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4화 〉 혼의 안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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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여신의 육체를 지배하는 알레시오스의 인격은, 클레온의 선언과 도발을 듣고 몸을 떨었다.
기쁨이나, 두려움은 물론 아니었고.
그가 지금 느끼는 것은, 노출된 반신의 혈액마저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하는 분노이다.
"업보, 치러야 할 대가... 라고...!?"
거품이 떠올라서는 사라지고를 반복하는 그 흉측한 광경에, 클레온은 얼굴을 찌푸리지만 알레시오스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압은 아까보다도 더욱, 무겁고 진득하게 그의 몸을 짓눌러왔다.
마력 먹는 검을 쥐고 있기에 망정이었지, 만약 그 검이 없었더라면 이 마력압에 발이 무뎌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제작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정말로 유용한 검인 것에는 틀림없었다.
"지배하는 자가 거두는 것이 어째서 '악'인가...! 어째서 업보인가...! 나는 그저, 나에게 주어진 권리를 행할 뿐이다!"
자신의 행위를 끊임없이 합리화하는 괴물이, 끓어오르는 팔을 뻗어 클레온과 그림자를 향해 휘두르면
신축이 자유자재인 듯, 알레시오스의 붉은 팔은 위협적인 소리를 내면서 덮쳐온다.
그 피에 닿는 모든 생명체가 마력과 생명력으로 분해되어 흡수당한다는 것을 들었던 클레온은 마력 먹는 검으로 막는 것도 포기하고, 곧바로 몸을 굴려 공격을 피한다.
방향은 반대였지만, 그림자 클레온 역시 마찬가지로 아슬아슬하게 팔의 일격을 피하고 나면, 곧바로 멈추지 않고 앞으로 달려나가 알레시오스를 향해 그림자의 검을 휘둘렀다.
그러면, 알레시오스의 반신에서 피로 된 칼날이 튀어나와, 그림자의 검을 막아내고.
피로 만들어진 칼날은 그대로 상어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몇 개나 되는 가시들로 갈라지며 그림자를 통째로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보고 있을 클레온도 아니었다.
마력 먹는 검이 다시 한 번 공기를 찢으면서 무겁게 휘둘러진다.
클레온이 노리는 것은, 피로 이루어진 반신이 아닌, 비교적 멀쩡한 형태를 유지하는 육체 쪽.
천쪼가리 하나 걸치지 않았고, 완벽에 가까운 비율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베어야 할 대상이다.
주저함 없이 어깻죽지를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리면서 절단하면, 새빨간 피가 흘러나오며, 반대편에서 만들어진 가시들이 형태를 잃고 흩어져 버린다.
"크윽!"
알레시오스는 고통의 신음을 내지르면서 잘려 떨어져 나간 자신의 팔을 내려보고
곧바로, 어깨를 부여잡으면서 뒷걸음질쳐서 클레온, 그림자와 거리를 벌린다.
하지만, 클레온은 그런 알레시오스에게 재생의 틈을 부여하지 않기 위해서 곧바로 검을 휘두른 기세를 살려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갔다.
이번에는, 허리를 통째로 베어서 상반신과 하반신을 분리하겠다는 일념으로.
몸을 빙글 회전 시키며, 무게를 실어서 검을 수평으로 휘두르려 한 순간.
땅으로 떨어졌던 그 팔이 혼자서 움직이더니, 마치 원래 몸이랑 다시 붙으려는 듯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그대로 주인의 어깨로 되돌아가려는 궤적에 있는 클레온의 목으로 날아와 그 목을 움켜 쥐는 것이다.
"큭...!"
방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측 밖의 움직임을 보인 것에 클레온은 그 일격을 허용한다.
피부와 피부가 닿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빨려 들어가는 감각.
그리고, 당연히 공급되어야 할 산소가 도달하지 않으면서 눈앞이 흐려져 간다.
어쩔 수 없는 혐오감과 구토감, 그리고 상실감에 어떻게든 팔을 떼어내려 발버둥치지만, 빠져나가는 힘, 약해진 팔이 추욱 쳐지려고 할 때.
키잉! 하고 귀를 자극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고 생각하면 검은빛의 덩어리가 날아오더니, 클레온의 목을 조르던 손에 적중한다.
그 충격으로 순간 손에 힘이 약해졌을 때, 전력을 다해 그것을 뜯어낸 뒤, 발로 밟아 우그러뜨리는 데에 성공한 클레온.
고개를 돌려 빛이 날아온 방향을 보면, 손에 법의 서를 펼쳐 든 채 손가락 끝을 클레온으로 향하고 있는 페루루카의 모습이 보였다.
방금 것은, 그녀가 발현한 마법이겠지.
"되먹지 못한, 반쪽... 짜리 주제에...!"
클레온을 마무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에 분노한 것인지, 이번에는 직접 페루루카를 노리는 알레시오스.
분노의 외침과 동시에 나타난 거대한 피의 망치가 하늘 위에서 중력을 얻어 떨어지면서.
머리 위에서부터 페루루카를 짓눌러 뭉개버리려고 한다.
"페루루카!"
클레온이 뛰어가서 막기에는 먼 거리.
하지만 다음 순간, 무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가 폭발적인 가속을 얻어 페루루카에게 날아갔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검과 몸 전체를 이용해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망치를 틀어막은 뒤, 한 호흡과 함께 그것을 두 동강 내버린다.
"번갈아가면서... 나를 방해하고...!"
클레온, 그림자, 그리고 페루루카가 서로 보조하면서 알레시오스의 공격을 막아내고, 동시에 받아치면서 체력과 마력을 깎는다.
더군다나, 클레온이 들고 있는 마력 먹는 검은 집요할 정도로 알레시오스의 육체를 구성하는 마력들을 삼켜가며 그녀의 재생력과 힘을 동시에 떨어트리는 것이다.
"너희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일레누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녀석은 이미, 무너진 자아 속에 섞여서... 오합지졸의 흡혈귀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었단 말이다...!"
서서히 말도 끊어지지 않고 능변이 되어가며, 겹쳐있던 목소리도 줄어가는 알레시오스.
그 영혼 속에 존재하는 흡혈귀의 수가 줄어들어 가면서, 알레시오스의 지배권이 더욱 강해지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듀라한 윌헬미나는 그런 그의 상태를 보면서 혀를 찼다.
마력이 줄어드는 것은 클레온과 일행들에게도 괜찮은 일이지만, 남은 자아가 알레시오스 하나가 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었다.
지금 저 거짓된 여신이 영역 하나를 창조하고 유지할 마력과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클레온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안에서 혼재되어 싸우는 영혼들이 서로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힘을 조금 깎아내는 데에 성공하더라도, 결국 남는 것이 알레시오스의 자아라면...
일행들의 싸움에, 승리는 찾아오지 않는다.
영혼 속에서 자아를 잃은 채 흡혈귀들과 서로 죽여대고 있을 일레누의 의식을 깨워내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쿵! 하는 소리가 울리면서 클레온의 몸이 퉁겨져 나오면서 땅바닥을 구르듯이 날아와 듀라한의 앞까지 다가온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거짓된 여신이 손에 든 피의 검이 레이피어에서 대검의 크기까지 거대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클레온은 저 검의 공격을 받아낸 충격으로 날아온 것이겠지.
"고생이 많네~ 마검사 군..."
"당신만큼은 아니지... 저 녀석, 마력은 약해지는 데, 점점 강해지는 게 기분 나쁜걸..."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면서 심호흡을 하면, 듀라한은 얼굴을 어둡게 하면서 대답했다.
"역시, 그런가..."
"무언가 방법은 없는 건가? 마력 먹는 검은 충분히 잘 해주고 있지만... 이래선 끝이 없어."
눈 앞에서, 그림자가 춤추듯이 검을 휘두르면서 최소한의 힘으로 알레시오스의 공격을 흘려내는 것을 보면서 듀라한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그 그림자의 끝에 연결된 것은, 옥좌의 몸을 기댄 채 정신을 잃고 있는 진짜 일레누.
거짓된 여신도, 그림자 사념체도, 어느 쪽도 그녀의 몸에서 튀어나와있는 일부분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안에는 대체 무엇이 남아있는 걸까.
"... 저기, 마검사 군. 좋은 생각이랄까... 이 상황을 해결할 도박수가 있는데."
듀라한이 조용히 그렇게 이야기하면, 클레온은 시선을 알레시오스에게 고정한 채, 그녀에게 되묻는다.
"뭔데...?"
"들어봐..."
001
짧게 이야기를 마친 클레온은, 곧바로 한 호흡과 함께 다시 한 번 적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한창 그림자와 공방을 펼치고 있던 알레시오스는, 다시 전투에 뛰어든 클레온을 보더니 혀를 찬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팔을 두 개로 늘려, 다른 무기를 들고 동시에 클레온을 그림자와 함께 상대하는 것이다.
'역시, 점점 능력이 섬세해져 가고 있어...'
클레온은 알레시오스의 변화를 느끼면서 혀를 차는 동시에,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돋아난 팔이 휘두르는 무기를 검으로 막아낸다.
키기기긱...! 하고, 분명 액체로 된 무기일 텐데도 불구하고, 마력 먹는 검과 부딪혀 불똥을 튀긴다.
마력 먹는 검은, 무기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마력을 먹어치우지만, 그 처리 속도에는 한계가 있었다.
형태가 무너지는 것보다도 더 빠르게 형태를 유지하는 마력을 흘려보내면.
마력 먹는 검 하나만 가지고는 그의 형태를 무너트릴 수 없다.
클레온은 무의미한 공방에서 벗어나기 위해 검을 크게 휘둘러 올려 자신을 방해한 무기를 떨쳐내고, 이번에는 알레시오스가 보고 있는 곳과는 반대방향으로 달려 그의 사각을 노리고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팔을 하나 늘릴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부위에도 마찬가지의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곧바로 등과 옆구리에서 희번득 거리는 끔찍한 형태의 안구가 튀어나오더니 징그러운 소리를 내면서 사방을 살핀다.
당연히 그 안에는 클레온이 보이고 있었고, 그 눈의 바로 옆에서 또 다른 팔이나 꼬리 같은 기관이 튀어나와 클레온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에 성공하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등에도 눌린 상태의 괴물이 된 것이다.
"어리석은 녀석...!"
다음 순간, 마력 먹는 검에 꼬리를 휘감아, 점점 힘을 주기 시작하면.
검은 견디질 못하고 끼기긱 소리를 내면서 그 칼날에 금이 가려는 듯한 상태를 보였다.
클레온으로서는 검을 포기하고, 그것을 손에서 놓으면서 거리를 다시 벌리는 것이 최선이었겠지만.
그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이 검을 이용한 응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클레온은 검을 놓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마력마저 검에 먹인다.
검신으로 받아내는 마력과, 검 자루로 받아내는 마력은 별개인지, 그 상황에서 잘도 클레온의 마력을 흡수하는 마력 먹는 검.
클레온을 위협했던 충격파와 같이, 닿는 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만 같은 검압이 검신에서 터져 나오면.
알레시오스의 꼬리 역시, 산산조각 나면서 후두둑, 하는 소리를 내면서 조각조각 나서 땅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클레온도 이번에는 섣불리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
알레시오스에게는 떨어져 나간 신체 조각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추어져 있으니까.
경계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원거리에서의 공격을 시도하는 클레온.
검을 휘둘러 순간 방어 수단이 사라진 알레시오스에게 검압을 날리면.
보이지 않는 칼날이, 공기를 찢으면서 흙먼지를 일으키고 알레시오스의 몸에 닿는다.
"흥..."
하지만, 그 검압은 대상과 바로 가까이에서 터뜨렸던 것 보다도 위력이 떨어지는 것인지, 손에 들고 있는 검을 한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곧바로 사라져 버린다.
다만, 흙먼지가 피어올라 가라앉을 때까지, 알레시오스의 시야를 가릴 뿐.
다음 순간, 알레시오스가 일으킨 바람에 의해 먼지가 사라지고 나면 그 자리에는 이미 클레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그리고, 그의 시선이 향한 것은, 옥좌의 곁에 있는 클레온이었다.
클레온이 기절한 일레누에게 무언가를 시도하며 등을 보인 것을 확인한 알레시오스는.
비릿한 미소를 띄우면서 거대화한 양팔로 각각 그림자와 페루루카를 붙잡는다.
다행히라면 다행이랄까, 곧바로 닿은 것에서 마력을 흡수하지는 않지만.
이대로 지나면, 그림자도 페루루카고 정말로 사라져버릴 때 까지 마력을 빨아들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면.
클레온이 등을 보이더라도 그를 지켜줄 수 있는 수단이 사라졌다는 것이겠지.
곧바로, 땅을 철썩하고 치는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하면.
잘려나갔던 그 꼬리가 다시 달라붙어서 다시 한 번 클레온의 등을 향해 날아간다.
그 끝은 창날과 같이 날카롭고, 흉악했다.
"클레온 씨!"
페루루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위기를 알리려 하지만, 한 타이밍 늦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뿌려진 것과는 다른, 붉은 선혈이 튀어나오면서.
클레온은 자신의 몸이 등에서부터 꿰뚫려, 배를 관통하고 있는 것을 본다.
저절로 올라오는 핏물이 '쿨럭'하는 소리와 함께 입에서 흘러나오면.
클레온은 그대로 무릎에서부터 자세를 무너트리면서, 앞쪽으로 쓰러진다.
그의 손은 기절한 일레누의 몸에 닿은 채였다.
"클레온!!!!!"
다급함에 그의 이름을 크게 외치는 페루루카.
피를 마시지 않았는데도 서서히 머리카락이 하얘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외침에 조금 멀리서 싸우고 있던 클레온의 일행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쪽을 바라본다.
"...클레온...?"
아멜리아의 등을 타고, 불안함이 흘렀다고 생각하면.
그녀는 곧장 클레온과 페루루카가 있는 쪽으로 달려간다.
제발 그가 무사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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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된 건가..."
클레온은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여기서는 멀쩡하게 남아있지만, 방금 전의 공격으로 자신은 분명 등에서 뱃가죽까지 거대하고 시원한 터널을 뚫렸을 것이다.
"...정말로 죽을뻔한 순간에, 영혼이 몸에서 튕겨져 나오다니..."
다행일까 불행일까.
아니, 고위 사령 술사였던 윌헬미나가 말하는 것이었으니, 그녀라면 원래 알고 있었겠지.
쉽게 말하자면, 클레온의 몸은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 빠지며 육체가 혼절한 사이 그 영혼만이 빠져나온 상태가 된 것이다.
하지만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어준 덕분에, 클레온의 영혼은 곧바로 근처에 있던 비어있는 육체.
일레누의 몸에 들어오는 것에 성공했다.
정확히는, 완전히 비어있는 육체도 아니고, 그 육체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 피로 물든 공간 속, 어딘가에 있을 '일레누'와 운이 좋다면 만날 수 있다는 것.
"...정말로 도박수지만... 일레누. 흡혈귀 사냥하는 데에 이 정도의 리스크가 없으면, 말이 안 되겠지."
그는 영혼이 된 상태에서도 손 위에서 불꽃을 피우며.
그저, 마음속의 감이 이끄는 대로 어두운 공간을 나아간다.
그 길의 끝에서, 일레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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