히 이야기했다.

"...조금 상담 드릴 게 있어요. 함께 말씀드릴 테니까, 저택의 안에서 이야기해도 될까요?"

솔리나의 말에 라일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에 대한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솔리나와 라일라, 개인적인 관계는 그렇게 양호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두 사람만의 관계였다.

베아나 엠마, 일레누와 솔리나는 마을 내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라일라의 시선은, 솔리나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3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의장용의 검이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의장용이라고 하더라도 성기사단의 정식 무기 중 하나로, 평범하게 실전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제조된 것이었지만.

그것을 평소에도 차고 다니는 것이 가능한 것은, 실력과 활약도를 인정받은 성기사뿐이라고, 라일라는 알고 있었다.

'괜한 경계심을 발휘해서, 의심을 받는 것보다­'

결국, 라일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저택의 안으로 들여보냈다.

문이 닫치면, 라일라를 뒤에서 지켜보던 베아트릭스도 놀란 얼굴이 되어 솔리나를 향했다.

"솔리나...?! 마을에 돌아왔구나!"

"베아 씨. 오랜만이에요. 베아 씨도 바로 알아봐 주시는군요."

그 사실이 조금 기쁘다는 듯이 솔리나가 웃으면, 베아도 '물론이야, 아직 얼굴이 그대로인걸' 하고, 상냥하게 대답하며 그녀를 맞이해 주었다.

"엠마 씨와 일레누 씨는..."

"엠마는 아침 일찍 여관에 일하러 나갔고. 일레누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어."

라일라의 대답에 솔리나는 그녀도 일레누가 걱정된다는 듯이 조금 어두운 얼굴이 되었다.

"...괜찮다면 제가 좀 상태를 봐도 될까요? 성기사단에서 치유 마법을 몇 개 배웠어요."

"치유 마법으로 치료될만한 상태가 아니란 거, 잘 알잖아?"

라일라가 딱 잘라 이야기하면, 솔리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일레누의 몸 상태는 흡혈이 아니면 해결되지 않는 것일뿐더러, 신성 마력을 대량으로 함유한 치유 마법은 흡혈귀의 피가 섞인 일레누에게는 오히려 공격 마법이나 다름이 없었다.

"일레누의 상태를 보러 온 건 아니지? 부탁할 일이란 건? 그 머리카락이랑 눈의 색은 대체 어떻게 된거야?"

라일라는 그녀를 빨리 돌려보내기 위해서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했었다.

그런 라일라를 보며 베아트릭스는 역시 조금 이상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지만, 그렇게나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않았든가 하고 생각하면서 우선은 흘려넘긴다.

베아트릭스 본인도, 솔리나의 그런 변화가 신경 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 이건 '가호 이식 수술'의 영향이에요."

"... 가호 이식 수술? 처음 듣는 용어인데."

라일라도 베아트릭스도, 본분이라 할 수 있는 학자로서의 호기심이 동했는지, 자연스럽게 그녀의 말에 집중하게 된다.

"네. 성자의 가호 교단 내에서도 최근에나 알려진 기술이라... 뛰어난 신성 마력을 지녔던 인물의 가호를 재현한 각인을 만들어서... 그걸 이식하는 거죠."

그 말을 들은 베아트릭스와 라일라는 놀랍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솔리나는 슬쩍, 손을 들어서 목덜미를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확실히, 각인과도 같은 연한 금빛의 흉터와도 같은 것이 떠올라 있었다.

"가호를 이식받으면... 그 가호의 원래 주인과 비슷한 외견이 된다고 해요. 특히, 가호와의 궁합이 좋으면 좋을수록."

"...그래서 머리도 눈도 다 바뀌었다는 거네..."

베아트릭스는 감탄했다는 듯이 중얼거리면서, 자신들이 세상과 거의 단절하다시피 하며 지내는 동안, 그런 기술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 ... 마냥 그렇게 감탄할만한 일이 아니야, 베아. '가호'를 재현해서 이식한다고 했지? 성자의 가호 교단에서 말하는 가호의 안에는, 성자가 가지고 있는 마력적 능력... 즉, 우리들 마법사들이 말하는 '마력 신경'이라는 거야. 그걸 인공적으로 재현해내는 것은 인간의 기술로는 불가능해."

"아, 그런가... 그럼­"

베아트릭스도 라일라의 말을 듣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 조금 어두운 표정이 되어 솔리나를 바라보았다.

솔리나도 두 사람이 무얼 이야기하려는지 알고 있다는 듯, 어두운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이식하는 각인을 위해 사용되는 가호­ 여러분이 말씀하신 '마력 신경'은 재현할 인물의 시신을 해부해서 만들어진다고 들었어요."

"...시신, 말이지..."

라일라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면 베아와 솔리나는 그녀를 바라본다.

"...아니, 성자의 가호 교단이니까 말이야. 너 같은 사람을 양산하겠다고 멀쩡한 고위 성직자를 잡아다가 각인을 만들어 내는 건 아닌가 해서."

"라일라!"

베아의 탓하는 목소리에 라일라는 입을 다물지만, 솔리나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이렇다 할만한 반박이나, 부정을 말하지 못했다.

"...지금 건 관계없는 이야기였네. ...그래서? 너는 누구의 가호를 이식 받은 건데?"

"이름도 신분도 알려주지 않으셨지만... 가호를 이식받을 때 머릿속에 가호의 원래 주인의 기억이 조금은 흘러들어왔어요. 어딘가, 높은 탑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았죠."

"성직자나 성기사가 아니었다는 거야?"

의외의 사실에 라일라가 질문하면, 솔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아는 건 그게 전부에요. 그녀에 관한 것은 탐색하지 말라는 단장 명령이 있었던 터라..."

"아무리 생각해도 구린 냄새밖에 나지 않는데..."

라일라의 말에 동의하며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는 베아트릭스.

아무리 타인을 의심하기 싫어하는 성격인 그녀라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호를 이식받고 나서 신성 마력을 다루는 힘이 증가한 것은 확실해요. 이걸로,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고­"

"...그런 이야기는 됐어. 별로, 널 탓하려고 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런 수술을 받을 정도로 성기사단 안에서 인정을 받았단 건가."

시골 마을 출신의 어린 소녀가 받기에는 조금 파격적인 내용의 수술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것만도 아닌지, 솔리나는 어딘가 죄책감 있는 얼굴로 이야기한다.

"...저는 수술법 확립을 위한 실험 실험체로서 자원했을 뿐이에요."

"...너 바보야!? 타인의 신경을 떼어내서 만든 각인 같은 걸 이식받았다가 거부 반응이 일어나면... 반신불수가 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죽는다고!"

라일라는 드물게 화를 내면서 탁자를 내리치고, 솔리나는 조금 놀란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야 그 표정은?"

"아뇨... 지금, 걱정해 주신 건가 해서..."

"걱정 같은 게 아니야! ...하아. 됐어. 그 부분에 관해서는 대충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았으니까... 다음은 본론이네. 부탁할 일이란 건 대체 뭐야?"

라일라의 말에, 솔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성기사단에서 이 마을의 근처에 있었던 유적을 '완전 봉인'하라는 명령을 내렸어요."

성기사단이 이야기하는 완전 봉인이라는 것은, 단순히 위험한 것에 뚜껑을 덮어서 묵혀두는 것이 아닌, 그 안의 내용물을 완전히 없애버리거나, 절대로 열리지 않을 특수한 봉인을 펼치는 것으로 그 후에 일어날 위험요소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단어였다.

"...갑작스럽네."

"제가 계속 부탁했거든요. 물론, 시골 변방의 유적에 인원을 나눌 여유는 없다고 해서..."

"...그래서?"

"제가 혼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계급이 될 때까지 진급해서 임무를 받았어요."

묘한 구석에서 근성을 발휘하는 솔리나였다.

...아니, 사실 묘한 구석도 아니겠지.

3년 전, 유적에 누군가가 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계속해서 신경 쓰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의 오빠인 리스가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것도.

유적에 남아있는 흡혈귀 윌헬미나의 유물 같은 것이 사람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씨앗이라고 하면.

그 씨앗을 없애버리는 것이, 그녀로서도 가장 안심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파견된 단원은 저 혼자에요."

"설마, 네 부탁이라는 게 그 유적을 봉인하는 것을 도와달라는 이야기야?"

고개를 끄덕이는 솔리나.

"물론, 보수도 낼 예정이에요."

라일라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생각한다.

이 타이밍에 그녀가 나타난 것을 보고, 유적에 출입하던 것이 엠마라는 사실을 들키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유적 자체를 완전히 봉인하게 된다면, 더는 유적 출입범에 대한 수색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엠마를 지키는 쪽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다.

"... 역시 힘든가요?"

라일라의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본 솔리나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베아트릭스는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물론 도와줄게. 우리도 마을 사람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편이 좋으니까. 그렇지 라일라?"

"...그래. 뭐. 그 정도는 해줄 수 있겠네."

어디까지나 흥미는 별로 없다는 투로 이야기 하는 라일라.

하지만, 이것으로 괜찮은 것이겠지.

지긋지긋한 유적에 관련된 이야기도, 이걸로 끝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찾아온 기회에, 라일라는 입꼬리를 올리면서 솔리나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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