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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353화 (353/506)

〈 353화 〉 더블 어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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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몸을 감싸는 것은 어디까지나 질척하고, 무겁고, 동시에 익숙한 마력의 감각.

자신의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그것은 마치 자신이라는 그릇이 깨어져 버린 결과, 내장이나 피가 모두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싫은 감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은 서서히 또렷해진다.

"이곳은... 나는, 분명 듀라한과 대화를 하던 중에..."

정신을 잃기 직전에 있던 일을 떠올리며, 몸을 일으키려는 그녀.

하지만, 팔다리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마력들은 마치 그녀를 떠나보내지 않겠다는 듯이 끊어지지 않고, 마치 슬라임이나 끈끈이같이 그녀의 몸을 구속했다.

분명, 자신에게서 흘러나온 자신의 힘인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의지로 제어할 수 없게 된 마력은, 족쇄와 같이 그녀를 방해할 뿐이었다.

"큭... 설마, 마력이 폭주해 버린 것인가..."

언제나 그녀의 안에 있던 힘이, 그녀라는 육체를 부수고 흘러나오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건만.

모든 것의 시작은 '클레온'이라는 흑마의 일족을 봤을 때부터.

그리고, 그 뒤에 듀라한이 자신에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여러번 몸부림치더라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으로는 피의 늪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결국, 일어서는 것을 포기하려 할 때쯤, 처벅, 처벅, 하고 물로 된 바닥 위를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든 고개만 돌려보더라도, 그 발걸음의 주인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으로는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이 공간은, 아마 정신을 잃은 자신의 내면일터.

대체 자신 외에 누가, 이 공간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인가.

하지만, 그 의문은 곧 발소리의 주인에 의해서 풀려버렸다.

바로 자신의 머리 근처까지 걸어온 그것은, 흰색의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채, 여기저기가 헤진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성이었다.

죽음의 여신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숨을 삼켰다.

눈, 코, 입이 있어야 할 얼굴의 정면은 마치 소용돌이치는 듯한 검은색으로 뒤덮여서 구멍이 뚫린 것처럼 되어 있었다.

시선, 호흡, 그리고 마음마저 빨아들일 것 같은 그녀는, 손에 여신의 것과 같은 레이피어를 든 채로 고개를 내려, 그녀와 얼굴을 마주한다.

축 늘어진 몸에 기력은 없었고, 그녀는 마치 여신에게 무언가를 호소하는 것만 같았다.

여신은,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흘러나온 마력과 함께 쏟아져나온, 그녀의 내용물 중 일부이다.

죽음의 여신이라는, 다수의 흡혈귀가 하나의 형태로 빚어져서 존재하는 존재에서 가장 핵이 되는 존재.

즉, 그녀야말로, 자신의 '오리지널'이라고, 여신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녀에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시작이었을 뿐.

하나, 둘 씩 자신의 주변에 흩어져 나온 핏덩어리들이 형태를 만들기 시작하면.

그것은 각각, 다양한 인상착의의 인간들로 변화한다.

거대한 대낫을 등에 짊어진, 수척한 인상의 남성.

날카로운 손톱을 길게 기른, 10살 내외의 어린 여자아이.

그 중에는,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은, 레이피어를 손에 쥔 남성의 얼굴도 있었다.

이들 역시 그녀의 영혼을 구성하고 있던 흡혈귀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손에 들고 있는 무기를 뽑아들더니­

그대로 서로를 공격하며, 난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팔을 베고, 목을 베고.

배를 꿰뚫고, 미간을 꿰뚫고.

피가 튀어나오고, 내장이 튀어나오고.

하지만, 손상된 부분은 금세 다시 자라나거나, 붙어버린다.

그들은 본래 실체를 가지지 않는 영체이며, 가지고 있는 마력이 다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마력의 근원은 물론 땅에 쓰러져있는, 여신이 지금도 계속해서 흘려보내고 있는, 깨진 그릇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마력이다.

절계 추방 영역 안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서, 그것을 유지하는 마력.

영체들 몇 명을 치유하고, 복원시키는 데에는 너무나도 많은 마력이다.

그렇기에, 얼마나 무의미한 싸움인가.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을 난투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마력이 고갈되어 더는 누구의 상처도 치료되지 않는다면.

마지막에 남은 '영혼'이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여신은 조용히 눈을 감으려 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지켜오려 했던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려는 순간 속에서.

어쩌면, 속박과 구속, 책임감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는 때가 찾아왔을지도 모른다고.

빠져나가는 힘과 동시에, 약해지는 책임감.

그리고 마음.

망각속에 묻혀, 핏방울에 섞여 사라질 수 있다면.

─아아. 하지만.

가능하다면.

'그'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전해야만 했는데.

손가락의 끝부터 녹아내리며, 그녀는 늪에 잠겨간다.

그것만이 불변을 상징하는 죽음의 여신인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한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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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온의 마력 먹는 검이 휘둘러 질 때마다, 형태를 갖춘 핏덩어리들은 그 검에 형체를 유지하기 위한 힘을 흡수당하는 것으로 단순한 액체로 돌아가며 증발해 사라졌다.

역시 무기의 우수함은 전력에 직결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면서, 베아트릭스가 섬뜩한 기술명과 함께 만들어 준 길을 뚫고 나가다 보면, 겨우 반신이 피로 만들어진 흉측한 가짜 여신과­

그녀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그림자가 보이는 것이었다.

"저 녀석..."

클레온은 그 그림자가 어떻게든 여신의 발을 묶어두고는 있지만, 힘의 대결에서는 전혀 이길 수 없다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다.

그도 그렇겠지, 지금 튀어나온 가짜 여신은 일레누의 몸 안에 흡수되었던 수십 마리의 흡혈귀의 힘의 정수가 형태를 갖춘 것이다.

아무리, 다른 세계의 '자기 자신'이라지만, 그런 존재와 갈라테아도 없이 1:1로 적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크, 클레온 씨! 저 그림자, 지금에라도 사라질 것 같아요...!"

클레온의 등에 업혀있는 그녀­ 페루루카가 말한 대로.

여신과 싸우고 있는 그림자의 다리 부분이 서서히 흐릿해지면서.

그와 몸이 연결되어있는 일레누의 몸과의 연결도 끊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림자의 약화를 놓치지 않고, 가짜 여신은 그림자 클레온을 발로 차서 멀리 날려버린다.

"마검사 군!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야! 늦지 않고 왔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너머.

땅에 박혀있는 역십자가에 검을 박아놓은 채 결계를 유지하고 있는 듀라한.

"멋대로 가버리기는...! 그럴 거라면 어디 간다고 말해 줘도 괜찮았잖아!"

클레온은 그렇게 불평불만을 한번 쏟아 낸 뒤, 마력 먹은 검을 허공에 휘두른다.

그러자, 이곳까지 오면서 마력을 흡수한 마력 먹은 검은, 그것을 토해내듯이 검풍을 만들어서 '날아가는 검격'을 발생시켜 가짜 여신에게 날린다.

날아간 참격은, 여신의 몸에 닿기 직전까지 아무런 형태를 취하지 않았다가­

여신이, 클레온 쪽을 바라보면서 손을 뻗자, 그녀가 만들어낸 피의 결계에 부딪히면서 붉은색으로 물들인 뒤­

단단한 결계와 함께 서로 소멸하면서, 마치 유리가 깨지듯이 형태를 일어서 허공에서 깨져서 사라졌다.

"그렇게 쉽게 당해주지는 않나, 역시."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며 다리를 멈춰 서고. 등에 업고 있던 페루루카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페루루카. 내가 녀석의 몸을 묶는 데 성공하면, 곧바로 달려들어서 녀석의 피를 흡혈해 줘."

"... 네...!"

그녀에게만큼은, 흡혈귀의 진명인 '알레시오스'를 미리 알려두었다.

서로,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남은 것은, 작전대로 할 수 있도록 가짜 여신을 무력화시키는 것뿐.

'그게 제일 힘든 일이란 건, 어쩔 수 없지만...'

클레온은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면서 손에 들고 있던 마력 먹는 검을 강하게 쥔다.

"...클, 레온...!"

그리고, 그런 클레온을 바라보며 가짜 여신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입의 절반이 불완전한 형태의 육체인 덕분에, 말은 단어 사이에서도 뚝뚝 끊기지만 어떻게든 알아들을 수 있는 형태로 전해져 왔다.

"날 알아볼 정도의 의사는 있는 건가?"

"그, 래... 네 녀석이다... 네 녀석이 있는 동안에는... 일레누가, 내 의지를 억누를, 수 ... 있었지..."

일레누와 같은 얼굴이었지만, 역시, 듣기 싫은 흉측한 목소리.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클레온은 움찔, 하고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반응했다.

"그런 말을 하는 것 보니까... 주 인격은 '알레시오스'인건가, 역시."

"하지, 만... 네 녀석이 이 세계에 나타나 준 덕분에... 일레, 누의... 그릇에 금이 갔다... 감사, 하마... 크, 크큭..."

"... ..."

이 소동의 원인은 너에게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그녀­ 아니, 그의 발언에 클레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내 클레온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한다.

"감사해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이번에 너를 완전히 소멸시켜 버리면 되는 거니까. 네 녀석의 과거도 대충 들어서 알고 있어. 원래 용사였다면서?"

클레온의 말에, 죽음의 여신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자신의 피로 된 무기를 잡았다.

"역시... 용사 중에서 제대로 된 녀석은 극히 일부분이로군. 설마, 흡혈귀의 힘에 매료되는 녀석이 용사에 있을 줄이야. 걱정 말라고. 그런 용사를 어떻게든 하는 건, 내 전문이니까."

"오만, 한 녀석... 네 녀석 따위에게... 내가,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 하는 건가..."

다음 순간, 여신의 검이 하늘로 치켜들어 졌다고 생각하면.

그녀의 주변에, 피로 된 칼날들이 몇 개나 떠오르면서 클레온을 감싸고, 칼끝을 그에게로 향한다.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전방위 공격.

"죽어, 라...!"

그리고, 내려지는 사형선고와도 같은 목소리.

당연하게도, 피할 수 없는 궤도로 쏟아져 오는 공격이기에, 클레온은 회피행동은 취하지 않는다.

그저­ 검을 양손에 잡고 호흡을 정돈한 채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넓은 범위의 검의 일격으로 날아오는 공격들을 베어낸다.

극도로 집중된 클레온의 눈에 보이는 것은, 검을 휘둘러야 하는 검의 궤적.

클레온 자신의 마력까지 먹여서 그 힘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낸 마력 먹는 검.

일검 일섬 일자 일성.

비록, 휘두르는 검의 크기는 바뀌었어도, 받은 가르침을 이루어내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끼기긱... 땅을 한 번 스쳤던 대검은, 그대로 클레온의 몸을 중심으로 1회전 하면서­

날아오는 피의 비검들을 일섬의 충격파로 전부 떨어트리는 것이었다.

"괴, 굉장해...!"

클레온에게서 떨어져, 여신에게 틈이 생기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페루루카는, 클레온이 공격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마검, 도... 없는, 주제에... 그런 검으로...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자신의 공격이 막혔음에도, 여전히 클레온을 얕보고 있는 듯한 알레시오스.

그 용사들 특유의 자신감인지, 자만인지 알 수 없는 태도에, 클레온은 헛웃음을 내면서 대검을 어깨에 멘다.

"그야 물론이지. 갈라테아가 지금 내 곁에 있었어도... 너 같은 오물을 베어내는 데에 그녀를 쓸 리 없잖아."

조롱을 가득 담은 도발. 물론, 클레온은 진심이었다.

알레시오스 주변의 발밑에 펼쳐져 있던 피가 끓어오르는 듯하더니, 이내 거대한 뱀과 같은 형태가 되어 치솟았다.

그리고는, 그 뱀은 클레온을 향해서 이빨을 드러낸 채 빠른 속도로 덮쳐온다.

"그 입놀림을... 후회하게, 해 주마...!"

클레온은 송곳니를 날카롭게 하여 돌진해 오는 뱀의 입을, 대검을 이용해서 틀어막는다.

하지만, 무게와 크기의 차이인지, 클레온은 땅에 발을 디딘 상태에서 뱀에게 눌려 뒤로 조금씩 밀려나는 것이었다.

"클레온 씨...!"

페루루카의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가 울린다.

그러나, 클레온의 입꼬리는 꺾인 채로 평평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까보다도 더더욱 알레시오스를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게다가... 이 검만큼, 네 녀석의 몸을 꿰뚫기에 어울리는 녀석은 없다고...!"

마력 먹는 검.

마을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준비되었지만, 결국 닿지 못한 검.

알레시오스 때문에 만들어진 수많은 이들의 후회와, 원한이 서려 있는 이 검이야말로.

그의 업보를 모두 꿰뚫기에는 누구보다도 적합한 검이었다.

전신의 근육에 힘을 넣으면서, 뒤로 밀려나던 자신의 발을 어떻게든 앞으로 내디딘다.

사람 한명과, 거대한 강과 같은 뱀의 대결.

당연하게도, 뱀의 쪽이 더욱 무거운 것은 틀림 없을 텐데.

자신의 뱀이 밀려나는 것에, 알레시오스가 당황하더니 손을 휘둘러, 조금 작은 크기의 뱀을 두 마리나 만들어 클레온을 양옆에서 덮치려 한 순간.

서걱! 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하면.

날아갔던 그림자가, 검을 쥐어든 채 양쪽의 뱀의 머리를 베어낸다.

크게 도약해서 돌아오면서 휘두른 그 검에는, 클레온을 괴롭혔던 피의 마력도 섞여 있었다.

"... ..."

클레온은 그림자의 활약을 보면서, 이내 한 번 발을 앞으로 내디딘 뒤­

대검을 꺾더니, 그대로 크게 위로 올려, 세로로 베어내면서.

동시에, 마력 먹는 검의 충격파를 발산시킨다.

그러자, 클레온을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던 뱀의 머리부터 몸통까지 반으로 갈라지면서.

이내, 평범한 피가 되어 땅으로 떨어졌다.

그림자는 기절해 있는 일레누를 지키는 듯이 알레시오스와 일레누의 사이에 섰다.

클레온 역시, 알레시오스를 쓰러트리기 위해, 그리고 그를 위해서 페루루카를 지키기 위해 그녀의 앞에 선다.

"미안하지만 알레시오스... 네가 상대해야 하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니다. 네가 지금까지 행해온 모든 일의 대가. ...그 모든 것과 마주해야 할 때다."

두개의 검의 끝이 알레시오스를 향한다.

두 사람의 클레온이, 각자 지켜야 할 것을 위해 전력으로 검을 휘둘러야 할 때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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