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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342화 (342/506)

〈 342화 〉 죽음의 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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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정한 것보다도 더 한 일을 저질러 주셨군요. 알레시오스."

감시관­ 아니 이제는 그 정체가 추방 교단의 일원이라는 것이 알려진 소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앞에 보이는 아비규환, 마치 좀비들이나 구울의 떼거지를 연상시키는 무리들.

눈을 충혈되게 한 채 솔리나와 라일라, 그리고 그 동료에게 조소와 적의를 품은 채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제 쪽에서도 준비해 둬야겠죠."

그녀가 그렇게 말하면서 로브의 밑에서 자신의 팔을 꺼내 들면.

그 손가락에는 강력한 마력석이 박혀 있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오래된 고대의 문양이 그려진 그것은, 얼핏 보기에는 단순한 장신구였지만 그 안에는 이차원의 틈과 연결되는 강력한 마력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공간을 열어젖히고 그곳에서 바로 모습을 감추었다.

라일라는 마력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느끼고, 곧바로 방금 까지 그 소녀가 서 있던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만.

사라져버린 그녀를 신경 쓰는 것보다도, 눈앞에 닥쳐온 위험요소를 어떻게든 해야 했다.

알레시오스의 비겁함에 이를 빠득 갈면서도, 교활한 흡혈귀답게 인간의 약점을 찔러 오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그녀는 전황을 살핀다.

윌헬미나가 일레누를 흡혈하고, 그녀의 안에 남아있던 알레시오스의 잔유물을 제거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알레시오스의 계획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엠마에게 주입해 두었던 자신의 피, 그리고 일레누의 피에 섞여 있는 그의 힘을 마을 사람들에게 퍼뜨려 둔 것이다.

아무리 강대한 흡혈귀라도, 한 번에 조종할 수 있는 인간의 수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일레누를 조종하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지 못했지만.

경비대를 포함한, 마을 사람 전원이 알레시오스에게 조종당하며 자신들의 적이 된다는 것은, 조종당하는 일레누를 상대하는 것과 비교해도 우위를 가리기 힘들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상처를 입어도 어느 정도 회복력이 있어서 자가 치유가 가능한 일레누와 다르게, 마을의 주민과 경비대의 대원들은 평범한 인간이다.

심한 상처를 입으면 죽을 수 있고, 공격에 취약하다.

알레시오스를 막겠다고 그들 모두를 죽이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런 짓을 저지른다면, 알레시오스와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 전원을 하나하나 흡혈해서, 안에서 힘을 빼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안되는 것은 다른 방법이었다.

"알레시오스의 딸인 네가, 다시 한 번 그의 피를 네 안으로 회수하는 거야."

윌헬미나는 어렵겠지만... 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지독하게 지친 얼굴로 일레누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눈 앞에 있는 것은, 자신의 원수인 알레시오스의 친딸.

다만, 그녀 역시 알레시오스의 희생자이며 기구한 운명을 살아가는 소녀라는 것을 직접 보았기에 윌헬미나는 그녀를 알레시오스의 혈육이라는 이유만으로 증오하지는 않았다.

허나, 눈앞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선, 역시 그녀의 힘이 필요했고, 어쩌면, 또 다른 위험을 만들어낼 수 도 있는 일에 그녀를 다시 한 번 밀어 넣지 않으면 안 됐다.

라일라는, 윌헬미나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외쳤다.

"잠깐! 겨우 그녀의 안에서 알레시오스를 꺼내서 없애버렸는데, 다시 피를 모아내라고?!"

"괜찮아. 그녀가 그의 지배에 당하지 않도록 내가 힘을 빌려줄 테니까..."

그런 라일라를 안심시키듯이 이야기하는 윌헬미나.

"...뭘 하면 되는거지?"

일레누 역시, 이 사태를 눈뜨고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아버지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다, 그렇다면 그 뒤처리를 하는 것은 혈육인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책임을 느끼고 있는 것이겠지.

이곳에 있는 다른 누구도, 그녀에게 책임을 물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담피르 일레누는, 상냥한 사람이다.

그러니,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버린다.

그것을 보고 클레온은, 그림자로 만들어진 검을 강하게 쥐며 라일라를 바라보았다.

마치, 말을 하지 못하는 자신 대신, 그녀에게 이야기해달라는 듯이.

라일라는 그런 클레온의 시선을 받더니,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일레누에게 말한다.

"클레온이 네 마음을 좀 편하게 해주라고 부탁하는데, 그럴 필요 있어?"

그러더니, 자아가 희미한 클레온마저 당황할 정도로 직설적으로 일레누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일레누는 그런 라일라의 말을 듣더니 두 눈을 깜빡이면서 클레온의 영체를 돌아본다.

그녀와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클레온이 고개를 피하면,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라일라는 투덜댄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짊어지는 것은 옳지 않다... 뭐, 이해는 하겠지만 말이야. 적어도 클레온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지만."

"... ..."

"그야, 그 녀석. 자기가 죽어간다는 걸 알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신경쓰지 않게 하도록 죽기 직전이 되고 나서야 입을 벌렸잖아?"

영체는 그 말을 들으면, 할 말이 없다는 듯이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베아트릭스와 엠마 역시 그 말을 듣고 슬픈 표정이 되어 클레온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착한 아이 같은 말은 안 해. 네 책임이 아니야 라던가, 모두가 함께하면 분명 해결할 수 있어... 라던가. 그런 말을 하는 건, 내 성격이 아니잖아?"

라일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지팡이를 이용해 기운이 빠진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솔리나의 쪽을 바라본다.

솔리나는, 어떻게든 맨주먹으로,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마을의 주민들과 경비대원들을 때려눕히는 중이었다.

리스­ 마지막 남은 혈육이자,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나서 받은 정신적 충격은 물론 엄청났겠지만.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그런 오빠의 의지를 이어받아 마을을 지키기 위해, 검마저 놓은 채 그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물론, 거기에도 한계가 있겠지, 그녀는 초인이 아니다.

무기를 들고, 알레시오스에게 조종받으면서 거리낌 없이 목숨을 노려오는 적들에 비해, 이쪽이 진 페널티는 너무나도 많았다.

"누군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말을 할 바에, 나는 마법의 영창을 한 단어, 아니, 한 음절이라도 더 많이 내뱉겠어."

"라일라..."

일레누는 그런 라일라를 바라보며 무언가 느낀 바가 있는지 중얼 거렸다.

"윌헬미나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해. 이 아카데미 수석을 시간 벌이용으로 쓸 수 있는 것을 감사히 여기라구."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은 미소를 입에 띄우면서, 그녀는 아플 정도로 환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솔리나를 돕기 위해 그쪽으로 걸어가기 직전.

일행이 구체적인 작전에 관해 이야기 하기 직전에. 라일라는 문득 멈춰 서더니 몸을 돌리며­

"클레온."

클레온을 불러, 자신의 쪽으로 얼굴을 향하겠했다.

다음 순간, 퍼억! 하는 소리가 나며, 라일라의 손은 마력으로 붉게 물든 채로 클레온의 안면을 때리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때린다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겠지.

"라일라!?"

베아트릭스의 비명.

깔끔한 클린 히트와 함께, 강력한 충격파가 터지면서 클레온의 몸이 땍대굴 하고 땅 위를 몇 번이고 굴렀다.

그리고 라일라는, 한쪽만 묶고 있던 머리 스타일을, 다른 한쪽도 마저 잠그게 해서.

드디어 클레온에게도 익숙한 트윈테일의 여성이 된 것이다.

"이 나이가 되어서 이 머리 스타일을 다시 하게 될 줄이야..."

라일라는 머리를 묶으면서도 20살이 넘는 지금, 이런 머리 스타일을 하게 된 것 자체가 조금 짜증 난다는 듯이 이야기하면서도 날아간 클레온을 향해 이죽대듯이 웃었다.

그 웃음의 속에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슬픔이 섞여 있었다.

"모두를 먼저 죽어버린 거, 아직 용서 못 했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면, 클레온은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라일라를 바라보았다.

클레온의 빛나는 눈밖에 없는 영체는 서서히 재생되어 가지만 그 얼굴은 어디까지나 그림자에 가까운 법이다.

표정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텐데도 불구하고, 뒤를 돌아서서 적들을 향해 나아가는 라일라를 바라보는 클레온의 눈에는.

어딘가, 동경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그녀가 약해졌는가, 아니면 강해졌는가.

그리고 그 기준은, '마음'에 있는가 '마법의 실력'이나 '육체'에 있는가.

'그런 물음이야말로, 무의미한 것이겠지.'

자신은 죽은 사람, 시간이 멈춰버린 존재.

하지만, 자신이 없는 동안에도 그녀들은 변화하는 것이다.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부디, 라일라 처럼, 일레누도 자신에 묶여서 멈춰있지 않기를.

"...엠마, 베아트릭스. 일레누를 부탁해."

"클, 레온...?"

"─선배."

스스로의 의사를 전달하지 못한 채 있던 그의 목소리가 두 사람에게는 똑똑히 들렸다.

다음 순간, 클레온은 라일라와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검을 버리고 맨손으로 사람들을 막기 시작한다.

엠마도, 베아트릭스도 그런 클레온을 보더니 이내 어떻게든 일레누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일레누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윌헬미나와 눈을 마주치며, 호소한다.

"...제가 뭘 하면 되는 건가요?"

각오는 더욱 강해졌지만, 그 어깨는 조금 더 가벼워져 있었다.

윌헬미나는 그런 그녀의 눈을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이고 사진의 리치 육체의 손목을 그어버린다.

그러자, 그녀의 손목에서는 피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모습은, 일레누에게 있어서는 조금 참기 힘든 광경이었다.

애초에, 그녀가 약해졌던 이유는, 클레온을 잃은 상실감에 더불어 그 후로 피를 마시지 않은 것 때문이다.

자신이 피를 마시면 마실수록, 자신의 안에 있는 흡혈귀의 부분이 강해져서.

자신의 안에 자리 잡은 괴물이 강해질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괴물이, 알레이오스.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바로 직전의 일이었지만.

"내가 리치화를 한 이유는, 물론 알레이오스를 상대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는 것으로 육체의 안에 남아있는 지금까지 나와 반이 회수해 온 흡혈귀의 힘에 역으로 먹혀버리는 일이 없게 하기 때문이야."

그녀가 말하길, 흡수한 흡혈귀들의 혼을 제어하는 것은 개인마다 역량이 다르고.

적어도, 그 부분에 관해서는 선천적인 흡혈귀인 연인, '반' 쪽이 자신보다 훌륭했다고 이야기한다.

흡수한 흡혈귀 중 일부는 진명을 알고 있더라도 손쉽게 제거되지 않는다.

그럴 경우에는, 자신의 피에 녹여 봉인하듯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눈 앞에 떨어진 혈액은, 그런 봉인들이 녹아들어 가 있는 것이었다.

"...너는 흡혈귀와 인간. 양쪽의 특성을 가진 존재. 인간의 의지로, 흡혈귀의 의지를 누르면서 그 힘만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면..."

즉, 윌헬미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흡혈귀의 힘을 일레누에게 넘겨주어서, 그녀의 힘을 강화시킨 후.

그녀가 남아있는 알레이오스의 영혼을 그녀의 안으로 모아, 흡수한 흡혈귀의 힘으로 알레이오스의 자아를 누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다음에는 윌헬미나가 다시 한 번 일레누의 몸을 흡혈해서 그녀의 안에서 알레이오스를 완전히 지워버리면 된다.

게다가, 알레이오스와 일레누는 마음은 이어지지 않았더라도 육체적으로는 아버지와 딸이라는 관계이다.

그의 피와 힘에 가장 잘 적응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일레누였고, 그녀가 원한다면 같은 피를 나눠 가진 권속들­

즉, 눈 앞에 있는 마을 사람들의 안에서마저, 알레이오스의 존재를 끌어당길 수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주의해야 해. 분명, 내 안에 있는 흡혈귀들의 힘은 처음에는 네 몸을 노릴 거야."

"... 만약 내가 지게 된다면?"

"그럼. 우리는 이 땅에 위험한 흡혈귀를 두 개나 만들어 버린 게 되겠지."

일레누는 그런 윌헬미나의 이야기를 들은 뒤, 고민조차 하지 않고 그녀에게 부탁했다.

"...하죠. 모두와 함께, 이 마을을 지키는 방법이 있다면. 제가 하겠어요."

"... ...좋아. 그럼, 이 피를­"

윌헬미나가 손목을 뻗어오면, 일레누는 그녀의 흰색의 손목에 다가가 가볍게 입술을 가져다 댄 뒤, 그 피를 마신다.

'두근'하고, 피의 안에 섞여있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자신에게 물밀듯이 밀려들어 온다.

'육체다'

'새로운 육체다'

'드디어 그 시체에게서 벗어났다'

'지배하자'

'파괴하자'

'살해하자'

온갖 좋지 않은 사념들, 하나같이 오만하고 잔인하며, 또 어리석은 영혼들은 따로 힘을 뜯어내지 않더라도 일레누가 마력을 실어서 '조용히 해'라고 머릿속으로 염하는 것 만으로 그 입을 다물어 버리게 할 수 있다.

일레누의 머릿속에 펼쳐진, 그녀의 안에 공간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흡혈귀들의 모습을 짓누르고, 그 힘만을 회수해서 자신의 것으로 해 나간다.

총계 37명의 흡혈귀. 몇몇은 아카데미의 웬만한 마법사들을 단순한 식량 정도로 불러도 될 정도로 강해 보였지만, 일레누는 가볍게 그 영혼의 힘마저 자신의 것으로 흡수했다.

"큭... 읏...!"

하지만, 몸에도 정신에도 한계라는 것은 있는 법.

일레누는 어떻게든 그 흡혈귀들의 사념을 받아들이다가 괴롭다는 표정을 하며 정신을 잃을 뻔 한다.

머리속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만 갔기 때문이다.

이내, 일행을 향해 모여들고 심지어 전투까지 벌이던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멈추어서

그녀­ 일레누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순간 적으로, 일레누와 윌헬미나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 다음, 자신들을 향해서 알레시오스의 권속들이 몰려 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 일레누는 곧바로 손을 하늘로 뻗었다.

그러자, 알레시오스의 권속들은 그 자리에서 조금씩 발걸음이 느려지더니 완전히 멈춰버리고 말았다.

"...뭐, 야... 이건... 무언가의 환영인 건가?"

"모르겠어. 하지만 같은 것을 보고 있다면, 적어도 지금이 기회라는 거야, 알레시오스의 영혼이 담긴 피를 끌어모아...!"

윌헬미나의 말을 들은 일레누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은 채 주먹을 움켜쥐자.

마을 사람들과 경비대의 몸에서 다 같이 피를 토해버리고 말았다.

허나 그 피는 그들의 피가 아니었다.

바로, 더욱 진한 쪽의 피를 가진 기생충 같은 존재들이 마을 사람들의 몸을 빠져나와 그녀­ 일레누에게 향한 것이다.

곧바로 자신을 떠나갔던 알레시오스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의지에 간섭하기 시작하려는 것을 느끼는 일레누.

하지만 아까와는 달랐다. 그녀는 이미, 다른 영혼들에 짓눌리지 않는 강함을 얻은 것이다.

"...이거면, 아버지... 그 망할 자식을...!"

아버지를 망할 자식이라 부르며 어떻게든 자신의 안에 쌓여가는 알레시오스의 존재.

[뭐, 뭐지... 이 흡혈귀의 힘은... 설마, 윌헬미나 녀석. 자기가 가진 흡혈귀의 힘을 모두 넘긴 건가...?]

"자아, 알레시오스... 나랑 같이 지옥에 떨어지자...!"

일레누의 입을 빌려 튀어나온 알레시오스의 말을 들은 윌헬미나가, 그런 미소를 보이자 알레시오스는 오랜만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내가, 공포를 느끼고 있는 건가?]

알레시오스의 말이지만, 사실은 확인에 가까웠다.

일레누는 이미, 그를 압도하고 있었으니까.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쓰러지면서, 그들의 몸에서 알레시오스의 영향이 사라져가면.

라일라도 솔리나도, 그리고 다른 모두도 일레누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좋아. 이걸로­!"

일레누의 승리 선언 직전.

"잘 됐나보네...!"

라일라가 안심하여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순간­

철커덕 하고 무언가 열쇠가 들어간 문이 열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하면.

갑작스럽게 땅이 열리면서 모든 것이 지하로 떨어졌다.

아니, 지하가 아니었다. 그곳은 무한히 넓어지는 공간이었다.

일레누도, 라일라도 당황해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면 윌헬미나만은 이 공간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했다.

"이차원의 틈...? 이렇게나 많은 인원을 동시에...? 설마, 추방 교단!!"

윌헬미나가 소리를 치면서 고개를 위로 올리면, 그곳에는 추방교단의 소녀가 함께 떨어지며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짓이야!!"

라일라가 그렇게 말하며 마법으로 그녀를 붙잡으려 하면, 소녀 역시 차원의 틈의 힘을 이용해서 그것을 막고 대답한다.

"어째서야... 거의 다 됐는데...! 알레시오스는, 내가 분명히 쓰러트릴 수 있었는데...!"

그리고, 일레누마저도 울부짖듯이 그녀에게 이야기 하면, 소녀는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일레누. 당신은, 세계를 위협할 수 있는 흡혈귀­ 알레시오스와 윌헬미나가 품고 있던 모든 흡혈귀의 힘을 흡수했습니다. 그건... '규칙 위반'입니다. 한 사람에게 너무나도 큰 힘이 모이게 되면..."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그 황금의 용사처럼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 땅을 정화하도록 하죠. 당신, 그리고 당신과 연관된 모든 것을 차원의 틈으로 추방하는 것으로."

목소리마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공간.

그런 선고가 내려지자 마자, 소녀는 모습을 감추었다.

"안 돼, 윽, 아...!!!"

"일레누! 큿...!"

일레누는 머리속에서 생각한다. 이차원의 마력이 서서히 몸을 침식해 가고 있었다.

자신의 안에, 아직 알레시오스가 남아있었고. 이대로 가다간, 모두가 죽으면서 알레시오스가 다시 깨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어리석은 계집... 나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나 알레시오스는 반드시 네 몸을 다시 차지하고 부활할 거다... 한 명이라도, 나를 기억하고 있는 한... 나의 영혼과 존재가. 끊임없이 너희 그림자에 있을 것이다...!]

알레시오스의 목소리가 머리를 깨부수듯이 아프게 울리면서, 일레누는 몸을 움켜쥐었다.

이차원의 틈에 들어온 것으로,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실패, 따위는 할 수 없어. 내가 모두를 지키지 않으면. 흡혈귀의 힘으로라도, 어떤 것이든 이용해서'

그렇게 그녀가 결심한 순간, 인간 한 명의 그릇에 담기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힘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것은 죽음의 기운이었다.

닿는 모든 것을, 곧바로 죽음으로 인도하여 그 뒤에는 변함없는 불사자(언데드)로 만들어 버리는 기운.

흡혈귀는 불사자의 정점에 존재하고, 지금의 일레누에게는 수많은 정점의 영혼이 모여있는 상태.

불사자의 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상태이었다.

라일라도 베아트릭스도, 엠마도. 순식간에 그 검은 기운에 먹혀 사라졌다.

"일레누!? 안 돼! 힘을 제어해라!"

[원하는 것을 말해라. 새로운 영역의 지배자여]

윌헬미나의 목소리에 겹치듯이 함께 들려오는 목소리.

"...누군가가 그를 기억한다면, 피의 계약으로 묶인 존재가 그를 재구성시킬 수 있으니. 모두의 기억을 지우고..."

파직 하고 무언가 튀어오르면 그녀로부터 뻗어나온 기운이 마을 주민들과 경비대, 그리고 라일라와 베아트릭스를 집어삼켰다.

"...혹시 모를 자극 때문에, 기억을 되찾는 일이 없도록... 감정도, 자아도 아무런 변화도 없는 세상을..."

[그대의 소원이, 그대에게 새로운 영역을 부여한다. 그대는, 죽음과 망자를 지배하여, 영원히 변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 것이다. '그 영원의 불변을 깨트리는 존재가 나타날 때 까지.']

이미 죽었던 리스와 몇몇 경비대를 제외한 모든 산 자들의 기억이 지워지고, 그들은 산 채로 언데드로 변해버리고 만다.

그것이, 죽음의 여신이 그들에게 정한 이 영역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었던 것이다.

이내, 현실 세계에서는 마을 하나와 그곳에서 살고 있던 모든 주민이 사라졌다.

유적에는 전투의 흔적만을 남긴 채.

추방 교단의 이름 아래, 새로운 세계의 위협은 사라진 것이다.

현실로 돌아온 소녀는, 자신이 마을 하나와 수많은 사람들을 차원의 틈으로 밀어 넣는 데에 성공한 것을 확인한다.

그 재앙을 만들어낸 것이 자신이라고 절실히 느끼며 그녀는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없어진 장소에서, 가지고 있던 단도를 꺼내들더니­

그것으로 자신의 목을 베어 그 자리에 쓰러진다.

수많은 목숨을 추방하여 쌓은 업을, 자살로 해결하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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