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2화 〉 피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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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 그리고 자신이 놓인 상황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두통을 느끼던 죽음의 여신의 한쪽 눈이 갑자기 띄어진 순간,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물리적인 형체를 만들어갔다.
일반인이라면 그 자리에서 미이라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마력의 유출량은 누가 보더라도 정상이 아니었다.
마치, 피를 흘리는 듯이 눈에서, 귀에서, 그리고 코와 입에서 흘러나오는 진득한 마력의 격류.
죽음의 여신에게서 떨어져 나가듯이 쏟아져나온 그것은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 여신과 똑같은 미모를 지닌 나체의 좌반신과.
그로테스크한 혈액과 살점이 뭉쳐져 만들어진 우반신을 지닌 존재로 변한 뒤, 피로 만들어진 검을 쥔 채 듀라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듀라한은 그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에서, 여러 가지의 존재가 마구잡이로 섞여 있는 것을 느꼈다.
여신의 원래 인격이라고 할 수 있는 담피르 일레누, 그의 아버지이자 모든 일의 원흉인 알레시오스는 물론이고.
윌헬미나가 과거에 흡수하여 멸했던 흡혈귀들의 의지가 소용돌이치듯이 뭉쳐있는 것이다.
토가 나올 정도로 강렬한 마력압이 뿜어져 나오며, 듀라한이 펼쳐놓은 신성 마력의 결계에 쩌억 하고 금이 간다.
털썩, 하고 쓰러지는 소리가 나면 일레누가 완전히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젠장...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뛰쳐나온 건가..."
어느정도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던 듀라한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살점에 박아놓은 예장검을 뽑아들지는 못했다.
만약, 이것을 뽑아버린다면 성장을 억제하고 있던 살점은 한없이 부풀어 올라버릴 것이다.
갑작스럽게 여신에게서 분리된, 흡혈귀들의 영적 군집체.
물리적인 실체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몸도, 엄청나게 진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육체일 뿐.
말하자면 '피의 정령'이라고 해야 할까.
가장 순수하고 원초적인 모습에 가까운 흡혈귀라고 할 수 있겠지.
그녀야말로 '지금부터 태어나려고 하는 괴물'의 핵.
즉,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이다.
무엇이 그녀를 불러일으킨 것인지는 명백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듀라한이 억제하고 있는 역십자가의 살점 괴물의 육체이다.
일레누의 몸 안에 있는 흡혈귀는 알레시오스 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알레시오스를 제어할 수 있도록 그녀에게 넘겨준 흡혈귀들의 힘도 함께 존재했다.
그녀가 의지를 갖추고 그것들을 인식하고, 억누르면 알레시오스의 힘을 억제할 수 있었겠지만.
이 영역을 만들고, 알레시오스라는 존재를 망각하기 위해서 자신의 기억을 지워버린 결과 그들의 존재 역시 완벽하게는 제어할 수 없게 되었다.
대부분의 마력이 그러하듯이, 감정은 마력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기억과 함께 대부분 감정을 잘라낸 그녀는, 적어도 자신 안에 있는 힘을 대부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었기에, 흡혈귀의 힘이 폭주하지 않고 그녀 안에 존재하는 힘이 흘러넘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클레온'과 만나버렸다.
아니, 재회해 버렸다고 하는 것이 좋겠지.
그녀의 안에서, 가장 강력한 기억의 쐐기가 되는 존재.
기억을 모두 잃고 다른 존재가 되기 직전까지도 잊지 못했던, 그녀가 사랑했던 유일한 남자.
비록, 다른 세계의 동일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정과 기억을 막아두었던 뚜껑에 쩌억 하고 금이 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거기서부터는 한없이 흘러나온다.
기억이, 후회가, 절망이, 그리고 제어할 수 없는 힘이.
그것을 억제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그녀의 몸을 지탱하던 그림자.
이전, 듀라한 윌헬미나가 강령술로 불러낸 클레온의 영혼...의 잔류 사념이다.
이미, 그곳에 영혼의 본체는 존재하지 않고 그 일부가 일레누의 몸에 남아, 혹시라도 힘의 봉인이 풀릴 것을 대비하여 방어기재로서 남아있던 것이다.
그녀의 기억이 되살아나려고 하면 그 원인을 배제하고, 영역의 유지를 위해 일레누 자신을 지킨다.
그 그림자가 클레온 다른 세계의 자신에게 적대한 것도, 그런 방어기재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겠지.
그런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에라도 나타난 저 '진정한 죽음의 여신'이 무언으로 비릿한 미소를 띤 채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손에 들고 있는 검으로 듀라한을 베어내고, 살점과 접촉하는 순간.
'육체'와 '영혼'이 하나가 되어, 이 절계 추방 영역 전체를 집어삼키는 존재
혈액이나 영혼뿐만이 아니라, 존재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포식자가 탄생할 것이다.
"곤란하여졌는걸... 무기를 손에서 놓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이대로 당할 것 같고..."
전혀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 듀라한은 남아있는 모든 마력을 쏟아 부어 금이 간 결계를 수복하려 하지만
진정한 죽음의 여신이 손을 들어, 조금 마력을 불어넣은 것 만으로 결계가 표면에서부터 녹아내린다.
"치잇... 마력을 녹이는 흡혈귀의 힘..."
그녀 자신도 흡혈귀인 기간이 길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당하는 쪽이 되면 자동으로 혀를 차게 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녹아내린 결계의 틈으로 피로 만들어진 그로테스크한 우반신의 손이 뻗어져 와, 듀라한의 몸에 닿으려 한 그때.
콰직!
하고, 무언가 단단한 것을 깨부수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듀라한의 눈이 크게 띄어졌다.
여신의 배를 뚫고 튀어나온, 검은 그림자의 검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검은, 이내 위로 올려지면서 여신의 몸을 정확하게 절반으로 갈랐다.
쩌억, 하고 갈라진 몸의 사이, 등 너머로 보이는 것은 여신이 정신을 잃으면서 순간 사라졌던 클레온의 잔류 사념이다.
하지만, 여신의 몸은, 갈라진 곳부터 깔끔하게 재봉합되면서 끼긱, 하고 몸을 돌려 그림자를 바라본다.
"방해를... 하지 마라..."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지만, 남성과 여성, 아이와 어른, 짐승과 인간의 목소리가 섞인 불쾌한 목소리에 듀라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의 관심은 완전히 자신을 방해한 그림자의 쪽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를 향해 검을 휘두르면 그림자 클레온 역시 자신의 검으로 그것을 받아내지만
당연하게도 정면에서 부딪히면 힘의 차이 때문에 그의 검은 깔끔하게 잘려나가는 것이다.
'이건... 길게 시간을 끄는 것은 기대할 수 없겠는걸...'
듀라한이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성당의 바깥에서 다수의 기척이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드디어 왔나...!"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목소리를 울리면, 그와 동시에 성당의 문이 열리면서 클레온과 일행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윌헬미나!"
"아슬아슬했어, 마검사 군...!"
살점을 억누르고 있는 듀라한, 그리고 그의 곁에서 싸우고 있는 그림자와 처음 보는 이형의 존재.
그리고 옥좌에 기댄 채 주저앉아 정신을 잃은 일레누의 모습.
"저, 저게 죽음의 여신인가요? 이, 이름처럼 무서운 모습..."
페루루카는 몸을 움츠리면서, 그림자와 대치하고 있는 이형의 존재를 바라본다.
그 눈에는 긴장과 동시에 약간의 두려움이 보이면, 라일라는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저기 기절해 있는 쪽이 여신님. 저건 대체 뭐야? 설명해 듀라한!"
"설명하자면 길어. 어쨌든, 저 녀석을 쓰러트리면 되는 거니까! 마검사 군! 기억하고 있지?"
"그래...! 페루루카, 네 담피르의 힘으로 저 존재를 흡혈해서, 소멸시키면 돼. 거기까진, 우리가 보호할게."
듀라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클레온이 이야기하면, 페루루카 역시 알겠다는 듯이 주먹을 쥐며 그녀를 바라본다.
"자, 그러면 우리들은 저 괴물을 막으면 되는 거지?"
시프가 궁그닐을 회전시키면서 한 발짝 앞으로 나서자, 우트가르트도 그 옆을 지키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인원은 우리 쪽이 더 많다, 각각 사지를 하나씩 붙잡고 있어도 문제없겠군.]
우트가르트가 그렇게 말하면, 아멜리아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서리 망치의 힘으로 변신한다.
"너희들도... 방해할 생각...인가...!"
다시 한 번 그 불쾌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그녀의 우반신 흉측한 팔과 다리에서 혈액이 촤악! 하고 뿜어져 나온다.
일행이 그 갑작스러운 분출에 반응하여 각자 자세를 취하면,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혈액들은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녹이면서 풍경을 바꾸어간다.
엄숙하고, 정돈되어있던 분위기의 대성당의 안은, 서서히 그 혈액에 집어삼키면서.
일행이 있던 곳은, 마치 거대한 생물체의 안.
살아서 꿈틀거리는 그로테스크한 고기의 벽이나 천장, 바닥으로 된 공간으로 변화했다.
"소영역...!"
"이렇게나 거대하고 강력한 공간을, 순식간에...!"
페루루카와 카시우스가 그 공간의 정체를 눈치채면, 일행들 전원은 마치 몸에서 무언가가 빨려나가는 듯한 감각에 주춤하고 만다.
"설마, 이거... 생긴 것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마력이랑 생명력을 흡수하고 있는 건가...!"
그레이도, 클레온도 영역의 힘에 눈치를 채고 당황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동시에, 벽에서는 꿈틀거리면서 부패한 혈액과도 같이 끈적하고 거뭇한 무언가가 흘러나오더니.
처음에는 슬라임처럼 형태 없이 뭉쳐있다가.
점점 그 용적을 넓히더니 인간의 형태를 취하며 일행들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것들은 각자 무기를 들고 있거나, 혈액으로 마법 같은 것을 재현하는 존재들이었다.
"뭐. 뭠까!?"
"우트가르트...! 네가 쓸데없는 말을 하니까!"
그 수는 클레온의 일행보다도 많았고, 지금도 천천히 늘어나고 있었다.
시프는 우트가르트의 실언에 화를 내면, 우트가르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주변을 둘러볼 뿐이었다.
"조심해! 그것들 전부가, 열화판의 흡혈귀야! 닿으면 곧바로 생명력을 흡수당하고 말아!"
듀라한의 외침에 일행의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돈다.
"수가 많군. 전부 상대할 필요는 없지만... 포위를 뚫고 저 괴물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는 것은 힘들지도 모르겠어."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프레이야.
그녀의 말대로, 이렇게나 사방에서 덮쳐오려고 하는 상대를 모두 돌파하면서 일행 모두가 이형의 존재까지 도달하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도달하면 되는 것은 페루루카야. ...물론, 저 괴물의 움직임을 막으려면 더 필요하겠지만..."
클레온의 말에 라일라는 클레온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물론, 네가 가려는 거겠지?"
클레온은 라일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라일라와 베아트릭스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면, 베아트릭스가 손에 집행자의 마검을 든 채로 일행의 선두에 선다.
"괜찮아요. 제가 길을 열 테니까. 다른 사람들은, 선배가 방해받지 못하게 저와 함께 이곳에서 이 핏덩어리들을 정리하는 걸 도와주세요."
"선배?"
그 칭호에는 무스가 반응하여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면, 엠마와 라일라가 동시에 클레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이다.
무스는 아 하고, 손에서 화염으로 된 검을 꺼내 든다.
"아니, 잠깐. 강한 녀석과 싸우는 건 내가 할 일이야!"
[주변의 핏덩어리들도 충분히 강해 보인다만.]
"이런 분신이 강할 리 없잖아!"
다음 순간, 무스의 머리통이 날아갔다고 생각하면.
피로 된 활을 가진 존재가, 깔끔한 일격으로 그녀의 머리통을 꿰뚫어버린 것이었다.
"히에에엑!?"
페루루카가 공포의 목소리를 올리면서 곧바로 클레온의 뒤로 숨으면, 한 번 쓰러졌던 무스의 몸이 다시 불타오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개 같은 새끼들!! 다 증발시켜주마!!"
곧바로 전의를 불타오르는 대상을 이형의 존재에서 핏덩어리들로 바꾸면서 머리를 재생시키고는 곧바로 가까이에 있는 핏덩어리에 달려드는 것이었다.
"...괜찮을까요?"
아멜리아가 그런 무스를 바라보면서 카시우스에게 물으면, 카시우스는 이마에 손을 올리면서 대답했다.
"그녀의 경우엔, 저런 식으로 날뛰게 놔두는 편이 가장 좋을 거야. 우리도, 클레온 씨가 포위를 뚫고 갈 수 있도록 핏덩어리들을 정리하자."
무스가 적진에 뛰어든 것을 시작으로, 클레온의 다른 동료도 싸움을 시작하면, 베아트릭스는 왼손으로 클레온의 손을 잡고, 오른손으로 마검을 잡은 채 심호흡한다.
"잠깐. 그거 손잡을 필요 있어?"
"시끄러워, 집중하는 데 방해하지 말아 줘."
라일라의 태클에, 베아트릭스는 가볍게 일축 한 뒤.
뛰지 않는 심장에서 마력을 끌어내, 손을 통해서 검으로 흘려보낸다.
'질투... 분노... 증오...'
그녀의 머릿속에서 자아내는 키워드는 하나같이 불온한 것이었지만, 그러한 부의 감정이 마검의 힘을 가장 잘 끌어내는 것이다.
머리속에 떠올리는 것은
라일라와 달라붙은 채 쪽쪽 대고 있던 선배의 모습.
빠직, 하고 이마에 힘줄이 솟아오르면 마검에 순식간에 보랏빛의 불타는 마력이 들어오면서, 클레온의 손을 잡고 있던 손에 강하게 힘이 들어간다.
꽈아악! 하는 갑작스러운 감각에 클레온도 내심 놀라면.
다음 순간.
?大?????
"불륜절대불허가 거세참!"
흘려들을 수 없는 기술명과 함께, 베아트릭스의 검이 휘둘러지면, 거대한 초승달과 같은 참격의 검은 마력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며.
경로상에 있는 피의 분신들을 집어삼키고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것이었다.
"기, 기술 이름이 특히 하네..."
엘마는 그런 데스나이트의 행동에 조금 겁먹은 듯이 클레온을 바라보다가, 이내 자신도 모르게 그의 하반신 쪽으로 시선을 내리고는.
헛기침을 하면서, 클레온의 어깨를 두드려 주는 것이었다.
"...부탁해요! 클레온. 일레누를...!"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이고, 페루루카를 등 뒤에 업었다.
그녀의 발 속도를 생각하면 함께 뛰는 것보다 자신이 그녀를 옮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손에는 마력 먹는 검을 쥔 채, 열려있는 길을 향해 뛰어들면서.
이형의 존재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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